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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247화 (247/375)

247화

저벅. 저벅.

영상은 어스름한 어둠 속을 걸어가는 누군가의 입장에서 촬영되고 있었다.

좌우로는 10미터 간격으로 횃불이 켜져 있고, 천장이 있는 기다란 복도.

한옥의 회랑을 무척이나 닮은 복도를 한참이나 걷던 누군가의 앞으로 드디어 막다른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엔 마치 성문처럼 커다란 문이 세워져 있었고, 좌우로는 새하얀 가면을 쓴 사내 둘이 완전무장을 한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경계를 서던 사내 중 하나가 왼손으로 인이어를 꾹 누르며 작게 말했다.

“예약된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철컹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커다란 철문이 살짝 열렸다.

“들어가시죠. 주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금 말을 했던 사내가 철문을 힘주어 열어주었다.

철문의 두께는 최소 50센티는 될 정도로 두꺼웠다.

이 정도면 궁급의 마공사가 마나력을 담아 후려치거나, 웬만한 대형 몬스터가 들이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을 것 같았다.

“고생들 하쇼.”

영상에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목소리.

한수호는 이 음성이 조유현의 것임을 바로 알아챘다.

‘조유현이 살아있는 걸로 봐선, 이건 이산이 첫 번째 회귀를 한 뒤에 촬영된 영상이겠지?’

나름 영상이 촬영된 시점을 가늠해 보며 영상의 흐름을 계속 따라갔다.

조유현은 두꺼운 철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철문 안쪽은 굉장히 단출해 보이는 누군가의 집무실이었다.

사각형 모양의 벽 중, 두 개의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회랑처럼 어둡지도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이 굉장히 밝은 것으로 보아, 지금은 한낮임이 분명하리라.

영상의 초점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엔 편안한 도복 차림의 사내가 등을 진 채로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조유현은 그에게 다가섰다.

언뜻 영상에 창밖의 풍경이 비쳤는데, 놀랍게도 이곳은 굉장한 고층 건물이었는지 저 멀리 높은 빌딩들의 지붕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였다.

“당신…. 날 찾은 이유가 뭐지?”

조유현이 도복 차림의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사내.

그의 얼굴에도 새하얀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놀라운 건, 가면의 이마에 10개의 꽃잎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면인은 뒷짐을 진 채로 조유현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풍채가 상당히 좋아 보였지만, 헐렁한 도복을 걸치고 있어 그 덩치가 근육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살집에 의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는 길은 편안하시었소?”

가면인의 음성은 쇠를 긁는 듯 귀를 괴롭게 했다.

조유현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화면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보내준 방탄 차량을 타고 왔는데 불편할 게 뭐 있을까. 쓸데없는 소린 관두고 본론부터 말하는 게 어때?”

조유현은 가면인을 굉장히 경계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공격을 가할 생각으로 몸에서 긴장을 풀지 않았다.

“본론이라…. 내가 무슨 목적으로 당신을 이곳에 모셨는지는 이미 알 거라 생각되는데, 아니오?”

가면인의 질문에 조유현은 품속을 잠시 뒤적이더니 주먹만 한 뭉치 하나를 꺼내 앞으로 툭 내던졌다.

회색과 푸른색이 적절히 섞인 고급 카펫 위로 데구르르 굴러간 종이 뭉치.

탁자 다리에 부딪친 순간 묶여 있던 매듭이 풀리며 활짝 펼쳐졌다.

조유현이 내던진 뭉치에서 나타난 건 사람의 손이었다.

깨끗하게 잘린 손에는 특이한 모양의 호박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손가락은 가냘픈 것이 여인의 것임이 분명했다.

가면인의 시선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조유현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최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난 이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이런 흉측한 걸 나한테 전달한 목적이 뭔지 말하지 않는다면, 오늘 내 손에 큰 횡액을 면치 못할 것이다!”

조유현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지만, 가면인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대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조유현. 회귀자의 삶은 살 만하오?”

가면인의 입에서 회귀자라는 단어가 흘러나온 순간, 조유현이 득달같이 튀어 나갔다.

가면인이 도망치지 못하게 그의 등 뒤 공간을 우그러뜨려 도주로를 차단시키고, 단번에 괴인혈까지 발동시켰다.

영상의 초점이 갑자기 높아지며 가면인의 머리를 관통하는 괴인의 손이 보였다.

