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니가 무슨 오또봇이냐?”
한수호가 기가 막힌 듯 한마디 하자 SUV차량이 된 고니가 앞 유리 와이퍼를 까딱거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아무튼, 이런 변신도 가능하다는 건 잘 알았으니까 친구들 보기 전에 얼른 소형화시켜.”
까딱. 까딱.
고니는 와이퍼만 움직일 뿐, 모습을 되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 설마 중형화 사용해서 2시간 쿨타임 걸린 거냐?”
까딱. 까딱.
“맞다는 거야, 뭐야?”
까딱. 까딱.
“아, 답답해. 저번에 보여준 것처럼 유리창에 표시를 해봐.”
한수호가 답답해하며 꺼낸 말에 앞면 유리창에 글자가 떠올랐다.
[네]
“오, 글자 띄우는 게 되네?”
[네. 고니는 공부했어요. 한글을.]
“어우, 잘했네. 똑똑하고. 아무튼, 이제 대답해봐. 너 쿨타임 걸린 거야?”
처음으로 고니와 대화다운 대화가 이루어지자 한수호도 꽤나 기뻐했다. 말투에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쿨타임 없어요. 지금은.]
“왜? 너 중형화했다가 다시 소형화하거나 대형화하려면 쿨타임 2시간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요. 두 시간.]
고니는 월과 다르게 존대를 한다.
이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럼 쿨타임 없다는 소린 뭐야?”
[쿨타임 없어요. 전투 모드 변경이 아니면.]
고니의 말은 어순이 좀 이상할 뿐, 대화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럼 지금 차로 변한 건 전투 모드 변경이 아니야?”
[네. 이건 복제.]
“복제?”
[Replicate an Appearance]
“아…. 외형만 복제한 거라 전투 모드는 아니라 이거구나?”
[네]
“그럼 얼른 작은 고니로 돌아와라.”
[이 모습 싫은가요?]
“아니, 좋아. 그런데 곧 있으면 친구들 올 거야. 여기에 똑같은 차량이 두 대나 있으면 이상하게 여길 거라 그래.”
[아, 그래요? 그럼 복귀할게요.]
고니는 곧바로 변형을 시작했다.
정말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듯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자동차에서 작은 사막여우로 변신하는 모습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캬르릉
고니는 한수호 다리 옆에 붙어서 머리를 비벼댔다.
“잘했어, 고니. 지금 상태에서도 대화가 되면 참 좋겠다만. 아쉽네.”
한수호가 입맛을 다시는 그때였다.
고니의 눈에서 녹색 빛이 흘러나오더니 머리 위로 홀로그램 창을 띄웠다.
[대화 돼요. 지금도.]
“되네? 그럼 왜 아까까진 아무 말도 안 했어?”
[보고 싶었어요. 놀라는 모습을.]
“하…. 그래. 그랬구나. 어쨌든 대화가 되니 훨씬 낫다. 대신 다른 사람 있을 땐, 홀로그램 띄우면 안 된다?”
[네.]
한수호는 고니의 진화가 굉장히 반가웠다.
월을 만든 사기환도 대단하지만, 고니를 만들어 낸 아캄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대신관 아캄이 폰 노이만 박사라는 건 더 놀랍고.’
폰 노이만 같은 엄청난 인물을 놓친 미국은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으리라.
‘그 덕에 내가 얻은 게 많아서 좋긴 하다만.’
한수호는 혼자 피식 웃고는 차를 다시 잠갔다.
이제 곧 친구들과 김재우가 도착할 시간이라 시승식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수호가 집에 다시 들어가려고 발길을 돌리자마자 차량 한 대가 공터로 들어섰다.
차는 중형 세단이었고, 검은색이어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늦은 건 아니지?”
세단 운전석에서 한쪽 팔을 창문에 걸치고 있는 폼, 없는 폼 다 재고 있는 녀석은 백윤후였다.
얼굴엔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다.
“그냥 걸어 오지, 차는 왜 가지고 왔냐?”
“7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데 차 한 대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말이지. 근데, 저 차는 뭐냐? 어떤 몰상식한 자식이 내 친구 집 앞에 무단으로 차를 주차해 놓은 거야?”
백윤후가 올보 SUV차량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거, 내 차.”
“뭐? 그럼 몰상식한 자식이 너라는 거야?”
“아, 뭐래? 내 집 앞에 내가 주차했는데 뭐가 몰상식해?”
“…그러네. 흐흠.”
“일단 주차부터 해. 애들 도착할 때 다됐다.”
백윤후는 SUV 옆에 자신의 세단을 조심스레 주차했다.
그의 세단도 꽤 비싼 편에 속하지만 올보의 SUV차량엔 비할 바가 안 된다.
혹시라도 긁히는 일 없게 차 간 공간을 크게 띄운 채였다.
“야, 장태산. 너 어제 무슨 일 있었냐?”
집 안에 들어선 백윤후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하는 말에 한수호가 뭔 소리냐는 얼굴로 바라봤다.
“내 마나가 갑자기 이유도 없이 100이상 올라서 그래. 생명 코어에 뭔가 변화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오를 수가 없잖아.”
