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3 (23/40)

Chapter 3

“보고드립니다!”

러셀 에드먼스는 부리나케 달려온 부하 마법사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바니르에게 걸려 있던 서약 마법이 해제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러셀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바니르는 지금 코뱃 상단의 요청으로 그들의 사업에 방해되는 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보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녀석의 서약 마법이 해제되었다니. 그건 두 가지 중 하나임을 의미했다.

서약 마법이 발동되어서 바니르가 죽임을 당했든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것을 해제한 것이었다.

두 개 다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자라면 전력의 일부를 잃어버린 셈이고, 후자라면 정보의 유출을 우려해야 했다.

러셀은 답답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감시가 심해진 탓에 고위급의 아티팩트를 아이젠으로 반출하는 게 어려워져서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어느 개자식이야?’

이전부터 누군지는 몰라도 계속 자신의 일에 훼방을 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시넨에서도 그랬고, 머랭 수도원에서도, 그리고 라둔에서도!’

아주 사사건건 자신을 넘어트릴 목적으로 방해하는 것 같았다.

의심 가는 사람은 많았다.

일단 에드먼스의 형제들은 모두 자신의 적이었다.

‘그래도 카릭은 아닐 거다.’

첫째는 애초에 나머지 형제들을 경쟁 상대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생길 때마다 가문에 없던 녀석이 범인이겠지.’

거기에 맞는 인물은 아론뿐이었다. 특히 녀석은 최근에 아예 공작가를 나갔다고 들었었다.

원래라면 아론은 막내인 라크보다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모양인지 최근에 실력이 일취월장하더니, 유력한 후계자 후보로 발돋움해 있었다.

‘그 녀석, 연회장에서 나한테 무안을 줬었지.’

러셀은 아론의 아카데미 졸업을 축하했던 연회를 떠올렸다.

그 당시에 레온 왕자가 아론에게 시비를 걸고 있길래 거기에 장작을 더 넣으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아론은 재치를 발휘해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었다.

러셀은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리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필시 아론이 한 짓일 거다.’

그는 이를 꽉 물었다.

“그동안 넌 뭘 했지?”

“……예?”

러셀의 화는 보고를 한 마법사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어느 녀석인지 몰라도 나한테 훼방을 놓고 있는데, 왜 가만히 당하기만 하냔 말이다!”

“저, 저는…….”

단순히 보고를 하러 왔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러셀이 뿜어내는 분노에 부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덜덜 떨었다.

러셀은 마나를 이용해 녀석의 목을 붙잡고 비틀었다.

“읍! 으읍!”

또각!

결국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은 러셀의 화풀이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러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심기는 날카로웠지만 분노는 좀 가신 상태였다.

‘괜찮아. 큰 피해는 아니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계획 자체가 어그러진 건 아니었다. 에드먼스 가문을 집어삼키기 위한 수많은 계획들 중 일부일 뿐이었다.

‘그래도 아론 이 녀석은 내가 반드시 잡아 죽일 것이다.’

아론의 거취에 대한 보고는 종종 듣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저기서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꼬리가 보이면 못 잡을 것 없다. 잘 조사해보면 녀석의 뒤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최근에 수확은 있었다.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진 곳에서는 항상 헬브람 상인의 출입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는 추적을 피해 공작가의 밖으로 나간 거겠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될 것이다.’

녀석이 있는 곳만 알 수 있다면 지금이 가장 아론을 처리하기에 적기였다. 공작가 내부에서는 카이만의 눈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네놈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오는구나.’

러셀은 하루라도 빨리 아론을 잡을 수 있기를 빌었다.

***

바니르의 입에서 마다바드라는 이름이 나오고 나서, 아론을 포함한 세 사람은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아론은 형제들 중에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단서로 그게 누군지도 알게 되었다.

‘러셀…….’

항상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라 속을 몰랐었는데,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러셀 그 자식이!”

라엘은 분노를 담아서 소리쳤다.

기본적으로 아론의 형제들에게 존칭을 붙이던 그녀가 비속어를 섞어서 부른다는 건 굉장히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아론 님을 습격했었던 다른 사건들도 러셀 님이 그런 걸까요?”

“그렇겠지.”

켄트의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러셀 님이 흑마법사 단체와 연관이 있고, 아이젠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아무래도 후계자 자리를 노리시고 그런 거겠죠?”

이번에도 아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후계자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첫째인 카릭이었다.

러셀이 이를 뒤집기 위해선 단순히 실력을 기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세력을 비밀리에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경쟁자인 아론이 나타나자 러셀은 그가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버리려고 호시탐탐 목숨을 노렸었다.

‘누구인지 정체가 드러났으니, 응당 대가를 치루게 해야겠지.’

아론은 러셀을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러셀은 자신의 목숨을 노렸었다. 그리고 아이젠을 끌어들인 탓에 포드가 맹약을 어기고 힘을 써 버려서 유폐를 당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만 해도 러셀에게 칼을 들이밀 이유는 충분했다.

“그럼 러셀 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켄트가 아론을 향해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공작님에게 말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제블린 길드의 본거지를 습격했을 때, 포탈 아티팩트를 발견한 후로 공작님이 직접 그와 관련해서 조사를 하셨어. 하지만 그때 러셀은 걸리지 않았지.”

“그렇다면…….”

“치밀한 녀석이야. 들키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했겠지. 러셀이 흑마법과 관련이 있고, 나를 암살하려 한다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이잖아?”

공작은 냉정한 사람이었다. 아론이 가서 이번 일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먼저 증거가 있느냐고 물을 것이 분명했다.

거기서 합당한 증거를 내밀지 못하면 공작의 비난이 향하는 것은 러셀이 아닌 아론이 될 터였다.

‘이제까지 쌓아 왔던 내 이미지를 스스로 깎아 먹을 이유는 없지.’

그렇기 때문에 아론은 아직 이 일을 공작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러셀이 발뺌할 수 없도록 확실한 증거를 모아야 해. 녀석이 흑마법사, 그리고 아이젠과 관련이 있다는 걸 증명할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야.”

