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189화 (189/375)

189화

오랜만에 찾아온 던전, ‘라라의 호수’.

한수호는 던전을 지키는 수비대를 지나쳐 컨테이너 속에 자리한 던전 게이트 앞에 섰다.

[7급 던전 ‘라라의 호수’]

-보유 포인트: 1,000LP

-위험도: ★★★☆☆☆☆☆☆☆

-아스루나 대륙의 5급 몬스터 라라의 호수입니다.

-호수의 여왕, 라라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자크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날짜를 따져보니 지난 번에 찾아온 이후로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온 김에 정신 수치도 받아가면 딱이겠네.’

라라가 약속한 정신 수치 보상은 무려 3.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이 3이라는 숫자는 결코 작은 게 아니었다.

‘17까지 오르면 정신 공격엔 거의 무적이겠는데?’

정신 수치 14만으로도 7대 마화기의 하나인 용마검이 지닌 정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으니 17의 위력은 그보다 훨씬 대단할 터.

한수호는 은근히 기대를 하는 마음을 갖고서 게이트 쪽으로 다가갔다.

“조심해서 다녀와라. 여긴 내가 꽉 틀어막고 있으마.”

“그럼 부탁할게요!”

한수호는 김재우에게 웃어 보이고는 바로 게이트 속으로 진입했다.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고, 한수호의 눈앞에 넓은 호수가 등장했다.

김재우에게 받은 고무보트를 인벤토리에서 꺼내 호수 위에 띄운 뒤, 모터까지 켜서 당당히 섬으로 향했다.

한수호가 호수를 가르며 섬으로 향하자, 곳곳에서 반인반어의 세이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이렌들은 그저 멀리서 한수호를 향해 경외심을 표시할 뿐, 다가서거나 노래로 유혹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호수의 주인인 라라로부터 한수호가 운명의 상대라는 걸 전해 들었기에 감히 허튼짓을 할 수가 없었던 것.

한수호는 편안하게 섬에 도착했고, 섬 중앙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은 소녀를 향해 걸어갔다.

한수호가 다가오자 소녀, 라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따위는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잊기를 바라면 잊어줄 수 있는데.”

“말이라도 좀 예쁘게 하면 뭐 잘못되기라도 하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지.”

한수호는 두 볼을 빵빵하게 불린 채 허리에 손을 척 얹은 라라를 천천히 훑어봤다.

전체적인 능력치는 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마력이 이미 1천을 넘어서서 인간으로 치면 궁급 마공사에 도달한 상태였다. 물론, 이건 순수하게 마력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한수호의 눈길을 느낀 라라가 양팔로 몸을 슬쩍 가렸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 이상한 눈길로 훑잖아? 무슨 투시 능력이라도 있는 것이냐?”

“투시 능력이 있어도 네 몸은 투시 안 할 테니 걱정 말라니까? 저번에 분명히 말했지? 너 같은 애한테는 아무 관심 없다고.”

“애 아니라고! 내가 보기에만 이렇지 나이는 300살이 넘는….”

“그거 자랑 아니다.”

“…. 끄응.”

라라는 힘 싸움에서도, 말싸움에서도 한수호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거나 받아.”

한수호는 인벤토리에서 마나력 600짜리 마나코어를 꺼내 라라에게 건넸다.

“정말 챙겨왔네?”

“난 적어도 약속한 건 지키는 사람이니까.”

한수호가 말하며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자 라라가 흠칫 놀란다.

“뭐, 뭐냐. 그 소름 끼치는 웃음은?”

“내가 약속을 지켰으니,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아, 정신력 보상? 하…. 결국 날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보상을 타려고 온 거로군?”

라라가 조금 실망한 듯 우울한 표정을 짓자 한수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단기 기억 상실증 있냐? 자기가 말해 놓고 잊어버린 거야?”

“응? 내가 뭘?”

“네가 그랬잖아. 던전을 나가서 세상을 누벼보고 싶다고.”

“…!”

한수호의 한마디에 라라는 크게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그, 그걸 잊지 않은 건가? 정말 날 데리고 던전을 나갈 생각이라고?”

“나가기 싫으면 여기서 주구장창 살든가.”

“그럴 리가! 간다, 결코 나가고 말겠다고!”

라라는 놀이동산에 가자는 아빠의 말을 들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곧바로 마나코어를 입에 던져 넣은 라라.

그 직후, 라라의 신체 수치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력만 높을 뿐, 신체 수치는 고작 특급 수준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진급을 훨씬 넘어버렸다.

‘평균수치 92? 나쁘지 않은데?’

가슴수치가 180을 넘은 덕분에 평균치가 크게 상승한 것이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도 평균 70을 넘는 신체수치였다.

데리고 다니면서 조금 훈련을 시킨다면 제 몫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투 영역에서 월하고 붙여놓으면 금방 성장하겠어.’

