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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79화 (279/375)

279화

8월 31일 저녁.

인적 하나 없었던 횡경도에 시끌벅적한 해산물 파티가 열렸다.

파티에 참석한 인원은 단 넷뿐이었지만 웃고 떠드는 소리만큼은 여느 대규모 파티와 다를 바 없었다.

비돈귀살 부부는 정말 즐거웠다.

몇 개월 전, 대법원 게이트에서 큰일 하나를 끝마친 이후로는 아무 걱정 없이 이곳 횡경도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지만 그래도 손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특히, 양자로 삼아 10년이 넘게 키워온 한수호와 그가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는 한울뇌왕 구천승의 방문은 부부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벌써 3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해산물 파티는 가벼운 술까지 곁들여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구천승은 비돈귀살 부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전, 이들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땐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만난 비돈귀살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고 보이지 않게 갈무리된 기운은 이미 궁급 마공사의 경지를 충분히 넘어선 듯했다.

그래서일까?

51세의 구천승은 비돈귀살 부부에게 자신이 먼저 호형호제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친우의 배신으로 남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된 구천승으로서는 실로 파격적인 제안.

그만큼 비돈귀살 부부가 구천승을 대하는 태도며 속마음은 단 한 치의 거짓도 없었던 것이다.

한수호는 스승 부부와 구천승이 가까워지는 모습에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첫 만남은 좋지 않았다고 하나, 구천승도 스승 부부도 그런 과거는 말끔하게 잊어버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졌다.

비돈귀살 부부는 한수호와 구천승이 이 섬에 찾아온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걸 알기에, 더는 길게 붙잡지 않았다.

밤 10시 정도가 되었을 때, 해산물 파티는 끝났고 한수호와 구천승은 소횡경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횡경도는 정말 작은 섬이었지만, 봉우리처럼 솟아오른 산이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20평 정도 되는 분지로 되어 있었는데, 게이트가 발생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다.

밤 11시가 거의 다 된 시간.

한수호는 분지에 걸터앉은 채 구천승과 함께 주변 바다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구나.”

구천승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뭐든지 말씀하시죠.”

“다른 게 아니라…. 넌 네가 17년 전으로 회귀할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냐?”

“그럴 리가요. 이대성, 아니 이대경 그 자식과 동귀어진할 생각으로 최후의 비기를 사용했더니 이렇게 회귀해 버린 겁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특성을 사용한 건데 회귀가 일어났다?”

“네. 그게 사실입니다.”

“흐음….”

구천승은 그와 함께 다른 7명이 한꺼번에 회귀하게 된 이유가 바로 한수호에게 있다고 확신했다.

이산이 또 회귀할 것을 알았다면 그 시점에 발자크와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회귀를 준비했어야 한다.

그건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나스타샤라는 미국인 마공사였는데, 구천승은 회귀한 이후 그녀를 만나러 미국까지 다녀왔었다.

23살의 젊은 나이로 되돌아온 나스타샤.

그녀 또한 자신이 왜 회귀했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구천승 또한 함께 회귀했다는 걸 알게 된 직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20살에 이미 궁급 마공사의 반열에 오른 나스타샤는 ‘투시’ 특성 하나만으로도 세계적인 마공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사실 그녀에겐 굉장히 특이한 특성이 하나 더 있었다.

구천승도 특성의 이름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 특성은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과 관계가 깊다고 했다.

그녀 스스로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을 사용할 경우, 그녀 또한 기억이 남겨진 채로 함께 회귀한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이산이 첫 번째로 회귀했을 때, 미래의 기억을 가진 두 번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 회귀가 일어나게 되면서 그녀의 특성도 진화해 동일 장소에 있는 인물들과 함께 회귀하는 놀라운 일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녀와 긴 대화를 나눴던 구천승은 그래서 제삼의 누군가로 인해 두 번째 회귀가 발생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그 회귀의 원인이 바로 한수호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만 더 물으마. 만약, 이번 세상 또한 전과 다름없이 발자크와 이프리트의 손에 무너지고 만다면 한 번 더 회귀하는 게 가능하겠느냐?”

구천승의 질문은 정곡을 찔렀다.

한수호는 자신이 회귀한 이유가 바로 ‘개조’와 ‘광폭화’ 특성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개조를 이용해 이대경의 지적 능력치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그런 이대경에게 광폭화를 강제로 부여하게 되면서 블랙홀이 만들어졌다.

