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24/40)

Chapter 4

한편, 아론에게 도박장을 안내해 주었던 맥스는 언제 그가 나오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이제 나오시는구나.’

원래 전당포를 다녀온다고 아론이 한번 도박장을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는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었다.

맥스는 아론에게 다가가면서 상태를 살폈다.

‘딱히 기뻐하시는 모습은 아니시네. 재미를 못 보시고 나오셨구나.’

맥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후회했다.

이래서 손님을 첫 번째 행선지로 도박장에 데려가면 안 되는 거였다. 여기서 돈을 다 잃는다면 자신도 팁을 받을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나리. 많이 잃으신 것 같은데…… 팁은 안 주셔도 됩니다.”

맥스는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위로했다.

‘내가 잃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론은 그런 맥스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표정을 보아하니 어딘가 미안한 모양이었다.

톡.

아론은 금화 하나를 꺼내서 튕겨 주었다.

“어이쿠!”

맥스는 그걸 놓칠세라 허우적거렸고, 간신히 두 손으로 받는 데 성공했다.

“나리. 이, 이게 뭡니까?”

“네 덕분에 좋은 곳 소개받았으니까. 그리고 나 기다린다고 고생했잖아?”

맥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 돈을 따신 겁니까?”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저는 나리께서 돈을 잃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여기 도박장엔 워낙 선수들이 많아서요.”

맥스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거기서도 돈을 따실 정도라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됐어, 됐어. 칭찬은 그쯤 해도 돼. 여기서 제일 괜찮은 묵을 곳이나 추천해 줘.”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나리.”

맥스는 팁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저만 따라 오십시오.”

아론은 맥스의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가 혼자 갈 테니까 위치만 알려줘.”

“어…… 그렇지만 여기는 길이 복잡해서 이곳 사람이 아니시면 찾아가시기 어려울 텐데요? 그러지 말고,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네가 위험해질 수 있다.”

아론이 웃음기 없이 말했다. 맥스는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머지않아 내가 마탑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거든.”

“예…… 예?”

맥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기겁하는 얼굴이 되어서 아론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을 하셨길래?’

흑암도의 사람들에게는 마탑이 왕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정한 선을 넘으면 가차 없는 응징이 내려진다.

“어쩌다가 그러신 겁니까?”

“뭐, 일이 좀 있었어. 그러니까 너도 그냥 나한테 위치만 알려주고 가면 돼.”

“아…… 알겠습니다.”

맥스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 근방에서 가장 좋은 숙소를 아론에게 말해주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맥스의 배웅에 아론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는 맥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을 저지르신 건진 몰라도, 마탑에 한번 걸리면 웬만해선 살아남기 힘드실 텐데…….’

맥스는 아론이 부디 살아남았으면 했다.

가이드의 입장에서, 돈을 주는 사람은 홀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돈을 몇 푼 줬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아론에게선 전혀 그런 행동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사람이었다. 맥스는 아론에게 별일이 없기를 빌었다.

***

아론은 맥스가 말해준 숙소를 찾아서 가고 있었다.

맥스는 제법 상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한 대로 흑암도의 구조는 복잡해 초행인 아론이 원하는 장소를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섬의 중앙에 우뚝 솟은 마탑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아론은 숙소를 가면서도 주위 탐색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자신이 먼저 인공 미티움으로 마탑에 미끼를 던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서도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지 몰랐다.

하지만 이곳 마탑주의 성격은 괴팍하고 폭력적이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온건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쓴 방법은 사실상 이런 게 있으니 관심 있으면 와보라는 도발이었으니 말이야.’

아론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그가 숙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외진 골목길을 지나고 있을 때, 자신을 뒤쫓아 오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명. 아니, 방금 하나 더 늘어서 세 명인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았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의 살기였다.

아마 녀석들은 지금 극도로 마나를 숨긴 채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친화력이 사기 수준인 아론이 아니었더라면 눈치 못 챌 수준이었다.

저벅저벅.

아론은 조금 더 속도를 내서 걸었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싸우는 건 불리했다.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퉁이가 보이자, 아론은 그쪽으로 빠졌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타난 추적자들이 아론을 뒤따라서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아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추적자들이 당황하는 사이에, 맨 뒤에 있던 녀석 한 명이 쓰러졌다.

아론이 슬립 마법을 사용해 잠재운 것이었다.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 아론이 사라져서 자신들의 뒤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그리고 동료가 쓰러진 이유가 슬립 마법 때문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름 5서클의 경지를 이룬 마법사였다. 고작해야 슬립 마법에 당할 그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법이 먹혔다? 그 말은 즉, 상대의 수준은 자신들보다 한참 위라는 의미였다.

‘제길.’

그들은 갈등했다.

대치하고 있는 아론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마탑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아론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수행해야만 했다.

남은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에 아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

전투는 금방 종료되었다.

당연하게도 아론의 승리였다.

‘마탑주가 나를 많이 얕본 모양이군.’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세 명의 추적자를 바라보았다. 이들은 아론에게 대적할만한 상대가 되어주지 못했다.

‘단순히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보낸 건가?’

그렇다면 앞으로 전투가 여러 번 더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습격자들의 실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아마 이들이 쓰러졌다는 정보는 어떻게 해서든 마탑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래서 아론은 일부러 녀석들을 단번에 제압해 버렸다. 괜히 귀찮게 잔챙이들을 보내지 말고 바로 마탑주와 만나고 싶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는 쓰러진 시체를 뒤로하고 다시 숙소로 가려고 했다.