러셀은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었다. 그런 그가 남긴 증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에 마법사를 심문하면서 자신을 노렸던 게 러셀이란 걸 밝힐 수 있었다.

충분히 공을 들여서 증거를 찾다 보면 반드시 러셀이 연관되었다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충 진상을 알게 되었으니까 빨리 이곳을 떠나자.”

“알겠습니다.”

아론 일행이 라둔 왕국에 온 목적은 코뱃 상단의 정체를 알기 위함이었다.

우연하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곳에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분명 테네브라에서도 소식이 전달되었겠지.’

만약 녀석들이 몰려온다면 매우 골치 아파졌다.

***

아론은 즉시 라둔 왕국을 나섰다. 이동하기 위해선 사막을 건너야 했지만, 리가르도의 배려 덕분에 야심한 시각임에도 길잡이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주었던 리가르도 상단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는 매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떠날 때는 아이젠의 검문을 수월하게 통과해서 최단 거리로 갈 수 있었다.

메도우드 왕국으로 넘어와서는 워프 게이트를 타고 이동했다.

아론은 할로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이웨카 길드로 갔다. 셀린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흑마법을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아이젠에게 건네준 녀석을 찾아냈다.”

“누군가요?”

“러셀 에드먼스다.”

셀린은 그 이름을 듣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이 아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었다.

그래도 자신은 아이젠의 서자 출신으로서 아이젠과 관련된 정보는 꽤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음이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났다.

“흑마법을 연구하는 단체의 이름이 테네브라라고 했어. 마다바드에 본거지를 뒀다고 하는데, 녀석들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줄래?”

“알겠습니다. 즉시 정보 인력을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다바드의 크기는 절대 작지 않았다. 못해도 자작의 영지 크기 정도는 되는 넓이를 자랑했다.

거기서 활동하는 테네브라를 찾아내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아론 님. 러셀이 흑마법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에 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아론은 셀린의 의견에 동의했다.

키메라나 생체 골렘, 언데드 등을 다루는 것도 흑마법에 속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문제는 저주였다.

코뱃 상단이 경쟁하는 상단주들을 심장마비로 죽인 것처럼, 저주 마법을 사용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저주마법을 쓰기 위해선 대상과 아주 가까이에 있어야 했다. 아론이 몰래 다가오는 적을 눈치채지 못 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온다면 문제겠지.’

죽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에게 들이대는 녀석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론은 마나 중독으로 인해 신체가 매우 약했다. 그래서 저주 계통 마법이 걸린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아론은 저주를 푸는 해주 마법에 능통하지도 않았다. 지구에서야 당연히 그런 마법이 없었고, 이 세계의 흑마법도 녀석들이 토벌된 이후에 사장되어서 그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대비책을 세워야겠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상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그 사람에게 물어보는 거지. 흑마법에 권위가 있는 녀석에게 찾아가 보면 되지 않겠어?”

아무리 흑마법의 계승이 끊겼다고 해도 뒷세계에서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존재했다.

* * *

그러나 아론의 말을 들은 셀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의 권위자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은…….

“설마 직접 흑암도로 가시려고 그러시는 건가요?”

“거기 말고 더 있겠어?”

셀린의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론 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거기는 여기 할로움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잖아요!”

“나도 알고 있어.”

아론은 셀린이 이렇게 걱정하는 태도가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약 100여 년 전, 에드먼스 가문의 주도로 대륙에서 흑마법사들을 토벌했던 일이 있었다.

토벌대가 결성된 이유는 당연하게도 금지된 생체 연구와 키메라 제작이었다.

그 결과 대륙의 흑마법 기관들과 서적들은 모두 파괴되었으며 유명한 흑마법사들도 숙청을 당했다.

물론 그들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격렬하게 저항했었다. 하지만 에드먼스의 힘 앞에선 점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도망쳤고, 이윽고 대륙 북부의 끝자락에 도달하자 결국은 바다를 건너 어느 섬으로 도망쳤다.

그곳이 지금 말하는 흑암도라는 섬이었다.

토벌대는 흑마법사의 완전 박멸을 외치며 섬까지 침공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전부터 머물고 있던 어느 흑마법사가 만든 결계를 뚫어낼 수가 없었다.

토벌대는 몇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흑암도를 공략했다. 그러나 바다를 끼고 있다는 지형적 이점과 결계 때문에 성과는 지지부진했고 결국 토벌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흑암도는 대륙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고 흑마법사들 역시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거기서 쭉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흑마법사들처럼 대륙에는 발붙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점점 몰려드는 장소가 되었다.

할로움이 단순히 힘 좀 쓰고 거친 용병들이 모여서 무법지대라고 부르는 거였지만, 흑암도는 정말로 위험한 곳이었다.

그 사실을 아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로 가야만 한다.”

추측일 뿐이지만 먼저 흑암도에 도착해서 결계를 친 흑마법사는 아마 해체된 흑마법사의 마탑주라고 다들 여겼다.

그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에드먼스 가조차도 파괴하지 못한 결계를 칠 수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에게는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저주 마법의 해주 술식을 알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론은 그 사실을 들어서 자신이 흑암도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 소문은 저도 알고 있어요. 대륙의 권력자들도 그것을 탐냈었죠. 하지만 아무도 그자에게서 그 술식을 얻은 사람이 없어요.”

셀린의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심지어 아이젠 왕가에서도 사람을 보냈었지만 실패했었다.

“그래. 그 사람의 인정을 받은 자만이 해주 술식을 얻을 수 있지.”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론은 흑마법사들의 토벌을 주도한 에드먼스 가문의 핏줄이었다.

그런 그에게 흑마법사들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론 님은 에드먼스 가문의 사람이시잖아요.”

셀린도 그 점을 지적했다.

“당연히 그건 숨겨야지.”

“하지만 마탑주는 이름 있는 가문이 아니면 만나주지 않을걸요?”

“흑암도는 소란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야. 내가 방문객으로 가서 활약하다 보면 걔네들 마탑에도 소식이 닿을 거고, 머지않아 마탑주에게도 이야기가 전해질걸?”

