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10)화 (10/130)

#10

집 안을 돌아다닌 조정현은 사용하지 않는 방의 가구에 내려앉은 먼지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먼지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나마 할 일을 찾았다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집에 먼지가 많은 걸 좋아하는 것도 좀 그랬다. 누가 본 것도 아닌데 머쓱해진 조정현은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청소를 하는 것도 하는 건데 일단 청소도구도 찾아봐야 했다. 지승혁은 집에 있는 걸 편하게 사용하라고 했었지만 냅다 아무거나 집어 들고 걸레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뺨에 공기를 넣고 불룩하게 만든 조정현은 고민 끝에 핸드폰을 잡고 지승혁에게 톡을 했다.

[수건 하나 써도 될까요? 집에 먼지가 많아서_]

먼지가 많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수건 하나 써도 될까요? 집 청소 좀 하려고_]

청소를 한다는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당신을 위해 이만큼 고생을 한다고 어필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조정현은 가만히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

[수건 하나 써도 괜찮을까요?]

완성된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던 조정현은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 지승혁에게 발송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네]

한 글자의 짤막한 답변이었지만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해줬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조정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길로 수건 하나를 골라 물에 적셨다. 청소를 하기 시작하니 여러 생각이 정리되어갔다. 그제야 조정현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던 걱정이 있었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

부모님에 대한 질문을 조정현 쪽에서 해도 될까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나가듯이 가볍게 물어보는 정도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졌다. 뭘 어쩌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묻기만 하는 거라면 지승혁도 대수롭잖게 받아줄 가능성이 있었다.

걸레질하던 조정현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먼지가 앉은 곳을 바지런히 닦기 시작해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를 끝냈을 때는 점심시간이 좀 지나있었다.

꼬르르륵. 꼬르르륵.

배에서 음식을 달라고 시위했다.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것만 더 하고, 이것만 마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이런 시간이 됐다.

주린 배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어제 먹다 남은 치킨 말고 안에 든 게 없었다. 정수기를 사용해서 그런지 생수병도 들어있지 않았고 주스조차도 없었다. 이 정도면 냉장고 코드를 뽑아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탈한 기분으로 최신형 양문형 냉장고를 닫았다.

청소하면서 발견했던 인스턴트 밥이 전부인 것 같았다. 다행히 컵밥 형태로 되어있는 종류였다. 만약 맨밥만 있는 거였다면 조정현은 정말 눈물이 찔끔 나왔을 수도 있었다.

조정현은 식사 메뉴를 뭐로 할 것인지 잠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조정현은 빈속에 기름진 치킨을 먹는 게 영 내키지 않아 컵밥을 선택했다.

익숙한 손동작으로 비닐을 뜯은 조정현은 빌트인으로 되어있는 전자레인지에 밥을 넣고 작동시켰다.

위이잉 거리며 돌아가는 전자레인지 소리에 조정현은 그제야 집이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티비를 켜자 왁자한 소리가 갑자기 터져 나와 귀가 따가웠다. 때마침 전자레인지에서도 조리를 종료했다는 알림 음이 들려왔다.

적당히 소리를 줄인 티비 소음과 함께 조정현은 늦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얼른 먹고 좀 쉬었다가 지승혁이 돌아오면 맞아줘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던 조정현은 땀이 난 몸을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확실히 일찍 일어나긴 했다. 눈이 뻑뻑한 듯 피로해졌다.

잠깐만 자야겠다고 생각한 조정현은 핸드폰으로 알림을 맞춰놓았다.

* * *

“……헛.”

잘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뜨는 일이 있는데 지금 조정현이 그러했다.

벌떡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밖이 어둑했다.

대체 얼마나 잔 거지. 알람을 맞춰놨는데? 당황스러워진 조정현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맙소사. 알람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시간은 이제 밤 8시를 좀 넘어가고 있었다.

조정현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닫혀있던 문을 열고 나가니 거실 불이 켜있었다. 지승혁이 귀가했다. 그 소리도 듣지 못하다니.

[현관이랑 가까우니까 혹시나 나가시거나 들어올 때 소리가 나잖아요. 그러면 배웅하는 거나 마중하는 게 편하니까요.]

조정현은 바로 어제 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민망해졌다.

딱히 큰 인기척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집안에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서 이렇게 차이가 크다는 게 놀라웠다.

“저…… 사장님……?”

조용한 공간에 조정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때문에 깼어요?”

“아뇨, 그. 언제 오셨어요?”

“얼마 안 됐어요. 조금 전에.”

그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 지승혁은 아직 슈트 차림이었다.

“저, 잘 다녀오셨어요.”

