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한수호가 미궁의 입구 밖으로 한발 내디딘 순간,
슈우우우우욱
미궁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검은 안개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어둡고 칙칙했던 미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평범한 미로의 집과 같은 분위기.
잠시 후, 미궁 어딘가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새롭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야 내가 아는 그 안개의 미궁 같군.’
지금 한수호가 보고 있는 미궁이야말로 회귀 전에 다른 마공사들에게 들었던 안개 미궁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수호가 잠시 감회에 젖어 들었을 때,
삐링
>>안개 미궁의 보스가 주인을 따라 미궁을 벗어납니다.
>>히든피스 발동.
>>미궁이 새롭게 구축되어 356개의 보물상자가 적당한 위치에 배치됩니다.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획득 포인트: 210NP / 2,000,000LP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가 등장하더니 한수호의 앞으로 거구의 사툴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워어?
사툴란은 마치 ‘이제 나 뭐하면 될까?’라고 묻는 얼굴로 한수호를 빤히 바라봤다.
똑바로 서면 거의 10미터에 육박하는 엄청난 크기의 크리스탈 골렘, 사툴란.
나샬검을 한수호에게 바친 이후로 쭉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녀석이 한수호를 따라 미궁을 벗어나자 히든피스가 발동했고, 그 덕에 엄청난 포인트까지 얻었다.
“너, 나 따라오려고?”
한수호가 묻자 사툴란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면서 바윗덩이 같은 손으로 자기 어깨를 툭툭 치며 앉으라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거참….”
어째 사람보다 몬스터나 몬스터봇이 더 잘 따르는 기분이다.
한수호는 무릎을 굽히며 허리까지 숙이는 사툴란을 묘한 시선으로 살펴봤다.
몸속까지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크리스탈의 육체를 지닌 사툴란은 무려 1,800이 넘는 마나력을 지닌 강력한 몬스터였다.
이는 라라보다도 높은 수치였지만, 사툴란은 마나력을 공격보다 방어에 몰빵하는 스타일이라 라라와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얘도 인벤토리에 들어가려나?’
생명체가 아닌 월이나 고니 같은 경우엔 아무 문제 없이 인벤토리에 들어가지만, 생명체로 인식되는 경우엔 불가능했다.
이대로 사툴란을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는 엄청난 파장이 일어날 것이기에 인벤토리에 넣거나 그게 안 되면, 전투 영역에 데려다 놔야 했다.
한수호는 사툴란을 인벤토리에 수납시켜봤다.
슉
눈앞에서 거구의 사툴란이 사라졌다.
‘오, 되네?’
생명체로 인식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
한수호는 이제 자유롭게 사툴란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월한테 데려가서 함께 놀게 해 줘야겠네.’
작은 몸집의 월이 큰 덩치의 범이와 살이, 거기에 이젠 사툴란한테까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떠올리니 괜히 웃음이 난다.
한수호는 몇 걸음 옮기다가 거대한 성벽이 앞을 가로막자 바로 땅을 박차며 가볍게 날아올랐다.
* * *
콰직.
와그작!
꽈드드득.
초거대 드래곤, 고니의 날개와 발에 짓밟혀 죽어가는 몬스터들의 모습은 끔찍했다.
사체가 산을 이루고, 몬스터들이 흘린 피는 시내가 되어 사방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많던 중대형 몬스터 중에서 제대로 서 있는 놈들은 이제 얼마 없었다.
고니에게 이런 몬스터들은 수백, 수천이 덤벼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짧은 앞발로 7미터짜리 오우거의 몸통을 찢어내던 고니.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한쪽으로 홱 휘돌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앙!
고니가 고함을 친 순간, 음파에 얻어맞은 몬스터들의 머리통이 펑펑 터져나갔다.
머리가 사라진 몬스터들이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고니는 성벽 쪽으로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그 무서운 중대형 몬스터들을 날벌레 죽이듯 떼죽음을 시켜버린 살벌한 드래곤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본 진무현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허…. 지금은 꼭 우리 집 댕댕이 같네.”