“상황이 좋게만 흘러간다면 그렇겠지만요…….”

셀린은 아론의 그 생각이 미덥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론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셀린이 그걸 막을 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테네브라와 함께 흑암도에 대해서도 정보를 수집해 볼게요.”

“그래, 부탁할게.”

아론은 그렇게 말한 뒤에 흑암도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흑암도에 대한 정보가 수집되길 기다리는 동안, 아론도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알고 있는 대로, 그곳은 힘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무법천지의 섬이었다.

그곳에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다면 그에 걸맞는 힘을 길러야 했다.

흑암도에는 흑마법사들뿐만이 아니라 대륙에서 잡힌다면 극형을 받을 사람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론이 펜던트의 마나를 빌리면 7서클 급의 상대까지는 맞서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흑암도에는 이보다 더한 강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 불확실성 때문에 아론은 현재 자신의 실력에 안주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아론은 떠나기 전까지 강도 높은 훈련을 실행했다. 특히 서클 훈련에 들이는 시간을 더욱 늘려서 벽을 뚫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라엘, 켄트와 함께 오늘도 훈련에 열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론의 템포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아론보다 먼저 훈련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론은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고강도의 훈련을 계속해 온 결과 그는 5서클 마스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론은 어떻게든 6번째 서클을 형성하기 위해서 각고로 노력을 기울였다.

마나는 형체가 없다 보니 그것을 강제로 붙잡고 서클로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이미 서클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마법사들은 그것을 유지하면서 새 서클을 만드는 게 고역이었다.

그래서 4서클 이후부터는 새로운 서클을 추가하는 게 사실상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론은 높은 친화력 수치를 지닌 탓에 조금만 마나를 잘못 움직여도 반동이 크게 다가왔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아론은 남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아론은 주변의 마나 흐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고, 최근에는 이상한 기운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그가 앉아 있는 땅 밑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운이었다.

아론은 처음에 훈련할 때 자신이 유난히 친화력이 높아서 잘못 느낀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훈련을 점점 진행할 때마다 땅에서의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훈련을 마칠 때가 되어서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땅에서 흐르는 마나까지 느끼게 되는 몸이 될 줄이야.’

아론은 이것이 쿠브와의 연결이 더욱 강화되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혹시 대지의 마나도 내가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아론은 한번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켄트를 바라봤다.

“어?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훈련을 끝내셨네요.”

“잠깐 시험해보고 싶은 게 생겼거든. 좀 도와주겠어?”

“얼마든지요. 뭘 하면 될까요?”

“나한테 가벼운 공격 마법 하나만 날려 줄래?”

켄트는 그의 요청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뭔가 깨달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 여기고는 마법을 준비했다.

파앗!

초급 공격 마법인 마나 볼트가 켄트의 손에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론은 날아오는 마나 볼트를 보고는 바닥에 오른손을 짚었다.

쿠구구!

그러자 아론의 앞에 바위로 이루어진 거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후웅!

녀석은 육중한 팔을 휘둘러 켄트가 날린 공격 마법을 막아냈다.

“어? 이 마법은…….”

켄트는 놀라워하며 말했다.

이전에 사막에서 보여주었던 거인보다는 확실히 작지만 그것과 비슷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힘들 텐데?’

이전에 아론이 설명할 때, 모래가 있거나 돌로 된 건물이 잘게 부서졌을 때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마나를 연결하기 쉽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 훈련장은 모래 같은 것이 없었다. 아론은 평평한 땅에서 대지를 변형 시켜 거인을 만들어 낸 거였다.

‘게다가 영창을 외지도, 술식을 따로 그리지도 않았어.’

켄트는 마법이 거의 즉시에 발동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면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빠르게 방어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켄트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아론에게 물어보았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는데, 이제 대지를 구성하는 마나가 느껴지기 시작했어.”

“하, 하하…….”

켄트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것도 느낄 수가 있다니.

그는 혹시 자신도 가능한가 싶어서 땅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그 어떤 마나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아론 님의 친화력은 얼마나 높길래 이게 가능한 거야?’

켄트는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퐁!

그때, 쿠브가 예고 없이 소환되었다.

“이제 아론도 느낄 수 있게 된 거야?”

“응. 그런 거 같아.”

“그럼 이제부터 우린 진짜 친구네!”

쿠브는 폴짝폴짝 뛰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론은 그런 쿠브에게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대지의 형태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니.’

아론은 생각했다.

아직은 조잡하고 엉성했지만 계속 훈련하고 숙달되다 보면은 전투에서 많은 도움을 줄 것 같았다.

“아론 님!”

그때였다.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훈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전에 머랭 영지의 수도원에서 구출해 낸 아이 중 한 명인 유진이었다.

“요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네!”

얼마 전부터 유진을 비롯한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견습 정보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고 들었었다.

특히 유진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셀린이 직접 특별 지도를 한다고 했었다.

‘이대로만 무럭무럭 자라다오.’

아론은 유진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어쩐 일로 온 거니?”

“셀린 님이 바쁘셔서 제가 대신 물건들을 전달하러 오게 되었어요!”

유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아론은 유진을 보내고 받은 물건들을 확인했다. 보고서 수십 장과 하나의 패가 있었다.

보고서에는 흑암도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동봉되어 있는 패. 이것은 흑암도로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입장권 같은 것이었다.

‘슬슬 출발해도 될 것 같은데?’

아직 6서클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불만이었지만, 아론은 새로이 대지의 마나를 활용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언제 러셀이 이끄는 테네브라가 자신에게 수작을 걸어올지 몰랐다.

그래서 아론은 한시라도 빨리 이번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 * *

아론은 보고서를 통해 흑암도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뒤에 곧바로 할로움을 떠났다.

배를 타기 위해서는 대륙 북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그동안에 별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아론은 무사히 북부의 큰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륙의 북쪽에 위치한 항구다 보니 날이 제법 쌀쌀했다.

이곳에서는 흑암도 말고도 여러 곳으로 갈 수 있는 요충지도 보니 사람들이 많았다.

