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27/40)

Chapter 2

남자는 갑작스럽게 변한 아론의 실력에 당황하고 말았다.

‘분명 내가 전력을 다하면 누를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그러나 무슨 변화를 겪었는지 아론의 힘은 격이 달라져 있었다.

아론의 눈. 마치 뭔가를 깨달은 것 마냥 결의에 차 있었다.

‘설마 전투 중에 성장한 건가?’

남자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저 녀석의 발판이 되어 줘야 한다는 게 심히 불쾌했다.

그러나 어쩔 방도가 없었다.

이제 저 화염이 자신을 덮치게 된다면 꼼짝없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억울해서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아론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기로 했다.

‘저 녀석을 살려두면 앞으로 계속해서 우리들의 일을 방해할 것이다.’

비록 자신이 죽더라도 테네브라의 숙원은 이루어져야 했다.

남자는 던전의 붕괴를 각오하고 모든 마나를 끌어모았다.

화르륵!

모인 마나는 남자의 양손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이 되었다. 방어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공격 일변도의 화염이었다.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은 직선을 그리며 아론을 향해 날아갔다.

아론은 그걸 보고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바루나 소드의 보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론은 그 보석이 전해주는 기운의 충만감을 느끼면서 물의 벽을 만들었다.

남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날린 불꽃은 아론의 방어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

남자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날린 공격이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으니 그럴 만 했다.

반면, 남자는 아론이 날린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미 마나를 전부 소진한 탓이었다.

파사삭!

그는 뜨거운 불꽃을 견디지 못하고 온몸이 타 버렸다. 결국 그가 있던 자리에는 재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녀석이 죽자 일대에 정적이 일었다.

‘저게 근위 마도병단의 진짜 실력…….’

아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조사단원 한 명이 그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한편, 켄트도 아론의 실력에 경외감을 가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중간에 아론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도 눈치챘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쓰시는 건지.’

켄트도 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론은 언제나 저렇게 훌쩍 앞으로 먼저 가 있었다.

부르르-

아론은 가볍게 떨고 있는 자신의 몸을 인지했다. 힘이 들어서 떠는 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환희에 가까웠다.

‘성장했구나.’

아론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그는 비전 마법인 쇼크웨이브의 원리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역시. 마정석을 놓고 백날 연습하는 것보다 한번 실전이 더 가치 있구나.’

직접 전투에서 써 보니까 감이 잘 잡혔다.

그리고 흑암도에서 봤었던 바스티안이 쿠베라 소드를 다루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검의 힘을 이용해 대지의 기운을 빌린 바스티안은 마탑주에게 근소한 차이로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었다.

‘그만큼 미티움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는 거지.’

아무래도 칠검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속성을 강화시켜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아론도 이번 전투에서 그걸 여실히 느꼈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전투 중에 펜던트의 회로와 자신의 회로가 연결되었음을 인지했었다.

불 마법을 쓰니 아그니 소드의 보석이, 물 마법을 쓰니 바루나 소드의 보석이 힘을 보태주었다.

그 덕분에 아론은 남자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다.

‘이거 말고도 더 힘이 있을 것 같군.’

아론은 칠검의 힘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켄트에게는 사과해야겠지.’

그는 켄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아론은 그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항상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게 만드는구나.”

아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체가 즐비했고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테네브라의 단원들은 브룩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고, 조사단원들도 몇 명만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켄트는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론의 말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아론과 같이 다니면 항상 위기 상황을 맞이했었다. 쉬운 일인 것 같았는데도 결국 큰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았다.

‘이 정도면 저주일려나.’

켄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 말을 들은 아론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네가 나랑 같이 다니게 된 것도 결국 내 의지 때문이었으니까. 켄트, 네가 원한다면 너를 본가로 보내줄게.”

아론은 자신이 위험에 처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켄트나 라엘이 피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았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느꼈다.

켄트는 무리해서 방어 마법을 펼친다고 양팔에 화상을 입어 물집이 생겼다.

만약 찰나의 차이로 마나의 공급을 끊지 못했었더라면 켄트는 주위에 있는 시체들처럼 될 뻔했다.

‘목숨을 거는 건 나 하나면 된다. 괜히 다른 사람이 엮일 필요는 없어.’

아론은 살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목적이 다름을 알았기에 자신의 목표를 강요할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켄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제 의지로 아론 님을 따라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 사건에 휘말릴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이 온전히 아론에게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니었다. 켄트도 놀랄 만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성장은 대단한 희열을 전해주었다. 그렇기에 켄트는 아론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켄트.”

아론은 복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말로는 보내주겠다 했지만, 그는 켄트와 같이 가고 싶었다.

지구와는 다른 낯선 이 세계에서, 아론이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가 켄트였다.

쿠구구!

그때였다.

던전이 서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무너지려는 모양이군.”

아론은 이미 재가 되고 없는 남자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던전의 마나를 모두 끌어다 썼기에 결국 던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주변은 어떻게 해서든 보존해야 해.’

여기에는 흑마법을 쓰는 녀석들의 시체가 있었고, 놈들이 만들던 실험체도 있었다.

‘쿠브, 부탁할게.’

아론은 쿠브에게 이 근처를 돌벽으로 튼튼하게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러면 던전의 다른 곳은 붕괴될지언정 이곳은 지키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아론 님. 이게 녀석들의 전부일까요?”

켄트가 아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짓을 하는 녀석들치고는 너무 규모가 작은 것 같아서요.”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단체는 이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닐 거다.”

아론은 추측하건대 러셀이 주도하는 단체가 테네브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곳도 그가 관리하는 여러 단체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언제든 꼬리를 잘라 버릴 수 있도록 규모도 일부러 제한해 뒀겠지.”

