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한수호는 아슬아슬하게 수업 시작 전에 실습실에 들어섰다.
평소엔 적어도 10분 전에 들어와 차분히 대기하던 한수호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오자 학생들이 다들 의아해했다.
한수호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자리에 앉자 바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실습실 스탭실 문이 열리고 거기서 지평학 교수와 조교가 나타났다.
지평학은 권갑을 하나 들고 있었다.
“바로 수업을 시작하지. 오늘은 오전에 말했던 것처럼 마나압축법에 대해 알려주도록 하겠다. 우선 내가 하는 걸 잘 보도록.”
지평학은 평범해 보이는 금속 권갑을 오른손에 착용한 뒤,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타격력 확인을 위한 더미 인형 앞에 섰다.
더미 인형의 머리 상단엔 작은 계측기가 있었고, 인형을 치면 그 위력을 마나력으로 환산하여 계측기에 표시해 주는 원리였다.
한수호는 자세를 잡고 선 지평학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다른 궁급 마공사들은 이제 숨겨진 수치까지 죄다 보이는데, 어르신은 여전히 수치가 이상해….’
아침에 지평학 교수를 마주하자마자 그의 신체 수치를 확인했지만, 결과가 영 이상했다.
[머리] : 99(?)
[왼팔] : 99(?)
[오른팔] : 99(?)
[가슴] : 99(?)
*[마나] : 1,000(?)
[배] : 99(?)
[왼발] : 99(?)
[오른발] : 99(?)
모든 수치가 99로 나오는 건 이해한다 쳐도, 괄호 속에 물음표가 나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나마 예전처럼 엉뚱하게 평균 70 수준의 진급 마공사로 나타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몇 번을 확인해 봐도 같은 결과가 나오자 한수호는 지평학 교수의 능력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나보다 강한 남자’로 인식하기로 했다.
‘그런데 뭘 하시려는 거지?’
한수호는 지평학이 말한 마나압축법이 무언지 꽤나 궁금했다.
그냥 듣기로는 마나를 응축해서 불필요한 마나 소모를 줄이는 방법 정도로 생각되는데, 그 정도는 한수호도 이미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거라 크게 대단할 게 없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대가 된다.
한때 권존으로 불리던 김무성이라면, 한수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뭔가를 보여줄 것만 같았다.
지평학은 권갑을 착용한 오른손을 꽉 말아쥐었다.
“난 지금 이 오른 주먹에 정확히 100에 해당하는 마나력을 주입할 것이다. 믿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을 것을 감안해서 지금 주먹에 주입되는 마나력을 스캔해 보여주도록 하마. 조교.”
지평학이 말하자 조교가 마나력 측정기를 손에 들고 그의 옆에 섰다.
“시작한다.”
지평학은 꽉 움켜쥔 오른손을 어깨 뒤로 슬쩍 당겼다. 그때였다.
찌이잉
귓속으로 이명이 들리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지평학의 주먹 앞에 달걀만 한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처음엔 달걀만 했지만, 구체는 점점 작아졌고 이내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반대로 뿜어내는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측정하겠습니다.”
조교가 그런 지평학의 오른손을 측정기로 스캔했다.
위잉
측정이 끝나자 측정기 측면에 수치가 나타났다.
[100]
정확히 100이다.
마나력 100이면 딱 특급 마공사라고 불릴 수 있는 수치.
지평학이 진급 마공사인걸로 알고 있는 학생들로서는 그가 마나력을 단 1도 어긋나지 않게 정확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지평학은 그 상태에서 한발을 크게 내디디며 더미 인형의 가슴을 힘차게 가격했다.
콰앙
충격 흡수 장치가 되어있는 케이스와 더미 인형 전체가 크게 출렁거렸다. 그리고,
삐잉
케이스 상단부의 계측기에 숫자가 나타났다.
[217]
“어?”
“뭐야, 저거?”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몇몇 학생은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분명 100에 해당하는 마나를 사용했는데, 위력은 두 배가 넘는 217이 나왔다.
마나를 사용하는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마나력 100을 실어도 99가 나오거나 101이 나오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큰 차이가 나는 경우는 전무했다.
이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기현상이었다.
크게 놀라 웅성대는 학생들.
