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3 (28/40)

Chapter 3

휘오오-!

땅에서 갈라져 나온 돌들은 회전하면서 이내 미세한 입자가 되었다. 그것들은 황금빛을 띠며 아론의 주위에서 휘몰아쳤다.

바깥에서 보면 단순히 황금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고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입자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의 위력은 이미 흑암도에서 증명이 되었다. 바스티안이 쿠베라 소드를 휘둘러 입자를 만들어 낸 순간 마탑주의 배리어조차 뚫어버렸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 그는 이 기술을 쿠베라 소드의 봉인을 해제하면서 사용했었다.

아직 아론은 봉인 해제가 어떤 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결과로 쿠베라 소드가 지닌 힘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론은 굳이 쿠베라 소드의 봉인을 해제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쿠브가 있었으니 말이다.

대지를 관장하는 가이안의 화신인 쿠브. 그 특성 덕분에 쿠베라 소드가 지닌 미티움의 위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아론의 천부적인 뛰어난 마나 컨트롤 능력이 더해지면서 봉인 해제 당시 보여주었던 능력을 재현하는 게 가능했다. 그것도 일점 타격이 아닌, 훨씬 넓은 범위로 가동되었다.

덕분에 이번에 대적하고 있는 녀석처럼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상하기 힘든 상대에게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녀석의 행동을 보아하니 계속해서 공간 속에 숨어 있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야.’

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공격하는 도중에 전신을 다시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아론은 그 점을 노렸다.

남자가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면 이 황금 폭풍에 휘말릴 게 분명했다.

녀석에게는 두 가지 대처법이 있었다. 하나는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다른 하나는 아론을 직접 공격하는 것.

특히 지금처럼 시전자의 중심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그래서 아론은 남자가 자신을 공격하리라 추측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다.

‘역시, 나를 공격하는 방법을 선택하는군.’

아무래도 싸우기 직전에 녀석의 화를 돋군 영향이 컸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다 보니 남자의 머리에 기다린다는 선택지는 고려 사항조차 아니었다.

아론은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 부근에서 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휘익!

자신의 몸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손.

‘지금이다!’

아론은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몸을 살짝 틀고는 망토를 펼쳤다.

녀석의 공격을 종잡을 수 없어서 확실한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이 그 기회였다.

남자의 팔이 아론의 망토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팔이 빠져나가기 위해 허우적거렸지만 마나가 강하게 잡고 있었다.

녀석은 당황해서 몸을 드러내고 말았다.

당연히 주위에서 황금빛 입자가 계속해서 돌고 있었으므로 그것이 녀석을 덮쳤다.

입자 하나에만 스쳐도 살이 파이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입자가 폭풍이 되어 녀석에게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체 골렘이 되어버린 강인한 몸이라 해도 이 공격에는 버티기 힘들 거라 예상했다.

“으아악!”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피와 살점이 비산했다.

‘이 정도면 치명상이겠지.’

아론은 그렇게 판단했다.

휘오오-!

황금빛 폭풍이 남자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면서 아론은 거리를 벌렸다.

이제 아공간으로 녀석의 팔을 붙잡아 두지 않아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보… 봉인, 해제…….”

그때였다.

폭풍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잡소리로 치부해버릴 정도로 음량이 작았다.

동시에 아론은 오싹함을 느꼈다.

‘뭐지?’

그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폭풍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발을 놀렸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아론의 좋지 못한 예감이 실제로 나타나고 말았다.

콰르르-!

하늘에서 검은 마나가 폭풍이 치는 곳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금빛 폭풍은 검은 마나의 위세를 이기지 못하고 흩어졌다.

이윽고 날뛰던 마나가 잠잠해졌다. 그 자리에는 기괴한 자세를 하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이 기운. 녀석을 쫓아 오기 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아론은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녀석의 힘이 강해져 있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면서 고개를 움직였다. 공허한 눈동자가 아론을 응시했다.

녀석에게서 더 이상 남은 이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르륵… 그르륵…….”

남자의 모습은 짐승과도 같았다.

‘분명, 봉인 해제라는 말이 폭풍 속에서 들렸다.’

아론은 녀석이 힘을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했다고 생각했다.

‘곤란한데.’

아론이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공격은 비장의 한 발이었다. 녀석의 불같은 성질을 역으로 파고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위로 돌아갔다.

방금 그 공격으로 최소한 빈사 상태로 만드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로 곤란해져 버린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론은 자신에게 남은 패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승산 있는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어떤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이성을 내어준 대신에 더욱 강한 힘을 얻은 상태였다.

‘혹시나 녀석이 폭주해서 죽지는 않을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마나를 순간적으로 신체가 받아버리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바라는 건 요행이었다. 실제로 남자가 쓰러질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론은 녀석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떻게든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녀석의 너덜너덜해진 가슴팍이 보였다. 아론이 만들어 낸 황금빛 입자에 살이 패여서 속이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 속으로 박동하고 있는 녀석의 심장이 보였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남자의 심장은 검은색 오러가 감싸고 있었고, 그것이 맹렬히 회전하면서 전신으로 오러를 퍼트리는 중이었다.

‘잠깐만.’

아론은 거기서 기회를 엿보았다.

저 녀석의 심장을 노린다면 어쩌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녀석이 순순히 그걸 허용할까?’

남자도 자신의 심장이 약점임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론의 공격을 쉽게 받아줄 리 없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아론은 셀린을 보냈던 방향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직 돌아올 기미는 없었다.

“그분이, 내게, 강림하셨다.”

남자는 뚝뚝 끊어지는 음성으로 낮게 읊조렸다. 그러고는 녀석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론은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 녀석의 공격을 피할 궁리를 했다.

