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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공작가의 막내도련님은 암살자-23화 (23/325)

제23화. 귀환 (1)

“찾았다! 이쪽이야!”

새벽이 밝아오는 어스름한 시간.

소리를 들은 이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여 들었으며, 저마다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기가 젖어 있는 수풀과 주위를 둘러싼 기사들, 그 중심에는 기절한 듯 몸이 축 늘어져 있는 낯선 존재가 자리하고 있었다.

블러드 리버로 추락해 실종된 이후 정확히 24시간만,

베르트 공작의 자제 시안 베르트가 발견 된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은 몸과, 발견된 곳이 블러드 리버와 가까웠던 것을 감안하면, 강에서 탈출한 그가 몸을 이끌고 이동하던 도중, 힘이 다해 기절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제 남은 건 생사여부의 확인이었다.

-스윽

상급 기사 한 명이 직접 그의 몸을 안아 심장에 귀를 기울였다.

적막함이 흐르는 주변.

기사는 모든 감각을 청각에 집중한 채, 혹여 남아있을지 모를 생명의 숨결을 확인해 보았다.

-두근.

“……!”

확실하게 느껴지는 심장의 울림.

코에선 미약하지만 분명한 호흡작용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사, 살아있다!”

주위에 있던 모두는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시안 도련님을 후방으로 모신다. 혹여 있을지 모를 마수들의 습격에 대비하도록!”

수색을 완료했으니 그 다음은 안전한 이송이었다.

이송 중 마주친 마수들은 없었으며, 그로인해 시안의 몸은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후방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 * *

-터벅터벅

복도를 가로 짓는 베르트 공작의 다급한 발걸음.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지만, 공작은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발걸음이 멈춘 곳은 어느 방문 앞.

수호기사들의 경례마저 무시한 채, 공작은 문을 열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베르트가의 막내 시안, 아버님을 뵙습니다…….”

마치 그가 올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인사를 올리는 남자.

공작의 아들인 시안이었다.

비록 침대에 앉아 간접적으로 한 것이긴 하나, 그걸 본 공작의 얼굴은 그야말로 여러 감정들이 얽혀있었다.

이내 흥분을 가라앉힌 그는 차분한 걸음으로 시안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은 것이냐?”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전선의 일로 매우 바쁘실 터인데, 이리 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시안이 요양 중인 곳은 경계문 밖 벨리아스에 위치한 수도원이었다.

전선에서 부상당한 기사들의 군병원으로 활용되는 곳이기도 하며, 공작으로선 이미 전언을 통해 시안의 몸엔 이상이 없음을 보고 받은 상태였다.

“…….”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딱히 나오는 말은 없었다.

생사를 넘나든 어린아이치곤 너무나도 담담한 모습.

이것은 열 살 배기 어린 애가 아닌,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그날에 대해 기억은 하는 것이냐?”

“소자. 황녀님을 대피시키고 추격하는 트롤을 따돌리는 데엔 성공했으나, 불행하게 블러드 리버 근처에서 거물급 마수인 데빌 드래곤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드래곤은 저를 먹이로 인식한 듯 단번에 낚아챘고, 저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준비된 것 마냥 막힘없이 이어지는 대답.

공작은 질문을 계속했다.

“무섭진 않았느냐?”

“드래곤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했습니다. 오직 살고 싶다는 욕망을 악착같이 불태웠으며, 일단 작은 피해라도 입혀보고자 드래곤의 발을 계속해서 찔러댔습니다.”

드래곤이 그 주위를 계속해서 맴돌았던 이유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황녀를 구한 것도 모자라, 데빌 드래곤을 상대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니.

분명 칭찬할만한 상황이지만, 공작은 좀처럼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나 역시 변명은 하지 않겠다. 너도 봤다시피 너를 구하겠다는 마음보단 그 데빌 드래곤을 처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결국 데빌 드래곤은 도망치고, 넌 강으로 추락해 저승의 문을 두드릴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점에 대해선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수들의 토벌이니까요. 애초에 전선에서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안은 끝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정녕 이게 열 살짜리 아이의 마음가짐이란 말인가?

자신의 씨로 만들어진 자식이라곤 하나, 왠지 모를 거리감마저 느껴졌다.

‘조금은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줘도 좋으련만…….’

이 모든 것이 다 자신으로 인해 비롯된 것만 같았다.

가문의 이념이라고 하는 커다란 책무를 짊어지다보니, 그 짐이 고스란히 자식들에게도 전가된 것이다.

결국 아버지로서의 부족한 돌봄이 이런 어른스러운 아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공작은 참으로 심란한 마음이었다.

“어쨌건 황녀님을 무사히 보호한 것에 대한 너의 공훈은 인정해 줘야 할 터. 그에 대한 보훈을 내리고 싶구나.”

“보훈 말입니까?”

“그래.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상을 내리겠다는 말에 시안은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사를 넘어들었던 그가 지금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요구할지, 공작으로서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허면,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이 일로 인해 저를 전선에서 내쳐주시진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근 10초정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말없이 시안을 내려 보던 공작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면서 느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이 아이는 이미 완벽하게 가문의 유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검술 대련 때 잠깐이나마 보였던 어린 아이의 모습도 이제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잠자코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공작은 의연한 어조로 말했다.

“너의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마. 그렇다 해서 변하는 건 없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네 몸은 끝까지 네가 지켜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용무가 끝난 공작은 바로 몸을 돌렸고, 몇 걸음 나아가다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시안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너의 끝없는 성장을 기대하도록 하마.”

그 말을 끝으로 공작은 방을 나갔다.

* * *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왜, 또?”

[그 난리를 치고서 거길 다시 가려고?]

“난리라고 할 것도 있나? 끽해야 강에 휩쓸려 마계 한 번 갔다 온걸?”

