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백윤후는 처음부터 우태범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몬스터로서 긴 세월을 살아온 일종의 감이랄까?
우태범에게선 주변에선 늘 기분 나쁜 냄새가 넘쳐흘렀다.
아카데미 토너먼트에서 처음 봤을 땐, 워낙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다른 냄새가 섞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종종 우태범과 어울리게 되면서 그 좋지 않은 냄새의 원인이 바로 우태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백윤후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한수호에게도 말하지 않은 건, 자신의 주관적인 감 때문에 우태범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기 싫었기 때문.
한편으로는 한수호가 우태범이 결코 좋은 인물이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며칠 전, 지평학 교수가 갑자기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게이트 폐쇄 작전에 참관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을 땐 이게 뭔가 싶었다.
5급이나 6급도 아닌, 1급 게이트의 폐쇄 작전에 1학년을 포함한 아카데미 학생들을 참관시킨다?
1급 게이트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백윤후였기에 이 결정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뒤에 누가 있는 건가? 하지만 지평학 교수가 왜?’
백윤후는 지평학 교수가 권존 김무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때문에 그가 누군가의 조종으로 이번 일을 추진한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일을 주도하게 된 건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1급 게이트 폐쇄 작전에는 백윤후에겐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한수호도 참여하니까.
한수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학생들의 참관 수업은 그 자리에서 취소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미리 이 사실을 알려서 지평학이나 이 상황을 만들어 낸 누군가가 눈치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참관 수업 당일.
예상대로 한수호는 이 사실을 알자마자 지평학과 단독으로 자리를 가졌다.
이제 참관 수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게이트 안에서 갑자기 부상당한 마공사가 튀어나왔고, 우태범은 아무도 게이트 안에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람들을 구하러 나서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우태범의 분개에 가장 먼저 송지문이 동조했다.
언제 송지문과 친해졌는지, 형동생 하면서 두 사람이 나서서 우리라도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곧 송유나까지 가세했고, 송유나를 마음에 두고 있던 권열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들 넷은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는지, 작전을 위해 준비된 장비들을 몰래 빼돌렸고, 게이트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이쯤 되면 장한설이나 이하윤, 양소혜, 하다못해 최지혁이라도 나서서 한수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상황 정리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그들은 인상을 찌푸릴지언정 그들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송지문과 송유나, 권열이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우태범은 장한설 등에게 ‘너희들도 함께 가자!’며 소리쳤고,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아무 거리낌 없이 우태범을 따라 게이트에 진입해 버렸다.
이에 백윤후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모두 미쳤거나, 뭔가에 홀렸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했다.
백윤후는 곧바로 진무현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 게이트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게이트 안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모든 걸 송지문이 주도했다.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는지 마나 탐색기를 수시로 사용하며 친구들을 어딘가로 자꾸 데려갔다.
백윤후는 채 10분도 되지 않아 송지문이 계속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우태범이 뒤에서 몰래 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때, 서령그룹에서 학생들 보호를 위해 붙여준 마공사 파티를 만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들이 갑자기 마공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몇몇 마공사가 크게 다쳤고, 서령그룹 마공사들은 강제로 진압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비돈귀살의 작전팀도 나타났다.
그들은 다짜고짜 살벌한 공격을 해오는 학생들을 어렵사리 제압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정체불명의 향에 취해 정신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어느새 주변 가득히 퍼져 있는 축축한 느낌의 아카시아 향.
그 향이 이 암흑섬에서만 존재하는 실혼향임을 알게 된 비돈귀살은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갈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백윤후는 안다.
그 실혼향은 사실 우태범이 5분 전쯤에 주변에 뿌린 것이고, 친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 그보다 훨씬 전부터라는 것을.
백윤후는 모르는 척 계속 우태범을 지켜봤다.
도대체 저 교활한 녀석이 무엇을 위해 친구들을 이곳으로 끌고 들어왔으며, 왜 이런 질 나쁜 장난질을 치려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리고 마침내, 백윤후는 우태범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제압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을 때, 백윤후는 주변 공기에서 자신과 유사하면서도 굉장히 다른, 뭔가 이질적인 느낌의 끈적임을 느꼈다.
백윤후는 곧바로 이 사실을 비돈귀살에게 알렸다.
