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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94화 (294/375)

294화

한수호와 구천승, 그리고 나스타샤는 라라가 준비해 준 차와 간단한 다과를 한동안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스타샤가 두 번의 회귀를 겪으며 보았던 사실들과 실제로 벌어진 사건들을 연관지어 가며 미래가 어떤 식으로 변해 가는지를 조심스레 예측해 봤다.

결과는 한수호가 이미 생각했던 바와 거의 대동소이.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나무는 굵직한 기둥은 그대로 유지한 채 잔가지들이 자라나는 방향이나 개수 등이 바뀔 뿐이었다.

간단히 말해,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사건들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그 사건에 관계된 인물들의 세세한 사항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번 인천공항 테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테러 자체가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그 사건은 벌어졌고, 과정과 등장인물들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회귀라는 현상에는 한수호도 미처 몰랐던 중요한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만약, 회귀자가 중요 사건에 끼어들어 그 사건의 발생 자체를 없애거나 죽어야 할 자를 살리는 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칠 경우, 어떤 식으로든 그에 따르는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것.

나스타샤의 경험에 의하면, 그 반작용은 발자크의 봉인이 깨지는 걸 더욱 앞당기는 형태로 발생한다고 했다.

일례로, 나스타샤가 첫 번째로 회귀하기 전에는 삼대 악몽급 게이트가 2047년 12월 말에 열렸었다.

그런데 두 번째 회귀 직전에는 그보다 2달이나 앞선 10월 말에 열렸고, 이를 감안하지 못한 탓에 몬스터 웨이브에 의한 사망자가 크게 증가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젠 한두 명의 회귀자가 아니라 무려 아홉 명의 회귀자가 탄생한 현시점에는 얼마나 더 그 시기가 앞당겨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스타샤는 자신의 예측대로라면 발자크의 부활과 이프리트의 발호가 최소 2년에서 최대 5년까지 앞당겨지게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회귀자들이 중요 사건에 개입하면 할수록 그 시기는 더욱 앞당겨진다는 게 나스타샤의 설명이었다.

“그럼 당신이 2차 회귀 전에 한국에 들어와 내 몸에 개조 특성을 봉인해 놓은 것 역시 회귀자의 개입에 해당하는 건가요?”

한수호의 질문은 당연했지만, 나스타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엔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내가 본 투시 장면을 잘 생각해 보니까, 그때 이미 너에게 개조 특성이 있었어. 그러니 이건 개입이 아니라, 정해진 미래였던 거지.”

“그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죠?”

나스타샤도 그 상황이 지나간 뒤에야 감으로나마 회귀자의 개입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걸 한수호가 무슨 수로 미리 알아낼 수 있을까.

“글쎄…. 딱히 이렇게 구분하면 된다는 법칙 같은 건 없어. 다만 한 가지…. 회귀자가 뭔가를 바꾸려고 할 때, 그게 개입으로 판정이 된다면 방해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더라.”

“방해 현상이요?”

“이건 나도 뭐라고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일종의 거부반응이라고 보면 될 거야. 머뭇거림이라고 볼 수도 있고.”

나스타샤의 말은 애매모호했다.

거부반응, 머뭇거림 같은 방해 현상으로 회귀자의 개입 여부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수호는 그런 현상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잘 생각해 봐. 그러면 너도 분명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을 거야. 아저씨도 느껴본 적 있죠?”

나스타샤가 조용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구천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구천승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회귀한 이후에 이미 벌어진 사건을 바꾸려고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거 모른다.”

“에이, 그럴 리가요. 지금 당장만 해도 강우진인가 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녀석 대신 요, 수호 녀석을 후계자로 삼는 개입을 하셨으면서.”

“그것도 개입인가?”

“당연하죠. 아시다시피 아저씨의 후계자는 악몽급 게이트를 폐쇄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이건 한수호도 모르는 이야기다.

그건 구천승도 마찬가지.

두 사람 모두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회귀했기에 그 뒤의 일은 잘 모르고 있었다.

“제가 첫 번째 회귀를 하기 직전에 악몽급 게이트 중 하나를 극적으로 폐쇄할 수 있었어요. 그 일을 해낸 게 바로 강우진이었고.”

“그 녀석이?”

“네. 그 과정에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죠. 그 어떤 포션이나 치료 특성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나스타샤의 말에 한수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가 생각했던 상황과는 뭔가 많이 다르다.