여러 개를 운용하면 자칫 잘못될 경우에 꼬리 자르기를 쉽게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능구렁이 같은 자식이라니까.’

아론은 러셀에 대해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 있겠네요.”

켄트는 아론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교주 녀석이 숨은 붙어 있으니까. 저 자식에게 한번 물어보자고.”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있는 브룩스를 쳐다보았다.

녀석은 전투 도중에 남자가 쏘아낸 화염에 휘말려 곧바로 전투 불능이 되었었다.

지금은 녀석이 죽어서 불이 꺼진 덕분에 목숨만은 부지하고 있었다.

“괜찮겠습니까? 흑마법사는 심문하려고 하면 오히려 자기한테 저주를 걸어 버리거나 미쳐 버리지 않을까요?”

“저번에는 심문 도중에 흑마법사의 정신이 나가 버렸지만, 이번에는 다를 거야.”

아론에게는 비전 마법인 쇼크웨이브가 있었다. 심문 전에 녀석의 흑마력을 빼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설마 비전 마법을 쓰시려고요?”

“그래.”

켄트는 아론의 그 발상에 몸을 떨었다. 마나가 탈진된 상태에서 심문을 받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깨어 있어?”

“아직 숨은 가늘게 쉬고 있어요. 기절한 것 같네요.”

“그럼 네가 좀 이 녀석을 업어야겠다.”

“알겠습니다.”

아론은 그렇게 말해두고는 조사단장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군.’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아니지. 발악해서 목숨을 건졌다고 해야 하나?’

아론이 비전 마법을 썼을 때, 조사단장은 저주에서 풀려나 자유를 찾았었다. 그때부터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전투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었다.

저벅저벅.

아론이 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허억!”

그러자 그는 겁을 집어먹었다.

‘대체 저자는…….’

그는 아론이 싸우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아무리 근위 마도병단이라 해도 저게 일개 개인의 힘이 맞는지 궁금했다.

확실한 건, 아론이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마법사라는 거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땅에 머리를 찧고 싹싹 빌었다. 조사단장으로서 이번 일이 실패한 건 크나큰 실책이었다. 만약 아론이 그대로 왕실에 보고한다면 자신은 목이 날아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론은 그런 녀석의 걱정에 별 관심이 없었다.

“너네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론의 그 말에 조사단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에드먼스의 조사단을 이쪽으로 부를 예정이다. 너는 참고인으로서 상세히 이번 일을 말해라.”

아론은 그렇게 주의를 주며 뒷말을 덧붙였다.

“단, 우리 둘의 존재는 없던 거로 해둬라. 알아서 잘 빼서 설명해. 알겠지?”

“예, 예!”

조사단장은 목이 떨어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론은 녀석을 놔두고 던전을 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저 녀석이 우리에 대해서 입을 꾹 닫고 있을까요?”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물이긴 해. 뭐, 말해도 상관은 없어. 어차피 저놈은 우리에 대해서 모르잖아?”

근위 마도병단이라고 이름을 댔지만 그건 거짓 신분이었다.

“고작 전해봐야 마법사 둘이라는 정보뿐이겠지. 그걸로 우리를 특정할 순 없을 거다.”

“그건 그렇군요.”

켄트는 아론의 말에 동의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공작가에 말해서 조사단을 파견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러셀이 어떻게 움직일지 궁금하네.”

아론은 심사가 뒤틀릴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 * *

이튿날.

에드먼스 공작가에서 파견된 조사단이 마다바드의 바하 교단에 들이닥쳤다.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신성한 종교 시설이라고요!”

갑작스러운 그들의 방문에 교단의 신도들은 어떻게든 그들을 막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교주도, 부교주도 없는 상황에서 몇 명 남지도 않은 신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공작가의 조사단은 왕실에서 파견된 사람들과는 다르게 훨씬 체계적이었다.

“에드먼스 공작가의 법률에 따르면 흑마법의 정황이 의심되는 장소는 허가받지 않고 조사할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엄포하고는 교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에이든과 몰스는 나랑 같이 던전으로 간다.”

“예!”

이번에 조사단을 이끄는 던컨은 부하들을 데리고 던전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자네도 따라오도록.”

“예, 예…….”

던컨은 살아남은 왕실 조사단장도 같이 끌고 갔다.

아래로 내려간 그들은 던전을 유심히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유지하는 마나가 지금은 없기에 꽤 많은 곳이 붕괴된 상태였다.

‘그래도 인공 던전 치고는 잘 만들어져 있군.’

던컨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던컨님! 저 앞에……!”

앞서 나가던 부하 중 한 명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이내 던컨의 시야에 생체 실험의 적나라하게 들어왔다. 몇몇 실험체는 온전하게 유리병 안에 들어있었지만 대다수가 깨어져서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던컨은 그것을 보고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일을 러셀 님의 영지에서 몰래 하고 있었다고?’

그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흑마법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곳이 바로 에드먼스 가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이해 가지 않는 사실은 보고 받은 내용이었다.

‘분명 왕실 조사단 녀석들이 사투 끝에 여기를 발견했다고 했지?’

던컨은 그 내용을 믿지 않았다.

왕실 소속 마법사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왕실에서 온 조사단장도 내가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 말은 즉, 별 볼 일 없는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왕실 조사단이 이번 일에서 활약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던컨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왕실 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이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보고한 내용은 모두 사실인가?”

“무, 물론이죠.”

“수장으로 추측되는 교주도 너희들의 힘으로 죽였다고?”

“예에…….”

던컨은 조사단장을 노려봤다.

분명히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부교주는?”

“그 녀석도 저희들이 치열하게 싸운 끝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만,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사실입니다.”