평소엔 컨테이너 하우스를 지키게 하다가 필요할 때마다 전투 영역에 데려간다면 빠르게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나코어 흡수를 완전히 끝마친 라라.

다시 보니, 능력치뿐만 아니라 외형도 조금 성장한 듯 보였다.

흡수 전에는 14살의 미성숙한 소녀였다면, 지금은 여인으로서 느낌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성숙한 16세의 소녀로 보였다.

“좀 커졌는데?”

한수호의 말에 라라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뭐가 커졌다는 건데!”

“뭐긴 뭐야, 키지. 한 3센치는 자란 거 같군.”

“그, 그래? 크흠. 내가 오해했군.”

라라는 괜히 얼굴을 붉히며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이제 정산을 좀 해야지? 우선 던전을 나갈 준비가 되었는지부터 확인해 봐.”

“알았다.”

라라는 우두커니 서서 허공을 가만히 응시했다.

입으로는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고, 손을 기이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잠시 후,

“이제 됐다.”

“그래서, 결과는? 나갈 수 있는 거 맞아?”

“나갈 수 있다. 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 새로운 후임자도 정했고.”

“뭐야? 그럼 네가 없으면 여긴 다시 전처럼 세이렌의 둥지가 되는 거냐? 들어오는 마공사들 유혹해서 마구 죽이는?”

“그런 건 아니다. 내 후임자는 나를 대신해 이 던전의 결계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힘을 키우는 역할만 할 뿐이야. 언제고 내가 여길 돌아오면 그 에너지를 나한테 넘기는 것이고.”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던전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골치 아픈 일이었으니까.

“그럼 정기적으로 널 데리고 이 던전을 다시 찾아와야겠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처음 이곳을 벗어날 때에만 너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고, 그 뒤부터는 약간의 마나력을 소모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지.”

“오, 그건 좋은데? 이동은 혼자서만 가능한 거냐? 나도 같이 이동하는 건?”

한수호의 질문에 라라는 시선을 피하며 뭔가를 망설였다.

답답해진 한수호는 그런 라라의 어깨를 잡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나, 말 돌리는 거 싫어하니까 똑바로 말해.”

“그, 그게 아니라…. 너와 함께 이 던전으로 이동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몸을 굉장히 밀착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신경 쓰여서 그런다.”

“밀착? 그게 뭐 대수라고.”

“엄연히 넌 남자고, 난 이 호수의 여왕인데 어찌 몸을 함부로 밀착….”

“웃차!”

한수호는 라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덥썩 안아들었다.

“이 정도 밀착이면 되는 거 아니야?”

한수호는 아무 뜻 없이 공주님 안기로 라라를 들었지만, 당사자인 라라는 부끄럽기라도 한지 얼굴을 빨갛게 붉혔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자꾸 요점을 벗어나는 생각과 말은 하지 않는 게 어때? 위험한 순간에 순식간에 장소를 옮길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그깟 밀착이 신경 쓰여서 그냥 썩혀버릴 생각이냐?”

“위험한…. 순간?”

“그래. 앞으로 넌 나와 함께 수많은 전장을 누비게 될 거다. 그러기 위해선 빠르게 강해져야 할 거고. 하지만, 나는 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걸 그냥 지켜볼 생각이 없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목숨을 살릴 기술 하나쯤 있는 게 좋겠지.”

한수호가 단호한 얼굴로 이유를 설명하자, 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네 말대로 내 이동 기술을 구명술로 쓴다면, 나를 포함해 최대 세 명까지는 단숨에 이곳으로 옮겨올 수 있을 거 같군.”

“다른 던전이나 게이트 안에서 직접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고?”

“물론이다. 던전 밖이든, 다른 던전이든 아무 상관없이 여기로 이동할 수 있지.”

명쾌한 대답에 한수호는 만족할 수 있었다.

이제 라라만 곁에 있으면, 한수호가 아끼는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든 이곳으로 순간이동 시킬 수 있었으니까.

“좋아. 앞으로 내가 누군가를 이동시키라고 명령하면 1초도 고민하지 말고 이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문제없겠지?”

“문제는 없지만…. 대체 누구랑 싸울 생각인 거야? 인간 같지 않은 네 녀석도 도망부터 칠 생각을 하는 적이 존재하기는 해? 아니지. 너, 설마…. 발자크는 아니겠지?”

“….”

한수호는 대답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렇다는 건 한수호가 상대하려는 적이 발자크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발자크는 아스루나의 인류를 멸망시킨 마왕이라고! 죽고 싶어서 환장이라도 했어? 그럴 거면 그냥 자살을 해, 자살을!”

“…. 무서우면 여기 남아라.”

한수호는 라라를 억지로 데리고 나가 발자크와 싸우게 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스스로 원해서 여길 나가고, 스스로 원해서 한수호를 도울 생각이 없는 녀석을 데리고 나가봐야 도움보다는 짐이될 가능성이 훨씬 높았기 때문.

