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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32화 (32/325)

제32화. 아카데미로 (6)

얼굴은 몰라도 저 어설프기 그지없는 눈빛은 또렷이 기억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낯설지 않은 기운.

그 또한 이미 들켰다는 것을 자각한 듯, 이 상황을 부정하려 들진 않았다.

“자, 자리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보아하니 딸아이로 보이는 소녀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니, 남성이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샐리. 아빠가 지금 여기 있는 분이랑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 그러니 안에서 좀 기다려 주겠니?”

“응 알겠어!”

소녀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딸아이를 보낸 남성은 경직된 얼굴로 나를 안내했다.

“이, 이쪽으로 오시죠…….”

그가 안내한 곳은 집 뒤쪽, 용도를 알 수 없는 폐목들이 놓인 공터였다.

나를 보고 있진 않지만, 저 근심 어린 뒤통수에선, 아직 가시지 않은 살기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영주의 사람이십니까……?”

몸을 돌아선 남성이 불안에 찬 시선으로 물었다.

“그랬다면 내가 어젯밤 널 진즉에 잡아 처넣었겠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조금 전 아이는 딸? 아니면 손녀?”

“딸입니다…….”

“몸이 좀 불편해 보이던데, 원래부터 그랬던 거야?”

“…….”

남성은 대답 대신 위협적인 살기를 풍기며 말했다.

“그, 그냥 어제처럼 못 본 척 지나가 주실 순 없는 겁니까?”

실로 같잖은 모습에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착각하지 마. 지금 주도권을 진 건 나야. 널 산 채로 잡아다 넘길 수 있고, 귀찮으면 그냥 목만 베어갈 수도 있어.”

그의 눈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보네?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봐. 허리춤에 몽둥이는 똥 닦을 때 쓰려고 꽂아둔 거야?”

“……!”

겉만 감췄다고 해서 다가 아니거늘, 흉기를 숨기고 있었다는 건 이미 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남성은, 곧 숨겨두었던 몽둥이를 꺼내 바닥으로 던졌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일단 그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남성의 시선이 이내 한 방향으로 향했다.

시선 끝, 공터 안쪽에는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오두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끼익

1평은 겨우 될 법한 뒷간 정도의 크기였지만, 바닥엔 어울리지 않을 만큼 깔끔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카펫을 치우니,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등장하였다.

누가 보면 비밀기지라도 있는 줄 알겠군.

좁디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깜깜한 어둠의 공간이 반겨주었다. 이에 손 위에 마나를 모아 점화 마법을 시전했다.

-화악!

순식간에 밝아진 주위.

들어왔을 때랑 별반 다를 것 없는 협소한 지하 공간이었다.

“……!”

눈앞에 대뜸 나타난 육중한 몸뚱이에 하마터면 불로 지질 뻔했다.

“누, 누구야!”

몸뚱이의 주인 또한 인기척에 놀란 듯 괴성을 질렀다.

인상을 절로 찌푸리게 만드는 걸걸한 목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머리부터 아래로 찬찬히 훑어보다가, 머리카락 없는 두상을 보고선 바로 알 수 있었다.

실종되었다던 파콰론 영주였다.

“이 녀석!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해? 나 사페른의 영주 파콰론이야! 제국의 대가 네펠리스 가문의 일원인 파콰론 네펠리스라고!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네놈의 생살을 하나하나 바른 뒤, 뼈를 갈아 사육장 가축들에게……!”

사슬로 구속된 손과 발.

앞을 볼 수 없게 안대로 가려진 시야.

뭔가 고문을 당해 빌고 있어도 시원찮을 판에, 귀 열고 못 들어 줄 심각한 욕설들을 내뱉고 있었다.

침이 튈 염려가 있어 일단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툭

그러자 모퉁이에 있던, 작은 탁상과 부딪히게 되었다.

탁상 위엔 꽤나 낯익은 검은 가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나무로 깎아 만든 가면이었네? 꽤 그럴싸하게 만들었어.”

남성은 묵묵부답이었다.

가면 옆으론 적갈색의 주먹만 한 돌이 놓여 있었다.

주위엔 미세한 마나의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점화석이구나? 딴 건 몰라도 검은 연기는 어떻게 구현했을까 싶었는데, 기사 놈들은 이런 어설픈 속임수에 넘어간 건가?”

소형 아티팩트 점화석.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불을 생성해낼 수 있는 일종의 마나 부싯돌이었다.

장거리 상인들의 애용품일 정도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지만, 설마하니 이런 저급한 물건으로 미스트를 흉내 냈을 줄은 몰랐다.

“그,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 생각합니다…….”

남성은 고개를 돌리며 답했다.

“맞아, 운이 좋았던 거야. 벨리아스나 황성 근처 다른 도시였으면 꿈도 못 꿔. 이런 저급한 도시니까 가능했던 거지.”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런 등신 같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도시가 제대로 돌아갈 리는 만무했다.

“이런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해충 같은 놈들! 검은 안개의 추종자들이라 해서 내가 무서워할 것 같냐!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네놈들 일망타진하는 거 일도 아니야!”

하물며 저런 한심한 영주까지 있는데 어련하실까?

머리카락만 없는 게 아니라 사고력 또한 없는 것 같았다.

“정작 일만 저질렀지 길들이진 못했네? 여태 뭐한 거야?”

“예?”

“묶어놓고 감상이나 하려고 납치한 건 아니잖아? 고문하려 했던 거 아니야?”

“고, 고문?!”

고문이란 말에 파콰론은 더욱더 발광했다.

애써 무시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마,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터라…… 게다가 밖엔 기사들도 돌아다니고 있고…….”

되지도 않는 나약한 망설임에 이제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짐작했던 가정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어 보았다.

