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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192화 (192/325)

제192화. 외면 (1)

“확실한 거 맞지? 이거 애먼 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몇 날 며칠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

인적이 드문 산중 한가운데 위치한 오두막 한 채.

사실 오두막이라기보단 그냥 저택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꽤 큰 집이었다.

“직접 보고도 못 믿을 일이니까 그렇지! 이 산중에 이런 큰 집이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 안에 겨우 젊은 여자 둘이 산다는 게 말이 돼?”

“남자 한 명도 사는 것 같긴 해! 하지만 지금은 없을 거야. 대체로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온다 했거든! 마을에서 한 번 봤는데, 어벙하게 생겨서 힘이나 제대로 쓸 것 같지도 않았다고! 낄낄.”

뾰족 수염의 남성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동료를 안심시켜 주었다.

“얼굴 보면 너도 아주 까무러칠걸? 세상에 그렇게 이쁜 여자는 또 못 봤다니까? 분명 어느 귀족 가문의 여식일 거야!”

“귀족 가문의 여식이 이런 산중에 왜 숨어 사는데?”

“그거야 뭐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 아무튼 우리가 할 일은 그 여식을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버리는 거야! 분명 다른 곳에 비싸게 팔아넘길 수 있을 거라고! 팔아치우기 전에 우리도 좀 쓰면 좋지 않겠어!”

“한 명 더 있다며? 그럼 전부 다 납치해버리지 뭐!”

벌써부터 일이 성공하기라도 한 것마냥, 사내들은 서로를 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뒤에서 어느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저희 집에 볼일이 있으신가요?”

“흐익!”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사내들은 이내 넋을 잃은 듯, 입술을 어벙하게 내밀었다.

보기 드문 분홍빛 머리카락을 청초하게 휘날리는 순진무구한 얼굴의 여인이 그들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벅차게 한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이는 열아홉에서 스물 정도 돼 보이는 앳되면서도 굉장히 귀여운 여인이었다.

“답이 없으시네? 말을 못 하는 분들이 신가?”

여인은 헤벌쭉 웃으며 대답을 재촉하였다.

이에 뾰족 수염 남성이 목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아가씨께서 저 집의 주인이 신가?”

“주인까진 아니고, 그냥 살고는 있어요. 주인은 우리 파파에요!”

파파라는 말에 사내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더 볼 것도 없이 귀족 가문의 여식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아하, 그렇구먼!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오히려 도움을 주기 위해 찾아온 좋은 사람들이라고나 할까? 보아하니 이런 산중에 수호 기사도 없이 사는 것 같은데, 그러다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곤란하잖아?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주려고…….”

“거짓말.”

여인의 입에서 단호하게 뱉어진 한마디에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이렇게 나쁜 냄새가 솔솔 피어오르는데, 좋은 일을 하러 왔다고요? 나나를 속일 순 없어요~.”

“냄새라니? 대체 무슨 말을……?”

“에밀리 언니가 보기 전에 빨리 먹어 치워야겠네.”

급기야 군침 도는 음식을 보기라도 한 듯, 혀를 쭉 내밀며 입술을 적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기괴한 나머지, 사내들의 등에서 절로 땀이 흘렀다.

“……!”

허나 그런 생체적 반응도 잠시일 뿐.

사내들이 느꼈던 기괴함은 머지않아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이, 이게 뭐야?”

그들에게 천사 같은 미소를 남발하던 여인은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설렘에 콩닥콩닥했던 심장이 이제는 두려움에 방망이질 치듯 쿵쾅쿵쾅 요동쳤으며, 한시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공포에 잠식된 발은 움직여 주지 않았다.

“잘 먹겠습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의 시작이었다.

* * *

“뭐야? 어디 갔다 왔어?”

“자, 잠깐 밖에 바람 쐬러요!”

혹여나 에밀리에게 들킬세라, 나나는 황급히 입을 닦았다.

“브라이언은 오늘도 늦어요?”

“그런다나 봐. 보나 마나 마을 사람들에게 호구 잡혀서 쓸데없는 잡노역이나 하고 있겠지…….”

에밀리는 못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스프 속에 담긴 국자를 이리저리 저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양이 더 많은 것 같네? 다 먹을 수 있지 꼬맹아?”

“그, 그럼요! 다 먹을 수 있죠!”

“뭐야 그 표정은? 어디 가서 뭐 먹고 왔어?”

“머, 먹긴 뭘 먹었다고 그래요? 나 방에 있을게, 다 되면 불러줘요 언니!”

나나는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이상한 기색을 느낄 새도 없이, 에밀리는 다시 스프를 끓이는 데 집중하였다.

“휴…….”

부리나케 방으로 달려온 나나는 바로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곤 스르륵 눈을 감으며 휴식을 취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바로 옆에 있는 서랍을 열어 편지 하나를 꺼냈다.

일단 외면 자체는 많이 헤져있는 상태였다.

못해도 수십 번은 반복해서 읽은 듯 보였다.

“…….”

나나는 감상에 젖은 듯 편지를 읽다가도, 이내 힘없이 털썩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 싶다…….”

“누구를?”

불현듯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까지 우수에 차 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놀람과 반가움에 가득 찬 환희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파파!”

어느샌가 돌아온 시안이 한결같은 덤덤한 모습으로 나나의 앞에 앉아있었다.

“뭐 하고 있었길래 내 냄새도 못 맡았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나는 읽고 있던 편지를 황급히 뒤로 숨겼다.

“어라? 도련님 언제 오셨어요?”

