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귀환, 그 후의 이야기 17화
“쇼크이터.”
그 거대한 폭발 앞에 서 있던 한수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였다.
메가톤급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공포스러운 폭발 앞에서 한가로이 손을 뻗어낸 채 한수호가 내뱉은 단어는 0티어 최상위에 자리하고 있는 쇼크이터.
이미 10년 전에도 발자크가 펼쳐낸 최후기술을 막아낼 정도로 강력했던 이 쇼크이터는 이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수준까지 진화를 마친 상태였다.
[특성: 쇼크이터(최종)]
-0티어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특성입니다.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직.간접적인 충격을 흡수율에 따라 빨아들입니다.
-흡수된 충격은 2중첩하여 축적 후, 원하는 방향으로 방출이 가능합니다.
-충격 흡수율은 기본 100%이며, 육체한계치에 정비례합니다.
-대상자의 예상 흡수율: 200%
-쿨타임: 30일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
쇼크이터는 자신이 받은 공격을 100%로 흡수하고 그걸 두 배로 되돌려 줄 수 있는 사기급 특성이 되어버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
한수호의 코앞에서 핵폭발이 터졌지만, 폭발의 범위는 채 10미터를 넘어가지 못했다.
10미터 밖으로 폭발력이 퍼져나가기도 전에 한수호의 손바닥으로 모든 파괴력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수호의 손바닥은 새빨갛다 못해 새하얗게 변했다.
어마어마한 핵폭발을 손바닥 하나로 빨아들이고 있는 자체가 이미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제로투의 연쇄 폭발이 이어졌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이번 폭발은 제로원의 폭발에 덧씌워지며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뿜어냈다. 하지만,
츠아아아아아아아-
어김없이 한수호의 손바닥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폭발은 1분여 가량 지속됐고, 이젠 한수호의 몸 전체가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한수호 앞에 서 있었던 제로원과 제로투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그들이 있던 자리에 약 2미터가량의 구덩이가 움푹 파여있을 뿐.
두 개의 핵무기가 증폭된 채로 폭발한 흔적치고는 너무도 볼품없는 결과.
그만큼 한수호가 빨아들인 폭발력이 엄청나다는 방증이었다.
그때 한수호는 고개를 돌려 왼손을 반대쪽에 있는 구멍의 정중앙을 향해 쭉 뻗어냈다.
그 구멍은 터널이었다.
게이트와 포탈은 사람이나 물체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주는 역할만 하지만, 월이 세계수의 힘으로 만들어낸 이 터널은 말 그대로 양쪽을 잇는 통로였다.
게이트나 포탈에 돌멩이를 던지면 건너편으로 넘어간 즉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터널은 달랐다.
이곳에서 돌맹이를 던지면 운동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진 상태로 반대편으로 튀어나와 계속 날아가는 게 가능했다.
한수호는 지금 오른손으로 두 번의 핵폭발을 빨아들였고, 이제 왼손을 뻗어 그 터널을 향해 뿜어내려는 것이다.
터널을 바라보니 51구역에서 긴급하게 출격한 전투기가 가까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한수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뇌까렸다.
“일본이 그랬듯, 이건 당신들이 행한 일에 대한 최소한의 인과응보일 뿐이다.”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흡수했던 모든 힘을 왼손으로 방출시켰다. 순간,
쮸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손바닥에서 뿜어진 거대한 빛의 기둥이 터널을 통과했고, 그 즉시 51구역의 상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빛의 기둥 근처를 스쳐 날아가던 전투기 세 대가 엄청난 충격파에 휩쓸려 공중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빛의 기둥은 51구역의 어느 한 건물 위에 그대로 직격하고 말았다.
부오오오오오옥!
빛의 기둥이 지면을 파고든 순간 51구역 전체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반경 수십 킬로미터가 한순간에 통째로 터져나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폭발이었다.
역사상 유래 없을 정도의 대참사.
이 폭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전무했다.
51구역에 핵폭발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의 방공시설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한수호의 손에서 뿜어진 빛의 기둥은 방어 자체가 불가능했다.
빛은 모든 걸 꿰뚫었으며, 모든 방어시설을 박살 내며 51구역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가공할 폭발.
이미 방어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 거대하고 끔찍한 폭발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으랴.
51구역 전체가 폭발하며 피어오른 버섯구름이 1킬로미터 상공에 위치한 터널까지 도달했을 때,
슈아악!
터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터널 쪽을 향해 손을 뻗어내고 있던 한수호.
폭발의 위력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화르르르르륵
한수호의 온몸이 하얀 불길에 휩싸이고 있었다.
