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문제의 수도원이 있는 머랭 영지는 아이젠 왕국에서 귀족에게 하사한 영지였다.
아론은 간단하게 떠날 준비를 하고는 곧장 머랭 영지로 향했다.
아무래도 아이젠 측의 영지이다 보니 아론은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라엘, 켄트가 아닌 셀린과 함께 움직였다.
아론 혼자면 몰라도 이번에는 같이 잠입해야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라엘과 켄트는 이번 일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셀린을 발탁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론 님께서 쓰시는 그 목걸이는 정말 감쪽같네요.”
“그렇지?”
“네. 유심히 살펴봐도 전혀 의태 했다는 티가 나지 않네요. 이게 있다면 정보 수집이 훨씬 쉽겠어요.”
”달라고 해도 못 준다. 드워프들이 선물로 준 거거든.“
아론의 매정한 그 말에 셀린은 속으로 아쉬워했다.
어느덧 둘은 한 언덕 위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물었지만 머랭 영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셀린은 안경 하나를 꺼내서 꼈다. 호크 아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였다.
”목걸이를 못 주신다고 하셨으니, 저도 이건 안 줄 거예요.“
셀린은 단순히 장난으로 꺼낸 말이었다.
”필요 없다. 나는 직접 마법을 쓰면 되니까.“
하지만 아론은 진지하게 말을 받아치고는 마법을 사용해 눈을 강화했다.
“이래서 마법사들은…….”
셀린은 한숨을 내쉬며 영지를 살펴보았다.
“수도원은 저기에 있네요.”
셀린이 가리킨 장소를 따라 아론도 눈동자를 굴렸다. 거기에는 수도원이 있었다.
“규모가 좀 크네.”
“수도원은 기도 말고도 이런저런 사업을 하니까요.”
그중에서 고아를 맡아서 키우는 보육 사업도 하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바하 교단이 이곳에서 키우는 아이의 수는 수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을 키우는 건물의 부지도 넓었다.
“실제로 와 보니까 좀 이상한데?”
“그렇죠? 누가 아이들 키우는 곳에 경비를 세우겠어요?”
두 사람이 말을 나눈 것처럼 수도원 내부에는 일정 간격으로 경비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괴한이 침입하더라도 경비 몇 명이서 충분히 제압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하 교단이 처음 보육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저렇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럼 중간에 뭔가 변화가 있었다는 말이군.”
“아마 침입을 시도한 게 들켜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느 수도원이 정보 길드의 병력을 막으려고 경비를 저렇게 깔아?”
아론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이렇게 이상한 점들이 계속해서 모이니 수도원 전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론의 감각에 뭔가 이상한 마나의 기류가 느껴졌다.
‘……착각인가?’
너무 희미해서 마나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아론은 자신의 착각이 아님을 깨달았다. 추측건대, 마나 흐름이 새어나가는 곳을 막은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마나 같았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런 사항을 못 느꼈겠지만, 아론 정도의 친화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수상한 곳이야.”
“동감입니다.”
외부에서의 관찰은 이 정도로 하기로 했다.
수도원의 내부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했다.
아무래도 침입을 해야 할 거 같은데, 경비가 삼엄해서 쉽지 않아 보였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경비들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합니다만, 안에 사람을 심는 건 어떨까요?”
“그건 안 돼. 안전하긴 하지만 너무 오래 걸려.”
아론은 곧바로 제안을 기각시켰다. 시간이 촉박한 문제에 몇 달이나 쏟아부을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또 어떤 희생자가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피해자는 아이들로 추측되었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희생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렇다면 정면 돌파밖에 없겠는데요?”
“근데 우리 둘뿐이야. 그게 미친 짓이라는 건 잘 알잖아?”
위험성이 너무 컸다.
만약 수도원 어딘가에 기간츠 같은 녀석을 보관하고 있으면 큰 문제가 된다.
맞닥뜨렸을 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럼 어쩐다…….’
아론이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쿠브에 대한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이전에 쿠브를 이용해서 뷰란트를 빼내려고 했었지.’
그때 지하에 굴을 파고 뷰란트만 안전하게 이동시킨 적이 있었다.
아론은 이번에도 그 방법을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기까지 땅굴을 파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저렇게 큰 수도원이라면 지하에 수로 역시 넓을 것 같았다.
“셀린. 저 수도원 밑에 수로는 있지?”
“네. 하지만 거기 입구에도 경비가 서고 있던걸요.”
