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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266화 (266/325)

제266화. 에밀리 (2)

마수 출현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자마자, 아린은 즉각 무장을 갖추고 황군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뭐야? 왜 떼거리로 몰려왔어?”

허나 황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있었다.

“마, 마수는요?”

“내가 벌써 다 정리했지.”

아직 몸이 덜 풀린 듯 세트는 한쪽 어깨를 수레바퀴처럼 크게 돌렸다.

“죄다 잔챙이들뿐이었어. 나한텐 준비운동도 안 됐다고! 언제쯤 오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건만 이리 싱거워서야…….”

그의 말대로 출현한 마수는 헬하운드 같은 하급 마수들이 대부분이었다.

베르트 공작의 부재로 방어 체계가 일부 붕괴된 지금 상황에선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출현한 이상, 두 번 세 번 연달아 나타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할 순 없었다.

아린은 기사들에게 주변 경계를 더욱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시안 이 녀석은 뭘 하고 있나 몰라? 그 마왕이란 놈이랑 한바탕 한 건 아니겠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세트 왕자?!”

“왜? 아예 가능성 없는 일도 아니잖아? 황녀님도 나름 예상한 일 아니었어?”

아린은 부정할 수 없어 침묵으로 응답했다.

시안을 향한 불편한 마음이 또다시 피어오르는 듯했지만,

“괜찮을 거예요. 그 두 사람은…….”

아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마음을 황급히 지워냈다.

지금은 어쭙잖게 생각하는 것보다 실리 있게 행동해야 했다.

“에밀리 시녀는 지금 검문소에서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기사들과 함께 이쪽으로 오라 할까요?”

“아니야. 우리가 돌아가자. 굳이 이 위험한 곳까지 오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린은 다시금 에밀리가 기다리고 있을 벨리아스의 검문소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황녀님!”

상황은 도리어 이상하게 흘러갔다.

“에밀리 시녀가 사라졌습니다!”

* * *

있었는데, 없어졌다.

현재로선 저 말보다 지금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검문소에 상주하고 있던 기사는 무려 열 명.

허나 그 스물에 달하는 눈이 검문소를 지키는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의 도주를 알아채지 못했다.

인기척도 없었고, 하다못해 마법을 쓴 흔적도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에밀리는 있었다가 없어져 버렸다.

“납치를 당했을 가능성은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생각해봐야겠지만, 일단은 도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마녀에 관한 단서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에밀리의 실종.

시안을 위한 일이라고 언급도 한 만큼 적극 협조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왜지?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향한 의심이 새롭게 돋아날 수밖에 없었다.

에밀리는 왜? 무슨 이유로? 하니엘 파시니티에 관해 입을 다물고 도망쳤단 말인가?

일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더욱 복잡하게 꼬이는 느낌이었다.

“화, 황녀님!”

에밀리의 소식을 듣고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브라이언이 달려왔다.

“사실입니까? 에밀리님 아니, 에밀리 시녀가 실종되었다는 게?”

아린은 약간의 불신이 담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브라이언도 모르고 있던 일인가요?”

“제 주군이신 시안 도련님께 맹세코 말씀드립니다! 에밀리 시녀가 사라진 일에 대해선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브라이언은 바로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선 절제된 표정으로 답했다.

“우리 쪽에서 일방적으로 요청하긴 했어도, 사실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란 건 브라이언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예상 도착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점, 호위군으로 동행시킨 황군은 일절 보이지 않고 오직 이들만 왔다는 점.

사실 에밀리 일행이 벨리아스에 도착하자마자, 앞선 두 점에 대해 먼저 추궁했어야 했다.

허나 마녀를 찾는 일이 더 급선무였기에 일단은 미루고자 했다.

이후 세트의 활약으로 마수의 출현도 물리친 상황에서 아린은 에밀리와 이야기를 먼저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나눠야할 에밀리는 사라져버렸고, 그녀의 일행인 브라이언만이 자리하고 있으니,

이제는 앞선 두 점에 대해서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어느새 브라이언의 주위엔 그를 포위하기 위한 다수의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대답해주세요 브라이언. 벨리아스에는 어떻게 오신 거죠?”

“제가 대답을 드리기에 앞서, 이거 하나만은 먼저 알아주십시오!”

브라이언은 부끄럼 한 점 없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사라진 건 에밀리 시녀만이 아닙니다!”

“네?”

“에밀리 시녀를 비롯해 나나와 하스티아님까지! 저를 제외한 모두가 같이 사라졌습니다!”

주변 모두의 눈이 일순간 휘둥그레졌다.

“그게 사실인가요?”

곧 반대쪽에서 기사 몇 명이 달려와 방금 전 브라이언이 말한 것과 똑같은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러니 황녀님께서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저희 도련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당장이라도 시안이 있는 곳으로 질주할 듯, 브라이언의 눈엔 급박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기사들을 물린 아린은 급히 브라이언과의 독대했다.

그러곤 그동안 순방단에게 있었던 일, 자신들이 에밀리를 벨리아스로 부른 이유, 그리고 시안의 현재 상황까지 간략히 정리해 브라이언에게 전부 알려주었다.

모든 경위를 알게 된 브라이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워낙 복잡한 일이다 보니 머리가 잘 정리되지 않는 듯 보였다.

“마녀를 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까? 이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에밀리 시녀를 부르신 거고요?”

“네 맞아요.”

“에밀리 시녀가 도망친 이유가 아무래도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브라이언은 착잡한 얼굴로 이번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을 들은 아린은 급기야 탁상을 박차며 몸을 일으켰다.

“에밀리가…… 마녀였다고요?”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다만 화이트 엘프인 하스티아님께서 제게 그렇게 물으신 건 분명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에밀리 시녀 역시…….”

