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딱 보니 이거 보물이다.”
김재우는 다섯 개의 보석을 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당연히 보물이겠죠. 문제는 이제 막 유적지 건물 안에 들어왔는데, 곧장 이런 보물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는 게 꼭 함정 같다는 거고요.”
“그렇지? 이상하긴 이상해. 그래도 분위기는 꼭 최종 보스 쓰러뜨리고 보물의 방에 들어와 보상 챙기는 느낌인데?”
그 말에는 한수호도 동의했다.
거대한 고대 유적지의 정중앙에 가장 높게 세워진 건물 꼭대기.
사실 한수호가 쇠고랑을 개조해 억지로 모래 폭풍을 뚫고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설마 정말 최종 보스를 휙 건너뛰고 보물의 방부터 먼저 발견한 건 아니겠지?’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상황이었기에 한수호는 피식거렸다.
“혼자 그만 웃고, 저 보물들 어떡할지나 말해봐라.”
“뭘 어떡해요? 이렇게 나 가져가쇼 하고 반짝거리고 있는데, 안 챙기면 그게 바보 아닙니까?”
“그랬다가 뭐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럼 몸으로 때우면 되죠, 뭐.”
한수호가 히죽 웃으며 말하자 김재우는 당장 전투라도 치를 것처럼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사실, 한수호는 이미 개조 특성을 이용해 보석들의 정체를 쭉 확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딱히 드러나는 정보가 없었다.
마나력이 있어서 정보가 읽힌다는 점 외에는 특별할 게 없었던 것.
[백색 보석]
-보석을 쥐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황금 보석]
-보석을 쥐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청색 보석]
-보석을 쥐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흑색 보석]
-보석을 쥐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적색 보석]
-보석을 쥐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이게 알아낸 전부였다.
‘결국, 보석들을 직접 쥐어볼 수밖에 없다는 건데….’
한수호는 좀 더 샹들리에 쪽으로 다가섰다.
“무슨 일 생길지도 모르니까 준비 단단히 해요.”
“난 진작에 준비 끝냈다.”
“그럼 합니다.”
한수호는 우선 백색 보석부터 손에 쥐어봤다.
허상은 아닌지 손에 쥐어진 보석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샹들리에에서 떼어내 가까이 가져오려는 순간,
파아아아아앗
보석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더니 다른 형태의 물건으로 바뀌어 버렸다.
한수호의 손에 쥐어진 건, 상아색 빛을 내는 반지였다.
아무런 문양도 없는, 그저 동그란 형태의 반지를 꽉 거머쥐자 반지의 정보가 눈앞으로 떠올랐다.
[투명 반지]
-코스트: 46
-대신관 아캄이 제작한 특수 아티팩트입니다.
-반지를 착용한 상태에서 마력을 주입하면 투명화되어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투명화 사용 시, 초당 1의 마력이 소모됩니다.
예상대로 보석은 굉장한 보물이었다.
이런 엄청난 보물이 이런 곳에, 왜, 무슨 이유로 방치되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반지를 취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로 봐서는 함정이 아닌 것 같았다.
한수호는 반지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는 곧바로 황금빛 보석을 거머쥐었다.
파아아아앗
이번에는 찬란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고, 꽤나 큰 상자가 튀어나와 한수호의 손을 짓눌렀다.
“윽!”
한수호는 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손에 올려진 커다란 나무 상자의 무게를 버텨냈다.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1미터가 훨씬 넘는 나무 상자.
그걸 바닥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서 황금빛이 파도처럼 밀어닥친다.
“금괴?”
안에는 금괴가 가득 들어 있었다.
대충 봐도 금괴가 1천 개는 될 거 같다.
금괴 하나를 1킬로그램으로 본다면, 1톤에 달하는 양.
“우와, 씨!”
김재우도 엄청난 양의 금괴에 눈이 돌아갔다.
당장 이 금괴만 들고 귀환해도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었다.
“재우 형, 결혼 자금 마련해서 좋겠네요?”
“어? 어…. 하하하. 이거 참. 난 돈에 큰 욕심 없다. 하지만, 네가 정 나눠준다고 하면 금괴 100개 정도만 받을까? 아하핫!”
한수호는 김재우의 이런 면이 좋았다.
억지로 착한 척하며 속마음을 꽁꽁 숨기는 사람들보다, 이렇게 적당히 욕심을 부릴 줄도 아는 모습이 훨씬 더 인간답고, 믿음직스러웠다.
“정산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제가 챙깁니다.”
한수호는 바로 금괴 상자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금괴 상자가 차지하는 코스트는 불과 10.
