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한수호는 사실 멀쩡하지 않았다.
방금 전, 유대룡이 쏘아낸 광선은 한수호가 지닌 엄청난 방어력마저 꿰뚫고 큰 타격을 입혔다.
그나마 그랑의 방패와 근밀도강화법으로 충격을 완화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뻔했다.
실제로도 한수호의 옆구리엔 크게 찢겼다.
하지만 한수호에겐 상처 회복 특성이 있었고, 그 특성으로 빠르게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상처를 회복시킨 한수호는 라뮬과 그랑을 이기어검 특성으로 날려 보내 두 시체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유대룡 앞에 나섰다.
그가 유대룡에게 준 여유시간은 이제 7초뿐.
한수호는 2분 동안 유대룡이 모든 걸 펼칠 수 있는 여유를 주었으니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시라도 빨리 유대룡을 처리하고 동료들을 도우러 가는 게 맞지만, 초감각으로 전황을 살펴보니 상황이 그다지 나쁜 게 아니기에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발자크가 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분여.
그 안에 유대룡을 쓰러뜨리고 동료들에게 달려가도 늦지 않았다.
한수호는 속으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회귀 전의 삶에서 자신을 자식처럼 키워준 유대룡에 대한 마음의 짐을 떨쳐내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은 2분.
이제 그 2분의 시간이 다 지나고 있었다.
“그걸 맞고도 살아 있다니….”
유대룡은 자신의 공격에 직격당한 한수호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네크로맨서 능력으로 되살려 낸 수하들을 이용해 건물 잔해를 더욱 확실하게 박살 내도록 시킨 것이다.
이 네크로맨서 능력은 백화의 마안이 지닌 다섯 가지 능력 중 하나로, 흑안의 힘이었다.
이는 생전에 가지고 있던 힘을 그대로 지닌 상태로 시체를 일으켜 세워 꼭두각시처럼 부릴 수 있게 되는 능력이었지만, 한수호의 검에 산산이 조각나버려 이젠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허허…. 허허허.”
백화의 마안이 지닌 다섯 가지 능력 모두를 사용했음에도 한수호를 쓰러뜨리는 데 실패한 유대룡은 기가 막힌 듯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시간 다 됐네요. 당신에게 내어준 여유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한수호는 담담히 말하고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초인화.”
푸화아아아아악!
한수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무섭게 용솟음 치기 시작했다.
지금 사용한 초인화는 두 배.
이미 한수호는 유대룡에게 선언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간을 초월해 보겠다고.
정말로 인간의 능력을 한 번에 뛰어넘는 모습을 본 유대룡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저런 힘을 아직도 숨겨놓고 있었다고?’
자신은 모든 걸 다 꺼내 놨다.
참살마도를 꺼내 들었고, 참살마도에 담긴 중력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내 공격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슈트의 두 배 능력을 사용했으며, 비장의 수라고 볼 수 있는 백화의 마안까지 총동원했다.
그런데도 한수호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유대룡은 폭발하는 화산처럼 온몸에서 마나의 기운을 뿌려내고 있는 한수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 전보다 최소 두 배는 강해졌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한수호가 2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을 여유를 주겠다고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
‘결국 한철형의 아들이 내 모든 걸 끝장내는구나.’
이 중요한 순간에 왜 하필 한철형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유대룡은 늘 올바른 길만을 고집하며 살아가던 한철형을 떠올리자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 닮았구나. 한 번 방향을 정하면 절대로 되돌리는 일이 없던 한철형의 고집스러운 입매와 조금도 다르지가 않….’
유대룡의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어느새 한수호가 유대룡의 옆을 벼락처럼 스쳐 가고 있었다.
6천이 넘는 능력치에, 6만에 가까운 마나력을 지녔지만 초인화로 두 배나 강력해진 한수호의 움직임은 감지조차 하지 못했다.
푸아아악!
목이 잘린 곳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유대룡의 머리는 핑그르르 돌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를 잃은 유대룡의 거대한 육체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렸고, 순식간에 주변을 새빨간 피로 물들였다.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과시하던 유대룡의 모습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
한수호는 눈도 감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유대룡의 머리를 잠시 내려다보다 눈을 감겨주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이프리트를 이끌며 세상을 발자크의 손에 내던져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려던 자.
