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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248화 (248/325)

제248화. 조력자들 (5)

누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7년 전 레메아 협곡.

난 그날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기사로부터 배신당하고, 망연자실한 상태에 빠졌던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러면서 제2의 삶을 선사했지.

그녀가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진정한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특별히 더 관여하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총명한 그녀이기에 알아서 가꿔나가리라 생각했으니,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얼굴은커녕 소식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보고 싶진 않았냐고?

왜 안 보고 싶었겠는가?

어린 시절, 그 지옥 같은 집에서 유일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던 가족이자,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내 사람이라고 가장 먼저 정한 사람인데.

안 보고 싶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따뜻한 미소와 함께.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가장 필요할 순간에 내게 와준 것이다.

“얼굴이 변했네 시안?”

무려 7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를 구해줬을 때만 해도, 이게 정말 내 동생일까 싶을 만큼 거리감이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내가 알던 시안으로 되돌아왔어.”

“무슨 말입니까?”

“외롭고, 고달파서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한 마리의 어린 양 같은 모습. 그렇기에 내가 하염없이 보살펴줘야 하는 아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너의 모습이야.”

누나는 싱그러운 눈웃음과 함께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아직도 애 취급하시겠다 이겁니까?”

“좀 분위기 있게 받아주면 덧나니? 여자 대하는 법은 여전하구나?”

피식하고 웃던 것도 잠시,

고이 맞잡은 그녀의 손에서 순간, 기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않은 순수한 물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듯한 기분.

허나 그 속엔 인간으로서 차마 가질 수 없는 매우 신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검은 안개의 신을 계승 받은 내 힘과 매우 유사한 그런 힘 말이다.

“손이 차갑네?”

누나 역시 나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 것일까?

나와 마찬가지로 내 손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역시, 너도 그랬던 거구나?”

“대체 지금까지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나는 급 표정을 바꾸며 추궁하듯 물었다.

누나는 당황하지 않은 채, 잠시 상처와 굳은살로 가득한 내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7년 전 너의 수배지를 처음 보고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었어. 당장이라도 네가 있는 곳에 달려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대체 어쩌다가 그런 곳에 들어가게 됐는지, 전부 묻고 싶었지. 네가 숨기고 있었던 게 이런 거였냐면서…….”

내가 누나에게 사실을 숨긴 이유가 뭐였겠는가?

그녀에게 혼란을 주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피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지. 내가 그런 식으로 네게 진실을 물어봤자, 결국엔 우리만 서로 슬퍼질 테니까. 사실 그런 걸 따질 자격도 없었다고 해야겠지. 난 내 주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전선에서의 일이 떠오른 듯, 그녀의 얼굴엔 잠시 씁쓸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래서 나 역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혹여 네가 잘못된 길을 간다면 바로 잡아주고,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면 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그런 든든한 힘을 말이야. 비록 이번엔 힘이 못 돼주었지만…….”

마주 잡은 누나의 손에서 이내 떨림이 일었다.

그 떨림에선 나를 도와주지 못했다는 그녀의 미안한 감정이 잔뜩 느껴지고 있었다.

“너는 네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고 믿는 거니?”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됐어. 난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순간 감정이 치밀어 오른 나머지, 그녀의 손을 더욱 강하게 붙들며 반박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누님은 제가 아닌 누님만을 위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절 도와달랍시고 누님을 구해드린 게 아닌……!”

“누가 너를 위한다고 했니?”

“……?”

“너를 위한 게 아니야. 이건 전적으로 나를 위한 일이지.”

덤덤하면서도 확고한 대답에 나는 말문을 잃어버렸다.

“난 너의 가족이자 누나야. 너는 나의 소중한 동생이고. 가족이 가족을 위해 힘을 써주겠다는데, 어느 누가 잘못됐다고 하겠니?”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 잔뜩 올라왔지만, 나는 무엇하나 내뱉을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논리를 이겨낼 순 없을 것 같으니.

“아까 식당에서 재밌게 놀더라?”

“보셨던 겁니까?”

“그럼! 어쩔 줄 몰라 하는 귀여운 얼굴까지 다 봤지. 보면서 안심이 되더라. 너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정말 많다는 게.”

누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란 표정과 함께, 나를 한 번 더 안아주었다.

“혼자서 외로워할 필요 없어. 너를 도와줄 사람이 주변에 이렇게 많으니까. 그러니 조금은 더 마음을 열어도 돼. 넌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야.”

행복이라.

인생을 두 번 사는 동안, 난 그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살아왔다.

당연히 그 경험조차 하지 못했지.

그런 나에게 누나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해주었다.

‘그러니 응원해주마. 제자의 행복한 앞날을 바라는 한 명의 스승으로서 말이다.’

순간, 당주가 죽기 전 내게 해주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만약, 지금 누나의 품에 안겨있는 이 순간을 행복이라고 한다면.

난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설사, 모두를 지키고,

나 혼자 죽는 한이 있더라도.

* * *

‘……!’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일련의 기운을 느낀 하스티아는 급히 눈을 뜨는 동시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서, 설마?’