대답을 들은 던컨은 화를 삭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 실력을 잘 알아. 지금 그 주둥아리를 한 대 치고 싶은데, 그래도 명색이 국왕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녀석이니까 참고 있는 거야.”

“…….”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야?”

“예…….”

조사단장은 죽어가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사실대로 불어! 그 두 사람이 자기들 행방을 말하면 안 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는데!’

그는 아론을 떠올리며 벌벌 떨었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던컨은 그런 조사단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분명 외부에서 개입이 있었다. 그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런 던전을 만들어낸 실력자를 쓰러트린 사람이었다. 실력만은 출중하다는 뜻이었다.

‘빨리 조사를 끝내고 공작가에 이 내용을 보고해야겠군.’

던컨은 조사를 서둘렀다.

***

아론은 켄트와 함께 무사히 할로움으로 돌아왔다.

그는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곧장 브룩스의 심문에 들어갔다.

지하에 위치한 으슥한 방에 브룩스를 집어넣고는 문을 닫았다.

‘예전에는 무식하게 바로 정신 마법을 걸었었는데 말이야.’

아론은 이전에 흑마법사 한 명을 심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에게 정신 마법을 시전해서 정보를 캐려 했지만 몇 번 시도하지도 못하고 정신이 나가 버리고 말았었다.

흑마법사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기밀이 누출되지 않도록 금제 마법이 걸려 있다 보니 정신 마법은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다르지.’

아론에게는 새로운 비전 마법인 쇼크웨이브가 있었다.

이걸 써서 상대의 흑마력을 전부 빼놓고 정신 마법을 쓴다면 술술 불 게 할 수 있었다.

흑마력이 없어진다면 금제 마법을 발동시킬 마나 조차도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아론은 심문을 진행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 녀석…… 체력이 너무 약하잖아?’

그의 앞에는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몰골을 한 브룩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봐. 테네브라 말고 다른 흑마법사 단체가 존재하지? 네가 아는 것들 전부 불러.”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의 팔을 잡고 정신 마법을 사용했다.

“어으윽!”

그러자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분 뒤에 다시 깨어났다.

계속 이런 상태의 반복이었다.

‘여태껏 흑마력을 가지고 체력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지금은 아론의 비전 마법에 의해 마나가 전부 빠진 상태이니 이렇게 조금의 고통이 전해져도 과민반응을 했다.

‘그렇다고 마나를 조금만 남겨 두기에는 금제가 다시 발동할 것 같아서 좀 그런데.’

아론은 고민했다.

차라리 마나를 회복시켜주고 정신 마법 몇 번 쓴 다음에 녀석이 만신창이가 되면 내다 버릴까 생각도 했다.

‘아니면 마탑주의 힘을 빌려?’

이 녀석을 흑암도로 데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마탑주에게 부탁해 이 녀석에게 걸린 금제를 해제해달라고 부탁하면 해 줄지도 몰랐다.

아론이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셀린이 지하실을 찾아왔다.

“조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너도 무사히 돌아왔구나.”

아론은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셀린은 아론의 부탁을 받고 그동안 러셀이 어떤 상황인지 조사를 했었다.

아무래도 러셀이 지금 공작의 호출을 받고 에드먼스 본가에 있다 보니 조사에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셀린은 부하를 시키지 않고 그녀가 직접 다녀왔었다.

“어때? 좀 얻어온 게 있어?”

“네. 정보를 성공적으로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인사불성의 브룩스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심문하시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응. 금제를 건드리지 않고 심문을 하고 싶은데, 녀석의 마나를 전부 빼니까 완전 약골이 되어서 말이야.”

아론은 지금 막 일어난 녀석의 팔을 잡고 다시 한번 정신 마법을 가했다.

“으허억!”

“봐. 이렇게 조금만 시도하려고 해도 기절해 버리니, 원.”

“으음.”

셀린은 잠깐 생각하더니, 아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론 님. 이 자의 금제가 발동이 안 되도록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슨 방법이 있어?”

“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셀린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 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쉽지 않을 텐데.”

“맡겨만 주세요.”

그녀는 브룩스의 앞에 섰다.

“아론 님 앞에서는 보인 적 없지만, 이래 봬도 제가 심문도 전문이거든요.”

“그래?”

“고급 정보는 수소문이나 잠입해서 얻는 것보다는 직접 심문해서 확보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셀린은 일단 브룩스가 다시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렸다.

몇 번 기절을 한 탓인지 이번에는 깨어나는데 좀 오래 걸렸다.

“으으…….”

브룩스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불을 좀 끌게요.”

셀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곳의 불을 꺼 버렸다. 지하실이라 창문 같은 건 있지 않았기에 새까만 어둠이 찾아왔다.

그래도 아론은 마나 반응으로 주위의 상태를 느낄 수가 있었다.

탁.

셀린이 책상에서 뭔가를 집어 드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위에는 만년필이 있었을 텐데.’

저걸로 뭘 하려는 걸까.

아론은 잠자코 있었다.

“너 같은 생체 실험을 하는 쓰레기 흑마법사에게 손속을 둘 이유는 없지.”

그녀가 브룩스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흐윽, 흐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소리는 들려오는 상황. 브룩스는 공포에 떨어서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지이이익-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났고.

“으아아악!”

브룩스의 비명이 이어서 들렸다.

아까는 시체와도 같이 행동했었는데 비명 하나는 우렁차게 내질렀다.

“으흑, 으흐윽…….”

브룩스가 흐느꼈다.

‘오. 정신을 안 잃었다고?’

아론은 녀석의 소리를 들으며 신기해했다. 확실히 셀린이 전문가는 전문가인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좀 더 강도를 올려도 되겠지?”

“으어, 으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너한테 허락된 거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뿐이야.”

