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45화 (45/375)

45화

라뮬의 창검 형태는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였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해골이라도 2미터 크기에 굉장한 완력을 지닌 해골 오크 17마리의 합공을 막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한수호가 불꽃을 피워내는 라뮬의 창검을 휘두를 때마다 해골 오크가 두 마리씩 그대로 박살 나고 있었다.

창검의 앞을 가로막는 건 무엇이든 두 동강 났다.

그것이 해골 오크이든, 놈들이 휘두르는 무기이든 상관없이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한수호의 창검술은 처음엔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 해골 오크들과 격돌한 이후로는 오랜 세월 창검술을 익혀온 사람처럼 익숙해졌다.

몇 분도 되지 않아 17마리의 해골 오크를 산산이 부숴버린 한수호.

이제 그 앞에 남은 건 4미터의 거구로 묵직한 압박감을 흘리고 있는 오거 뿐이었다.

그런데 놈의 신체 능력을 훑어본 한수호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야? 신체 수치가 죄다 41이네?’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할 것 없이 모든 부위가 41로 딱 고정되어 있다.

이 정도면 해골 오크보다 조금 강한 수준.

마공사로 치면 평급 중반이었다.

최종 보스 흉내 내듯 등장한 놈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쉽게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수호는 바로 공격에 나섰다.

바닥을 찍으며 날아가자 오거가 커다란 양날 도끼를 야구 배트처럼 휘둘렀다.

휘우우우웅

도끼가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꽤 우렁차다.

하지만 지금의 한수호에게 이 정도 속도는 우스웠다.

얼음불 덕분에 이동속도가 30%나 상승한 상태였기에 눈으로도 좇기 힘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한수호는 가벼운 회피 동작으로 도끼를 피해내고 오거의 옆구리로 파고든 다음 창검을 위로 가볍게 휘둘렀다.

서걱.

오거의 두꺼운 팔 하나가 창검에 잘려 날아갔다.

쿠허어어엉

오거가 괴성을 지르며 남은 한 손으로 양날 도끼를 마구 찍어댔다.

콰앙. 쾅쾅쾅.

바닥이 푹푹 파이고 돌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해낸 한수호는 바닥을 박차며 붕 날아올랐다.

4미터가 넘는 오거의 머리가 있는 위치까지 날아오른 그는 반쯤 녹아내린 오거의 얼굴을 노려봤다.

“이걸로 끝.”

그가 몸을 팽이처럼 휘돌린 순간,

후우욱

라뮬의 창검이 불의 궤적을 그려내며 오거의 머리를 횡으로 갈라버렸다.

퍼엉

날아오른 오거의 반쪽 난 머리는 화염에 휩싸이더니 그대로 터져 버렸다. 그리고 놈의 거구도 그대로 고꾸라졌다.

쿠웅

땅이 들썩일 정도의 묵직한 울림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네크로맨서가 등장할 타임인가?’

한수호는 여전히 불타오르는 라뮬의 창검을 꽉 쥔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그런데 약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새롭게 등장하는 몬스터도 없고, 기대했던 네크로맨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특별한 건 발견할 수 없었다.

이 넓은 공간을 다시 벗어나야 하나 싶어 발길을 되돌리려던 한수호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목격됐다.

빛.

이미 죽어버린 오거의 사체가 녹아내리며 그 안에서 빛이 뿜어졌다.

빛의 정체는 오거의 심장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녹아내리는 심장을 뒤집어보니 그곳에 작은 크리스탈이 있었다.

찬란한 빛을 내는 크리스탈.

한수호는 조심스레 그걸 집어 들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개조 특성을 이용해 수정의 정보를 알아보려 했다.

그러자 정말 정보가 떴다.

[무한 루프의 수정]

-보유 포인트: 200LP

-쉘턴 헷지가 개발한 특별 매개체로 이것이 깨지면 반경 5미터 내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무한 루프 속에 가둔다.

-수정은 체온이 닿는 순간 자동으로 깨진다.

‘어? 잠깐…!’

정보의 마지막 문장을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한수호가 수정을 내던지려 했지만.

콰직.

수정은 이미 깨져버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한수호의 시야가 팍 암전해 버렸다.

* * *

‘시발, 뭐야?’

정신이 든 한수호는 다시 십자형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바닥에 커다란 원이 그려진 그곳에서 멀뚱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어본 한수호.

최지혁이나 양소혜는 보이지 않는다.

한수호 자신만 이곳으로 되돌려진 것 같았다.

‘무한 루프에 가둔다고?’

눈앞에 떠올랐던 메시지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완벽한 함정.

이곳의 주인인 네크로맨서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함정을 파놨다.

‘최지혁이나 양소혜도 똑같은 함정에 빠질 거 같은데?’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자신이 이 상태면 두 친구도 당연히 함정에 빠질 터.

한수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십자 길목에서 이미 왔던 길이나 직진, 혹은 우측길은 갈 수가 없었다.

무형의 벽에 가로막혀 있어 나아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마나력을 일으켜 후려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한수호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애초에 자신이 지나갔던 방향, 왼쪽 길뿐이었다.

