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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마공사-17화 (17/375)

17화

‘뭐야, 저거?’

한수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단순히 고블린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다닌 건데, 막상 부락을 찾아놓고 보니 고블린이 아니다.

‘모블린인가 뭔가 하는 그놈들 아니야?’

모블린은 고블린과 완전히 다르다.

작고 전투력도 낮은, 볼품없는 고블린과 다르게 모블린은 덩치가 크고 생김새도 우락부락했다.

굳이 비슷한 동물을 말하자면, 두 발로 서서 다니는 불독을 닮았다.

놈들은 사용하는 무기도 다양했다.

창부터 몽둥이, 화살까지 사용했으며 팔에 방패를 달고 있는 놈까지 보였다.

한수호는 라뮬을 얻기 전에도 이미 마공사 평급에 올라있던 진무현이 왜 고블린 따위에게 쫓기게 되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블린이 아니라 모블린이었구나!’

진무현은 자신을 쫓은 몬스터의 정체마저도 거짓으로 말했던 것.

어쨌든, 부락은 큰 규모가 아니었다.

대충 숫자를 세어보니 20여 마리 정도.

지금의 한수호에겐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놈들이었지만, 주둔 부대의 중대장이 처리하기엔 충분히 위협적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모블린 부락과 주둔 부대 사이에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각성석을 구해 갖다 바칠 수는 없지.’

그런 호구 짓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각성석을 구한다면 자신이 직접 사용하지, 미쳤다고 남을 줄까.

개당 1억짜리를.

암시장을 통하면 3억이 넘는 물건을 말이다.

한수호는 벌써 각성석을 품고 있는 암놈을 찾은 상태였다.

부락이 위치한 곳에서 가장 안쪽.

다른 모블린들보다 몸에 치장한 게 더 많고, 유난히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 못생긴 불독 한 마리가 있었다.

개조 특성으로 강화된 눈에 마나를 끌어올려 필름을 씌우자 놈의 심장이 하얗게 빛나 보인다.

다른 놈들은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그놈 하나만 유별났다.

‘저놈이 확실한데….’

이 정보를 중대장에게 넘기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저놈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쓸 거다.

그러다 주둔 부대에 문제가 생겨 게이트까지 뚫려버리면 많은 몬스터들이 삼척시로 뛰쳐나가게 된다.

한수호가 아무리 이기적이라고는 하지만 무고한 시민이 위험해지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저놈 각성석은 라뮬부터 찾은 다음에 내가 챙기는 걸로.’

나중을 위해서라도 각성석은 중요한 재원이다.

남에게 줄 생각이 없다면 내가 가지면 되는 것이다.

한수호는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좀 더 먼 곳에서 고블린 부락을 발견했고, 거기서도 각성석을 품은 녀석을 찾아냈다.

* * *

“오후 정찰은 내가 앞장서겠다.”

정찰 분대가 신고를 마치자마자 중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냥 한 바퀴 돌고 오는 건데 그냥 쉬시지 말입니다?”

“아니다. 오늘은 내가 꼭 정찰하고 싶은 지역이 있거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목표 지점을 내비게이션에 찍어주시지 말입니다.”

“오늘 정찰 지점은 여기다.”

중대장은 한수호에게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고블린 부족이 있는 장소를 목표 지점으로 찍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중대장을 포함한 정찰 분대 16명이 철책 방어선 밖으로 빠져나갔다.

뒤이어 한수호도 바이크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정찰 분대가 가는 방향과는 사뭇 다른 곳으로 향하던 한수호는 잠시 바이크를 세웠다.

‘고작 16명으로는 고블린 37마리를 상대할 수 없을 텐데?’

고블린이 아무리 약체 몬스터라고는 하나, 놈들이 떼로 몰려있으면 평급 마공사도 상당히 위험해진다.

고블린은 일대일로는 일반 초등학생도 힘겨루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 그러니 화기를 든 성인 남성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놈들이 둘, 셋 이상 모이게 되면 같은 숫자의 성인 남성은 아무 힘도 못 쓰고 죽을 정도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러니 16명으로 고블린 부락을 습격하는 건 자살 행위였다.

‘최대한 목격자를 줄이고 싶은 거로군.’

중대장은 각성석을 얻을 목적으로 고블린 부락을 습격하는 것이지만, 정찰 분대한테는 우연히 발견한 고블린 무리와의 뜻하지 않은 전투로 이야기할 것이다.

잘못해서 부대원이 사망하더라도 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만들기 위해 평소와 다름없는 정찰 인원만 대동한 것이 분명했다.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젠장.’

한수호는 방향을 바꿨다.

욕심 많은 중대장 때문에 불쌍한 군인들이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지 않도록 최소한의 도움은 주고 싶었다.

정찰 분대와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몰래 뒤따랐다.

일찌감치 숲으로 들어선 탓에 바이크는 먼 곳에 세워둔 지 오래.

얼마 가지 않아 고블린들의 영역에 진입했다.