그런데, 라라는 의외로 입장 변화가 빨랐다.

이곳에 혼자 남아 아무 변화 없는 생을 사는 것보다, 위험하더라도 던전 밖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제길…. 알았다고! 널 따라 나가겠다.”

“진심인가? 나중에 가서 후회해도 그땐 이미 늦었을 거다.”

“후회하지 않는다.”

“시원해서 좋군.”

한수호는 밝은 웃음을 그려보이고는 라라를 바닥에 내려놨다.

“자, 정산할 게 아직 하나 남았지?”

한수호가 말한 정산은 정신력 보상을 의미했다.

“이미 말했듯, 정신력 보상은 한 달에 한 번뿐이고, 한 번에 딱 3까지다.”

라라는 다시 한번 기억을 되새겨 준 뒤, 한수호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리고 한수호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순간,

>>스텟(정신+3)이 상승합니다.

슈우우우욱!

짧고 명쾌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한수호의 머릿속으로 청명한 바람이 훅 하고 불어닥쳤다.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스치고 지나갔을 때, 한수호가 복잡해하던 생각들이 깔끔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김무성에게 전수받은 세 번째 비밀 기술인 ‘염동파쇄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한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붙여 꼿꼿이 세웠고, 그 손가락 검으로 열 걸음 밖에 놓인 바위를 스윽 그어버렸다.

그저 손가락 검을 20센티 정도 움직였을 뿐인데,

서걱

바위가 비스듬한 방향으로 깨끗하게 절단되더니.

쿠구궁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 광경을 코앞에서 목도한 라라는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대체…?”

놀란 건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가슴] : 403(+1)

*[마나] : 4,007(+7)

염동파쇄기 한 방에 생명코어의 마나력 665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거, 마나 소모량이 어마어마한데?’

용의 박동 초식들에 비하면 적은 수치지만, 단순히 8미터 밖의 바위를 베는 데 소모된 마나로는 너무 컸다.

그렇다는 건, 더 멀리, 그리고 더 강력한 파괴력을 내기 위해서 소모되는 마나력은 훨씬 크다는 것.

‘마나 소모량을 줄일 방법을 좀 찾아야 겠구나.’

한수호는 머리가 꽉 막혀서 거의 진전이 없었던 염동파쇄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슬쩍 라라를 돌아보니, 입까지 반쯤 벌린 채 베어진 바위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입 닫아. 파리 들어간다.”

한수호가 라라를 보며 한 말이었다.

“헙. 으음….”

라라는 그제야 실태를 깨닫고 급히 입을 닫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한수호는 그럴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제 나가 볼까?”

“…어? 지금?”

“미리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선 말투 좀 바꿔. 바깥 세상은 이곳과 완전히 다르니까, 그쪽의 법을 따라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한수호는 라라에게 존대를 하라고 돌려 말한 것이다.

라라도 그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그래. 알았… 끄응. 어요.”

억지로 하는 존대.

하지만 한수호 입장에선 이것도 그다지 나쁠 게 없었다.

“잘하네. 너무 어색하지만 않게 조금만 더 노력해 보라고.”

한수호는 피식 웃고는 곧장 몸을 돌려 고무보트로 향했다.

“야, 같이 가자고…가 아니라, 같이 가요!”

라라도 한발 늦게 한수호의 뒤를 좇았다.

* * *

샤아아아악

석촌호수의 게이트가 빛을 내더니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오, 태산아! 마침 잘 나왔…. 응?”

게이트 밖에서 한수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김재우는 지금 막 모습을 드러낸 한수호가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알아보고 흠칫했다.

한수호의 뒤로 한 소녀가 따라나왔다.

키는 150을 조금 넘고, 나이는 많이 잡아봐야 16살을 넘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소녀의 얼굴을 김재우가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너는…?”

석촌호수 던전의 최종 보스이자, 김재우를 거의 죽일 뻔했던 몬스터 세이렌의 여왕 라라.

김재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라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막 게이트를 나온 한수호도 살짝 놀란 상태였다.

게이트 입구에 김재우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엔 불청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셋이나.

“장태산 학생이죠?”

게이트가 숨겨진 컨테이너 입구 쪽을 꽉 막듯이 서 있는 세 사람.

그중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생긋 웃음을 머금었다.

한수호로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

셋 중 둘은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탄탄한 체격의 사내였고, 방금 웃으며 말한 여인은 매력적인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여인이었다.

“반가워요, 장태산 학생. 저희 사장님께서 찾으셔서 급하게 왔는데, 결례가 안 되었으면 좋겠네요.”

여인은 한껏 예의를 차리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신체 수치를 단숨에 훑어본 한수호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사내 둘은 진급 끝자락에 여인은 궁급 초입 수준의 신체 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가슴] : 134

*[마나] : 1,022

여인의 마나력은 놀랍게도 무려 1천을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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