한발 늦게 그 끈적거림을 느낀 비돈귀살은 서둘러 경계를 취했고, 잠시후 그것들의 정체를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캬아악. 캭캭!
크르르르륵!
코로록. 코록!
사방에서 끔찍한 존재들이 밀어닥쳤다.
놈들은 도저히 살아있는 존재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체가 부패되어 있었다.
피로 떡진 살점이 늘어지고, 눈알이 밖으로 흘러나와 대롱거린다.
턱은 완전히 빠져서 움직일 때마다 딱딱 소리를 냈으며, 팔다리가 잘려 나간 놈들도 상당했다.
놈들을 보자마자 떠오른 건 좀비였다.
걸어 다니는 시체들.
이런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하는 게 굉장히 우스울 수도 있지만, 직접 놈들을 목격한 백윤후에겐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다.
‘뱀파이어?’
좀비는 보통 인간들이 아니었다.
무려 뱀파이어가 죽어서 만들어진 좀비들.
그래서 도플갱어인 백윤후가 자신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 끔찍한 놈들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지?’
백윤후는 아스루나에서 도플갱어로 살아가는 와중에 좀비를 만난 적은 있지만, 인간이나 약한 몬스터가 죽어서 재탄생한 놈들이었다.
뱀파이어는 기본 능력 자체가 뛰어나서 쉽사리 좀비화되지도 않을뿐더러, 좀비화 하더라도 태양이 떠 있으면 스스로 불타버리기 때문에 밤에만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뱀파이어 좀비들은 대낮임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저놈들이 생전에 정말 뱀파이어였으면, 문제가 심각한데.’
일반적으로 좀비는 죽은 육체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좀비에 물렸다고 바로 좀비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좀비가 뱀파이어라면 확 달라진다.
원래부터 뱀파이어는 무는 행위로 종족을 늘릴 수 있는 특별종이기 때문에, 좀비가 되었을 때 살짝만 물려도 몇 십초 만에 좀비로 변이해 버리는 것이다.
‘설마 이 뱀파이어 좀비들을 이곳에 불러들인 게 우태범인가?’
백윤후는 우태범을 노려봤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두려운 눈빛으로 좀비들을 돌아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백윤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거 보통 좀비가 아닙니다. 생전에 뱀파이어였던 놈들이에요. 물리면 바로 좀비화 됩니다.”
백윤후의 충고에 비돈귀살과 대한맹 마공 요원들이 흠칫 놀란다.
“뱀파이어가 좀비가 되는 경우도 있나? 게다가 이런 대낮에 저리 멀쩡하게 다닐 수 있다고?”
대한맹 대표인 이서준 요원이 정석대로 따져 묻자 백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그래야 정상인데…. 보다시피 우리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네요.”
“허….”
“만약 물리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뇌를 터트려야 합니다. 그래야 좀비가 늘어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단순히 물리기만 했다고 동료의 머리를 박살 내라니.
이서준은 도저히 그걸 실행할 자신이 없었다.
그건 비돈귀살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들에게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크와아아아악!
캬갸갸갸갹!
뱀파이어 좀비들이 돌연 공격을 시작했다.
죽기 전에 뱀파이어여서 그런지 좀비화되었지만 움직임이 기가 막히게 빠르다.
보통의 생명체들은 좀비화되어도 생전의 움직임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죽기 전에 진급 마공사였어도, 1급 몬스터였어도 좀비화되고 나면 그저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뱀파이어 좀비들은 뛰고, 날았으며, 어떤 놈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공격하기도 했다.
“이, 이놈들 뭡니까!”
“보통 좀비가 아니다! 모두 조심해!”
“접근 자체를 못 하게 막아!”
투다다다다다다
마공사들이 기겁하며 반격을 시작했다.
다들 대형급 몬스터와의 전투를 감안하고 왔기에 무장 상태는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뱀파이어 좀비들의 날렵한 공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총이 난사되고, 검과 도가 춤을 추었다.
뱀파이어 좀비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다.
마치 마공사를 상대하듯 적절한 회피 동작과 빠른 공수 전환을 보이며 30명이나 되는 마공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크윽!”
“아악!”