‘무한 루프라더니…. 저 길을 다시 또 가야 한다는 거잖아?’

여기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반복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일단은 가야 했다.

‘포인트는 어떻게 된 거지?’

무한 루프의 수정이 깨졌으니 그 안에 담긴 포인트가 들어왔을 것 같았다.

한수호는 보유 포인트를 확인했다.

-보유 포인트: 6.2NP / 660LP

LP가 200이나 늘었다.

‘이건 좋네.’

무한 루프의 수정이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만 어쨌든 그 덕에 포인트는 계속 늘어나게 되리라.

‘일단 가보자.’

한수호는 라뮬의 창검을 다시 단검 형태로 되돌리고 왼쪽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라뮬의 창검을 다시 사용하려면 2시간이 지나야 했다.

얼음불 특성의 쿨타임이 2시간이라 이는 어쩔 수 없었다.

통로를 따라 이미 한 번 와본 길을 성큼성큼 나아가자 또다시 해골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처음 왔을 때보다 한 마리가 더 많아졌다.

그땐 이 지점에서 등장한 해골은 두 마리. 하지만 지금은 세 마리다.

게다가 해골들의 신체 수치도 달라졌다.

‘죄다 미세하게 수치가 올랐어.’

최지혁에게 리젠에 대해서 말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어 한수호에게 닥쳤다.

‘이거 해결 방법을 못 찾으면 큰일 나겠는데?’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이 문제다.

지금 자신은 무한 루프에 빠졌고, 이 통로를 몇 번이고 다시 지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놈들은 조금씩 강해질 것이다.

‘나중엔 이 해골 놈들 하나하나가 나만큼이나 강해지겠지.’

그때가 되면 끝장이었다.

그 전에 무한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 * *

“어우야….”

한수호는 눈앞에 마주한 거대한 오거를 보고 침음성을 흘렸다.

벌써 12번째 마주하는 오거.

하지만 마주할 때마다 이 오거의 모든 신체 수치는 3씩 증가했고, 이제는 쉽게 처리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어 버렸다.

모든 신체 수치 74.

처음엔 41이었던 수치가 지금은 74까지 올랐다.

한수호는 진작에 자신의 신체 수치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41까지 떨어뜨렸던 가슴부위를 다시 99로 올려 마나력을 최대치로 회복시켰고, 머리, 배, 두 다리에서 10포인트씩을 빼서 양팔에 배분해 83으로 맞췄다.

쌓아뒀다가 한 번에 사용하려고 했던 포인트 6.2도 남겨둘 이유가 없어서 죄다 배분해 버렸다.

이제 이 무한 루프가 네 번만 더 반복되면 저 오거는 적어도 두 팔에 한해서는 한수호의 신체 수치를 능가하게 된다.

‘그 전에 무한 루프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동안은 어떤 방법을 써도 무한 루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던전에 들어온 지도 벌써 반나절이 훨씬 지났다.

정확히는 17시간 동안 지겹도록 해골들과 전투를 해 온 것이다.

몸은 지쳤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점점 강해지는 해골들을 보며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도 느껴야 했다.

이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닐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해골들의 손에 처참히 찢겨 죽는 자신의 모습은 얼마나 비참할까?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공포심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물론 비관적인 상황만 있는 건 아니었다.

2시간에 한 번씩 얼음불 특성을 써서 라뮬의 창검과 그랑의 방패를 사용한 덕분에 창검술과 방패술이 엄청나게 강력해졌다.

‘그러면 뭐 하냐고. 여길 벗어날 방법이 없는데.’

라뮬과 그랑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고 바랐더니, 이제는 지겨워 그만두고 싶을 정도다. 이젠 정말이지 쉬고 싶었다.

‘일단 이놈부터 처리하자.’

한수호는 차분하게 다시 상황을 분석할 시간을 벌기 위해 오거를 서둘러 처리하기로 했다.

촤르릉

이번에 뽑아 든 건 얼음의 단검, 그랑.

마침 얼음불 특성의 2시간 쿨타임이 끝났다.

특성을 발휘하고 음의 기운을 끌어올리자,

촤르르릉

단검이 지름 60센티 크기의 둥그런 방패로 변화했다.

때를 같이해 오거가 양날 도끼를 휘둘렀다. 한수호는 이를 피하지 않고 방패를 들어 공격 부위를 막았다.

쩌엉-

고막을 터트릴 정도의 강력한 충격음이 터지더니 거구의 오거가 튕겨 나갔다.

놈의 팔은 그랑의 방패가 지닌 반탄력에 아예 뜯긴 상태.

한수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방패를 힘껏 내던졌다.

파앙.

공간을 격하는 소리가 터졌고 냉기를 풀풀 날리는 방패는 순식간에 오거의 머리를 깨부수며 날아갔다.

쿠웅.

머리를 잃은 오거가 고꾸라질 때, 멀리 날아갔던 방패는 크게 휘돌더니 다시 한수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거를 벌써 12번째 해치웠지만 얻는 건 없고 피곤함만 쌓였다.

