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2)화 (12/130)

#12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조정현이었으나 일부러 불러세워 권하는 이유가 있겠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갔다. 바깥이 어둑한 덕분에 창문에 제 모습이 비치는 걸 잘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그냥 한 말은 아닌 듯했다.

지승혁의 옷 사이즈가 크기 때문일까. 넓게 파인 목은 쇄골까지 보여 제법 추워 보이긴 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 너머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리는 걸로 봐서는 벨을 누르던 사람이 온 모양이었다. 옥신각신하는 말소리가 나는 것 같았기에 조정현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살짝 연 문틈 사이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왔어.”

“아니이. 아주 소문이 짜하게 났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할 일도 없군.”

“아이고, 댁이 말할 게 아닌데요. 의뢰한 거 해결하느라 똥줄 빠지게 돌아다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심지어 직접! 가져다주기까지 하는 특별 서비스까지 해드리는데!”

“아무 사심 없이 그런 수고를 한 게 아닐 텐데 혀가 참 길어.”

남자는 지승혁의 어깨를 조금 넘는 키였다. 쌍꺼풀도 크게 져 있는 데다가 체격도 호리호리한 편이었으나 결코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눈을 곱게 휘면서 잘도 대꾸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뭔지 콕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지승혁의 손에 갈색의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아마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자에게 건네받은 것인 듯싶었다.

저 봉투 안에 든 게 뭘까. 혹시 부모님에 대한 걸까.

조정현의 시선이 갈색 봉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하하. 이걸로 먹고 사는 몸인데 그럼요. ……앗.”

멍청하게 넋을 놓고 서 있다가 그만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조정현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다가 지승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일부러 들고 있는 봉투를 감추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승혁의 입장에서 조정현을 그런 식으로 배려해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준다고 해도 착각을 해서는 안 됐다. 새삼스럽게 입장의 차이가 느껴졌다.

조정현은 자신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다행히 남자가 쉬지 않고 말했기에 떠들썩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생기 넘치는 반응을 보이던 남자는 인터폰으로 봤을 때보다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다. 조정현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는 걸 숨기지 않았다.

“와. 저기 지 사장님 방 아니야? 으응?”

조정현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이곳이 지승혁의 방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이 집에 들인 건 자기뿐이라고 분명 엊그제 지승혁이 얘기했는데.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 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거짓말을 했어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니긴 했다. 으음, 소리를 내던 조정현은 입술을 잘근거렸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멍해진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안녕하세요.”

상대방의 박력에 눌렸기 때문일까. 조정현은 상대적으로 민망한 듯, 조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조정현 씨? 와. 그냥 학생이죠? 야…… 얼굴 되게 작다. 왜 아이돌을 안 했지? 아이돌 하면 엄청 인기 있을 것 같은데. 이거, 머리. 염색한 거예요?”

“네? 아, 아뇨. 염색은 안 했는데…….”

조정현은 자신의 얼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빤히 쳐다보는 것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조정현의 반응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으래요? 천연 갈색 머리예요? 이 새벽에 렌즈를 꼈을 것 같지도 않고. 눈 색도 연하네. 와. 아니, 진짜 아이돌 한번 해봐요. 요새 그쪽도 인재가 없어서 앓는 소리 나던데. 조정현 씨 같은 얼굴이면 팬도 엄청 생길 걸요?”

“……아니…….”

다다다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말의 폭포에 조정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조정현을 구한 건 지승혁이었다.

턱,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매우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어어, 하면서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난 남자였지만 그걸로 전혀 기분 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내 소개도 안 했네. 정태준이라고 해요.”

“아, 네에. 저는-.”

“알아요. 조정현 씨. 바로 조금 전에 이름으로 불렀는데 자기소개하려는 거예요? 귀엽다.”

면전에 대놓고 저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조정현은 정태준이라고 밝힌 남자가 어쨌든 손님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몸을 돌려 정수기 쪽으로 가서 냉수 한잔을 떠 정태준에게 내밀었다.

“어, 오셨는데 그래도 뭐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냉장고에 뭐가 없, 아니. 냉장고가 제게 아니라서 이거라도 드세요.”

“푸하.”

정태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귀엽네. 진짜 귀엽네요, 조정현 씨.”

