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오늘은 늦었구나.”
장한구는 삐쩍 마른 손으로 음식이 수북이 담긴 그릇을 식탁 위에 깔고 있었다.
“깨달음이 있어서 조금 과하게 집중했거든요.”
“깨달음?”
반문한 사람은 주태란이었다.
몸집이 너무 뚱뚱해서 의자 두 개를 혼자서 차지하고 앉은 그녀는 벽걸이 티비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한수호를 빤히 쳐다봤다.
“오늘 처음으로 파랑격에 벽력권을 실었습니다.”
뻥이다.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펼치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가능은 하지만 몸이 견뎌내질 못한다.
파랑격을 펼치면서 거기에 벽력의 힘을 싣게 되면 제대로 된 기술 한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혈관이 다 터져 죽고 만다.
한수호는 거짓 연기를 위해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뭐! 정말이냐? 그게…. 그게 가능한 거였다고?”
장한구가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 스승 부부에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충분히 알 만했다.
“당신은 가만있어 봐. 너 방금 한 말 정말이냐? 갑자기, 이렇게 뜬금없이 깨달음을 얻어 그걸 성공시켰다고?”
주태란은 심계가 깊은 사람답게 놀람에 앞서 진위부터 따졌다.
“정말인데요. 보여드려요?”
“아니, 지금은 됐다. 일단 밥부터 먹고 앞마당으로 나오거라.”
주태란은 아닌 척했지만 기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애써 침착히 있느라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래, 그래! 빨리 먹고, 아니지. 천천히 꼭꼭 씹어먹어라. 혹시라도 체하면 큰일이잖냐? 자, 이것도 먹고. 여기, 이것도 먹어봐라.”
장한구는 영양가가 듬뿍 들어있는 각종 채소볶음에 조림 반찬들을 한수호 앞쪽으로 몰아줬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한수호는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고, 장한구과 주태란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주방을 슥 빠져나갔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한수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대가 크겠지. 정말로 파랑에 벽력의 힘을 싣는 게 가능해진다면 저들도 지금보다 두 배, 아니 몇십 배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니까.’
그만큼 오랫동안 스승 부부가 갈망해 오던 경지였다.
그리고 그들을 속여넘기기에 이것보다 훌륭한 밑밥은 없었다.
‘그런데, 사모님 스탯은 좀 위험해 보이는걸?’
한수호는 개조 특성의 쿨타임이 끝난 덕에 그 특성을 이용해 상대의 신체 스탯을 훔쳐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이대성의 신체 스탯을 엿봤던 것처럼 상대방 스탯 조정을 시도하는 방법으로 가능했다.
물론, 여기서 정말로 스탯을 조정해버리면 다시 10년 쿨타임에 들어가 모든 특성이 잠겨 버리기 때문에 스탯만 훔쳐보고 NO를 선택해야 했다.
이 방법으로 스승 부부의 스탯을 훔쳐봤는데, 그 결과가 의외였다.
우선 장한구는 7개 항목 중 두 다리를 제외한 5개 항목이 40 언저리였다. 대신 두 다리는 각각 67, 65에 이를 정도로 특출나게 강했다.
이는 쾌검에 특화된 육체라서 중심을 잡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데에 하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반면, 주태란은 팔과 다리가 30 전후로 약한 대신 머리, 가슴, 배 부분이 80에 가까운 독특한 수치를 보였다.
이 역시 벼락을 주특기로 삼는 주태란인지라 머리와 가슴, 배를 특별히 보호하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체 내부 수치는 꽤 기형적이었다.
장한구는 심장, 폐, 위가 2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각, 청각, 후각은 5나 된다.
이에 반해 주태란은 심장이 15나 되는 대신 다른 항목 모두가 1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사모님은 웬만해서는 거의 죽을 일이 없다는 거지.’
심장의 특출남은 생명력의 강함을 의미했다.
한수호는 스승 부부의 신체 스탯을 되새기며 만약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 *
잠시 후 식사를 마친 한수호는 스승 부부가 기다리고 있을 마당으로 나섰다.
장한구과 주태란은 널찍한 마당 한쪽의 바위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좀 쉬었다 해도 된다. 밥 먹고 바로 격하게 움직이면 몸에 안 좋아.”
장한구는 언제나처럼 한수호의 건강을 가장 먼저 챙겼다.
이런 모습을 보자 한수호는 자신이 스승 부부를 시험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해.’
회귀 전의 이 부부가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잘 알기에 그냥 괜찮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괜찮아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
한수호는 한쪽에 놓인 목검을 들더니 마당의 정 중앙으로 가서 바르게 섰다.