백윤후로서는 376이었던 마나력이 하룻밤 사이에 489까지 상승했으니 놀랄 만했다.
“아, 그거? 기연이 좀 있었지. 내 덕분에 네 녀석 마나까지 늘었으니 절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기연? 넌 뭔 놈의 기연을 밥 먹듯이 얻냐? 이러면 기연 하나 못 얻는 사람들은 얼마나 상대적으로 상실감이 들겠냐…는 개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백윤후가 이상한 말을 하더니 한수호를 향해 넙죽 절을 했다.
한수호는 장난인 듯 아닌 듯 약간의 진심을 담아 절을 하는 백윤후를 잠시 바라봤다.
[가슴] : 91(+62)
*[마나] : 714(+489)
‘이젠 순수 스탯만으로도 진급을 훌쩍 뛰어넘는구나?’
서로 공유하고 있는 생명 코어의 스탯을 빼더라도 백윤후의 스탯은 진급 이상이다.
친구 중에서는 이하윤 다음으로 마력이 높다.
생명 코어의 스탯을 더하면 압도적으로 높았고.
‘현재로서는 고니 다음으로 막강한 전력이네.’
월이나 고니처럼 절대 자신을 배신할 수 없는, 가장 믿을 만한 아군.
한수호는 백윤후가 빠르게 성장하는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기뻤다.
“장태산! 우리 왔다!”
밖에서 들리는 양소혜의 우렁찬 음성.
한수호는 백윤후를 얼른 일으켜 세웠다.
“애들 왔다.”
“신소이도 왔겠지?”
백윤후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해진다.
“너 솔직히 말해봐. 신소이가 이성적으로 마음에 든 거야,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거야?”
“어…. 둘 다.”
“둘 다? 그럼 다른 목적이 있긴 있다는 소리네?”
“신소이 몸에서는 너무 좋은 향기가 나거든. 내가 말 안 했나? 나 같은 도플갱어는 혈향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신소이는 절대 평범한 혈통이 아니야. 분명 나와 동류인 게 분명해.”
“…. 뭐?”
한수호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백윤후와 동류.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평범한 게 아니었으니까.
벌컥
누군가가 하우스 현관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뭐야? 시커먼 남자 둘이 거기 서서 뭐 하냐?”
양소혜의 거구가 현관을 꽉 채웠다.
“간다, 가. 목이 말라서 잠깐 들어온 거뿐이야.”
한수호는 재빨리 말을 돌리며 백윤후의 등을 밀어 내보냈다.
‘신소이.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백윤후가 한 말이 거짓이거나, 농담일 리는 절대 없다.
녀석이 신소이를 동류로 생각할 정도면, 신소이의 혈통에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기회가 되면 신소이에 대한 걸 좀 더 파악해 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선 한수호.
앞마당엔 장한설과 이하윤, 거기에 신소이까지 도착해 있었다.
‘최지혁은?’
그런데 최지혁이 안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오늘 일정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약속 시간이 되었음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때, 모두의 폰에서 거의 동시에 칙톡 도착음이 흘러나왔다.
“최지혁인데?”
“어? 뭐야. 갑자기 왜 못와?”
양소혜와 장한설이 바로 칙톡 내용을 확인하고 의아해 했다.
한수호도 공법폰을 들여다봤다.
최지혁>>다들 미안. 오늘 중요한 일이 생겨서 못 간다. ㅠㅠ
한수호는 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권존께서 특별 훈련을 시키려는 모양이구나.’
며칠 전, 권존 김무성은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최지혁이 혼마귀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특훈을 시킬 거라고.
최지훈 딴에는 얼마든지 짬을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주말에도 할 거 다 하며 지낸다면 그걸 어찌 특훈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 명 정도는 빠져도 상관없으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한수호는 다른 녀석들이 괜히 최지혁에게 연락해서 이유를 꼬치꼬치 캐묻지 못하게 미리 단속에 나섰다.
“그런가? 하긴. 장태산, 저 녀석도 우리랑 약속을 깬 게 한 두 번이라야 말이지.”
“최지혁은 처음이니까 봐주자고.”
양소혜와 장한설은 쿨하게 최지혁의 불참을 받아들였다.
한수호는 슬쩍 이하윤을 바라봤다.
어젯밤, 한수호의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언니인 이하이를 만났던 일 때문인지 표정이 편해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컨테이너 하우스 쪽을 힐끔거리는 게 굉장히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저기, 오빠.”
“어, 왜?”
“나 목이 좀 마른데….”
“음료수 꺼내줄게.”
한수호가 다시 하우스로 들어가려는데,
“아니야. 내가 직접 꺼내 먹을게.”
이하윤이 곧장 현관을 지나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는 척하면서 몰래 집 안을 빠르게 스캔했다.
특히 침실 쪽을 유심히 살폈고, 싱크대와 쓰레기통까지 힐끔거렸다.
‘어제 그 꼬마 여자애는 그냥 돌아간 거겠지? 설마, 여기서 그 애를 재웠으려고.’
이하윤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15살밖에 안 된 소녀 서은채.