한수호는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어차피 무한 루프의 수정을 건들지 않으면 이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이 무한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어떡하든 찾아야 했다.

‘어디에도 힌트가 없어.’

이 무한 루프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그냥 무한 루프에 빠뜨려 피를 말려 죽일 생각이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함정을 판 놈은 한수호가 지쳐서 모든 걸 포기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타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할 테고.

‘그 말은 곧 여길 빠져나갈 방법 또한 분명히 있다는 소리지.’

이런 변태스러운 함정을 만든 놈이라면 반드시 생로도 만들어 뒀을 거다.

생로가 있음에도 그걸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지는 상대를 보며 자신의 우월함에 만족감을 느끼는 그런 변태 같은 놈. 그런 놈이 이 던전의 주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연 생로는 어디에 있을까?’

이곳까지 오면서 지나온 통로엔 아무것도 없다.

12번이나 반복하며 돌조각 하나까지 훑어본 결과 통로는 물론, 이 커다란 공동에도 생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해골이나 오거에 답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남은 건 딱 하나.

바로 이 무한 루프의 시작점. 그곳뿐이었다.

‘거기서도 생로를 찾지 못하면 힘으로 부순다!’

한수호는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십자형 갈림길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다면 온 힘을 다해 이 공간 자체를 파괴할 각오였다.

파괴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한수호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좋아. 그럼 가보자.’

한수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오거의 심장에서 나온 반짝이는 수정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이 수정 덕분에 LP가 벌써 2,660이나 쌓였다.

‘쌓인 포인트 써먹기 위해서라도 꼭 탈출한다!’

한수호가 그렇게 마음먹을 때, 수정이 깨졌고 시야는 암전했다.

* * *

한수호는 다시 시작점에 와 있었다.

여전히 다른 통로로는 갈 수가 없는 상태.

‘분명 여기야. 뭔가 느낌이 달라.’

마나선들이 실타래처럼 뭉쳐 있는 동그란 마법진 위.

이곳에 올라서 있으면 몸을 간질이는 기이한 감각이 느껴진다.

하지만 포인트가 없는 장소라 정보가 읽히지 않았고, 마나력을 운용해 봐도 별다른 특이점이 나오지 않는다.

볼 수만 있을 뿐, 만질 수도, 변형시킬 수도 없는 마나선들만 잔뜩 뭉쳐진 채 꿈틀거리고 있다.

‘마나선…. 여기에 이런 마나선이 뭉쳐져 있을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자신의 가슴과 비슷한 높이의 허공에 붕 떠 있는 마나선들을 유심히 살피던 한수호.

불현듯 그의 뇌리로 뭔가가 스쳤다.

‘설마…?’

한수호는 마나선의 뭉치로 다가섰다.

한 발 한 발.

자신의 가슴팍에 마나선의 뭉치가 닿는 거리까지 왔을 때,

찌릿

심장으로 따끔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것 봐라?’

자세히 보니 마나선 뭉치에서 하얀색 실 같은 게 뻗어 나와 한수호의 심장을 향해 꿈틀대고 있었다.

마나선은 마치 심장이 필요하다는 듯, 한수호의 심장을 거머쥐길 원한다는 듯 격렬하게 꿈틀댔다.

한수호는 그 상태에서 마나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심장에서도 새하얀 마나선 하나가 뻗어 나왔고, 그 선이 다른 선과 얽혀들기 시작했다.

빠지지직.

갑자기 한수호의 온몸을 강력한 뇌전이 휘감았다.

너무도 강력한 힘에 정신이 날아갈 뻔했지만 한수호는 버텨냈다. 그리고 재빨리 벽력권을 일으켰다.

콰지직. 콰지지지직.

그의 손에서 시작된 뇌전이 온몸을 뒤덮고 있던 뇌전과 뒤섞였다.

서로 싸우듯 거칠게 부딪치며 수많은 스파크가 튀었다.

‘누구 앞에서 벼락의 힘으로 장난질이야!’

한수호는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최대의 마나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 때,

그의 몸 전체에서 빛무리가 터져 나오더니 거친 충격파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 떠올라 있던 마나선 뭉치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더불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나력을 흡수합니다.

>>마나의 수용 한계치를 넘겼습니다.

>>초과된 마나력이 포인트로 전환됩니다.

놀랄 만한 내용이 등장하더니,

>>노멀 포인트 40을 획득합니다.

무려 40NP를 얻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한수호의 몸이 그 자리에서 훅하고 사라졌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한수호는 자신이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왔음을 알고 급히 주변을 경계했다.

분위기는 전과 크게 다를 게 없었지만 분명 처음 와보는 장소였다.

신전처럼 생긴 커다란 장소.

사방에 기둥이 솟아 있고, 거대한 석상들이 포위하듯 주변에 세워져 있다.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로브를 걸친 마법사처럼 생긴 거대 석상의 어깨 위에서.

음침하고 사악한 기운을 풀풀 풍기는 존재.

그가 한수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한 루프를 벗어나는 놈이 있다니…. 꽤 흥미롭구나.”

쫙쫙 갈라지는 듯한 목소리에 한수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껴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