그런 최대의 적을 쓰러뜨렸지만, 복수를 완료했다는 기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바위를 내려놓은 것 같은 시원함은 있었다.
그때였다.
방금 유대룡의 목을 가를 때 꺼내든 로크검이 묘한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크검이 먹이를 원합니다.
뜬금없이 떠오른 메시지.
한수호는 로크검이 대체 무얼 먹이로 판단한 것인지 몰라 살짝 당황했다. 그때,
투둑. 투르르르르.
유대룡의 얼굴에서 눈동자가 스스로 빠져나오더니 바닥을 굴렀다.
계란 크기의 동그란 그건 다름아닌 백화의 마안이었다.
마안은 자석에 이끌리듯 한수호 쪽으로 굴러왔고, 여전히 진동하고 있는 로크검 바로 앞에서 딱 멈춰섰다.
>>로크검이 당신의 허락을 기다립니다.
마치 애완견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앞에 두고 주인의 허락을 기다리는 것 같은 상황.
“허락한다.”
한수호의 말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푸확!
로크검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바로 앞에 있는 백화의 마안을 덥썩 집어삼켰다.
그리고 변화하기 시작했다.
차르르르르. 촤악!
50센티 길이의 검은 압축되고 압축되더니 기다란 송곳모양의 검이 되었다.
이미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 로크의 진짜 형태.
지금까진 이 로크의 정보창에 늘 시험 중이라는 문장만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로크’의 진.코어]
-라그나로크의 코어 파트, ‘로크’가 완전히 깨어납니다.
-주인의 마음을 굳게 잡아주며, 그 어떤 방어도 깨뜨릴 수 있는 파괴적인 힘을 선보입니다.
-라그나로크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라그나로크가 드디어 봉인을 깨고 완전체를 이룹니다.
드디어 라그나로크의 시험이 끝났다.
그동안은 도대체 무슨 시험인지 알 수가 없어 그저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는데, 이제 보니 7대 마화기를 찾아 흡수시키는 것이 시험이었던 모양.
로크검은 백화의 마안이라는 엄청난 마화기가 주인을 잃게 되자 바로 먹이로 인식하고 한수호의 허락을 요구한 것이다.
이제 라그나로크가 모두 진화를 완료했다.
라의 블레이드.
그의 그립.
나의 가드.
로크의 진.코어.
이 네 가지가 합쳐져 진정한 라그나로크를 이룰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급한 일이 있으니까.’
한수호는 유대룡의 시체가 쥐고 있는 참살마도를 챙기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그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건?’
한수호의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
>>약탈이 가능한 대상이 존재합니다. 대상을 선택하면 약탈이 진행됩니다.
메시지는 약탈[3]에 의한 것이었다.
-죽은 자의 특성을 최대 두 개까지 약탈합니다.
-죽은 지 1시간이 지나지 않은 경우에만 약탈이 가능합니다.
약탈[3] 특성에 대한 설명을 떠올린 한수호.
그는 굵은 빨간색으로 테두리가 강조되어 보이는 세 구의 시체를 바라봤다.
유대룡의 목없는 시체와 그의 두 수하의 잘게 썰려진 시체 더미들.
한수호는 우선 수하의 시체를 선택했다.
그러자 다시 메시지가 이어졌다.
>>선택한 대상에서 약탈할 수 있는 특성은 한 가지입니다.
-마법난사
>>특성 ‘마법난사’를 약탈합니다….5%
첫번째 시체의 주인은 한수호에게 마법진으로 얼음창을 내던졌던 사내였다.
그의 시체를 대상으로 빠르게 약탈이 진행되었고, 진행률이 100%가 되자 약탈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번엔 두 번째 시체였다.
>>선택한 대상에서 약탈할 수 있는 특성은 한 가지입니다.
-그림자 기술
>>특성 ‘그림자 기술’을 약탈합니다….3%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 한수호의 눈을 어지럽혔던 사내에게선 그림자 기술이라는 특성을 얻었다.
