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크아아악!”
조유현이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는 걸 금방 눈치채고 급히 한수호의 움직임을 쫓았다.
펑. 펑. 펑.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공간이 여기저기 터져 나가는 이팩트만 보인다.
폭발과 폭음은 단숨에 조유현의 코앞으로 날아들었다.
“네가 감히이이이이!”
조유현은 악다구니를 썼다.
핏줄이 선 눈을 번뜩이며 남은 한 팔로 앞쪽 공간을 힘차게 내려찍었다.
꽈아아아앙!
바닥에 큰 구덩이가 파이고, 수많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퍼엉
이번엔 오른쪽 10미터 앞 공간이 터져 나갔다.
곧이어 3미터 앞 공간에서 한 번 더 폭음이 터졌고, 그때를 같이해 조유현이 다시 손톱을 검처럼 휘둘렀다.
휘우웅
카아앙!
한수호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휘두른 공격에 쇳소리가 일었다.
촤르르르륵
한수호가 막강한 힘에 밀려 10여 미터나 쭉 미끄러졌다.
활짝 펼친 왼손으로 바닥을 긁으며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던 한수호.
“꼴에 제법인데?”
그의 한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따위 공격으로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가소로운 놈!”
조유현이 잘려 나간 오른팔을 휘두르자,
푸악
절단면에서 새로운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끈적한 액체를 줄줄 흘려내는 조유현의 오른팔을 본 한수호가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어우, 토 쏠려.”
한수호가 놀리듯 꺼낸 말에 조유현이 또다시 발끈했다.
“죽어어엇!”
쾅
바닥을 찍으며 튀어 나간 조유현이 폭풍 같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찍고, 부수고, 가르는 무시무시한 파상 공격.
조유현의 큰 덩치가 섬전처럼 움직이자 주변은 금세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하나의 몬스터 병기와 다름없었다.
궁급을 훨씬 웃도는 강력한 힘을 지닌데다가, 덩치는 중형 몬스터에 가깝고, 움직임도 기가 막히게 빠르다.
조유현의 손이 닿는 공간은 죄다 박살이 나고, 무너져 내렸다.
한수호도 이런 무식한 공격엔 답이 없었는지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콰과과광!
꽈르르릉!
폐교 건물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그 덕에 강렬하게 내리쬐던 햇빛이 흙먼지에 가로막혀 스며들지 못했다.
“크허어어엉!”
조유현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폐허 속에서 정확히 한수호의 위치를 찾아내 무시무시한 공격을 쏟아부었다.
한수호는 그 공격을 피해내지 못하고 온몸으로 막아내는 중이었다.
“크하하! 이곳이 네 놈의 무덤이다!”
조유현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광소를 터트렸다.
사실 한수호가 조유현의 파상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공간 조작.
조유현은 공간 조작의 패널티를 각오한 채, 공간 조작 특성으로 주변 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있었다.
한수호가 피하려는 방향에 벽을 세우거나, 공간을 통으로 날려버리거나 우그러뜨려 한수호의 움직임을 철저히 봉쇄했다.
조유현이 공간을 조정한 범위에 살짝 들어서기만 해도 신체 일부가 박살이 날 상황이라 한수호는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죽어! 죽으라고!”
꽈르르릉!
쿠아아아앙!
우드득!
공간이 터지고, 부서지며 더욱 짙은 흙먼지를 사방으로 피워냈다.
하지만 조유현은 모르고 있었다.
한수호가 그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면서도 전혀 다급해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또렷한 눈으로 그가 펼치는 공격을 죄다 살펴보고 있다는 것을.
‘이 능력…. 쓸 만한데?’
한수호의 모든 관심은 공간 조작 특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건 흡사 염력이나 다름없었다.
손도 대지 않은 상태로 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특성이라니.
조유현의 상태로 보아, 이 특성을 사용하게 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쓸모가 큰 특성이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공간 조작 특성에 대해 알아내려고 시간을 끄는 중이었다.
‘이놈 죽이기 전에 인챈트 스톤에 특성 좀 새겨 볼까?’
조유현을 그냥 죽여버리면 특성을 그냥 버리는 꼴이라 너무 아까웠다.
‘약탈[2]로 놈의 몸을 빼앗으면 가능하잖아?’
한수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 장소에서 약탈[2]를 사용하면 한수호의 원래 육체에 위험이 생길 수 있었다.
또한 이병선과 그의 동료 마공사들도 곧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에, 조유현의 몸을 차지해도 여유 시간이 얼마없다.
‘결국은 또 그것밖에 없다는 거네.’