“쓸데없는 곳까지 경비를 세우는 녀석들이군.”
아론은 혀를 찼다.
어차피 입구로 정정당당하게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수로의 중간쯤에 길을 뚫어서 들어갈 거야.”
“네?”
셀린은 아론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직접 보면 알 거야.”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다. 아직 셀린은 쿠브의 능력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론은 탐지 마법을 써서 적당하게 들어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가 좋겠군.”
밑에서 수로의 반응이 올라왔다.
아론은 쿠브를 불러 땅을 파게 했다.
쏘옥!
쿠브가 손을 갖다 대자마자 둥글게 땅이 파였다. 그에 따른 소음이나 마력의 방출도 없었다.
“이게 정령……?”
셀린은 감탄하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들어가자.”
두 사람은 수로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쿠브가 들어오면서 팠던 땅을 다시 복구 시켜 두었다.
이러면 아무도 수로 안에 사람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수도원 방향은 저쪽이지?”
“네.”
셀린의 손에는 머랭 영지의 주요 수로가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그녀는 그걸 토대로 아론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
수도원이 커서 그런지 아래에 있는 수로도 널찍했다. 악취가 나고 썩은 물이 흐른다는 점만 빼면 움직이기에 용이했다.
“위치상으로는 여기가 아이들을 키우는 건물이 있는 곳입니다.”
셀린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천장 위에 달린 배수로를 통해서 외부가 어떤지 간간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건 힘들어 보였다. 배수로 근처에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거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로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는 건 가능했다.
가끔씩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이 수도원의 실체가 어떤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뭐 애니까.’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사를 계속했다.
“쉿.”
셀린이 위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인기척이 있었다.
아론과 셀린은 최대한 조용하게 배수로 근처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다. 한 명은 갑옷을 입었고, 나머지 한 명은 로브를 입은 상태였다.
“실험이 거의 막바지야. 아마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걸세.”
기사의 목소리는 평범했다.
“서둘러 주게. 그것이 완성되면 바로 시설을 폐쇄할 것이네.”
반면, 로브를 쓴 마법사는 목소리를 변조한 것 마냥 이상했다. 말을 할 때마다 쇠를 긁는 소리가 났다.
“걱정 말라고. 나도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거든. 얼른 일 마치고 중앙으로 돌아갈 거야.”
기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맞소. 여기에 애 2명 정도 데려가도 괜찮겠는가?”
“그때처럼 한 번에 20명씩 빠지는 게 아니라면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소.”
“알겠구려. 껄껄.”
기사는 음흉하게 웃었다.
아론은 그 대화로 여기가 어떤 실험장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들어보니 갑옷을 입은 기사는 여기의 책임자였고, 로브를 입은 녀석은 실험을 맡은 모양이었다.
‘생체 골렘을 다루는 마법은 흑마법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녀석은 흑마법사인 걸까?’
로브를 입은 사내의 정체는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갑옷을 입은 남자는 특정이 가능할 것 같았다.
“셀린. 몇 년 이내에 변방으로 배치받은 아이젠의 귀족을 추려서 말해줄 수 있을까?”
아론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갑옷을 입은 남자가 일이 끝나면 중앙으로 돌아가겠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잠시만요.”
셀린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보 길드의 수장 정도 되면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을 외우고 다녔다.
“유력한 후보를 찾았습니다. 발슈타인 가의 폴밴 발슈타인입니다. 이자는 아이젠 국왕 10번째 후궁을 배출한 가문이고 폴밴은 후궁의 오빠이지요.”
셀린은 그에 대한 내력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지금은 왕실 내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난 상태인 것 같았다.
아론은 상황을 대강 파악했다.
여기는 중요한 시설임이 확실했다.
그렇다 보니 왕실에서 사람을 직접 파견해서 관리를 하되, 언제든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로 내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를 뽑았다. 그자가 바로 발슈타인이었다.
‘근데 좀 힘들겠는데?’
아론은 배수로에서 그의 힘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7서클 급의 힘을 가진 기사였다. 그리고 왕실의 사람인 만큼 대동할 수 있는 호위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폴벤 한 명이면 어찌해보겠다만…… 여럿이서 덤비는 건 힘들겠지.’
아론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원래라면 시설을 다 조사한 다음에 애들을 구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키고 있는 병력의 힘이 꽤 대단하다는 걸 알고도 그걸 감행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는 없었다.
‘상황을 좀 더 살펴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할 때.
