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퐁달치즈빵 호랑이님의 아기 복숭아 (2)화 (2/130)

#02

입술을 달싹거리던 조정현이 자그맣게 목소리를 냈다.

“어, 하지만…… 그러면 그, 빚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건 조정현 씨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지승혁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부모에게서 그 돈을 받아낼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키워준 부모님의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모험을 할 가치는 있었다.

“그…… 그러면 제가 그냥 갚을게요.”

“……흠?”

지승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조정현 씨한데 뭘 시킬 줄 알고 갚겠다고 합니까.”

“네? 어…….”

조정현은 눈치를 살피며 입술을 감쳐 물었다.

“얼마인지 알려줘야 좀 감을 잡으려나.”

혼잣말하듯 중얼거린 지승혁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원금만 23억입니다.”

“…….”

조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다.

“짧게 대출하는 대신 간곡하게 부탁하셔서 달에 4%로 이자 설정을 했어요. 그런데 갚으라는 돈은 안 갚고 대신 조정현 씨를 보냈네……?”

계속 존댓말을 쓰던 지승혁이었는데, 마지막에는 말이 짧아졌다.

조정현은 손끝을 바라보았다.

23억.

원금이 저 정도면 이자까지 하면 얼마나 될까. 워낙 억억거리는 세상이었기에 그냥 듣기에는 뭐 그 정도야, 싶겠지만 저 금액을 혼자서 갚는다고 생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큰 액수였다.

“스무 살 조정현 씨.”

“……네, 네?”

“내가 조정현 씨를 데리고 있으면 뭘 해줄 겁니까? 나한테 해줄 게 있습니까?”

평연한 어조였다. 그래서 더욱 어쩔 줄 몰랐다.

우물거리는 조정현의 태도를 보던 지승혁은 변함없는 목소리로 연이어 질문했다.

“조정현 씨를 받아주면 내가 얻을 이익이 있냐고 묻는 겁니다.”

조정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조정현이 그런 큰돈을 갚을 수 있을 리 없었다.

“6억입니다.”

“……네?”

“조정현 씨 그대로 가져다가 몸 조각내서 장기 떼고 팔아도 6억밖에 못 받는다고요.”

조정현은 그래도 가격이 제법 되는구나, 하는 얼빠진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 이야기다. 그런 조정현의 반응을 빼놓지 않고 살펴보던 지승혁이 느릿하게 덧붙였다.

“조정현 씨라면 그것보다 다른 쪽에서 더 수요가 있긴 하지만 그건 내 취향이 아니고.”

조정현이 움칫 어깨를 떨며 조심스럽게 지승혁을 쳐다보았다.

툭툭. 지승혁의 손가락이 의자의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던 조정현이 눈을 들자 지승혁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조정현은 후다닥 다시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빚을 갚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을 찾으려니 막막했다.

몇백만 원 수준이 아니고 수십억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큰돈이네요, 하고 물러날 수도 없었다. 조정현은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어떻게든 제가 갚을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기막혀할 수도 있었으나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조정현 역시도 제 말이 허황된 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23억이라는 거금을 구할 방법은 조정현에게도 없다. 하지만 어쨌든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빚진 돈이니만큼 자신과는 아예 상관없다고 발을 뺄 수는 없었다.

부모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 건 저들도 마찬가지다. 만약 연락된다면 이런 식으로 조정현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부모님에게로 갔을 테니까 말이다. 바꿔 말해서 저들에게 조정현은 부모님과 연결된 하나뿐인 고리라는 말이었다.

지승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나하나 부위별로 꼼꼼하게 따지는 감정사처럼 조정현을 쳐다보던 그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조정현은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정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변제 방법은 차차 생각해봅시다. 핸드폰 켜두고 연락 가면 받으세요.”

할 말은 끝났는지 지승혁은 짧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그를 조정현이 잡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시선에 조정현은 잡았던 손을 황급히 떼며 말했다.

“저어, 죄송해요. 그, 그런데 여기에서 좀 머물 수 있을까요?”

“머물러? 무슨 말입니까.”

“제가 지금 당장 갈 데가 없어서요. 숙, 숙박 가능한 알바를 찾을 때까지 며칠만 지내게 해주세요.”

조정현의 말을 들은 지승혁은 어이가 없는 듯 하, 하고 웃었다.

“알아서 하십시오.”

찰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조정현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알아서 하라는 얘기는 승낙인 걸로 봐도 될까.

입술을 잘근거리며 허공을 쳐다보던 조정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나가는지 사람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벽 너머로 들렸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았다. 뭐든 해야 했다.