눈을 감고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취하던 한수호는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스슥
아무런 사전 동작도 없이 한수호의 몸이 10미터 밖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 속도는 가히 찰나와 같았다. 소리는 그다음에야 터져 나왔다.
촤아아아악
마당에 섬뜩한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한수호는 이미 모든 동작을 끝내고 우두커니 서 있었지만, 그 사이에 이미 수십 번의 칼질을 끝냈던 것.
마당 위로 수많은 칼자국이 거미줄처럼 그어졌다.
“정말 훌륭한 파랑격이로구나!”
이건 장한구의 장기인 파랑격이었고, 거기에 쾌검의 마나공법을 살짝 얹은 기술이었다.
한수호는 장한구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목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손잡이를 두 손으로 맞잡은 뒤 뒤로 한발을 크게 물러선 순간.
콰지직
목검 위로 시퍼런 뇌전이 피어올랐다.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해졌기 때문에 뇌전의 찬란함은 사방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수호가 목검으로 바닥을 쓸 듯 휘돌렸을 때.
쿠드드드득
괴물의 손톱이 바닥을 훑듯 깊은 고랑을 파내며 수많은 흙과 자갈이 앞으로 쏟아져 나갔다. 더불어 그 모든 것들 사이로 번쩍이는 뇌전이 치고 있었다.
그걸 본 주태란도 더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좋구나!”
진심으로 감격한 얼굴이었다.
부부는 한수호의 재능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성장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함에 장한구과 주태란은 매우 기쁜 표정이었다.
한수호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게 진짭니다!”
한수호가 호기롭게 외치더니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당에는 희뿌연 그림자가 폭풍처럼 휘몰아쳤고 바닥엔 별 모양의 고랑이 파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빠지직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던 한수호의 목검에서 뇌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투명 망토를 두른 누군가가 광선검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파랑격의 빠름에 뇌전이 실렸다.
그야말로 장한구, 주태란 부부가 평생 갈구해왔던 최고의 경지.
부부의 눈에 황홀함이 가득 찼다.
그런데 정작 한수호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게 왜 되는 거야?’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이건 원래 성공하면 안 되는 기술이었다.
그저 보여주기식으로 파랑격을 펼치면서 벽력의 힘을 끌어올린 건데, 정말로 성공하고 말았다.
한수호의 계획은 이랬다.
그가 억지로 벽력을 끌어 올린 순간 두 힘이 충돌하게 될 것이고, 그 때에 맞춰 억눌러 놨던 독초의 힘을 퍼트려 피를 좀 토하면서 쓰러지는 것.
하지만 힘은 충돌하지 않았다. 미리 먹어둔 독초의 힘이 온몸에 퍼졌는데도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두 힘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한수호의 몸에 더욱 강력한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벽력의 힘을 더 올려보자.’
한수호는 더욱 무리하기로 했다.
콰지지직
목검에서 뿜어지는 뇌전이 1미터까지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통전이 가능한 사물 쪽으로 뇌전을 줄기줄기 뻗어내기까지 했다.
퍼엉. 퍼벙.
마당 근처에 놓인 쇠붙이들이 뇌전 줄기에 맞아 터져 나갔다.
그런데도 한수호의 몸은 멀쩡했다.
‘이걸로도 과부하가 안 걸린다고? 그럼 파랑의 힘을 더 올려야 하나?’
이번엔 파랑격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슈슈슈슝
이젠 한수호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진급에 오른 부부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
거기에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을 뿜어내는 뇌전.
그 장면을 목도한 부부는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한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무아지경 속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승 부부를 속여 일부러 부상을 입고, 모든 힘을 잃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다.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쾌와 뇌를 한 몸으로 아우르며 정신없이 마당을 휘젓던 어느 순간이었다.
“커억!”
한수호가 고통에 찬 비음을 흘리며 움직임을 덜컥 멈췄다. 그 직후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후폭풍이 한수호의 주변을 파도처럼 휩쓸었다.
꽈과과과과과광
주변이 모조리 파괴되는 와중에 한수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검붉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수호야!”
“이런!”
장한구과 주태란이 경악성을 토하며 한수호에게 날아갔다.
주태란보다 한발 먼저 도착해 한수호를 안아 든 장한구.
그는 빠르게 한수호의 상태를 점검했다.
“뭐야, 여보. 이 녀석 왜 이러는 건데?”
주태란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묻자 장한구는 길게 탄식했다.
“후…. 마나력 오버 히트야.”
“뭐? 갑자기 무슨…?”