찌릿!

그때였다. 아론의 몸에 소름이 쫙 돋기 시작했다.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졌다. 강대한 마나 폭풍이었다. 여태까지 흑암도에서 본 적이 없는 마나량이었다.

‘존재감만으로 따진다면 공작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하다.’

아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자신이 쓰러트렸던 습격자 중 한 명이 몸을 부들거리는 중이었다.

‘뭐지?’

이내 녀석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그 모습이 마치 좀비를 연상케 했다.

부르르…….

녀석은 똑바로 선 채 아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뒤 눈을 떴다. 녀석의 눈동자는 온통 검게 물들어 있었다.

‘빙의 마법이군.’

아론은 흑마법사들이 쓰는 빙의 마법임을 알아차렸다.

이 마법은 흑마법 중에서도 꽤나 고위 마법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습격자가 쓰지는 않았을 터. 주변에 빙의 마법을 사용할만한 강력한 마나를 가진 사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아론이 지닌 높은 친화력으로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나를 잘 갈무리하고 있거나.

아니면 아론의 탐지 범위를 벗어나서 마법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경우 모두 상당한 실력을 지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흑암도에서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밖에 없겠지.’

바로 이곳의 마탑주였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흑암도의 마탑주시여.”

아론은 곧바로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흐, 흐흐…….”

습격자의 몸에 빙의한 마탑주는 아론의 반응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괴상한 웃음을 흘렸다.

마탑주는 아론의 몸을 천천히 살폈다. 그의 시선에서 흥미가 느껴졌다. 마치 탐구할만한 실험 재료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가?”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입에서 울려 퍼졌다.

“오히려 이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을 만나려고 이곳에 온 것이니까요.”

아론이 대답했다.

“크흐, 흐흐흐…….”

그 말을 들은 마탑주는 웃었다.

“건방지구나. 그렇게 굴던 녀석들은 대부분 죽거나 내 실험체가 되었지.”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를 대신할 물건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당돌한 녀석이로군.”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론에 대한 탐색을 계속했다.

“그런데, 너한테서 불쾌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마탑주가 말끝을 흐렸다.

잠시 후, 강력한 마나의 기운을 뿜어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있다. 이 기운, 에드먼스의 것이구나!”

아론은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마나의 느낌으로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론은 숙이고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맞습니다. 저는 에드먼스 카이만의 자식입니다.”

“크하하하!”

아론의 대답을 들은 마탑주는 목을 꺾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

“참으로 재밌는 상황이구나!”

잠시 후, 마탑주는 정색하는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좋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고 했었지?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 마탑에 들어올 때는 다시는 나가지 못할 걸 각오하고 와야 할 게다.”

마탑주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털썩!

빙의가 풀린 습격자의 몸은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후우.”

아론은 긴장을 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마탑주와 접촉하는 것은 성공했다. 게다가 예상한 것보다 꽤 빨리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 * *

아론은 마탑주와 조우한 이후에 무사히 맥스가 알려준 숙소에 도착해서 묵을 수 있었다.

마탑주가 자신에게 사람을 보낸다고 했었기에 긴장하며 밤을 보냈지만, 따로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아론은 숙소를 나왔다.

밖에서는 이미 맥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어떻게 되셨습니까?”

맥스는 아론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어제 마탑에게 습격받을 거 같다고 말을 했더니, 그것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숙소로 오기 전에 습격을 받긴 했는데, 내가 다 처리했어.”

“정말입니까?”

맥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오히려 더욱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탑은 자신들이 당한 것을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는 더 강한 마법사들을 데리고 올 것이 분명했다.

“혹시 근처에 마도구를 파는 상점이 있나?”

“예. 있긴 합니다만, 어떤 이유에서 찾으시는 겁니까?”

“조만간 마탑주를 만나게 될 것 같거든. 그래서 준비를 좀 해 두려고.”

“예? 마, 마탑주님이요?”

아론의 말을 들은 맥스는 숨을 집어삼켰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얼른 이 섬을 떠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맥스는 정말로 걱정이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금화를 두 닢이나 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죽기를 원치 않았다.

“마탑주님을 만나신다면 살아서 돌아오기 힘드실 겁니다. 제가 얼른 배편을 알아봐 드릴 테니…….”

아론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셀린이 준 정보에 의하면 이곳 마탑주의 능력은 8서클 마스터였다.

아론이 이전에 싸웠던 젠슨이나 폴벤보다 한층 더 강한 상대들이었다.

‘마탑주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아론은 순순히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태초의 정령인 쿠브나 칠검을 갈아서 박아 넣은 펜던트가 있었다. 그걸로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 낼 작정이었다.

물론 최대한 쥐어 짜내도 승률은 2할이 채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걱정 마. 마탑주랑 싸우려는 생각은 아니니까. 그래서 만나기 전에 준비를 하려는 거고.”

“……알겠습니다.”

맥스는 아론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은 가이드를 할 의무가 있었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지닌 채 그를 마도구 상점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괜찮은 곳입니다. 각종 포션과 마법 도구들을 팔고 있지요.”

잠시 후, 아론은 맥스를 따라서 마도구 상점에 도착했다.

끼익-

아론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점의 주인이 아론에게 인사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인사가 조금 이상했다.

아론은 상점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빙의…… 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이 상점 주인은 마탑주에 의해 정신 지배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맥스. 안내해 줘서 고맙다. 이제 가 봐도 좋다.”

“네? 아, 네.”

아론은 영문을 모르는 맥스를 내보냈다.