지평학은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지금 내가 펼친 것이 바로 마나압축법이다. 마나를 집중시켜서 쓸데없는 마나 소모가 없게 만드는 응축법과는 결이 다른 방식이지. 이걸 제대로 사용하려면 마나 회로에 대한 깊은 이해력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마나압축에 필요한 마나 회로도를 설명할 테니 잘 듣도록. 이걸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소화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이건 나로서도 입으로 설명하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직접 너희들을 깨우쳐줄 방법은 전무하다는 말이다.”
지평학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마나압축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눈을 부릅뜨고 지평학의 설명에 온 정신을 쏟았다.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고, 손으로는 빠른 속도로 설명을 받아적었다.
하지만, 단 한 명.
한수호만은 전혀 다른 상황에 빠져 지평학의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한수호의 머리 회전이 잠시 정지 상태에 빠졌다.
‘왜 마나 회로가 눈에 보이지?’
한수호는 방금 지평학이 시범을 보일 때, 그의 주먹에 맺힌 빛의 구체 위에서 마나 회로를 목격했다.
그저 자세히 보려고 시력을 돋우고 정신을 집중했을 뿐인데, 눈으로는 볼 수 없어야 할 마나 회로가 마법진처럼 둥실 떠오른 모습이 보였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한수호는 자신이 본 마나 회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나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원리로,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까지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잘하면 5배까지도 뻥튀길 수 있겠는데?’
아예 그 마나 회로를 조작해 더 효과가 좋도록 개조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 즉시, 마나 회로의 이곳저곳을 건드리며 원하는 형태로 개조를 마친 순간이었다.
삐링
>>개조된 ’마나압축법’의 마나 회로를 저장하려면 100,000LP가 필요합니다. 저장하겠습니까? YES/NO
황당한 메시지가 한수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까진 한수호 본인이 쥐고 있는 아티팩트나 물건, 또는 본인이 직접 볼 수 있는 특성 정보 같은 것에만 개조를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다른 사람이 시연하듯 보여준 기술의 마나 회로를 볼 수 있게 되었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나 회로를 개조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수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레 YES를 선택했다.
순간, 그의 눈앞에 수많은 마나 회로가 거미줄처럼 나타나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러다 방금 개조를 마친 마나압축법의 마나 회로만 남아 완벽한 형태를 갖췄다.
그 마나 회로는 두둥실 떠서는 한수호의 심장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개조된 마나압축법을 획득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마나압축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 씨.’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다.
개조가 4단계까지 업그레이드되니 이런 것도 가능해졌나 보다.
‘개조 특성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정말 개조 특성은 만능 중의 만능이었다.
단순히 미션을 수행해 포인트를 얻고, 그 포인트로 신체 능력치를 높이는 특성이 아니다.
애초에 한수호가 17년 전으로 회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개조 특성의 발현 덕분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따지는 게 조금 웃기는 일이긴 하지만, 대체 왜 개조 특성이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었으며, 그 특성이 어떻게 그런 기막힌 타이밍에 발현하게 된 걸까?
만약 한수호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개조를 이용해 광폭화를 이대성에게 써버리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회귀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마치 짜 맞춰지듯 자연스럽게 우연이 몇 번이고 겹치는 기분이 들었다.
한수호는 안다.
한 번, 또는 두 번까지는 우연이 이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우연이 세 번 연속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어.’
한수호는 그것이 무언지 너무도 궁금했지만,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은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수호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지평학은 설명을 마치고 학생들을 쭉 둘러보고 있었다.
‘장한설은 반쯤 이해한 듯하고, 지혁이과 양소혜는 30% 정도로군. 신소이 학생은 장한설과 비슷한 수준인가? 그런데….’
지평학은 학생들 표정만으로 그들의 이해도를 유추해 내고 있었는데, 그러다 세 명의 학생을 얼굴을 보고는 크게 당황했다.
‘이하윤의 저 표정은 설마…?’
이하윤은 흉터가 거의 사라져서 수업 시간만큼은 마스크를 벗고 있었기에 표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표정만 보면 마나압축법의 마나 회로에 대해 대부분 이해한 듯 보였다. 굳이 수치로 말하자면 90% 정도?
더 놀라운 건 백윤후다.
그의 표정도 이하윤과 거의 비슷했다.