다음은 유대룡의 시체.
>>선택한 대상에서 약탈할 수 있는 특성은 두 가지입니다. 약탈을 원하는 특성을 선택하세요.
-심연의 눈
-화산신권
-버닝소울
-패왕압도
-검의극
-기억동화
놀랍게도 유대룡은 무려 6개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버닝소울이라는 특성은 침묵의 협곡에서 보상으로 잠시 나왔었던 0티어 특성이었다.
한수호는 고민할 것도 없이 버닝소울과 검의극이라는 특성을 선택했다.
>>특성 ‘버닝소울’과 ‘검의극’을 약탈합니다….4%
약탈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약탈[3]을 획득한 후,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죽은 시체에서 특성을 약탈한다는 점 때문인지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힘들게 얻은 거니까….’
한수호는 상념을 털어버리고 방금 얻은 특성들을 빠르게 살폈다.
마법난사는 예상했던 그대로, 마나가 허용하는 만큼 마법진을 생성시켜 총 세 종류 속성의 마법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림자 기술은 일종의 분신술이었는데, 최대 24개까지 만들 수 있었으며 그 모든 분신이 허상이 아니라는 놀라운 특성이었다.
하지만 분신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분신이 지닌 능력이 약화되기에 큰 매리트는 없었다.
유대룡의 특성인 검의극은 어떤 무기이든 손에 쥔 채로 특성을 발동시키면 눈앞에 가장 효과적인 검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지녔다.
어떤 적이라도 이 검의극만 있으면 가장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일종의 치트키와 같았다.
다음은 대망의 버닝소울이었다.
0티어 특성답게 버닝소울의 효과는 엄청났다.
이 특성을 지닌 사람은 생명체를 죽인 뒤, 버닝소울로 시체의 영혼을 빨아들이게 되며 그 영혼을 자신의 힘으로 전환시킬 수가 있었다.
즉, 많은 생명체를 죽이면 죽일수록 버닝소울의 힘은 강력해지며, 능력 또한 강력하게 진화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이 특성으로 그렇게나 강해질 수 있었던 건가?’
한수호는 유대룡이 어떻게 강해졌는지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했다.
잠시 네 개의 특성을 한 번 더 살펴본 한수호.
그는 짧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나하고는 맞지 않는 특성들이야.’
효과 자체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이것들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진화시킬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더욱이 버닝소울 같은 경우는, 누군가를 죽여 영혼을 취해야 한다는 사용 방법 자체가 큰 거부감이 들었다.
‘필요없는 특성은….’
분해하면 된다.
약탈[3]의 효과 중에는 약탈한 특성을 분해하여 포인트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한수호는 네 개의 특성을 바로 분해했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포인트는 무려 2천 4백만.
-보유 포인트: 341NP / 24,200,000LP
0티어 특성인 버닝 소울 하나를 분해하는 것만으로도 무려 1천 8백만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서두르자.’
한수호의 마음은 급했다.
그래서 약탈한 특성을 분해하는 쪽으로 빠르게 결론을 내린 걸지도 몰랐다.
한수호는 특무부 본부 건물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감각으로 전해지는 전황은 막상막하.
고니까지 드래곤으로 변신해 전투에 참여하게 되면서 3만의 키이라와 갑자기 생긴 케이트를 통해 튀어나온 수백의 비행 몬스터들이 오히려 밀리는 형국이었다.
사툴란과 월, 라라까지 합세해 적들을 몰아붙이니 숫적 우세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우태범의 특성이 전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사자의 성령’이라는 네크로맨서 특성이 죽은 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줄어든 적의 숫자를 빠르게 늘리기 시작했다.
시체가 늘수록 적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더불어 이프리트가 그동안 게이트 너머에 준비 해 놓은 좀비떼까지 쏟아져 나오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본부 건물 옥상의 상황도 마찬가지.
구천승이 강지훈을 맡고, 송혁과 강우진은 최부선과 우태범을 맡았다.
문천득은 박윤주와 백윤후가,
그 외의 다른 이프리트 간부들은 방태식, 노희경, 김재우 커플이 서로 뒤를 봐주며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반전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