이제 상점 주인과 아론 둘만이 안에 남은 상황이었다.

“저를 따라 오시지요.”

상점 주인은 가게 안에 있는 후문을 열고 나갔다. 아론은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사람을 보내겠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상점 주인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몇 개의 골목을 지나쳤고, 그는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여긴가?’

아론은 앞에 있는 건물을 살폈다. 흑암도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마탑주가 산다고 하기에는 그 외양이 너무나도 낡아 빠졌었다.

하지만 이윽고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특이한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일부러 내뿜는 건가?’

그 마나의 양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어제 빙의한 마탑주와 맞설 때 느꼈던 마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상점 주인은 그 말을 남기고 이곳을 떠났다.

아론은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분명 허름했던 건물이 어느새 깔끔한 저택으로 변모해 있었다.

‘외양은 눈속임이었군.’

아마 발을 들이는 것이 허락된 자에게만 이런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저택에 들어간 아론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안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마나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마탑주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긴장을 유지한 채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후.

아론은 강력한 마나가 느껴지는 복도 앞에 섰다.

‘저 문 너머에 마탑주가 있겠군.’

아론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린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는 문을 몇 발자국 앞에 두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환영 인사의 일종인가?”

“……크흐흐.”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문 너머에서 소름이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꽤 감이 좋구나.”

그 말과 동시에 아론의 눈앞에서 허공에 떠 있는 칼날들이 나타났다.

후두두둑.

이내 그것들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널브러졌다.

‘뭣도 모르고 문을 향해 갔다면 난도질을 당했겠군.’

아론은 여전히 긴장을 유지한 채 마탑주의 반응을 기다렸다.

“웬만한 녀석들은 그 정도 술수도 읽어내지 못해서 죽었는데 말이지.”

고작 이런 함정에 당해서 죽을 녀석이었다면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는 의미였다.

그 말에는 왠지 모를 권태감이 느껴졌다.

끼익-

방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론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

마탑주의 정체를 확인한 아론은 놀라고 말았다.

그는 로브를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해골이었다.

‘마탑주가 리치였나?’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모습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대륙에선 마탑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흑암도의 마탑은 워낙 폐쇄적인 곳이다 보니 정확하게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8서클 마법사 정도는 될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흑마법사 토벌이 오래전의 일이었으니 2대나 3대 마탑주가 이끌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아론이 마탑주를 마주하고 나서야 그 소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의 마탑주는 섬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마탑을 이끌어 왔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를 언데드화 해서 말이지.’

리치는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불멸의 존재였다.

아론이 지구에 있었을 적에 리치는 본 적이 없었다. 던전에서 한 번 출몰했다는 전설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마탑주의 정체가 예상외긴 했지만, 아론은 여기서 놀라운 감정을 추슬렀다. 이대로는 상대와 협상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래도 마탑주에 대해서 확실한 것 하나는 호기심이 강하다는 거다.’

그의 연구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마탑주가 스스로 리치가 된 것도 어떠한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론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마도의 극한에 달하고 싶다는 그 마음만은 알 것 같았다.

‘그럼 내 제안도 잘 먹힐지 모른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론은 정중하게 인사했다.

마탑주는 그런 아론에게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내 모습이 무섭지 않은가?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보인 반응 중에선 네가 가장 침착하구나.”

안 무서울 리가 있나.

거기다가 방대한 마나의 기운도 느껴지고 있는데 말이다.

아론은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저희 집에는 더 괴물 같은 분이 있으시니까요.”

그것은 카이만 공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하! 재밌는 말이로다.”

마탑주는 뼈를 딱딱거리며 웃었다.

“제가 보낸 물건은 잘 확인해 보셨습니까?”

아론이 말한 물건은 전당포에 맡겼던 인공 미티움을 의미했다.

“꽤 재밌는 물건이더구나.”

마탑주의 말투로 보아하니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거 일이 잘 풀릴 수 있겠는데?’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탑주의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내용물은 레어 메탈에 여러 가지를 섞은 것 같은데, 마나를 저장하기에 아주 좋은 물질인 것처럼 보였다.”

마탑주는 그 짧은 시간에 인공 미티움의 조사를 마친 모양이었다.

“심지어 흑마법의 술식도 새겨 넣으니까 반응을 하더군. 오랜만에 연구해볼 만한 물건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 말을 들은 아론은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탐구심이 뛰어난 양반이었다. 벌써 흑마법까지 인공 미티움에 사용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이 준 양은 아주 적었다. 아까워서라도 함부로 다루지 못할 텐데 말이다.

“저는 그걸 가지고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거래라…… 좋다. 내용을 한번 들어나 보지.”

다행히 마탑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제가 보내드린 건 보셨다시피 아주 소량입니다. 그 정도로는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부족한 양이지요.”

“맞는 말이다.”

“궁금하시지 않습니까? 미지의 물질에 대해서요. 충분히 연구에 쓸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럼 너는 대가로 무얼 원하는 거지?”

마탑주는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요구 사항을 물어보았다.

“저도 그 물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자료도 넘겨 드리지요. 제가 원하는 건 마탑주님께서 연구하신 결과를 받고 싶습니다.”

인공 미티움은 흑마법의 산물이었다. 아론도 이웨카 길드를 통해서 연구하고 있지만 진척이 더딘 상황이었다.

그러나 흑마법의 대가인 흑암도의 마탑주가 이를 연구한다면 무언가 쓸만한 정보가 나올 수도 있었다.

이것이 아론이 원하는 첫 번째 대가였다.

