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마공사-22화 (22/375)

22화

다음 날 아침.

한수호는 새벽에 일어나 깔끔하게 미션을 끝마치고 홀로 송도 중앙 공원으로 향했다.

스승 부부는 먼저 출발했는데, 약속 장소 근처에서 황도 13궁 소속의 제자들을 먼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한수호는 스승 부부가 따로 가르쳤다는 제자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못하게 손을 쓸 작정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황도 13궁 소속의 학생들이 아카데미에 입학해 간자로 활동하려는 걸 알면서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한수호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사자도왕 송혁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중앙 공원 한쪽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

건물 주변엔 팔뚝에 포효하는 황금빛 사자의 얼굴이 그려진 제복을 입은 자들이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황금 사자단이군.’

황금 사자단.

이들은 사자도왕 송혁의 가문인 패도송가의 경호 조직으로 전원 평급 이상의 마공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송혁이 가주로 있는 패도송가에는 여러 조직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황금 사자단은 가문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맹하고 충성심 강한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한수호가 건물 입구로 다가서자 한 사내가 나섰다.

“신분 확인하겠습니다.”

한수호는 후드를 벗고 신분증을 내밀었다.

“장태산. 19세. 방문자 명단에 있군요. 안으로 드시죠.”

사내는 한수호의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내뱉지 않았다.

확실히 절도 있고 예의 바른 자였다.

그의 곁을 스쳐 가며 슬쩍 개조 특성을 사용해 보니, 사내의 신체 수치가 꽤 훌륭했다.

‘평균 54라….’

54면 특급을 갓 넘은 수준이다.

적어도 6급 게이트까지는 무리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

일개 경호단의 실력이 이 정도이니 송혁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감이 왔다.

회귀 전에는 송혁과 마주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곧 마주할 상황이 되니 조금은 긴장됐다.

건물에 들어가 짧은 복도를 지났다.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가죽 문을 힘껏 열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마치 복싱 경기장처럼 생긴 이곳은, 마공사들이 자유롭게 대련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장소였다.

중앙에 1미터 높이로 세워진 무대가 있고, 그 무대 주변은 투명한 마나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마나 장벽은 안에서 아무리 강력한 마나력이 사용되어도 바깥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무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스승 부부가 보이고, 그 곁에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 둘이 있었다.

그들 맞은 편에는 거구의 중년 사내와 20세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 그리고 또래의 여학생이 서로 웃는 낯으로 이야기 중이었다.

한수호는 그들 중 거구의 사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개조 특성으로 보이는 사내의 신체 수치에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머리]: 99

[왼팔]: 99

[오른팔]: 99

[가슴]: 99

[배]: 99

[왼발]: 99

[오른발]: 99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모두 한계치 99인 인물. 그가 바로 송혁이었다.

“인사드려라. 이분이 바로 사자도왕 송혁 님이시다.”

장한구의 소개에 한수호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입에 발린 인사다.

하지만 이런 거물을 상대함에 있어 입을 잘 터는 건 꽤 중요했다.

“네가 귀살객의 양아들이구나. 이야긴 많이 들었다.”

생각보다 송혁의 태도는 부드러웠다.

적어도 사왕오패의 하나라는 자부심에 빠져 거만함을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190센티 정도 되는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각진 턱에 자리한 한일자로 꽉 다물어진 입매가 꽤 인상적이다.

“와, 아무리 양부모라고 해도 어쩜 이렇게 딴판일 수가 있지? 오빠가 보기에도 그렇지? 거위가 백조를 낳은 거 같네. 푸흡!”

아직 스물이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애가 재기발랄한 입담을 늘어놓았다.

송혁과 닮아 보이는 눈매와 풍기는 강한 기운을 봐선 송혁의 딸인 것 같았다.

“허허. 딸아이가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냐오냐 키우다 보니 버릇이 많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틀린 말도 아닌데요, 뭐. 일부러 저희랑 털끝만치도 닮지 않은 아일 데려다 키운 거거든요. 특히 날 닮은 아이였어봐, 어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 호호호.”

주태란이 비대한 살집을 꿈틀대며 웃음을 흘리자 그 곁에 있던 청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황상 그 청년이 바로 황도 13궁에서 억지로 스승 부부에게 떠넘긴 제자인 모양인데, 스승을 보는 시선에는 알 수 없는 경멸의 빛이 담겨있었다.