불이 꺼진 상태에서 언제 고통이 찾아올지 모르는 공포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셀린은 그 점을 노리고 심문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테네브라 말고 다른 조직이 존재하지? 그거 다 불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지이익-

“끄아아악!”

브룩스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까보다 더한 통증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 과정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브룩스가 대답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반항하면 신체에 고통을 선사해 주었다.

아론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꼈다. 역시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자신에게 저걸 똑같이 해보라고 했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브룩스를 죽게 만들었을 게 분명했다.

결국 브룩스는 셀린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다.

아론이 추측한 것처럼 흑마법사의 단체는 테네브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위에서 조종하는 집단이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역시. 쉽게 꼬리 잡혀 주지 않겠다는 거네.”

“흐으, 흐으…… 잠깐만. 그 목소리.”

그때였다.

브룩스가 아론의 목소리를 듣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반응했다.

“너…… 아, 아론 에드먼스구나!”

녀석은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내 목소리를 알아?’

아론은 그 점이 신기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 녀석은 곧 죽을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이 경각이 달한 상태에서 자신의 정보를 알아봤자 아론에게 위협이 될 게 없었다.

“크흐흐, 그렇지 않아도 너를 쫓고 있었거든. 조만간 네 녀석에게 큰 위험이 닥칠 거야.”

“무슨 뜻으로 말한 거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크하하하. 그냥 내 헛소리야!”

녀석은 다시 미쳐 버린 사람처럼 웃기만 했다.

‘……진짜 헛소리일까?’

아론은 녀석이 말한 것의 진위가 궁금해졌다.

“셀린. 좀 더 수고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심문을 통해서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지이이익-

“으아아악!”

브룩스의 처절한 비명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 * *

에드먼스 공작가의 저택.

러셀은 공작에게 호출을 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저택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관리하는 영지가 조사단의 급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어디에선가 꼬리가 밟혔으니까 녀석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게다가 왕실 조사단이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에드먼스의 조사단이 바하 교단에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듣고 러셀은 표정을 구기고야 말았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러셀은 초조해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증거 따윈 남겨두지도 않았어.’

테네브라는 러셀이 운영하는 여러 단체 중 하나였다. 그중 하나가 털렸다 하더라도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심증은 있겠지만 물증이 없으면 아무리 에드먼스 조사단이 떴다 하더라도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셀은 공작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그는 각오하고 공작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마다바드에서 일어난 일을 공작이 모를 리가 없었다.

‘불같이 화를 내시겠군.’

러셀은 그렇게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왔나?”

공작이 러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풍겨 나오는 분위기에서 심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마다바드에서 소란이 있었다고 하더군.”

공작이 그를 부른 이유는 역시 그것 때문이었다.

“흑마법사 단체가 발각되었다고 하는데…… 혹시 아는 게 있나?”

“없습니다.”

공작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러셀을 훑었지만 그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누군가가 제게 흠을 만들기 위해 그런 공작을 한 게 분명합니다.”

오히려 러셀은 당당하게 나갔다.

“제가 책임지고 주동자를 색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공작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러셀의 앞에 우뚝 섰다.

짜악!

공작의 손이 러셀의 뺨을 강타했다.

“그러면 이것도 책임의 일종으로 받아들여라.”

러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돌아간 고개를 원상 복구시킬 뿐이었다.

“네가 거기에 얽혀 있든 아니든 난 신경 쓰지 않는다.”

짜악!

한 번 더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러셀의 입안이 터지고 피가 고였다. 그는 말없이 그걸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런 추문이 도는 것만으로도 에드먼스 가문의 명예에는 씻을 수 없는 흠집이 생겼다.”

“……죄송합니다.”

“너를 믿고 영지 관리를 일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공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너를 과대평가한 모양이구나. 첫째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상대는 너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는 러셀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제 보니 아니었군. 차라리 넷째나 막내가 대적할 상대로 더 알맞겠어.”

그 말을 들은 러셀은 화가 났다.

공작에게 맞는 건 별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자신이 잘못한 대가를 치르는 거였다.

하지만 동생들에게 비교당하는 건 수모였다.

“분한가?”

러셀의 심정을 읽어낸 공작이 물었다.

“분노는 힘이 있는 사람이 가졌을 때나 위력이 있는 것이다. 지금 네가 내는 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투정에 불과하구나.”

공작은 혀를 찼다.

“네가 흑마법사 단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으니 한번은 넘어가 주마.”

공작이 러셀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는 에드먼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거라. 다음에 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경우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러셀은 다시 한번 사과하고는 공작의 집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숨어 있던 공작의 비서가 나타났다.

“저렇게 보내도 괜찮습니까?”

정황상 이번 일은 러셀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러셀 님이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거겠지요.”

“그래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비서는 공작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이번 일이 매듭지어진 것처럼 해두고 러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려는 속셈이었다.

“러셀도 내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을 테지.”

공작은 러셀이 다른 건 몰라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거기에 녀석은 발목이 잡힐 것이다. 러셀은 혼자서 일을 해결하는 녀석이 아니니 말이다.”

공작은 비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훈련된 녀석들을 러셀의 근처에 배치시켜라.”

“알겠습니다.”

비서는 공작의 지시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 테네브라의 흑마법사 단체를 밝힌 자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단서도 없던가?”

“예. 4왕자를 이용해서 왕실 조사단을 파견했고, 또 근위 마도병단을 사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막음을 철저하게 해 둔 모양이라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범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비서의 말을 들은 공작은 작게 웃었다.

“자네가 봐도 그런 모양이군. 역시 그 녀석은 범상치 않다니까.”

“……예?”

비서는 공작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마치 자식을 자랑하는 아버지 같은 이 모습…….’