두 가지 특성 중 하나만 있었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었던 일.

만약 다시 한번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면 또 회귀가 발생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한수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적어도 우연이 세 번 이상 겹치지 않고서는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없을 겁니다.”

“세 번의 우연이라….”

구천승이 살짝 아쉬워하자 한수호는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세 번째 회귀는 필요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게끔, 지금의 세상에서 모든 걸 해결하면 되니까요.”

“허허허.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스승님이 곁에 계시는데 뭐가 무섭겠습니까?”

한수호가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구천승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렇고…. 이젠 네 진짜 정체가 무언지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

구천승은 한수호가 장태산이라는 가짜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안다.

뇌문의 후계자로 삼은 녀석의 진짜 이름이 무언지도 몰라서야 어찌 스승으로서의 체면이 서겠는가.

한수호는 가만히 구천승의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아는 인물은 오직 스승 부부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말하려니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스승으로 모시게 된 이상 거짓은 없어야 했다.

“한수호입니다.”

“한수호…? 설마, 네 녀석. 한철형의 아들이냐?”

놀랍게도 구천승은 한수호의 이름만 듣고서도 바로 한철형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챘다.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허…. 어찌 이런 일이! 10년 전 그날, 나도 지리산에 있었단다.”

구천승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스승님도 지리산에 있었다고요?”

“그래. 나뿐만이 아니라 혈마 신유도 있었고, 유대룡과 송혁, 서한광에 장현오까지 모두 있었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10년 전.

한철형이 목숨을 잃던 그 시점에 구천승을 포함한 사왕이 모두 지리산에 있었고 신유까지 함께 있었을 줄이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한수호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어째서입니까? 아버지가 이프리트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지켜만 본 겁니까?”

한수호의 불타는 눈빛을 대한 구천승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땐, 이미 한발 늦었었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렸지.”

생각해보니 구천승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한수호도 회귀했다는 걸 인지하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었으니까.

그런데, 구천승을 포함한 사왕이 모두 지리산에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한수호의 궁금증을 아는지 구천승이 알아서 답을 말해주었다.

“나와, 아니 우리 모두는 피를 나눈 형제만큼이나 가까운 사이였다. 25년 전, 다 같이 헬급 게이트를 폐쇄하기 위해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그런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어지는 구천승의 말에 한수호는 그동안 궁금했던 일들의 전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 * *

모든 건 2026년의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내에는 20대 초반에 뜻이 맞아 친형제처럼 가까워진 청년 마공사 8명이 있었다.

그들 중 구천승과 송혁은 사왕이라 칭송받는 영웅들이었고, 다른 6명 또한 4왕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강자들이었다.

강지훈과 유대룡, 백진성, 박새한, 그리고 신유와 한철형까지.

이들은 이산을 중심으로 뭉치게 되었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산이 준비한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들이었다.

이산은 이들을 통해 헬급 게이트에서 7대 마화기를 얻어내려 했고, 그 결과 박새한을 제외한 모두가 마화기를 실제로 얻을 수 있었다.

원래 염마갑의 주인은 구천승이었는데, 당시 한철형과 함께 게이트 폐쇄 임무에 참가했던 이태희에게 결혼 축하 선물로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고 7대 마화기가 영웅의 무기가 아닌, 아스루나를 멸망으로 이끈 대마왕 발자크의 신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하여 7명 중 6명은 7대 마화기를 봉인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한 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바로 백진성이었다.

7대 마화기, 미소마궁의 주인이었던 백진성.

그는 미소마궁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장담하며 봉인을 거부했지만, 다른 7명의 친구들은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봉인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일이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그때부터 이들을 노리는 검은 세력이 등장했다.

검은 세력의 집요함에 치를 떨던 한철형은 결국, 그 자신을 미끼로 한 함정을 준비했고 그 장소가 바로 지리산이었던 것.

그래서 백진성을 제외한 6명의 친구 모두가 지리산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배신자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6명의 친구 모두에게 이프리트의 사도들이 암습을 시도했고, 그들의 방해로 인해 그들은 한철형을 구하지 못하고 말았다.

친구들은 그날의 일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누가 봐도 백진성이 배신자였기에 그를 추궁했지만, 그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명확했기에 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주목받은 자가 혈마 신유였다.