지평학이 보기에 백윤후의 재능은 최지혁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이하윤과 맞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도 한 사람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해 보였다.
‘장태산….’
지평학, 아니 권존 김무성의 눈으로 본 한수호의 재능은 가히 발군이었다.
지금 한수호의 표정은 둘 중 하나였다.
단 하나도 이해를 하지 못해 백지상태이거나, 너무 완벽하게 이해해서 더 이상 관심이 없는 상태이거나.
한수호가 한참 전부터 자신의 설명에 관심을 꺼버렸다는 걸, 지평학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과연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궁금하군.’
지평학은 자신의 마나압축법을 최소한 30%라도 이해한 학생이 3명만 되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소 30%를 넘긴 학생이 무려 일곱이나 된다.
더군다나 그중 셋 은 90% 이상.
한수호가 100% 이해를 하고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내 설명은 이걸로 끝이다. 이제부턴 한 명씩 나와서 내가 알려준 마나압축법의 마나 회로대로 직접 시연을 해 보도록. 오늘이 21일이니까, 21번 학생?”
지평학의 부름에 한 남학생이 주춤거리며 일어났다.
A반에서 중간쯤 하는 학생이었는데, 어째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건 평가가 아니니까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다. 그냥 자신이 이해한 대로 주먹에 마나를 담아 더미 인형을 때리기만 하면 된다. 그게 전부다.”
“…. 네.”
학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앞으로 나갔고, 권갑을 받아 손에 착용했다.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학생은 곧 자세를 취했다.
우우웅
학생의 주먹에 환한 빛이 머금어졌고,
“스캔합니다.”
조교가 전과 똑같이 빛을 머금은 손을 스캔했다.
[98]
마나 수치를 100에 맞추려 노력했지만 조금 부족했다.
어차피 주먹에 담긴 마나력이 얼마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파캉!
학생의 주먹이 더미 인형을 때렸다.
삐잉
[105]
투입한 마나보다 고작 7이 높은 수치.
학생은 낭패한 표정이 되었다.
“괜찮다.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구나. 다음은 22번 학생.”
지평학은 계속해서 출석 번호를 불렀고, 학생들은 한 명씩 나와서 권갑을 차고 주먹을 날렸다.
지평학은 딱히 기본 마나력을 100으로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100에 맞추는 것으로 정해진 듯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나력 100을 딱 맞춘 학생은 얼마 없었다.
A반의 에이스로 불리는 학생들만 겨우겨우 100에 맞췄을 뿐.
그런데 그들도 더미 인형을 때리고 난 후의 수치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장한설은 162가 나왔고, 최지혁은 148, 양소혜는 144였다.
신소이는 의외로 선전해 178이 나와 학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금방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이하윤은 무려 198을 만들어 냈고, 뒤이어 백윤후가 201을 달성함으로써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수호가 더미 인형 앞에 섰다.
지평학은 한수호를 가장 마지막에 호명했다.
‘자, 네가 깨우친 바를 나에게 보여봐라!’
지평학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장한설과 이하윤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한수호가 어떤 놀라움을 선사해 줄지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수호는 무덤덤한 얼굴로 권갑을 손에 착용했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전해지며 조금 헐거웠던 권갑이 자동으로 수축해 손에 딱 맞게 변했다.
권갑도 마나력이 깃든 아티팩트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착용감을 테스트하던 한수호는 더미 인형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손을 슥 들어 올렸다.
웅
미세한 진동.
한수호의 주먹 앞에 흐릿하고 작은 빛이 머금어졌다.
지금까지 다른 에이스 학생들이 보인 화려함과는 너무 동떨어진 별 볼일 없는 모습에 모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스캔합니다.”
조교가 마나력 스캐너로 한수호의 주먹을 스캔했다.
[30]
스캐너에 찍힌 숫자를 본 학생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는 지평학도 마찬가지.
더러는 한수호가 마나압축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아예 포기한 건가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100에 맞추기로 합의를 본 줄 알았는데, 한수호 혼자 30으로 확 낮춰버리다니.
130으로 높였다면 오히려 기대감이 커졌겠지만, 30으로 낮췄다는 건 스스로 자신이 없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꼴.
모두의 기대감이 확 줄어들었을 때, 한수호가 풋워크 하듯 앞으로 가볍게 나아가며 주먹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