설마 공작은 미리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조금 전에 보고가 들어왔다. 테네브라를 뒤집어 놓은 건 아론의 작품이라고 하더군.”

“정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비서는 놀랐다.

‘아론 님이 그 정도로 성장하셨단 말인가?’

아론의 성장세가 괄목할만하다는 건 비서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벌인 일은 최소 7서클 이상의 수준을 갖추지 않으면 힘들어 보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론에게는 이번 일에 걸맞은 보상을 해줘야겠군.”

공작은 구석에 있는 작은 목재 보관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반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공작님. 설마 그걸 아론 님에게 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겉보기에는 낡은 반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외양과 다르게 반지의 성능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거는 10년 전쯤에 러셀에게 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성취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결국 주지 못했던 거지.”

공작은 아련한 눈빛으로 반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론이 러셀을 이긴 것 아닌가? 나는 그래서 아론에게 이 반지를 주는 게 마땅하다고 보네.”

“으음. 맞는 말씀이십니다.”

“전달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그 반지를 받아들었다.

***

브룩스에게서 쓸 만한 정보를 캐낸 아론은 나머지 사람들을 한 곳에 불렀다.

“녀석을 심문했더니 테네브라의 실질적인 주인이 러셀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역시 그분이……!”

아론의 말을 들은 켄트가 부들부들 떨었다. 라엘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테네브라는 러셀이 관리하는 여러 흑마법사 단체 중 하나였다. 개중에서는 테네브라가 어느 정도 힘이 있다 보니 그곳의 2인자인 브룩스는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았다.

“테네브라의 위에는 트레벨이라는 단체가 있다. 테네브라는 일종의 하위 단체였던 셈이지.”

“트레벨이요?”

“그래. 업무 분담을 위해서 하위 단체를 운용했던 모양이야. 테네브라에서는 인공 미티움의 합성과 그걸 심은 생체 골렘을 연구하고 있었더군.”

무엇을 위해서 생체 골렘을 만드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해서 물었을 때 브룩스는 계속해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릇…… 이라고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글쎄.”

그들의 물음에 아론 역시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도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체 골렘에 뭘 또 담으려고 그러는 건가?’

단지 그 정도 추측만이 가능했다.

“생체 골렘마저도 그릇이라니. 이미 녀석들은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켄트가 말했다.

대체 뭘 담으려는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어쨌든 보다 더 위에 단계를 노리고 있다는 건 알 거 같아. 하지만 그것보다 심각한 게 있어.”

“뭔가요?”

“트레벨의 녀석들이 나를 찾고 있다고 하더군.”

“아론 님을요?”

“응.”

아론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요? 아론 님은 움직이실 때마다 모습도 바꾸고 신분도 위장하셨잖아요.”

“정확히는 나를 찾는 게 아니야. 미티움의 흔적을 쫓아서 오는 거지.”

“그 말씀은…….”

“미티움에 반응하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나 봐, 녀석들.”

브룩스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원래는 행방이 묘연한 칠검을 찾기 위해서 만든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트레벨은 그 아티팩트를 이용해 아론이 있는 곳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 범위를 꽤 좁힌 모양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을 만날지도 모르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놈들을 피해 떠나야지. 트레벨의 구성원 중에서는 8서클도 있는 모양이야.”

“그러면 이대로 녀석들과 전투하는 건 위험하겠군요.”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놈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회피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펜던트 때문에 다시 위치가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했다.

녀석들이 지니고 있는 아티팩트의 반응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좋은 건 놈들의 아티팩트를 빼앗아서 분석하는 건데 말이야.’

하지만 상대는 8서클 급의 실력을 지닌 사람이 존재했다. 지금 당장 뺏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내가 좀 더 실력을 올릴 필요가 있겠군.’

아론은 복잡한 상황에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나머지 사람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들 역시 표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예전에 말했었잖아? 내 목표는 너희들과 함께 최대한 오래 사는 거야.”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았다.

하지만 하나씩 넘어가다 보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었다.

* * *

아론은 그 후로 이틀 정도를 소비했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의 계획을 좀 더 명확히 해 두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면서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했다. 결국 생각하면 할수록 하나의 방법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성장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성장을 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했다. 서클 훈련을 하면서 마나를 차곡차곡 쌓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얼마 없어.’

빠르면서도 확실한 성장.

아론에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칠검을 구하는 거였다. 펜던트의 보석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아론은 강해지는 것을 체감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칠검에 속성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덕분에 칠검은 단순히 아론의 마나만을 늘려주는 게 아니라 구현하는 마법의 질 자체를 바꿔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칠검의 위치는 내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칠검을 찾는 것은 가장 매력적인 방법이면서도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론이 세 개의 칠검을 얻은 것도 우연이 도운 결과였다.

그렇다고 칠검을 찾기 위해서 무작정 대륙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오히려 여정 도중에 여러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트레벨이 지니고 있는 미티움을 추적하는 아티팩트가 탐이 났다.

‘그게 내 손에 들어온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놈들의 아티팩트가 아론에게 들어온다면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아티팩트의 원리를 알게 된다면 그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었고, 또 칠검을 찾는 것도 수월해진다.

그렇지만 트레벨도 바보는 아니었다. 귀중한 아티팩트인 만큼 뺏기지 않으려고 철저히 보호할 게 분명했다.

아티팩트를 뺏어 오는 것도 리스크가 컸다. 함부로 시도하는 건 힘들었다.

‘지금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녀석들을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뿐이군.’

아론은 그 장소를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다.

