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6)화 (6/130)

#06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장님. 실례합니다.”

지승혁은 코트를 벗다가 조정현인 걸 확인하고 옷걸이에 옷을 걸었다. 조정현은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을까 하다가 어제 일이 생각나 반 뼘 정도 열어둔 채로 지승혁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수프, 사다 주라고 하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지승혁은 잠시간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맛은 있었어요?”

“네? 네. 따뜻해서 맛있었어요.”

“그럼 됐어요.”

지승혁이 팔을 쭉 뻗자 조정현은 반사적으로 움찔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반응을 한 후였다. 난감해서 입술을 한번 깨문 조정현은 지승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로 조정현을 응시했다.

“내가 조정현 씨에게 뭐 폭력적으로 굴기라도 했습니까?”

“네? 어…… 어, 어제 저 때리셨던 거……. 빼고, 요?”

지승혁의 매끈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걸 때린 거라고-” 하던 그는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거 제외하고요.”

“그거 제외…… 음…… 아뇨. 없……. 으셨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나만 보면 겁을 먹어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무서워하면 억울해서 무서워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어지잖아요.”

조정현은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좌우로 붕붕 가로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뇨. 아니에요. 안 무서워해요. 안 그래요.”

지승혁의 미간에 새겨졌던 주름이 사라졌다. 조정현은 손을 내리고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안, 안 그러실 거죠?”

“뭐가요.”

“……무서워할 이유 만들어 주신다는 거요…….”

“농담이죠.”

조정현은 말없이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절대 농담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걸 소리 내어 지적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 저 오늘 면접 보러 가요.”

“그래요?”

“네. 잘 되면 거기에서 숙식 해결도 가능하다고 해주셔서 아마 오늘 뵙는 게 마지막, 아, 그, 빚 갚는 건 남아있지만, 그래도 마지막일 것 같아서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렇군요.”

지승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조정현은 그 반응에 살짝 맥이 빠지는 걸 느끼곤 조금 당황했다.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할 말이 없는 걸 깨닫고 입을 한번 꾹 다물었다. 이만 나가보겠다고 하며 사장실 밖으로 나온 조정현은 괜스레 뺨을 문질렀다.

약속된 면접 시간이 되어 가게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조정현은 핸드폰을 켜 장소를 검색했다. 어둑해져서인지 간판들에 하나둘 불빛이 들어와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킹 코스타, 킹 코스타……. 아. 저기다.”

면접 볼 가게를 발견한 조정현이 막 건물 안에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곳에는 지승혁이 차 뒷좌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예상도 못 한 곳에서 지승혁을 만난 조정현은 지금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우연이네요. 이렇게도 만나네.”

정말 우연이었다. 사무실에서 버스로 열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지승혁이 이곳에 올 만한 일이 있던 걸까.

고개를 끄덕이는 조정현에게 지승혁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면접 보러 간다는 곳이 여기예요?”

“네? 네에. 여기 지하에 킹 코스타라는 곳인데, 저기, 사장님?”

“여기 뭐 하는 곳인지는 알아요?”

“네에. 술, 술집요. ……어, 아니, 근데, 여기 청소할 사람 구한다고 그래서 청소 자리에 지원한 건데요.”

지승혁은 잠시간 말없이 조정현을 쳐다보다가 차에 타라고 했다.

이제 면접을 봐야 했으므로 조정현은 당연히 거절했다. 뒤에 기다리던 차가 빵빵거리며 클랙슨을 울렸다. 차량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훑어보며 지나갔다. 클랙슨 소리에 길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도 모여들었다.

“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얼른 가보세요.”

조정현이 재촉하자 지승혁이 차에서 내려섰다. 조정현은 돌발적인 지승혁의 행동에 당황해 이렇다 할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멍하게 쳐다만 보았다. 그리고 차는 그를 내려둔 채 그대로 출발했다.

“여기에서 왜 일하려고 하는데요?”

지승혁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평연했다. 이 자리에서 제일 당황하고 있는 건 아마 조정현 혼자인 듯했다.

“여기요? 시, 시급이 제일 셌어요.”

“시급이 얼마였는데요?”

아까 면접 보러 간다고 했을 때에는 무관심해 보였으면서 갑자기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붓는 지승혁의 반응에 조정현은 당황했다.

“그, 시간당 5만 원 이상이라고 적혀 있긴 했는데, 열심히 하면 더 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조정현 씨.”