부엌에 있던 에밀리 역시 시안의 기운을 느끼고선 나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주인이 못내 반가웠는지, 시안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밥은 드시고 다니는 거죠?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또 반쪽 되셨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갸름해진 얼굴을 보며, 에밀리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남자가 음식만 잘 먹는다고 되는 줄 아니? 가끔씩은 정기 흡수도 해주고 그래야 살맛이 나지. 멀쩡한 거 뒀다가 뭐에 쓰려는 지 몰라?]

덩달아 실체화한 케이람이 침대에 쭉 뻗으며 말했다.

시안은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파파! 우리 나가자! 나나 산책 가고 싶어!”

“그래 알았어.”

기쁜 마음에 펄쩍 뛴 나나는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도 시안의 시선은 곧 침대 옆에 있는 서랍에 향했다.

분명 자신이 올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편지를 읽고 있었다.

굳이 꺼내서 내용을 확인하고픈 마음까지는 없더라도,

편지 외면에 쓰여있던 이름만큼은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아린>

* * *

가람 왕국 북쪽 경계 도시 아젤다.

로열 아카데미가 위치한 중립 도시 루웬과 가장 가까운 도시이기도 하며, 7년 전 ‘안개가 빛을 걷어낸 날’ 사건 이후 우시프 제국과 가람 왕국의 인사가 모여 협상을 진행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당시 현장에 있었던 두 인사가 이번 협상의 대표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제국의 파견단이 도착하기 전, 서면을 통해 이번 사건에 관한 배상 조약에 대해 동의를 완료한 상태였다.

즉, 지금 행해지는 대면 만남은 조약에 관한 확인 작업에 불과했다.

“…….”

학회원, 수호 기사, 조약 체결을 위해 동행한 가신들까지 전부 물린 채, 회담장 안에 남은 루나브와 아린.

-우우웅

둘만의 온전한 대화를 위해 루나브는 바로 제한 결계부터 생성했다.

“오랜만이네 루나브? 설마 이번 협상의 대표로 네가 나올 줄은 몰랐어.”

“피차 마찬가지네요. 저도 설마하니 황녀님께서 파견단의 대표로 와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좀처럼 굳은 낯빛을 풀지 못하는 루나브에 비해, 아린의 얼굴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닌, 자신을 감추기 위해 거짓으로 꾸민 미소라는 걸 루나브는 모르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한 이후 처음이니까, 거의 4년만인가? 정말 이전에 느낀 거지만, 루나브 넌 볼 때마다 달라져 있구나. 항상 눈에 띄게 성장해 있어.”

시답잖은 성장 얘기나 하자고 둘 만의 만남을 주선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칭찬에 대한 아무런 화답 없이, 루나브는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아린에게 건넸다.

아린은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서신을 읽어 나갔다.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대체로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놀라지 않은 척을 하고 계신 걸까요? 아님, 놀랄 일이 아니라서 그러신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몰랐어. 하지만 루나브 네 말마따나 별로 놀답다는 생각은 안 드네.”

협상에선 논의되지 않은, 네프로디테 성녀의 악행과 더불어 그것을 가람 왕국 측에 덮으려 했던 진실이 고스란히 담긴 문서였다.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우리 황실은 이쪽과 전혀 관련이 없으니까.”

“황실이 아닌, 황녀님만 관련이 없는 게 아닐까요?”

루나브의 직설적인 물음에도 아린은 씁쓸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는 엄연히 말해 꼬리 자르기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이것이 퍼진다면 제국 소속의 빛의 기사단을 가람 왕국 측에서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국가 간의 중대한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허나 이 모든 것들은 가람 학회의 일원들에 의해 전부 차단되었다.

루나브의 주도하에.

“이걸 나한테 보여주는 이유는, 루나브도 이 진실이 퍼지는 걸 원치 않아서인 거지?”

루나브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대단하네. 진실이 새어나가는 걸 막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황녀님도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우시프 제국을 위해 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가람 왕국을 위해 한 일도 아니었다.

이것은 순전히 루나브 본인만을 위한 일이었다.

이번 사건에 시안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막기 위한.

“만약 이번 협상으로 지급하는 배상금 외에도 추가적으로 요구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줘. 내 선에서 다 해결할 테니까.”

“무분별한 보상은 황실에서도 그리 원하는 일이 아닐 텐데요?”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괜찮아. 나 역시 황실의 일원이잖아.”

아린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며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만 일어나야겠다. 오랜만에 만난만큼 좀 더 재미난 담소라도 나누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네.”

용무가 끝났다고 판단한 아린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보자. 루나브. 만나서 즐거웠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음이라는 말이 마냥 좋게 들리지 않았다.

과연 이 둘 사이에 있어 다음이라는 게 있긴 할지,

다음에 만날 때도 그녀가 과연 황녀라는 직책으로 자리할 순 있을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저, 시안 선배 만났어요.”

“……!”

인사와 함께 방을 나가려던 아린의 발걸음이 그 한마디에 멈춰버렸다.

“그래?”

태연한 대답 속엔 감출 수 없는 떨림이 서려 있었다.

“잘…… 지낸대?”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이유로 만났는지도 아닌,

그저 잘 지내냐는 단호한 물음 한마디.

지금의 아린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물음이었다.

“여전했죠 뭐.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지나치던걸요? 의도한 건진 모르겠는데, 못 보던 사이에 새 여자도 하나 꼬셨더라고요.”

“여전했구나…….”

허탈한 웃음 속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애절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잘 지내면 다행인 거지…….”

아린은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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