‘뭐야? 인성만 그런 게 아니라 실력도 개판이네?’

청년의 신체 수치는 평균 23.

수련급에서도 중간 정도 되는 실력이었다.

실제 마나력은 모르지만 신체 수치가 저렇다는 건 마나력도 평급 이하라는 소리다.

그 옆에 서있는 여자애도 다를 바 없었다.

예쁘장한 얼굴을 가지긴 했지만 표독스러운 눈매와 빨갛게 루주를 바른 입술은 TV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악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 둘을 보자 바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조훈. 안서윤. 놈들이 맞구나.’

회귀 전에도 스승 부부의 제자였던 조훈과 안서윤.

악독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손을 쓰는 방식도 상당히 잔혹하다.

지금으로부터 6년 뒤에 한수호를 포함한 특무부 요원들의 포위망에 갇혀 처참히 죽긴 하지만, 그전까지 이들로 인한 희생이 너무 컸다.

‘딱 봐도 이때부터 이미 악질이었네.’

눈빛과 표정을 보면 그자의 심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한수호가 보기에 조훈과 안서윤은 이미 살인의 짜릿함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대결을 할 아이들은 네 명이 아니었습니까?”

“큰 제자 놈이 아직 안 왔군요. 올 때가 됐는데…. 이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크게 괘념치 않아도 됩니다. 게다가…. 이미 온 모양이니 그리 늦은 것도 아니고요.”

그때, 건물 천장 쪽에서 누군가가 붕 날아올라 바닥에 착지했다.

10미터가 넘는 높이인데도 착지는 꽤 안정적이었다.

패션 선글라스에 평범한 옷, 그리고 짧은 머리를 삐죽삐죽 올려 세운 건방진 표정의 사내.

그는 사람들을 쭉 돌아보다가 선글라스를 빼 상의 주머니에 꽂았다.

“과연 사자도왕은 다르시군요. 제가 와있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리셨네요?”

“이현승. 어른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장한구가 나무라자 이현승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내는 피식피식 웃기만 했다.

“거 스승님은 그 꼰대 같은 성격 좀 버리쇼. 고작해야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사이에 스승이라 부르는 것도 어색한 판에 무슨 제 버릇이 어쩌고저쩌고합니까?”

“이 녀석이!”

“아, 됐고. 그보다 저런 잘난 자식새끼를 감춰놓고 있어서 우리한테 그리 소홀했던 거였수?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생겼네. 여자는 아주 끝내주게 후리겠어. 큭큭큭.”

이현승은 말버릇도 문제였지만 사고방식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저런 인성을 보인다는 건 그의 성장 배경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황도 13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게 이 녀석이로군.’

그런데 왠지 얼굴이 낯익다.

이현승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얼굴도 완전 낯선 얼굴이 아니다.

‘이 녀석이 섬전살 이현?’

한수호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

직접 마주한 건 단 한 번뿐이지만,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치를 떨 만큼 섬전살 이현의 심성은 지랄맞았다.

특무부 요원과 정의국, 대한맹 모두를 통틀어 이현의 손에 죽은 인물만 40명이 넘는다.

머리가 비상하고 교활해 번번이 포위망을 뚫고 도망쳤던 대악질 이현.

놈은 번개가 무색할 만큼 빠른 검술에 ‘중력 가중’이라는 특성까지 지녀 놈을 잡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결국 5급 게이트로 몰아넣어 거기서 특무부 요원들이 참살했지만, 그때까지 그의 악명은 사대광마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현이라는 자는 회귀 전에 스승 부부가 스스로를 희생시켜 살리고자 했을 정도로 스승 부부와의 관계가 깊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한수호처럼 회귀 전의 스승 부부 또한 이현을 양자로 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그놈이 확실해.’

한수호와 마주쳤을 때의 이현은 지금보다 훨씬 살이 빠져 있었고, 분위기도 너무 음침해서 인상 자체가 달랐다.

하지만 꼼꼼히 비교해보니 놈이 맞다.

이현승.

놈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섬전살 이현이라는 엄청난 살인귀로 거듭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회귀 전 스승 부부의 악귀 같은 제자가 모두 등장했다.

그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지금도 상당한 악행을 저질러왔을 게 빤해 보인다.

‘내 손에 제대로 걸리는 날, 네놈들은 처참히 죽게 될 거다.’

한수호는 일단 이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회귀 전과 다르게 선한 인물일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할 필요가 있었다.