금괴 천 개가 들어있어서 코스트도 일천이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한수호는 세 번째로 청색 보석을 손에 쥐었다.
이번에도 보석색과 똑같은 푸른빛이 뿜어졌는데, 보석이 사라지고 나타난 물건은 한수호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지금 한수호의 쥐어져 있는 건 저격용 소총이었다.
소총에는 16배율 스코프를 비롯해서 풍향, 풍속, 중력, 자전 계산기까지 모두 장착되어 있었다.
한수호가 크게 경악한 이유는, 이 저격총을 본 적이 있어서였다.
라뮬, 그랑, 로크를 얻었던 게이트. 그곳에 있는 대신전의 기둥에서 보았던 여자 석상이 들고 있던 저격총.
뉴에르다의 영웅으로 생각되는 석상이 왜 현대의 저격총을 들고 있는지 몰라 꽤 자세히 살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저격용 소총의 형태가 지금 이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한수호는 저격총을 쥐고 정보를 확인했다.
[새벽의 저격총, 델링그]
-코스트: 91
-루나의 총으로 세상을 정화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마나력을 이용해 탄환을 발사합니다.
-태초의 거인, 타이탄의 힘으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눈위 휘둥그레지는 내용이었다.
‘루나의 총?
특히 루나라는 이름이 나오자 한수호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스루나 대륙의 두 영웅, 아스와 루나.
그중 아스의 무기인 라그나로크는 나샬만 빼고 모두 한수호가 획득했다.
그런데 이젠 루나의 무기인 델링그까지 한수호의 손에 들어온 상황.
‘태초의 거인은 뭐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태초의 거인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암즈!’
오래전 처음으로 아공간 주머니를 얻었을 때, 그 안에서 함께 발견한 로봇팔처럼 생긴 아티팩트, 암즈.
암즈에 대한 정보에는 ‘태초의 거인이 사용했던 팔이자 무기입니다.’라는 내용이 분명 담겨 있었다.
‘태초의 거인을 타이탄이라고 불렀던 모양이구나.’
현재로서는 그 이상의 정보는 알아내기 어려웠다.
한수호는 저격총, 델링그를 어깨에 걸쳤다.
코스트가 너무 높아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
‘다음은…. 검정 보석인가?’
옆에서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는 김재우에게 씨익 웃어 보인 한수호는 네 번째 보석을 거머쥐었다.
역시나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금괴 상자가 그랬던 것처럼 손 위로 묵직한 상자가 올려졌다.
한수호는 휘청했다가 중심을 잡고 상자를 바닥에 내려놨다.
‘여기엔 또 뭐가 들어 있으려나?’
궁금증을 가지고 뚜껑을 열자, 스티로폼 같은 재질의 틀에 풀 플레이트 아머가 보기 좋게 놓여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온통 검은색으로만 된, 재질을 알 수 없는 전신갑옷.
그중 몸통 갑주에 손을 대어 정보를 살피자, 기가 막힌 내용이 떠올랐다.
[혼마흑갑]
-코스트: 68
-7대 마화기를 상대하기 위해 아캄이 제작한 혼돈의 무구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 아공간에 머물 수 있으며, 강력한 마나가 깃든 토(土) 속성의 갑주입니다.
-호명으로 갑주를 착용할 수 있으며, 갑주를 착용한 자의 방어력을 높여주고, 모든 디버프에 대한 면역력을 크게 증가시킵니다.
-착용 시, 초당 10의 마나력을 소모합니다.
혼돈의 무구.
이하이가 소유한 혼마청검에 이어 두 번째로 보게 된 무구였다.
혼마흑갑은 스스로 아공간에 머물 수 있으며, 호명으로 쉽게 착용도 가능했기에 효용성이 엄청나게 컸다.
‘재우 형한테 주면 딱이겠는데?’
모든 면에 있어서 김재우가 사용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문제는 이 갑주를 착용하면 초당 10의 마나력을 소모한다는 것.
지금 김재우의 마나력으로는 1분도 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일단은 내가 킵하자. 나중에 재우 형 마나력이 오르면 그때 주는 거로 하고.’
한수호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갑주에 바로 마나력을 불어넣었다.
후우웅
순간, 총 일곱 개의 파츠로 나누어진 갑주가 상자 위로 떠올라 한수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혼마흑갑의 이름을 지정해 주세요.
한수호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앞으로 이 혼마흑갑을 착용할 때마다 불러야 할 이름이었기에 한수호는 나름 심사숙고했다. 그렇게해서 나온 이름은 이것이었다.
“블랙나이트.”