진무현은 자기도 모르게 육성으로 중얼거리다가 드래곤의 목에 올라탄 채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한수호를 올려다봤다.
딱 보기에도 너무도 멀쩡한 모습.
저 거대한 성 안쪽에 존재하는 안개 미궁에 들어가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왔을 텐데도, 어디 하나 상한 곳이 없어 보였다.
굳이 흠을 잡자면, 교복 바지 곳곳에 새끼손톱 크기만 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정도?
“김유진은 나갔습니까?”
한수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진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태범이 목 빠져라 기다린다고 하니까 바로 나가더군요.”
“다행이네요. 우리도 이제 나갑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냐는 말은 끝내 삼키고 말았다.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질문.
신명호, 박요한, 배도형은 한수호가 미궁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이 죽여버렸다.
남은 건 이대성과 최우빈뿐이었지만, 한수호 혼자 되돌아왔으니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제가 한발 늦었더군요. 안타깝게도.”
한수호가 담담하게 한 말에 진무현은 어색하게 웃음을 그렸다.
“그렇…군요. 경고도 무시하고 무작정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더니 결국 다섯 명 모두 불행을 면치 못했던 거군요.”
진무현은 한수호의 말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들었다.
그는 한수호가 이대성과 최우빈까지 직접 처리해 버렸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한발 늦었다며 안타깝다고 말한 건, 자신이 그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는 것.
때문에 진무현은 다른 세 명을 죽였다는 사실까지 함께 묻어주겠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번 일로 서령 그룹이나 대한맹이 들썩거릴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자식이 죽었으니 크게 원통해 하겠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다 자기 자식들이 자초한 일인 것을…. 게다가 그들은 흉악한 새한교도들이었으니까요.”
진무현은 충주 아카데미의 배도형 교수와 네 명의 학생이 사망한 일에서 한수호에 대한 내용은 완전히 배제할 생각이었다.
그가 국가수호대의 요원인 이상 여기서 벌어진 일을 묻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요?”
한수호가 고니의 목에 앉은 채로 자신의 뒷자리를 툭툭 치자 진무현이 바닥을 박차며 높이 뛰어올랐다.
몬스터들과 혈전을 벌인 탓에 온몸에 피가 잔뜩이었지만, 한수호는 그가 등 뒤에 바짝 붙어 앉는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가자, 고니야.”
크르르.
고니가 작게 소리를 내며 날개를 활짝 펼쳤다.
쭉 펼쳐진 날개는 30미터 이상.
거대한 드래곤이 날개를 한차례 펄럭이자 순식간에 수십 미터 높이로 날아올랐다.
진무현은 몇 초 만에 안개의 미궁을 둘러싼 성벽이 까마득히 작아진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몬스터봇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겁니까?”
그에게 있어 한수호는 비밀투성이에, 감히 뒤쫓아 가기도 힘들 정도의 강자였다.
거기다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신하는 몬스터봇을 수하처럼 부리고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을까.
“여기저기 던전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겁니다.”
“우연히…. 말입니까?”
도저히 믿기 힘든 말.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농담하지 말라고 타박이라도 줬겠지만, 한수호가 하는 말은 진위를 가리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 말의 사실 여부를 알려준 건 엉뚱한 존재였다.
크와악!
두 사람이 타고 있던 드래곤, 고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곡예비행을 시작했다.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날갯짓을 멈추고 수직으로 추락하는 등 한수호와 진무현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작정한 듯했다.
그 덕분에 진무현은 한수호가 말한 ‘우연히 얻어걸렸다.’라는 말이 절대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당사자인 고니가 몸으로 직접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 * *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못 들어간다.”
