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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92화 (92/325)

제92화. 힘의 조건 (2)

폐기물 장의 반대편, 구역원들의 은거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던 가드는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죽었습니다. 애초부터 살해할 목적으로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대충 1시간 정도 된 것 같군요…….”

사실 시체의 상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쪽 팔은 잘리고, 곳곳엔 멍이 들어 있는 그야말로 고문의 흔적이 다분한 몸.

아마 이 아이는 죽기 직전까지 고통의 고통을 겪다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군터!!”

암사자가 포효하듯 분노를 발산하는 리사.

금방이라도 당사자에게 달려가, 저지른 짓을 그대로 돌려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고, 고정하십시오. 리사님! 일단 아이는 어쩔 수 없었다 치고, 상황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황 수습이라는 말에 리사는 의미 불명한 헛웃음을 내었다.

“수습? 물론 해야지!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우린 지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뭘 하면 될까?”

질문은 던져졌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로선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시간이 좀 흐른 뒤, 한 가드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맞는 말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그저 방관하고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이야?”

이에 리사가 추궁하듯 물었다.

“어쨌건 그 소년도 조만간 처리할 계획이지 않았습니까? 이를 군터가 대신해준다면, 저희로선 굳이 힘을 안 써도 되는 좋은 상황일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에 일부 가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 또한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차피 둘이 붙는다면 필시 한 명은 죽게 될 터.

그냥 지켜만 보고, 이득만 취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 않을까?

반면 리사는 속을 헤아리기 힘든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글쎄? 그게 정말 우리에게 좋은 일일까?”

일단 군터가 소년을 끌어낸 이유는 간단했다.

죽이기 위해서.

이를 위해 그 소년과 연이 있던 아이를 납치했으며, 소년은 이에 반응하여 결국 군터를 찾아갔다.

그럼 그 이후엔?

과연 군터는 소년을 죽일 수 있을까?

리사는 의문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확신이 들었다.

그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왜냐면,

군터를 찾기 위해 폐기물 장으로 향했던 소년의 눈에서,

생전 어디서도 겪어보지 못한, 지독하고 추악한 살기를 접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차마 소년이 죽을 거란 생각도,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

불현듯 피 냄새를 동반한 낯선 인기척이 뒤에서 느껴졌다.

“소, 손님?!”

고개를 돌린 리사는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허나 머지않아 심장이 곤두박질치고 신경이 찌릿하게 울렸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그저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방금 전까지 없었던 소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니.

피로 범벅된 얼굴엔 아직 가시지 않은 살기가 또렷하게 남아있었다.

“…….”

정작 소년은 아무런 내색 없이, 아이의 시체만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마치 보는 것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소년의 무덤덤한 시선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스윽

짧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소년은 마침내 발을 떼었다.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말없이 아이의 가슴 위에 올려 두었다.

“방은 오늘부로 빼도록 하지…….”

무덤덤하게 뱉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린 소년.

이윽고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시체 위에 놓인 금색의 이름표만이 처량하게 빛날 뿐이었다.

* * *

뭐랄까?

기분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념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낯설 뿐.

앞서 말했듯 그 아이가 죽은 것에 딱히 분탄한 마음은 안 들었다.

이미 죽었을 거라 예상도 하고 있었으니.

다만 처음 시체를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굳기 시작한 피와 변색되는 얼굴.

대략 죽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상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걸 인지한 순간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헛짓거리 없이 군터를 죽이고 바로 달려갔더라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주인, 얼굴이 완전 침울해졌네? 설마 후회하고 있는 거야?]

케이람은 이런 내 모습을 보기 좋게 비웃고 있었다.

후회라.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을 정녕 후회라고 표현해야 하는 건가?

“큭!”

새로운 경험에 희열이라도 느낀 것인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지.

내게 있어 후회는 성검으로부터 몸을 관통당했을 때가 마지막이거늘.

그때 다짐하지 않았는가?

오로지 나 하나만을 위해서, 내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루겠다고.

그런 내가 내 행동을 두고 후회를 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못 불러줬네…….”

[뭐를?]

“걔 이름…….”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 * *

“군터가 죽었다고?”

모리스의 목소리로부터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예! 시체가 수백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어 판별에 애를 먹었으나, 틀림없는 군터였답니다!”

“중력 존은?”

“쓸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손된 것 같습니다…….”

파손이란 말에 모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싸게 넘긴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었는데, 그 양아치 놈은 결국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부숴버린 건가? 쯧쯧. 물건만 아깝게 됐군…….”

모리스의 반응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때 투기장을 제패했고, 지금은 램버스타의 서쪽 구역을 장악하는 지배인이지 않은가?