아론은 그들을 지나쳐 탑승하는 장소로 갔다. 승선권은 셀린이 구해다 줬으므로 그냥 배에 타기만 하면 되었다.

‘4번, 4번…….’

아론은 배표에 적힌 4번 탑승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흑암도로 가는 배가 정박 중이었다.

배는 육중한 크기를 자랑했다. 아무래도 북해의 거친 파도를 견뎌야 하다 보니 크게 지을 수밖에 없다고 들었었다.

아론은 승선권을 직원에게 제시하고 배에 탑승했다.

‘가는 뱃삯만 해도 다른 목적지의 수십 배라고 했었지.’

아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꽤나 부담되는 액수로,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다면 감히 살 수 없는 정도였다.

그는 배에 탑승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저들도 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가는 거겠지?’

과연 무슨 목적으로 흑암도에 가는 걸지 궁금했다.

아론은 사람 구경은 그쯤하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승선권이 비싼 만큼 방은 1인 1실이었다.

내부는 호화스러운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굳이 잠깐 이용하는 이동 수단인데 이래도 되나 싶은 정도였다.

‘괜히 티켓값이 비싼 게 아니었군.’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편히 앉아 휴식을 취했다.

부우우-

잠시 후, 출항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배에도 마법이 적용되어 있나?’

이전에 콜로세움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탔었던 배보다 훨씬 안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몇 시간 정도가 지나고, 아론은 아무 일도 없이 배만 타고 있자니 심심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람이라도 쐴 겸 갑판으로 나왔다.

휘오오-

쌀쌀한 바닷바람이 아론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퐁!

그때, 쿠브도 몸이 근질거렸던 모양인지 예고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아론은 그런 쿠브를 말없이 관찰했다.

그가 대지의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된 이후로 쿠브에게 외양의 변화도 일어났다.

크기는 아직 작았지만 얼굴은 7살 정도 되는 미형의 소년이 되어 있었다.

톡.

쿠브는 아론의 어깨에 앉아서 같이 바람을 쐬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쿠브의 안색은 좋지 않게 변했다.

“왜 그래?”

“기분이 이상해.”

아론은 쿠브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바다 위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태초의 정령이긴 하지만 아직 미성숙하다 보니 물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들어갈래?”

“그치만 지루한걸.”

아론은 어깨 위에서 칭얼대는 쿠브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앗!”

그때였다. 쿠브가 소리쳤다.

동시에 쿠브와 연결되어 있는 아론에게도 그가 느끼던 감각이 전해졌다.

‘멀리서 뭔가가 다가온다.’

정체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초의 정령이 지닌 감각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쿠브의 경고는 항상 잘못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인가? 아니면 다른 배?’

아론은 다가오는 것의 정체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뭔지는 몰라도 가는 길을 막으면 쓰러트릴 수밖에 없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것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약 한 시간 뒤, 그 정체가 드러났다.

‘배?’

주위가 슬슬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었기에 아론은 그가 타고 있는 배의 조명에 의지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아…… 저게 흑암도의 정보가 적힌 보고서에 적혀 있었던 그건가 보군.’

이 배를 타고 흑암도를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흑암도에서 나온 배를 옮겨 타고 간다고 했었다.

아론은 그 배를 유심히 살폈다.

크기는 이쪽의 배와 비슷했지만,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배의 곳곳에는 이끼가 붙어 있었고 돛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오랫동안 물속에 가라앉았던 배를 방금 꺼내 올리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오오, 배가 왔다!”

사람들은 기괴한 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흥분했다.

그들이 저렇게 들뜨는 것도 아론은 이해가 갔다. 저 배만 타면 흑암도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왜 흑암도에 가고 싶어 하는가. 그곳은 대륙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즉, 흑암도에서 자체적으로 금지하는 것 말고는 다 해도 되는 곳이었다.

대륙에서는 당연하게 금지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 환각을 보이게 하는 약물, 과하게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것 등등. 이런 것을 하다가 들키면 무거운 형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의 천성이 각양각색이듯,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이 배에는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탑승해 있는 상태였다. 개중에는 돈 많은 사람도 있었고, 흑마법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도 있었다.

흑암도의 입장에서 그들은 주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들이 지닌 내면의 욕망을 실현하게 해주고 돈을 가져갔다.

그들에게는 중요한 손님이었기에 이렇게 안내선을 보내서 사람들을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쿵!

배를 넘어갈 수 있는 다리가 이곳에 연결되었다.

“다들 차례를 지켜서 천천히 넘어오시오!”

안내선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들뜬 표정을 지으며 안내선에 탑승했다. 아론 역시 그들의 행렬에 끼여서 올라탔다.

“모두 다 탔다! 다리를 내리고 출발해!”

그 외침과 함께 배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에 구멍이 저리 나 있는데 어떻게 가는 건가 했더니,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는 건가 보군.’

아론은 배를 감싸는 흑마력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이 배는 방금 탔던 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 난파선이라도 해도 믿을만한 외양을 빼고는 완벽한 배였다.

‘어쩌면 흑마법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아마 메도우드 왕국에서 이런 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 보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어찌어찌해서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극악의 효율로 차라리 원래 배를 운용하는 게 나은 결과를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흑암도에서 운영하는 이 배는 안내선으로 사용될 정도로 잘 운용하고 있었다.

‘궁금하네. 단순히 흑암도는 패퇴한 흑마법사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었는데, 은근히 기술이 있는 단체였잖아?’

아론은 비록 이들이 에드먼스나 아이젠의 세력과는 필적하지 못한다고 해도 중요한 무게추의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배를 타고 대략 한 시간 정도를 더 가니,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 앞에 거대한 검은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아론은 그걸 보자마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결계인가?’

에드먼스의 마법사들을 필두로 한 토벌대들이 결국 뚫지 못하고 돌아갔던 그 결계가 바로 저것인 모양이었다.

아론은 검은 안개 속에서 폭풍처럼 요동치는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걸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다면 아무리 큰 배라도 갈가리 찢기겠군.’