“저는 이 물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흑마법사들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녀석들의 저주를 막아낼 해주의 술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번째 대가를 마탑주에게 꺼내놓았다.

* * *

“크하하!”

아론의 말을 들은 마탑주는 크게 웃었다. 들썩거리는 해골의 모습은 참으로 기괴했다.

덩달아 마탑주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공포에 짓눌려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아론조차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너희 에드먼스의 족속들은 쓸데없이 콧대만 높구나. 몇 년 전에 찾아온 녀석도 그렇고 말이다.”

그때였다.

마탑주의 입에서 처음 듣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찾아온 녀석이라고?’

이건 아론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셀린이 정리해 준 정보에도 없던 내용이었다.

“저 말고 에드먼스 가문에서 마탑주님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래. 그 녀석은 건방지게 자신이 직접 오지도 않고 대리인을 보냈었지.”

마탑주는 그 말을 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놈도 알았던 거겠지. 자기가 직접 오면 반드시 죽는다는 미래를 말이야.”

새로운 이야기를 들은 아론은 머리를 굴렸다.

‘누구지?’

과연 누가 몇 년 전에 흑암도에 왔었던 걸까.

‘아마 둘째인 러셀일 확률이 높겠지. 녀석은 지금 흑마법 단체를 이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나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순 없었다. 흑암도의 세력을 원하는 다른 형제일 수도 있었다.

비록 대륙에서 밀려난 이들이라고 해도,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후계자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 마탑주에게 물어봐도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거야.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생각해서 에드먼스 출신이라는 것만 밝혔겠지.’

아론은 대신에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은 마탑주님에게 어떤 요구를 했습니까?”

“당연히 들어 보지도 않았다. 난 에드먼스라는 이름에 치를 떠는 사람이거든.”

쿠구구……!

마탑주의 기운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놈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팔다리를 잘라버렸지.”

아론은 마탑주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을 터였다. 그래서 아론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비명을 지르면서 살려달라고 꽥꽥 울더군. 자신이 에드먼스 가문의 배틀 메이지니 뭐니 하면서 잘도 나불거렸지. 그래서 목도 날려 버렸다.”

덜컥, 덜컥.

마탑주의 말이 끝나자 장식처럼 보였던 목 없는 기사가 발을 움직이더니 그의 곁에 섰다.

‘저게 듀라한…….’

아론은 곧게 서있는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에드먼스 소속의 마법사였을 것이다. 풍겨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최소 6서클은 되어 보였다.

절대 실력이 없는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굴복해서 듀라한이 되어 있었다.

‘팔과 다리를 다 잘랐다고 했는데, 저것은 인공적으로 만든 거겠지.’

아론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놈은 지금 이렇게 내가 경비병으로 잘 쓰고 있지, 흐흐.”

마탑주는 소름이 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건방진 녀석이었지. 내 라이프 베슬이 어쩌니저쩌니 했던 것 같은데… 그걸 빌미로 거래를 하려고 했었군. 참으로 어이없지 않나?”

그때, 마탑주의 텅 빈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러자 아론의 주위로 순식간에 검은색의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 마나가 내뿜는 기운은 찐득거리는 것이 굉장히 불쾌했다.

마탑주가 내뿜은 마나가 아론의 몸을 옥죄었다. 덕분에 아론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에드먼스라는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화가 솟아오른다. 그런데 너는 겁도 없이 이곳에 와서 내게 거래를 하자고 입을 나불거리는구나.”

꽈악!

마탑주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듯 더욱 강하게 아론을 마나로 감쌌다.

“내가 그런 너를 가만히 놔두면 바보나 다름없지 않겠나?”

아론은 그 속박을 풀기 위해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이 꺼림칙한 마나의 손아귀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너를 굳이 이곳으로 부른 이유도 직접 내 손으로 에드먼스의 핏줄을 죽이기 위해서다.”

마탑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아론에게 다가갔다.

“흐흐, 이제 널 어떻게 해줄까?”

마탑주는 뼈밖에 없는 자신의 손으로 아론의 턱을 쓰다듬었다. 아론은 그 감촉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네 녀석의 몸을 해부해 볼까? 에드먼스 가문 녀석의 몸이라고 하니 탐이 나는구나.”

마탑주의 손이 아론의 가슴 부근에 닿았다.

“연구를 끝낸 뒤에는 무사히 집으로 보내주마. 장기가 하나도 없는 자식의 몸을 본 공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마탑주는 고개를 슥 돌려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저 자식처럼 너를 듀라한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잠깐만… 넌 재능이 꽤 있어 보이니까 나처럼 리치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볼만하겠구나. 흐흐.”

마탑주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론을 골려주었다.

“리치가 된 자식을 본 공작은 과연 흑암도를 향해 공격을 하러 올까? 아니면 아들을 생각해서 화해의 손길을 내밀까?”

그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 흑암도에 결계가 더 이상 필요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아론이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이판사판이었다. 자신이 물리적으로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면 세 치 혀라도 놀릴 수밖에.

“뭐라고?”

마탑주는 갑작스러운 아론의 말에 놀라서 물었다.

“흑암도를 둘러싼 칠흑의 결계 말입니다. 그거를 유지하기 위해서 꽤 많은 힘을 들이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론의 말에 마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펼치신 이유도 저희 가문을 비롯한 토벌대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그러신 거겠죠.”

그 말에도 마탑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론은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검은색 마나들의 기운이 잔잔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탑주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상대는 언제든지 자신의 목숨을 손가락 하나로 꺼트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협상을 해야 했다.