그런 그가 일개 소년에게 당했다는데 어찌 안 놀랄 수 있을까?

보고를 전달하러 온 수하로선 이해가 안 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그 시온이란 소년은 어디로 갔다고?”

“그, 그게 케이지로는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방을 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쾅!

이에 흥분한 모리스가 책상을 치며 소리했다.

“뭐야! 그럼 이 도시를 떠날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

“그, 그렇습니다만…….”

조금 전과는 180도 달라진 반응이었다.

“이런 멍청한 것들! 철저하게 붙지 않고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아직 멀리는 안 갔을 거다. 얼른 나가서 그 소년을 찾아!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은 전부 동원해서라도!”

“예엡!”

난데없는 지시에 수하는 황급히 뛰어나갔다.

“어떻게 발견한 마검인데 이대로 놓친다니 말도 안 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내 손안에 들어와야 한다고!”

그의 입가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모, 모리스님!”

1분 정도 지났을까?

부리나케 나갔던 수하가 그의 앞으로 다시금 되돌아왔다.

“델키아 브릿지드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델키아가? 무슨 일로?”

“그 시온이란 소년이 유흥 골목에 왔다합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온 것 같으니 빨리 이쪽으로 와달라고……!”

그의 육중한 몸이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신이 나를 돕는구나!”

* * *

-또각또각

다급함과 기대감이 교차된 한 여인의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동쪽 유흥 골목의 지배인 델키아 브릿지드.

고급스러운 화장과 화려하면서도 수수한 의상이 그녀의 당당한 풍채를 보여주고 있었다.

얼굴은 꽤나 절제되어 있었으나, 이따금 참을 수 없는 웃음과 함께 입술이 꿈틀거렸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괴이했다.

이윽고 한 방 앞에 도착한 그녀는 짧은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었다.

방안엔 처음 대면했을 때와 전혀 달라진 바 없는 도도한 눈빛을 가진 검은 머리의 소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 초대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온님…….”

살며시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의 넓은 가슴골이 드러났지만, 소년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덤덤한 시선으로 델키아가 아닌 주변을 둘러볼 뿐이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

“자랑은 아니지만, 제 초대를 받고 이곳에 발을 들이진 않은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적어도 남자들 중에선 말이죠.”

허나 델키아는 알지 못했다.

이 소년이 이런 맞지도 않는 곳에 찾아온 이유는 결코, 그녀의 생각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색이 많이 안 좋네요? 뭔가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말씀만 하세요! 시온님의 기분을 풀어드릴 수 있는 많은 유흥거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남자로선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의 덤덤한 눈빛은 정확히 탁상 왼쪽 아래,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향해 있었다.

“…….”

델키아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한줄기 땀이 목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갔다.

이와 함께 몸 안의 열이 점점 달아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위험해. 참을 수 없어…….’

소년을 보고 있을수록 그녀의 욕망은 더욱 치솟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굶주린 암사자가 눈앞의 먹잇감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는 것만 같았다.

-스윽

겨우내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이내 소년의 시야가 닿지 않는 방구석으로 다가가선 조용히 차를 우렸다.

“일단 차라도 한잔 드시면서 마음을 달래시는 게 좋겠네요.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뭐든지 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릴 테니…….”

그녀가 야릇한 미소와 함께 차를 내니, 소년의 시선이 그제 서야 돌아갔다.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에서 진한 꽃 향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기를 1분.

차를 향해있던 소년의 시선이 마침내 델키아에게로 향했다.

“내가 여기 올 때까지만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서 공기를 짓누르는 무거움이 느껴졌다.

“하나 묻도록 하지. 넌 몇 명이나 저지른 거지?”

“무, 무슨 말씀이신가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대답에 소년이 시선이 다시 아무것도 없는 바닥으로 향했다.

“지금 네 눈에 뻔히 보이거든 사람이 일을 저질렀을 때 나타나는 그 추악한 음기가 말이야…….”

순간 말문이 막힌 그녀는 반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 케이지의 매니저가 충고하던데? 유흥 골목의 지배인은 엄청 괴팍한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이야. 근데 뭘 조심해야 하는지는 아마 그 매니저도 몰랐던 것 같군.”

“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간신히 입은 열었지만, 이제는 몸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킥……!”

줄곧 무표정하게 있던 소년이 대뜸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시선 또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말이다.

델키아로선 영문을 모를 따름이었다.

-달그락

이내 소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가 내온 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

-쿵

차를 마신 소년은 3초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탁상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다시 정적이 흐르기를 10초.

정신을 차린 델키아는 급기야 환성을 질렀다.

“캬하하하!”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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