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능력 2배를 패시브로 가진 상태에서 다시 2배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거잖아?’
1분뿐이긴 해도 실제로 따지면 현재의 4배가 되는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이것도 마음에 든다.
4단계에서는 5배 상승이었다가, 지금은 4배 상승이 최대였기 때문에 결과만 봐서는 오히려 다운그레이드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살인 충동 급증이라는 패널티를 가진 채, 4배 능력을 30분간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아무 패널티 없이 2배 능력을 12시간 동안 패시브처럼 사용할 수 있는 건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1분 동안 4배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추가 효과가 없더라도 5단계의 효율이 훨씬 좋은 것이다.
‘쿨타임이 15시간으로 늘긴 했지만, 어차피 2배 패시브가 12시간이나 되니까 3시간마다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거잖아. 대박인데?’
즉, 하루 24시간 중에서 지금의 두 배 능력인 상태로 21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으니 정말 엄청난 효과였다.
‘바로 실험해 볼까? 아니지. 그전에 그동안 쌓인 포인트부터 배분해 놓자.’
이왕 광폭화 5단계를 사용할 거면, 능력치를 최대로 높인 상태로 시험해 보는 게 훨씬 나았다.
어차피 앞으로 이 광폭화 5단계는 자주 사용하게 될 테니, 몸을 광폭화 패시브에 적응시킬 필요가 있었다.
‘NP는 176이나 되니까….’
한수호는 이참에 두 번째 신체 항목을 높여보기로 했다.
두 번째 신체 항목은 총 여섯 개.
심장, 폐, 위, 시각, 청각, 후각 중, 시각만 스탯이 7이고 나머진 모두 6에 머물러 있었다.
‘일단, 심장하고 청각, 후각을 10으로 맞춰놓자.’
두 번째 신체 항목은 포인트 효율이 10%에 불과해서 스탯을 10만큼만 높이려고 해도 100NP가 소모된다.
그래서 NP를 함부로 낭비할 수가 없었다.
한수호는 심장, 시각, 청각의 스탯을 10에 맞추기 위해 총 110의 NP를 소모했다.
엄청난 포인트였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기분 좋게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 한수호의 선택은 틀린 게 아니었다.
세 가지 항목을 10까지 올리자 한수호의 신체에 굉장한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 항목들과 두 번째 항목들이 서로 연관이 있었던 건지, 심장이 10이 되자 가슴 스탯 10이 추가되었다.
또한 시각과 청각이 10이 되면서 머리 스탯은 무려 20이나 상승했다.
그 결과,
[머리] : 133
[가슴] : 205(+46)
*[마나] : 1,878(+362)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큰 이득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심장이 10이 되면서 전보다 활력이 크게 넘쳐 흘렀고, 청각은 더욱 민감해져 개미가 기어 다니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각은 2스탯 마다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 거라는 애초의 예상과 달리 큰 변화는 없었다.
6배율로 사물을 끌어당겨 살필 수 있는 건 그대로였고, 대신 끌어당겨 볼 때의 선명도가 훨씬 높아졌다.
‘남은 포인트는 66이네.’
이 66 NP를 어떡할까 잠시 고민하던 한수호는 머리와 가슴을 제외한 나머지 신체 항목에 공평하게 10씩 분배하기로 했다.
그렇게 총 50의 NP가 추가적으로 소비되었다.
대량의 포인트를 한꺼번에 사용해서인지 온몸을 상쾌하게 만드는 고양감이 또다시 찾아들었고, 모든 디버프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효과도 발생했다.
그 덕에 피로감을 싹 날려버린 한수호는 바로 광폭화 5단계를 사용했다.
후웅
기이한 울림과 함께 온몸에 엄청난 힘이 밀어닥쳤다.
예전처럼 정신이 혼미하다거나, 호흡이 가쁜 느낌은 전혀 없었다.
몸을 훑어봐도 광폭화를 사용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어 정말 광폭화 5단계를 사용한 게 맞나 의심이 들 정도.
한수호는 일단 자신의 신체 수치부터 확인해 봤다.
[머리] : 133(+133)
[왼팔] : 120(+120)
[오른팔] : 120(+120)
[가슴] : 205(+205)(+46)
*[마나] : 1,878(+1,878)(+362)
[배] : 120(+120)
[왼발] : 120(+120)
[오른발] : 120(+120)
[가슴] : 205(+46)
*[마나] : 1,878(+362)
‘두 배가 된 거는 맞는데?’
수치를 보니 광폭화 5단계가 적용된 건 확실했다.
하지만 몸에 별 느낌이 없다보니 여전히 의심스럽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수호는 수련장 한쪽 끝에 설치되어 있는 커다란 과녁 쪽으로 다가갔다.
그 과녁은 얼마 전 월이 직접 제작, 설치한 것으로 일종의 펀치 기계와 같았다.
엄청나게 단단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데다가 월이 초소형 아크로까지 부착해서 궁급 마공사가 전력을 다해 가격해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다.