한수호는 이 모든 걸 해결할 방법을 이미 찾아냈다.
그건 바로 전투 영역이었다.
조유현을 데리고 전투 영역으로 이동해 버리면, 약탈[2]를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좋아. 바로 실행이다!’
한수호가 눈을 번쩍 뜬 순간, 조유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뭔가 섬뜩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에 조유현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놈…. 뭔가 노리고 있는 게 있군.’
한수호가 일부러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낫겠어.’
한수호의 동료 마공사들도 곧 이곳에 도착할 상황이라는 걸 파악한 그는 괜히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자욱하게 퍼진 흙먼지 덕분에 태양에 노출되지 않고 있지만, 도망을 치려면 수인화를 풀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재생력이 떨어져서 위험해질 수 있었다.
‘아깝지만, 그걸 사용하는 수밖에.’
조유현은 한수호가 덤벼들기 전에 빠른 판단을 내렸다.
“네 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일부러 한수호를 향해 분노한 듯 소리를 친 조유현.
그는 허리에 매달린 작은 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꺼내 들었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한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은 탁구공 크기의 작은 큐브였다.
조유현은 큐브의 중심에 있는 버튼을 꾹 누르고 뒤쪽으로 휙 던졌다.
타닥. 데구르르.
바닥을 나뒹굴던 큐브가 갑자기 두어 번 뒤틀리더니,
지이이잉!
허공으로 푸른빛을 쏘아냈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현상이 일어났다.
쩌저적
빛에 닿은 공간이 세로로 쭉 찢어지며 균열이 생기더니 그곳에 사람 크기만 한 게이트가 등장했다.
게이트가 등장한 즉시, 큐브는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흥! 괴인혈이 최종 단계까지 진화하고 나면, 너부터 찾아내 찢어 죽여주마!’
이를 뿌드득 갈며 분노를 삼킨 조유현.
그는 바로 앞에 나타난 게이트를 향해 몸을 집어던졌다.
바로 그때,
“가긴, 어딜 가려고!”
짙은 흙먼지 속에서 한수호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조유현의 팔을 잡아채려고 했다.
하지만 조유현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한수호의 손을 피했고, 다른 팔을 게이트에 닿게 했다.
“흐. 다음에 또 보….”
조유현이 고개를 돌리며 히죽 웃음을 흘리던 그 순간, 허공을 짚은 줄 알았던 한수호의 손이 조유현의 손등에 살짝 닿아버렸다. 그리고,
퓨슛
한수호와 조유현이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사라진 건 그 둘만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던 게이트도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퍼억!
조유현은 뒤통수에서 전해지는 강렬한 통증과 함께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뭐, 뭐야!”
온 힘을 쏟아부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목덜미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엄청난 힘 때문에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입 좀 닥쳐봐. 이게 뭔 상황인지부터 좀 확인해야 하니까.”
한수호는 무릎으로 조유현의 목을 찍어 누른 상태에서 몇 미터 앞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게이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한수호와 조유현이 있는 장소는 다름 아닌 전투 영역이다.
거대한 돔 형태의 진입차단벽 안으로 조유현과 함께 나타난 한수호는 어째서 저 게이트까지 이곳에 끌려들어 온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게이트까지 전투 영역으로 들여올 수가 있는 거였어?’
언뜻 그런 생각을 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게이트는 생명체의 신체가 조금이라도 닿게 되면, 그 즉시 다른 차원의 세계로 끌고 가버린다.
즉, 한수호가 게이트에 손을 댈 때 전투 영역을 펼쳐도 일단 아스루나 세계로 넘어간 뒤에 전투 영역이 발휘된다는 말이다.
게이트는 손으로 잡을 수가 없는 무형의 물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유현이 중간에 낀 상태에서 게이트까지 전투 영역으로 이동해 버렸다.
‘잘하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겠는데?’
게이트를 전투 영역으로 끌고 올 수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헬급 게이트나 악몽급 게이트가 열린다고 해도, 한수호가 그 게이트들을 이 전투 영역으로 끌고 오면, 지구는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차피, 전투 영역에서 다시 지구로 되돌아가는 건, 한수호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발자크를 이곳에 가두지는 못할지라도, 악몽급 게이트에서 튀어나올 끔찍한 몬스터들을 전투영역에 가둬두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내 힘만으로 게이트를 가져오는 게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지.’
전제조건이 있으니 우선 그것부터 확인해 봐야 했다.
물론, 그 전에 빌런으로 노선을 갈아탄 조유현부터 처리해야 했다.
한수호는 자신의 무릅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괴인 조유현을 내려다봤다.