그만큼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아론이 탄 배가 접근하자 신기하게도 마나 폭풍은 잠잠해졌다.

철썩, 철썩.

오로지 바닷소리만이 들렸고, 배는 유유히 검은 안개 속을 항해했다.

잠시 후, 안개를 벗어나자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어두워서 보이지 않아야 했지만, 휘황찬란한 조명 때문에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드디어 흑암도다!”

배에 탄 사람들은 탄성을 흘리며 섬을 바라보았다.

중앙에 우뚝 솟아오른 칠흑의 탑은 이곳이 흑마법사들의 땅임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

“빨리빨리 갑시다!”

“얼른 내려!”

사람들은 각자 흑암도에서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빨리 배에 내리길 원했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멈추시오!”

거구의 두 남자가 그들을 막아 세웠다. 저들이 일종의 마지막 문지기인 모양이었다.

‘덩치가 장난이 아닌데?’

아론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덩치에 걸맞는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입장권을 확인하겠으니 다들 꺼내 주시오!”

그 말에 사람들은 주섬주섬 흑암도에 들어갈 권리를 입증하는 패를 꺼냈다.

“들어가도 좋소!”

문지기들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안으로 들여보냈다.

여기서 패가 없다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온 거라 생각해서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아론 역시 셀린이 준비해 준 패를 꺼냈다.

“들어가시오!”

아론도 허가를 받았고, 드디어 흑암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가 흑마법사들의 땅.’

불야성의 도시.

아론이 본격적으로 섬의 내부에 들어서면서 받은 인상을 말로 표현하자면 그랬다.

대도시의 웬만한 환락가도 이 정도로 성행하지는 않을 터였다.

거기다가 건물의 배치도 노린 모양인지 도박장, 경매장, 홍등가 등등은 가까운 거리에 모두 놓여 있었다.

“얼른 갑시다!”

방금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욕망을 이루기 위해 흩어졌다.

“여기 괜찮아요!”

흑암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잡기 위해 열띤 호객행위를 펼쳤다.

하지만 아론은 그 행렬에 끼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갔다.

아론이 도착한 곳은 흑암도의 관광 안내소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직원은 아론을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가이드를 좀 구하고 싶은데.”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돈을 건넸다. 역시 돈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직원은 그것을 받으며 밝은 표정으로 응대해주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불러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 달려왔다.

“아이고, 나리. 제 이름은 맥스라고 합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론은 이런 소년도 늦게까지 일하나 싶었지만, 바로 본제에 들어갔다.

“도박장으로 데려가 주게.”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맥스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섰고, 아론은 그를 따라갔다.

‘이곳의 마탑주의 관심을 끌려면 일단 마탑의 시선이 나에게 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에 적절한 곳이 바로 도박장이었다.

* * *

흑암도에 도박장은 여러 곳이 있었다. 그런데 아론이 굳이 안내소까지 들러서 소개를 받은 이유는 가장 판이 큰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도박은 대륙에서도 허용하는 유흥이었다. 하지만 너무 큰 금액의 베팅은 제한하는 등의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영주가 자기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를 판돈으로 내걸고 진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오는 사람이 많았다. 운이 좋아서 큰 판돈이 걸린 도박을 이기면 평생을 다 써도 넘치는 돈을 벌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맥스는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가는 길이 번화가라 그런지 확실히 시끄러웠다.

술에 취해서 땅에 드러누워 주정을 부리는 자도 있었고, 시비가 걸려서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맥스는 그런 녀석들을 요리조리 피해서 아론에게 길을 안내했다.

잠시 후, 아론은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나리. 이곳이 흑암도에서 제일 큰 도박장입니다.”

맥스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기본적인 도박장의 룰은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그 정도 정보는 셀린의 보고서에 적혀 있어서 이미 숙지한 상황이었다.

이곳은 일단 판돈의 제한이 없었다.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사람을 가지고도 판돈에 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정신 나간 부모는 자기 자식을 거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모든 속임수가 허용된다. 단, 들키지 않는 선에서였다. 들키면 참혹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아론은 도박장으로 오는 길에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없는 부랑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누구와 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박장에서 속임수를 쓰다 걸려 신체를 절단당한 것이었다.

“그럼 재밌게 즐기시길 바랍니다.”

맥스는 실실 웃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톡.

아론은 금화 하나를 꺼내서 녀석에게 튕겨서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리!”

아론에겐 푼돈이었지만 맥스에겐 큰돈인지라 매우 황송해하고 있었다.

“저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 놀고 나오시면 나머지 장소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요.”

아론은 그런 맥스를 뒤로하고 도박장 안으로 들어갔다.

‘지구의 카지노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때렸고, 코끝에는 독한 담배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수많은 테이블에서 돈을 걸고 도박이 펼쳐지고 있었으며, 사람들의 눈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아론은 천천히 안을 둘러보면서 적당한 테이블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소위 말하는 타짜가 있는 테이블이었다. 호구를 찾기 위해 물색하는 그들은 아론이 찾는 대상에 딱 맞았다. 그래야 자신이 돈을 펑펑 잃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자만심이 가득 찬 녀석을 고르는 게 좋았다. 그래야 돈을 잃어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

‘어디 그런 녀석 없나?’

아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상태창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테이블 중에는 【도박의 신】 특성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이런 녀석들에겐 아론의 수가 통하지 않았으니 깔끔하게 패스했다.

‘……저기는 좀 괜찮아 보이는데?’

아론의 발이 어느 테이블 앞에 멈췄다.

“흐흐, 이 돈은 내가 가져가지.”

방금 막 게임이 끝난 테이블이었다. 이긴 사람은 한껏 들떠서 경박한 말투로 돈을 챙겼다.

‘별로 큰 액수는 아닌 것 같은데, 되게 호들갑을 떠는군.’

아론은 그 사람의 그릇을 판단하며 동시에 상태창을 살폈다.

‘좋아. 도박의 신 특성은 없군.’

이 녀석의 이름은 버나인.

딱히 능력이 뛰어날 것 없는 사람이었다.