“마탑주님께서도 스스로 리치가 되신 이유는 영생을 얻어서 탐구심을 채우려고 그러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신의 힘 중 일부를 계속해서 결계를 유지하는데 쓰는 것이 껄끄러우실 겁니다.”

아론의 말은 맞았다.

결계를 유지하는 건 마탑주 한 명이었다.

“그리고 흑암도에서만 지내기에는 답답하실 겁니다. 대륙으로 나가는 순간 공적으로 몰리실 테니까요. 제가 그걸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마치 에드먼스의 가주라도 되는 양 지껄이는구나.”

아론의 말을 들은 마탑주는 코웃음을 쳤다.

“저는 차기 가주가 될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흑암도에 결계를 칠 필요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소한 에드먼스 가문은 흑암도에 이빨을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마탑주는 말이 없었다.

아론은 그의 생각에 쐐기를 박기로 했다.

“절 죽여서 얻는 이득보다, 차라리 살린 다음 미래를 도모하시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아론의 발언에 마탑주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길지 않았다.

“네 녀석이 살려고 발악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쿠구구!

마탑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한층 더 강해졌따.

“널 어떻게 할지 결정했다.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듀라한으로 만들어야겠구나.”

‘젠장……!’

아론은 이번 협상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최후의 보루로 텔레포트 아티팩트를 남겨 뒀었다.

아론이 그것을 발동시키려는 순간.

“어떤 녀석이지?”

마탑주의 분노가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

철썩- 철써억-

흑암도의 바다는 오늘도 별일이 없었다.

휘오오-!

흑암도를 둘러싼 칠흑의 안개. 결계는 오늘도 이곳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흑암도에서 보내는 안내선이 아닌 한 그 결계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에 주위를 순찰하는 병력은 없었다. 정확히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에드먼스를 비롯한 대륙의 토벌대조차도 뚫어내지 못한 것이 이 결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곳으로 향하는 의문의 배가 여러 척이 나타났다.

제일 선두에서 전진하는 배.

그곳의 갑판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한 남자가 손짓을 하자 검을 허리춤에 맨 기사 두 명이 거대한 바위를 가지고 나왔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은색 바위였다. 거기에는 무수한 술식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게 정말 먹힐까요?”

옆에 서 있던 부관이 불안해하며 대장을 바라보았다.

“그 마법사 녀석이 실험을 마치고 건네준 거다. 아마 효과가 있을 거다.”

대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부관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휘오오오-!

이제 곧 마주하게 될 저 검은 결계.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탄 배는 갈가리 찢겨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이걸로 흑암도의 결계를 뚫을 수 있다면, 그 녀석들이 스스로 하면 되지 왜 우리더러 하라고 하는 겁니까?”

“그건 우리가 생각할 게 아니다. 우리는 그저 왕실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왕실의 명령. 그 단어에 부관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빨리 저걸 작동시키게.”

“예!”

대장이 지시하자 배에 같이 탑승한 마법사가 마나를 불어 넣어 돌에 새겨진 술식을 발동시켰다.

파앗-!

돌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앞으로 쏘아졌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빛이 결계를 천천히 흡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야…….”

불안에 떨었던 부관도 그 장면을 보고 감탄을 흘렸다.

이윽고 결계에 틈이 생겼다. 배 여러 척은 충분히 지날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100년 넘게 흑암도를 지켜 온 결계의 일부가 걷힌 것이었다.

“결계만 없으면 흑암도의 녀석들 따윈 아무것도 아니죠. 배의 속도를 올려라!”

부관이 명령했다.

“상륙이 머지않았습니다. 바스티안 경.”

바스티안경이라 불린 대장은 말없이 저 멀리에 있는 흑암도를 바라보았다.

* * *

마탑주는 처음부터 아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었다.

에드먼스 가문과의 악연?

이미 100년도 넘은 일이었다.

처음에 흑암도로 밀려났을 때는 매우 분노했었다.

하지만 세월은 그러한 감정을 점점 마모시켰다.

그리고 마탑주는 리치가 되면서 인간 시절에 지니고 있었던 감정이 옅어졌었다.

복수심에 휩싸여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마법 연구를 계속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이만이 에드먼스의 가주가 된 이후로는 서로 간에 이렇다 할 충돌도 없었다.

아론은 모르고 있지만, 예전에 카이만과 마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봤던 적도 있었다.

마탑주도 바보는 아니었다.

에드먼스 가문이 부리는 하수인이라면 모를까, 카이만의 혈육을 죽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잘 알고 있었다.

마침 하나의 연구가 끝나 심심해 있던 차에 아론이 나타났었다. 그래서 잠깐의 여흥 거리로 그를 가지고 논 것이었다.

그런데 아론이 보이는 반응이 재밌었다. 그래서 무심코 장난기가 돋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어떤 녀석이지?”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아론과 놀아줄 시간은 없었다. 누군가가 흑암도의 결계를 부수고 있었다.

대륙에서 감히 이곳의 결계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 마탑주는 단 한 명이 떠올랐다.

‘……카이만 에드먼스.’

하지만 그는 아닐 것이다.

굳이 카이만이 이곳까지 와서 결계를 뚫을만한 동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직접 가봐야겠군.’

마탑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자신의 마나를 거두어들였다.

그제야 아론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너는 다음에 상대하지.”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이곳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론은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가 이해 가지 않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일 것처럼 굴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급히 떠난 것을 봐서는 무언가 큰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마탑주가 직접 움직일 일이라…….’