이윽고, 아론의 온몸의 털끝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촤학!

허공에서 나타난 녀석의 손톱이 아론의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아론은 방금 공격에 섬찟함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더 느렸다간 가슴이 뜯겨나갈 뻔했다!’

이번에는 공간이 일렁이는 것조차도 감지할 수 없었다. 그만큼 빠르게 녀석의 팔이 허공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제길!’

어쩔 수 없었다.

녀석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다면 먼저 사방으로 공격을 펼쳐야만 했다.

츠츠츠츠츳!

아론이 손을 뻗자 땅에서 솟아 나온 가시가 사방으로 뻐ㄸ어져 나갔다. 그 틈은 매우 빽빽해서 한 치의 빈틈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녀석은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공간을 비집고 팔을 뻗었다.

휘릭!

아론이 망토를 펼쳤다. 녀석의 공격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내 반대편에서 남자의 팔이 나타나 공격을 가했다.

콰득!

아론의 어깨가 뜯겼다.

“으읍!”

아론은 비명을 참았다.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녀석의 팔을 향해 마법을 쏟아냈다.

화르르륵!

놈의 팔에 아론이 피운 불이 붙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녀석은 그걸 버티고 있었다.

아론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공격을 받은 상태에서 반격을 하려니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타앗!

그는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남자의 팔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아론이 피한 곳에서 또다시 녀석의 팔이 휘둘러졌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어!’

아론은 남자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고는 그 팔이 사라지기 전에 어스 바인드를 시전해 속박했다.

휘리리릭!

녀석의 팔에 아론이 쏘아낸 마나 줄기들이 얽혀들었다.

하지만 팔은 하나가 아니었다.

휘익!

남자의 나머지 팔 하나가 아론의 머리 위에서 휘둘러졌다.

저게 닿으면 아론은 즉사였다.

콰르릉!

그때였다.

녀석이 묶여있는 곳에 벼락이 떨어졌다. 당연히 아론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 충격으로 아론의 머리를 노리던 녀석의 팔이 멈추었다.

타앗!

아론은 그 틈에 거리를 벌렸다.

‘왔구나.’

그는 근처에 셀린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마법은 아니었으니, 아마 에드먼스 가문의 마법사도 무사히 기운을 회복했으리라고 여겨졌다.

잠시 후, 셀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등 뒤에 사람 하나를 업고 있었다.

‘저자가 본가에서 보낸 마법사겠군.’

방금 떨어트린 벼락 마법은 무리해서 사용한 건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것보단 얼른 아티팩트를!”

셀린의 말에 아론은 마법사가 챙겨 온 보상을 요구했다.

휘익-!

셀린은 그것을 날렸고, 아론은 무사히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건?’

「맹약의 반지」

· 반지를 사용하면 2초간 공격에서 면역됩니다.

반지였다.

효과는 놀라웠다.

공격에서 면역. 즉, 무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고맙습니다, 공작님.’

아론은 보상을 내려준 공작에게 감사하며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2초면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아론은 가속 마법을 건 뒤에 남자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목표는 녀석의 심장이었다.

남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론을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휘익!

놈의 손이 아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아론은 아티팩트의 능력을 발휘했다.

카각!

반지의 능력으로 남자의 공격이 막히고 말았다.

‘끝이다!’

반면 아론은 거침없이 녀석의 앞에 서서 가슴팍에 손을 찔러 넣었다.

콰앙!

그러고는 있는 힘껏 마나를 방출해서 폭발을 일으켰다. 녀석은 거기에 대처하지 못했다.

콰르르르!

심장이 터진 순간, 녀석의 몸에서 검은 마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웅!

아론의 몸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그 마법을 쓴 사람은 공작가의 마법사였다.

그 판단이 정답이었다.

콰쾅!

아론이 그 자리를 벗어나자, 남자의 몸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 * *

폭발이 일어난 곳은 연기가 자욱했다.

잠시 후, 모래 먼지가 가라앉았다. 그곳에는 남자의 사체로 추정되는 잔해들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퍼져 있었다.

아론은 쿠잔의 기지로 인해 폭발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론 님!”

“다행입니다…….”

셀린과 쿠잔 두 사람이 아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안심했다.

물론 목숨만 붙어 있었다뿐이지, 기력은 전투로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도와줘서 고맙다.”

아론은 고개를 돌려 쿠잔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도련님이 무사하셔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쿠잔은 그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합니다. 아론 도련님이 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공작님의 명을 수행하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죽을 뻔했는데, 도련님이 도와주신 겁니다.”

“내가 그런 말을 들어도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군.”

아론은 쿠잔의 상태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도 의문의 남자에게 습격을 받아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론을 구하기 위해서 낙뢰 마법과 이동 마법을 쓰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마나를 일부 사용했었다.

그 덕분에 예기치 못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남자에게 최후의 한 방을 먹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론은 쿠잔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셀린. 내 부탁을 잘 수행해 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아론은 그녀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쿠잔의 생사를 확인하고 데려온 것만으로도 이번에 큰 도움이 되었다.

“움직이는 게 힘드실 것 같은데,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셀린은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부축했다.

아론은 그제야 몸에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번에 자신이 해낸 일들이 실감이 났다.

‘내가 추격자 녀석을 이겼어.’

트레벨에서 보낸 8서클 급의 힘을 지닌 추격자. 비록 혼자 힘으로 쓰러트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추적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어.’

아론은 그게 생각이 났다.

“나를 녀석이 죽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겠어?”

아론의 물음에 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같이 이동했다.

그곳에 도착한 아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자의 사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저건가?’

주위에서 반짝거리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아론은 그것을 주워서 확인해 보았다.