게다가 과녁 옆엔 전광판이 붙어있어 과녁을 때린 힘이 얼마나 되는지를 숫자로 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좋아. 일단 가볍게 한번 쳐볼까?’
한수호는 찐빵처럼 생긴 직경 2미터 크기의 과녁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대략 이 할의 힘을 주먹에 담아 과녁을 향해 쭉 뻗어냈다.
주먹이 과녁의 정 중앙에 꽂히는 순간,
쩌어어엉-
마치 거대한 범종이 울리는 듯, 웅장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발하는 힘도 어찌나 강한지, 한수호는 주먹을 뻗어낸 자세 그대로 3미터나 쭉 밀려나고 말았다.
자세를 풀고 주먹을 보니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과녁 정중앙에서도 똑같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치는?’
한수호는 시선을 돌려 전광판을 바라봤다.
[210,000]
21만.
얼마 전, 한수호가 4할의 힘을 쏟아부어 과녁을 쳤을 때 나온 수치가 18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2할의 힘으로 21만이 나왔으니 실질적인 위력은 광폭화 사용 전보다 2배 이상이었다.
‘엄청난데?’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광폭화 5단계의 효과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쇄혼을 처음 사용했을 때와 비슷했다.
딴에는 살짝 친다고 쳤는데, 가벼운 주먹 한 방에 굴삭기를 날려버렸었다.
‘이 상태로 사람 잘못 만졌다가는 골로 보내버리겠다.’
내일이 일요일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이 엄청난 힘을 남에게 피해 없이 제대로 다룰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일 하루는 적응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광폭화 상태를 내 의지로 끌 수는 없으려나?’
혹시나 싶어 임의로 끄고, 켜는 게 가능한지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능을 찾을 수 없었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뭐.’
한수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과녁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그의 옆으로 고니가 슬쩍 다가왔다.
고니는 한수호의 발목에 머리를 비벼대다가 앞발을 모으고 얌전히 앉았다.
“벌써 다 먹었어?”
고개를 돌려보니 그 커다랗던 세 뿔 가고일의 머리통이 뼈도 안 남기고 싹 사라졌었다.
“와, 너 엄청난 대식가구나?”
한수호가 사막여우를 똑 닮은 고니를 내려다보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잘 먹었다는 의미인지, 혀로 자기 입을 스윽 핥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한수호는 고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쓰다듬는 손으로 기이한 것이 느껴졌다.
‘이건 또 뭐야?’
고니의 머리털을 살짝 헤쳐서 보니 놀랍게도 거기에 도톰하게 뿔 같은 게 솟아나 있었다.
이마 부분부터 정수리 쪽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돋아난 상태.
청, 홍, 백의 색을 띤 그것은 세 뿔 가고일의 뿔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설마, 뿔을 먹고 그 능력까지 흡수한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다.
한수호는 바로 개조를 이용해 고니의 신체 수치를 확인해 봤다.
‘머리가 56?’
세 뿔 가고일의 머리를 먹기 전까진 평균 수치가 30정도 였는데, 지금은 평균이 40으로 올랐고 머리는 무려 56까지 상승했다.
한수호는 고니를 품에 안고는 좀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해 봤다.
[고니(궁급)]
-코스트: 101
-세뿔 가고일의 뿔을 흡수한 몬스터 봇입니다.
-마나를 이용한 각종 빔 브레스를 사용합니다.
-생체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코어가 파괴되지 않으면 자가 수복이 가능합니다.
-소형화[1],[2], 중형화[1],[2], 대형화[1],[2]가 가능합니다.
-특별한 마나 코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수호의 예상이 정확했다.
세 뿔 가고일이 지니고 있던 능력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그런데 이상한 내용이 있었다.
‘소형화 1, 2?’
전에 없던 1, 2 표시.
지금 고니의 상태가 소형화였는데, 설마 다른 버전으로도 소형화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한수호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였다.
과녁에서 난 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인지, 월과 범이, 살이까지 모두 수련장으로 몰려왔다.
후다닥 달려온 월은 과녁 옆의 전광판에 새겨진 숫자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다 한수호를 바라봤다. 그러다 갑자기 눈에서 빛이 번쩍하는 효과를 보였다.
그 광경이 마치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는 것과 같았다.
[주인. 저번에도 그러더니 지금도 너무 이상하다.]
“뭐가?”
[주인의 현재 출력으로는 210,000이라는 파괴력은 나올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하다.]
월은 한수호의 가슴팍에 박힌 코어의 마나력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상황이었다.
“나만의 비법이야. 네 스스로 알아내 봐.”
[치사하다. 내가 꼭 진실을 밝혀내고 말겠다. 그런데….]
월은 마치 이를 가는 듯 뿌드득 소리를 내더니 돌연 고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얘는 뭔가? 평범한 몬스터 봇이 아니었나?]
