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7화. Last Chance (1)
그 누구도 살아본 적 없을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동안,
아니지, 사실 이것이 정말 두 번째 인생일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돌아온 이른바 ‘회귀’를 거친 것이 지금의 나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또 다른 의문을 가져야 했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내게 이 말도 안 되는 두 번째 삶을 줬단 말인가?
수없이 생각했고, 어쩌면 평생이 지나도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는 염원과도 같을 그 오랜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존재가,
기어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기분이 어떻지?”
그는 자기소개나 별다른 상황 설명 없이, 다짜고짜 내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이 뭣도 모를 과거의 기억을 본 소감을 묻는 건가?”
만약 이에 대한 답을 정말로 원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
‘돌아버릴 것 같다.’
이 말 하나뿐이었다.
“죽은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 거다.”
허나 예상치 못한 속뜻에 나는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마검의 영령이 네 육체를 잠식한 동시에 너의 영혼은 그대로 분리되었고, 본래라면 바로 흔적도 없이 소멸해야 한다. 그 흐름을 내가 잠시 멈추게 했지.”
죽었다라.
그래 뭐 눈 뒤집힐 만큼 놀랄 일도 아니지.
애초에 이 상황을 살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니.
“내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지?”
“방금 물었던 그대로다.”
내 직설적인 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관된 답을 내었다.
“너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성검의 아공간을 무너뜨리느라 정신이 망가지긴 했지만, 그런 상태로 마왕을 상대할 필요는 없었지. 오히려 너의 아공간에서 회복 시간을 충분히 가질 필요가 있었다. 이후 정상적인 상태로 혈전에 임했다면, 굳이 마검에게 몸을 주지 않아도 마왕을 이길 수 있었을 거다.”
맞다.
이건 나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회복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마왕과 싸웠다면,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안 벌어졌겠지.
그걸 알면서도 난 바로 마왕과의 혈전에 임했다.
왜?
그건 아마 이 정체 모를 존재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넌 결국 네가 아닌, 네 사람과 네 세상을 선택했다. 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마왕에게 유린당할 너의 주변인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겠지. 거기에 아직 네 복수도 완전히 끝내지도 않은 상황에서 넌 너의 삶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 선택에 이은 기분이 어떠한지를 난 알고 싶은 거다.”
그가 말을 마친 순간, 내 주위로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조금 전의 바로 그 장소였다.
나와 에밀리가 있던 곳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신 그 자리엔 뭔가에 그을린 자국만이 까맣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어리석다. 항상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지.”
이 또한 내가 경험으로 체득한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저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너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고, 뒤늦게 참회했지만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 다음 생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는 너와 똑같은 다짐을 하면서…….”
비록 나는 이미 죽어 기억하진 못했지만, 에밀리는 삶의 마지막 최후의 순간을 나와 함께 했다.
그리고 난 다시 돌아왔을 때 에밀리를 가장 처음으로 마주했지.
이걸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지만 그 다짐이 무색하게 넌 이번에도 너를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남을 위한 삶을 살았지. 너로 인해 구원받고 새 삶을 이룩한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나 할 수 있겠느냐? 시안 베르트. 넌 이번에도 실패한 삶을 살았다.”
그래. 결론은 그걸 말하고 싶었던 건가?
지난 삶에 이어 난 이번에도 남을 위한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그로 인해 내가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을 원하기라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할 말 다 했나?”
난 그럴 생각 없다.
“이젠 내가 입을 열어도 되는 거겠지?”
“입을 열 기회는 아까부터 있었다.”
그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날 언제 되살릴 거지?”
내 말과 함께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당신이 네게 두 번째 삶을 줬고, 그 삶마저 끝난 상황에서 후회하는지 마는지를 물었을 때부터 알아봤다. 일단 내 기분은 둘째치더라도, 당신은 내 죽음에 대해서 무척이나 아쉬운 상황이란 거겠지. 아닌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으니, 그는 대답 없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이 세상에 목적 없는 호의는 없어. 당신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내게 두 번째 삶을 주었지만, 난 그 목적을 이뤄주지 않은 채, 그 삶을 스스로 끝내버렸지. 그게 아쉬우니 소멸 직전까지 간 나를 붙잡아 이렇게 되도 않는 질문이나 던지고 있는 거겠지. 이미 한 번 한 거, 두 번 하지 말란 법칙이 있는 거 아니라면…….”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빨리 날 부활시켜. 흩어진 영혼을 모아서 맞추든, 아님 이번엔 아예 태어나기 직전으로 날 되돌려버리든, 할 수 있는 건 전부 하라고.”
“이미 두 번이나 실패한 너에게 내가 또 다시 호의를 베풀어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실패했다는 건 당신 생각 아닌가?”
그의 입은 다시금 닫혀 버렸다.
“난 이번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것은 단 한 줌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온전한 내 진심이다.
“마왕과의 혈전은 어차피 내 몸을 잠식한 그녀가 알아서 이어갈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에쉘 베르트 또한 모든 카드를 다 썼기에 이제는 스스로 자멸할 일만 남았지. 남은 세상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이어나가겠지. 난 나를 위해 충분히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전생보다는…….”
미련?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난 내가 한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허나 저 존재는 다르겠지.
“당신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이뤄주기를 아직 원한다면…… 어서 날 다시 세상으로 보내.”