[얼씨구? 마왕이 나타나면 그거대로 재밌지 않겠냐며 자신만만하더니, 마주치자마자 손발을 벌벌 떨었던 분 어디 가셨더라?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을 잃기라도 하셨나?]

“그랬던가? 나도 모르게 희열이라도 느꼈나 보네.”

[됐다 됐어! 꼬맹이가 살아 돌아온 것도 용한 거지.]

케이람의 우롱을 천연덕스럽게 넘기니, 그녀는 지쳤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마계에서 꼬박 반일을 걸어 되돌아온 전선.

수색대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 주변에 드러누워 자연스럽게 발견 될 수 있도록 상황을 유도하였다.

오면서 듣자하니, 만약 그 이후까지 나를 발견하지 않았을 경우, 공작은 나를 사망처리 하라고 미리 지시를 내렸다는데, 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이런 밤톨만한 몸으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희박한 확률일 테니.

더 이상의 위험한 수색을 장기화하는 것도 불필요한 마당에 지도자로서 해야 할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본다.

사실 나조차도 지금 어떻게 돌아왔는지 어안이 벙벙한 입장이다.

[근데 그놈 진짜 마왕 맞아? 네가 싸웠다던 그 마왕도 저렇게 가벼운 놈이었니?]

그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분명 내가 아는 벨카리온은 인정머리라곤 먼지만큼도 없는 극악무도한 악의 화신이었을 텐데, 어째 그날 내가 본 건 에밀리 만큼이나 덜떨어진 실없는 마족이었단 말이지.

사람 바뀌는데 한 순간이라고, 그것이 마족이라 한들 다르진 않을 것이다.

분명 전생의 나는 짚고 넘어가지 못했던 엄청난 일이 마계에서 벌어졌던 것 같은데,

미래를 알고 있는 나에겐 그저 다른 세계일이라고 치부할 순 없겠지.

일단 보험이랍시고 거래는 하고 왔으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음?]

불현 듯 케이람이 문 쪽을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문 너머에서 조신하면서도 급박한 발소리가 들렸다.

[호~?]

“뭐야? 그 웃음은?”

난데없는 요염한 미소에 급 불안한 느낌이 몰려온다.

[우리 주인은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겠네~]

“뭐?”

[그러니 제발 좀 툴툴대지 말고 부드럽게 대해. 여자한테 잘못 찍히면 그거야 말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이니까. 난 이만 자러간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케이람은 안개가 되어 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똑똑

잠시 후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조심스럽게 열린 틈 사이로 반가워하는 얼굴의 에밀리가 보였다.

“우와, 도련님! 진짜 살아계셨네요?”

‘살아서 다행이다’도 아니고, ‘살아 계셨네요’는 또 뭐야?

“이럴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라 혀를 찼지만, 전 분명 생판 멀쩡한 상태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니까요!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대번에 달려와 나를 한아름으로 끌어안았지만, 어째 애절함이라곤 콩알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 유일하게 나를 믿고 있었다니 고맙긴 한데,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은 건 뭐 때문일까?

방문객은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열려진 방문 앞으로 어쩔 줄 몰라 서성이고 있는 또 한 명의 방문객, 아린 황녀가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친 그녀는 흠칫 놀라다가도, 용기를 내서 앞으로 다가왔다.

“사, 살아있어서 다행이네.”

“황녀님께서도 무사히 대피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우물쭈물한 모습.

단순히 생사확인뿐만이 아닌, 무언가 다른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스리슬쩍 에밀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뭔가 힘내라는 듯의 알 수 없는 제스쳐를 취하더니만, 자기혼자 쌩하고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아린 황녀와 둘만 남게 되었다.

“네 시녀 참 대단하더라. 그 누구도 네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정말 너를 많이 믿고 있는 게 보였어.”

같이 살다보면 절대 그런 말이 안 나올 텐데?

일단은 잠자코 있어보았다.

“몸은 괜찮은 거야?”

“천운이 따른 것인지 생각 외로 멀쩡합니다.”

“그, 그렇구나…….”

예상했던 대로 또 정적이 흐른다.

“혹 사과를 하실 생각이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응? 어, 어째서?”

“사과를 하실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수들이 출현한 게 황녀님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야 그렇지만 그날 내가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네가 나를 위해서도…….”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전선에도 오지 말아야 하셨을 겁니다. 근본 자체는 마수들이지, 황녀님의 행동 때문이 아닙니다. 이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그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시콜콜한 앞 얘기를 쳐냈으니, 이제는 본론을 꺼낼 차례다.

“그날 네가 나한테 황제가 되라고 했던 거……. 어떤 의미로 한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 톤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나 역시 세기를 낮추며 조용히 읊조렸다.

“말 그대로입니다. 황실 일가로서 제국에 도움이 되고 싶으시다면, 차라리 황제가 되어 제대로 해보시란 의미에서 말씀 드린 겁니다.”

“넌 내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그거야 황녀님께 달리신 일이겠죠. 전 방향만 제시해 드릴 뿐. 황녀님을 황제로 만들어드릴 수 있는 킹메이커가 아닙니다.”

예상외의 답변에 실망한 것일까?

아린 황녀는 또 다시 아무런 말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네가 도와줄 수는 없는 거야?”

내 말을 못 알아 들었군.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전 일개 공작가의 자제일 뿐입니다.”

“그, 그렇지 않아! 너에겐 분명 뛰어난 안목과 능력이 있는 걸? 네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할 거란 생각이 들어!”

황녀의 눈동자엔 또렷한 의지가 서려있었다.

그러면서 마침내 나를 찾아온 진짜 목적을 드러내었다.

“내 사람이 되어줄 순 없는 거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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