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지하 유적지의 수로로 향하는 몬스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남은 몬스터들이 유적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괜히 저놈들하고 드잡이질을 할 필요는 없지.’
한수호는 곧장 수로로 향했고, 바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수로의 수면은 잔잔했지만 아래쪽에선 빠르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자 어딘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잡아당겨졌다.
그러다.
푸학
위로 갑자기 솟구치는 힘에 깜짝 놀랐다.
적어도 수십 미터 이상을 솟구치더니 마침내 한수호의 몸이 허공으로 내던져졌다.
바로 정신을 차린 한수호는 마나력을 일으켜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여긴…?’
폭포수 근처에 위치한 많은 구멍들이 있는 암석 지대였다.
지하 유적지의 수로를 통하면 이 구멍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양.
하지만 반대로 구멍 쪽으로 진입하게 되면 수로로 가는 게 아니라 함정 소굴로 빠지고 마는 그런 장치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바이크가 세워진 방향을 가늠한 한수호는 암석 지대를 내려갔다.
그리고 미리 점찍어 두었던 모블린 부락을 찾아 서둘러 움직였다.
부락은 전에 왔던 그대로였다.
가장 안쪽에 각성석을 품은 암놈 모블린이 있었고, 그 주변을 몇몇 모블린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전에 왔을 때보다 숫자가 크게 줄었다.
‘대부분 주둔 부대가 있는 쪽으로 간 모양이군.’
중대장 덕분에 쓸데없는 전투를 피할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지금부턴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한수호의 목적은 각성석이지 몬스터들의 시체가 아니었다.
모블린의 사체로는 고작해야 마나 방어력이 아주 조금 있는 가죽 갑옷을 만드는 것이 다였기에 별로 가치가 없었다.
왼쪽 허벅지에 차고 있던 세라믹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마나력을 끌어올려 손에 집중하니, 나이프의 바깥쪽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혀졌다.
검기.
최소한 진급 마공사 정도는 되어야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었다.
낮은 자세로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그는 주변을 서성이는 모블린들이 암놈 모블린에게서 가장 멀어질 때를 기다렸다.
‘지금!’
파악
한수호가 있던 자리로 흙과 풀이 튀어 오른 순간, 그는 이미 십여 미터를 이동해 있었다.
파악
두 번째 도약에 한수호는 암놈 모블린의 코앞에 당도했고,
모블린이 한수호를 발견했을 땐.
촤악
눈부신 쾌검에 가슴이 쩍 갈라지고 말았다.
“키야악!”
“캬루루! 캬루루!”
뒤늦게 침입자를 발견한 모블린들.
암놈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나서야 허둥지둥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수호는 이미 쓰러진 모블린의 심장을 손으로 짓뭉개고 그 속에 감춰진 각성석을 빼낸 뒤였다.
각성석은 노란색이었다.
최하급이 붉은색이고, 그다음으로 높은 급이 주황색이다.
노란색은 꽤 급이 높은 편으로 아카데미에 팔면 5억, 암시장에 팔면 10억까지 호가한다.
‘로또 맞았다!’
한수호는 재빨리 각성석을 수습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쿵쾅대며 달려드는 모블린들의 공격을 우습게 회피하면서.
* * *
우우웅-
1미터 근처에서나 들을 수 있는 진동음을 내며 바이크가 평원을 가로질렀다.
주변은 온통 몬스터들의 시체였다.
이미 수차례 주둔 부대와 격돌이 있었던 건지 곳곳에 폭발의 흔적이 보였다.
다행히 지금은 소강상태.
빠르게 부대 입구로 다가가니 문이 알아서 열렸다.
“대체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는 거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중대장 김성태가 상기된 얼굴로 다그쳤다.
“제 볼일 보고 오는 건데, 왜요?”
“네가 알려준 곳에서 각성석을….”
말을 하다 말고 주변 눈치를 봤다.
많은 부대원들이 경계를 서면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따라와.”
김성태는 한수호를 데리고 본부 막사로 들어갔다.
“너…. 나한테 알려준 그 고블린,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지?”
“그게 무슨 소리죠?”
한수호가 알려준 장소엔 보통의 고블린 부락이 있었고, 그곳에 있는 암놈 고블린 또한 특별할 게 없었다.
“근데 왜 각성석을 먹으니까 저런 엄청난 놈들이 날 찾아오는 거냐고!”
한수호는 이제야 이유를 알았다.
김성태는 튜토리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원래대로라면 튜토리얼 참가자는 곁에 노련한 마공사가 하나 붙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험한 순간에 시기적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마공사는 튜토리얼에 절대 임의로 끼어들면 안 된다.