하지만 불길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후우….”
한수호는 긴 숨을 내쉬며 쭉 뻗어내고 있던 두 팔을 천천히 내렸다.
불길은 사라졌지만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후끈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빠. 괜찮은 거지?”
서은채가 근심어린 얼굴로 다가오자 한수호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 한수호야. 이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약한 놈 아니다.”
“치잇. 기껏 걱정해 줬더니 자랑질이네.”
“너한텐 자랑 좀 하자. 내가 따로 누구한테 자랑질하겠…. 아, 케이시가 있었구나? 방금 거 어땠어? 쓸 만했지?”
한수호는 케이시를 향해 돌아섰다.
그런 한수호를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케이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한수호. 이…. 이,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 새끼! 너 인간 아니지? 외계인이야? 어느 행성에서 왔어? 이런 식으로 행성 몇 개나 말아먹은 거야?”
케이시는 방금 자신이 본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온 고룡인 케이시도 방금 한수호가 보인 한 수는 죽었다 깨나도 해낼 수 없었다.
코앞에서 핵폭발을 빨아들이고, 그걸 다시 다른 장소로 뿜어내 초토화시키다니.
세계수 자체가 된 월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핵폭발을 모조리 빨아들여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전제조건을 채울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야, 케이시.”
한수호가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케이시를 불렀다.
“뭐냐, 외계인간!”
“외계인 같은 소린 그만 좀 하고. 저기 사람들 오니까 알아서 잘 설명해줘. 난 가볼 곳이 있어서 말이야.”
“뭐? 갑자기 왜? 또 어딜 가려고?”
“이제 다 끝났잖아. 그러니 어머니랑 막내 좀 보러 가야지.”
“아….”
케이시는 이제야 한수호가 이번 일에 그토록 혼신의 힘을 다했는지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군. 애초에 네가 이 모든 걸 시작했던 건…. 가족 때문이었지.”
“그래. 내가 여기 있어 봐야 사람들한테 꽤 시달리게 될 거다.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붙잡혀 있으면 그만큼 가족을 보는 게 늦어지잖냐.”
“글쎄. 난 인간의 그런 세밀한 감정까지는 공감하기 어려워서 말이지.”
“공감은 기대도 안 한다. 그냥 그렇다는 걸 알기만 하면 돼.”
“뭐, 어쨌든 알았다. 너 없다고 감히 나한테 엉겨 붙지는 못할 테니까, 넌 이만 가 봐라.”
케이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많은 마공사들을 향해 손을 뻗어냈다.
“홀드.”
그녀의 음성이 흘러나온 순간,
후우우우우웅
구천승을 포함한 모든 마공사들이 날아오던 자세 그대로 덜컥 멈춰서고 말았다.
이건 케이시의 용언 마법은 아무리 강한 마공사라 할지라도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멸급을 훌적 넘은 마공사인 구천승이라 할지라도.
“저 인간들, 이제 너무 강해져서 아무리 나라도 오래 못 버틴다. 그러니 얼른 가라.”
케이시의 말에 한수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대적룡 볼케스의 입에서 오래 못 버틴다는 말이 나오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시끄럽고, 빨리 가라니까?”
“그래, 알았다. 난 갈 테니 뒤를 부탁한다.”
한수호가 그렇게 말하며 서은채의 손을 잡아끌었다.
서은채는 한수호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케이시의 용언 마법에 홀드된 상태로 눈만 꿈뻑거리는 서한광을 향해 해맑게 소리쳤다.
“아빠! 저 시어머니 만나 뵙고 금방 올게요! 오빠가 시집살이는 절대 안 시킨다고 했으니까 걱정 말고요. 아빠도 알죠? 태희 아줌마 엄청 착하다는 거. 그럼 집에서 기다려요!”
발랄하게 소리친 서은채는 바로 몸을 돌렸다.
그래서 서한광이 입을 뻐끔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은채야! 시집살이 안 시킨다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한수호 어머니가 나한테 한 말이 있단 말이다. 수호 녀석 신붓감은 꼭 조신한 여자로 고를 거라고! 넌 해당 사항이 없으니 분명 시집살이 엄청 하게 될 거라니까!’
서한광의 입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가지 못하는 말이었다.
그때, 한수호의 앞으로 공간이 갈라지며 작은 포탈 하나가 생성됐다.
한수호는 고니를 어깨에 태운 채로 서은채의 손을 잡고 포탈 속으로 사뿐히 들어섰다.
“고맙다, 월. 곧 집에서 보자.”