아이돌 뺨치는 외모에, 남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 하는 당돌함까지 지닌 어린 여학생이 이상하게 신경 쓰인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게 너무 적극적이잖아?’
여자로서의 직감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서은채가 한수호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건 언니인 이하이에게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치잇. 도대체 주변에 왜 이리 여자가 많은 거야?’
한수호가 괜히 밉다.
안 그래도 장한설과 양소혜, 신소이도 신경 쓰여 죽겠는데 이젠 친언니와 중학교 2학년짜리 애까지 신경써야 할 판이다.
“하윤아. 우리 것도 좀 챙겨와.”
등 뒤에서 장한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하윤은 한수호가 미리 챙겨 놓은 음료수 다섯 개를 한꺼번에 꺼내 들었다. 그러다 흠칫 놀랐다.
‘어제, 집 키를 괜히 돌려줬나?’
음료수를 몽땅 빼 버리니 냉장고가 휑한 느낌이다.
마음 같아선 이 비어있는 냉장고를 수시로 가득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집 열쇠를 돌려준 상태라 몰래 이 집을 방문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휴….”
이하윤은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나섰다.
언니들에게 음료수를 돌린 이하윤.
한수호를 돌아보니 앞 도로에 멈춰선 차량에 바짝 붙어서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이다.
“저 아저씨래. 장태산이 주말을 매번 꿰차버려서 우리와의 약속을 파토 냈던 특무부 요원.”
장한설이 시원하게 음료를 들이켜며 한 말에 이하윤도 지프 차 운전자를 살폈다.
20대 후반의, 나름 봐줄 만한 외모를 지닌 훈남이었다.
물론 한수호 옆에서면 그 훈남도 오징어가 되어버리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인상의 소유자였다.
“저 분…. 대한식도락 사건 때 봤던 그분이네?”
“응, 맞아. 난 역사관 폭발 사건 때 처음 만났는데, 장태산하고는 이미 알고 지내는 눈치더라고. 근데, 참 신기하다. 1학년 수석하고 차석이 여기 있는데, 너희보단 장태산이한테 더 관심을 보이다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양소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특무부 요원인 김재우가 관심을 보여야 할 대상은 장태산이 아니라 장한설이나 이하윤이어야 했으니까.
“태산 오빠가 지닌 잠재력을 알아본 거겠지. 아무래도 특무부 요원이시니까.”
“하긴. 누구라도 장태산이를 몇 번 만나보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거야. 잘생겼지, 잘 싸우지,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하잖아.”
양소혜의 말에 조용히 있던 신소이도 슬쩍 한마디 끼어들었다.
“양소혜…. 너라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 않나?”
“잉? 뭔 소리? 난 연하는 별로라서. 아무리 친구로 지낸다고 하지만, 난 스무 살 이랍니다. 쏘이 동생~.”
“하, 한 살 차이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
“놉. 단 한 달이라도 나보다 늦게 태어난 남자는 관심 없어. 딱 친구까지만.”
양소혜가 검지손가락을 흔들며 하는 말에 장한설 얼굴에 장난기가 돋았다.
“그럼…. 최지혁은? 나이도 스물에, 생일도 너보다 빠르지 아마?”
“푸하핫! 최지혁? 나도 보는 눈이 있다고. 그 비실한 체구로 이 양소혜 님과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냐? 어림도 없지.”
양소혜는 우람한 팔뚝을 불뚝거리며 근육을 자랑했다.
그 모습에 장한설과 이하윤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잠시 후,
김재우와 이야기를 마친 한수호가 친구들을 불렀다.
“공항까지 대충 1시간 정도 걸릴 거 같으니까 편하게 차 두 대로 가자. 신소이랑 양소혜가 백윤후 차 타고, 나머진 여기 재우 형 차에 타는 걸로.”
한수호가 차량을 배정하자 양소혜가 고개를 홱 돌려 백윤후를 노려봤다.
“너. 운전은 할 줄 아냐?”
양소혜가 뚜둑 목 근육을 풀며 하는 말에 백윤후가 움찔했다.
“운전 경력 5년이 넘는 사람한테 뭔 소리야?”
“5년? 그 사이에 차량 사고만 7차례 냈다고 들었는데?”
“그, 그땐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아, 그럼 이젠 철이 드셨다? 뭐, 한 번 정도는 믿어줄게. 근데 나 차멀미가 좀 있거든? 뒷좌석에서 편히 누워서 가고 싶은데, 소이 네가 조수석에 타줄 수 있어?”
“조수…석?”
“보다시피 내가 체격이 좀 있잖니. 불편하면 내가 조수석 타고. 의자 뒤로 쭉 빼서 누우면 되겠지 뭐.”
“알았어…. 내가 조수석 탈게.”
신소이는 이러나저러나 똑같다는 생각에, 그나마 시야 확보가 좋은 조수석에 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오케이. 그럼 안전운전 부탁한다, 백.윤.후. 흐흐흐.”
양소혜가 이름을 부르며 하는 말에 백윤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으아…. 오우거가 따로 없네.’
도플갱어 백윤후가 보기에 양소혜는 수컷보다 큰 체구를 자랑하는 암컷 오우거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