「텔리시온의 거울」

· 거울이 품고 있는 소재를 추적할 수 있는 도구. 그 소재는 이 도구를 처음 제작할 때 정할 수 있다.

· ‘미티움’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물건의 방향을 알 수 있으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대상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

아론은 상태창의 설명을 읽고 나서 아티팩트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대상을 정밀하게 추적할 수 있다고?’

아론이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에 지도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점이 두 개가 보였다.

‘두 개?’

하나는 미티움을 포함한 자신의 펜던트일 것이다.

‘설마 공작으로부터 받은 이 반지도 잡아내는 건가?’

그렇다면 말이 되었다.

그리고 왜 쿠잔이 오는 도중에 남자의 습격을 받았는지도 설명이 가능했다.

‘이 반지, 내가 추측한 게 맞다면 레어 메탈로 만들어져 있어.’

미티움과 레어 메탈은 그 성능에 있어서 차이가 확연히 났다. 하지만 성분은 매우 비슷하다 보니 이 아티팩트가 레어 메탈로 만들어진 것도 찾아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이런 게 있으면 바로 날 찾아 왔을 텐데, 시간이 걸렸던 이유가 탐지 대상에 레어 메탈도 같이 잡혀서였군.’

레어 메탈도 희귀한 물질이긴 했지만 미티움에 비하면 꽤 많이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탐지에 시간이 소요된 것이었다.

“그게 아론 님께서 말씀하셨던 미티움에 반응하는 아티팩트인가요?”

“아마 그런 거 같아.”

아론은 상태창으로 확인한 내용을 굳이 말로 전달하진 않았다. 그러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길드로 돌아가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겠어.”

“알겠습니다.”

“녀석들은 이걸 뺏긴 것만 해도 되게 배가 아플 거야. 보니까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아티팩트는 절대로 아닌 것 같거든.”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트레벨 녀석들은 이번 일로 한 방 크게 먹은 셈이었다.

게다가 8서클급의 인재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정도 되는 실력자는 대륙에서 희귀했다. 녀석들에게는 커다란 손실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맹약의 반지.’

아론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았다.

공작이 마다바드 건의 일로 내려준 보상. 본의 아니게 받자마자 바로 실전에서 써 보았지만 그 효과는 발군이었다.

‘무려 2초 동안 무적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번 쓰면 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것을 이용하면 앞으로 전투에 있어서 더욱 과감하게 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론은 이번 일을 통해서 얻은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도 가장 큰 소득이었다.

“돌아가면 공작님께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겠군요.”

쿠잔은 같은 마법사인지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

그의 말을 들은 셀린도 눈을 크게 뜨고 아론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눈치를 챘다.

“그래. 공작님에게 잘 말해 줘.”

아론은 방금 전 한계에 도전하는 전투를 경험하면서 서클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 6서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론이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쓰면서 복잡한 마나 컨트롤을 할 때, 순간적으로 술식이 막힘없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순간에 자신이 경지를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이거야말로 자랑할 만한 일이지.’

처음 서클을 형성하고 나서는 마법사가 들인 노력에 따라 서클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일정량의 서클이 쌓이면 그 이후에는 단순히 양만으로는 서클을 늘릴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한계를 돌파하거나 큰 깨달음이 있어야 새 서클을 쌓는 것이 가능했다.

어찌 되었던 아론에게 있어 이번 일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9서클까지 한 발 더 가까워진 셈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할로움으로 돌아가자.”

아론은 얼른 길드 건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대적한 상대도 쉬운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아론이 온 힘을 쏟아부을 정도로 큰 전투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두었습니다. 녀석들이 오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셀린의 대답을 들은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쿠잔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도 같이 가겠나?”

“아닙니다. 제 임무는 아론 도련님에게 공작님이 내리신 보상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완수했으니 저는 곧바로 돌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힘을 꽤 써서 휴식이 필요할 텐데.”

“시간이 지나서 이동할 정도로 회복은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론이 쿠잔을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받았네.”

“이번에 있었던 일은 공작님께 상세히 보고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잘 부탁하지.”

아론은 쿠잔과 헤어졌다.

이윽고 셀린의 부하들이 도착했고, 아론은 그들과 함께 할로움으로 돌아갔다.

***

이웨카 길드로 돌아온 아론.

그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새로운 서클이 생긴 직후였으니 무리한 활동은 금물이었다.

아론은 체력 회복을 위해 쉬면서도 서클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것을 돕기 위한 작업도 잊지 않고 시행했다.

한편, 나머지 사람들은 이번에 확보한 ‘텔리시온의 거울’ 아티팩트를 연구했다.

하지만 아티팩트의 사용법만을 알아냈을 뿐, 정확한 제작법이며 기원은 알아내지 못했다.

며칠 뒤, 아론은 휴식을 끝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 생긴 서클을 이용해서 마법을 써볼까.’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훈련장으로 가려고 했다.

‘잠깐만.’

그때였다. 아론은 기이한 마나 반응을 피부로 느겼다.

‘이건?’

아론이 아는 마나였다.

흑암도의 마탑주가 풍기는 마나였다. 아론의 심장을 한번 옥죄던 마나였기에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기운이었다.

‘내가 느꼈다는 건 이곳 할로움에 왔다는 건데……?’

아론은 의아함을 느꼈다.

흑암도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론은 그 목적이 바로 자신임을 확신했다.

‘가봐야겠군.’

아론은 챙겨입고 밖으로 나갔다.

마탑주의 기운을 쫓아가서 나온 곳은 어느 식당이었다.

아론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저기에 있군.’

테이블 한쪽에 후드를 쓴 사람 한 명과 마법사 두 명이 보였다. 후드를 쓴 쪽이 마탑주고 나머지는 마탑의 부하인 모양이었다.