한수호는 포탈을 만들어준 월에게 감사를 표시하고는 서은채와 함께 포탈 속으로 훅 사라져 버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이었다.
한수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익숙한 얼굴 몇몇이 지리산의 한 중턱에 올라 보기 좋게 만들어진 봉분 앞에 모여 있었다.
봉분의 앞에는 큼직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엔 멋들어진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철형, 이곳에 잠들다.]
“이젠 아버지도 편히 쉬실 수 있을 거다.”
이태희는 비석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한철형의 무덤에 절을 마친 자식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한성찬은 옆에 서 있는 송유나의 손을 가만히 잡고 있었고, 한설아는 이하윤과 양소혜, 그리고 신소이, 최지혁까지 다 함께 나란히 서 있었다.
가장 우측엔 한수호가 막냇동생 한별이와 서은채의 손을 잡은 채로 이제 막 반절을 마치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구천승과 서한광을 비롯해 신유와 장현오에 비돈귀살 부부까지 함께 모여 고기를 구워가며 술판을 벌이고 있었고,
아래쪽의 넓은 공터에서는 4미터 크기로 축소된 사툴란이 라라와 고니를 어깨 위에 태우고 함께 장난을 치며 노는 중이다.
그 옆에 쉼터처럼 만들어진 곳에서는 마공전뇌 이산이 이하이와 함께 뭔가를 열심히 논의하고 있었는데, 흘러나오는 대화를 슬쩍 들어보니 사대 강국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 감독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거기서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만평은 훨씬 넘을 것 같은 대지 위로 엄청난 규모의 주택이 세 채나 지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택을 짓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케이시와 백윤후, 그리고 강우진이었다.
그들은 손으로 직접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설계도면을 펼쳐 들고 마나력을 이용해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기둥을 박아넣고 건축 자재들의 내구성을 높여가며 웬만한 폭격에도 끄떡없는 튼튼한 집을 짓는 중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았다.”
이태희가 자식들과 친구들을 돌아보며 한 말에 한설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 누구보다 엄마가 가장 고생했다는 거, 우리도 잘 알아. 그러니까, 이젠 엄마도 아무 걱정 말고 마음 편히 쉬어. 모든 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래. 그렇게 할 테니 너희도 이젠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밝은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가려무나.”
“당연히 그럴 거야, 엄마. 그리고….”
말을 하던 한설아가 고개를 돌려 서은채와 송유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 이제 엄마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리도 둘이나 생겼겠다, 손주 보는 일만 남았네?”
한설아가 웃으며 하는 말에 이하윤이 눈을 살짝 치켜뜨며 팔짱을 떡하니 꼈다.
“설아 언니!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 수 있는데 왜 벌써 결정 난 것처럼 말을 해?”
“어머, 그러네. 우리 하윤이를 깜빡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저기 네 언니한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니니?”
한설아는 저 아래쪽에서 이산과 함께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하이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하윤이 검지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노노노. 언니는 안 돼. 딱 나까지만. 안 그래도 수호오빠 팬클럽까지 생겨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한 명 더 추가하라고? 그건 절대 안 되지, 안 돼.”
“너도 참 극성이다, 극성. 난 모르겠으니까 은채랑 같이 선의의 경쟁 한번 잘 해봐. 이미 결과는 나와 있지만, 그래도 혹 모르는 일이니까, 뭐.”
“걱정 말라고. 나한텐 아직 꺼내지 않은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까.”
“비장의 무기? 그거 혹시 라라한테 받은 ‘매력 어필’의 특성석 말하는 거니?”
“어? 언니가 그걸 어떻게…?”
이하윤의 눈이 동그래지자 한설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이렇게 순진해서야…. 하윤아. 너 한수호, 저 녀석 내성 수치가 몇인지 알기는 해?”
“1년 전까지만 해도 최고 높은 수치가 80% 정도였던 걸로 아는데? 설마, 1년 새 수치가 더 오른 거야?”
“바보야. 우리한테는 1년이지만 수호한테는 10년이었다고 몇 번이나 말해? 그사이 저 녀석, 뭔 짓을 했는지 내성 수치를 죄다 100까지 찍어 버렸다던데?”
“뭐! 내성이 전부 100이라고?”
이하윤은 절망한 눈빛으로 한수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회심의 한 수로 삼고 있는 매력 어필의 특성을 사용한다면 내성 95%까지는 잦은 만남과 접촉으로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성 100%를 찍어버린 한수호에겐 매력 어필 특성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모든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서은채가 이하윤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스윽 내밀었다.
