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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62화 (62/325)

제62화. 엘리스 베르트 (2)

창세력 988년 7월 2일.

전생에서부터 쭉, 나는 이 날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해야겠지.

어떠한 악의나 목적도 없이,

오로지 진실한 마음 하나로 날 대해주었던,

엘리스 누나의 살아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으니까.

-똑똑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겠다는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기를 2초.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내 집 방문 열듯 총장실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어젖혔다.

-벌컥

“……!”

내 욕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쿤델 총장.

그 앞엔 깜짝 놀란 고양이마냥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엘리스 누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시안?”

누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저 얼굴, 저 미소.

수십 년 전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대로였다.

이내 부리나케 달려와 내 머리를 쓰다듬기까진 눈 깜짝할 시간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설마 내가 온 줄 알고 있던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총장님과 개인 면담을 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저 누나가 총장실을 먼저 방문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미리 찾아왔을 뿐.

총장에게서 네놈이 언제 면담을 신청했냐는 듯한 부정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못 본 새 완전 남자가 됐네? 좀 있으면 내 키도 훌쩍 넘어버리겠는 걸?”

“지금이라도 그 구두에서 내려오신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삐뚤어진 성격은 여전하구나!”

누나는 내 양 볼을 힘껏 잡아당기며 말했다.

물 흐르듯 평이하게 흘러간 2년이란 시간.

그녀가 2년간의 외지 생활을 마치고 이곳에 돌아왔듯, 나 역시 2년간의 아카데미 생활을 거쳐 지금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의외네? 방학이라서 당연히 벨리아스로 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아직 아카데미에 남아있는 거야?”

따스한 태양 빛이 대지를 내리쬐는 한가로운 여름.

방학을 맞이한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맞이하는 학생들.

아카데미에 남아, 자기 주도 학습을 지속하는 학생들.

후자의 경우는 선택이라기보단 강제에 가까운데, 학기 내에 아카데미에서 요구하는 필수 성적에 못 미친 학생들이 잔류해 보충 수업을 듣곤 한다.

물론 그런 귀찮은 걸 받자고 여기 남아있을 내가 아니지.

현재의 난 아카데미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이한 학생이지만, 앞선 2년을 포함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향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다.

“돌아 가봐야 반겨주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뻔한 것 아니냐는 듯한 내 대답에 누나는 얼굴을 긁적였다.

반겨줄 사람이 없는데, 그 먼 길을 굳이 돌아가는 것도 이상하지.

이는 전생이랑 다르지 않았다.

6년 동안 총 12번의 방학을 맞이했음에도, 귀환 횟수는 0이었다.

집에 안 돌아간 건 나뿐만이 아닌, 크란츠 녀석도 마찬가지.

오히려 녀석을 끔찍이 사랑하는 마가렛 부인도 방학에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제국 각지를 순방하며 귀족들과 교분을 나누라고 당부까지 했다 하니 말 다 했지.

뭐, 나야 그런 것과 일체 관련이 없기에, 귀찮게 돌아다닐 일은 없었지만.

이 로열 아카데미가 다른 건 몰라도 학생들의 편의 하나는 잘 봐주기에, 방학에도 기숙사 생활을 허용 시켜주었다.

결국 난 전생과 다를 바 없는 기숙사 생활을 3년째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네 누나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던 거냐?”

“거리가 워낙 시끄러웠던지라,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신의 아이가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더군요.”

다소 의심이 담긴 총장의 물음을 능청스럽게 넘겼다.

“그래, 남매의 감격스러운 재회를 구태여 방해하고 싶진 않구나. 가져온 것만 저 위에 올려놓고, 그만 네 누나와 함께 나가 보거라.”

누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손에 들린 종이 뭉치로 향했다.

나는 아랑곳 않고 총장의 책상 위로 다가가 그것을 올려두었다.

“졸업생이긴 해도, 딱히 널 제지할 이들은 없을 것이다, 엘리스.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돌아가도 좋다. 원한다면 기숙사도 내어주마.”

“아, 네……. 감사합니다. 총장님.”

뭔가 대화를 강제로 종식시킨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신경 쓸 필욘 없어 보였다.

-스윽

문 쪽으로 나가는 동시에 서 있는 누나의 손을 슬그머니 부여잡았다.

“가시죠, 누나.”

예기치 못한 스킨십에 놀란 것인지, 누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 * *

엘리스는 지금 상황이 얼떨떨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자신의 손을 덜컥 잡는 대범함에 놀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자체가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앳된 얼굴과는 상반된 어른스러운 면모.

알게 모르게 조금씩 풍겨오는 마나의 기운까지.

‘고작 3년 사이에 이렇게나 성장했다고?’

전선 생활 1년에 아카데미 생활 2년.

3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천재 소리를 밥 먹듯이 들었던 자신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터.

굳은 시선에선 왠지 모를 경각심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가문의 유지를 잇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걸까?’

3년 전, 저택에 귀환했을 당시, 가문의 유지를 잇겠다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당시 맞부딪혔던 그의 검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반 전력으로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꺾을 수 없었을 정도의 강한 의지를 분명히 경험했었다.

허나 엘리스는 시안의 마음이 내심 변하길 원했다.

사람의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운 만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기에.

대륙의 수호라는 힘든 길을 굳이 가게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뭔가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그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싶었다.

그건 누나로서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니까.

