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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84화 (284/375)

284화

구천승은 저 아래 섬 가장자리로 바짝 붙어선 보트 한 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보트엔 여섯 명이 타고 있었다.

양복과 유사한 옷을 걸친 사내들의 가슴팍에는 호랑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이 강씨호왕가를 대표하는 것임을 구천승은 바로 알아봤다.

그리고 다섯 명의 사내들을 앞에서 한 발을 보트 난간에 턱 올려놓고 있는 사내의 정체 또한 알아봤다.

‘강지훈….’

그는 강씨호왕가의 가주이자 삼패창이라는 별호를 가진 강지훈이었다.

보트가 멈춰서자 강지훈을 선두로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섬에 내려섰다.

뒷짐을 진 채 산책하는 발걸음으로 산등성이를 오르는 강지훈.

그는 구천승을 향해 똑바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들이 구천승이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앞장선 강지훈이 구천승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군, 천승.”

삼패창 강지훈과 한울뇌왕 구천승은 동갑의 나이로 친구 사이였다.

한때는 하루 밤낮을 술로 지새우며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던 두 사람.

그런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무려 여섯 명이나 되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산을 필두로, 유대룡과 송혁이 그다음으로 나이가 많았고, 신유, 구천승, 강지훈 셋은 동갑내기 친구였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이가 바로 한철형이었지만, 훗날 한 살 어린 백진성과 박새한이 이들 무리에 새로 들어오게 되면서 막내에서 벗어났었다.

“꽤나 성대한 인사치레로군.”

구천승은 고개를 반쯤 돌려 산산조각 난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봤다.

방금 전, 작은 구슬을 던져 나무를 폭발시킨 장본인이 강지훈이라는 걸 알기에 구천승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워낙 거리가 있다 보니 자네인 줄 알아보지 못했네. 이곳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가 또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거든.”

“게이트 무당이라도 거두셨나? 여기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건 또 어찌 알았지?”

“가까운 후배한테 정보를 좀 얻었지. 자네도 알 텐데? 국수대 안방마님으로 활동 중인 노희경 말이야.”

노희경.

그 이름을 구천승이 어찌 모를까?

그녀 또한 구천승과 함께 회귀했던 여덟 명 중 하나였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노희경이 함부로 정보를 넘겨줄 녀석은 아닐 텐데?”

“그야 그렇지. 하지만 인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후배님이시라 나보고 이 게이트에서 꼭 얻어내야 할 무기가 있다면서 정보를 주더군. 그런데, 나야말로 궁금하군. 자넨 어디서 정보를 얻었나? 노희경의 ‘조짐’ 특성에 준하는 특성 소지자가 또 있었나?”

노희경의 특성은 ‘조짐’.

길게는 하루, 짧게는 2시간 정도 앞선 시간대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미리 조짐을 알아낼 수 있는 특성이었다.

미리 알게 되는 시간이 짧을수록 정확도는 올라가는 대신, 시간이 짧기 때문에 대처할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반면, 하루 정도 앞선 미래의 조짐은 정확도가 확 낮아지지만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어쨌든 노희경은 회귀자라는 이점에 ‘조짐’ 특성까지 지니고 있어서 인류의 멸망을 막아낼 핵심 인물이라 볼 수 있었다.

마공전뇌 이산은 늘 말했다.

노희경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자가 세상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조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특성의 소유자가 있긴 하지.”

“오, 정말인가? 그 친구, 나도 좀 소개해 주면 안 되겠나? 하하하.”

강지훈은 매우 유쾌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삼패창 강지훈은 굉장히 호감이 가는 사내였다.

잘생긴 얼굴에, 늘 입가에 머물고 있는 미소.

그리고 말을 함에 있어서 언제나 자신감이 가득했고, 신뢰가 가는 깊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외적인 것 말고도, 강지훈을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그가 진정한 사내이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강지훈 주변엔 늘 친구가 많았다.

“내가 왜 여기서 자넬 기다렸는지 아나?”

구천승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질문을 던졌다.

“날 기다려? 내가 여기에 올 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고 있었던 건가?”

“한 가지를 묻고 싶은 게 있네.”

“얼마든지 묻게. 삼십 년에 가까운 친구가 묻는다는데, 뭐든 대답을 못 해주겠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10년 전, 지리산 사건. 이프리트에게 우리의 계획을 의도적으로 흘린 배신자가 자네인가?”