“계속해!”

돈을 잃은 사람은 버나인에게 씩씩거리며 다시 게임을 요청했다.

“얼마든지 환영이야.”

버나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게임을 재개했다.

아론은 그 테이블을 유심히 살폈다. 자신이 원하는 인간들이 딱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버나인은 몇 번 져 주다가 계속해서 이기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군.’

보아하니 주변에 상대의 패를 봐주는 조력자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하! 이걸 어쩌나?”

결국 버나인이 또 큰돈을 가져가고 말았다. 그를 상대하는 사람은 이제 돈을 모두 잃어버렸다.

“자, 자. 돈이 없으시면 나가야지.”

남자는 허망한 표정으로 테이블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론은 그 사람이 떠나자마자 불쑥 테이블에 끼어들었다.

“내가 앉아도 될까?”

그러자 버나인은 경계하는 눈빛을 띠었다. 하지만 이내 돈 좀 있을 것 같이 생긴 모습을 보고는 씩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 나리께서 오셨군.’

하지만 돈을 갈취하기에는 이만한 상대도 없었다.

“여기에 앉으시지요.”

버나인은 환영하면서 주위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 녀석만 털고 가자고.’

‘알겠어.’

그런 의미의 신호를 주고받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론을 상대했다.

“보아하니 이곳엔 오신지 얼마 안 되신 것 같은데…….”

버나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론에게 물었다.

“풍채에서부터 귀하게 자라셨다는 게 보입니다. 혹시 귀족이십니까?”

“그래 보이나?”

아론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이는 아론의 연기였다.

“내가 대륙에서 좀 나가는 백작가의 자제거든.”

“오오! 역시 그래 보이셨습니다.”

버나인의 맞장구에 아론은 으쓱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때 이 몸의 주인이 망나니였던지라 우쭐하는 연기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그럼 바로 본 게임에 들어가 볼까요?”

상대 파악을 끝낸 버나인이 테이블에 놓인 카드를 들어 올렸다.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이름은 하이햇이라 불리는 모양이었지만 실상 규칙이 한국의 섯다와 비슷했다. 패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으며, 그 조합의 높고 낮음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었다.

착착!

버나인은 카드를 섞은 뒤 테이블에 패를 두 장씩 돌렸다.

아론은 그때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자신을 제외한 주위의 시간이 점차 느려졌다.

‘허, 참.’

아론에게 패를 나누어 줄 때, 버나인은 손기술로 패를 바꿔치기했다.

아론은 패를 받아서 확인해 보았다. 각각 10이 적혀 있는 카드였다.

‘이야, 이래도 돼?’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만 웃음을 흘릴 뻔했다. 자신의 패를 이길 조합은 몇 개 있지 않았다.

전형적인 이들의 수법이었다. 초반에 좋은 패를 쥐어줘서 재미를 보게 만든 다음에, 판돈을 올린 뒤에는 자신들이 유리하게 게임을 조작할 생각이었다.

‘오히려 좋지.’

아론은 어울려 주기로 했다.

“콜.”

“저도 콜입니다.”

버나인과 작당한 사람들은 판돈을 올렸다.

잠시 후, 패를 공개했고 아론을 이기는 패는 없었다.

“어우. 패가 좀 세시네. 이게 초심자의 행운인 건가요?”

버나인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내 실력이라고.”

아론은 일부러 그들의 장단에 맞추어 대답하면서 돈을 가져갔다.

‘대어다, 아주 대어야.’

버나인은 동료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최대한 이 귀족 나리를 벗겨 먹자고 합을 맞췄다.

그렇게 몇 게임이 더 진행되었고, 매 판마다 그들은 아론에게 돈을 잃어주면서 도박의 마수에 빠지게 했다.

“돈을 좀 땄는데, 슬슬 일어날까?”

게임이 끝나고,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버나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만류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 딱 흐름이 오셨을 때 잡아야지요.”

“……그렇겠지?”

아론은 일부러 그들을 떠본 것이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슬슬 시작해 볼까?’

‘좋지.’

버나인은 이제 아론에게서 돈을 회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신호를 주었다.

착착!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고, 패가 각자에게 돌아갔다.

아론이 패를 확인할 때, 뒤에서 아티팩트의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 훔쳐보고 있군.’

바로 뒷테이블은 아니었다.

다른 테이블에 있는 버나인과 한 패인 녀석이 멀리서 시력을 강화하는 아티팩트로 아론의 패를 확인했다.

지금 아론이 받은 카드는 6 두 장이었다. 아마 자신의 패는 지금 버나인에게 정보가 들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콜입니다.”

“나도, 콜.”

판돈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이어서 버나인의 동료들이 차례대로 죽었다.

“둘만 남았네? 하지만 내 패를 이기기 힘들걸. 이번 판돈도 가져갈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놓여진 돈을 가져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제가 더 높은 거 같은데요?”

버나인은 자신의 패를 공개했다. 8 두 장이었다.

‘바꿔치기한 거, 다 봤는데.’

아론은 녀석들의 술수가 다 보였기 때문에 그저 우스웠다.

하지만 일부러 돈을 잃어 줘야 했기에 별말 하지 않았다.

“아이, 참! 운이 없었네.”

아론은 한숨을 푹 쉬며 아쉬워하는 얼굴을 연기했다.

‘흐흐. 그래. 계속 그렇게만 해다오.’

버나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다.

***

“아니, 대체 왜?”

아론은 계속해서 돈을 잃자 화가 났다, 는 상황을 연기했다.

그는 일부러 목소리를 격앙시키고 피부를 시뻘겋게 물들였다.

“안됐습니다. 이번 판도 제가 가져갑니다.”

버나인은 웃음을 흘리며 판돈을 챙겼다.

“나리. 돈이 다 떨어지신 것 같은데, 이만 끝내시죠?”

버나인은 호구를 벗겨 먹어서 만족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잠깐만! 지금은 돈이 없지만 빌려오면 그만이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돈만 더 많았어도 이겼을 거라고!”

그는 일부러 바보 연기를 했다.