굳이 망설일 필욘 없었다.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기에.

그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시안에게 입을 열려는 그 순간.

“빛의 기사단에 꼭 가셔야 하는 겁니까?”

“음?”

예상치 못한 선 질문에 그만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시안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 * *

누나의 반응은 생각 이외로 흥미로웠다.

저렇게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한 모습은 또 처음이었으니.

허나 답이 나오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니?”

사람이 어떤 결단을 하려는 데 있어, 그걸 반문하는 자가 있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원치 않으니까.

나 또한 누나가 빛의 기사단으로 가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기에 이 질문을 한 것이다.

“샘나서요.”

허나 내 입은 속마음과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응?”

“빛의 기사단이라면, 제국의 최고 기사단들만 모인 곳이지 않습니까? 검을 든 이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명예로운 기사단인데,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누나는 급기야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난 또 뭐라고! 동생이란 놈이 누나가 잘 되길 바라도 모자랄 판에 샘을 내서야 되겠니?”

언뜻 그녀의 빛의 기사단 입단이 반강제적으로 보였다면 큰 오산.

누나는 나와 다르게 태생적으로 인생이 정해진 여자다.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을 가문을 위해 써야 했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걸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원하고 있었다.

빛의 기사단은 명실상부 대륙의 최고 기사단이며, 그녀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맞다.

가문을 위한다며, 혹은 가족을 위한다는 사사로운 감정은 사실상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녀는 빛의 기사단에서 활약하는 것 자체를 항상 꿈꿔왔으니.

허나 나는 알고 있다.

그곳에 가면 누나는 죽는다는 것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빛의 기사단에 입단한 엘리스 베르트는 그 꽃을 채 펼치기도 전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전생의 현실.

죽음의 구렁텅이를 자진해서 가려 하는데, 내가 그 꼴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는가?

“딱 보니까 가문의 유지를 잇겠다는 그 마음, 변치 않았나 보구나? 이쯤 되면 더 말릴 수도 없겠네. 너도 빛의 기사단을 꿈꾸고 있는 거지?”

누차 말하지만, 가문 유지 따위는 이미 내 알 바가 아닌지 오래다.

빛의 기사단?

들어오라고 사정을 해도 안 간다.

허나 그녀에게는 평생의 꿈이자, 소망이고, 의무였기에.

지금은 어쭙잖은 말들로 누나를 가지 말라며 설득시킬 생각은 없다.

단지 바로잡을 뿐.

피기 직전의 꽃을 갉아먹기 위해 해충들이 달려든다면,

그것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전부 태워버릴 것이다.

“이런 기특한 동생을 위해서라도, 내가 길을 잘 닦아놓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누나는 내 말이 그저 귀엽게 들릴 수밖에 없을 터.

이제는 키도 맞먹기 직전까지 왔는데, 아직도 강아지 문지르듯 내 머리를 쓰다듬는 누나였다.

“크란츠랑은 잘 지내고 있는 거지?”

크란츠를 언급한 누나의 눈동자에서 순간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언뜻 평범한 질문처럼 보일지언정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질문을 던진 동시에 원하는 거겠지.

제발 잘 지내기를 바란다면서.

나는 전 현생을 통틀어 딱 한 번, 누나가 엄청나게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대략 8살 때쯤.

그때의 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검술 수련을 핑계로 크란츠에게 모진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도와주는 이 없었고 저 멀리서 에밀리 혼자 발만 동동 구르던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전생의 내겐 매우 익숙한 현실. 그런 그 장면을 누나가 보았다.

방학을 맞이했던 그녀가 간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난데없는 폭행 현장이 펼쳐져 있던 것.

처음에 누나는 그저 어린 동생들의 다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크란츠의 얼굴과 피떡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내 얼굴.

그리고 그 일이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 방관하고 있는 주변인들을 본 순간,

누나는 그 상황을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다.

정말 처음이었다.

꽃도 시기할 만큼 아름다웠던 누나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지고,

잔잔했던 마나의 순환이 폭주하여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순간을.

그때는 정말, 어쩌면 마왕을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더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장담하건대 만약 크란츠가 동생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찢겨 죽었을 것이다.

누나의 분노는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했다.

어떻게 얘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할 수 있냐며, 이게 대륙을 수호하는 베르트 공작가의 진정한 모습이냐며, 사람들에게 울분을 토했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솔직히 그때의 난, 별로 기쁘지 않았다.

누나가 내 편을 들어준다는 걸 떠나서, 그 순수했던 그녀가 저렇게 화를 내고 슬퍼한다는 것에 너무 마음이 아팠기에.

차라리 내가 더 아프고 병드는 게 낫지, 누나의 저런 모습을 한 번 더 보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크란츠와는 지난 3년간,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이제 와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 리는 없겠다만,

만약 크란츠와 마가렛 부인이 아카데미 입학 전 기사들을 사주해 나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선 솔직히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하지만,

“거의 남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왜?”

“아무리 형제라 해도, 저를 죽이려했던 놈과 하하 호호 웃으며 어깨를 걸칠 순 없으니까요.”

누나의 순수했던 동공이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소리니?”

“2년 전, 아카데미로 떠나는 날, 크란츠와 공작부인이 영지 내에 기사들을 사주 시켜, 저를 암살하라고 지시했었습니다.”

“…….”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싸늘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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