브라이언은 마차에서 보았던 에밀리의 그 불길한 뒷모습이 아직 잊히지 않았다.

“아무튼, 뭔가 알고 있단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에밀리뿐만 아니라 하스티아 또한 마녀에 관해 뭔가 알고 아는 게 있었다고 하면, 그녀가 하스티아를 데려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나나까지도…….”

아린은 무언가 원치 않은 진실이 발설될 것을 우려해 에밀리가 나머지 일행들을 데려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나나는 저 그러니까…….”

나나가 언급된 순간, 브라이언은 잠시 머뭇거렸다.

“혹시 에밀리가 갔을 법한 장소로 추정되는 곳은 없을까요?”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긴 합니다.”

브라이언은 바로 손을 들어 창문 사이로 보이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이전에 에밀리 시녀와 대화를 한 번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만약 벨리아스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딜 먼저 가고 싶냐고…….”

“거기가 어디죠?”

벨리아스 태생이었던 브라이언은 그 대화에서 단연 자신의 집에 가장 먼저 가고 싶다고 답했다.

반대로 벨리아스 태생이 아니었던 에밀리는 다른 곳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모든 곳이자, 첫 출발점이라는 말도 아끼지 않고 내보였던 바로 그 장소.

“도련님의 방입니다.”

* * *

-끼익

문을 열자마자 케케묵은 먼지가 그들을 반겨 맞이했다.

“어우.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에밀리는 환기를 위해 창문을 먼저 연 후 침대의 이불을 가져다가 탈탈 털어냈다.

“아무리 내쳐진 자식이라도 그렇지. 주기적으로 청소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없다고 그동안 아무도 안 해놨네.”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에밀리는 좀처럼 손을 쉬지 않았다.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흐트러진 가구와 조형물을 정리하는 등,

간만에 베르트 공작가의 시녀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었다.

“여기가 파파가 살던 방이에요?”

“어. 우리 살던 곳이랑 다를 바 없지?”

너무 화려하지도, 그리 초라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구색만 맞춘 방.

그래도 처음 방문하는 시안의 공간에 큰 흥미를 느낀 듯 나나는 방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아무 데나 앉아있어요.”

‘……!’

문 쪽에서 잠자코 서 있던 하스티아는 깜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는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오나 싶다가도 벽 한쪽에 걸려 있는 한 그림을 보고선 발을 멈췄다.

짙은 흑발에 날카로운 눈매가 돋보이는 초상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 방의 주인을 위한 그림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10년 전, 그러니까 딱 도련님이 열 살 때 모습이네요. 공작님의 시련을 통과하고 전선 행을 허락받은 기념으로 그린 초상화에요. 이 저택에 있는 도련님의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죠.”

어린 시절이라 해도 평소 시안으로부터 보기 힘들었던 귀족의 품위가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그냥 저 그림 속 모습 그대로 고귀한 귀족으로서 쭉 살아갔으면 좋으련만, 대체 왜 이리 고생을 자처하며 사는지. 에휴, 이제와서 한탄해봤자지…….”

에밀리는 소탈한 한숨을 내쉬며 청소를 이어 나갔다.

“에밀리 언니는 무엇 때문에 파파의 곁에 있었냐고 묻는데?”

그러자 시안의 침대에 누워있던 나나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하스티아의 감응을 대신 전해준 것이었다.

“시녀가 주인 곁에 붙어 있는 게 뭐 이유가 있겠어요?”

‘…….’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하스티아는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나도 조금 놀라긴 했어요. 아무리 화이트 엘프라지만, 도련님께도 꼭꼭 숨겨놨던 내 정체를 들킬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저 꼬맹이가 아니었다면 계속 몰랐겠죠.”

“에밀리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나나는 내심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에 하스티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금 눈빛을 밝혔다.

“언니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하스티아도 알고 있었대! 파파를 향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 돋보였다고 하는걸?”

나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안을 향한 관심과 애정의 시선은 사실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허나 그중 가장 독보적인 시선을 꼽으라면 하스티아는 망설임 없이 에밀리를 꼽을 수 있었다.

애정의 양이나 정도의 차이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차이.

시안과 오랜 시간 동안 나누고 다져왔던 그 시간적 교감의 차이가 남들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

“내가 도련님이랑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그건 당연한 거지.”

에밀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화답했다.

-탁탁탁

계단에 이어 복도를 타고 전해지는 다수의 발소리.

이에 에밀리는 걸레를 집어 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빨리도 왔네. 사람들 오면 도련님 방 청소 좀 깨끗이 해달라고 하세요. 사면도 된 마당에 왜 아직도 이리 방치하는 거야!”

그러곤 연신 투덜대며 창가 쪽으로 걸어 나갔다.

-벌컥!

“에밀리님!”

이내 대차게 문이 열리며 가장 먼저 달려온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빨리 달려왔는지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브라이언이었다.

“당신이 범인이었네! 조금만 더 여유롭게 오면 어디 덧나요? 치워야 할 게 아직 산더미로 남아있는데!”

“기다려주십시오 에밀리님! 들으셔 야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을 이야긴 없고, 내가 해야할 이야기는 저 둘에게 이미 다 해놨으니까 황녀님껜 알아서 전해주세요.”

“어,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그 물음에 대해서 에밀리는 답하지 않았다.

“도련님. 잘 모셔줘요. 나 없이도…….”

“일단 창가에서 물러나세요! 잠시 진정하고 제 이야기를!”

“당신 말주변도 없잖아.”

그러더니 대뜸 마지막 인사와 함께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에밀리님!”

깜짝 놀란 브라이언은 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펑!

그러자 창문 아래에서 일순간 광채가 번쩍였으며, 브라이언은 바로 그 아래를 내려다봤지만,

“……!”

에밀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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