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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59화 (59/325)

제59화. 연결고리 (5)

소형 방패만한 크기의 무지갯빛 마법석.

그 마법석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푸른 로브의 현자들.

그들 중 현재, 정상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앉아 있는 사람보단 일어선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

대부분이 크게 벌어진 눈과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저 소식을 전달하러 온 정보원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루키온 님과 카델리나 님이 행방불명되다니……?”

“말씀드린 그대롭니다. 루웬 근교에서 마지막으로 신기를 발현하신 것을 끝으로, 그분들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정보원은 현자들의 반응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지만,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지상 최고의 종족, 드래곤의 행방불명.

말이 행방불명이지 사실상 소멸에 가까웠다.

지금 이 땅에 그들의 흔적을 느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각기 빛을 잃은 이 두 개의 아티팩트가 그 증거였다.

“보시는 바와 같이, 지금 이 두 개의 ‘드래곤 스톤(Dragon Stone)’은 모두 빛을 잃었습니다. 그분들께서 처음 저희에게 이 아티팩트를 건네주실 때 분명히 말씀하셨죠. 이 돌들의 빛이 사라지는 그 순간, 자신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진 거라고…….”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너희는 그저 우리가 하는 지시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라는 명령이 붙긴 했지만.

말을 했던 드래곤이나, 말을 들었던 현자들이나, 그럴 일이 벌어질 거라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루, 루웬 근교라고 했었지요? 그분들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발현되었던 곳은 가봤던 겁니까?”

“조사원들이 탐지 마법까지 써 가며 백방으로 조사해봤지만, 일련의 전투 흔적만 발견되었을 뿐, 그 외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다못해 핏자국이나 비늘 한 점 같은 작은 것조차도…….”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다.

모두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넋 나간 얼굴을 하는 와중,

무지갯빛 마법석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앉은 중년의 남성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람 왕국 마법학회의 수장이자 대륙에서 얼마 없는 대현자의 칭호를 달고 있는 자, ‘리겐스 레인리버’였다.

“흐으음…….”

콧바람과 함께 터져 나온 짤막한 탄식에 현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돌아갔다.

리겐스의 시선은 빛바랜 드래곤 스톤으로 향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전투의 흔적이 있었다면, 루키온과 카델리나…… 둘 다 그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되겠지. 안 그런가?”

“마, 맞습니다! 하지만 루키온 님과 카델리나 님은 사실상 존재 자체가 8성급 이상의 힘을 보유하신 분들이기에…….”

“이미 죽은 자들에게 호칭을 붙여봐야 뭘 하겠는가? 더 이상 그들을 높여 부를 필요는 없네.”

리겐스는 손을 들어 올리며, 드래곤들에 대한 존중을 멈출 것을 지시했다.

“허나 그 전투에 대해서는 좀 더 유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 핏자국 한 방울도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라면, 혹 그 두 드래곤을 죽인 자가 마법으로 흔적을 지웠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리겐스 님! 아시다시피 조사원들의 마법 등급은 그리 낮지 않습니다. 못해도 7성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그들의 탐지 마법으로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못해도 8성급 이상의…….”

“어둠 속성 보유자여야겠지.”

살상 및 실전 위주의 마법 속성이 아닌, 은신과 위장에 특화된 속성.

만약 정말로 해당 장소의 흔적을 마법으로 지우려면, 시전자의 마법 등급이 탐지 마법을 썼던 조사원들의 마법 등급보다 훨씬 더 높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드래곤을 죽였는데, 설마 정말로 그랬다면 조사원들이 비빌 수준은 못 될 걸세.”

리겐스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둠 속성은…….”

세간에 알려진 고등급 마법사들 중에서도 어둠 속성 보유자는 매우 희귀한 존재였다.

사실상 어둠 속성을 가지고서 고등급 경지에 올라선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이 희박한 일.

허나 리겐스는 어둠 속성에 꽂히기라도 한 듯, 손가락으로 탁상을 두드리며 어둠이라는 단어를 혼자 반복하고 있었다.

