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테스트는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 이동우라는 학생이 자신의 실력을 파악도 못하고 애먼 짓을 한 덕에 그 뒤부터는 철저히 안전한 등급으로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대부분은 기본급이었고, 간혹가다 수련급에 도전하는 학생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더 이상 평급에는 도전하는 학생이 없었다.
한수호는 학생들을 쭉 관찰했다.
이들도 대부분은 이 지역에서 꽤 잘 나가는 집안의 자식들이다.
지방 법원 판사 아들, 거대 그룹 계열사 사장 딸, 지방 의원의 아들 등 그냥 일반인으로 살아도 남부러울 것 없이 지낼 수 있는,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평범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평범하다고는 해도 입학금으로 1억이라는 거금을 낼 수 있는 집안이었다.
돈이 없으면 자질이 좋아도 마공사가 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
가진 자는 마공사가 되어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없는 자는 그 기회조차 갖기 힘든 세상.
이러한 문제는 게이트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회귀 전에도, 지금도…. 난 운이 좋구나.’
한수호는 1억을 내줄 수 있는 스승 부부가 뒤에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때, 익숙한 누군가의 이름이 귀를 파고들었다.
“진무현.”
“네.”
맨 앞자리에서 한 학생이 일어나 무대 위로 올랐다.
그가 무대 위에서 몸을 돌리자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한수호의 망막을 강타했다.
‘저 녀석이 진무현?’
여러 가지 의미로 놀랐다.
첫째, 회귀 전에 유명했던 그 진무현이 서산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입학 신청을 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다.
둘째, 스물의 풋풋한 나이인데도 27살 때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가 않다. 즉, 겉늙어 보인다.
셋째, 회귀 전의 진무현은 굉장히 시건방지고 안하무인의 성격이었는데, 지금 보니 차분하고 수줍음도 많아 보인다.
‘내가 다른 세상으로 회귀한 거야, 뭐야?’
한수호가 아는 진무현이 아니었다.
“넌 희망 부문이 타격이고…. 어라? 너도 평급에 도전이냐?”
“실패해도 해보고 싶습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진무현.
생긴 건 반듯하니 잘생겼는데, 행동은 찐따가 따로 없다.
저런 녀석이 어떻게 7년 후에 사왕오패와 나란히 이름을 날릴 수 있었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타격 쪽은 좀 위험한데. 타격 시에 만족할 만한 파괴력이 나오지 못하면 바로 반격이 나온다는 건 알지?”
“압… 니다.”
“수련급만 성공해도 내가 서울 아카데미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다만.”
조명환은 진무현과 아는 사이인지,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의 기색이 가득했다.
“말씀은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말끝을 얼버무리는 게 생각을 바꿀 의향은 없어 보였다.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조명학은 물러났고, 진무현은 자세를 취했다.
그의 앞에는 첫 등장 이후로 보이지 않았던 2미터 크기의 오크가 우뚝 서있었다.
오크는 언제든 때려보라고 시위하듯 탄탄한 가슴을 내밀어 보였다.
진무현이 전투 자세를 취한 순간 한수호는 그에게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바로 개조 특성을 사용해보니 진무현의 신체 수치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머리와 가슴은 18 정도로 꽤 높은 수준이지만, 왼팔과 두 다리는 평균 10으로 별로 높지가 않다. 그런데 단 한 곳. 오른팔만은 27이나 되는 독특한 수치를 보인다.
‘뭐, 원펀치맨이야?’
오른팔에 모든 힘이 집중된 신체의 소유자.
한수호가 그 수치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진무현이 앞으로 달려들며 오크의 가슴을 향해 꽉 움켜쥔 주먹을 쭉 뻗어냈다.
움직임도, 자세도 별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막 뻗어낸 주먹은 달랐다.
푸슉
마치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쏜 듯한 소음이 일더니.
터엉!
엄청난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쿵쿵쿵.
오크가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났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크롸락
갑자기 놈이 괴성을 질렀다. 놈은 이동우를 향해 공격했듯이 한 발을 크게 내디디며 우람한 팔을 쭉 뻗어냈다.
콰앙
진무현은 팔을 엑스자로 하여 오크의 주먹을 막아냈다.
촤르르륵
그는 뒤로 5미터나 밀려나 무대 끝에서 간신히 멈춰 섰다.
“크윽.”
진무현의 팔이 축 늘어졌다.
오크의 주먹에 맞은 부위가 시뻘겋게 변해 퉁퉁 부어올랐다.
동시에 전광판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전자: 진무현]
[결과: 평급 절반의 성공]
[조치: 수련급에서 재도전하면 100% 성공을 장담합니다.]