마공사가 튜토리얼 전투에 끼어들어 몬스터에게 적으로 인식되는 순간, 난이도가 자동으로 크게 상승해버리기 때문.
튜토리얼 중에는 각성석을 섭취한 사람에게만 몬스터들의 공격이 집중된다.
하지만 마공사가 되었든, 다른 누군가가 되었든 섭취자의 전투에 제삼자가 끼어들고, 그 상황을 몬스터가 시각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난이도가 재설정되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더 강하고 더 많은 몬스터들이 몰려들게 된다.
지금 상황이 그러했다.
김성태가 혼자서 튜토리얼을 수행했다면 고블린을 제외한 다른 몬스터들은 주변에 모습을 숨긴 채 덤벼들지 않았을 것이다.
각성은 섭취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로 각성석에 의해 자극받은 잠재력이 발휘되어야 이루어지고, 그래야 튜토리얼이 끝나게 된다.
하지만 김성태는 각성석을 섭취한 뒤 부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몬스터와의 전투를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치르고 말았다.
즉, 지금 그의 튜토리얼 난이도는 주둔 부대 전체를 하나의 적으로 보고 거기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에 맞는 수준으로 몬스터들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고.
이 이야기를 해주자 그제야 김성태는 크게 후회했다.
쉽게 갈 수 있는 일을 자신이 너무 크게 만든 것이다.
“진작에 그 이야기를 해 줬다면….”
“각성석이 있는 위치만 알려주면 나머진 알아서 하실 거라고 장담하셔서 모두 알고 계신 줄 알았죠.”
“날 도울 수 있겠나?”
“제가 튜토리얼에 끼면 난이도가 더 올라갑니다.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요.”
그건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어떡해야 부대원들을 보호할 수 있지?”
김성태는 욕심은 많지만 자신의 부대원들에 대한 마음은 깊었다.
부대원들이 쓸데없이 죽지 않게끔 간절히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두 가지뿐입니다. 각성을 포기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오시던가, 가장 앞장서서 위험한 상황을 겪음으로써 빠르게 각성을 하시던가.”
“포기라니! 그건 안 된다!”
그래도 아직까진 욕심이 부대원의 목숨보다 큰 모양.
“그럼 다음 몬스터 공격 때에는 앞장서서 싸워야 할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이도는 점점 올라갈 거예요. 부대원 다 죽이면서까지 각성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겠죠?”
“그럴 리가….”
어째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각성할 때 얻게 되는 특성의 질이 높아지는 건 당연했다.
김성태는 질 높은 특성을 얻는 것과 부대원의 목숨 사이에서 잠시 갈팡질팡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부대원들이 다 죽게 되면 중대장님 혼자 각성하는 건 불가능해질 겁니다.”
그 말이 주효했다.
“알았다. 이제부턴 내가 앞장서지.”
“잘하신 선택입니다.”
한수호는 막사 입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딜 가려고?”
“제 할 일은 다 끝났으니 이제 귀환해야죠.”
“조금만…. 조금만 더 있어 주면 안 되겠나?”
“제가 튜토리얼에 끼어드는 건 각성을 포기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요? 죽을 수도 있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다. 혹시라도 각성하기 전에 내가 죽게 된다면…. 부대원들만은 살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한다.”
그래도 부대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완전히 없지는 않아 보였다.
“튜토리얼 중에 중대장님이 죽으면 몬스터들은 알아서 돌아갈 겁니다. 부대원들은 걱정하지 마시죠.”
“그렇군. 그건 정말 다행이구나.”
김성태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한수호가 김성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몰래몰래 도움을 준다면 튜토리얼 난이도에 영향이 없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니다.
때문에 아카데미에서도 돈 많은 집안의 자식이 튜토리얼에 임하게 되면 그를 보호하는 마공사한테 거금을 찔러 주고 슬쩍 도움을 요구하는 일이 허다했으니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 사람을 도와줘야 하나?’
그래봐야 돌아오는 이득은 하나도 없다.
아무 이득도 없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스승 부부가 알게 되면 ‘호구 잡혔냐?’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하지만 우울한 표정으로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 김성태를 보자니 마음이 약해졌다.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도 있다고 했지 아마?’
적어도 무리해서 튜토리얼을 진행하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지켜봐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한수호는 결국 잠시 동안만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딱 2시간만 더 있을게요. 그 안에 각성을 못 하시면 두말없이 귀환할 겁니다.”
“정말이냐? 고맙다! 정말 고맙다, 장태산!”