구천승의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마치 거짓말을 한다면 가차 없이 손을 쓰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듯했다.

그 각오를 느꼈음일까?

강지훈의 웃는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10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묻는다는 게 고작 그딴 말도 안 되는 질문인가? 내 아들 녀석의 얼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겨놓은 녀석을 후계자로 삼은 것도 용서해 주려 했거늘…. 자넨 이 강지훈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은 것인가?”

“네 아들놈이 상처를 입은 건, 스스로 자초한 일이야. 누구 탓을 하기엔, 너무 고의적인 행동이었네.”

구천승은 50여 일 전, 한수호가 강우진의 얼굴에 큰 상처를 입힌 걸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그 당시엔 한수호가 너무 심하게 반응한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때 상황을 몇 번이나 곱씹어 본 결과 한수호는 강우진을 죽이지 않는 관용을 베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초? 하하하. 그것 참 편의적인 말이로군. 뭐, 좋네. 구천승, 자네가 내 아들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10년 전의 일을 다시 끄집어내면서까지 날 배신자로 몰아세우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네.”

“다시 한번 묻지. 10년 전의 배신자가 자네인가? 난 그 대답만을 원한다네.”

구천승에겐 명경지수 특성이 있었고, 그 특성을 사용한 질문에 대답을 하면 그 대답의 진실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강지훈도 알기에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게 구천승의 생각이었다.

“허어…. 이 친구, 정말 날 배신자라고 여기고 있는 것 같군. 우리의 우정이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 건가?”

“대답만 하면 끝나는 문제일세. 내가 잘못 생각한 게 확인되면 그 즉시 진심으로 사과하지.”

“….”

강지훈은 잠시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뒷짐을 쥔 자세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 때, 강지훈이 구천승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난 배신자가 아닐세.”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대답.

마침내 대답을 들은 구천승은 긴장된 얼굴로 강지훈을 응시했다.

명경지수의 특성을 사용했으니 이제 시야에 놓인 강지훈의 몸에서 빛이 나타날 것이다.

그 빛이 붉다면 거짓말이요, 푸르다면 진실이었다.

그런데, 구천승의 시야에 떠오른 빛은 예상 밖의 색상이었다.

회색.

구천승으로서도 처음 보는 색상이었기에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그 색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린 구천승은 곧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붉은색: 상대가 한 말이 거짓임을 증명한다.

-푸른색: 상대가 한 말이 진실임을 증명한다.

-회색: 상대가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다른 도구를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천승이 지닌 명경지수 특성의 설명이었다.

즉, 강지훈은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려고 아티팩트를 사용했다는 뜻.

“후…. 자넨 끝까지 날 기만하려고 하는군.”

구천승이 탄식을 하며 작게 중얼거리자, 강지훈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기만이라니? 내가 어찌 자네를 기만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강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세 걸음 뒤에 서 있던 양복 사내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었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일까?

양복 사내가 왼손에 차고 있던 시계 같은 장치를 손으로 꾹 눌렀다. 그 순간이었다.

파바박

다른 양복 사내 넷이 구천승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거리는 20미터.

하지만 그들에게 20미터는 단 2초면 건너뛸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그 2초의 시간 동안 네 사내의 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콰드드드득!

옷이 모조리 터져 나가더니 네 사내의 덩치가 네 배로 확 불어났다.

5미터가 넘는 거구에 온몸이 갈색 털로 뒤덮이고, 얼굴은 호랑이를 닮은 괴이한 모습.

게다가 뒤쪽으로 기다란 꼬리까지 생겨나 있었는데, 꼬리 끝에는 창날처럼 생긴 뾰족한 금속이 추처럼 달려있었다.

“크와아악!”

“크허엉!”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구천승을 향해 달려드는 네 마리 괴물들.

그 압도적인 모습에도 구천승은 그저 손을 들어 올릴 뿐이었다.

“네 대답… 잘 들었다.”

짧게 대답한 구천승이 들어 올린 손을 한순간 꽉 움켜쥐었다. 그때,

콰지지지지직!

주먹을 중심으로 네 줄기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뇌전은 네 방향으로 흩어져 네 마리 괴수들의 몸통을 정확히 강타했다.

백만볼트가 넘어가는 엄청난 전격.