“언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도 언니가 상대라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응? 어, 어어…. 그래. 나도 잘 부탁할게.”
서은채와 이하윤이 악수를 하며 마주 웃어 보이자 그걸 바라보던 최지혁이 한수호 옆에 다가와 팔꿈치로 옆구리를 푹 찔렀다.
“부러운 자식. 나도 비결 좀 알려줘라? 어째 나한텐 은채나 하윤이 같은 미인이 안 붙고 고릴라 같은 덩치가 달라붙….”
“뭐라고 했냐, 너. 고릴라? 이 아름다운 근육질 몸매를 보고 고릴라라는 말이 나와? 너 오늘 제대로 걸렸다. 심판들도 많겠다, 여기서 한판 뜨자고. 특성 묶고, 아티팩트 빼고. 순수하게 몸빵으로. 어때, 콜이지?”
어느새 양소혜가 최지혁의 등 뒤에 나타나 그를 번쩍 안아 들고 공터로 날아갔다.
한수호는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이것이 진짜 행복이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그때 시간을 거슬러 오지 않았으면 이런 행복은 영영 느껴볼 수 없었겠지?’
나스타샤가 자신의 몸에 개조 특성을 심어 놓은 건 정말 신의 한 수나 다름이 없었다.
한수호가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그의 머릿속으로 월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이봐, 주인. 이 인간 좀 말려줄 수 없을까? 세계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왜 범이와 살이의 몸을 해부하고 싶어 하는 거지? 이러다 기껏 되살려놓은 수하들 다시 무덤에 들어가겠다!
월의 음성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월이 말한 ‘이 인간’은 바로 나스타샤.
얼마 전, 한수호는 세계수를 직접 보고 싶다면서 한 번만 보여달라며 졸라대던 나스타샤를 전투영역의 월에게 데려갔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은 세계수 대신 범이와 살이의 해부에 더 관심이 많아진 모양.
한수호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아내며 월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월. 나스타샤는 나도 못 말려. 이걸 해결할 방법은 딱 하나지. 나스타샤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미끼를 던져 주는 거.’
-다른 미끼?
‘나스타샤와 성격이 엄청 비슷한 사람이 한 명 있을 텐데….?’
-아! 사기환 씨! 그걸 생각을 못 하다니.
월은 이제야 한수호가 말한 미끼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다.
-역시, 주인은 다르군. 알았다. 내가 어떡하든 사기환 씨를 이곳에 데려와야겠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주인.
그렇게 월과의 대화가 끝났을 때, 지금껏 가만히 한수호의 손을 잡고 있던 한별이가 손을 잡아당겼다.
“어, 한별아. 왜?”
“오빤 참 이상해.”
“뭐가?”
“눈은 저길 바라보고 있는데, 생각은 다른 데 있잖아.”
한별이도 한 씨의 피를 이어서인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랐다.
“하하. 내가 그랬나? 미안. 한별이가 옆에 있는데 챙겨주질 못했구나. 대신 오빠가 한별이 하늘여행 시켜줄게.”
“하늘…여행? 어떻게?”
“응. 바로 이렇게.”
한수호는 한별이를 자신의 목에 올려 태우고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꽝!
한 번의 도약에 무려 100여 미터 높이로 날아오른 한수호.
그의 목에 올라타고 있던 한별이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주변을 살폈다.
“우와아! 엄청 높아!”
“더 높이도 갈 수 있는데…. 갈래?”
한수호가 묻자 한별이는 고개를 저었다.
“왜?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한별이는 고공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한수호는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상태로 동생이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한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오빠 도움으로 손쉽게 날아올랐으니까, 여기보다 높은 곳은 내 힘으로 날아보고 싶어. 그리고 그걸 내 첫 번째 목표로 삼아 볼래.”
“아….”
한수호는 솔직히 크게 놀랐다.
아직 철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한별이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저 보호만 받아서는 조금도 강해질 수 없으며, 강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이들을 절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한수호는 그런 한별이의 뜻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힘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한별이…. 꼭 해낼 수 있을 거다.”
“정말?”
“그럼! 이 오빠가 있는 한, 한별이는 천재적인 마공사가 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오빠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게.”
한수호는 한별이를 등에 업은 채로 저 멀리 산 위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화사한 빛무리가 한수호를 휘감고, 한별이를 휘감았다.
너무나도 반짝이는 모습에 지상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두 사람에게 쏠렸다.
한수호와 한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 속에는 명확한 두 가지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끝없는 희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무한한 행복이었다.
[회귀한 천재 마공사,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