“그래요? 여기 밖에 나가면 바로 앞에 전당포가 있는데, 다녀오실래요?”

“알려줘서 고맙군. 바로 갔다 오지.”

아론은 씩씩거리며 테이블을 떠났다.

“크하핫!”

버나인은 아론의 모습이 사라지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아론은 도박장을 나오며 품속에 있는 물건을 확인했다. 이전에 폴밴을 죽이고 챙긴 인공 미티움이었다.

‘이 정도면 여기 마탑의 관심을 끌 수 있겠지.’

아론은 다급한 표정을 연기하며 전당포에 들어갔다.

“이보시오! 돈을 좀 빌려주시오!”

“담보는 있습니까?”

그는 인공 미티움이 든 병을 건넸다.

“이걸 맡기겠다.”

전당포의 직원은 아론이 준 물건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직원은 이곳에서 오래 일하면서 물건의 가치를 감별하는 데는 도가 튼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물건은 본 적이 없었다.

‘이 물건. 안에 품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오래전에 레어 메탈을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 물질은 그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이건 내 깜냥에서 검증할 게 아니군. 일단 돈을 주고 마탑에 보고를 해야겠어.’

그래도 손님을 등쳐먹을 순 없었다. 직원은 물건을 받고는 아론에게 합당한 가치의 돈을 빌려주었다.

“고맙소. 내가 다시 받으러 올 테니 잘 보관해 주시오!”

아론은 전당포를 나갔다.

그러면서 마나로 귀를 강화해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했다.

[흑마법사님. 이상한 물질을 발견해서…….]

전당포의 직원은 곧장 도구를 이용해 마탑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좋아. 계획대로다.’

아론은 속으로 싱글벙글했다.

* * *

아론이 흑암도로 떠나기 전, 셀린이 그에게 방법을 물었었다.

“가시는 건 좋지만, 거기 마탑주하고는 어떻게 만나시려고요? 해주 술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만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그런 그녀의 물음에 아론은 인공 미티움을 꺼내 주었다.

“그걸로요?”

“네가 준 자료를 보고 확신했어. 흑암도의 마탑주는 흥미로운 것이 생기면 거기에 미친 듯이 몰두해서 연구한다는 걸 말이야.”

아론은 인공 미티움을 바라보았다. 아마 마탑주도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일 것이다. 아이젠이 뒤에서 비밀리에 연구하는 소재이니 말이다.

“마탑주가 인공 미티움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걸? 그래서 난 이걸 대가로 거래를 제안할 생각이다.”

“으음.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겠네요. 그 마탑주는 새로운 것에 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이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마탑주가 인공 미티움에 관심을 보일 것 같긴 하지만, 어떻게 이걸 보여줄지가 문제였다.

“하지만 마탑주가 아론 님이 대뜸 찾아간다고 환영해 주실까요? 에드먼스 가문이란 것도 숨기고 가면 입구에서부터 막힐 것 같은데요.”

셀린은 그 점이 걱정되어서 말했다. 마탑을 지키는 문지기가 인공 미티움의 가치를 알아볼 리는 없었다.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아론은 자신이 계획한 바를 셀린에게 말해주었다.

“흑암도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다 마탑이 관리하고 있어. 각 분야에는 마탑의 책임자들이 가 있거나 마탑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지.”

아론의 말대로였다.

무제한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흑암도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탑은 도박장, 홍등가, 약물 등을 제공했다.

당연히 대가 없이 그것을 주진 않았다. 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

이런 사업들은 필시 중독성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쾌락에 빠지고, 자연스레 돈을 탕진하게 된다.

그래서 흑암도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곳곳에 전당포를 설치해 두었다.

전당포에서는 돈을 다루다 보니 마탑의 책임자가 파견되거나 마탑과 긴밀한 연을 두고 있는 사람이 관리하고 있었다.

거기서 돈을 탕진한 사람을 연기하면서 인공 미티움을 주고 돈을 빌린다면 자연스럽게 마탑에 그것이 전달될 거라고 생각했다.

전당포의 관리자는 인공 미티움의 정확한 정체는 몰라도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아론은 그 점을 셀린에게 잘 설명해 주었고, 결국 셀린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론의 회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굳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치른 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술식을 얻기 위해서지, 섬을 뒤엎으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더 간단하게 하려면 그냥 힘으로 밀고 나가면 되겠지만, 자신은 이곳의 흑마법사들 전원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진 내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어.’

아론의 계획대로 인공 미티움의 존재가 마탑까지 흘러 들어가게 하는 것은 성공했다.

‘이제 잃은 돈을 회수하러 가볼까.’

아론은 전당포에서 받은 돈을 들고 다시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의 돈을 갈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녀석들에게 자신의 돈을 넘겨주기는 싫었기 때문이었다.

***

“오셨군요, 나리.”

버나인은 능글맞은 웃음을 띠면서 아론을 맞이했다.

“내 말대로 기다려 줬군. 도망가면 어쩌나 했어.”

“나리님 말씀을 어떻게 저희가 거역하겠습니까.”

버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의 손에 들린 주머니를 보았다.

전당포에 무언가를 맡기고 돈을 두둑하게 얻어 온 모양이었다.

“나리께서 말씀하신 대로 판돈도 빵빵해졌으니, 이제 수월하게 돈을 따시겠군요.”

그는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아론은 그런 버나인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자기의 능력에 취해서 호구를 물었다고 생각하는 녀석이 제일 이용하기에 좋은 대상이었다.

‘이제는 좀 다를 거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자, 다시 즐겨 봅시다.”

버나인이 카드를 집으려고 할 때, 아론이 손을 들었다.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내가 섞을게.”

“얼마든지요.”

아론의 요구에 버나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내가 카드를 섞는 걸 의심하는 건가?’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테이블 근처에는 아론의 패를 봐주는 동료들을 숨겨 뒀었다.

누가 카드를 섞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판을 이끌어 갈 자신이 있었다.

착착!

아론이 카드를 섞었다. 적당히 섞은 후에 순서대로 사람들에게 패를 나누어 주었다.