아론은 자연스럽게 그 테이블에 합석했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카이만과 연락했다. 요즘 너 때문에 그쪽이랑 자주 연락을 주고받거든.”

‘공작이 연락했다고?’

이번 일에 대해 공작이 마탑주에게 말을 한 모양이었다. 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비전 마법서까지 준 녀석인데, 금방 죽어 버리면 섭섭하지.”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뭣하면 리치가 되는 건 어떻나? 그러면 죽을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왜 여기로 왔는가 하니, 공작이 나름 마탑주에게 압력을 행사한 모양이었다.

이번에 아론이 겪은 일은 나름 위기라면 위기였다. 그래서 추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탑이 움직여 아론의 뒷배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려고 그랬다.

물론 자식을 끔찍이 아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론은 잘 알았다.

‘아마 부하를 살려서 보낸 거에 대한 보답이겠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연락으로 들으셨겠지만, 미티움을 추적할 수 있는 아티팩트가 있더군요. 그리고 저를 찾고 있는 녀석들의 실력도 매우 강하고요.”

“그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녀석들을 다음에 홀로 만난다면 이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추적자를 죽였으니 이곳으로 시선이 쏠리겠지요.”

“그 말은 즉, 할로움을 벗어나겠다는 거군.”

“예.”

“후보는 생각해 둔 게 있나?”

“일단 페리움으로 가 볼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마탑주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마침 좋은 장소가 있네. 거기라면 자네가 다른 녀석들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그런 곳이 있습니까?”

“단, 추적하는 놈들은 따돌릴 수 있겠지만 거기도 나름 위험한 곳이라서 말이지.”

“거기가 어딥니까?”

“요정의 유적지라는 곳이네. 만약 자네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한층 더 성장할 걸세.”

마탑주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정보를 말해 주었다.

* * *

‘요정의 유적지…….’

마탑주의 말을 들은 아론은 생각했다.

‘거기는 요정족이 살았던 곳 아닌가? 하지만 걔네들은 오래전에 멸종했을 텐데.’

아론은 어째서 마탑주의 입에서 그 장소의 이름이 나왔는지 의아했다.

요정족과 비슷한 종족으로는 엘프들이 있었다. 그들은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정보를 구하려고 마음먹으면 꽤 방대한 양의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정족은 대륙에서 관련된 사료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꽤 옛날에 자취를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몇몇 전설이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옛날이야기에서만 그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요정들은 다른 종족과 다르게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대륙의 그 어떤 종족들보다도 강력한 힘을 지녔었다.

요정족처럼 사라진 역사라면 사족을 못쓰는 연구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열심히 요정족에 대해 연구했지만 별달리 소득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왜 그들은 대륙에서 자취를 감추었는가. 그게 제일 궁금한 점이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말씀하신 그 요정의 유적지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아론의 물음에 마탑주는 침묵했다. 그러면서 아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가 결의를 가지고 있는지 탐색하는 행동이었다.

“대수림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네.”

“대수림이요?”

아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거기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했지 않는가. 나름 위험한 장소라고 말일세.”

대수림.

그린데란트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었다. 페리움은 그래도 옛날 역사를 뒤져보면 방문한 인간이 있었지만 그곳은 아직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장소였다.

“그래도 갈만한 가치가 있지.”

“어떤 점에서 말씀이십니까?”

“내가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요정의 유적지에는 요정족의 신물이 있다고 하는군.”

아론은 마탑주의 말을 경청했다.

“신물은 이름처럼 신기한 힘을 품고 있네. 마법을 쓰기 위해 필요한 마나나 신체를 초월하게 만들어주는 오러와는 다른 성향을 지닌 힘이지.”

“그런 게 있습니까?”

아론의 물음에 마탑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욕심을 냈던 물건이지. 하지만 너무 위험해서 말이야.”

“마탑주님도 엄두를 못 내는 건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끝까지 들어보게. 위험한 것도 있지만, 그 신물의 힘은 내가 지닌 흑마력과는 정반대의 상성을 지녀서 말이야.”

“아하.”

“이해했나?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얻을 이점이 없다 이 말이지.”

마탑주는 아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네는 다르지. 자네는 그 힘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걸세.”

그런 게 있다면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 요정족의 신물이란 게 있으면 좋겠지요. 그런데 대수림을 탐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수림은 세간에서 오지 중의 오지라고 일컬어졌다.

대륙의 웬만한 땅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점령되고 개발이 된 상황. 새로운 땅을 찾고자 하는 권력자들은 돈을 써서 대수림에 탐험가들을 보냈다.

혹시라도 희귀 광물이나 요정과 관련된 물건을 찾으면 대박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대수림이라는 이름처럼 그곳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어딜 가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서 방향감각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은 신기한 힘이 퍼져 있어서 마나나 오러를 발현할 수가 없었다.

아론에게 있어 마법을 쓰지 않고 그곳을 돌파하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니, 왠지 모르겠지만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군.”

마탑주는 아론의 말을 반박했다.

“자네에겐 방법이 있네.”

“제가 모르는 방법이 있습니까?”

“자네가 계약한 태초의 정령.”

마탑주는 쿠브를 들먹였다.

“대수림에서는 마나와 오러를 쓸 수 없다 보니 생존에 많은 위협을 받지. 하지만 정령은 다르다네. 정령의 힘도 약해지긴 하지만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네.”

마탑주가 말한 정보를 알고 이미 탐험에 시도해 본 사람도 있었다.

정령과 계약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이용해도 성공적인 탐험은 할 수 없었다.