그가 원하는 목적을 내가 달성해주지 않는 한,
내가 이대로 소멸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당돌하구나.”
그 한 마디에 왠지 모르게 익숙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당돌하면서도 참으로 영악해. 지극히 우리를 닮았다.”
그 ‘우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나로선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는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한 발짝 거리에 이르자 손을 들어 올리나 싶더니,
-푹
갑자기 내 심장이 있는 곳으로 강하게 찔러넣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감각에 절로 호흡이 멈추고, 몸에 긴장이 바짝 세워졌다.
곧 몸속에 흐르는 피가 전부 한곳으로 몰리기라도 한 듯 참기 힘든 고통이 이어졌다.
“내 목적이 뭔지 궁금하겠지? 네 시녀가 했던 말에 답이 있다.”
시녀? 에밀리를 말하는 건가?
“너의 질서를 바탕으로 너의 세상을 펼쳐라. 그 세상이 빛이 질서가 된 세상과 비견해서 어떻게 흘러갈지를, 내가 지켜보겠다!”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 말을 끝으로 주변 광경이 또 한 번 변하기 시작했다.
* * *
폭발하는 화산처럼 들끓던 마기가 어느덧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해져 가는 상황.
품에 안긴 베스티는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에 벨카리온은 허탈한 얼굴로 마계의 붉은 하늘을 맥없이 바라보았다.
그 옆을 로저스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야 로저스.”
“말씀하십시오 마왕님.”
“이 이성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다신 안 돌아올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 또 갑자기 돌아온다니까? 참 제어하기 힘든 놈이야.”
그 말에 베스티는 말없이 벨카리온의 몸을 더 꽈악 안았다.
“근데 지금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모를 것 같아. 저 인간들 때문에 내 땅에 사는 내 마족들이 죽었잖아. 난 그들을 위한 복수를 해줘야 하는 거고. 이런 상황에서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
“진짜 모르겠어서 그래. 이성적인 마왕은 이럴 때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냐?”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면 돼요.”
쉽사리 답을 못 내는 로저스는 대신해 베스티가 입을 열었다.
“이성적인 판단은 혼자가 아닌, 모두를 위한 거니까. 진정으로 마계를 생각하고 마족들을 위한다면, 틀림없이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그게 이성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거라면, 난 존중해줄 수 있어요 벨카리온.”
“머리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벨카리온은 푹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은 더한 것 같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시안과 나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
금방이라도 울 듯 불안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
시안은 그런 나나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말해줘요. 파파는 어디 갔어요?”
파파를 눈앞에 두고도 나나는 계속 그가 어디갔냐는 알 수 없는 질문을 반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린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나가 왜 저러지? 시안을 앞에 두고서 왜…….”
-툭
그때 뭔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아린의 몸으로 강한 떨림이 전해졌다.
돌연 마서를 떨어트린 루나브가 온몸을 벌벌 떤 채 시안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했던 게, 이걸 말한 거였나요?”
“왜, 왜 그래 루나브? 시안의 상태가 많이 안 좋기라도 한 거야?”
허나 겉으로 봤을 때 시안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선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하지만 루나브의 시선엔 달랐다.
“뭐?”
“지금 선배의 몸에 깃들어 있는 건, 선배의 영혼이 아니에요. 무언가 전혀 다른 영령이 선배의 몸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시안이 아니면 대체 누가……?”
아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고, 그렇게 시안과 눈을 마주쳤다.
“……!”
그리고 그제서야 아린도 깨달을 수 있었다.
수없이 마주 보고, 수없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던 그 눈빛이,
이제는 시안에게서 보이지 않았다고.
루나브의 말마따나 전혀 다른 누군가가 그의 몸에 들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짜. 끝까지 제멋대로네요…….”
서 있을 기력조차 빠진 듯 루나브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고, 아린도 그녀를 따라 똑같이 주저앉았다.
“그럼 지금 시안의 몸엔 누가 있는 거야?”
“아마도 마검의 영령이겠죠.”
아린의 질문에 루나브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망연자실한 웃음을 흘렸다.
“현재의 자신으론 마왕을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선배가 자신의 육체를 마검에게 완전히 내준 거예요.”
“이해할 수 없어! 대체 왜? 뭐 때문에?”
“왜겠어요? 당연히 우리를 지키겠다고 그런 거지.”
아린은 그 즉시 루나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라리 그 반대였으면 좋으련만…….”
그 말을 끝으로 루나브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시안이 이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종의 증표이기도 했다.
허나 아직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나나는,
“말해줘요 케이람! 파파 어딨어?”
시안의 몸을 잠식한 케이람을 향해 호소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케이람은 끝내 대답해주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기에,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
그저 매정하게 몸만 돌릴 뿐.
나나는 그 뒤를 쫓아가지 못해, 오히려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한순간에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이 기분.
이후에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굉장히 공허한 기분이었다.
그런 상황에 들리는 거라곤, 점점 멀어지는 케이람의 발소리뿐.
그 매정한 소리를 듣는 것 외엔, 나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벅
“…….”
-저벅저벅
“……!”
허나 점차 희미해지던 발소리가 재차 선명하게 울리는가 싶더니, 다시 나나를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나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몇 걸음 안 가 다시 그녀의 앞에 이른 시안은 말없이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러곤 아주 익숙한 손길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여긴 또 언제 왔어?”
나나의 얼굴엔 그제야 다시 웃음이 만개했다.
“파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