공작가로 돌아가는 건 어떨지 고심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본가에서는 자신의 운신에 제한이 생겼다. 그리고 러셀이 심어둔 녀석들의 눈도 있었고, 다른 배신자가 존재할지도 몰랐다.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흑암도였다. 그러나 그곳도 몸을 피하기에는 마땅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전에 바스티안이 흑암도를 침공했을 때, 결계를 무력화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아론을 쫓는 녀석들이 그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흑암도는 오히려 피난처가 아니라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장소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아론은 남은 하나의 장소를 떠올렸다. 바로 페리움이었다.

그곳은 기본적으로 지형이 험준했다. 그린데란트 산맥은 드워프들의 도움이 없다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몬스터도 많았다.

‘좋아. 페리움으로 가자.’

생각을 마친 아론은 모두를 모은 뒤에 앞으로 갈 행선지에 대해서 말했다.

“저희야 아론 님이 가는 곳을 따라갈 겁니다.”

“언제쯤 떠나실 겁니까?”

“바로 출발하지는 않을 것 같아. 공작가에서 연락이 왔거든.”

“연락이요?”

“응. 이번에 마다바드에서 벌인 일과 관련해서 공작님께서 보상을 주신다고 하셨어. 할로움으로 사람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걸 받고 나서 떠날 생각이야.”

어떤 것을 주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영향력이 컸으니 꽤 큰 보상이 올 것으로 기대했다.

“어, 잠시만요.”

그때였다. 셀린이 멈칫하더니 문에 설치된 가느다란 실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 실은 긴급 연락 수단이었다. 정보원으로부터 할로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호로 받을 수 있는 장치였다.

‘무언가 연락이 온 건가?’

아론은 셀린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줄을 잡은 채 진동을 느끼며 신호를 해독했다.

잠시 후, 셀린은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들어온 정보인데, 할로움 바깥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말해봐.”

“여기서 약 10km 떨어진 위치에서 전투가 관측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가 꽤 큰지라 가까이서 정보를 수집할 순 없었습니다.”

“이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잘 없지 않아?”

“예. 거의 없었죠.”

아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벌써 트레벨의 추격자가 온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주변에서 갑자기 전투가 벌어질 리 없었다.

‘한쪽이 트레벨의 녀석이라고 하면, 상대는 누구지?’

이곳으로 보낸 추적자의 실력이 보통은 아닐 것이다. 그런 녀석과 막상막하로 전투를 할 수 있는 자는 얼마 없었다.

‘설마 공작가에서 보낸 사람인가?’

아론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공작이 자신의 부하를 보냈다고 연락을 받았었다.

보안의 문제도 있었으니 믿을만한 실력을 지닌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이 기회가 아닐까?’

공작이 보낸 사람은 최소 7서클 아니면 8서클의 실력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만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상대가 트레벨의 추격자라면, 지금 같이 합세해서 녀석을 처리하는 편이 좋았다.

‘나를 추적하고 있다면 필시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놈을 해치운다면 그 아티팩트도 아론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아니었다.

“셀린. 위치는 알지?”

“네.”

아론은 곧바로 그녀와 같이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

에드먼스 공작가 소속의 마법사인 쿠잔 몰스터. 그는 자신의 수행원 한 명과 함께 할로움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는 카이만 공작에게 아론을 만나 물건을 건네주라는 지시를 받았었다.

‘아론 님이 이렇게까지 달라지실 줄은 몰랐어.’

쿠잔은 생각했다.

이전에는 망나니짓만 일삼던 가문의 문제아였다. 하지만 이제는 공작이 직접 보상을 내릴 정도로 척척 일을 해내고 있었다.

‘부디 이 보상이 아론 님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할로움이 머지않았다.

이 황무지만 넘어가면 아론을 만날 수 있었다.

‘…저건 뭐지?’

그런 그때, 쿠잔의 시야에 정체를 모를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쿠잔이 경계하려고 할 때, 순식간에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

쿠잔은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배리어를 전개했다.

서걱!

옆에 있던 수행원의 목이 떨어졌다.

쿠잔은 방어 마법을 펼친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크크크.”

갑자기 공격을 가한 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뭐로 공격한 거지?’

쿠잔은 녀석을 탐색했다.

남자는 양손에 손톱이 날카롭게 자라나 있었다.

‘저걸로 공격한 건가?’

남자의 오른손 손톱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중이었다. 저 손톱에 수행원이 희생된 모양이었다.

“분명 반응이 잡혀서 공격했는데…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남자는 왼손에 브로치를 든 채 중얼거렸다. 자세히 보니 브로치에선 마나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다.

“그래도 내 모습을 본 이상, 살려둘 순 없지. 크크크.”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아주 미쳤군.”

남자의 말에 쿠잔이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스스슥!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쿠잔의 뒤에서 나타났다.

‘마법사인가?’

움직임이 빠른 것이 아니라 블링크 마법을 쓴 것처럼 깔끔하게 이동했었다.

쉬익-!

남자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쿠잔은 다시 한번 배리어를 펼쳤다.

콰카칵!

단순히 손톱이 긁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래도 녀석이 공격을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스스슥!

또다시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쉬익-!

이번에는 우측면에서 녀석의 손톱이 휘둘러졌다.

쿠잔은 배리어로 그 공격을 막았다. 그런 뒤에 곧바로 마법을 시전해 반격을 가했다.

화르륵!

쿠잔을 중심으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남자는 그 범위에 닿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범위에서 벗어나는군.’

쿠잔은 남자의 이동 거리를 보고는 한 번에 최소 50보 정도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신체를 가속해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블링크 마법을 써서 이동한 것 같지도 않았다.

신출귀몰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저 손톱.’

마치 몬스터의 손톱과도 같았다.

‘어디 소속이지?’