‘약탈[2]가 통하면 좋은 거고, 안 통한다면 바로 죽여버리자.’
한수호는 부디 약탈[2] 특성이 통하기를 바라며 인벤토리에서 고니를 소환시켰다.
키아아아악!
고니는 조유현의 코앞에 나타났고, 등장과 동시에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질렀다.
“여긴 대체 어디냐?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조유현은 자신이 이토록 쉽게 한수호의 손에 제압당한 것에 놀랐는지 상당히 당황해했다.
한수호는 조유현이 공간 조작 특성을 쓸까 봐 상당히 조심하고 있었는데, 어리숙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유현이 지능이 좀 떨어지는 자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한수호가 아는 밀양 지부장 조유현은 리더쉽도 훌륭하고, 대범한 성격에 치밀한 계획까지 세울 줄 아는 지략가였다.
하지만 지금의 조유현은 그저 몸만 커진 어린아이와 같았다.
“이 털뭉치는 또 뭐야? 대체 여기가 어디냐니까? 게이트에 들어온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던전이냐? 당장 날 여기서 꺼내지 못할까!”
조유현은 점점 더 이상한 소리만 해댔다.
이에 한수호는 대응하지 않기로 하고, 고니에게 할 말을 전했다.
“가서 월 좀 데리고 와줄래? 내가 쓰러지고 이놈이 멀쩡히 일어서더라도 놀라진 마라. 그 모습 또한 나니까 공격하지 말고. 알았지?”
캬르릉!
고니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엄청난 속도로 진입차단벽 한쪽으로 달려갔다.
“너 이 새끼, 당장 내 몸에서 내려오지 못해! 네놈 몸뚱이를 산산조각으로 찢어놓기 전에 내 몸에서 떨어지란 말이다!”
악다구니를 쓰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 조유현.
한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조용히 특성을 발동시켰다.
그 특성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빼앗을 수 있는 약탈[2]였다.
쿠웅
갑자기 한수호의 몸이 힘없이 무너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와 같이하여 한수호의 몸 옆으로 두 개의 인챈트 스톤이 투둑 하고 떨어졌다.
한수호가 쓰러지자, 납작하게 엎어져 있던 거구의 조유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조유현의 눈빛과 표정이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눈 전체를 물들이고 있던 핏빛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고, 흉측한 괴물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괴인 조유현은 자신의 두 손을 시작해 온몸을 둘러봤다.
“어라? 성공…했네?”
괴인은 더 이상 조유현이 아니었다.
모습만 괴인일 뿐, 그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정신은 한수호였다.
‘이게 왜 되는 건데?’
한수호는 궁급을 뛰어넘는 힘을 지닌 조유현이기에 약탈[2]가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특성을 발동시켜보니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손쉽게 육체를 빼앗을 수 있었다.
‘대체 이유가 뭐…. 음?’
한수호는 갑자기 밀려든 두통에 몸을 비틀거렸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온몸을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크으….”
다른 사람의 육체여서 그런지 통증에 대한 내성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이 몸으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든 한수호는 재빨리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인챈트 스톤을 챙기고, 옆에 시체처럼 나자빠진 자신의 육체를 안아서 3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장소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게이트와 한수호의 육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그때, 진입차단벽의 한쪽이 열리더니 고니를 비롯해 월과 범이, 살이가 우르르 밀려 들어왔다.
“주인. 갑자기 무슨 일…. 어?”
월이 뛰어오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월은 이게 뭔 일인가 싶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선 저 멀리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한수호를 살폈고, 다음으로 갈색 털을 지닌 3미터의 괴물을 훑어봤다.
그러다 게이트를 살짝 시선에 담았다가 곧바로 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쪽이 주인인 건 알겠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럽다. 게이트는 뭐고, 왜 멀쩡한 육체를 두고 그런 괴물로 둔갑한 거지?”
과연 월은 달랐다.
고니가 제대로 설명을 해줬을 리 만무한데,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한수호를 알아봤다.
안심한 한수호는 빠른 어조로 힘주어 한마디 했다.
“저 게이트 좀 지켜줘. 일반 게이트가 아니고 던전이라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다 때려죽이고.”
“주인은 뭘 하려는 건가?”
“길게 설명할 시간 없어. 일단 내 말대로 해줘.”
한수호가 괴물의 모습을 한 채로 명령을 내렸지만, 월은 한수호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알았다. 하지만, 주인의 상태가 좀 위험해 보인다.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군.”
월은 한수호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것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서두를 생각이다.”
한수호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재빨리 이 몸의 주인인 조유현의 모든 정보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