절반의 성공.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성공이란 얘기다.
게다가 평급 오크의 그 무시무시한 반격을 쓰러지지 않고 방어해냈다.
이건 꽤 대단한 성과였다.
“그걸 막아내다니. 역시 내가 널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조명환은 진무현이 버텨낸 것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내년에….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똥 씹은 얼굴이 된 진무현.
그는 굉장히 실망한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다른 말 없이 그대로 나가버렸다.
“진무현!”
조명환이 불렀지만 무시당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 마지막인가? 장태산.”
“네.”
드디어 한수호 차례였다.
무대에 올라가자 다시 주변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잘생겼다.”
“사진이라도 한 장 같이 찍고 싶네.”
“집안도 좋아 보여!”
그런 소리를 흘려들으며 한수호는 오크 앞에 마주 섰다.
“너도 평급이냐?”
“성공하면 저도 추천서 써줍니까?”
조명환이 특정 학생을 편파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작은 반항.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따라 타격 부문이 인기가 많군. 가장 다치기 쉬운 부문인데 말이야.”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말이다.
왠지 한수호가 테스트 도중에 다치길 원하는 듯한 말투였다.
“다치는 일 없을 겁니다.”
“그래? 어디 최선을 다해보려무나.”
조명환이 눈짓하자 랩톱을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뭔가를 입력했다.
그런데 그때 한수호의 눈에 조명환이 자기 손목의 시계를 톡톡 두드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 순간 랩톱을 조정하던 사내가 흠칫 놀랐다.
뭔가 놀란 눈으로 조명환을 바라보는 사내.
조명환은 그 사내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이에 사내는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한 번 더 랩톱을 조작했다.
“준비되면 시작해라.”
그제야 물러나는 조명환.
한수호는 이자가 방금 뭔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게 뭘까 생각하던 그는 오크의 몸을 개조로 확인해봤다.
그리고 무슨 짓을 해놨는지 바로 접수했다.
[가슴]: 50
[오른팔]: 50
오크의 가슴과 팔의 수치를 특급으로 올렸다.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 수련급의 수치는 10에서 20 사이고 평급의 수치는 30 이상, 50 이하다.
다른 신체 부위는 다 30을 살짝 웃도는 수준에 맞춰져 있는데 가슴과 오른팔만 50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날 엿 먹이겠다?’
빤히 보이는 짓거리.
회귀 전에도 조명환처럼 인성이 쓰레기인 마공사들을 많이 만나봐서 잘 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겐 뭐든지 내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필요 없어 보이는 상대는 가차 없이 내친다.
조명환 입장에서 진무현은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고, 한수호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시골 촌뜨기다.
아마도 입학원서에 적힌 집 주소가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럼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한수호는 대충 평급 오크를 주저앉히는 정도로 테스트를 끝내려 했다. 지금까지 쭉 지켜본 결과 마나력 2할 정도 되는 힘으로 후려치면 가능했다.
하지만 방금 생각이 바뀌었다.
발 앞의 버튼을 꽉 밟자 오크가 가슴을 쫙 펴고 공격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간단히 벽력권 맛 좀 보여줄까?’
파짓
4할에 이르는 마나력을 끌어올리자 주먹에 찰나적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주먹을 옆구리 쪽에 붙이고 있어서 본 사람은 없었다.
쾅
가볍게 한 발을 내디디며 투구하듯 오른팔을 휘둘렀다.
훙
무거운 바람 소리가 짧게 들린 순간.
빠캉!
강력한 타격음이 터지고, 뭔가가 트럭에 치인 것처럼 튕겨 날아갔다.
허공으로 날려진 그건 무대 뒤쪽까지 날아가 벽에 부딪히더니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뭐야!”
“우왁!”
“헉!”
사방에서 경악이 터져 나온다.
조명환은 얼빠진 표정으로 상체가 반파된 오크봇을 바라봤다.
가슴 부위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렸다. 거기서 빠직거리며 전기가 튀었고 잠시 후.
푸쉬쉭
합선이 된 건지 연기가 흘러나오다 불이 확 일었다.
“부, 불이다!”
“빨리 꺼!”
주변을 지키고 있던 안전 요원이 그제야 달려들어 불을 껐다.
그때 전광판에 글자가 새겨졌다.
[도전자: 장태산]
[결과: 대성공!]
[조치: 특급에서 재도전해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메시지 내용이 뭔가 공손하다.
하지만 한수호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시바, 벽력권이 왜 이렇게 세졌어?’