아론은 셀린을 조용한 목소리로 불러서 멈추게 했다.
“잠깐만.”
누군가가 수로로 들어오는 것이 마나 반응에 감지되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 조만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셀린도 아론의 얼굴을 보고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녀도 침입자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아론은 수로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이 올 것 같다고 예상되는 장소마다 감지 마법을 설치해 뒀었다.
“설마 발각된 걸까요?”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단정하긴 일러.”
둘은 긴장했다.
수로는 넓긴 했지만 추격자가 있을 경우 따돌리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상대는 한 명이야.”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움직임이 조심스러웠다.
아론이 설치해 둔 감지 마법은 흔적이 없고 간편한 대신 상대가 어떤 실력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감지된 대상은 두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종잡을 수가 없군.”
움직임이 이상했다.
도저히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수로를 정찰하는 경비일 경우에는 저렇게 갈팡질팡하는 걸음을 보일 리 없었다.
그리고 침입자를 알아차린 경우에는 수로를 들쑤시면서 다니겠지.
하지만 수로에 있는 또 하나의 존재는 어떤 타입에도 속하지 않았다.
아론은 일부러 다가오는 대상 쪽으로 약하게 마나를 흘렸다.
하지만 반응은 묵묵부답이었다.
‘방금 건 초짜라도 알아차릴 수 있는 기운이었다.’
대상은 점점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아론은 셀린에게 눈짓했다.
먼저 가서 상황을 살피자고 의견을 전했다.
잠시 후, 감지 마법에 걸렸던 존재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어린아이였다.
복장을 보아하니 여기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것과 동일했다.
아이는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읍!”
다행히 셀린이 재빠르게 아이의 입을 막았다. 아이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 사람을 수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진정해.”
아론은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전혀 해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잠시 후. 아이의 떨림이 멎었다.
그제야 셀린도 막고 있던 아이의 입을 떼 주었다.
“혹시, 수도원 쪽 사람인가요?”
아이는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우리는 외부인이야.”
아론이 그렇게 대답하자 아이의 눈에서는 경계가 풀렸다.
‘……이 아이의 반응으로 보아 확실하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만큼 거짓말을 못 하는 존재는 없었다. 이런 반응을 보여준다는 건 수도원에서 뭔가 변을 당한 게 분명했다.
“나는 반스야. 이쪽 누나는 린이고.”
아론은 두 사람의 이름을 가명으로 소개하며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유진이라고 해요.”
“유진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한테 말해주겠니?”
아론이 부드럽게 물어보자 유진은 진정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갓난아기 때부터 수도원에 맡겨져서 자라게 되었어요.”
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두 분은 뭐 하시는 분인가요?”
아이는 다시 경계하는 눈빛을 띠었다.
‘도망치는 중이었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어린아이가 수로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잘하면 이 아이에게서 수도원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린 이곳 수도원을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야. 여기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제보가 들어왔거든.”
그 말에 유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론이 예상한 대로 큰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럼 당신들은 영지에서 나온 군인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으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어른이 들으면 되게 유치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 말에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경계심이 어느 정도 허물어진 것 같았다.
아론은 이 틈을 타서 아이에게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유진. 어쩌다가 이런 곳에 있게 되었니?”
“저는 도망치고 있었어요. 저를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어요. 제가 아니면…… 다른 아이들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유진은 도망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수로라고 생각해 여기로 뛰어들었다는 모양이었다.
“도망친다는 건 이 수도원으로부터 말이니?”
아론의 물음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다른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도망치고 있었구나.”
아론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10살이 채 될까 말까 한 아이인데도 생각하는 것이 비상했다.
그러나 수로로 도망친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곳의 출구에는 경비가 항상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 아이가 우리를 만난 건 천운일지도 모르겠군.’
만약 시기가 조금이라도 엇나갔었더라면 이 아이와는 만나지 못했고, 녀석은 경비에게 들켜 큰 봉변을 당했을지도 몰랐다.
“유진아. 우리가 묻는 거에 자세하게 대답해 줄 수 있겠니?”
“네.”
“그래, 그래. 착하구나. 네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수록 이곳에 대한 조사를 빨리 마치고 도와줄 수 있단다.”
아론은 뒷말을 덧붙이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러면 이곳의 아이들을 구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지.”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수로에는 샛길이 있었다.
여차하면 그쪽을 통해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을 유도할 수 있었다.
“지금 수도원에선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니?”
아론이 그렇게 물어보자 유진은 눈이 흔들렸다.