이 전격에 닿는다면 모든 혈관이 터져 나가고, 칠공에서 피를 뿜고 말게 되리라.

그런데, 의외의 일이 발생했다.

콰곽. 콱콱!

네 마리 괴수가 일제히 꼬리를 땅바닥에 박아 넣었다.

뇌전이 몸통을 후려친 순간, 시퍼런 빛이 온몸을 한번 훑고 지나가더니 꼬리를 통해 땅바닥으로 훅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 덕에 네 마리 괴수는 강력한 전격에도 아무런 피해 없이 공격을 이어갈 수 있었다.

콰앙!

콰과광!

구천승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호랑이 괴수들의 공격에 맞아 튕겨 나갔다.

자신의 뇌신기를 이런 방식으로 무마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해봤기에 찰나적으로 당황한 탓이었다.

하지만 구천승은 보통의 마공사가 아니었다.

공격을 허용하는 와중에도 최선의 방어를 구축했고, 가벼운 찰과상만으로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강지훈, 이 자식!”

구천승은 괴수들의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내면서 강지훈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강지훈이 이곳에 데리고 온 양복 사내들은 구천승의 뇌신기를 상대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양성된 ‘키이라’ 였던 것.

이미 회귀 전에도 새한교에서 키운 키이라들과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던 구천승이기에, 인간의 몸으로 괴수화가 되는 광경은 수 차례 목격했다.

다만, 그 당시엔 뇌신기에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이처럼 멀쩡한 키이라는 없었기에 잠시 당황했던 것뿐이었다.

아무튼, 강지훈이 이곳에 접지 능력을 가진 키이라들을 대동하고 왔다는 건, 이미 구천승을 처리할 각오였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구천승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분노하자 강지훈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노희경이 알려주더군. 이 세상엔 여덟 명의 회귀자가 존재하며, 그중 한 명이 바로 구천승, 자네라고 말이야.”

“….!”

구천승은 크게 놀랐다.

아무리 노희경이 강지훈과 가깝다고 한들, 회귀자에 대한 정보마저 팔아넘겼을 리는 없었다.

노희경은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아는 인물이지만,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약속한 회귀자에 대한 사실까지 말해줬을 리 없었다.

그렇다는 건,

‘노희경을 잡아서 강제로 입을 열게 만들었나?’

그것밖에는 설명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난 할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네. 당장이라도 자넬 때려눕히고 싶네만, 여기서 힘을 뺄 여유가 없어서 말이야.”

강지훈은 전장 옆쪽으로 크게 돌아서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곁에는 처음 손목 장치를 조작했던 190센티 키의 거구 사내가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상, 아무도 지나갈 수 없다!”

구천승이 큰 소리로 외치며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전용 무기인 ‘뇌전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뇌왕가의 검술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빠지지직-

콰지직!

검이 번쩍일 때마다 강력한 뇌전이 뿜어져 나왔지만, 접지 능력이 있는 괴수들은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았다.

그 모습을 비웃던 강지훈이 게이트 앞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였다.

푸욱

구천승의 검이 한 괴수의 가슴팍 깊숙이 박혀 들었다.

하지만 괴수는 그 상황에서도 두 손으로 구천승의 검을 콱 움켜쥐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강지훈. 날 너무 우습게 봤구나.”

이번엔 구천승이 강지훈을 돌아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순간,

빠지지지지짓-

검에서 엄청난 벼락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네 마리 괴수는 접지 능력으로 몸에 흘러든 전격의 힘을 땅으로 흘려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전과 달랐다.

한 번의 방출로 끝났어야 할 뇌전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꽈지지지직-

빠지지직!

세 줄기 뇌전은 다른 세 마리 괴수의 접근을 막았고, 가장 굵고 강력한 뇌전은 검을 붙잡고 있는 괴수를 향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크와아앙!”

괴수가 화들짝 놀라 검을 쥔 손을 놓았지만, 이미 가슴팍에 박혀든 검을 통해 뇌전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콰지직. 콰지지직!

뇌전의 힘이 더욱 더 강해지던 어느 순간,

부우우욱!

검을 가슴에 박고 있던 괴수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퍼어어어어어어엉!

수박 박살 나듯 산산이 조각나며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괴수의 죽음이 너무도 의외였던 걸까?

이제 막 게이트로 진입하려던 강지훈이 우뚝 멈춰선 채로 구천승을 무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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