한수호도 회귀자 조유현의 영상을 통해 마지막 전투를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이 담긴 USB는 아직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그 영상 속에서 강우진은 흉측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맞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류를 위해 악몽급 게이트를 폐쇄할 영웅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걸 좀 봐 주시겠습니까?”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USB를 꺼내 탁자에 설치된 인식 장치에 연결했다.

그리고 360도 각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도록 홀로그램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는 이산과 나스타샤, 그리고 많은 마공사들이 등장했고 악몽급 게이트에서 밀어닥치는 몬스터들을 힘겹게 상대하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문제의 그 장면이 나왔다.

용갑의 사내가 등장하고, 뒤이어 장발의 흉측한 화상을 입은 사내가 나타나 아슬아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다 용갑 사내가 폭주하여 모두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산과 나스타샤를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이산은 모래시계처럼 생긴 아티팩트를 발동시켰고, 영상은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끝을 맺었다.

영상이 끝났을 때, 구천승과 나스타샤는 굉장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구천승은 이것이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아니 정확히는 이미 경험했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미래의 장면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

“방금 보신 건, 2058년 2월에 찍힌 영상입니다.”

“나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도중에 죽은 것이냐?”

원래는 구천승도 영상에 잠깐 보였었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가 끝났을 때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한수호의 말을 곧바로 받아친 나스타샤.

그녀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한수호를 바라봤다.

“이 영상을 조유현한테 얻은 거라고?”

“네. 그자가 가지고 있던 아공간 아티팩트 속에서 발견했죠.”

“이건…. 가짜다.”

나스타샤의 말에 구천승도, 한수호도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가짜라니요?”

“구 아저씨는 방금 영상에 나온 광화문 게이트의 웨이브를 막은 다음 수상한 자를 발견하고 뒤를 쫓아가셨다. 돌아가신 게 아니야.”

“그렇다고 영상이 가짜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가짜 맞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에 아주 교묘하게 장난질을 쳐놨어. 다른 영상도 있던데, 그것도 마저 볼 수 있을까?”

나스타샤는 뭔가를 발견했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달고 있었다.

한수호는 일단 마지막 세 번째 영상도 틀었다.

조유현과 가면인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스타샤.

영상이 끝나자 나스타샤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거, 다른 사람이 손을 댄 게 확실해. 내가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수정된 영상이야.”

“어떤 부분이 수정된 거죠?”

“영상에 나왔던 장발 사내 있지? 그놈은 화상 따위는 전혀 입은 적이 없어. 얼굴에 흉터는 당연히 없었지. 화상을 입은 건 용갑을 입고 있던 녀석이야. 그 녀석이 바로 강우진이고.”

쿵!

한수호는 머리를 돌맹이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가 우태범이라고 생각했던 용갑의 사내가 강우진이라면, 영상에서 장발을 하고 등장한 자가 우태범이라는 말이다.

한수호는 완전히 거꾸로 알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누가 영상을 조작했어. 정확히는 용갑 녀석과 장발 사내가 뒤바뀌었다고 보면 된다.”

영상 조작이라니. 이건 한수호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장발 녀석이 강우진이라는 사실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몰라. 그 녀석한테 다른 악몽급 게이트를 폐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게 나였으니까.”

“하지만, 이산은 용갑 사내가 살의 열쇠고, 화상을 입은 자가 활의 열쇠라고 했습니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이산도 잘못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다고? 당시 저 현장에 있었고, 강우진이 모두를 지키려고 무리하다가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되면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왜 그런 거짓말을…. 아!”

나스타샤는 뭔가가 떠오른 듯 제 무릎을 탁 쳤다.

“이산 아저씨도 나름 머리를 쓰셨다 이거네.”

“설마, 이산 그 이상한 아저씨가 고의로 모두를 속인 겁니까?”

한수호는 질문을 던지며 구천승을 바라봤다.

구천승 역시 속임을 당한 인물 중 하나였다.

이산은 2차 회귀 후, 함께 회귀한 사람들 몇몇을 찾아가 한결같이 살의 열쇠와 활의 열쇠에 대해 언급했으니까.

한수호의 시선을 받은 구천승은 못마땅한 듯 끙 소리를 내며 말했다.

“둘 다 아는 걸 나만 모르는 기분이 드는데? 누가 차분히 설명을 좀 해 주겠느냐?”

