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공작가의 무능아 (1)
창세력 985년 3월 1일.
현재 나이 10세.
배신의 칼날을 맞은 시점에서 정확히 27년 전으로 되돌아왔다.
일단 과거로 돌아왔다고 가정은 했으나, 아직은 한없이 난해할 뿐이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왔다니…….
이런 마법, 살면서 들은 적도 없고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여느 소설에선 이런 걸 두고 회귀라고 하던데…….
아니, 까놓고 말해서 내가 헛된 망상 중인 정신병자일 수도 있는 거잖아?
일단 현 상황을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던 나는 무심코 테이블에 올려진 꽃병을 들어보았다.
……무겁다.
두 손으로 들었는데도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이건 더 볼 필요도 없이 열 살의 빈약했던 내 신체가 확실하다.
이번엔 병 안에서 꽃 한 송이를 빼내보았다.
고기를 썰던 나이프로 꽃잎을 겨냥한 뒤, 공중에서 그대로 쳐보았다.
-톡 톡 톡
일말의 오차 없이 떨어져 내리는 여섯 개의 꽃잎들.
좀 전에 조형물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집중력, 순발력 등의 감각들은 대체로 남아있는 듯 보였다.
이건 분명, 10살의 나에겐 없는 감각이었다.
“……저기 에밀리?”
“왜요 도련님?”
후식으로 차를 우리고 있던 에밀리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답했다.
“이 집에서 나는 뭐라 생각해?”
“뭐긴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아시죠.”
일초의 고민도 않는 저 시큰둥한 대답.
그래도 그 덕분에 99%이상의 확신이 차올랐다.
난 전생의 기억과 감각을 모두 가진 채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아’란 단어로 무슨 확신이 서냐 싶겠지만, 지금의 내 상황을 단정 짓기엔 전혀 무리 없는 말이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데다, 직속 시녀에게까지 대놓고 무시당하면서 화 한 번 내지 못했던 무능한 공작가의 자제.
이것은 내가 알고 있던 열 살의 시안 베르트와 동일했다.
그 누구의 관심도, 기대도 받지 못했던, 내 인생에서 제일 비참했던 때로 되돌아온 것이다.
진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초월급 마법사조차, 시간 회귀와 같은 순리를 거스르는 일은 불가능 한 마당에,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다.
시간의 신이 장난이라도 쳤나?
“절반도 못 드실 줄 알았는데, 벌써 다 비우셨네요 도련님?”
차를 내오던 에밀리가 어느 새 비워진 접시를 보며 말했다.
“다 먹은 게 왜?”
“아니 그야, 오늘 검술 대련은 베르트 공작님께서도 참관하시는 행사잖아요. 어제만 해도 오늘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시고선…….”
순간 30년 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매월 초, 영지에서 행해지는 검술대련.
그중에서도 오늘은 3월 1일, 내가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정확히 1년 전의 시점이며, 무려 영지의 주인인 베르트 공작이 참관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검술 대련과 공작이라…….
당시의 내가, 제일 기피했었던 두 가지였다.
* * *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 아래에 펼쳐진 백색의 대련장.
그 위에는 이미 영지의 병사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규모로 따지면 자그마치 중대 이상 급의 병력.
물론 병사로만 구성된 것이 아닌, 저택의 시종들과, 베르트 공작가의 관계자들도 포함 되어 있었다.
이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단 한 가지.
공작가의 자제들이 펼치는 검술 대련을 위해서였다.
흠, 뭐랄까? 참 묘한 기분이다.
마치 고향에 돌아왔을 때 접하는 아련한 감정이라고나 할까?
분명 당시엔 죽기보다도 오기 싫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무신경한 돌바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긴장 안 되시나 봐요? 생각 보다 평온하시네요?”
평소와 달리 무덤덤한 내 얼굴에 에밀리가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뭐, 딱히 긴장할 이유도 없는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얼마나 낯설어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뭐 무리는 아니다.
좀 전 그녀의 말마따나, 과거 이 집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아였으니.
대련장에 올라서도 검을 휘두르긴커녕, 벌벌 떨다가 목을 내주는 등신 같은 모습만 반복했었지.
그로 인해 그 누구도 나에게 기대나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지만……
오직 강하고 능력 있는 자만이 대우받을 수 있는 실력우월주의.
그것이 바로 대륙을 수호하는 사명을 가진 베르트 공작가의 이념이었다.
“공작님께서 오십니다!”
기사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던 이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베르트 공작이 대련장 초입에 모습을 드러내니, 상급 기사들의 검례가 행해졌다.
“…….”
공작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다.
그 뒤엔 공작부인과 공작의 넷째 아들 크란츠 베르트가 뒤따르고 있었다.
-척
공작은 기품 있는 동작으로 망토를 걷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50에 가까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과 외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식전 행사와 같은 낭비스러운 일은 불필요했다.
공작의 지시와 함께, 그를 뒤따르던 노랑머리의 소년이 대련장 중앙으로 향했다.
공작가의 4남 크란츠 베르트, 나와는 나이가 같은 동갑내기 형제.
물론 어머니는 다른 배다른 형제다.
크란츠가 나옴과 더불어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이요, 도련님.”
나아가려는 내게 에밀리가 검을 내어줬다.
푸른 보석이 박힌 가느다란 레이피어였다.
베르트가의 모든 자제들을 7세의 생일을 맞이하면 공작으로부터 검을 선물 받는다.