“유진아. 제대로 대답해야 한단다.”
아론의 말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네가 도망까지 치려고 하는 거니?”
“여기 수도원은…… 이상해요.”
유진은 두 사람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이곳을 나가거나 입양이 되어서 나갈 수 있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유복한 가정에 입양되기를 원해요. 하지만 저, 비밀을 알아 버렸어요.”
“비밀? 그게 뭔데?”
“입양이 된 아이들은 사실 다른 집으로 가는 게 아니었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는 걸 제가 봤어요.”
“정말이니?”
“네!”
아이는 강렬한 눈빛으로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피력했다.
“얼마 안 있어 또 2명이 입양된다고 해요. 걔네들도 분명 이상한 곳에 끌려갈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유진. 진정하렴.”
아론은 아이가 진정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린 너를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해.”
“뭐든 알려드릴게요!”
“그래. 혹시 폴밴 발슈타인이라는 사람을 아니?”
“네. 그 사람은 이곳의 책임자예요.”
유진은 폴밴에 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그자는 1년 전에 이 수도원에 부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자마자 아이들을 둘러보더니 대뜸 자신을 골라서 지금까지 시종으로 부려 먹었다고 말해주었다.
유진은 그게 화가 났던 모양인지 말을 하면서도 주먹을 꽉 쥐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폭행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유진이 입고 있는 옷 소매의 안쪽에는 멍도 얼핏 보이고 있었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해야 아이를 부려 먹고 때릴 수 있는 걸까?’
아론은 화가 났지만, 일단 유진으로부터 정보를 듣는 게 중요했기에 꾹 참았다.
“그 사람은 항상 무서운 아저씨 두 명이랑 같이 다녔었어요. 그런데 두 달 전부터 혼자서 이곳을 관리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혹시 로브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본 적이 있니?”
“네. 그 사람도 알아요.”
“그 녀석은 뭐 하는 사람이었니?”
“글쎄요…… 자세한 건 몰라요. 하지만 마법을 쓰는 건 본 적이 있어요.”
그는 고작해야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올 정도로 드문드문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딱히 무슨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을 덧붙였다.
‘마법사라.’
아론은 여차하면 전투를 벌여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브를 입은 녀석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보인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는 게 분명했다.
그럼 이곳의 전력은 폴밴이라는 7서클 급 기사 한 명만이 남게 된다.
그 녀석 혼자라면 아론이 어찌 상대하는 게 가능했다.
“유진아. 입양될 거라는 아이들이 간 곳은 정확히 어디였니?”
“그건…….”
“어떻게 하다가 아이들이 사라지는 걸 알게 된 거야?”
유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에게 좋지 않은 기억인 듯 보였다.
그래도 그는 용기를 내서 말하기 시작했다.
“폴밴의 심부름을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유진은 그날을 회상하며 설명했다.
“그날 입양되는 친구가 보이길래 마지막으로 인사하려고 그 애의 뒤를 몰래 따라갔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수도원의 별관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보통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필시 수도원의 정문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별관은 정문과 반대에 있는 곳이었다.
“저는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늦은 시간이 되도록 기다렸지만…….”
유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결말이야 듣지 않아도 뻔했다.
아론은 셀린을 쳐다봤다.
“별관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걸까?”
“아마 그럴 확률이 높을 겁니다.”
그렇다면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다.
수도원의 별관에 쳐들어가면 대략적인 일의 진상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물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게 인공 미티움을 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생체 골렘을 만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진상을 확인하고 나서 아이들을 빼내자고 생각했다.
‘수도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악랄한 짓을 하는 곳이었군.’
가끔 종교와 결탁해서 이상한 일을 벌이는 것은 지구에서도 종종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무사히 구출하고 나서 이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대륙에 폭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저는 친구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유진은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외쳤다.
“저는 힘이 없어서 도망쳤어요. 하지만 더 이상 이 일을 외면하고 싶지 않아요.”
아론은 그런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용기를 내준 덕분에 이렇게 우리를 만났잖니. 잘했어. 이 일은 우리가 해결해 줄게.”
아론은 유진을 다독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 * *
셀린은 아론에게 이곳을 지키는 경비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비들은 3서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무력이었다. 수도원에 무엇이 있다고 저 정도 실력을 지닌 사람들을 배치해 둔 걸까.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물론 일반적인 병사들보다 강했지만 아론에겐 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셀린도 6서클 마스터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일이 틀어져서 경비병들이 몰려온다고 해도 충분히 상대할만했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할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별관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무슨 일을 벌이는지 파악하는 거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의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거지.”