아론은 일단 마탑주의 마나를 추적했다. 한번 맛본 그의 강렬한 마나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기에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텔레포트를 쓴 건가? 한 번에 멀리도 이동했군.’

마탑주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는 부둣가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아론은 쿠브의 도움을 받아서 탐지 마법의 범위를 늘렸다.

그러자 바다 위에서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수가 꽤 되었다.

‘설마, 누군가가 결계를 뚫고 들어온 건가?’

마탑주가 황급히 움직였다는 건 그 경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바다 위에서 또렷한 기운을 하나 느낄 수 있었다. 아론이 한번 대적했던 적이 있었기에 알아차리는 것이 가능했다.

‘바스티안? 그 녀석이 여긴 왜?’

머랭 영지의 수도원에서 그를 맞닥뜨렸을 때 느꼈던 기운과 동일했다.

아론은 그가 도대체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인지 이해 가지 않았다.

‘나를 쫓아서 온 건가?’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론은 항상 움직임에 있어서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추적자가 붙어 있지 않는가 항상 조심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바스티안이 흑암도를 노리고 온 이유. 아론의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탐지 마법이 걸리는 미지의 기운은 점점 흑암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확실하다. 결계가 무너진 게 분명해.’

초유의 사태였다.

흑암도의 결계는 단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흑암도의 방어는 대부분 마탑주가 펼쳐 놓은 결계에 의존했었다.

그게 무너진 지금, 마탑의 인원을 전부 대동하더라도 침입자를 막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론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바스티안이 쳐들어온 이유는 그를 잡으려고 그런 건 아닐 것이다. 그럴 거라면 흑암도의 결계를 깨지 않고 차라리 항구에서 기다렸을 터였다.

자신이 조용히 숨어만 있는다면 별일 없이 지나갈 확률이 높았다.

여기에는 유흥을 즐기로 온 다른 나라의 귀족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설마 그들도 같이 처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숨어 있지 않고 마탑주의 편에 서서 같이 싸운다는 선택도 고려할 수 있었다.

잘하면 그의 마음에 들어서 해주의 술식을 얻어내는 게 가능했다.

아론은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해안에서 강력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탑주가 전투를 시작한 건가?’

아론은 동시에 특이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끼고 있는 펜던트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기운.

‘칠검이 여기에 있는 건가?’

아론은 그 순간 결심했다.

숨어 있기보다는 마탑주의 편에 서서 싸우기로 말이다.

나머지 칠검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저렇게 직접 들고나왔다는 건 절호의 기회였다.

‘기다려라. 갈아서 내 펜던트에 넣어 주마.’

아론은 곧장 마탑주의 마나 흔적을 따라 부둣가로 이동했다.

***

사람들은 이변을 알아차리고 멀리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 척의 큰 배가 흑암도를 향해 오고 있었다.

주민들은 걱정하는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백 년이 넘게 침입자가 없던 곳인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론에게 안내 역할을 하던 맥스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어린 그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다.

톡톡.

그때, 누군가 맥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구…… 어?”

그는 갑자기 등장한 아론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혹시 나리께선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설명할 시간은 없다.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 크기는 상관없으니까 바로 탈 수 있는 배 하나만 찾아줄래?”

“아, 알겠습니다!”

아론의 부탁에 맥스는 부리나케 배를 찾기 위해 달려갔다.

한편, 마탑주는 마나를 이용해 바다 상공에 떠 있었다.

그는 맨 앞에 나와 있는 배 한 척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제일 강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결계가 뚫린 이유는 저 돌 때문인가?’

마탑주는 갑판 위에 놓여져 있는 커다란 검은색 돌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느껴지는 기운이 아론이 건넸던 인공 미티움과 동일했다.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결계마저 뚫어버리는 건가?’

그래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결계를 뚫고 들어 온 배들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들어왔으니 상대는 해야 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들어오는 거냐?”

마탑주의 경고에도 바스티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네놈의 라이프 베슬을 가지러 왔다. 그걸 순순히 넘기면 흑암도는 건드리지 않겠다.”

“……크하하!”

바스티안의 말을 들은 마탑주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라이프 베슬을 넘겨주는 건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흑암도를 빌미로 협박을 하다니. 배짱이 좋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완전히 정착하고 나서는 따분한 일들뿐이었는데…… 최근 들어 재밌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구나.”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안광을 번뜩였다.

쿠구구!

그의 몸에서 순식간에 검은색 마나들이 방출되었다. 뻗어져 나온 마나는 순식간에 배 하나를 감쌌다.

콰드득!

마나는 거칠게 배 하나를 박살 냈다.

“으아악!”

거기에 탔던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형편없는 녀석들을 데리고 와서는 내 라이프 베슬을 가져가겠다고? 웃기는 이야기군.”

마탑주는 경고의 의미로 바스티안의 옆에 있는 배를 부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서 소요가 일어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순순히 넘길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겠다.”

스릉!

바스티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황금색의 검이었다.

마탑주는 그것을 본 순간 잠깐이지만 위협을 느꼈다.

‘……기운이 강해졌다?’

처음 바스티안을 보았을 때 느껴졌던 기운으로 보아서 8서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저 검을 뽑는 순간 사람이 달라진 것 마냥 오러가 날뛰었다. 지금은 8서클 마스터라고 해도 될 정도의 실력이 되어 있었다.

‘저 검의 영향인가? 바깥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구만.’

마탑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스티안이 뽑은 검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전장은 바다였다. 배만 부숴 버린다면 저들은 허우적대다 죽을 것이 자명했다.

