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6)화 (16/130)

#16

고춧가루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웠으나 별수 없었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친 조정현은 취사 버튼을 눌렀다. 큰 밥솥도 밥이 되려면 30분 정도가 걸리는구나. 1인분 이상의 밥은 해본 적이 없던 조정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조정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김치찌개 냄새가 집안에 퍼진 것 같아 창문을 열며 환기를 하고 있을 때 샤워를 마친 지승혁이 걸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내놓을 반찬이 김치찌개뿐이었다. 계란 프라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 냉장고를 여는 조정현을 지승혁이 말렸다.

“저거 하나면 됐어요. 뭘 또 하려고 그래요.”

“하지만…….”

“조정현 씨 음식 하려고 온 사람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찌개만으로도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더 부릴 수는 없었다.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승혁은 냉장고 안쪽을 한번 보고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먹고 남은 도시락을 넣어두었었는데. 뒤늦게 생각난 사실에 도시락에 대해 물어보면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승혁은 따로 그걸 화제 삼지 않았다.

“현관문 밖에 사람 있어서 놀라진 않았어요?”

“네? 어. 아뇨. 그건 아닌데.”

조정현은 눈을 굴렸다.

“근데 여쭤볼 게 있어요.”

“뭔데요?”

어떤 식으로 물어봐야 하나 갈등했다. 그동안 지승혁은 조정현 말을 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저 여기에 갇힌 건가요?”

“……큭.”

지승혁의 입에서 간신히 참은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정현은 제 질문이 역시 이상했던 건가 싶어 당황한 나머지 입을 꼭 다물었다.

“아니. 아니에요. 곧바로 그 질문을 할 줄은 몰랐어요.”

지승혁이 손을 내저었다.

“내가 조정현 씨 감금했다고 생각해요?”

“감금…….”

갇혀 있다는 말보다 감금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생생했다.

조정현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했다. 어느 모로 따져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감금이라고 치자. 그런데 감금한다는 사람이 핸드폰도 빼앗지 않는 경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하던 조정현은 지승혁 쪽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에 정신을 차렸다.

“버릇이에요?”

“네? 뭐가요?”

“진짜 버릇인가 보네.”

“뭔데요?”

도통 감을 잡지 못해 연신 물어보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말했다.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고 있어요.”

지승혁의 지적에 조정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정말 그랬던가 싶어 미간을 찡그리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

지승혁이 말한 게 바로 이건가보다, 싶었다.

그는 이젠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나직한 웃음소리는 듣기에 좋았다. 그것과 조정현이 창피한 건 다른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 ……그래서요. 저는 감, 감금이라고 생각 안 해요.”

잠시 끊어진 주제로 돌아가며 조정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조정현의 말을 듣던 지승혁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랬어요? 그러면 그게 맞아요. 그게 맞도록 해줄 거고.”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지승혁의 눈매가 조금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취사가 완료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밥과 김치찌개를 덜고 있는데 지승혁이 자연스럽게 그릇을 들고 식탁으로 갔다. 그는 음식 그릇을 앞에 두고 있으나 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저는 조금 이따가 먹게요. 한번 드셔 보세요.”

“맛있어요.”

찌개를 한 수저 입에 넣은 뒤 나온 지승혁의 맛 평가에 조정현이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입에 맞으세요? 다행이네요. 저는 음식을 만든 직후에는 맛이 잘 안 느껴져서요. 다른 사람에게 음식 만들어 드리는 것도 처음이거든요.”

작게 웃은 조정현은 그제야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사실 저녁을 만든다고 하긴 했는데 저 먹을 정도로만 할 줄 아는 거라서. 맛없으면 어쩌나 하고 좀 긴장했어요.”

“요리를 많이 해봤어요?”

“아 그냥. 조금요. 배달 음식 먹기 지겨워서요.”

조정현이 웃으며 답했다.

지승혁은 그런 조정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네?”

뜬금없이 튄 주제에 맥락을 잡지 못한 조정현이 되물었다.

“배달 음식요.”

이어지는 지승혁의 말에 조정현의 입술이 벌어졌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지승혁은 그 안에 들어있는 맥락을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물어봤다.

조정현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스스로 요리를 해먹을 정도로 지겹게 먹었다는 거잖아요. 조정현 씨 나이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건 아니구요…….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조정현은 고개를 숙이고 뺨을 문질렀다.

그런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곤란하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찌개 식는데 먹어 볼까요.”

자연스럽게 식사를 권하는 말에 조정현은 수저를 집어 들었다. 앞에 앉은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조정현도 지승혁을 따라 찌개를 한 수저 떠서 먹어 보았다.