스승 부부가 지어준 새 이름이 왠지 모르게 어색했기에 한수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10분 뒤, 재정비를 마친 몬스터들이 다시 공격을 가해왔다.
* * *
“뒤요, 뒤! 한 놈이 뒤로 다가간다고요!”
“빨리 점사로 바꾸세요! 그러다 에너지탄 다 소비되면 죽는다니까요!”
“독침 쏩니다! 피해요!”
주둔 부대의 철책 위에서 많은 군인들이 김성태를 응원했다.
지금 밖에선 김성태와 한수호만이 몬스터를 맞이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김성태 혼자 싸웠고, 한수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망 중이었다.
김성태는 정말 혼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겠다며 혼자 밖으로 나섰다.
이에 부대원들이 죽을 생각이냐며 뜯어말렸지만 그의 뜻은 단호했다.
상명하복.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군법 회의에 넘기겠다고 하자 부대원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몬스터들과 김성태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접근한 몬스터들은 16마리.
고블린 11마리에 모블린 3마리, 노옴도 2마리가 끼어 있었다.
두세 마리 수준에 불과해야 했지만 부대원들이 튜토리얼에 참여하는 바람에 난이도가 상승한 것.
원래대로라면 김성태가 몬스터들에게 달려든 순간,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하지만 한수호가 있었다.
그는 은밀하게 작은 돌멩이를 날려서 몬스터들이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게 끊임없이 방해했다.
독침을 날리는 고블린의 목에 돌멩이를 던지고, 창을 찔러대는 모블린의 겨드랑이를 맞춰 방향이 틀어지게 만들었다.
절대로 몬스터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주의에 주의를 기울인 암습이었다.
그 덕분에 김성태는 벌써 몇 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겼는지 모른다.
그래도 특공 훈련을 제대로 익히고, 사설 마공 단체에서 기본적인 무술이라도 배웠는지 몸놀림은 제법 날렵했다.
소형 레이저 건에 무식해 보이는 장검을 들고도 용케 몬스터들의 공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 싸움이 무려 20분 넘게 지속되었을 때, 김성태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쿠허어엉
지금껏 먼 곳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모블린 한 마리가 갑자기 들소처럼 달려들었다.
유난히 덩치가 크고, 손에 방패까지 들고 있었던 놈은 레이저 건을 튕겨내며 숄더 어택으로 김성태를 받아버리려고 했다.
‘저건 못 피하겠는데?’
한수호는 안 되겠다 싶어서 돌멩이를 쥔 손에 마나력을 끌어모았다.
파직
벽력권의 힘을 썼기에 돌멩이에 벼락이 머금어졌다.
그걸 굳게 쥐고 바닥을 한차례 쿵 하고 찍어버렸다. 순간, 그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피어올라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수호는 그 틈에 모블린의 방패를 목표로 돌멩이를 던져버렸다.
쉬익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간 전격의 돌멩이는 그대로 방패 상단을 후려쳤다.
꽈앙
강력한 충격파가 터지며 모블린의 돌진이 저지되고 말았다.
때마침 김성태가 놈에게 달려들었다.
방패 상단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어서 그걸 밟고 날아오른 김성태.
허공에서 레이저 건을 쏘아 모블린의 머리통에 구멍을 뚫었고, 땅에 착지하면서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모블린의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한수호가 전격으로 놈의 돌진을 막아주고, 방패를 우그러뜨렸으며, 놈을 감전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하지 않았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무식한 공격이었다.
쿠웅
모블린의 거구가 바닥에 쓰러진 순간.
파아아앗
김성태의 몸이 빛에 휘감겼다.
그는 그대로 멈춰선 채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입에선 작은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흐흑…. 여보. 드디어, 드디어 내가 각성했어! 주하야. 이 아빠가 드디어 마공사가 되었단 말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감격에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김성태.
한수호는 멀리서 개조 특성을 이용해 김성태의 신체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꽤 놀라고 말았다.
‘가슴이 28이나 된다고?’
놀랍게도 김성태는 각성하자마자 모든 신체 부위의 수치가 10 이상으로 상승했고, 특히 가슴은 21까지 올라갔다.
이 정도면 평급이다.
수년간 가문의 도움을 받아가며 단련한 사람이 준수하게 각성해야 얻을 수 있는 수준.
김성태는 그걸 30대의 나이로 단번에 이뤄내고 말았다.
그는 부대를 향해 돌아서고는 하늘을 향해 주먹을 힘껏 뻗어 올렸다. 그리고.
“우와아아아!”
“중대장님이 해내셨다!”
“최고닷!”
철책 위에서 우렁찬 함성이 한참 동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