“자네의 정령은 태초의 정령. 따라서 다른 정령사들과는 다르게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마탑주는 거기까지 말한 뒤 아론의 눈을 응시했다.

“물론 내 말은 어디까지나 조언일세. 자네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지 않아도 좋아.”

“잠깐만,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아론의 머릿속은 계산기를 두드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가 맞닥뜨리고 있는 적들의 수준은 정확히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높다는 건 확실했다.

이번에 맞섰던 남자도 그랬다.

8서클급의 실력을 지닌 사람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된 놈들과 싸울 때는 이 정도 실력자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번에도 힘겹게 이겼어. 만약 놈보다 강한 녀석이 나타나게 된다면…….’

지금의 아론으론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연구가 꽤 진행된 모양이다.’

인공 미티움을 활용한 생체 골렘을 만드는 연구. 생체 골렘이 된 녀석의 능력은 자신이 지닌 것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는 9서클급보다 훨씬 강한 녀석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아론은 그걸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그리고 트레벨의 추적도 있었다. 녀석들이 자신을 쫓고 있었고, 이대로 있으면 발각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마냥 도망만 치는 건 해결 방법이 아니지.’

게다가 아론은 혼자가 아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얼마든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후우.”

아론은 한숨을 쉬었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위험밖에 없다면, 적어도 내가 강해질 수 있는 길을 고르고 싶다.’

아론은 결심했다.

“알겠습니다. 요정의 유적지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

아론은 트레벨의 추적을 감안해서 곧바로 할로움을 떠났다.

라엘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아론의 결정에 놀랐고, 따라가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대수림에서는 마나와 오러를 쓸 수 없었다. 그들이 가봐야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단신으로 가는 게 훨씬 안전했다. 아론은 쿠브를 이용해서 자신만 지키면 되니 말이다.

대수림으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아이젠 왕국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었다. 아이젠은 대수림과 국경의 일부를 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론은 이 방법을 쓸 수 없었다. 아이젠의 땅을 밟는 것도 위험한데, 대수림으로 가려면 철저하게 신분 조사를 거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론은 남은 나머지 하나의 방법을 골랐다. 남들이 보기엔 더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적어도 아론에게는 아니었다.

바로 그린데란트 산맥을 통해서 가는 것이었다.

아론은 몇 날 며칠을 꼬박 이동해서 그린데란트 산맥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도 오랜만이군.’

이전에는 드워프들이 만든 비행선을 타고 온 적이 있었다.

다다다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것이 아론의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자세히 보니 드워프였다.

그것도 아론이 아는 드워프.

바칸이었다.

아론은 그의 등장에 놀라워했다.

여기서 바칸을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옛날에는 멀리서 보았을 때도 그의 힘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고 힘을 대가로 쓴 이후로는 아직 회복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바칸님이 왜 여기 계십니까?”

“그건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바칸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산맥 초입에서 동료들과 같이 몬스터를 토벌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투력을 회복하는 데에는 사냥만큼 좋은 게 없지요.”

바칸은 아론을 보며 물었다.

“근처에 몬스터가 아닌 다른 힘이 느껴지길래 헐레벌떡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론 님이셨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뭐, 잘 지냈습니다.”

“이전보다 더 성장하신 모양입니다.”

둘은 가볍게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론 님은 어쩐 일이십니까?”

“대수림에 들어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여기 말고는 갈 방법이 없어서 말입니다.”

“예? 대수림이요?”

바칸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진심이십니까? 아무리 아론 님이라도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바칸 역시 예전에 몬스터를 토벌한다고 대수림에 가본 적이 있었다. 물론 외곽 부분만이었다. 안쪽은 감히 드워프라고 해도 다가가지 못했다.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바칸은 거기서 아론의 심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군.’

바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못 봤던 그 사이에 험난한 여정을 겪었으리라고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다.

“그럼 일단 페리움으로 가시지요. 호위대를 꾸려드리겠습니다.”

바칸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족장님이라면 아론 님을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론 님은 페리움 왕국의 은인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일입니다.”

바칸은 그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칸은 이곳을 떠나 주위에 있는 드워프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아론과 함께할 호위대는 금방 꾸려졌다. 그들은 반갑게 아론을 맞이해 주었다.

아론은 격납고에 있던 마차를 타고 드워프들과 같이 이동했다.

그린데란트 산맥에는 몬스터가 우글거렸다. 하지만 쿠브의 도움으로 녀석들을 피해서 갈 수 있었다.

“정령님도 한층 더 성장하셨군요!”

바칸은 쿠브의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어쩌면 대수림에 들어가셔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론이 탄 마차는 페리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 * *

아론은 마차 안에서 페리움을 돌아보며 옛날 생각에 잠겼다.

‘내가 떠나기 전만 해도 한창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페리움 왕국은 십만이 넘는 몬스터 군단과 전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성문은 물론 그 근처에 있던 마을도 파괴가 되었는데 다시 말끔한 모습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헤핌 님은 잘 계십니까?”

“예. 최근에 어떤 무기를 만드신다고 열정을 불태우고 계십니다. 그래서 공방에서 나오질 않으시더군요.”

“작업으로 바쁘신 모양이네요. 한번 뵈려 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아론이 탄 마차는 페리움 왕성에서 멈추었다.

“어서 오게.”

“아론 님!”

마차에서 내리자 드워프 족장 중 한 명인 쿠르트가 그를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뷰란트 형제도 아론을 보더니 얼굴에 화색을 띠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론은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원래 쿠르트는 왕국의 정사로 상시 바빴다. 하지만 페리움의 영웅이나 다름없는 그가 온다길래 없는 시간을 내어서 맞이해 주었다.

“자네 혼자 왔는가?”

“예, 그렇습니다.”