“하지만 별관은 파악한 정보가 거의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관은 나 혼자 가보겠다.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건 셀린 네가 맡아.”
“알겠습니다.”
“일이 다 끝나면 수로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아론은 그렇게 말해둔 뒤에 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경비병 녀석들하고 수도사들은 서로 얼굴을 알고 있니?”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웬만해선 서로 말도 거의 안 섞어요. 수도사님들은 외부에서 온 경비병을 싫어하시거든요.”
그 말을 들은 아론은 생각했다.
‘그러면 수도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경비병의 눈을 속일 수 있겠군.’
언제까지고 수로에서만 이동할 순 없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도사로 위장하는 것이 수월했다.
“아론 님. 저도 돕게 해주세요.”
아론이 슬슬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유진이 그의 망토를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너는 가만히 있어 주면 돼.”
유진의 생각은 기특했지만 같이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이 아이는 아직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었다.
“제가 사제님들의 시선을 돌릴 순 있어요. 그리고 별관의 열쇠가 있는 곳도 알고 있어요.”
유진이 완강하게 요구하자 아론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같이 싸우는 건 힘들어도 위험하지 않는 일을 대신해주는 건 괜찮을 것 같았다. 이 수도원에 대한 건 그래도 아론보다 유진이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말이다.
자신이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유진이 도와준다면 소란이 일어날 확률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건 저예요. 그러니까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네가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론은 결국 유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이걸 꼭 들고 있으렴. 여기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내가 알 수 있단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버튼을 두 번 눌러줘.”
아론이 망토 속에서 꺼낸 건 드워프들이 사용하던 신호용 아티팩트였다.
이걸 가진 사람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고, 만약에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아론이 대처해 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유진은 아론이 건네준 아티팩트를 받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것도 있었어요?”
“응. 내가 만든 건 아니고. 드워프들이 쓰길래 몇 개 달라고 했어.”
“대단하네요. 드워프의 기술력은.”
셀린은 조그마한 아티팩트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슬슬 움직이자고.”
“네.”
아론을 포함한 세 사람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이동했다.
***
수로에서 바깥으로 나온 유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쯤에 계실 텐데…….’
이내 유진은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수도사 두 명을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해내야 해.’
짝.
유진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 뒤에 수도사를 향해 달려갔다.
“수도사님! 수도사님!”
최대한 숨을 헐떡이면서 다급한 상황을 연출했다.
수도사는 놀라서 유진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니?”
“저쪽에 휴트가 쓰러져 있어요! 저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유진은 울먹거리는 연기를 하며 수도사들에게 호소했다.
그들은 유진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휴트는 곧 입양이 예정되어 있는 아이였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어디에 있니?”
“저를 따라와 주세요!”
유진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앞장섰다. 수도사 둘은 의심하지 않고 유진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배수로 쪽으로 그들을 이끄는 데 성공했다.
탁! 타악!
묵직한 타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도사 두 명은 영문도 모른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정체는 아론과 셀린이었다.
“잘했어, 유진.”
아론은 그렇게 말한 뒤 셀린과 함께 수도사를 조심스럽게 수로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런 뒤에 그들의 옷을 챙겼다. 두 사람은 수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때. 수도사처럼 보여?”
“나쁘진 않네요.”
아론의 물음에 셀린이 대답했다.
“변장을 했지만 최대한 다른 수도사들과 접촉은 피해야 해. 혹시나 얼굴을 외우고 있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유진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폴밴의 시중을 들러 가야 해요.”
“그래. 무리하지는 말렴.”
아론은 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뒤에 보내주었다.
“그럼 저도 아이들이 있는 숙소로 가보겠습니다.”
“혹시 유진이 위험에 빠진다면 난 그쪽으로 갈 거야. 그렇게 된다면 네가 별관 조사를 이어서 해줬으면 해.”
“그렇게 할게요.”
둘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셀린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아론은 별관으로 이동했다.
가는 도중에 여러 경비병들과 수도사들을 만났지만, 아론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변장이 정답이었군.’
아론은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확실히 무언가가 있다.’
아론은 별관에 가까워질수록 수로에서 미미하게 감지했던 기이한 마나 흐름이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생체 골렘에게서 풍기던 기운도 살짝 있는 거 같아.’
잠시 후 아론은 별관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수도사는 물론 경비병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어서 그런가.’
