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시각.
한수호는 아카데미를 빠져나와 월미도에 도착해 있었다.
근처 모텔에 숙소를 잡은 그는 근처 공원으로 향해 일일 미션을 수행했다.
오늘의 미션은 10킬로미터 토끼뜀 뛰기.
백 미터도 하기 힘든 엄청난 미션이었지만 이미 인간을 초월한 신체를 구축한 한수호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공원엔 그다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가 등장하면서 저녁에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밤 9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한수호는 3시간에 걸쳐 토끼뜀으로 공원을 돌았고, 결국 0.2 포인트를 얻는 데 성공했다.
매번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포인트를 얻을 때면 한수호는 굉장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개조 특성 단계가 올라가면 획득 포인트도 더 오르겠지?’
현재 개조 특성의 단계는 2단계.
삼척 게이트의 지하 유적지에서 잠시 동안 3단계에 오른 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다시 2단계로 내려앉았다.
‘5만 LP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 걸까?’
개조 특성을 3단계로 올리기 위한 포인트는 무려 5만 LP.
하지만 한수호가 일일 미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NP뿐이었다.
일반적으로 특성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마나력을 상승시키면 된다. 더불어 그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방법 하나다.
그러나 마나력 상승이니 이해도 상승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마공사는 10년이 지나도 한 단계조차 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한수호에게는 세 번째 방법인 포인트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단계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LP를 얻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미션을 마친 한수호가 그런 고민을 하며 땀을 닦아내고 있을 때,
“아앗!”
인적이 드문 공원 안쪽에서 누군가의 짧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있어서인지 비명만 들렸지 사람 그림자는 볼 수가 없었다.
‘이 시간에 뭐야?’
이미 9시가 넘어 야심한 시각의 공원에선 강력 범죄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 웬만해선 일반인들이 돌아다니는 경우가 없다.
그냥 무시할까 고민하던 한수호는 생각을 바꿨다.
‘예정보다 게이트가 빨리 열린 걸지도 몰라.’
게이트가 열리는 날짜는 아직 3일이나 남았다.
하지만 회귀하게 되면서 과거의 사건들이 발생한 시간에 뒤틀림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확인은 해봐야 했다.
한수호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두 발에 마나력을 살짝 끌어모은 것만으로 그의 움직임은 무섭게 빨라졌다.
손목과 발목의 무거운 금속 고랑은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공원 산책로를 그대로 관통해 달려간 한수호.
작은 구릉 하나를 넘고 보니 멀지 않은 시민 주차장 쪽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여자 하나, 남자 넷?’
가깝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한수호의 눈은 정확히 사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주차장 바닥에 한 여학생이 쓰러져 있고, 그 주위를 덩치 좋은 남자들 넷이 둘러싸고 있다.
‘게이트가 열린 게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하필이면 위험에 처한 여학생을 보고야 말았다.
최대한 남들 이목을 끌 일은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몰래 도와만 주고 난 빠지자.’
딱 봐도 남자들은 일반인이요, 여자애 또한 평범한 학생이다.
이들을 상대로 한수호가 마공 능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최대한 모습을 숨기고 근처로 다가갔다.
이제 거리는 5미터.
주차장이라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한수호의 움직임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여학생은 15살 정도로 어렸다.
그녀를 둘러싼 녀석들은 20대 초중반이었는데, 음침한 표정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단순히 괴롭힘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여자애가 더 크게 놀라기 전에 상황을 수습…. 응?’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집어 던져 도우려던 한수호는 여학생의 눈을 본 순간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웃고 있어?’
눈이 웃고 있다.
표정은 무서움에 바들바들 떠는 것 같은데, 눈만은 제삼자의 것처럼 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이에 한수호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신체 수치부터 확인해봤다.
개조 특성을 이용해 살펴본 결과는 의외였다.
신체 부위 중 두 곳.
오른팔과 가슴의 스탯이 유독 높다.
다른 부위는 평범한 일반인이 가지는 수치보다 살짝 높은 5에서 7정도. 한데 오른팔은 7이나 되고 가슴은 19나 된다.
‘저 수치는 뭐야?’
저번에 사기환도 그러더니 각성도 안 한 상태로도 수련급에 이르는 일반인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는 딱 하나.
마공 가문의 후예로 어려서부터 단련을 받아온 경우다.