아까는 고니가 인형처럼 움직이질 않아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지금은 한수호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는 걸 보자 뒤늦게 고니의 정체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아, 고니? 그러고 보니 아까 인사를 안 했구나. 서로 인사해. 앞으로 날 도와 많은 일을 수행할 도우미, 고니야.”
[도우미? 이 녀석 출력이 주인보다 높다.]
월의 눈에는 고니의 출력이 500 이상으로 보이고 있었다.
“출력 높으면 도우미 못 하냐? 아무튼, 싸우지 말고 서로 잘 지내.”
[얘도 나처럼 말을 하는가?]
월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눈으로 말하며 고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고블린 특유의 투박한 손길로 고니를 쓰다듬으려 했다. 순간, 고니가 한수호의 품을 박차며 뛰쳐나가더니,
촤르르륵. 철컥. 철커덕.
순식간에 외형을 바꿔버렸다.
그 귀엽고 복슬복슬한 사막여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작은 전투 머신이 나타났다.
동그란 머리에 일자로 쭉 그어진 붉은 눈을 지녔으며, 등에는 작은 포탑이, 좌우에는 팔 대신 네발 짜리 포신 두 개가 부착되어 있었다.
깜찍했던 발도 사라졌고, 거미의 것을 닮은 네 개의 발이 좌우로 배 아래 쪽에 달려있었다.
그 외에도 좀 더 짧은 두 개의 발이 더 있었는데, 머리 바로 아래에 붙어있어 꼭 손처럼 보였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모든 포신을 월에게 조준하고 있는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였지만, 덩치가 작아서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일자로 그어진 것 같은 붉은 눈에서 동그란 빛이 좌우로 계속 움직이는 모습은 앙증맞기까지 했다.
그걸 본 월이 뒤로 물러났고, 범이와 살이가 큰 덩치로 앞을 막아섰다.
이대로 뒀다간 봇끼리 전투라도 벌어질 판이라 한수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동작 그만! 월. 이 녀석은 적이 아니야. 범이, 살이 너희들도 뒤로 빠지고.”
한수호의 말에 범이와 살이가 금세 뒤로 물러섰다.
[시작은 저 쪼그만 녀석이 먼저 했다. 월은 정당방위다.]
“그래, 그래. 알았다고. 고니야. 월은 같은 편이니까 경계할 거 없다. 그러니까 무장 해제해.”
한수호가 소형 전투 봇으로 변한 고니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하자, 그제야 자세를 높이고 경계를 풀었다.
위이잉. 위이잉.
일자형으로 된 눈이 붉은색에서 녹색으로 변했다.
아마 전투에 돌입하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모양.
“착하네. 모습도 바꿔줄래?”
한수호가 머리 부분을 쓰다듬자 전투 봇 고니가 다시 순식간에 모습을 변형시켰다.
캬르릉
사막여우가 된 고니는 앞발로 입을 쓸며 작게 소리를 냈다.
한수호는 그런 고니를 다시 안아 들었다. 그리고 앞발을 잡아 월의 손에 쥐여줬다.
“자, 악수.”
[이 녀석, 방금 말했다.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뭐? 정말 그렇게 말했어?”
캬르르릉
고니가 또다시 소리를 냈고, 월의 얼굴에 웃음이 그려졌다.
[주인이 자기 말을 못 알아 먹어서 답답하다고 한다.]
“허어. 너희 둘은 의사소통이 되는 거냐? 뭐, 나쁘진 않네. 필요할 땐, 월 네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한수호는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 어쨌든 난 할 일 다 했으니 먼저 가 보마.”
[그 녀석 이름이 고니인가? 여기다 두고 갔으면 좋겠다.]
월의 표정을 봐선, 다른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고니를 여기에 두고 갔다가는 뭔가 사단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친해질 기회는 다음에 만들어 보자고. 어차피 내일 또 여기 올 거니까.”
[아쉽군.]
뭐가 아쉽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수호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는 전투 영역을 빠져나왔다.
한수호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우스의 샤워실로 향했다.
고니는 침실에 내버려 두고 샤워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봤다.
‘똑같네.’
광폭화 5단계를 실행 중인데도 외모적으로는 전혀 바뀐 게 없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온몸의 혈관이 전보다 두드러지게 튀어나왔다는 정도?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두 배의 힘을 유지 중인 한수호는 아직 힘 조절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무심코 샤워기를 쥐었다가 단숨에 박살 냈다.
극도로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 간신히 샤워를 마친 한수호는 침실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고니를 바라봤다.
“이 녀석은 괜찮나? 내가 안았을 때도 보통 힘이 아니었을 텐데….”
한수호가 작게 중얼거리자, 고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발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왼쪽 몸통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캬릉. 캬르릉.
이빨까지 드러내며 소리를 내는 모습이 꼭 아파 죽겠다고 화내는 것 같았다.
“어? 하하하. 미안. 앞으론 조심하마. 그러니까 이번만 이해해줘.”
한수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콰직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자마저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