지평학은 게이트 앞에 우뚝 서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
그 주변엔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어느새 마공돔을 가득 메우고 있던 안개가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에, 시야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게이트 앞쪽엔 임시 상황 본부가 세워졌고, 그곳엔 특무부부터 대한맹에 정의국까지 이름 있는 마공사 상당수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나왔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독특한 차림의 마공사들도 십여 명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얼굴로 지평학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마공 아카데미 본교에서,
그것도 본교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마공돔에서 게이트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학생 다섯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게이트 안으로 다섯 명의 학생과 교수 하나, 그리고 정체불명의 사내까지 진입한 상태.
최소 3급 수준의 던전으로 보이는 게이트에 고작 7명이 들어갔으니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게 뻔했다.
하지만 지평학이 게이트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1세대 마공사인 지평학은 실력이 엄청나진 않았지만, 그가 지닌 이름의 무게가 있기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던 것.
“교수님도 김유진 학생 말을 들으셨지 않습니까? 게이트 안에서 지금 수백 마리 중대형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단 말입니다! 아무리 일세대 마공사라고 해도 그렇지, 고집을 부릴 데서 부리셔야죠.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모두에게 민폐 아닙니까, 민폐!”
대한맹의 ‘감찰부’ 소속 마공사 하나가 아홉 명의 마공사를 데리고 서서 지평학을 압박했다.
“이보게, 하 부장. 내 이미 수도 없이 말하지 않았나? 안에 들어간 녀석들이 스스로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이 더 투입되어 봐야 희생자만 늘 뿐이라고!”
지평학도 지지 않았다.
그는 이미 김유진을 통해 이대성과 그의 친구들이 그녀를 납치했으며, 그들 뒤에는 배도형 교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 들은 뒤였다.
김유진의 말에 가장 발끈한 것은 충주 아카데미 쪽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김유진이 거짓말을 한다며, 서둘러 게이트에 진입해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평학이 게이트 입구를 틀어막고 아무도 들여보내 주지 않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지평학이 그렇게 하자 우태범과 김유진도 합세해 지평학 곁에 섰으며, 한수호의 친구들 역시 한 마음이 되어 게이트 입구를 막아섰다.
그들은 마스크를 쓴 학생이 한수호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모든 걸 해결하고 나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맹의 부맹주, 이자성의 직속 부대인 감찰부의 마공사들이 도착했던 것이다.
대한맹의 감찰부 소속 마공사들은, 대한맹 내부의 비리를 캐고 옳지 못한 일을 행하는 마공사들을 체포 및 처벌하는 임무를 맡고 있어서 개개인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특히 감찰부의 이인자인 하공준 부장은 이미 궁급에 이른 강자라는 소문이 파다한 인물.
그가 직접 나섰다는 건, 이번 일을 대한맹에서도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교수님이라고 해도 더는 봐드릴 수 없습니다. 이번 일에 이자성 부맹주님의 아드님까지 연루되어 있는 이상,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고요. 곧 부맹주께서 이곳에 도착할 거란 말입니다!”
하공준의 강압적인 말에도 지평학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하 부장은 믿지만, 자네 뒤에 서 있는 감찰부 조무래기들은 못 믿지. 저놈들은 이자성 부맹주의 말이라면 목숨까지 던지는 놈들이잖나? 부맹주의 자식이 납치에, 살인 교사의 주동자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인데, 저놈들이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니 더더욱 들여보내 줄 수 없네.”
지평학은 감찰부 마공사들이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설사 이대성에게 죄가 있다고 해도 없는 것으로 사실을 조작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다.
“허어. 지평학 교수님. 우리 감찰부에는 사실을 거짓으로 조작할 만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러십니까?”
“난 모르네. 아니, 알아도 더는 알고 싶지 않아. 이자성 부맹주의 아들이라는 놈이 아무 죄 없는 여학생을 납치해서 십자가에 묶어 인질로 삼다니! 내가 직접 목격했다면, 그 자리에서 그놈을….”