지승혁의 눈이 조금 커졌다. 눈매가 살짝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아래로 슬며시 휘어졌다.

“내 집에 와서 인사를 받는 건 처음이네요.”

“어, 죄송해요.”

“아니. 뭐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고마워요. 잘 다녀왔어요.”

생각지 못한 지승혁의 반응에 조정현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네에, 하고 대답했다. 배꼽 근처가 간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수건을 써도 되냐는 이야기를 왜 하나 했더니, 청소했어요?”

“아. 네.”

“그런 일 시키려고 집에 데려온 게 아니라고 한 것 같은데, 뭐 됐어요. 힘들었겠네요, 수고했어요.”

처음에 하는 말에 괜한 일을 한 건가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결국은 감사 인사를 들었다. 뭘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뿌듯해졌다.

“그런데 옷 계속 입고 있기는 찝찝하지 않아요? 먼지 같은 것도 묻었을 테고.”

“아. 괜찮아요. 그럴까 봐 벗고 청소했어요.”

지승혁이 걱정해주는 게 못내 멋쩍어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하던 조정현은 뺨에 와 닿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지승혁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음, 그래요. 그랬군요.”

지승혁이 입매를 매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옷 있는 곳을 알려줄 걸 그랬네요. 새 걸로 꺼내줄 테니 지금 갈아입을래요?”

새 옷을 주겠다는 이야기에 조정현은 한번 거절했지만 결국 지승혁이 건네는 걸 받아들었다. 그는 조정현에게 방에서 갈아입으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게 꽤 민망했다. 아무리 그래도 지승혁의 앞에서 옷을 갈아입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조정현은 식탁 위에 있는 도시락을 발견했다.

“식사 안 했을 것 같아서 일단 사 왔어요. 같이 먹을래요?”

잠에서 막 깬 상태였기에 솔직히 그다지 허기가 느껴지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지금 안 먹는다면 나중에 배가 고플 게 분명했다. 조정현은 곧바로 좋다고 대답하고 식탁에 앉았다.

조정현은 도시락 두 개를 꺼내서 자신의 앞에 하나, 그리고 하나를 맞은 편에 놓았다. 지승혁이 물이 담긴 컵을 조정현의 옆에 놓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프랜차이즈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락집의 상표였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한 뒤 뚜껑을 하나씩 열었다. 도시락을 먹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질문했다.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적당히 사 왔어요.”

“아. 이거 제가 좋아하는 거예요. 저 이거 잘 먹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3만 원에 달하는 도시락은, 한 끼로 먹기엔 비싼 메뉴였기에 조정현도 썩 자주 시켜 먹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냉장고 안에 치킨이 있는데 안 먹었네요.”

“아…… 그거요. 어, 그냥. 인스턴트 컵밥도 있어서요.”

조정현은 입안에 있는 음식을 다 씹어 삼킨 후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먹고 남은 음식이 있는데 그걸 놔두고 다른 걸 먹었으니 좋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뭔가 변명을 하려던 조정현보다 한발 먼저 지승혁이 심상한 어투로 그랬냐고 말했다. 그때서야 조정현은 제가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음식을 먹던 조정현은 부모님에 대한 질문을 언제쯤 하면 좋을까 때를 보고 있었다.

막상 하려니 입이 잘 안 떨어지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지승혁을 앞에 두고 나니 혀에 뼈라도 생긴 것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지승혁은 조심스럽게 맵지 않게 조리된 반찬을 집어 먹는 조정현에게 말했다.

“집에 먹을 게 없다는 걸 깜빡했네요. 내일 식사할 만한 걸 보낼게요.”

“네? 아, 치킨 먹으면 돼요.”

“하루종일 그것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과연. 맞는 말이었다.

조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긴 했다. 그러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자신이 나가서 음식을 사 오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굳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조정현이 이제 절반 정도가 남은 밥을 떠 입에 넣고 있을 때 지승혁은 식사를 마쳤다. 언제 저렇게 다 먹었을까. 깔끔하게 빈 도시락을 보며 당황하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말했다.

“내가 좀 빨리 먹는 편이에요.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먹어요.”

물을 마시는 지승혁을 보며 조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식사를 끝냈음에도 조정현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줄 모양인 듯했다. 방해되는 게 아닐까 싶어져 마음이 급해졌다. 지승혁이 젓가락을 쥔 손을 빨리 움직이는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현 씨한테 맞는 옷도 사야 할 것 같은데.”

“네?”

“왜 그렇게 놀라요. 제가 그것도 대출금에 포함할까 봐 그래요?”

지승혁이 우스운 듯 놀리는 어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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