입에 넣은 찌개는 조금 전 맛을 봤을 때 그저 칼칼하고 짰던 것보다는 먹을만했다. 매콤한 국물이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칭찬하더라도 직접 먹었을 때 맛있다고 느끼지 못하면 아무래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기 마련이었기에 조정현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최고로 맛있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먹을 만한 요리가 되어서 다행이었다.

“어때요. 맛있죠?”

“네? ……어, 네에. 그럭저럭…….”

질문을 받은 조정현은 일순 음식을 만든 사람이 지승혁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못을 박듯 말했다.

“그럭저럭이 아니고 아주 맛있어요.”

“네에…….”

저렇게까지 말해주다니 고마웠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갓 만든 밥과 찌개는 그 자체로도 맛있었다. 보통 만든 직후에 무슨 맛인지 느끼지 못해 대강 먹었던 조정현이었기에 지승혁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이 맛을 알지 못했을 거다. 간간이 대화도 나누어가며 조정현은 부지런히 밥그릇을 비워갔다.

남자는 그 뒤로도 두어 번은 더 맛있다는 말을 해주었고 조정현은 그저 열없이 웃었다. 조정현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 이외에 그 행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다른 기쁨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 *

지승혁은 식사 후에 앉아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조정현은 오늘도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게 결코 할 말이 많아서는 아니었다. 긴장된 분위기를 깨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조정현에게 시끄럽다는 말을 할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접대가 아닌 자리에서 자의로 다른 사람의 식사 속도에 맞춰 먹는 거나 식사를 한 후에 느긋하게 앉아서 이야기하는 건 지승혁에게는 처음이었다. 지승혁은 쓸데없는 일을 하는 걸 싫어했는데 지금 하는 일은 결코 싫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다.

지승혁은 조잘거리는 조정현을 보며 도시락에 대한 일을 떠올렸다.

전화할 때도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조정현 성격에 막 사 온 도시락을 놔두고 굳이 냉장고에 방치되어있던 치킨을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도시락을 보는 순간 지승혁은 오늘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눈치챘다.

이영선은 지승혁의 지시대로 조정현에게 제때 도시락을 전해주지 않았다.

제 할 일은 알아서 딱 부러지게 하는 이영선의 평소 행동을 생각해보면 누락이 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승혁은 흐지부지하게 행동을 하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영선에게 자신의 자택을 알려주고 그 앞을 맡겼다.

그 이영선이 조정현에게 도시락을 전달하지 않은 이유는 일부러 말고는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조정현은 그 사실을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시락을 늦게 전해 받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조금씩 먹기까지 했다.

이랬어요, 저랬어요. 다른 이야기는 잘만 하면서 그 이야기는 쏙 빼놓았다. 조정현의 의도는 빤했다. 아마 문 앞에 세워둔 이영선을 배려해서였을 거다.

그 어리숙하고 연한 배려에 지승혁은 전혀 모르는 시늉을 하기로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는 지승혁의 반응에 조정현은 배시시 웃었다. 조정현이 웃을 때 뺨이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누군가가 웃는 게 보기 좋다니. 처음 느껴보는 희한한 감각이었다.

이전 정태준이 조정현에게 페로몬 이야기를 해서인지 워낙에도 깔끔하게 갈무리하고 있던 페로몬을 더욱 꼭꼭 여몄다. 몇 번이고 제 페로몬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승혁은 조정현의 페로몬이 어떤지 이미 알고 있었다. 조정현이 자신을 위해 점심을 사 왔던 그날, 주변에서 볼 수 없던 타입인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루어를 던졌다.

루어란, 상대방의 페로몬을 일방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극우성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극우성 알파나 극우성 오메가의 숫자 자체도 워낙 적었기에 연구가 별로 되지 않았을뿐더러 루어라는 자체가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루어를 던질 때 나오는 페로몬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알파나 오메가의 페로몬과 매우 유사하나 특성이 다르다는 점까지는 밝혀졌지만 정확히 어떤 원리로 그런 작용을 하는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다.

지승혁은 그 능력으로 조정현의 페로몬을 파악했다. 제 페로몬에 노출된 조정현이 어떻게 되는지, 두 사람의 페로몬 합이 어떤지 역시도 말이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조정현은 제 페로몬이 나오는 것도 모른 채 반응했다.

그렇게 루어를 사용한 그 순간 이후로 지승혁은 내내 조정현의 페로몬 향에 사로잡혔다. 시커먼 독점욕이 머리를 집어삼켰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지승혁은 조정현을 이 집에 들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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