“……아뇨…….”

왜 자꾸만 귀엽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정태준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조정현을 응시했다.

“괴롭히지 마.”

지승혁이 경고하듯 말했다.

정태준은 그 말을 듣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하고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그리고 조정현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지승혁과 정태준이 서로에게 존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많이 친한 걸까.

조정현이 눈을 깜빡이며 지승혁과 정태준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태준은 지승혁의 방을 알고 있기도 했다.

“아니, 잠깐만요.”

“네?”

“뭔지 모르겠는데 일단 그건 아니라고 할게요.”

정태준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정현은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감이에요. 근데 잘 안 틀리거든요, 제 감이. 암튼 그건 아니에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설명하기에도 궁색했다. 뭐라고 하겠는가.

“근데 같은 오메가 보니까 반갑네요.”

정태준의 말에 조정현은 깜짝 놀랐다.

“어, 오메가세요?”

“네. 티 안 나나요? 나 같은 얼굴로 알파라고 하면 웃기잖아요.”

가볍게 말하는 정태준을,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다른 눈으로 쳐다보았다.

조정현은 자신과 같은 오메가를 처음 만났다. 사실 전 인구의 1.5%라는 수치 자체로만 놓고 보면 그렇게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다니.

“같은 오메가 만나니까 반갑죠.”

“어……. 네.”

“정현 씨 페로몬이 정현 씨 닮아서 아주 귀엽네요.”

“……네?”

뜻밖의 말에 조정현의 눈이 커졌다. 페로몬이라니. 페로몬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해 봤지만 분명히 제대로 닫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니며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바로 페로몬 조절 법이다. 아무리 열성이라고는 하지만 무방비하게 페로몬을 흘리고 있지 않았다. 특히나 조정현은 그런 면에서는 부모님의 엄한 간섭도 있었기에 더더욱 철저하게 굴었고 실수로라도 페로몬을 흘리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태준이 이유 없이 페로몬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닐 터였다. 놀리려는 의도 역시 없어 보였다. 그렇다는 건 자신도 모르게 페로몬이 흘러나왔다는 결론 밖에는 없었다.

지승혁이 베타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경계가 느슨해졌던 걸까.

이런 일은 여태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어지간히 정신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조정현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페로몬이 나왔나 봐요. 죄송해요. 기분 나쁘셨죠.”

“아, 정현 씨 잘못은 아니고.”

정태준이 웃는 얼굴 그대로 눈동자를 굴렸다. 조정현은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당황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사, 사장님이 베타라서 제가 너무 편하게 있었나 봐요.”

“응?”

“아니, 제가 너무 편하게 있어서 페로몬이 흘러나온 모양이라고…….”

“아니, 그 전에.”

되묻는 정태준을 당황스럽게 쳐다보았다. 지승혁도 조정현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조정현은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물고 이로 꼭꼭 깨물었다.

“베타요?”

“네? 아…… 사장님이 베타셔서…… 네?”

조정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정태준의 표정을 보곤 잠시 말을 멈췄다. 뭔가 잘못 말한 걸까. 정태준은 몹시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야……. 지 사장님. 베타 지 사장님.”

정태준이 지승혁 쪽을 돌아보면서 불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야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얼른 이해하기 힘들었다. 설마 베타가 아닌 걸까.

이 상황에서 지승혁에게 물어보는 것도 뭐 했다.

“……저……?”

“음. 아니에요.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이만 할게요.”

정태준이 방긋 웃었다.

이만 가봐야겠다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조정현을 보는 정태준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연락처를 물어봐도 괜찮을까.

같은 오메가를 만났는데 그냥 스쳐 지나가기가 아쉬웠다. 학교에서 오메가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학년이 다르거나 하는 등의 이유 때문에 말을 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갈등하던 조정현이 용기를 냈다.

“저기, 혹시 핸드폰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연락처? 아. ……알려줘도 괜찮나?”

정태준은 조정현에게 묻고 있지 않았다. 지승혁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괜찮은 모양이네. 불러줄 테니까 저장해요.”

조정현은 정태준의 입에서 나오는 숫자들을 빠르게 저장했다.

고개를 내밀며 조정현의 핸드폰을 쳐다보던 정태준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지 사장님 저장 명이 사장님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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