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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47화 (47/325)

제47화. 대련 (1)

벨리아스 동부, 베르트 공작가의 저택.

저택의 안주인 마가렛 에르제스는 무척이나 초조한 얼굴로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

사시나무처럼 떠는 손과 발.

성에라도 낀 듯 다닥다닥 떨리는 입가.

마치 큰 잘못을 숨긴 죄인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

“흐잇!”

순간 느껴진 낯선 이의 촉감에 그녀의 몸이 파도처럼 들썩였다.

가문의 장남 에쉘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십니다.”

에쉘이라는 것에 안심했는지,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아…… 아니다. 나, 난 괜찮아, 괜찮고말고…….”

에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뭔가 힘든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 자식 된 도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드리겠습니다.”

“고, 고맙구나 에쉘…….”

비록 그녀의 친아들은 아니어도, 이 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자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눈빛에 현혹되기라도 한 듯, 마가렛은 조심스레 에쉘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가 자리를 벗어난 후, 홀로 남은 에쉘에게 종자 켈린이 다가왔다.

“벨리아스 근처 야산으로부터 다수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모두 영지 소속의 기사들이었습니다.”

“모두 몇 명이었습니까?”

“발견된 시체는 도합 여섯 구였습니다. 하지만 공작부인이 지시를 내린 건 총 일곱 명이었기에, 한 명은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한데……”

켈린은 순간 말을 머뭇거렸다.

“끊지 말고 말하세요.”

“루웬으로 출입한 막내 도련님의 일행 중, 영지 소속의 기사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에쉘은 말없이 켈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그 행방불명된 기사가 아닐지 사료되옵니다만…….”

공작부인의 주도로 감행된 시안 베르트 암살 계획.

허나 계획은 미수로 끝났고, 시안은 아카데미로 무사 입성했다.

소식을 알게 된 공작부인은 사실을 필사적으로 덮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녀의 낌새를 감지한 에쉘이 그 사실을 알아 버리고 말았다.

나름 심각한 보고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에쉘은 크게 실소했다.

“재밌군요. 그러니까 지금, 제 동생을 암살하러 간 기사들 중 한 명이, 도리어 그와 함께 아카데미로 입성했다 그 말씀인 거죠?”

“예…….”

에쉘의 광적인 웃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켈린은 아무런 말 없이 그의 웃음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 웃음이 뚝 하고 끊긴 순간, 분위기가 바뀐 에쉘이 의연한 어조로 물었다.

“사람을 붙인 건 어떻게 됐습니까?”

“그, 그것이…….”

켈린으로선 가장 답하기 싫은 질문이었다.

“아카데미에 입성하고, 로열관을 배정받았다는 소식까진 전해 들었지만, 그 이후론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이 끊겼다고요?”

“예! 그래서 추가로 정보원들을 더 파견해봤지만, 그들 역시 아직까지도 무소식인지라…….”

실제로 켈린은 처음 아카데미에 잠입시켰던 정보원 이후 총 3명의 정보원을 추가로 파견시켰다.

허나 전부 아카데미에 도착했다는 연락만 보낸 뒤, 그대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로선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혹여 어디선가 꼬리 자르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그야말로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다시금 등을 돌린 에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자로서 주인을 실망시켰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낙심한 켈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가 직접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막내 도련님 주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만 파악한 뒤, 곧바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결코 연락이 두절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당한 어조로 포부를 밝힌 켈린은 에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드세요, 켈린 공.”

그런 켈린을 향해 에쉘은 밝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저의 헛된 관심으로 인해 그대가 이리 고생할 필욘 없습니다. 제 동생에 관한 문제는 그만 이쯤에서 접도록 하죠.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언뜻 격려해주는 것으로 보일지언정, 켈린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인을 잘 안다.

한 번 파고들기로 결심한 일엔 끝장을 보는 성격.

집요함이라면 둘째가도 서러울 그가, 고작 여기서 일을 접으려 한다?

에쉘은 돌려 말한 것이다.

시안에 대한 일은 더 이상 자신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것으로.

켈린으로선 결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에쉘 님을 평생 모시겠다고 다짐한 접니다! 이 정도 일은 제게 고생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루웬으로 보내주십시오!”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다는 마음으로,

켈린은 자신의 진심을 주인에게 전했다.

돌아온 것은 에쉘의 온화한 웃음소리였다.

“하하. 역시 당신에겐 못 당하겠군요 켈린 공. 알겠습니다. 켈린 공의 뜻을 존중하도록 하죠. 대신 빨리 오셔야 합니다. 저 또한 당신을 매우 필요로 하니 말이죠.”

“에쉘 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다시금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한 켈린의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다.

“…….”

반면 돌아선 에쉘의 얼굴은 세상 무감정한 표정이었다.

* * *

“파파, 나 이거 열어줘!”

그녀가 건넨 것은 눈깔만 한 사탕이 한 움큼 들어있는 유리병이었다.

아직 애라서 그런지 뚜껑을 열 만한 힘은 없는 모양이다.

“너 사탕 먹을 이빨은 있어?”

“응! 봐봐 나 벌써 이 다 났어!”

그녀는 입을 쩍 벌리며 하얗게 돋아난 자신의 치아를 보여주었다.

앞니, 어금니 할 것 없이 다 자라난 이빨.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 봐, 위쪽엔 날카로운 송곳니까지 자라나 있었다.

나는 가볍게 뚜껑을 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먹고 꼭 이빨 닦아. 안 그럼 썩는다.”

“응, 알겠어!”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사탕을 한 움큼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팔불출 아버지 다 되셨네?]

그 모습을 본 케이람이 조롱하듯 말했다.