지승혁이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울림이 좋은 그 목소리에 조정현은 하던 말을 멈추었다.

“단순한 청소로 시급 5만 원 이상을 주는 데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한 지적에 조정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자격증도 뭣도 없는 사람에게 청소할 것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시급 5만 원 이상을 당일 지급한다는 얘기는 사실 말이 안 됐다. 면접 전에 굳이 사진을 보내라는 것도 되짚어보면 이상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저 빨리 일을 구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앞뒤 생각하지 않고 덜컥 덤벼들었다.

“여기 호스트 클럽이에요.”

“네?”

“남자 접객원이 있는 술집이라구요. 처음 며칠은 아마 청소만 시키다가 잠깐씩 매너 좋은 손님들 상대를 하게 할 거예요. 그러다 서서히 물장사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결국엔 발을 들이미는 거예요. 처음 보는 여자들한테 웃음 팔고 몸 내줄 수 있어요? 그거까지 생각하고 온 거라면 나도 상관 안 하고요.”

“아, 아뇨. 아뇨. 아니, 저는, 저는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얼굴에 점점 더 열이 올랐다.

당황한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때마침 지승혁이 타고 왔던 차가 다시 그의 뒤에 멈춰 섰다. 근처 한 바퀴를 돌고 온 걸까.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혔다.

“타세요.”

그가 차 문을 열고 조정현을 쳐다보았다. 이번엔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가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출발했다. 차 내부는 몹시 조용했다. 조정현이 뭐라고 입을 열려 했을 때였다.

“그래서, 앞으로 어디에서 지낼 거예요?”

침묵을 가르며 갑작스럽게 던져진 질문에 조정현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렸다.

“어…… 이제 또 알아봐야 해요.”

점심때, 지승혁에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작별하듯 했던 말을 떠올린 조정현이 민망함에 뺨을 문질렀다.

“제가 사, 사무실로 돌아가는 건 곤란하실 거고 저도 죄송한데……. 사장님만 양해해 주시면 바로 알아보고 오늘 밤에라도 나갈게요.”

“뭘 알아봐요?”

“이, 일자리요?”

조정현은 당연한 걸 되묻는 지승혁에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조정현의 대답을 들은 지승혁이 “아, 일자리.”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할 만한 일은 있는 것 같아요?”

“네? 아. 숙박까지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더라구요. 주유소나 지방에 공장 생산직 쪽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렇게 된 거 내려가 볼까 싶어요. 아, 물론 도망가는 건 아니에요. 연락 주시면 꼬박꼬박 받을 거고 빚도 조금씩이지만 계속 갚을 거예요.”

“주유소나 공장?”

지승혁은 조정현이 한 말을 따라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딴 일로 얼마를 벌려고 하느냐, 알량한 푼돈을 모아봤자 푼돈이라는 신랄한 말 두어 마디쯤은 들을 각오를 했는데 의외로 지승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정현은 긴장해서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자세를 바로 했다.

지승혁은 정면을 본 채 흐음, 하고 코를 울리며 눈꺼풀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사무실 말고 내 집으로 가죠.”

“네?”

지승혁은 뭐가 우스운지 조정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픽 웃었다.

“그렇게 두 번씩 되묻는 게 취미예요?”

“네? 아, 아니. 아뇨. 그건 아닌데.”

조정현이 우물거리며 말했다.

“집……. 사장님네 집에요? 제가요?”

“따로 머물 곳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도 되고요.”

“아,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럼 저기, 감, 감사합니다.”

분명히 머물 곳이 없다고 했는데도 지승혁은 굳이 저렇게 말을 했다.

그는 할 말은 다 한 듯 눈을 감으며 시트에 더욱 깊이 몸을 묻었다. 더 말을 걸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조정현은 입술을 깨물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덥석 따라가도 되는 걸까. 아까는 차에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떠올려보면 강경하게 버텼어도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게 아니어도 좀 더 거절하는 편이 맞지 않았을까. 너무 경계심 없는 행동을 한 게 아닐까.

조정현이 생각에 잠긴 사이 두 사람을 태운 차는 한강 변의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멈출 때 으레 있는 몸의 흔들림이 일절 없이 차가 멈춰 섰다.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지승혁은 마치 잠든 것처럼 보였다. 조정현은 지승혁을 깨워야 할지 아니면 기다려야 할지 얼른 판단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조정현의 고민은 반짝 눈을 뜨는 지승혁에 의해 거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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