“어쩐 일로 오게 되었나?”

“대수림에 가려고 그린데란트 산맥을 지나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 바칸 님을 만나게 되어서 같이 왔습니다.”

“허어, 대수림에 간다니…….”

쿠르트는 걱정이 된다는 눈빛으로 아론을 바라보았다.

“꼭 가야만 하는가? 그곳은 많이 위험하다네.”

“예. 대수림 깊숙한 곳에 제가 원하는 게 있는지라 어쩔 수가 없군요.”

“허어…….”

쿠르트는 곤란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드워프들도 아론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네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니, 내가 함부로 말릴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우리의 은인이니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대수림의 초입을 지나쳐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네. 가게 된다면 그 길을 이용해 주게.”

“그런 게 있었습니까?”

아론은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수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전투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드워프들이 다니는 길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대수림에서는 먹을거리라든가 물을 구하기 쉽지 않을 걸세. 그것들을 여기서 챙겨 가시게.”

“필요한 물건들은 제가 준비해 두겠습니다.”

쿠르트의 말에 바칸이 재빨리 대답했다.

드워프들은 대수림 입구까지 몬스터 토벌을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무엇을 준비해둬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칸이 부하 드워프들에게 지시했다. 그들은 분주히 움직여서 각자 물건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내 준비물들이 뒤로 맬 수 있는 가방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뭘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아론은 쿠르트와 바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대수림 안쪽까지 같이 가드릴 순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 드려야지요.”

바칸은 웃으면서 말했다.

가방에 들어가는 물건들은 다양했다.

장기간 보관에 적합한 마른 식량은 물론, 어떤 물을 넣어도 식수로 만들어 주는 물통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기능성 침낭 등등 여러 가지를 준비해 주었다.

‘이것들을 망토에 넣어 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망토의 아공간도 마나를 이용하는 능력이었다. 대수림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사용할 수 없었기에 가방은 필수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이겁니다.”

바칸은 아론의 손에 동그란 물건을 하나 쥐여 주었다. 아론이 그것을 확인해 보니 나침반이었다.

“이건……?”

“그냥 나침반이 아닙니다. 페리움 광산에 묻혀 있는 특수한 광물의 맥을 쫓을 수 있는 나침반입니다. 저희들도 자주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바칸의 설명을 들은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수림에서는 일반적인 나침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안에서 흐르는 기묘한 마나의 흐름이 자성을 흩트려 놓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페리움 광산에만 있는 특수 광물의 기운은 달랐다. 이 기운은 대수림 안에서도 탐지가 가능했다. 이런 점을 발견한 드워프들이 광물에 반응하는 나침반을 만들어 대수림 근처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잘 쓰겠습니다.”

아론은 그것을 챙겨 두었다.

***

아론은 곧바로 준비물들을 챙겨서 대수림으로 출발했다.

거기까지 가는 길 안내는 예전에 같이 몬스터 군단에 맞서 전투했던 티푸르가 동행해 주었다.

‘수호자 드워프가 입구까지 같이 가준다니, 든든하구만.’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였다.

쿠르트가 말했던 길은 다름 아닌 드워프들이 이용하는 갱도였다.

오래전에 폐광이 된 장소라고 했었다. 아직 많은 광물이 묻혀 있지만 대수림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곳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이 갱도를 드워프들의 비밀 통로로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드워프들에게 맞춰진 길이라서 인간인 아론이 이용하기엔 약간 불편했지만, 아론은 이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아론과 티푸르는 길었던 갱도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대수림의 입구는 지났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티푸르와는 여기서 헤어졌다.

아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왜 방향 감각을 쉽게 잃는다고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사위가 온통 커다란 수목으로 빽빽하게 들이 차 있었다. 넓게 뻗은 잎들이 태양을 가려서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스스슷-

아론은 평범하게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스산하게 느껴졌다.

‘마나를 발현할 수가 없다.’

혹시나 싶어서 마법을 써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자신의 뜻대로 마나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는 내 몸 하나만 믿고 가야 하는 거구나.’

아무리 아론의 몸이 천부적인 마나의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이곳 대수림에서는 그냥 허약한 소년에 불과했다.

그래서 약간이지만 공포심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이겨 내야 한다. 요정의 유적지를 찾아서 강해져야 해.’

아론은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강하게 상기시켰다.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힘을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향하는 유적지에 있는 요정의 힘이 탐이 났다.

오면서 티푸르에게 요정족이 멸망했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물질계에서 유일하게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신에 근접해 있던 종족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멸망한 이유가 신에 의해서였다.

어느 요정이 신을 동경한 나머지, 신처럼 되려다가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설화는 지구에서도 유명했지.’

대륙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드워프들은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이야기도 전승되는 모양이었다.

‘가장 신에 근접해 있던 종족이 사용하는 힘이라니.’

아론은 그 힘이 당연히 강력할 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었다.

아론은 바칸에게서 받은 나침반을 꺼냈다.

‘잘 작동하는 것 같군.’

나침반의 끝부분이 방금 아론이 나온 갱도를 가리켰다. 이제 이거를 토대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중심지는 나침반의 반대편으로 계속 가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아론은 쿠브를 소환했다.

포옹!

다행히도 쿠브는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쿠브. 여기서 힘을 쓸 수 있니?”

“응! 잠시만 기다려 봐!”

쿠브는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의 모래를 흩날렸다.

“이상한 기운 때문에 힘이 조금은 약해진 것 같아! 하지만 쓸 수 없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

아론은 쿠브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본격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아론은 오로지 나침반에 의존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

이곳이 얼마나 넓은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매우 광활하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나아가도 나아가도 똑같은 풍경만 펼쳐지는군.’