마나력은 정말 딱 4할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사모에게 배운 벽력권을 살짝 입혔을 뿐인데, 이런 결과라니.
대충 1, 2미터 튕겨 쓰러지는 걸 상상했는데 20미터를 날아갔다.
생각 이상으로 이목을 끌어버린 것에 자책하고 있을 때, 지켜보던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오우, 쩌는데?”
“쟤 뭐야? 어느 가문 출신이야?”
“드디어 서산에도 쓸만한 인재가 나오는 건가?”
학생들의 표정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 사이 조명환과 몇몇 사내들은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제가 커진 것 같다.
“입학 여부 결과는 폰으로 보내주시길.”
한수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미 폰과 CCTV에 영상이 찍혔을 테고 감독관까지 직접 목격했으니 실수였다고 발뺌은 못 한다.
조사가 들어오겠지만 장태산이라는 가공의 인물은 비돈귀살 부부에 의해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단지 한수호는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게 싫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야 할 수 없다지만 지금은 충분히 제어가 가능했는데도 너무 멍청하게 행동했다.
‘내 힘에 너무 도취해있었나?’
한수호는 아카데미를 빠져나오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 * *
“감독관님. 이 데이터 좀….”
랩톱으로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분석하던 사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명환이 다가와 화면을 보니 그곳엔 장태산이라는 학생이 오크봇을 타격할 때 굉장한 스파크가 일어난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주먹이 닿자마자 내부 기기가 박살이 났다는 거야?”
“아닙니다. 저 스파크는 오크봇이 망가지면서 생긴 게 아니라 그 학생의 주먹에서 직접 발현된 겁니다. 게다가 오크봇의 마나 하트에 남겨진 수치가….”
“뭐? 주먹에서 직접?”
조명환이 사내의 말을 끊고 질문부터 날렸다.
주먹에서 스파크를 일으킬 정도면 장태산이 이미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시골 촌구석의 돈 많은 부모를 둔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의국이나 대한맹 소속의 가문에서 키운 아이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조명환은 후자이길 바랐다.
자신이 일부러 오크봇을 조작해 특정 부위의 등급을 특급으로 올려놨으며, 그걸 각성도 못 한 일개 학생이 맨손으로 때려 부쉈다는 일이 밝혀지면 큰일이었다.
“모든 영상 다 검열해서 지워.”
“이미 작업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오크봇은 어쩌죠?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닌데….”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그런데, 아까 정말 제대로 조정한 거 맞아? 특급으로 올린 게 아니라 수련급으로 내린 건 아니고?”
“감독관님. 만약 시스템 오류 때문에 수련급으로 내려간 거라고 해도 오크봇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건 그 학생의 신체 등급이 평급 이상이라는 겁니다.”
“그건 그렇지. 후우…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놈이 나타나서는. 쓰읍.”
조명환은 장태산이 그냥 떠나버린 걸 다행으로 여겼다.
함께 있던 학생들은 단단히 입막음을 해뒀으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아까 그 녀석은 일단 합격 통보해. 서울 본교에는 평범하게 평급을 통과한 놈이라고 알리고.”
“여기로 입학시켜서 저희가 집중적으로 성장시켜보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가 키운 마공사가 엄청난 성과를 올린다면 상부에서 보는 평가도 달라질 테고….”
“그놈은 붙잡아도 여기 남을 녀석이 아니야. 그리고 그런 골칫덩어리를 품고 있을 자신도 없고. 그냥 서울로 보내는 게 나아.”
조명환이라고 욕심이 없겠느냐마는 장태산은 그가 케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었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그나마 가진 부와 명예마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명환은 일찌감치 포기한 것이다.
“감독관님이 그러시다면야 어쩔 수 없죠. 근데, 정말 엄청난 녀석이 등장했네요. 주먹이 닿는 순간에 전기를 일으켜 상대의 마나력까지 갉아먹다니.”
“응? 뭐라고? 마나력을 갉아먹어?”
“아, 아까 말하다 말았네요. 여기 이 데이터요. 지금 저 오크봇 마나 하트에 남은 마나력이 90%에요. 10%가 갑자기 증발했다 이겁니다.”
뒤늦게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된 조명환은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럼 주먹이 오크봇에 닿는 순간에 스파크가 일었고, 그 짧은 찰나에 마나력 10%를 빼갔다, 이거야?”
“네. 그래서 저희가 맡아 키워보자는 건데요.”
“허….”
말이 안 나온다.
장태산은 그냥 평범한 괴물이 아니라 감당 못 할 거대 괴수 수준이었다.
“내가 잠자는 괴수의 코털을 건드렸네. 허허….”
조명환은 자신의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