“애들이 다 저렇지 뭐.”

[누가 보면 인생 한 40년쯤 산 애늙은이인 줄 알겠네.]

맞는 말이라 딱히 부정은 안 했다.

용인 꼬맹이를 들여온 지도 벌써 일주일.

그 짧은 시간 동안 녀석은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기고, 걷고, 말하는 건 기본이요,

몸집도 이미 두 배 이상은 자라난 상태.

게다가 적응력도 좋아서 이 넓은 기숙사를 벌써 자기 집처럼 활보하고 다녔다.

[드래곤의 성장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용인도 만만치 않은걸? 이대로 가다간 너보다도 빨리 크겠는데?]

“빨리 크면 좋지 뭐.”

[얼씨구?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알고 있다.

이 아이가 나와 함께 이곳에 있을 시간이 더 적어짐을 의미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녀가 홀로 독립할 수 있는 날이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는 거다.

어차피 지금은 이래도, 나보다 수백 년은 더 살 수 있는 꼬맹이다.

이 세상에 빨리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그녀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그만큼 증대할 것이라 생각한다.

뭐 지금이야 저렇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사탕이나 빨고 있지만.

“다녀왔습니다. 도련님.”

식료품을 사러 갔던 브라이언이 돌아왔다.

그 옆엔 당주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수업도 없는 날에 웬일이십니까?”

그녀는 평소와 다른 매우 언짢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사고 쳤군요. 시안 학생.”

“무슨 사고 말입니까?”

난데없이 사고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 중앙엔 ‘대련 승인서’ 라는 큼지막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나는 글자를 본 순간 상황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그 머저리 근육 왕자가 진짜로 대련 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죠? 잠자코 있어도 모자랄 마당에 하필이면 모래의 왕자랑 대련이라니요? 벌써 아카데미 내에 소문이 잔뜩 퍼졌습니다!”

“신청은 그쪽에서 건 겁니다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이번 대련은 신입생들끼리 맞붙는 첫 대련이에요! 아카데미의 주요 관계자들까지 모두 모인단 말입니다! 심지어 총장도 보러 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할 일들이 그렇게 없다니? 고작 열한 살 신입생들이 치고받는 게 뭐 재밌는 거라고?]

케이람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아카데미 내에서 학생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에, 상호 간에 승인만 이루어지면 날마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게 바로 대련이었다.

허나 싸움이란 건 원래, 누가 누구랑 싸우느냐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난 이미 이 아카데미에서 꽤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공작가라는 높은 신분,

전선에서 살다 온 화려한 과거,

아카데미에서 유례없는 속성 수치와 신체 등급까지.

그런 내가 처음으로 능력을 발휘할 순간이 온 거다.

관심을 안 받을 수가 없겠지.

거기에 상대가 모래의 왕자면 뭐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옮기며 덤덤하게 물었다.

“그래서 이 대련은 언제 한답니까?”

“두 시간 뒤에요.”

“……?”

생각 보다 너무 빠른데?

-쾅쾅쾅

대뜸 문에서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가 두드렸는진 굳이 확인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시안 베르트! 네가 말한 대로 대련 승인을 받아냈다! 굳이 기다릴 필요 있나? 어서 나와 네 힘을 보여다오!”

머리가 급격하게 아파지기 시작했다.

* * *

아카데미 본관 옥상에 위치한 마법 대련장.

자그마치 천 명의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크기였다.

학년, 성별 상관없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생들.

평소와는 달리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북적거렸다.

“황녀님, 이쪽이요.”

자리를 마련한 레시무스가 아린을 안내했다.

“고마워, 레시무스!”

좌석에 앉은 아린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입생, 재학생 할 것 없이 다채롭게 모인 학생들.

수업을 담당하는 교관과 고등급 경지의 연구진들.

거기에 아카데미의 총책임자인 쿤델 총장까지.

새삼 지금 벌어질 두 학생의 대련에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황녀님께선, 그 시안 공자가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다소 얼을 타고 있는 그녀에게 레시무스가 물었다.

“응? 아, 아니 한 번도 없었어. 생각해 보면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만난 곳이 전선 지역이기도 했으니까.”

아린은 문득 진영 캠프에서 도망칠 당시, 자신을 위한답시고 시안이 미끼를 자청했던 일이 떠올랐다.

마수를 눈앞에 두고서도 결코 겁내지 않는 당당함.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겁이나 두려움이란 감정을 찾아볼 수 없던 남자였다.

“그래서 나도 사실 잘 몰라! 오늘 보면 알겠지. 그가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군요.”

레시무스는 다소 아쉬운 듯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네가 볼 땐 어떨 것 같아?”

“예?”

“괜찮아. 우리끼리 그냥 하는 얘기니까. 레시무스가 봤을 땐 오늘 대련 누가 이길 것 같아?”

잠시 망설이던 레시무스는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세트라는 분을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라 함부로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적어도 신입생 중에선 시안 공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소 패기 있는 대답이었다.

놀란 아린은 재차 물었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공원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어요. 뭐랄까 검사도, 무인도, 아닌 잔혹한 포식자의 기운? 마치 한 명의 암살자를 보는 것만 같았어요. 너 따윈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그냥 죽여 버릴 수 있다 할 정도로…….”

“그, 그 정도였어?”

“어, 어디까지나 제 주관이에요! 그냥 흘려 들어주셨으면 해요!”

레시무스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이윽고 대련장 중앙으로 교관들이 나타나, 거대한 마법진을 생성해 냈다.

-기이잉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4성급 마법 결계가 만들어졌다.

머지않아 양 대기석에 앉아있던 두 학생이, 중앙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갔다.

대련장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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