남자가 말하길 자신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죽인다고 했지만, 그게 진정한 이유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남자는 다시 몸을 던지며 쿠잔을 향해 돌격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전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얼핏 보기에는 비등비등해 보이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쿠잔은 남자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다음 수를 몰래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수가 완성이 되었다.

‘이걸로 끝이다.’

쿠잔은 새로운 마법의 주문을 영창했다. 그러자 그의 앞에 기둥이 솟아올랐다.

동시에 남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녀석의 의지로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마나로 만들어진 가는 실이 남자의 전신에 엉켜 붙어 있었다.

그 실은 쿠잔이 방금 만들어 낸 기둥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녀석의 당황한 모습이 처음으로 표정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손톱만 휘두를 줄 아는 너는 눈치채지 못했겠지.”

남자가 공격을 할 때마다 눈치채지 못하게 그의 몸에 마나의 실을 붙여두었다. 그게 충분해졌을 때 기둥을 만들어 팽팽하게 당긴 것이었다.

워낙 촘촘하게 엉켜 있었기에 남자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난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어. 널 생포하려고 해서 시간이 좀 걸린 거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었다.

대체 왜 자신을 습격한 건지 궁금했다.

투둑, 툭!

그때였다.

남자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피부에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뭐지?’

쿠잔은 이내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말았다.

‘이 기운은……!’

쿠잔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남자의 몸에서 8서클 마스터 급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투두두둑!

동시에 마나로 만들어진 실이 단숨에 끊어져 버렸다.

‘이럴 수가!’

쿠잔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남자의 몸에서는 검은 마나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크크. 그분의 권능이 없었더라면 난 죽었겠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쿠잔을 향해 몸을 던졌다.

***

아론과 셀린이 전투가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전투가 끝났다고?’

아론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하고 말았다.

에드먼스 공작가에서 보냈다고 여겨지는 마법사는 이미 당해버린 상태였다.

‘저 녀석이 죽인 거군.’

아론은 홀로 우뚝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생체 골렘의 기운이다.’

멀리서도 녀석이 지닌 힘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 맞붙으면 지고 만다.’

아론은 전투를 포기하기로 했다.

녀석이 지니고 있을 아티팩트, 그리고 공작이 준 보상이 아깝긴 했지만 그것보다 목숨이 더 중요했다.

“도망치는 게 낫겠어.”

“동감입니다.”

셀린에게 이야기하고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내, 아론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 *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의 모습에 아론은 당황했다.

‘제길. 이러면 도망칠 수가 없잖아.’

녀석이 왼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빛을 반복해서 점멸하고 있었다.

‘저게 그 아티팩트인가?’

생소한 아티팩트였다. 아론은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여겼다.

“이렇게 제 발로 나타날 줄이야.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남자가 아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적의를 가득 품은 짐승이 내는 것과 흡사했다.

‘이 기운. 폴밴을 마주했을 때랑 비슷해.’

아론은 머랭 영지에서 맞닥뜨린 폴밴을 떠올렸다.

당시에 그는 인공 미티움이 들어 있는 용액을 마시고 생체 골렘이 되었다.

지금 남자의 몸에서 그와 똑같은 기운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폴밴은 이성을 잃었지만 이 남자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론은 재빠르게 녀석의 정보를 살펴보기 위해서 상태창을 열어 보려고 했다.

【상태창 열람 불가】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이건…… 기간츠의 상태창을 보려고 했을 때랑 똑같잖아.’

그때, 아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브룩스를 심문할 때, 녀석이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생체 골렘을 제작했다고 했었어.’

기간츠를 비롯한 생체 골렘들을 아직 그릇이라고 한다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이 남자는 내용물이 담겨 있는 상태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릇이라고 했던 건가?’

하지만 아론에게 깊이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스릉!

남자의 양손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났다. 언제라도 휘두를 준비가 된 상태였다.

‘손끝에 묻어 있는 핏자국들. 저거에 공작가에서 온 마법사도 당한 거겠지.’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오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젠의 기사들이 내뿜는 오러와는 달랐다. 그들의 것은 훨씬 정제되어 있었다. 지금 이 남자의 오러는 그야말로 날 것이었다.

‘정말 짐승의 기운 같군.’

아론은 원래 전투를 피하고 도망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존재를 들킨 이상, 전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붙었을 경우 승산은 있는가. 아론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그래도 녀석의 오러는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아론이 이곳에 오는 도중에 느꼈던 오러와는 크기의 차이가 있었다.

아마 그렇게 오러를 강하게 내뿜는 건 제한이 있어 보였다. 그건 앞으로 있을 전투에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녀석의 강력했던 오러는 에드먼스 소속의 마법사도 쓰러트렸을 정도이니 말이다.

만약 그 상태의 녀석과 자신이 맞닥뜨렸더라면 자신이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 해도, 지금의 내가 이 남자를 이길 확률이 높은 건 아니다.’

아론은 필사적으로 궁리했다.

어떻게 해야 저 괴물 같은 남자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를.

그런 그때였다.

아론은 이상한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만. 이 마나는?’

아론은 이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에드먼스 가문의 것이었다.

‘살아 있었나?’

마나의 흐름은 미약했지만 아직 끊기지는 않았었다.

아론은 남자의 반응을 살폈다. 녀석은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만약 어느 정도 회복한 본가의 마법사와 같이 싸울 수 있다면.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게서 공작이 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은 생기지.’

그러나, 아론은 이제 더 이상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론도 그에 맞춰서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빠른 상대라도 움직임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론은 당황했다. 사라진 남자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론이 사라진 남자의 흔적을 찾고 있을 그때. 아론은 자신의 뒤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뒤였나!’

그는 기운이 느껴진 즉시 냅다 앞으로 달렸다.

촤학!

하지만 남자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아론은 왼팔에 어느 정도 상처를 입고 말았다.