결국, 마공사들 중에서 부상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물린 것은 아니어서 안쪽으로 이동해 부상을 치료하려 했다. 하지만,
우드득.
콰직.
부상 당한 마공사들이 기형적으로 몸을 뒤틀기 시작하더니,
크아아아아아악!
캬오오오오!
눈이 휙 돌아가며 뾰족한 이빨을 드러냈다.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저 뱀파이어 좀비의 손톱에 팔뚝을 살짝 베인 것뿐인데, 곧바로 좀비화되고 말았다.
상황은 혼돈에 빠져들었다.
머리를 터트리지 않는 이상 뱀파이어 좀비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피를 갈구한다.
처음엔 20여 마리였던 좀비들은 점점 숫자를 불렸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게 되면 단 몇 초만에 좀비가 되면서, 모두의 목숨을 위협했다.
비돈귀살과 대한맹 특수요원들이 전력으로 나서면서 상황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했으나, 그건 정말 잠시뿐이었다.
이들을 위협하는 건 뱀파이어 좀비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콰드득.
꽈릉.
주변의 거대한 나무들이 무차별적으로 부러지며 거대한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백윤후는 그 거대한 존재가 다름 아닌 ‘키클롭스’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그런데 키클롭스도 정상이 아니었다.
짓물러 터진 피부.
하나밖에 없는 눈은 신경과 혈관으로 얽힌 채 코 위에서 덜렁거리고 있다.
‘어떻게 키클롭스까지 좀비화가 된 거지?’
뱀파이어까지는 이해하지만 키클롭스는 정말 아니었다.
사이클롭스보다 한 단계 위의 강력한 몬스터로 알려진 키클롭스.
머리 위에 달린 두 개의 뿔에는 지독한 독소가 담겨 있어서 키클롭스가 죽게 되면 온몸을 녹여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다.
때문에 키클롭스는 절대 좀비화될 수 없는 몬스터다.
‘이건 절대 전염으로 만들어진 좀비들이 아니야!’
백윤후는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정상적인 전염의 방법으로는 이 좀비들이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누군가 특성으로 좀비를 만들어 낸 거다!’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워 좀비처럼 만들어내는 특성.
그런 특성을 지닌 마공사가 있다면, 바로 네크로맨서뿐이었다.
* * *
“저곳이군.”
협곡에 세워진 높은 성벽을 넘어서자 보이는 건 엄청난 넓이의 광장이었다.
그 광장의 끝.
그곳에 누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벽화 앞엔 코끼리만 한 말을 탄 기사가 우뚝 서 있었다.
기사의 앞쪽엔 딱 봐도 무시무시한 1급 몬스터 수십 마리가 모여 있었는데, 한수호와 고니를 발견하고는 곧장 커다란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거대한 창과 바위를 집어 던져 떨어뜨리려고 했다.
“고니. 넌 내가 뛰어내리면 바로 스승님을 지원해줘.”
크르르르.
고니는 대답 대신 입으로 화염을 끓어 올리며 낮게 하강을 시작했다.
촤아아아
거의 수직에 가깝게 내리꽂히는 고니.
한수호는 바닥에서 100미터가 채 남지 않았을 때, 뇌격창을 꺼내 들었다.
평범한 형태의 막대에 불과했던 뇌격창은 한수호가 마나를 밀어 넣는 순간,
콰지지직!
천둥 같은 벼락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쏜살같이 하강하는 와중에 상체를 뒤로 확 젖힌 한수호.
바닥이 50미터로 가까워졌을 때, 한껏 젖혔던 상체를 튕기며 뇌격창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피잉-
뇌격창은 한수호의 손을 떠나자마자 섬전 같은 속도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직! 콰드드드득!
대형 몬스터들 수십 마리가 모여 있는 곳 중앙으로 파고든 뇌격창이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
더불어 보기만 해도 섬뜩한 뇌전이 사방으로 튀었으며 그 뇌전에 몬스터들의 신체가 퍽퍽 터져 나갔다.
마지막으로 그 폭발의 한가운데를 향해 고니가 입을 쩍 벌렸다.
푸화아아아아악!
마치 화산이 바닥을 향해 폭발한 것 같은 강력한 화염이 분사되었다.
고니의 머리에 튀어나온 붉은색 뿔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