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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151화 (151/325)

제151화. 무엇을 위해 (4)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업무 서류들로 가득한 책상.

허나 지금 쿤델의 눈엔 그런 것들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까 싶어 서류를 보면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종이를 바로 구겨버렸다.

시안 베르트.

그가 가진 가능성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비록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9성에 이른 자신의 마력을 그리 손쉽게 견뎌낸 자는 여태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지 않은가?

갓난아기가 성인 남성을 무력으로 제압한다는 것만큼, 애초에 상정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눈앞에서 떡하니.

새삼 세월의 덧없음이 물밀듯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또 한 사람.

아니, 사람이라 하기도 애매한 반쪽짜리 드래곤.

설사 인간에 더 가까운 존재라 한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존재를 이대로 아카데미에 둬도 되는 것일까?

시안은 정당방위라고 설명하긴 했으나, 그 아이는 엄연히 사람을 죽였다.

언제, 어디서, 그 위험성이 폭발할지도 모르는 존재를 빨리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은 뭐에 홀렸다고 음식까지 보내주고 앉았는지.

인생 60년을 살면서 제일 한심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지금이라고 할 만큼,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똑똑

“들어오게.”

노크 소리에 이어 문이 열리며, 교관 시리카가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낯빛이 굉장히 어두웠다.

“…….”

그녀는 조심스레 쿤델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말없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아직 안을 확인하진 않았지만, 쿤델은 봉투의 정체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무슨 의미지?”

“보시는 그대롭니다.”

당황한 쿤델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지만, 시리카는 초연하게 답했다.

“오늘부로 아카데미 교관직을 그만두겠습니다.”

그녀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사직서였다.

“이유가 무엇이냐? 분명 이번 일 하나 때문은 아닐 거로 아는데?”

긴급 조치가 내려진 이후, 시안의 감시를 담당했던 이가 바로 그녀였다.

다만 시리카가 확인한 건 시안이 아닌, 시안으로 변신했던 반쪽짜리 드래곤.

평소 신임했던 그녀가 드래곤의 신기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 의외였긴 하나, 그걸 잘못이라 몰아갈 순 없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총장의 말을 이행하기라도 하려는 걸까?

그녀의 굳은 눈빛엔 진심이 담겨있었다.

“몇 달 전부터 계속 생각해왔던 겁니다. 이제 그만, 아카데미를 벗어나 개인적인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개인 사유로 인해 교관직을 그만두는 거라며 설명했다.

“집안일 때문이냐?”

“아닙니다. 가문과는 관련이 없는 순전히 저 개인적인 일입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세히 설명할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시리카. 넌 내가 지금껏 봐온 교관 중 가장 교관다운 교관이었다. 사트웰의 뒤를 이어 부총장 자리도 생각했을 만큼 너를 많이 신뢰했었지. 그건 너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예…….”

“솔직히 이번 일에 관해선 너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체험 학습의 승인도 그렇고, 그 시안 베르트에 감시에 대해서도…… 아니다. 이 얘기는 관두기로 하지.”

시안이 언급되려 하자 급히 말을 물리는 쿤델이었다.

“아무튼 여러모로 널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입장이다. 언젠간 떠날 수 있을지언정, 지금은 아니야. 이 사직서는 받지 않도록 하겠다.”

쿤델은 봉투를 다시 그녀 쪽으로 밀어 넣으며 확고한 거부 의사를 보였다.

시리카는 기각된 사직서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오래는 못 있을 겁니다…….”

본래의 마음은 꺾이지 않을 거라는 굳은 의지가 돋보이는 말이었다.

그렇게 용무를 끝내고 총장실을 나가려는 순간,

“그러고 보니, 보리스 교관의 휴직을 처음 전한 것도 시리카 자네였다지?”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슨 이유가 있다고 하던가?”

“그 또한 개인적인 사정이라 했을 뿐, 자세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허나 내색하진 않으며, 쿤델의 물음에 태연하게 답했다.

“알겠네.”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시리카는 그대로 총장실을 나왔다.

그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별관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

의문의 살인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그런 걸까?