상황을 보니 벌써 고블린 부락에 이들의 침입이 알려졌다.

고블린들은 항상 서너 마리씩 무리를 지어 주변을 경계하기 때문에 정찰 분대의 무식한 접근을 모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어김없이 전투가 벌어졌다.

투라라라라락

“탄 아끼지 말고 쏴!”

“돌격!”

“통신병, 중대에 연락해서 지원 요청해!”

중대장의 외침과 발포음이 뒤섞여 숲은 혼란에 빠졌다.

고블린들은 멀리서 독침을 쏘거나 창을 던지는 등 소극적인 공격을 하는 반면, 정찰 분대는 중대장의 명령 아래 무작정 돌격을 시도했다.

아직까진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제부턴 달라질 것이다.

고블린은 정찰 분대를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함정.

하지만 중대장의 눈에는 각성석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모조리 사살해! 책임은 내가 진다!”

뉴에르다에서 몬스터와의 전투는 가급적 피하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다.

소탕 작전이나, 몬스터의 선제공격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방어만 하고 주둔 기지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무리한 돌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후…. 할 수 없군.’

드디어 한수호가 움직였다.

빠르게 나무 사이를 빠져나가고 수풀을 파고들었다. 장애물이 나오면 살짝 점프해 나무를 박찬 뒤 비조처럼 날아 단숨에 십수 미터를 이동했다.

누구도 한수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돌격에 정신없는 정찰 분대는 물론, 이들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고블린 무리들까지도.

한수호의 첫 번째 사냥감이 나타났다.

놈은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밧줄을 손에 걸고 대기 중이었다.

밧줄의 끝은 높은 나무 위의 커다란 통나무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걸 놓는 순간 무거운 통나무가 일제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한수호는 세라믹 단검을 손에 쥐고 쏜살같이 몸을 튕겼다.

쉬익

11미터나 되는 거리가 단숨에 0이 되는 순간.

푸욱

단검이 고블린의 목 뒤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놈이 나자빠지며 밧줄을 놓치자 곧바로 그걸 감아쥔 한수호는 마나를 끌어올려 힘껏 잡아당겼다.

콰직. 우당탕탕.

십여 개의 통나무들이 튕겨져 오르며 사방으로 날았다.

아직 정찰 분대와는 거리가 있었기에 통나무는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고블린들을 덮쳤다.

“키에엑!”

“캬아악!”

갑작스러운 난리에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한수호는 그 틈을 노렸다.

쓰아아악

허리까지 차오른 수풀이 세찬 바람에 밀려 파도처럼 한쪽으로 확 쏠린 순간.

투두두둑

고블린 네 마리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수호는 귀신같이 고블린들이 숨은 곳을 찾아내 단검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고블린의 머리가 날고, 가슴이 갈라졌으며, 정수리에 구멍이 뚫렸다.

고블린들은 기겁했다.

사람은 보이지도 않고 그림자만 번뜩거리는데 동족이 빠르게 죽어 나가고 있었다.

“캬아악. 캬악!”

“끼끼끼끼!”

후퇴 신호.

몇 분도 안 지나 상당수의 동족이 죽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었다.

놈들은 썰물 빠지듯 물러났다. 이곳에서 전선을 유지하며 인간들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

한수호는 피 묻은 단검을 풀에 닦아내고는 다시 허벅지에 착용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이 고블린들의 시체다.

‘대충 19마리 정도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부락에 남은 고블린은 이제 얼마 안 된다.

정찰 분대와의 전투에서 죽는 놈들까지 치면 열댓 마리 정도 남았을까?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 이젠 당신들이 나 대신 난리 법석을 좀 떨어줄 시간이라고.’

한수호는 단순히 정찰 분대를 구해주기 위해 수고를 자처한 게 아니었다.

중대장이 각성석을 섭취하고 그로 인해 튜토리얼이 시작되면 주둔 기지 근처는 온갖 몬스터들로 득실거리게 된다.

놈들은 각성석을 섭취한 자가 각성하거나 죽기 전까지는 근처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그래야 한수호가 지하 유적지에 숨어들어 라뮬을 손에 넣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한수호는 빠르게 고블린 사체에서 송곳니를 뽑아냈다.

고블린의 송곳니는 액세서리로 만들면 독 내성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비싼 값에 팔린다.

송곳니 한 개에 거의 10만 원 수준.

방금의 전투 한 번으로 송곳니 38개를 취했으니 3백만 원이 넘는 수익이 생긴 셈이다.

‘그럼 이제 내 볼일 보러 가보자고.’

한수호는 그 자리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잠시 후, 고블린들의 저항이 갑자기 사라지자 정찰 분대가 학살이 벌어진 장소까지 밀고 들어왔다.

“어우야. 여기 완전 고블린들 시체 밭이지 말입니다.”

“뭐? 대체 누가?”

“송곳니가 죄다 뽑혔습니다.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아는 자의 소행이지 말입니다.”