“루웬이라면 로열 아카데미가 있는 곳이었지?”

다시금 입을 연 그가 언급한 것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였다.

“예. 하지만 그곳에서 루키온 님…… 아니, 루키온과 카델리나를 죽일 수 있을만한 인간은 총장인 쿤델 퀴젤밖에 없습니다. 허나 그자의 속성은 어둠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꼭 총장이라는 법은 없겠지. 어둠 속성의 특기는 감추기이기도 하니, 어쩌면 힘을 숨긴 고등급 어둠 속성 보유자가 그곳에 은거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한 번 조사해볼 가치는 있다고 봄세. 조사 범위를 아카데미까지 확대해 보도록.”

“예, 리겐스 님!”

명령을 받은 조사원이 떠나자 리겐스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학회장에 있던 모두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념에 잠긴 그가 다시 눈을 뜨고 입을 열기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상 살다 보면 이따금 마(魔)가 낀다고 하던데, 내가 볼 땐 우리가 지금 딱 그런 상태인 것 같아.”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속엔 왠지 모를 불쾌감이 가득했다.

“새로운 거래자를 알선해보라 했던 건 어찌 되었나?”

“현재 대륙 전체를 샅샅이 뒤져서 살펴보고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지커만 알바스 만큼 능력과 실리를 갖춘 거래자를 찾기엔 좀 더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마수의 피의 대체 공급로를 알아보라 한 건?”

“그, 그것도 사방팔방으로 뒤져보고 있긴 합니다만, 역시 새로운 공급자를 전선 지역에 잠입시키지 않는 한 추가 공급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부 몰상식한 보급원들이 암시장에 빼돌렸던 피들도 이미 대부분 회수한 터라.”

리겐스가 다시 한 번 길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자네들은 지금껏 벌어졌던 이 일들이 모두 우연이라 생각하는가?”

이에 학회장에 있던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마수의 피를 공급해왔던 레널드 크림슨이 전선에 있던 누군가에게 암살당하고, 수 년간 우리에게 연구 물품과 인간 실험체들을 제공해줬던 지커만 알바스도 뜬금없이 암살을 당했지. 거기에 우리 마법학회가 존속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루키온과 카델리나, 두 드래곤까지 소멸되었어.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어쩌다 벌어진 우연일까?”

리겐스의 눈에선 분노와 의문이 뒤섞인 듯한 감정이 엿보이고 있었다.

“난 절대로 그렇다는 생각이 안 드네. 분명 우리에게 벌어지는 이 불행들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 그걸 파악하고 해결하지 않는 이상, 우리 마법학회의 발전은 없으리라 보네.”

어디까지나 물증이 아닌 심증뿐.

허나 다른 현자들 역시, 이 일련의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어떤 연관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은 그걸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

자리에서 일어난 리겐스는 탁상에 앉은 현자들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그러니 다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지금 이 대륙에선 뭔가 알 수 없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으니. 이걸 극복해야만 우린 더 찬란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걸세!”

말을 끝낸 리겐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 공간으로 사라졌다.

그의 등 뒤에서, 로브에 새겨진 금빛의 학회 인장이 선명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 * *

“어때? 맛있어?”

“응! 정말 맛있어! 아린 언니가 주는 간식이 제일 맛있어!”

천국이 필요 없다는 듯 황홀한 표정의 나나.

양 볼은 아린 황녀가 가져온 간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잘들 노는군.

꼭 사이좋은 어린 자매를 보는 듯 했다.

막상 나나를 보러 와도 된다고 허락한 건 내 쪽이니, 뭐라 말도 못할 지경이다.

그러고 보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내 방에 다른 외부인을 데려 온 것이.

뭐 시체를 쌓아놓은 것도 아니고, 딱히 못 들어오게 할 건 없지만,

내 사람도 아닌, 이방인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덜커덕

그래도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브라이언이 어느 틈에 차를 끓여 소파 앞 탁상에 슬그머니 올려 두었다.