“방금 말했잖아요. 이산, 그 변태스러운 아저씨가 모두를 속인 거라고요. 함께 회귀한 사람들도 못 믿고 일부러 반대로 말했던 거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이 영상을 이산의 말과 똑같은 내용으로 조작한 거고.”

“그럼…?”

구천승이 눈을 반짝이자 나스타샤는 한쪽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이산 아저씨가 일곱 개의 열쇠에 대해 말한 사람 중에 영상을 조작한 장본인이 있다는 말이고, 그자가 바로 이프리트의 수장이라는 것이겠죠.”

나스타샤는 한수호에게 동의를 구하듯 바라봤고,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해 주었다.

“이 영상을 이산에게 주면 그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구나?”

“네, 맞아요. 애초에 이 영상을 1차 회귀 때 들고 온 사람이 그 아저씨였으니까요.”

“흐음. 수호야.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구천승이 한수호를 불렀다.

그들은 이프리트의 수장이 삼패창 강지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아들인 강우진이 진짜 활의 열쇠였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강지훈은 구천승과 한수호를 정말 죽일 생각이었으며, 변종 키이라를 부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새한교나 황도13궁과도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능성은 딱 하나네요. 강우진, 그 자식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싸우기로 마음을 바꿨을 경우죠.”

“과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렇게 할까?”

“어쩌면 그게 가능한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수호는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이하윤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하윤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처음엔 그 대상이 우태범이라고 생각해 그 둘이 어떻게 연관이 되었을까 궁금해했었다.

하지만, 이하윤이 구한 사람이 강우진이라고 생각하니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변상련이겠지.’

얼굴에 끔직한 흉터를 가지고 있었던 이하윤은 강우진 역시 화상을 입은 걸 보고 동변상련의 감정을 느꼈을 터.

그 동정의 감정이 호감으로 변하고, 호감은 끝내 이하윤을 희생으로 이끌게 된 것이리라.

강우진은 이하윤 때문에 개과천선했을 것이다.

전에는 아버지 강지훈의 추악한 면모를 보려 하지 않았겠지만, 이하윤과 가까워지면서 순수함에 물들어 차츰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을 터.

그 결과 이프리트의 앞잡이로 전락한 우태범을 죽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두의 앞에 나선 것이 틀림없었다.

한수호는 이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구천승도 나스타샤도 충분히 타당하다고 동의해 주었다.

“그런데, 구 아저씨. 강지훈이 아저씨와 수호를 죽이려 들었다면, 강씨호왕가도 이미 이프리트의 수중에 떨어진 거겠죠?”

“아마도 그럴 것이야. 나와 수호는 오히려 강씨호왕가가 이프리트의 본체가 아닐까 의심하는 중이다.”

“그러면 강지훈이 이프리트의 최고 위치에 있는 수뇌다 이거네요.”

“그렇지.”

“그럼 좀 이상해요. 강지훈이 이프리트의 수장이라면, 어째서 영상을 조작해서 아들을 죽이려고 한 걸까요? 아무리 인류의 멸망을 원하는 자라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는 건 아닐 텐데….”

나스타샤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한수호가 내주었다.

“자신의 목표에 걸릴 돌이 된다면 자식이라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자겠지요.”

“그럴 거면 자기 손으로 직접 없애면 되잖아? 왜 귀찮게 다른 사람 손을 빌리려고 해?”

“죽기 전까지는 철저히 이용을 해 먹어야 하니까요. 한 방울 남은 핏물까지 쪽쪽 빨아먹고 쓸모가 없어지면, 그땐 자기 손으로 가차 없이 아들을 죽일걸요?”

“정말 지독한 작자로구나.”

나스타샤는 이제야 강지훈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차 회귀 전에도 강지훈은 흑막에 숨어서 진짜 정체를 끝까지 내보이지 않았었다.

2차 회귀 때에도 그건 그대로 이어졌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기에 그녀가 투시를 통해 본 한수호에게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강우진이 마지막 활의 열쇠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이프리트의 수장이 강지훈일 거라고는 더욱 생각을 못 했다.

“아직 사실로 확인된 건 아닙니다. 그러니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고요.”

한수호는 조심스러웠다.

아무리 정황상 강지훈이 이프리트의 수장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해도, 언제나 예외라는 것이 존재했으니까.

“그럼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좀 더 세워볼까?”

구천승의 말에 한수호와 나스타샤는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한참 동안 대화를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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