정찰 분대장은 누군가 자신들을 도와줬다는 걸 바로 깨달았다.

“어떤 놈이 선수를 친 거야?”

반면, 중대장은 송곳니를 빼앗긴 것처럼 굉장히 열불을 냈다.

그 모습을 본 분대장은 아카데미 학생이 한 것 같다고 말하려다가 그 말을 삼켰다. 중대장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번쩍이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이 없더라도 중대장 또한 한수호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 게이트 안쪽에 들어온 사람들 중,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마공사라고는 한수호 한 명밖에 없었으니까.

‘그 많은 걸 혼자 독식해? 어린놈이 욕심도 많네. 귀환시킬 때, 내 몫을 좀 빼달라고 해볼까?’

마음 같아선 전부 빼앗고 싶었지만, 이 많은 고블린을 혼자 해치운 솜씨를 생각해서 반만 나눠 갖기로 생각을 바꿨다.

물론, 그 생각 또한 중대장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었지만.

* * *

한수호는 폭포수 위에 서 있었다.

드문드문 들리던 총소리가 갑자기 급박해진 걸로 보아 부락 근처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것 같았다.

각종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 16명과 패닉에 빠진 고블린 14마리 정도면 인간의 승리가 거의 확실했다.

‘그러고도 못 먹으면 병신인 거고.’

한수호는 욕심에 번들거리던 중대장의 눈빛을 떠올리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폭포수가 힘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냥 뛰어내리기에는 조금 위험해 보여서 밧줄을 챙겨왔다.

‘갑자기 아까 그 고블린이 고마워지네. 좋은 곳으로 잘 가라.’

통나무에 밧줄을 묶어 함정을 파고 있던 고블린이 생각났다.

한수호의 손에 절명하긴 했어도 놈이 쥐고 있던 밧줄 덕분에 폭포 아래로 내려가는 게 조금 수월해졌으니 잠시 명복을 빌어주었다.

‘가볼까?’

근처 바위에 밧줄을 묶은 뒤 폭포수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져 갔다.

폭포 높이는 대략 20미터.

밧줄은 15미터 정도까지 늘어졌다.

무섭게 온몸을 두드리는 폭포수를 맞으며 10미터 정도 내려갔을 때, 동굴이 나타났다.

큰 동굴도 아니고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구멍이다.

‘여기다!’

한수호는 동굴 안으로 가볍게 뛰어들었다.

배낭에서 방수 플래시를 꺼내 안을 비춰봤다.

새까만 동굴이 구불구불 이어지며 점점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 재량으로 해야 한다 이거지?’

유대룡에게 들은 내용은 이 동굴 입구까지다.

이 안에서 어떡해야 라뮬을 찾을 수 있는지는 한수호도 들은 바가 없었다.

동굴은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막다른 골목이 나오기도 하고, 끝이 안 보이는 구덩이가 파인 곳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위협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기다 보니 벌써 두 시간여가 훌쩍 지났다.

갈림길이 나오면 지나간 곳에 표시를 해서 길을 잃지 않게 해두긴 했지만, 나중에 되돌아 나올 일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 한수호의 앞으로 또다시 막다른 골목이 나타났다.

그런데 전처럼 평평한 벽으로 막힌 게 아니라 온갖 문양이 새겨진 큼직한 바위가 길을 막고 있었다.

바위 중앙엔 손바닥 모양의 홈이 파여있기까지 했다.

‘찾았다!’

이곳이 입구가 분명했다.

홈에 손바닥을 대고 마나력을 끌어올리자.

쿠궁

바위가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이런 장치를 만들고, 라뮬을 숨겨놓은 건 대체 누굴까? 그리고 왜?’

지금으로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바위가 옆으로 굴러가자 시원하게 뚫린 통로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여기서부터는 자연적인 동굴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든 티가 확 나는 반듯한 벽돌로 이루어진 벽이 있었다.

한수호가 통로에 들어서자 좌우 벽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돌들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플래시가 필요 없어졌기에 배낭에 잘 챙긴 후 직선으로 뻗은 통로를 쭉 따라갔다.

약 5분가량 걸어갔을 때, 통로의 끝이 보였다.

끝은 허공에 맞닿아 있었다.

그 끝에 도착해 밖을 내다본 순간 어마어마하게 큰 지하 대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로 쭉 이어진 계단은 최소 2백 미터는 되어 보이고, 사방은 완전히 탁 트인 공간이었다.

하늘 대신 빛을 뿜어내는 수정이 박힌 천장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도시로 봐도 무방한 거대한 유적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삼척시의 8급 게이트 안에 이런 대규모 유적지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커도 너무 컸다.

이렇게 큰 유적지에서 라뮬을 어떻게 찾을지 막막했지만, 한수호는 가장 먼저 어딜 찾아가 봐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신전.’

이런 대규모 도시라면 신전이 하나쯤은 반드시 존재할 터.

그곳에 가장 중요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유적지의 정중앙.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그곳에 우뚝 솟은 화려한 건물 하나를 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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