그녀는 곧 함께 잠든 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여관 밖으로 나와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려는 순간,

“그리 급하게 찾을 필요 없다.”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선 바로 몸을 돌렸다.

은은한 오색빛을 발하는 얼굴만 한 크기의 정령.

정령은 이내 어두웠던 주변을 밝히는 광채를 뽐내는가 싶더니, 점차 인간의 형태로 모습이 변화했다.

“설마 여기서 너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하스티아.”

하스티아는 당황한 나머지,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마, 마리안님?’

프루이나의 수호 드래곤 마리안.

몇 년 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프루이나를 떠났던 그녀가 난데없이 인간들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인간형으로 폴리모프 한 채.

‘여, 여긴 어쩐 일로?’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말 같은데? 다른 일족원은 어디 가고, 왜 너 혼자 여기 있는 거니?”

‘그, 그건 일련의 사정이…….’

“다른 일족원은 알고?”

‘네…….’

“그럼 됐다. 나라고 말도 없이 너희들 곁을 떠났던 마당에 그리 복잡한 사정을 듣고 싶진 않구나. 너도 뭐 여러 일이 있었겠지.”

마리안은 집요하게 묻지 않는 대신, 하스티아의 몸을 빤히 훑어보았다.

“한데 이상하구나. 왜 너에게서 검은 안개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화들짝 놀란 하스티아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해 얼굴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소울 스톤 한 번 꺼내 보렴.”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하스티아는 당황한 마음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꺼낸 소울 스톤을 마리안에게 내보였다.

스톤을 확인한 마리안은 바로 하스티아에게 물었다.

“검은 안개의 계승자와 함께 있던 거니?”

‘네…….’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녀의 노기 어린 한마디와 함께 주변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른 엘프도 아닌, 신의 보호를 받는 네가, 검은 안개의 존재와 함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말 몰랐던 거니?”

‘여, 여기엔 사정이 있어요 마리안님! 시안님께선 저희 일족을!’

“너희 일족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남자다.”

하스티아는 차마 감응을 더 잇지 못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신의 보호를 받은 엘프가 신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남자를 쫓아다니다니.

새삼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을 했는지 깨달은 하스티아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리안은 그런 하스티아를 바라보다가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내가 무슨 자격으로 널 나무라겠니? 나도 똑같은 짓을 해온 마당에.”

‘네?’

“아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알게 될 일, 굳이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진 않구나. 그보다…….”

마리안의 시선은 곧 하스티아가 아닌, 그녀의 뒤쪽으로 향했다.

“생각지도 못한 위험한 존재를 여기서 다 보게 되는구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

낯선 기운을 느끼고선 바로 몸을 돌렸다.

“저 아이도, 그 검은 안개의 계승자가 데리고 있던 아이니?”

‘네, 맞아요. 우연히 발견해서 키우게 된 아이라고…….’

“키워? 쟤를? 말이 안 되는구나. 저런 아이를 여태 폭주시키지 않고 어떻게 제어시켰다는 거지?”

마리안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놀란 건 하스티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낮에 식당에서 함께 했을 땐, 아무 문제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인간과 드래곤의 기운이 부적절하게 어우러진 뭔가를 보는 기분.

왠지 모르게 위화감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

시안에게 파파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시안 또한 그를 가족처럼 소중히 대한다고 했던 아이, 나나.

나나는 혼이 나간 듯 핏기 한점 없는 멍한 눈으로 하스티아와 마리안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냄새가 나요…….”

‘……?’

“그다지 맛있어 느껴지는 나쁜 냄새는 아닌데, 그렇다고 가만둬서도 안 될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이유가 뭘까요?”

-기기긱

질문과 동시에 나나의 몸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위협을 감지한 듯 날카롭게 솟은 뿔.

신기를 발산하며 쫙 펼쳐진 날개.

음침한 기운을 풍기며 앙증맞게 살랑이는 꼬리까지.

한눈에 봐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뭐 때문에 오셨는지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 * *

황혼이 지고 새벽의 푸른 장막이 드리워지는 시간.

밤샘 집무로 인해 얼굴이 초췌해진 아린, 허나 그녀는 아직 잠에 들 수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신이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벨리아스 영주, 윌리어스 베르트 공작의 전언이 말이다.

그동안 아린은 실로 많은 상황을 예측하였다.

황실이 제기한 방향에 대해, 베르트 공작은 동조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장남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막내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에 걸맞은 다음 계획과 방향을 끊임없이 구상하며 가급적 모든 상황에 아린은 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이게 대체?”

베르트 공작의 전언엔,

“무슨 말이지?”

아린이 예상한 그 어떤 내용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전언엔 황실이 추구하는 방향에 관한 내용도, 어떤 자식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에 대한 선택도 아닌,

완전히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벨리아스의 영주. 윌리어스 베르트의 이름으로 황실에 요청합니다.>

베르트 공작이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요청.

전선의 맹주이자, 황군에 버금가는 군사력을 통솔하고 있는 그가 황실에 요청한 것은 무려,

<마계 정벌을 위한 지원군을 보내주십시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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