잔뜩 긴장한 얼굴에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있었다.

참 시키지 않은 일은 잘도 한단 말이지.

차는 둘째 치고, 브라이언의 모습을 본 아린이 나를 보며 물었다.

“시안은 정말 브라이언 말고, 다른 기사는 한 명도 없는 거야?”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사실 쟤도 원래는 없을 예정이었지만.

“의외네? 너라면 왠지 그 저택에 있던 시녀를 데려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름이 에밀리였지, 아마?”

용케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군.

뭐 존재감 하나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시녀니, 무리도 아니겠다만.

“수호 기사도 아닌 그녀를, 굳이 아카데미로 데려오고 싶진 않았습니다. 꼼수를 쓰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없었고요.”

그녀에겐 나를 따라 아카데미에 오는 것보다, 벨리아스에 남아있는 편이 더 괜찮을 거라 생각했으니.

“아린 님. 고전 문학 수업 들으러 가실 시간이에요.”

“어, 벌써 그렇게 됐네?”

시계를 확인하던 레시무스가 수업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었다.

이에 아린 황녀는 급히 침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 이제 좀 조용해지겠군.

몸도 찌뿌둥하니, 저 둘이 떠나고 나면 마음 편하게 운동이라도…….

“……?”

자리에서 일어난 아린 황녀는 대뜸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왜 그러고 있어?”

뜬금없는 반문에 살짝 넋이 나갔다.

“수업 들으러 가야지? 우리 같은 수업이잖아.”

하…….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황녀, 설마 이걸 노리고서 온 건가?

“나나야! 언니들 파파랑 수업 갔다 올게! 그때까지 브라이언이랑 잘 놀고 있어!”

“응! 잘 갔다 와 아린 언니!”

내 의사 따윈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해맑게 손을 흔드는 나나의 얼굴을 끝으로, 내 몸은 이미 기숙사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설마 또 땡땡이치려 했던 건 아니지? 나나를 돌보는 것도 좋지만, 학생의 가장 큰 본분은 수업을 듣는 거야! 자꾸 빠져서 낙제라도 받으면 곤란해지는 건 시안 바로 너 아니겠어?!”

사려 깊은 마음씨에 아주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냥 살짝 시선만 돌리게 한 뒤, 빠져나올까 고민하던 순간, 저 앞에서 낯익은 녀석이 다가오고 있었다.

크란츠였다.

“……!”

나를 발견한 녀석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오해할 것 없다, 내가 저러라고 시킨 것이니.

그냥 되도록이면 날 마주친 즉시 알아서 사라지라고 일러뒀었다.

“방금 쟤, 네 형제 맞지?”

“네, 별로 안 친합니다.”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바로 여지를 차단시켰다.

다시금 걸음을 옮겨, 본관 건물 앞으로 도착한 순간, 복도 저 끝에서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기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배럿 루이밀이었다.

거만하기 그지없는 얼굴은 여전해 보였다.

“흡!”

놈도 나를 발견한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기사들에게 자신을 업으라는 듯이 명령하고선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거의 암살자들이 목표를 해치우고 사라질 때와 비견될만한 속도였다.

“왜 그래, 시안? 거기 뭐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내색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계단을 올라 교실로 들어섰다.

“…….”

왁자지껄 떠들던 수십 명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라는 듯한 얼굴들.

저런 얄팍한 시선들에 딱히 신경 쓰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그대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카데미에 입성한 지도 어느덧 두 달.

전에도 말했지만, 이곳은 현재의 내 신분을 보호해주기 위한 울타리에 불과하다.

꽤나 심심치 않은 일들이 있긴 했어도, 어쨌든 될 수 있으면 튀지 않고, 조용히 지금의 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겠지.

내가 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어렴풋이 잇고 있는 지금의 연결고리를 앞으로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럼 저절로 무너져 내리겠지.

어느 교활하고 되바라진 악마 자식의 같잖은 계획이.

그 순간을 생각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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