스스로 생각해도 꽤 괜찮은 작명 센스였다. 그런데,
>>이름이 길면, 소환이 다소 지연될 수 있습니다. 굳이 이 이름으로 하시겠습니까? (YES/NO)
메시지가 발목을 잡았다.
저런 말을 듣고 누가 이름을 길게 지을까?
한수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바로 이름을 짧게 변경시켰다.
“흑기사.”
의미는 똑같지만, 한글로 바꿔놓고 보니 대놓고 호명하기에는 괜히 쑥스러운 느낌이다.
>>혼마흑갑의 이름이 ‘흑기사’로 지정되었습니다. 소환이 있을 때까지 흑기사는 아공간에 머물게 됩니다.
보기 드물게 친절한 메시지에 한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우우욱
흑기사의 일곱 파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걸 곁에서 지켜보던 김재우는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한마디 했다.
“뭔 히어로 영화 찍냐? 방금 그거 영화 ‘강철남’에 나온 그거랑 너무 비슷한데?”
“나중에 형한테 줄 수도 있으니까, 마나력 빨리 높여요.”
“나한테? 어우, 난 됐다. 저런 거 그냥 줘도 창피해서 걸치지도 못해. 나 줄 생각 말고 그냥 네가 가져라.”
김재우는 손사래까지 치며 거부했다.
“아무튼, 이제 마지막이네요.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으니까, 마지막에도 별일은 없을 거 같네요.”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보석을 손에 쥐었다.
파아아아앗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한수호의 손에 붉은색의 돌멩이가 쥐어졌다.
그건 놀랍게도 특성석이었다.
[특성석]
-보유 포인트: 50,000LP
-고대 유적지의 수호자, 드레고니안의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규격외 특성, ‘약탈[2]’이 새겨져 있습니다.
>>특성을 흡수하고 포인트를 획득하겠습니까? YES/NO
한수호의 눈을 퉁방울처럼 튀어나오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역시 약탈 특성은 하나가 아니었어!’
약탈[1]에 이은 약탈[2].
드디어 두 번째 약탈 특성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한수호는 아무 고민 없이 YES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뚝
샹들리에가 갑자기 천장에서 분리되더니 건물의 밑바닥으로 곧장 곤두박질쳤다.
잠시 후, 건물 아래쪽의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건 샹들리에가 박살이 나는 소리였다.
“뭐, 잘못된 거 아니야?”
“글쎄요. 좀 이상하긴 한데….”
한수호는 특성을 획득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고 건물 아래를 잠시 내려다봤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일단, 이거 받아요.”
한수호는 김재우에게 투명 반지를 넘겼다.
“이건….?”
“투명화가 가능한 아티팩트예요. 위험할 때, 사용하면 되고요. 아, 맞다. 이거 사용하면 초당 마력이 1씩 소모되니까, 주의하세요.”
다른 건 주지 못해도, 이 반지는 김재우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했기에 지금 주는 게 맞았다.
한수호에겐 전투 영역이라는 특수 능력이 있으니 투명화는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 필요한 일이 생기면 잠시 빌리지 뭐.’
한수호는 모든 걸 혼자만 가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적당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그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잘 쓰마. 물론, 이상한 일에 쓸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고.”
김재우의 제발 저린 말에 한수호는 큭큭 웃었다.
“재희 누나한테는 반지 능력에 대해 말하지 말아요. 알면 바로 뺏길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투명화 능력인데….”
괜히 혼자서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한수호는 피식 웃어주었다.
“자, 이제 내려가 보죠. 아마도 이 아래엔 누군가가 준비한 시련이 있는 모양이니까.”
한수호는 방금 특성석의 정보에서 읽어낸 내용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고대 유적지의 수호자, 드레고니안의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입니다.
이 말은 즉, 이곳에서 얻은 물건들이 드레고니안의 시련을 이겨낸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보상이라는 뜻이다.
한수호와 김재우는 그 시련을 통째로 건너뛰고는 보상부터 쓸어버린 상황이었다.
“시련? 그럼 안 가는 게 낫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그냥 죽치고 있을 거예요? 아니면, 가고일이 잔뜩 있는 건물 밖으로 다시 나갈까요?”
“그건…. 아니지.”
김재우도 자신이 참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아는지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차하면 투명 반지로 숨으면 되잖아요.”
“난 그렇다 치고, 너는?”
“아까 강철남 슈트 봤죠? 그거면 막 날아서 도망갈 수 있습니다. 손으로 광양자포도 막 쏘고.”
한수호의 말에 김재우가 큭큭 거렸다.
그도 한수호가 일부러 농담을 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뭐든 함께 헤쳐 나가보자. 너와 함께라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으니까.”
“네. 바로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겁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