마탑주는 다시 폭발적인 마나를 방출했다. 그의 몸에서 나온 어두운 기운은 해상의 배들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콰앙! 쾅!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검은색 마나가 배에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키며 박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스티안이 탄 배는 실드 때문에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결국, 그가 탄 배를 제외하고 나머지 배는 모두 침몰하고 말았다.

하지만 바스티온은 여전히 표정에 미동이 없었다.

그는 침착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힘을 모아 허공에 휘둘렀다.

휘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구……!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바닷속에서 땅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흑암도와 맞닿아 있었다.

그 광경에 마탑주도 할 말을 잃었다.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은 물론 웬만한 마법사들은 불가능한 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게 녀석이 뽑은 검의 진정한 힘인가?’

마탑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설마 우리가 흑암도로 오는데 아무런 준비도 안 했다고 생각했나?”

바스티안은 마탑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고고하게 나올지 궁금하군.”

바스티안이 보여준 이적에 그의 배에 탄 병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크흐흐.”

그러나 마탑주는 쇠를 긁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군.”

“무슨 소리지?”

마탑주의 그 말에 바스티안이 물었다.

“오래 전, 수많은 녀석들이 흑암도를 노리고 쳐들어왔다. 그리고 그들 전부가 이 바다 밑에 수장되어 있지.”

화악!

마탑주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방출된 검은 마나들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쿠구구……!

바다가 또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바스티안도 여기까진 생각을 못 했었는지 당황해하고 있었다.

처억! 척!

물속에서 뼈밖에 없는 손들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스켈레톤들이었다.

그 하나하나는 쳐들어온 병사들에 비해 약할지언정, 숫자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희는 허락 없이 이 땅에 발을 들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스켈레톤의 군세를 움직였다.

* * *

옛날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나쁜 일을 꾸미는 적은 흑마법사로 등장했다.

기사의 모험담, 용병의 용맹함을 쓴 시 등등. 거기서는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음침한 마법사가 나왔으며 주인공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흑마법사가 그런 이미지로 굳혀진 이유는 그들의 마법이 강력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들이 연구하는 마법은 항상 상대를 염두에 둔 공격 마법이 대부분이었고, 꺼림칙한 언데드를 부리는 마법은 어두운 이미지를 더더욱 굳혔다.

하지만 흑마법사 특유의 마법 덕분에 지금처럼 혼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달각, 달각!

바다에서 솟아오른 무수한 스켈레톤들이 바스티안이 만든 땅을 기어 올라왔다.

녀석들은 바스티안의 병사를 보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스켈레톤 각 개체의 능력은 병사보다 약했다. 하지만 녀석들은 압도적으로 양이 많았고, 팔이나 다리가 터져 나가도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달라붙었다. 그 덕에 전선은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한편, 마탑주는 바스티안과 대치하고 있었다.

쿠구구……!

마탑주의 주위로 검은색 마나가 솟구쳤다. 그는 바스티안을 상대로 진심을 다할 생각이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흑암도에 침입한 녀석이 내 라이프 베슬을 가져가겠다고?’

마탑주는 녀석을 곱게 죽이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우우웅-!

마나가 마탑주의 앞으로 모이더니 커다란 광선이 되어 바스티안을 향해 쏘아졌다.

몸에 닿기만 한다면 근육을 터트리고 세포를 괴사시킬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바스티안은 쏘아지는 검은 광선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검을 앞으로 내밀 뿐이었다.

파아앗!

그러자 그의 검에서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영롱한 황금빛은 마탑주가 쏘아낸 광선을 집어 삼켜 버렸다.

‘저 녀석의 검은 대체……?’

마탑주는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에 대해 약간 놀라고 있을 때.

타앗!

바스티안이 움직였다.

그는 광휘를 뚫고 나와 순식간에 마탑주와 거리를 좁혔다.

휘익!

바스티안은 검에 오러를 실어 휘둘렀다.

‘가소롭군!’

마탑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어 마법을 펼쳤다.

단순한 방어 마법이 아니었다. 검이 닿는 순간 마나 줄기가 뻗어 나와서 녀석의 몸을 집어삼키는 마법이었다.

콰앙!

그러나 바스티안의 검은 마탑주가 펼친 방어 마법을 완전히 깨트리고 말았다.

잘못하면 녀석이 흩뿌린 오러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팟!

마탑주는 블링크를 써서 가까스로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바스티안은 그 행동을 예상하고 곧바로 마탑주를 쫓아왔다.

촤라라락!

허공에서 뻗어 나온 검은색 사슬이 바스티안의 팔과 다리를 속박했다.

마탑주는 그 틈을 노려 녀석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바스티안은 금방 속박을 부수고는 마탑주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서걱!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바스티안은 마탑주의 왼팔을 베어 버렸다.

마탑주는 황급히 그와 거리를 벌렸다.

‘이런!’

마탑주는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적극적으로 녀석에게 공격하려 했다면 팔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었다. 잘못하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그렇다고 해서 리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이프 베슬로 역 소환이 될 테고, 바스티안은 자신의 흔적을 쫓아 올 것이 분명했다.

리치가 된 이후로 이렇게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마탑주는 바스티안이 자신이 가늠한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녀석의 오러 수준은 8서클 마스터 급이었다. 단순히 실력으로 놓고만 본다면 할 만했지만, 저 녀석이 든 황금빛의 검. 저것과 자신의 상성이 좋지 않았다.