그 검을 시작으로 자신과 세상을 지킬 힘을 기르라는 의미에서 하사한 것이다.
허나 공교롭게도 난 그동안 이 검을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었다.
“차라리 항복을 하고 오시는 게 어떠세요?”
응원은커녕 악담을 던져주는 참 고마운 시녀가 아닐 수 없다.
“항복은 무슨, 이기고 오면 되는 거잖아?”
“다치지만 말고 오세요…….”
나름의 걱정을 내비치는 그녀에게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준비를 마친 나는 대련장 중앙으로 나아가 크란츠와 마주하였다.
삼 보 밖의 거리에 도달한 순간, 대련관이 서로에게 목례할 것을 지시했다.
무리 없이 고개를 숙인 와중에 거슬린 소리가 들려왔다.
“용케 안 도망치고 왔네?”
나는 눈을 들어 크란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상대를 한껏 깔아 내리는 비열한 조소.
너 따위는 나를 띄워주기 위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악의가 담긴 미소였다.
저 미소를 보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정실의 아들과 어미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
사실 여기서부터 이미 비교는 끝난 것이다.
그는 태생부터 모계 측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왔으며, 먹어왔던 음식의 질조차 차원이 달랐다.
그것이 딱히 부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게 얼마나 등신 같은 일인진 뒤늦게 깨달았지만…….
고작 열 살 나부랭이 소년들이 검을 부딪치는 것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베르트가에 있어 검술대련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1년 뒤 집안을 떠나 로얄 아카데미로 향하는 10세의 소년들.
그 중대한 시점에 도달한 이들이게 내려진 가주의 시험이 바로 이 검술대련인 것이다.
즉 오늘 대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공작의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다고 볼 수 있다.
베르트가의 자제들에게 있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자식은 없었다.
전생의 난 이 중대한 대련에서 패배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처참히 패배했다.
차마 대련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비참하게 깨졌다.
허나 그렇다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내가 이길 거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가문의 무능아 시안 베르트가, 전문적인 교육을 모두 이수한 크란츠를 베르트를 제압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솔직히 나조차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무능아가 재능아를 이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내 패배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기에, 누구 하나 놀라는 이 없었다.
다만 대련이 끝나고 나를 불러선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던지셨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뭘 뜻하겠는가?
내 눈 밖에서 벗어났으니 넌 더 이상 아무 노력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부모가 어찌 자식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곳은 베르트 공작가다.
귀족의 품위나, 부모의 온정 따위, 이곳에선 허울 좋은 의식일 뿐.
오직 베르트가의 이념을 수행하기 위한 강한 자식들만이 살아남는 곳이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대련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족히 100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모두 나와 크란츠를 응시하고 있다.
저들 중 나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겠지.
“…….”
불현 듯 시선을 돌리던 순간, 공작과 잠시 눈을 마주쳤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긴 했으나, 그 짧은 순간에도 분명하게 캐치할 수 있었다.
기대감.
모두가 내 패배를 예상하는 와중에도 공작은 내가 무언가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전생에는 내가 그 기대감을 철저히 부숴버렸지.
한데, 오늘은 어떻게 될까?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댕 댕 댕!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크란츠 놈이 검을 뽑아 나에게 겨눴다.
나 역시 덤덤하게 검을 뽑았다.
도신은 햇빛에 반사되어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묵직하게 느껴졌던 지난날과 달리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탓
어느 정도의 탐색할 시간도 없이, 크란츠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나 따위는 간 볼 필요조차 없다, 뭐 그런 의미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그를 그저 묵묵하게 바라보았다.
한없이 무방비한 내 모습에 녀석은 미소를 짓는다.
그러면서도 손에든 내 검을 쳐내기 위한 움직임을 시전 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검의 궤적.
달려오는 추진력을 이용해 손에든 검을 그대로 내질렀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
달팽이가 움직이나?
막을 필요도 없이, 한발 짝 물러나 놈의 일격을 피해냈다.
“……!”
순간적으로 당황한 크란츠의 시선과 마주쳤다.
표적을 잃은 크란츠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으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검을 들어 녀석의 검을 내려쳤다.
-깡!
크란츠의 검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녀석은 혼이 나간 듯 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시하였다.
-퍽
“으악!”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차 주저앉혔다.
자연스레 무릎을 꿇은 크란츠는 검을 주울 생각도 없이 발목을 부여잡으며 아파하고 있었다.
대련은 이 시점에서 이미 끝났다.
그대로 크란츠의 목으로 검을 겨눈다면 내 승리가 된다.
“…….”
근데 왜 그러기가 싫지?
마음 한 구석에 공허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부족함.
이대로 끝내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놈을 제압하고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있어 이정도론 턱없이 부족하다.
좀 더 굴복시켜서 그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 속에서 차오르고 있다.
욕망은 곧 실현으로 옮겨졌다.
-퍽
전방을 향해 내지른 오른 발이 크란츠의 머리를 가격했다.
부족한 힘은 정확도로 메꾸면 그만.
내 발끝은 놈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맞추었고, 충격을 버티지 못한 크란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털썩
기절한 녀석은 입에서 갖은 분비물을 쏟아내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무너진 공작가의 기대주.
그 위엔 가문의 무능아라고 손가락질 받던 나, 시안 베르트가 굳건하게 서있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녀석의 목으로 검을 겨누었다.
“…….”
적막이 흐른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에 머리가 정지라도 한 것일까?
머지않아 거친 북소리와 함께 대련관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대련 종료! 승자 시안 베르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