그래도 기회라도 주어진 게 어딘가, 하고 자신을 다독인 조정현의 시야에 먼지가 올라앉은 서랍장이 들어왔다.

* * *

그 후로 일주일.

급하게 결정된 지방 출장이었다. 그래도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지승혁은 차 시트에 깊이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덩어리가 제법 큰 회사였기에 제대로 소화를 해서 현금화하려면 앞으로 한동안 바빠질 터였다. 머릿속으로 차분히 계획을 짚어가는 한편 출장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현무실업의 회장 조영웅이 찾아왔던 건 2개월 전이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급하게 돈을 융통할 곳이 있으니 제발 빌려달라 사정하며 원래의 이자율보다 높은 이자를 돌려주겠다고 자청했다. 확인을 해보니 이틀 뒤 결제해야 하는 20억 상당의 어음이 있었다.

모든 회사가 수억에서 수십억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한 건 아니다. 상황이 나쁘거나 우연이 겹쳐 피치 못하게 어음 결제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반열에 든 회사가 당장 십수억 원의 어음 결제를 하지 못해 부도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어음부도 그 자체도 큰 문제지만 정말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일이 기사화가 됐을 때 주가 폭락은 피할 수 없다. 주주들의 반발도 그렇고 회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 상황을 우려한 회사들은 기존의 금융권이 아닌 곳에서 비밀스럽게 대출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을 상대하는 곳이 바로 지승혁이 운영하는 업체였다.

지승혁이 평균적으로 대출해주는 금액에 비해 20억은 비교적 작은 액수기에 그걸로 사업체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 그러기엔 지승혁이 운영하는 회사는 지나치게 보유 현금이 많았다.

속여서 대출을 하게 만든 게 아니다. 이자에 대한 건 사전에 철저하게 고지를 했다. 그걸 받아들이고 대출을 해간 건 바로 조영웅이었다. 비단 조영웅뿐이 아니다. 굽신거리며 돈을 빌려 갈 때는 언제고 갚을 때가 되면 정식 등록된 업체가 아니니 신고를 하겠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철저하게 추심을 했기에 지금의 지승혁이 있는 거지만 말이다.

천천히 턱을 문지르던 지승혁은 아직 앳된 티가 나던 조정현을 떠올렸다.

열성 오메가.

베타가 95%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오메가는 1.5% 정도밖에 없는 희귀한 존재였다.

따로 서류에 표시된 사항을 보지 않아도 조정현이 오메가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승혁은 상대방의 형질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감이 뛰어난 극우성 알파였으니까 말이다.

서류를 훑어보기 전, 건물 앞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서 있던 조정현을 보자마자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저건 빚 대신 넘겨진 담보구나.

그리고 그런 예측은 비껴가지 않았다.

베타와 다르게 알파나 오메가들은 21살까지 부분적으로 보호자의 친권과 양육권이 유지된다. 물론 참정권 등은 성인 베타와 같다. 단지 알파나 오메가들은 형질의 특수성 상 신변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에 몇몇 부분에 한해서 그 시기에 유예를 둔 것이다. 한데 그들은 도리어 그걸 악용 해 조정현을 지승혁에게 넘겼다.

현무실업의 사장 부부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제 아들을 담보로 떠넘기고 갈 정도인데 당당하게 원래 자택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외려 지승혁 쪽이 놀랐을 터다.

조정현에게서 그들의 은신처나 도피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기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버리는 패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조정현의 반응을 봐서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긴 알면서도 제 발로 찾아올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반응을 꾸미기에는 조정현은 너무 솔직했다.

제 스스로 빚을 대신 갚겠다고 한 것도 어느 정도 예상 범위 안이었다. 왜냐하면 조정현은 오메가였으니까.

만약 조정현이 오메가임을 내세워 페로몬을 흘리며 유혹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끌어다가 내쫓았을 거다. 하지만 그 대신 조정현은 며칠만 머물게 해달라고 했다. 그 이유도 숙박이 가능한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승혁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타입이었다.

“김 실장님, 사무실로 갑시다.”

“바로 쉬시지 않고요.”

“해결할 일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차의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서윤영이 몸을 돌리며 지승혁에게 말을 걸었다.

“조 사장 때문이시면 제가 연락을 넣어볼까요?”

“아니요, 됐어요. 그건 내가 직접 합니다.”

서윤영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곤 자세를 바로 했다.

그는 오랜 세월 함께 해서인지 지승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곧잘 눈치채고 이렇게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교통체증 때문에 예정된 시간보다 20여 분 정도가 더 걸렸다. 사무실로 향한 지승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가 걸음을 멈췄다.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가 평소 지승혁이 알고 있는, 사무실에서 나는 소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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