처음 대수림의 풍경을 보았을 때도 달갑지 않았는데, 이제는 지겨워지려 하고 있었다.

괜히 탐험가들이 지레 포기하거나 여기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몇 시간째 걷기만 했다. 그럼에도 중심지에 도달한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쿠브. 혹시 근처에 힘이 느껴지는 곳이 있어?”

“아니, 없어.”

쿠브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나타날 리 없겠지.’

포기할 순 없었다.

아론은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아론은 몇 날 며칠을 걷기만 했다. 몸은 피곤했고, 시간 감각은 흐려진 지 오래였다.

드워프들이 식량을 챙겨 줬기에 망정이지, 그냥 들어왔으면 큰일 날 뻔했었다.

‘하지만 식량도 무제한은 아니야.’

아론은 미래를 대비해 아껴 먹고 있었지만 이 식량도 언젠가는 동이 날 터였다.

“쿠브. 이 방향이 맞니?”

아론은 나침반의 반대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어 보았다.

“응.”

나침반과 쿠브. 이 두 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방향은 틀리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론은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아론! 잠깐만!”

그때였다.

쿠브가 아론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멈춰 세웠다.

“왜 그래?”

“몬스터의 기운이 느껴졌어.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아.”

아론은 쿠브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쿠브의 감지 능력은 틀린 적이 없었다.

“피할 수 있을까?”

“몬스터의 속도가 빨라. 아무래도 아론을 추적해서 온 모양이야.”

곤란한 상황이었다.

여태까지는 이곳의 몬스터가 자신을 찾기 전에 알아서 피해 갔는데, 오히려 찾아오는 녀석이라니.

‘도망가는 건 무리다.’

차라리 아론은 힘을 빼지 않고 녀석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크르릉……!”

늑대의 모습을 한 몬스터 무리가 아론의 앞에 나타났다.

실바스틴이라는 이름의 몬스터였다. 늑대형 몬스터 중에서 영악하기로 소문난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자신보다 약한 무리만 골라서 습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내가 약하다는 판단을 마쳤나 보군.’

아론은 녀석들을 살펴보았다.

‘으음, 잠깐만.’

그는 개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지닌 우두머리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대수림의 중심에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

아론은 티푸르가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대수림에는 사나운 몬스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실바스틴을 조심하십시오.]

[실바스틴?]

[저희들이 은빛 털을 지닌 늑대 녀석들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드워프들도 웬만해선 녀석들과 마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실바스틴은 기본적으로 무리 지어 다닙니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협동해서 싸우지요. 놈들의 우두머리를 본다면 도망치십시오. 마나를 쓸 수 없는 몸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수림에서는 죽어라 달려 봤자 녀석들에게서 벗어나기 힘들지 않습니까? 차라리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웬만해선 전투를 피하는 게 좋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이건 최후의 수단이니 부디 쓰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티푸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실바스틴을 상대하는 방법을 말해 줬었다.

아론은 지금.

그 방법을 써볼 생각이었다.

“크르릉…… 컹! 컹!”

선두에 있던 실바스틴 몇 마리가 아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론은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다.

파바바박!

땅에서 돌로 된 날카로운 가시가 녀석들의 경로에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제일 앞에서 달려오던 녀석들은 예외 없이 거기에 찔렸다. 뒤따라오던 녀석은 달리는 것을 멈추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실바스틴 무리는 놀랐다.

갑자기 아론이 마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대수림에 들어온 인간을 사냥하면서 이런 일은 겪은 적이 없었다.

물론 이는 쿠브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 사실을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바스틴 무리는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아론을 주시하기만 했다.

“크르릉…….”

우두머리가 낮은 목소리로 울었다. 그러자 흥분 상태에 놓여 있던 실바스틴이 진정하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아론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넓게 에워쌌다.

‘티푸르가 말한 대로군. 우두머리를 따라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아론은 실바스틴 무리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해 보았다.

순수하게 이 녀석들과 싸워서 승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린데란트 산맥의 몬스터들은 대륙의 몬스터와 달리 꽤 강한 무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녀석들도 사실 대수림에서 버티지 못하고 밀려난 존재들이었다.

즉, 대수림이 서식지인 몬스터들은 이미 강함이 증명된 녀석들이었다.

‘괜히 마탑주조차도 위험한 곳이라고 말한 게 아니지.’

아론이 마주하고 있는 실바스틴도 그랬다. 녀석들은 아론의 마법으로도 치명상을 입히기 힘든 맷집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무리 사냥을 하는 녀석이다. 녀석들의 합공은 드워프들도 몸서리를 칠 정도로 강하다고 했었다.

그에 반해서 아론은 대수림의 특성상 자신의 장기인 마법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몸도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아론은 대수림에서의 여정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식량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

실바스틴 무리의 전원을 상대하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론은 티푸르가 알려 준 방법을 따라서 영리하게 싸우기로 했다.

“커헝!”

준비가 끝난 실바스틴이 사위에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몇몇 날쌘 놈들은 수목을 발판삼아 뛰어오르고 있었다.

아론은 녀석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몸에 망토를 덮었다. 비록 마나를 이용한 아공간은 쓸 수 없었지만 여전히 망토는 뛰어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쿠브, 부탁할게!’

아론은 그러면서 유일하게 능력을 쓸 수 있는 쿠브에게 우두머리를 노리라고 지시했다.

촤학!

실바스틴의 날카로운 발톱이 아론을 공격했다. 망토로 막은 부분은 별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만 미처 덮지 못한 곳은 상처를 상처가 생기고 말았다.

녀석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아론의 망토를 벗긴 뒤에 무방비한 몸을 노릴 것이었다.