추측만으로 누군가를 죽이기엔 회귀 전과 다른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아빠. 나 이따가 약속 있단 말이야. 빨리 할 거 하고 먼저 가면 안 될까?”

송혁의 딸, 송유나가 하는 말에 장한구가 찌푸렸던 얼굴을 억지로 폈다.

“유나 양 말대로 합시다. 더 이상 누를 끼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허허. 귀살객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서둘러 진행을 하도록 하지요. 유나야. 네가 먼저 나서겠느냐?”

송혁도 이 자리가 다소 불편한지 서두르는 기색을 보였다.

사자도왕이라고 불리는 그가 이현승이나 다른 두 제자의 심성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가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 제자는 한수호가 유일했다.

다른 세 제자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이를 이현승이 모를 리 없었다.

“시대가 어느 땐데 다들 저딴 양자 놈에만 관심을 두시나? 이거 너무하신데? 그런 의미로 내가 첫 번째로 나서지요. 그 전에….”

이현승이 돌연 주태란에게 다가서더니 작고 납작한 쇠 상자 하나를 건넸다.

쇠 상자는 1센티 두께로 얇았는데, 상당히 튼튼해 보이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이거. 드리면 아실 거라고 하더이다.”

그렇게 말하며 목에 걸린 뭔가를 짤랑 흔들어 보였다.

열쇠.

상황으로 보아 상자를 여는 열쇠가 분명했다.

‘저 안에 혈맥보공법이 담겨있겠구나.’

약속된 물건을 전하면서도 열쇠는 주지 않는다?

그것의 의미는 이현승이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서 열쇠를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혹시라도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와 서울 아카데미 입학이 거절되는 일이 없도록 알아서 송혁을 구슬리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자, 그럼 한번 봅시다. 그 유명한 사자도왕의 따님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는지 말이죠.”

이현승은 꽤 자신만만했다.

그가 황도 13궁의 후계자라는 건 비밀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비돈귀살 부부에게 배운 검술 외에는 사용할 수가 없다.

반면 상대로 나선 송유나는 18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서울 마공 아카데미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녀에게 마공사 라이선스가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런 송유나를 상대로 여유를 부리는 것이 꽤 의심스러웠던 한수호는 개조 특성으로 이현승의 신체 수치를 확인했다.

‘가슴 부위만 51이나 된다고?’

다른 곳은 30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 평급이지만, 가슴은 특급에 해당할 정도로 높다.

이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가슴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신경 써서 수련을 했을 경우고,

둘째는 가슴에 뭔가 강력한 힘이 숨겨져 있어 유독 수치가 높게 나올 경우다.

이현승이 각성을 하지 못한 건 확실하지만 뭔가 굉장히 찝찝했다.

회귀 전, 이현승의 특성은 ‘중력 가중’.

그가 이 특성을 얻었다는 건 각성 전부터 그와 관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그러고 보니 황도 13궁 중에서 중력에 관한 힘을 사용하는 놈들이 있었어!’

황도 13궁 중에서 염소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갈궁.

그곳의 잔당들이 중력에 관련된 기술을 쓰는 바람에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현승이 마갈궁의 후예였나?’

회귀 전, 이현승은 이현이라는 이름이었고, 모두들 놈을 해치우는 데만 집중했기에 이미 해체된 황도 13궁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현의 특성 중력 가중은 마갈궁의 기술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이 대결에 이렇게나 자신만만하다는 건, 이미 마갈궁의 중력 관련 기술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기술을 대결에서 몰래 섞어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송유나를 골탕 먹이고, 송혁의 체면을 깎아내리겠다는 심산이군.’

한수호는 이현승의 속셈을 바로 눈치챘다.

당당히 경기장 위로 올라선 이현승은 마주 선 송유나의 몸을 훑어내리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단순히 실력을 테스트하는 대결에서 마갈궁의 기술인 중력의 힘을 써서 상대를 곤란에 빠트린다?

이건 송혁과 비돈귀살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겠다는 의미였다.

지금만 봐도 송혁은 스승 부부와 비교적 좋은 관계다.

그런데 이현승이 송유나를 상대로 괴상한 짓을 벌이게 되면 그 모든 책임은 스승 부부가 져야 할 테고, 송혁과의 관계도 틀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둘 것 같냐, 이현승!’

한수호는 그렇게 마음먹으며 경기장 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