달빛이 환함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의 거리는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자신의 연구실 앞에 도착해,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

시리카는 불이 꺼져있는 방 안에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허나 주저하진 않고 바로 문을 열었다.

-끼익

빛이 들지 않은 어둠의 그늘 속, 선명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한 소년.

그를 본 시리카가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상담이 필요해서 왔나요? 시안 학생?”

* * *

겉은 웃고 계시긴 한데, 속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상담이라니?

우리 당주님. 무슨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계실까?

“상담만큼 중요한 말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일단은 맞춰 주자는 마음으로 능글맞게 답했다.

“그랬군요. 이런 야심한 밤에 손수 찾아와줘서 참 고마울 따름이에요.”

-탁

그녀는 슬그머니 문을 닫는가 싶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겨 도청 방지 결계를 생성했다.

교내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하던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우웅

응? 뭐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그녀가 마나를 발현하고 있었다.

곧 방 전체에 투명한 장막이 퍼지며, 해당 공간을 봉쇄시킨 제한 결계가 만들어졌다.

이쯤부터 느낌이 싸해지기 시작했다.

-스릉

머지않아 그녀의 품속에 잠들고 있던 검은 단검이 짙은 흑색의 도신을 드러내니,

그 순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큰일 났다고!

-우당당탕!

당주의 손목을 붙잡은 양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케이람을 두고 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 이 꼬라지를 그녀가 봤다면 일전의 사건보다 더 큰 유혈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다.

“어디 내 경고를 무시하고 멋대로 갔다 온 소감이나 한번 들어볼까? 우리 소중한 계승자님께서 말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난 정말 섭섭해서 미치는 줄 알았단다!”

이거 단순한 체벌 수준이 아닌데?

차마 쳐다보기 힘든 그녀의 살벌한 얼굴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저, 절 죽이실 생각입니까?”

“까짓것 못할 건 뭐 있겠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계승자 따위, 그냥 죽이고 새로 하나 만들지 뭐! 내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는 그런 착한 아이로 말이야!”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지금?”

“안 될 건 뭐 있을까? 원래 쉽게 오는 건, 쉽게 가는 법이란다! 아에르님도 분명 이해해주실 거야!”

언뜻 조금 과한 훈육의 과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눈이 돌아가다 못해 뒤바뀐 저 당주의 얼굴을 보라.

설마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임했다간,

진짜로 죽는다!

* * *

10분 정도 거친 훈육의 시간을 갖고 나서야 당주는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마서의 조각을 얻은 것을 비롯해 유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 그나마 빈손으로 오진 않아서 다행이구나.”

빈손으로 왔다면 또 어떤 훈육이 이어지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러면서 내게 말없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널 노렸던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다.”

유일하게 살려뒀던 용병을 심문해서 얻은 그들에 관한 정보들이었다.

사실 사냥개의 이름이나 품종이 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주인에 관한 정보가 중요하지.

한데, 그 주인이란 놈들이…….

“황실?”

디오네 황자의 자식들이자, 아린 황녀의 손위 형제.

3황자 파비앙과 4황자 네로비앙이 바로 암살자를 보낸 주범이었다.

“게릭이라는 용병에게 얻을 수 있던 건 그게 끝이야. 너도 알겠지만 원래 사냥개에게 그리 많은 정보를 주진 않아. 그래도 추측 정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아린 황녀의 약혼을 시기한 그 형제가 그녀를 견제하겠답시고, 저를 노렸다는 겁니까?”

“더 나아가, 그 주체를 다른 곳에 덮어씌우려 했을 수도 있겠지.”

견제가 있을 거란 건 애초부터 예상했던 일이기에, 별로 놀랍진 않았다.

물론 선을 좀 많이 넘은 것 같긴 하지만.

“노델리에선 어떻게 온 거니? 그렇게 단숨에 올 수 있을 거리는 아니었을 텐데?”

“제 아공간과 미스트의 아공간을 연결하는 게이트를 생성했었습니다. 덕분에 한걸음에 올 수 있었죠.”

한 번 뜸을 들인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공간까지 생성할 수 있었던 거니?”

“얼마 안 됐습니다.”

힘이란 건 사실 굉장히 정직한 요소다.