한수호의 몸은 마나력 오버 히트 상태와 완벽하게 똑같았다.
중요한 혈관이 모조리 뒤틀렸고, 심지어 어떤 곳은 구멍이 뻥 뚫리기까지 했다. 거기에 내장까지 상했다.
한수호는 정신이 몽롱했다.
자신을 안아 들고 스승 부부가 계속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했다.
‘하, 씨발. 독초 효과가 이제야 나오… 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수호는 정신을 잃었다.
* * *
“…거야.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우리 계획…. 잘못하면 우리 둘 모두…. 다고.”
띄엄띄엄 들리는 스승 부부의 목소리.
한수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떠보니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있다. 스승 부부는 거실에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아. 독이 참 빨리도 퍼지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효과가 늦게 나왔다.
그 덕에 파랑격에 벼락의 힘을 싣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지만, 자칫 중요한 계획에 차질이 생길 뻔했다.
‘일단 광폭화로 독효부터 처리하자.’
한수호가 그 지독한 독초즙을 먹고 가짜로 오버 히트에 빠진 흉내를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광폭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폭화는 그저 단순히 사용자의 모든 능력을 두 배로, 혹은 그 이상으로 폭주시켜 주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니었다.
광폭화를 실행하면 광폭화 효과가 존재하는 30분 동안 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이상 현상을 최상의 상태로 바꾸어준다.
이는 치료 특성을 사용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광폭화에는 바로 이 치료 효과가 있기에 아무 걱정 없이 독초즙을 섭취할 수 있었다.
광폭화 1단계에는 치료 효과가 없지만 2단계부터는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3단계에서는 더욱 강력한 치료 효과가 생기는 대신 이성을 상실하게 되는 페널티가 있어서 사용에 큰 주의가 필요했다.
‘적어도 5단계까지는 가야 다섯 배 능력에 정신까지 멀쩡할 수가 있으니…. 어느 세월에 그 수준에 오르냐고.’
한수호의 광폭화 단계는 3단계.
회귀 전에 이미 3단계에 오른 상태에서, 지난 10년간 단 한 단계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5단계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한수호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고는 광폭화 2단계를 자신의 몸에 발동시켰다.
그 순간.
우드득
그의 몸이 한순간 부풀어 올랐고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한수호의 두 눈엔 실핏줄이 퍽퍽 터져 새빨갛게 변했다.
그 소리에 놀란 스승 부부가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
“이게 뭔?”
두 사람은 정신을 잃고 있던 한수호의 몸에서 광폭화 특성을 사용했을 때의 현상이 일어나자 크게 놀랐다.
“크아악! 으아악!”
한수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에 부부는 온 힘을 다해 한수호의 발버둥을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엄청났다.
진급 끝자락에 오른 부부가 한꺼번에 달라붙었는데도 두 사람의 몸이 들썩일 정도.
한참 만에야 한수호는 잠잠해졌고, 부부는 심각한 얼굴로 마주 봤다.
“이젠 자기 힘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수준까지 왔어.”
“그래서, 이 녀석을 포기하고 그날의 약속도 걷어차버리자고?”
주태란의 음성은 차가웠다.
“지금 수호의 몸 상태로는 두 번 다시 마나를 일으킬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런 애한테 우리 욕심 채우자고 대결을 강행시킬 생각이야? 그냥 편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자.”
“그래서 어쩔 건데? 주화입마에 빠져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게 될 녀석을 이대로 내버려 두자고? 차라리 마지막으로라도 대결에 임하게 해서 그 물건을 얻어내는 게….”
“주태란! 그건 안 될 소리야!”
장한구가 크게 화난 목소리로 주태란을 나무랐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그의 표정에 주태란은 충격을 받은 듯 눈동자가 떨리기까지 했다.
“나가서 이야기하자. 아픈 애 앞에서 이게 뭔 짓인지….”
“알았어.”
두 사람은 다시 밖으로 나가 거실에서 작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한수호가 조용히 눈을 떴다.
광폭화 2단계를 걸어버린 통에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올라 불편한 감은 있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역시나… 인가?’
주태란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나 마찬가지인 한수호를 끝까지 이용해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장한구는 10년간 함께 살아온 정이라도 있는지 안락사를 시킬 생각으로 보였고.
‘후…. 내가 회귀했다고 해서 악인의 본성마저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나 보네.’
한수호는 결정을 내렸다.
벌써부터 악독한 심성을 내보이는 주태란에겐 죽음을 내리고, 장한구는 폐인으로 만들어 목숨만 살려주기로.