바스티안의 검에서는 생명력과 대지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탑주의 흑마력이 큰 힘을 못 쓰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쿠오오……!

마탑주는 자신이 가진 모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제대로 싸우지 않으면 역소환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네놈의 라이프 베슬을 찾아낼 시간도 머지않았구나.”

바스티안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파앗!

바스티안의 검도 더욱 밝은 빛을 내뿜었다.

타다닥!

그는 마탑주를 베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아론은 맥스가 급하게 구해온 배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후우웅!

단순히 돛만 달고 있는 작은 배였기에 아론은 윈드 마법을 써서 배를 움직이는 중이었다.

마탑주가 대적하고 있는 바스티안과 그 병사들은 섬과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맞붙는 둘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살벌한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드디어 보인다!’

아론의 시야에 커다란 검은색 구체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마나의 기운으로 보아 마탑주가 쏘아낸 것으로 보였다.

그에 맞서는 바스티안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황금빛 기운을 휘두르며 마탑주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 녀석도 참 어마어마하구나.’

아론은 밀리지 않고 싸우는 바스티안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칠검이 있다 하더라도 흑암도의 주인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 참 놀라웠다.

아론은 고민이 되었다. 과연 저런 싸움에 자신이 끼어들어도 될지 말이다. 잘못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이 바스티안을 없앨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젠의 주요 전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녀석이기도 했다.

바스티안은 머랭 영지에서 당한 수치를 잊지 않고 병력을 풀어서 자신을 찾고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의태를 하고 있었으므로 아직 아론의 단서를 찾진 못했지만, 그래도 녀석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기회가 따라줄 때 저 녀석을 제거해두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론은 자신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펜던트를 쓰면 6서클 마스터, 아니면 7서클 급의 힘을 낼 수 있다.’

마탑주와 바스티안의 대결은 막상막하였다. 거기에 자신이 끼어든다면 마탑주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스티안을 죽이면 칠검이 하나 더 들어오니까.’

그것도 전투 후에 얻을 수 있는 커다란 성과였다.

후우웅!

아론은 더욱더 거세게 윈드 마법을 사용해 나아갔다.

잠시 후, 아론은 기상천외한 광경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다 위에 섬이 생겼어?’

그것은 바스티안의 검이 만들어 낸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아론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단순한 바위가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정말 섬 정도의 크기가 우뚝 솟아 있었고, 거기서는 마탑주가 만들어낸 스켈레톤과 바스티안의 병사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마탑주와 바스티안이 있었다. 검은색의 기운과 황금색의 기운이 맞부딪치면서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대치하고 있었다.

콰아앙!

두 사람이 격돌할 때마다 기운이 폭발했고,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휘말려 죽었다.

언뜻 보면 대등한 전투였다.

하지만 아론이 판단하기에는 전세가 바스티안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이 보였다.

황금빛 오러에 휘말려서 여기저기 찢겨져 버린 마탑주의 로브. 그리고 뼈도 군데군데 박살이 나 있었다.

반면 바스티안은 가벼운 상처만 나 있을 뿐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저게 그 칠검 중 하나겠군.’

거리가 있어서 상태창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내뿜는 기운을 보아하니 저게 진품 쿠베라 소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린데란트에서 오크 킹과 싸울 때 녀석이 들고 있었으니까.’

그건 복제품이었지만 느껴졌던 기운만은 잊고 있지 않았었다.

퐁!

그때, 쿠브가 갑자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아론은 웬일인가 싶어서 쿠브를 바라보았다.

쿠브는 마치 홀린 듯이 바스티안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 오러를 보기 시작했다.

번쩍!

‘어?’

아론은 순간 잘못 봤나 싶었다.

쿠브의 눈에 황금빛이 감돌았던 것 같았는데…….

“쿠브!”

“어, 어?”

“너 방금 어떻게 한 거야?”

“뭐가?”

아론은 쿠브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쿠브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혹시 쿠브와 저 검이 연관이 있는 걸까?’

쿠브는 대지의 신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쿠베라라는 검의 이름으로 보아하니 대지를 다루는 능력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론의 더 이상 생각을 깊게 할 수 없었다. 마탑주가 서서히 밀리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탑주는 리치니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어 버린다면 라이프 베슬이 있는 곳으로 역 소환 될 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곳에는 아론만이 남게 된다. 바스티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마탑주와 같이 싸우지 않는 한 아론은 바스티안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당하기 전에 자신이 빨리 그를 도와야 했다.

어느새 아론의 마법이 닿는 범위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전투에 정신이 쏠린 나머지 아론이 왔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후우…….”

아론은 에드먼스 호흡법을 이용해 마나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 횟수는 20번에 도달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었지만 체내의 회로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펜던트의 마나도 끌어모았다.

바스티안이 자신을 신경 쓰지 못하는 지금이 최고의 공격 기회였다.

파지직-!

아론은 두 손을 앞으로 펼쳐 마법을 방출할 준비를 했다.

콰르르릉-!

이내 아론의 손에서 불꽃을 튀기던 스파크는 커다란 뇌전이 되어 있었다. 아론은 그걸 공중으로 날렸다.

콰아앙!

상공에 떠오른 뇌전은 번개가 되어 바스티안의 위로 내리쳤다.

마침 그 타이밍에 바스티안은 마탑주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번개를 맞고 그 충격으로 멀리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마탑주는 갑작스러운 아론의 참전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네가 여길……?”

그는 믿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래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마탑주에게 다가갔다.

“일단 이 전투를 끝내고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멀리 날아간 바스티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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