어쨌든 한수호가 여학생의 이상한 수치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상황이 급반전했다.
“네년이 감히 우리 세븐가이를 건드려? 어리다고 좋게 봐줬더니 그 은혜도 모르고 우릴 병신 취급해!”
세븐가이.
굉장히 중2병스러운 별명인데, 말을 하는 사내는 무척이나 진지했다.
“저번엔 팔 하나로 끝났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을 거다. 우리 중 셋이나 콩밥 먹게 만들었으니까 이번엔 평생 걸을 수 없게 만들어 주마.”
사내들의 말에 여학생이 움찔하더니 가만히 오른팔을 감싸 안았다. 그런데,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학생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 팔 하나로 모자라다 이거지? 그래서 이젠 다리까지 못 쓰게 하겠다? 그 나이들 처먹고 할 일이 오죽 없었으면 나 같은 어린애 협박해서 돈이나 뜯어내고 지랄일까? 아, 내 몸도 원한다고 했었던가?”
“웃어? 지금 네가 웃을 쳐지냐, 이 빌어먹을 년아!”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어. 당장 저년 다리부터 부러뜨리자고!”
사내들이 우르르 덤벼드는 그 순간이었다.
여학생이 오른팔로 바닥을 팍 찍어내며 붕 날아올랐고,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아 한 사내의 턱을 올려 찼다.
빠각
어찌나 강력한지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진 순간 놈의 눈은 벌써 하얗게 뒤집혔다.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 한방에 당황한 녀석 중 하나의 다리를 걸어 자빠뜨리고 발로 놈의 가랑이 사이를 콱 밟으며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던 녀석의 목에 무릎을 꽂아 넣었다.
뻐억
“케헥!”
숨이 콱 막히는 고통에 놈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사이 여학생은 핑그르르 회전했고 ‘어?’하며 넋을 놓고 있던 녀석의 얼굴에 돌려차기를 날려버렸다.
쾅
보는 사람도 타격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돌려차기였다.
5초도 안 걸린 것 같다.
그사이 네 사내가 모두 쓰러졌다.
그나마 사타구니 사이의 고통만 있을 뿐, 정신은 멀쩡했던 사내가 다급히 일어나며 달려들었다.
“죽어, 이 년아!”
손에는 나이프가 들려 있다.
보통 학생이라면 칼을 보는 순간 무서움에 움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여학생은 달랐다.
오히려 사내 쪽으로 달려들더니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덥석 잡아 쥐었다. 그런데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이, 이게 미쳤….!”
사내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우득
여학생이 사내의 팔을 그대로 꺾어버리고는 오른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찍어버렸으니까.
“컥!”
사내가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정신은 이미 가출했는지 그 자세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만 질질 흘렸다.
“내가 시발, 또 당할 거 같아!”
여학생은 나이프에 베인 손을 쥐락펴락하더니 목이 막혀 켁켁 대는 사내의 얼굴에 주먹을 한 번 더 쑤셔 박았다.
퍽
쿠당탕.
사내는 반항 한 번 못 하고 그대로 나자빠지며 정신을 잃었다.
“이제 나와, 거기.”
여학생은 한수호가 숨어 있는 곳을 쏘아봤다.
딱히 소리를 내지도 않았는데 한수호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봤다는 건, 그녀의 감각이 무섭게 발달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한수호는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악의가 없음을 내보였다.
“네 비명을 듣고 도우려고 여기 왔을 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다.”
“사내새끼들은 다 똑같아! 너도 마찬가지고!”
팍
여학생이 다짜고짜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한수호다.
방금 그녀가 상대한 사내들과는 차원이 다른 마공능력자.
아무리 여학생의 전투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일반인이었다.
한수호는 여학생의 방어를 무시한 무식한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가벼운 위빙만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내자 이젠 여학생이 당황해했다.
“너, 뭐야?”
“지나가는 사람이라니까.”
“개소리!”
이를 악물듯이 내지르는 소리에 한수호는 뭔가 한이 맺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여학생의 오른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상적인 관절로서는 보일 수 없는 각도로 꺾여지며 기이한 방향으로 공격이 파고든다.
‘아티팩트?’
그녀의 팔은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아티팩트.
미미하긴 하지만 마나력이 담긴 인공물이었다.
‘그래서 이 팔만 스탯이 그렇게 높았구나? 그럼 가슴도….?’