10년간 자식처럼 키워온 한수호를 이렇게 쉽게 버리려고 하는 걸 보니 주태란은 언제 악인으로 돌변할지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악인으로 변했는데 한수호만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그래도 키워준 보답으로 매년 제사는 지내드리겠습니다.’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선 한수호는 방 한쪽에 걸려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방문으로 다가가 기습공격을 가할 준비를 했다.
스승 부부가 나가면서 방문을 완전히 닫질 않아서 미세하게 틈이 벌어져 있었다.
한수호는 그 틈으로 기습 타이밍을 살피고자 했다. 그때, 부부의 대화가 흘러들어왔다.
“…내 말이 틀려? 수호는 우리 자식이나 마찬가지라고. 몸이 저렇게 망가졌는데 그깟 물건 얻겠다고 어떻게 그 고생스러운 일을 강요할 수가 있겠어?”
장한구가 자식과 같다고 말하자 주태란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그걸 왜 모르니? 내가 그동안 저 아이가 곤히 잠잘 수 있도록 음식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데! 그러니까 난 포기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걸 얻으면 수호는 살 수 있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뭐라도 시도해보는 게 도리 아니냐고!”
부부의 대화는 한수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랬다가 실패하면? 수호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사왕오패의 제자라는 걸 잊었어? 난 죽음을 무릅쓰고 그 대결에 수호가 나서는 꼴 못 봐. 우리가 대결을 포기하고 여기서 잘 돌보면 적어도 삼 년, 잘하면 오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야.”
알고 보니 장한구는 한수호를 안락사시키려는 게 아니라 편안히 눈감을 수 있게 끝까지 보살펴 주려는 것이었다.
주태란도 오히려 살 기회를 찾기 위해 대결을 강행하려는 것이었고.
“차라리 내가 엘릭서를 훔쳐 올까? 그거라도 먹으면 수호가 살 수 있잖아.”
“당신이? 그게 가능할 거라고 봐? 사왕오패 중에서도 사자도왕이라고 불리는 송혁의 거처에 그 몸집을 가지고 어떻게 숨어들려고?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낫지.”
“그 마른 장작개비 같은 몸으로? 그건 꿈도 꾸지 마. 내가 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안 될 소리! 당신이 가면 죽는다니까?”
“그러는 당신은? 내가 죽더라도 수호를 돌봐주려면 당신이 살아남는 게 더 낫잖아?”
부부는 서로 한수호를 위해 희생할 각오였다.
그들이 진심으로 목숨을 걸려는 모습에 한수호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바로 깨달았다.
‘시발. 눈은 왜 이렇게 따가운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한수호.
그는 손에 든 검을 다시 벽에 걸어두었고, 부부가 있는 거실을 향해 문을 벌컥 열고 나섰다.
“스승님.”
한수호가 나타나자 부부가 화들짝 놀랐다.
평소라면 한수호가 조금만 부스럭대도 바로 알아차릴 사람들이었지만, 한수호의 심각한 상태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어 주의력이 떨어져 있었다.
“너…. 깼구나?”
“아직 일어나면 안 돼!”
주태란이 큰 몸집을 쿵쾅대며 달려와 한수호를 번쩍 안아 들었다.
한수호의 몸집도 원래 큰데다가 광폭화로 근육까지 부풀어 올라 작지 않은 덩치였지만 주태란은 가볍게 들어 침대에 눕혀버렸다.
“저 이제 괜찮아요.”
“헛소리하지 마. 괜찮긴 뭐가 괜찮아?”
“여보. 내가 좀 살펴볼게.”
의학에 잡다한 지식이 있는 장한구가 주태란을 밀치고 한수호의 몸을 살폈다.
마나를 이용해 한수호의 몸을 자세히 훑어보던 그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해버렸다.
“왜? 더 악화된 거야?”
주태란의 걱정 가득한 질문에 장한구가 땅이 꺼질 듯 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아…. 살았어. 우리 수호가 이제 살았다고!”
“저, 정말? 수호 몸이 괜찮아진 거야? 당신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
주태란은 장한구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일단 목숨엔 지장이 없어. 고비를 넘겼다고!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멀쩡해질 만큼 빠르게 호전되고 있어.”
“수호야!”
주태란이 상체를 일으키려는 한수호를 덥석 끌어안았다.
살집이 엄청났기에 한수호의 머리가 주태란의 가슴팍에 완전히 파묻혔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지만, 한수호는 주태란을 밀어내지 않았다.
‘두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두 분이 계셔 준 덕분에 제가 살 수 있었어요.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한수호는 이제야 스승 부부의 진정한 마음을 완전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