쓰면 쓸수록 끝도 없이 성장할 수 있는 반면, 안 쓰면 한도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되지.

전 미스트 대원, 린제 니할로프와 혈전을 치르면서 내 몸은 한층 더 정밀한 안개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이제는 나도 아에르의 공간과 유사한 신의 아공간을 생성할 수 있다는 거지.

신의 아공간이 가진 특권 중 하나가 뭔지 아는가?

바로 비슷한 기운을 가진 두 개의 공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다는 거다.

나는 노델리에서 생성한 아공간을 루웬에 있는 아공간과 연결해 중간 거리를 단축시키는 게이트를 생성했다.

그 결과, 아무리 빨리 가야 이틀은 걸릴 거리를 단 1분 만에 오게 됐지.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나나의 안위 확인이었다.

“나나를 아공간에 가둬 놓으셨더군요…….”

“그럼 폭주해서 사람까지 먹어 치운 꼬맹이를 방에 고스란히 갖다 놓을까?”

“돌려보낼 생각도 없으셨던 걸로 압니다만?”

“…….”

순간 방안에 살벌한 기류가 흘렀다.

“나나를 죽이실 생각이셨습니까?”

“이젠 그러지도 못하겠더구나. 네가 그 꼬맹이의 존재를 총장님께 대놓고 드러내서 말이지…….”

그녀는 숨길 일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답했다.

노델리에 찾아온 대원들로부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거짓말 안 하고 뇌가 뒤집히는 기분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울고 있는 나나의 모습이었다.

나도 없는 마당에 또 다시 식욕이 발생하여 일을 저지르고, 뒤늦게 어쩔 줄 몰라 울고 있는 모습.

당주는 그런 나나를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격리했으며, 일이 해결되면 그녀를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 행위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걸 내가 더 잘 알고 있으니.

하지만,

“하나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아이가 사람을 먹건, 드래곤을 먹건 상관없이, 앞으론 건드리지 마십시오. 책임은 전부 제가 집니다.”

당주는 굳은 얼굴로 팔짱을 끼고선 나를 그윽하게 바라봤다.

“나도 하나만 분명히 말해주마.”

“말씀하십시오.”

“암살자에게 있어 책임져야 할 건, 자기 몸뚱이뿐이야. 그마저도 어쩔 땐 버려야 할 순간이 오지.”

대충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왔다.

“지켜야 할 게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네 몸이 무거워지고 둔해진다는 뜻이야. 그럼…….”

“제 몸을 위협할 약점이 늘어난다는 뜻이겠죠.”

“…….”

당주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네게 이 말을 했던 기억은 없던 거로 아는데?”

“그럼 전생의 당주님께서 하셨나 보죠.”

당주는 말을 말자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 네 의사는 알겠다. 하지만 내가 온전히 들어줄 거란 생각은 하지 말렴.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새겨는 듣겠습니다.”

한고비를 넘기고 나니, 탁상에 놓인 하얀 봉투에 절로 시선이 갔다.

아직 내용은 확인하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것 같았다.

“사직서…… 입니까?”

“놀랄 것 없다. 슬슬 준비하려던 참이었으니. 그 보리스란 놈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마당에 나도 속 편히 이곳에 있을 순 없지.”

뭐 꼴을 보아하니, 총장이 받아주진 않은 모양이군.

“설사 일이 터진다 해도 전부 내가 떠안으면 그만이긴 해. 하지만 지금의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할 거야.”

평화로운 아카데미 생활?

그 말을 들을 순간,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화라…….

내게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인데 말이지.

“제게 그러셨죠? 제가 가진 힘으로 뭘 할 수 있는지 깨달으라고. 그래야만 그 힘을 후회 없이 쓸 수 있을 테니…….”

“그랬지. 이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걸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내가 회귀자라는 것까지 밝힌 이상, 이제는 무슨 능력을 보여도 별 놀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주님께서도 아셔야 할 겁니다. 당주님을 만나서 이제껏 보여드린 제 힘은, 아직 반도 안 됐다는 걸요.”

그녀의 얼굴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저는 당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기대보단 걱정이 앞서기라도 한 걸까?

“어째, 기분 좋게 들리진 않는구나.”

당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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