스슥

하지만 그건 가면인의 잔상이었다.

목표가 이미 자신의 등 뒤로 빠져나갔음을 알아챈 조유현이 바로 몸을 휘돌리며 공격했지만,

쾅!

칼날 같은 손톱이 달린 괴인의 손은 가면인의 머리 5센티 앞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듯, 꼼짝달싹도 하지 않는 괴인의 손.

가면인이 왼손을 들어 파리 쫓듯 허공에 멈춰진 괴인의 손목을 툭 쳤을 때,

퍼억!

괴인의 손목에서 폭발이 일며 그대로 끊어졌다.

“크아악!”

조유현은 손목이 날아간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때, 가면인이 훅 다가서며 조유현의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내려찍었다.

콰앙!

카펫 위로 머리가 처박힌 조유현.

발버둥 치려는 그의 귓가로 가면인의 음성이 흘러들었다.

“이산, 나스타샤, 김유란, 조유현, 박철민, 김명중, 노희경, 그리고 구천승. 이번에 회귀한 인물은 무려 8명이나 된다지요?”

차갑게 내뱉어진 말에 조유현의 발악이 순간적으로 멈춰졌다.

“너…. 대체 누구야!”

“그건 알 것 없소. 내가 당신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뿐이라오.”

너무도 냉정한,

그리고 고막을 마구 긁어내는 듯한 거친 음색에 조유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워, 원하는 게 뭐냐?”

“회귀자 조유현. 당신은 짧고 굵게 살다 죽고 싶소, 아니면 길고 가늘게 살고 싶소?”

의외로 단순한 질문.

이미 회귀 전과 다른 마음을 먹은 조유현에겐 너무도 쉬운 문제였다.

조유현이 후자를 선택하려고 할 때, 가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 회귀자인 이상, 당연히 후자일 것이오. 그러니 내가 기회를 주겠소.”

가면인은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손을 치우고 물러서더니 조유현의 손에 뭔가를 쥐여 주었다.

그건 작은 큐브였다.

“이건…?”

조유현은 이 짧은 틈을 이용해 잘린 팔을 재생시켰고, 빠르게 가면인과 거리를 벌리며 물러섰다.

“그건 게이트 생성기라오. 그것도 특수한 던전형의 게이트를 생성시킬 수 있는.”

“게이트… 생성기?”

“한 번 게이트를 열면, 그곳을 통해 던전에 입장할 수가 있소. 그리고 던전이 주는 시험을 통과하면 성적에 따라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다오. 아쉽게도 회귀라는 엄청난 보상은 나오지 않더이다.”

“그게 무슨….”

조유현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소리치려 했으나 가면인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보상을 탈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원래는 세 번이었으나 내가 한 번 사용했으니 이제 두 번이 남은 셈이오. 시험을 한 번 통과하면 게이트는 다시 큐브의 형태로 되돌아 가게 되니 이점을 꼭 유념해 주기 바라오.”

“….”

조유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2058년 2월 8일.

광화문에 열린 악몽급 게이트의 2차 몬스터 웨이브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회귀하게 된 조유현이었다.

조유현은 처음엔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마공전뇌 이산의 방문을 받고 회귀가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산은 조유현에게 2058년도의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냐며,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온 8명의 회귀자들과 함께 다시 힘을 모아 인류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며 협력을 강요했다.

하지만 조유현은 이미 마음을 바꾼 상태였다.

회귀 전의 삶에서 이산의 꼬임에 넘어가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걸려고 했던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깨달은 조유현.

그는 잠시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이산이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미래 지식을 이용해 공간 조작 특성과 괴인혈 특성을 선점한 뒤, 자신만의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도 모르는 장소에 꼭꼭 숨어 있던 조유현에게 소포가 전달됐다.

그 소포는 다름 아닌 사람의 손이었다.

조유현은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봤다.

김유란.

회귀하기 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8명의 인물 중 하나였다.

조유현은 김유란이 특이한 모양의 반지를 늘 끼고 있었고, 유난히 기다란 검지를 가졌다는 걸 잘 알기에 잘린 손이 김유란의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래서 소포를 전달한 사람이 타고 온 차량을 타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가면인은 회귀자가 누구인지까지 모조리 알고 있었다.

그것도 우연히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회귀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모조리 조사한 상태였다.

“원하는 게 뭐요?”

조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원하는 건 딱히 없소.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듯, 다른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면 만족한다오.”