지평학이 이마에 핏줄까지 세우며 화를 내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우태범이 이를 뿌드득 갈며 살기를 뿌려냈다.
“이대성…. 그 자식은 내 손으로 죽여버릴 겁니다. 놈의 지시를 받은 충주 아카데미 삼인방도, 그리고 배도형 교수도 모두요!”
우태범은 이대성 무리가 김유진을 인질로 삼아 게이트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 분노에 치를 떨었다.
지평학은 바로 곁에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리는 우태범에게 시선을 돌렸다.
‘탐나는 재능이야.’
처음엔 좀 괜찮은 재능을 가진 학생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보면 볼수록 탐나는 녀석이었다.
마공돔에 게이트가 생길 거라는 경고를 받았을 때도 다른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끔 상황을 정리해 주었고, 끝까지 이곳에 남아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냈다.
게다가 일정 시간마다 몬스터들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파악하여 게이트 입구부터 막아섰다.
또한 김유진이 탈출한 이후엔 지평학을 도와 입구를 틀어막는 데 크게 일조했다.
‘마나통도 상당하고 말이지….’
지평학이 보기에 우태범의 재능은 제자인 최지혁보다도 뛰어난 듯했다.
이제라도 제자로 삼아 가르쳐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
“크흠. 이 학생이 정말 이대성 학생을 해치는 일이 벌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게이트에 들어갈 생각은 말게나.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일세.”
지평학은 혹시라도 우태범이 다칠까 봐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물렸다.
지평학이 이렇게까지 하자 하공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꽤 오랜 시간 지평학과 알고 지낸 사이기에, 그가 한번 결정한 일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공준이 머뭇거리자 뒤에 서 있던 감찰부 소속 마공사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무력을 행사할 준비를 했다.
그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특무부와 정의국 요원들도 우르르 다가왔다. 바로 그때,
지이이이잉-
잠잠하게 푸른 빛을 내고 있던 게이트가 진동을 일으키더니 거울처럼 매끈한 균열의 면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안에서 뭔가 나온다!”
“몬스터일 수도 있으니 모두 전투 준비해!”
모두가 잔뜩 경계하며 게이트 쪽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리고,
터억.
게이트 속에서 누군가의 발이 나오고, 다리가 보이더니 사람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다름 아닌 한수호였다.
그가 나타난 직후, 그의 뒤에서 진무현도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더 이상 게이트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하공준과 감찰부 마공사들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 표정을 단숨에 읽어낸 한수호.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진무현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 진무현은 하공준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사진과 이름이 박힌 공무원증 하나를 꺼내 보였다.
“국가수호대의 특급 요원, 진무현입니다. 제가 게이트 안에서 목격한 것을 근거로 한 취조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저와 함께 가실까요?”
“국가수호대라고? 거기다 취조라니? 내가 대한맹의 감찰부 소속이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인가?”
하공준도 모르는 기관명.
하지만 진무현이 내민 공무원증이 진짜라는 건 확실했다.
또한 그 공무원증에 찍혀 있는 특급 등급은 모든 마공기관 소속의 마공사에게 강제 동행 및 취조의 권한을 지닌 대통령 직속의 특수요원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하신 하공준 부장님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사안이 워낙 중요하니, 최대한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무슨 사안인지는 알려줘야 하지 않겠나?”
“충주 아카데미 소속의 교수 배도형과 그의 제자 네 명이 사이비 종교인 새한교의 교도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허가되지 않은 신체 강화제를 개발하여 남용한 것도 직접 목격했으며, 동급생을 납치한 데다가, 게이트에 함정을 꾸며 진입하는 마공사들을 죽이려는 사악한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까지 발견되었습니다. 때문에 대한맹도 깊숙이 연루되어 있는게 아닌지 밝혀낼 필요가 있는 겁니다.”
또박또박 선명한 말로 이대성과 친구들이 지은 죄목이 주르르 흘러나오자 하공준의 말문이 턱 하고 막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