“네 딸의 다리…… 이놈이랑 관련 있는 거지?”

남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어, 어찌 아셨습니까?”

“그냥 그래 보였어.”

나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소중한 자식이 이런 머리 없는 돼지 때문에 그리됐는데 눈 안 돌아갈 부모가 있을까?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철저하게 계획 세워 영주를 납치하는 데 까진 성공했는데, 막상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니까 망설여진 거지?”

남성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런다고 해서 제 딸의 다리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행위도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남성은 눈물을 머금으며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이곳 사페른의 전 영주를 보필했었던 시종이었습니다. 그분의 곁에 직접 붙어 다니며, 도시 운영과 관련된 사무 업무를 담당했었죠.”

설마하니 그 1년 전 병사했다던 전 영주의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다.

“전 영주님은 굉장히 욕심 없는 분이셨습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 없이, 오로지 도시의 번영만을 생각하실 정도로요. 허나 그분은 안타깝게도 고질적인 지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식도, 형제도 없으셨고 영주 직을 물려줄 만한 다른 후계자를 따로 지목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이에 황성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보냈는데, 그게 바로 이 파콰론 영주였습니다.”

딱 봐도 현 황후 세력인 네펠리스 가의 입김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허나 이 자는 제가 모셨던 주인과는 정말 반대되는 놈이었습니다. 도시의 안위는커녕, 자기 배만 불리기에 바빴고, 더군다나 가문에 자금을 보낸다는 명목으로 영지민들에게 막대한 세를 부과한 데다, 그마저도 일부 빼돌리기까지 했습니다.”

더 볼 것도 없이 그냥 부패 영주란 소리였다.

사실 저 정도만 돼도 진짜 미스트들이 움직일 여지는 충분했다.

“전 그런 탐욕적인 모습에 괴리감을 느꼈고, 그 즉시 일을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어차피 그런 부정부패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안 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죠.”

“왜? 네가 바꿔볼 생각은 없었어?”

“전 힘없는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저 부패 영주의 뒤엔 네펠리스 가문이란 엄청난 세력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게 나서봤자 제 명만 재촉할 뿐이겠죠.”

그에겐 사실상 나름 분수에 맞는 최선의 대처였다.

“한데 불행은 정말 난데없는 곳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신도 정말 무심하시지! 그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순수한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고작 자기 앞길을 막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성의 얼굴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방 중이던 자신의 마차를 막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제 아이는 그저 길거리에서 놀다가 불행하게 말려들었을 뿐인데, 이 자식은 고작 이런 이유로 아이의 한쪽 다리를 부러트렸습니다! 평생 거리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의미로요!!”

심장이 찔리는 것보다 더 쓰라린 고통이 바로 자식의 아픔이라 했다.

자식이 있던 적은 없어, 그다지 공감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영주를 납치한 경위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자를 납치한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 딸이 겪었을 아픔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기 위해! 하지만 그랬다간…… 저도 이 인간 같지도 않은 말종과 같은 놈이 되지 않습니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볼 땐 나약하기 그지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되갚아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거늘, 고작 인간의 존엄성 따위를 지킨답시고, 복수를 망설이고 있다.

애초에 인간이란 종족은 그렇게 존엄성을 운운할 만큼 선한 존재도 아닌데 말이다.

모든 사정을 들은 나는 그에게 나직이 말했다.

“다를 거 없어.”

“예?”

“시작이라는 선을 넘는 게 어려울 뿐이야. 그런다고 해서 네가 인간이 아니게 되진 않아.”

나란 놈도 인간으로 당당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놈은 애초에 인간 취급도 못 받을 놈이잖아?”

세금을 빼돌리는 부패 영주에, 어린아이의 다리를 부러트리는 파탄 난 인성이라…….

진짜 미스트가 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를 뒤로 한 채, 나는 구석에 놓여있던 묵직한 나무 막대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지하 전체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퍽

“끄아아악!”

화들짝 놀란 남성이 다급히 소리쳤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네가 못 했던 걸 대신 해주는 것뿐이야.”

한 번, 두 번, 몽둥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밀실 전체가 크게 울렸다.

특히 녀석의 왼쪽 발목을 집중적으로 가격했다.

줄곧 욕설만을 내뱉던 파콰론의 입에선 이제는 고통의 비명만이 반복되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뭐,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시면……!”

얼마 때리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한다.

이게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지.

아픔을 겪고 나서야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만다.

근데 이 정도로 끝낼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퍽!

“아아악!”

나의 매질은 10분 정도 더 지속한 후에야 멈추게 되었다.

징벌을 받은 파콰론 영주는 이미 기절했는지, 눈동자가 안 보였다.

“대체 왜 이런 짓을……?”

주저앉은 남성의 앞으로 몽둥이를 던지며 말했다.

“잔인하다고 생각해? 네 딸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돈 축에도 못 낄 텐데?”

“하, 하지만…….”

“어설프게 끝낼 거였으면,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지. 미련하게 굴어봐야 결국 너한테 도움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남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우두커니 앉은 그를 놔둔 채 계단을 올랐다.

사람들은 말한다.

선을 넘는다는 건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

허나 반대로 나는 묻고 싶다.

굳이 돌아올 필요가 있는가?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시작과 함께 선을 넘는다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모를 끝없이 평원이 펼쳐져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용인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애초에 그런 걸 이해받았다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살 뿐인데.

그렇게 볼일을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황급히 따라 올라온 남성이 나를 붙잡으며 또 한 번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3초 정도를 고민하다가 답을 내었다.

“그냥 경험 좀 많은 사람…….”

현재의 내 외관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그 길로 사페른을 벗어나, 다시 루웬으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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