오히려 가슴 스탯이 팔보다 높았으니 거기에도 아티팩트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수호의 시선이 여학생의 가슴 쪽으로 향하자,
“어딜 봐, 이 색골아!”
눈으로 번갯불을 일으키며 더욱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여학생의 운동신경은 상당히 좋았다. 감각도 좋고, 응용력도 훌륭했다. 하지만,
‘혼자서 익혔어.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야.’
독학으로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건 정말 엄청난 재능충이라는 말이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여자애가 있었던가?’
재능으로 봤을 때, 이런 아이가 평범하게 살았을 리가 없다.
분명 훌륭한 마공사가 되었을 테고, 진무현이나 이대성에 버금가는 명성을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팔과 가슴이 아티팩트로 된 여자 마공사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제압부터 해야겠는데?’
여학생은 굉장히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팔과 가슴은 아티팩트지만 다른 신체 부위는 일반인 그대로였기에 체력이 버티질 못했다.
여학생이 한수호를 향해 점프하며 올려 차기를 날렸다.
다른 사람이 상대였다면 회심의 일격이었겠지만, 한수호에겐 어림도 없었다.
반보 옆으로 돌아 올려 차기를 피하고 팔로 발목을 걸어 그대로 밀면서 축이 되는 발을 툭 걷어찼더니,
“으앗!”
완전히 균형을 잃고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오른발은 올라간 상태 그대로 한수호의 팔에 눌려버려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저리 안 비켜! 정말 죽여 버린다!”
입이 꽤나 험악한 학생이다.
“어린 녀석이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너도 별로 어른 같지 않은데 뭔 헛소리야?”
“열아홉이면 어른 아니냐?”
“기껏해야 고삐리가!”
지지 않는다.
한수호는 성격 참 지랄맞다고 생각하며 누르고 있던 팔을 치웠다.
그 즉시 여학생은 뒤로 재주를 넘더니 벌떡 일어섰다.
“너, 정체가 뭐야?”
“말했잖아.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이 시간에 공원을 왜 지나가?”
여학생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깨달았는지 더 이상 섣부른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운동했다, 왜?”
“야밤에? 그럼 운동이나 하지 여긴 왜 왔어?”
“니가 비명 질렀잖아. 도와달라는 줄 알고 왔더니만, 치한 취급이나 하고 말이야.”
한수호의 시선이 다시 가슴 쪽을 향하자 여학생이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자꾸 어딜 보는데!”
“너 거기에도 아티팩트 있구나?”
그 말에 여학생이 흠칫 놀랐다.
“아티팩트를 두 개나 달고 있는 걸로 봐서는 집안도 괜찮은 것 같고…. 근데 이 밤중에 왜 혼자 이런 델 쏘다녀? 부모님이 걱정 안 해?”
한수호의 질문에 여학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 같은 거…. 집에선 신경도 안 써.”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다는 건 좋은 거야. 부모 속 썩이지 말고 얼른 귀가해라.”
“흥! 너나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아!”
여학생은 옷을 툭툭 털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너 이름이…. 서은채?”
한수호의 말에 여학생이 다시 몸을 휙 돌렸다.
“너…!”
“여기, 명찰. 이런 거나 흘리고 다니고.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네?”
한수호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여학생의 명찰을 주워 건넸다.
그걸 재빨리 낚아챈 서은채는 잠시 한수호를 바라봤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서 용모를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지만, 묘한 분위기를 지닌 남자였다.
“내 이름만 알려주는 건 불공평한데?”
“니가 알려줬냐? 다시 볼 것도 아닌데 이름은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가라.”
“왜, 내가 치한이라고 신고라도 할까 봐 무서워?”
“아이고, 됐거든요.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가라. 이 녀석들 패거리 더 몰려오기 전에.”
한수호는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
“패거리 없어. 총 일곱인데, 셋은 내가 신고해서 감방에 처넣었고, 나머지 넷은 여기 다 자빠져 있으니까.”
“그래? 그럼 저기, 저놈들은 뭐냐? 꺼뭇꺼뭇 한 놈들이 우르르 뛰어오는 거 안 보여?”
한수호가 가리킨 곳에는 양복을 걸친 우람한 사내 다섯 명이 있었다.
그들은 정확히 이 방향을 향해 뛰어오는 중이었다.