사람을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신유였기에 의심받을 상황은 충분했다.

허나, 신유는 자신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이뤄놓은 자신의 세력을 모두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남은 인물은 다섯.

이산까지 포함한다면 여섯이었지만, 이산은 회귀자였기에 그 사건의 주동자가 될 수 없었다.

구천승과 유대룡은 한철형 부부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고, 송혁이나 강지훈은 너무나도 정의로운 인물이었기에 의심할 수 없었다.

남은 인물은 박새한 한 명뿐.

결국 박새한은 그 어떤 증명도 하지 않고 이들과 절연한 뒤 새한교에 틀어박혔던 것이다.

* * *

‘스승님과 아버지가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을 줄이야….’

이는 한수호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회귀 전에 유대룡이 어째서 자신을 그리 친자식처럼 돌봐줬는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어쩐지 회귀 전에 널 봤을 때, 참 낯익은 얼굴이다 싶더니. 한철형, 그 친구의 아들이었구나.”

“회귀 전에는 제가 유대룡, 그분에게 거둬졌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알기야 했지. 허나 당시의 난 이미 유대룡에게 거둬져 잘 성장한 네 녀석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다른 자식들을 찾는 일이 더 급했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제야 한수호는 구천승이 회귀 전에는 형인 한성찬과 동생 한설아, 그리고 한별이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

한수호는 구천승의 깊은 마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네가 이처럼 잘 자라주어 다행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번에는 유대룡, 그 친구가 아니라 비돈귀살의 손에 거둬진 것인지 모르겠구나.”

“이번엔 전과는 다르게 제가 직접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따로 움직였으니까요.”

“그랬군. 이전의 기억이 고스란히 있으니 그 끔찍한 미래를 알고도 가만히 있었을 수가 없었겠지.”

“그럼 진짜 배신자는 누구였던 걸까요?”

한수호는 그 배신자가 바로 이프리트의 최종 수장이라는 걸 확신했다.

“백진성, 그 자식은 네 손에 죽었으니 됐고. 박새한은 그럴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 남은 건 나와 유대룡, 송혁, 신유, 그리고 강지훈뿐이로군.”

“여기서도 강씨호왕가의 이름이 또 들어가는군요.”

한수호는 강지훈을 가장 의심하고 있었다.

“잘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그날의 진정한 배신자가 누군지 알 수 있겠구나.”

“그렇겠죠. 강지훈…. 그자가 뇌격창을 얻기 위해 이 게이트를 찾아온다면 말이죠.”

한수호와 구천승은 각자의 주먹에 힘을 꽉 준 채로 횡경도 주변의 바다를 뚫어져라 훑어봤다.

칠흑처럼 어두운 바다.

저 멀리 육지에서 뿜어내는 작은 불빛들 빼고는 그 어디에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배를 타고 온다면 반드시 보일 수밖에 없는 불빛.

하지만 아직까진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구천승이 갑자기 뭔가 제안을 하고자 했다.

“이곳에 열리는 게이트는 2급이다. 지금의 너라면 혼자서도 큰 문제 없이 안에서 보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고.”

“스승님은 게이트 안에 들어가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맞다. 난 여기서 강지훈, 그 자식을 기다리겠다.”

구천승도 강지훈이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 자식’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자에게 7대 마화기가 있는 이상, 스승님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난 걱정할 거 없다. 마화기가 없어도 강지훈, 그 자식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하니까.”

구천승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회귀 전의 그라면 모를까, 한 번 회귀한 경험과 그동안 반복되며 쌓아졌을 경험까지 친다면 확실히 구천승보다 강한 자는 찾기 어려웠다.

한수호는 제아무리 유명한 이패창 강지훈이라고 해도 구천승이 마음먹고 제압하려 든다면, 별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혹시, 그사이 강지훈이 나타난다면 잘 처리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오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네가 돌아올 때까지 편안히 사담이나 나누도록 하마.”

구천승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 그때였다.

쿠르릉

갑자기 등 뒤에서 큰 진동이 울리더니,

쩌저저적-

아무것도 없던 장소에 시퍼런 게이트가 나타났다.

한수호가 재빨리 시간을 확인해 보니,

[00:06]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시간은 정확히 9월 1일 0시 6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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