하지만 실바스틴 무리는 그럴 수 없었다.

“케흑!”

쿠브의 속박 마법에 의해 우두머리가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놈들의 사령탑이 꼼짝없이 위기에 처했으니 다른 녀석들도 당황해서 움직이지 못했다.

‘다행히 성공했군.’

아론은 우두머리를 향해 말없이 걸어갔다. 나머지 실바스틴은 감히 아론의 길을 막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혹시라도 위해를 가하면 우두머리의 생사를 보장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크르릉!”

하지만 무리 중에서도 유독 별난 녀석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실바스틴 중 하나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론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케흐흑!”

아론은 말없이 쿠브를 시켜서 우두머리를 더욱 거세게 속박했다.

우두머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녀석은 순순히 물러났다.

‘굳이 실바스틴을 사냥하려면 우두머리를 제압하라는 말이 정답이었다.’

아론은 방법을 알려 준 티푸르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그의 발걸음은 우두머리 앞에서 멈춰 섰다.

“너, 말할 수 있지?”

아론이 말을 걸었다.

우두머리는 시선을 피했다.

“말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영물이니까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듣고 왔거든.”

잠시 후, 우두머리는 다시 아론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굳이 널 죽이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자고.”

아론은 씩 웃으며 말했다.

녀석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거부하면 쿠브를 이용해 죽이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

타다다닥!

십수 마리의 실바스틴 무리가 대수림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무들로 빽빽한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의 속도는 평야를 달리는 말보다도 빨랐다.

그들의 질주를 막을 몬스터는 없었다. 우두머리가 함께하는 실바스틴 무리는 대수림에서도 꽤 난폭한 집단이었다. 그래서 굳이 이들과 마찰을 빚는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두머리를 선두로 한 실바스틴 무리는 대수림의 중심부로 향하고 있었다.

아론은 우두머리의 등에 탑승한 채 이동하는 중이었다.

“중심부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 속도로 달리면 30분 내로 도착한다.”

대답을 들은 아론은 앞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달렸는데 30분을 더 가야 한다니.’

대수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중심부까지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멀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론은 우두머리의 등에 탄 채 험난한 지형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절벽은 물론이요 걸어서 가기는 불가능한 강도 있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아론의 몸으로는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막막한 환경이었다.

‘빙 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식량이 먼저 동이 났을 거다.’

그 거친 지형과 먼 거리를 실바스틴을 이용하니 쉽게 지나칠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두머리가 속도를 줄였다. 뒤따라오던 실바스틴 무리도 따라서 멈춰 섰다.

아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방에는 유독 거대한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대수림의 수목들은 대부분이 울창했지만, 지금 시야에 들어온 나무들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우리들은 여기까지다. 나를 포함한 실바스틴은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아론은 우두머리의 등에 내려서 앞을 살펴보았다.

지잉.

무언가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게 마탑주가 말한 결계인가.’

그는 왜 실바스틴이 이 이후로 넘어가지 못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계가 존재했다.

‘이런 대수림에서 무슨 방법을 써서 결계를 친 거지?’

아론은 신기했다.

이곳에서는 특유의 기운 때문에 마나의 발현을 방해받았다. 결계라고 해도 마나를 매개로 하기에 설치하는 것은 어려웠다.

‘대체 누가 이런 걸 쳤을까.’

이 대수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거나, 혹은 뛰어넘을 정도로 실력을 지니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여기까지 태워 줘서 고맙다.”

아론은 실바스틴 무리를 보냈다.

그런 뒤 가방에서 보석을 하나 꺼냈다. 마탑주로부터 받은 물건이었다. 결계에 보석을 가져다 대면 통과할 수 있다고 했었다.

「요정족의 결계석」

· ? ? ? ?

상태창을 띄워 보았지만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론은 마탑주를 믿고 보석을 쥔 채 결계를 만졌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아론이 손을 댄 부위를 중심으로 결계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통과할 수 있겠는데?’

아론은 손부터 넣어 보았다. 별 막힘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그걸 확인한 뒤에는 아예 몸을 집어넣어서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결계가 있다는 건, 여기서부터 요정의 유적지라는 말인가?’

아론은 먼저 주변을 탐색했다.

좀 더 걸어 나가니 마을이 보였다.

건물이 존재했고, 마차가 지날 수 있도록 길이 닦여 있었다.

‘오래전에 시간이 멈춘 곳 같군.’

마을을 본 아론의 감상이었다.

옛날에 누군가가 살았다는 추측은 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론은 이리저리 건물을 다녀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요정족은 최소 수백 년 전에 멸망한 종족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살았던 환경은 지금 인간의 마을과 비교해 봐도 뒤떨어질 것이 전혀 없었다.

‘이들이 명맥을 이어 왔더라면 기술력에서 드워프와 각축을 벌였겠어.’

그러면서도 이들을 하루아침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한 신의 분노가 새삼 두려워졌다.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변 탐색을 계속했다. 그는 광장을 찾고 있었다.

마탑주는 이 결계석을 들고 광장에 있으면 요정족의 시험을 칠 수 있다고 했었다.

잠시 후, 아론은 길이 넓게 나 있고 커다란 분수대가 있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광장이겠군.’

그러자 아론의 손에 들려 있던 결계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론은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감각을 느꼈다.

‘이건…….’

마치 다른 공간으로 전송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론은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맡겼다.

잠시 후. 이상한 감각이 사라졌을 때, 아론의 눈앞은 온통 새카맣게 물들어있었다.

‘어디지?’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방향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론은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경계했다.

잠시 후.

갑자기 전방이 밝아졌고,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

‘대체 무슨 일이……?’

아론은 앞을 보고 놀랐다.

그가 아는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바로 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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