‘가속 마법이 없었더라면 목이 날아갔겠는데.’

아론은 녀석의 속도에 서늘함을 느꼈다. 그는 발을 움직여 셀린이 있는 곳으로 피했다.

“공작가에서 보낸 마법사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아.”

“정말이에요?”

“그래. 아마 먼 곳에 있지는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제가 찾아서 오겠습니다.”

아론은 셀린의 대답을 듣고 나서 마법을 사용해 바람을 만들어 냈다. 그녀를 바람에 태워서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아론은 그러면서 혹시라도 남자가 방해를 걸어오지는 않을까 싶어서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남자는 별다른 견제를 하지 않았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아무래도 셀린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재밌다는 듯이 그저 아론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슨 수를 노리고 있나 본데…… 굳이 힘 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내 압도적인 힘 앞에 무너질 테니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 힘을 얻으려고 그 꼴이 된 건가? 인간임을 포기할 정도로 가치 있는 거야?”

“더 큰 힘을 위해선 네가 말하는 인간쯤이야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

남자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별로 강해진 것 같지 않은데?”

“뭐?”

“지금 넌 나랑 붙어도 쉽게 이기지는 못할 거 같거든?”

아론의 말에 일순 주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콰직!

녀석의 발밑에서 금이 생겨났다.

방금 그 말에 분노를 드러낸 것이었다.

남자는 정제되지 않은 오러를 한껏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말, 후회하게 해 주지.”

그는 그 말과 함께 모습이 사라졌다.

‘이성은 가지고 있어도 이 정도 싸구려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는군.’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의 공격을 받아칠 준비를 했다.

가속 마법을 사용해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대비를 했다. 그리고 공격을 막을 배리어 술식을 준비해 두었다.

여기까지는 아론의 예상대로였다. 남자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성을 잃을수록 그만큼 공격이 단순해지는 건 자명했다.

하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성을 잃은 만큼 힘은 더 강해지고 속도는 빨라지니 말이다.

‘이 느낌!’

다시 한번 공간의 일그러짐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아론이 서 있는 땅 아래였다.

아론은 준비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후욱!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서 손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론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공간의 왜곡을 감지했다.

허공에서는 공격을 피하기 어려웠다. 아론은 즉시 손이 튀어나오리라고 예상되는 방향에 배리어를 생성했다. 하나로는 불안해서 여러 개를 겹쳐 만들었다.

후욱- 콰카칵!

녀석의 오러를 두른 손톱에 배리어가 차례대로 박살 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대로라면 배리어를 모두 파괴시키고 오른쪽 어깨가 뜯겨 나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브! 부탁할게!’

아론은 쿠브에게 돌벽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잠깐 시간을 벌 수단이 필요했다.

아론은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녀석의 공격을 버텨내기 위해 아직 남아 있는 배리어를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위이잉-!

그 결과 배리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늘어났다.

쿠구구!

그 틈에 쿠브가 생성한 돌벽이 아론과 녀석의 팔을 갈라놓았다.

‘고맙다, 쿠브!’

하지만 저 벽도 녀석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래도 약간의 시간을 벌어 준 이 틈을 이용해 아론은 녀석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아직 녀석의 공격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아론은 자신의 망토를 흘긋 바라보며 생각했다. 망토를 이용해 공격을 반사하는 건 비장의 수단이었다. 확실할 때에만 사용하는 게 좋았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 본체는 어디에 있길래 저렇게 공격할 수 있는 거지?’

공격하는 방식이 기이했다.

갑자기 공간이 열리더니 팔이 뻗어져 나오질 않나. 저렇게 신출귀몰한 술법은 처음이었다.

‘마법 중에서는 암 속성 마법이 공간을 다루는 데 특화되어 있긴 한데…….’

그러면 저 녀석이 마법사인 것일까? 하지만 녀석은 확실히 오러를 쓰고 있었다.

‘설마, 칠검의 능력인가?’

아직 아론이 구하지 못한 칠검이 네 자루였다. 그중에서 암 속성에 특화된 검도 있었다.

‘찬드라 소드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근처에서 미티움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칠검은 강력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근처에 있으면 내가 모를 리 없지.’

한편, 남자는 모습을 드러내고는 으르렁거리며 아론을 향해 말했다.

“아까 날 도발하던 태도는 어디로 갔지? 쥐새끼처럼 도망가기만 하는구나!”

녀석은 아론을 부라리며 말을 이어 갔다.

“네놈 역시 그릇이 될 몸이다. 죽이지는 못하지만, 괘씸해서 다리 하나 정도는 분질러야 내 분이 풀릴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이내 아론의 근처에 공간이 일렁이더니 여러 곳에서 팔이 튀어나와 아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칵! 콰카칵!

아론은 가속 마법을 쓰면서 열심히 배리어를 펼쳤다.

몇 번 공격을 막아 보니 녀석의 공격 방식과 손톱의 소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저 녀석의 손톱. 레어 메탈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예리함의 차원이 남달랐다. 방어 마법 정도는 손쉽게 깨트렸다. 저 손톱에 정통으로 맞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아론은 공격을 막아 내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봤다.

‘아직은 아니야.’

녀석의 몸통이 드러난 순간을 노리고 공격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윽고, 아론에게 그 기회가 찾아 왔다.

아론은 여태껏 모아두었던 마나를 자신의 발이 닿고 있는 바닥으로 방출했다.

콰카카칵!

아론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땅이 부서졌다. 그 사이로 돌들이 튀어 올라왔다.

휘리리릭!

허공에 떠오른 돌들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맞닿으면 살을 터트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돌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더스트.

아론이 바스티안을 죽이고 얻은 검, 쿠베라 소드를 분석하면서 체득한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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