가면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조롱하듯 말했다.

“거짓말 마시오. 원하는 게 없는데, 굳이 날 찾는 수고를 하고, 여기까지 불러들일 리가 없지 않소!”

“선물을 주고 싶은데, 그냥 오라고 하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자극을 좀 준 것뿐이라오.”

가면인은 몇 발자국 걸어가서는 카펫 위에 나뒹굴고 있는 김유란의 손을 발로 밟아 짓이겼다.

그걸 보며 눈살을 찌푸린 조유현이 살짝 긴장한 채 물었다.

“김유란은…. 그녀는 어떻게 됐소?”

“그녀는 잘 있소. 당신과는 상황이 좀 달라서 자유를 줄 수 없었지만, 자유가 없다는 점만 빼면 잘 지내고 있다오.”

가면인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김유란이 죽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후…. 정말 그것 말고 원하는 게 없는 게 확실하오?”

“아, 한 가지가 더 있소.

가면인이 뭔가를 떠올린 듯 검지를 치켜세우며 피식 웃었다.

“그게 뭐요?”

“비교적 간단한 거라오. 2052년 1월 14일에 서울 한남동에 게이트가 하나 열릴 것이오. 그때,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으니 그곳에서 소란을 좀 피워줬으면 하는데….”

“소란?”

“12일이나 13일쯤, 당신이 지닌 괴인혈로 유명 인사를 몇 명 죽이면 충분히 소란이 일어날 거라오.”

가면인의 요구는 어려울 게 없었다.

정말 그것만 해준다면 이대로 조유현을 내버려 두겠다는 것이니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게이트 생성기까지 생겼으니 이득도 챙겼다.

“좋소. 2052년 1월이면 앞으로 3년 좀 더 남았군. 꼭 기억했다가 그날 대한민국이 떠나갈 정도로 소란을 피워드리지.”

“오, 정말 그리 해주시겠소? 참으로 화통한 분이시오. 하하하. 하하하하!”

가면인은 크게 웃었지만, 조유현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이 괴상한 가면인에게서 떨어지고 싶었다.

“이제 가봐도 되겠소?”

“물론이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가시구려. 하하하!”

가면인은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리며 뒷짐을 지고 창가로 향했다.

그때 철문이 다시 열렸고, 조유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가 철문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영상은 끝을 맺었다.

* * *

한수호는 세 번째 영상을 몇 번이나 되돌려 봤다.

그리고 영상 파일의 이름과 영상 내용을 매칭시켜가며 생각을 거듭했다.

‘네 번째 살의 열쇠의 의미가 그런 거였나?’

한수호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수인화한 조유현을 힘과 속도로 가볍게 찍어누른 가면인이야말로 이프리트의 수장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것을.

세 번째 살의 열쇠로 불리는 용갑 사내보다도 꽃잎 열 개의 가면인이 발자크에 버금가는 최종 보스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면인은 회귀자가 아니야.’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왜냐하면 조유현과 대화하는 내내 자신은 회귀자가 아니라는 걸 은연중에 계속 내비치고 있었으니까.

일부러 조유현을 농락하기 위해서 그런 걸 수는 있다. 하지만, 한수호의 느낌상 가면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회귀자의 삶을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고, 던전의 보상에서 회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불만인 듯 말했다.

‘대체 정체가 뭘까?’

백진성이 살의 열쇠 중 하나이자 폭마 박준규로서 황도13궁의 쌍어궁 궁주 자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영상 속의 가면인 또한 다른 궁의 궁주일 가능성도 있었다.

‘이 영상이 3년 전에 촬영된 거였다니. 이건 생각도 못했 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영상은 이산이 처음으로 회귀하기 전에 촬영된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영상은 한수호로 인해 회귀하기 전에 촬영된 거라 여겼었는데, 놀랍게도 현 시점에서 불과 3년 전에 조유현이 직접 촬영한 내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큐브를 준 인물이 가면인이었고, 그는 2052년 1월에 한남동에서 게이트가 열린다는 것까지 알고 뭔가를 꾸미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여기서 한수호는 가면인도 회귀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그가 김유란이라는 회귀자를 잡아 놓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고, 혹시 그녀에게서 미래 정보를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2052년 1월에 한남동에서 열리는 게이트에서 이대성이 특성을 빼앗을 수 있는 특별한 특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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