“아, 씨! 나 여기에 있는 걸 용케 찾아냈네! 빨리 도망쳐!”
갑자기 서은채가 한수호의 손을 덥석 잡고는 뛰기 시작했다.
공격이 아니라서 손이 잡히는 걸 그냥 놔뒀지만 왜 같이 도망쳐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나는 왜?”
“나랑 같이 있는 거 알려지면 너도 멀쩡하진 못할걸? 일단 튀는 게 신상에 좋아.”
“아, 그래? 그럼 튀지 뭐. 나도 귀찮은 건 질색이라…. 영차!”
한수호는 서은채를 가뿐히 들쳐업었다.
“아, 뭐야! 안 내려놔!”
“잽싸게 튀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한수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두 발에 마나력을 끌어올렸다.
파앙
가볍게 땅을 박찬 순간, 공원 주차장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주변 풍경이 정신없이 휙휙 지나가자 서은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씨. 대박. 너 맹 소속 마공가 사람이었어?”
19살의 어린 나이에 이 정도로 능숙하게 마나력을 운용할 수 있다면 대한맹 소속의 마공가 사람밖에 없었다.
“아니. 난 대한맹하고는 아무 상관없는데?”
“그럼, 뭐야? 설마 황도13궁 쪽이야?”
대한맹 소속의 마공 가문이 아니라면 거기밖에 없었다.
다만, 황도13궁은 ‘악(惡)’의 축에 해당하는 곳이라 상종해서는 안 될 인물들이었다.
“거기도 아니다.”
“뭐냐, 너? 다 아니면 대체 어디서 마나공법을 배운 건데?”
“그걸 알려줄 이유는 없지. 다 왔다. 여기면 안전하겠네.”
몇 마디 나누는 사이 그들은 벌써 공원을 완전히 벗어나서 바닷가까지 나와 있었다.
“언제 여기까지…?”
“여기서 이제 서로 갈 길 가자고.”
한수호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야! 어디가?”
“오빠한테 아까부터 야가 뭐냐, 야가? 에이, 됐다. 잘 가라.”
더는 말을 섞기 싫었기에 그냥 자리를 떴다.
“너 이름 뭐냐고!”
소리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한수호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홀로 남은 서은채는 괜한 서운함에 입을 삐죽거렸다.
“치사하게, 지 이름은 안 가르쳐주고….”
자신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곧 죽어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름을 듣지 못한 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자신의 팔이, 자신의 심장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도 무심하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동정 어린 시선이나 껄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장애인.
자기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데 보는 사람들은 평범하게 대하지 못하는 존재.
하지만 방금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몸에 아티팩트가 있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엔 장애인을 향한 눈빛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만날 수 있으려나?’
19살이면 고3이다. 아직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았을 나이.
그렇다면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아카데미 입학 테스트에 도전할 것이 틀림없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테스트 합격은 물론, 인천이 아닌 서울 마공 아카데미에도 충분히 입학이 가능하리라.
‘일단 돈부터 모아볼까?’
서은채에겐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해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사실, 그녀가 가문의 힘을 빌리면 입학 튜토리얼을 할 수 있는 1억 원은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문에선 그녀를 짐짝으로 취급했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었다.
심장이 약해 마나공법을 제대로 익힐 수 없는 체질인 데다가 얼마 전에는 양아치들 때문에 한쪽 팔까지 잃었다.
원래부터 정상적이지 못한 팔이긴 했지만, 그래도 팔이라는 게 달려 있던 때와 아예 아티팩트로 교체된 지금은 천양지차였다.
아티팩트로 심장을 보호받아야 하고, 오른팔 전체를 아티팩트 기계팔로 교체한 그녀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서은채는 오기로라도 혼자의 힘으로 체술을 익혀서 자신을 괴롭힌 자들을 직접 처벌하고자 했다.
그리고 마공 아카데미에 홀로 입학해서 이런 몸으로도 마공사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문에,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막 그녀에게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나름대로 고생해서 익힌 체술을 너무도 가볍게 상대한 남학생.
그 남학생을 다시 만나서 제대로 된 대결을 해보고 싶었다.
‘1년. 딱 1년이면 되겠지?’
16살의 나이로 마공 아카데미에 조기입학을 하려면 정말 특출난 실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가문의 도움 없이 내 힘만으로 마공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말 테다!’
그것이 서은채의 새로운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