‘아직 내 패를 보는 시선은 없군.’

아론은 자신의 카드를 확인하기 전, 탐지 마법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 뒤에 조심스럽게 패를 확인했다.

‘2 두 장이군.’

그러고 나서 버나인의 패를 확인했다. 3과 6이었다. 어떤 조합에도 걸리는 게 없었으니 아론의 패와 붙으면 지게 된다.

아론은 나머지 사람들의 패도 확인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즉시 환영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패를 달리 보이게 했다. 두 카드를 각각 3과 10으로 바꾸었다.

때마침, 그때 버나인의 동료의 시선이 멀리서 느껴졌다. 그런 뒤에 아론의 패를 버나인에게 신호로 전달했다.

‘흥, 내가 이겼군.’

버나인은 테이블의 동료들에게 신호했다.

‘판돈 올리고 죽어라.’

그것을 확인한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카드도 확인했겠다, 베팅합시다.”

버나인의 말에 아론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레이즈. 좋은 게 나왔어.”

테이블에는 순간 정적이 일었다.

‘개 패인 걸 확인했는데, 레이즈를 한다고?’

버나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어떻게 저리 단순하게 블러핑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더 크게 받아치면서 판돈을 점점 올려갔다.

“콜.”

“저는 죽습니다.”

동료들은 버나인의 지시대로 아론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판돈을 키웠다.

결국 나중에 가서는 아론과 버나인 둘만이 남게 되었다.

‘끈질기네. 3과 10으로 여기까지 블러핑을 할 줄이야.’

아론의 패를 알고 있다고 착각 중인 버나인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첫판부터 너무 크게 벌리시는 건 아니신지요.”

“쫄려? 쫄리면 죽던가.”

아론은 일부러 버니언을 도발했다.

‘뭐?’

그러자 심기가 거슬렸던 버니안.

‘아주 싹싹 털어먹어야겠구만.’

그렇게 생각하고는 비열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올인합니다. 자신 있으면 따라오시죠.”

아론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다.

‘이렇게 단순하다니.’

차근차근 자신이 번 돈을 녀석에게서 회수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알아서 시간을 절약해주니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좋아. 나도 올인하겠다.”

두 사람은 패를 공개했다.

당연히 아론의 패가 더블 2로 높았으므로, 아론의 승리였다.

“어?”

버나인은 순간 당황했다.

“뭐, 뭔가 잘못됐어. 이럴 리가 없어.”

그는 혼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분명 3과 10이라고 보고를 받았는데 왜 까보니까 더블 2란 말인가?

“뭐가 이럴 리가 없다는 거야? 설마 내 패를 보기라도 한 건가?”

아론은 낮게 웃었다.

그러면서 테이블에 있는 다른 동료들을 슥 훑어보았다.

그들은 찔리기라도 한 것 마냥 아론의 시선을 피했다.

아론은 넋이 빠진 버나인을 무시한 채 판돈을 모두 모아서 챙겼다.

“괜히 나 뒤따라오면서 돈 털어가려고 수 쓰지 마라. 그러면 너희가 여태까지 쓴 속임수를 다 까발려버릴 테니까.”

아론은 그들에게 경고했다.

도박장은 속임수가 허용되었지만 들키는 순간 큰 대가가 따랐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버나인을 포함한 그의 동료들은 찍소리도 할 수 없었다. 목숨이나 신체의 일부를 잃으니 차라리 돈을 주는 것이 나은 판단이었다.

‘……당했구나.’

그제야 버나인은 자신이 먹잇감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론은 돈을 챙겨 도박장을 나섰다.

그는 전당포로 가지 않았다.

아론은 전당포의 고객이었으니 그가 돈을 땄다는 소식은 이미 그곳의 관리인에게도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일부러 가지 않는다면 인공 미티움을 맡긴 의미를 전당포의 관리인도 파악했을 거라고 여겼다.

***

결국 아론이 돈을 맡겼던 전당포의 주인은 마탑으로 소환되었다.

“어서 오게. 연락은 들었다.”

응접실에 마탑주가 들어왔다.

그는 전신에 검은색 로브를 두르고,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아이고,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전당포 주인은 깍듯하게 그에게 인사했다.

“흥미로운 것이 들어왔다는데, 그건 내가 참을 수 없지.”

“제가 보기에 심상치 않은 것이라 여겨 연락을 드렸습니다만……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당포 주인은 그렇게 말하며 혹시나 가져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경우를 대비했다.

“물건을 좀 보여줄 수 있겠나?”

“예.”

그는 조심스럽게 둘러싼 작은 병을 꺼내서 마탑주에게 주었다.

“이걸 맡긴 녀석이 돈을 다 회수했는데도 그냥 갔단 말이지?”

“예. 그 점이 수상합니다.”

원래라면 마탑주는 직접 움직일 예정이 없었다. 그러나 전당포에서의 추가 연락을 듣고 흥미가 생겨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

“재밌는 녀석이군.”

마탑주는 병을 열어서 물건을 이리저리 확인해 보았다.

‘레어 메탈 같이 생겼으면서도 그건 또 아니군. 레어 메탈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가 안에 들어 있다.’

마침 마탑주는 최근에 이와 비슷한 물질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샘플을 찾을 수가 없어서 비교 연구가 불가능했는데, 이렇게 또 다른 물건이 들어와 주니 반가웠다.

‘그렇지만 당돌한 녀석이로군.’

마탑주는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흑암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그 내막까지 자세히 알고 행동한 것이었다.

‘……의도야 뻔하지.’

이 물질을 빌미로 자신과 만남을 원하는 것일 터였다.

마탑주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요청은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왔다. 그는 해주에 있어서 가장 정통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을 거절했다. 흥미가 당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녀석은 달랐다.

참신하면서도 당돌하게 들어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걸 준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가?”

“예, 아직 그 도박장 근처에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건방진 녀석을 처리해 버리게.”

“알겠습니다.”

마탑주는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만나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전당포 주인은 마탑주의 명령을 확인하고는 건물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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