아론은 별관의 외부를 둘러보았다. 잠겨 있는 문 말고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창문조차 만들어 놓지 않았다.
‘대놓고 수상하게 만들어 놨네.’
아론은 별관의 유일한 문에 다가가 여는 것을 시도했다. 당연하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열쇠로 열 수 있지만, 내부에 마법으로 처리가 되어 있다.’
만약 억지로 부숴서 열 경우엔 경보장치가 발동하게 되어 있었다.
‘유진이 없었으면 진을 좀 뺄 뻔했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들었다.
유진의 몸에 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폴밴은 아이에게도 서슴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놈이었다.
아론은 유진에게 부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
유진은 폴밴에게 줄 식사를 받아서 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수도원에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술도 식사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 왔느냐?”
유진이 방에 들어서자 폴밴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폴밴은 기사답게 탄탄한 체격을 자랑했다. 흐트러진 머리는 붉게 물든 그의 볼과 비슷한 적갈색이었다. 이미 식사를 하기 전부터 술을 좀 마신 모양이었다.
유진은 원래 폴밴을 싫어했지만, 술에 취한 그는 더욱 싫었다.
특히 요즘은 술을 마시는 횟수가 더욱 늘어났는데, 그의 입에서 매번 똑같은 말만 나오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내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해?’
매번 그가 욕지거리를 하는 대상은 유진의 여동생이었다. 유진이 있는데도 그는 서슴없이 목을 따 버린다느니 하는 상스러운 말을 늘어놓았었다.
유진은 그런 그를 무시하고 테이블에 식사를 올려두었다.
키가 작아서 음식을 올리는 것이 위태위태했지만, 폴밴은 그것을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저는 집무실을 청소하러 갈게요.”
유진은 폴밴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여기까진 늘상 해오던 순서라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평소와는 달리 이번에는 불순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낼 거야. 더 이상 다른 친구들이 알 수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유진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이.”
유진이 집무실로 가려고 할 때, 폴밴이 그를 불러 세웠다.
“……네?”
유진은 폴밴이 갑자기 말을 걸어 놀랬다. 그래도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리즈하고 앤이 얼마 전에 입양이 되었었지.”
그는 발음을 꼬부라트리며 말을 꺼냈다. 취기가 적잖이 오른 모양이었다.
“너랑 친했던 걸로 아는데, 보고 싶지 않느냐?”
며칠 전에 유진은 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좋은 보호자들에게 갔을 거라 생각하니 괜찮아요.”
“암, 그렇고말고. 우리 수도원에서 아이를 데려가시는 분들은 다 좋은 분들이지.”
폴밴은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런 웃음을 보이니 더욱 꼴이 기괴했다.
“너도 여기서 생활하는 것보단 새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 않느냐?”
유진은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는 폴밴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전 여기서 다른 친구들이랑 지내는 게 더 좋아요.”
“흐흐. 그래? 수도원 생활이 마음에 든다니, 별 난 녀석이구나. 하지만 너도 조만간 입양이 될 것이다.”
그 말에 유진은 섬뜩함을 느꼈다. 곧 자신이 입양될 차례라니.
만약 오늘 아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꼼짝없이 알 수 없는 곳에 끌려갔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유진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폴밴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가요? 새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지 궁금하네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좋은 분들이니 말이다.”
그 말에 유진은 더욱 불안해졌다. 폴밴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는 게 되레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럼 저는 청소하러 가볼게요.”
유진은 얼른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잠깐만.”
하지만 폴밴은 놓아주지 않았다.
“바지 밑단에 물 자국이 있구나.”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진을 바라보았다.
술에 취하긴 했지만 그도 실력 있는 기사였다. 그 정도 변화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디 갔다 온 거냐?”
유진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꼈다. 그는 소매 속에 숨겨 두었던 신호용 아티팩트를 수차례 눌렀다.
“왜 대답하지 않는 거지?”
폴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은 겁에 질려서 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폴밴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어느새 유진이 도망치려던 문 앞에 서 있었다.
“물 자국에서 썩은 내가 나는구나. 수도원에서 그런 곳은 지하 수로밖에 없지.”
탁. 탁.
그는 어느새 챙긴 몽둥이로 자신의 손바닥을 두드렸다.
“거긴 왜 간 거냐?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면 혼날 줄 알거라.”
폴밴의 말에 유진은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뭔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갔던 거구나?”
폴밴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몽둥이를 휘두르려고 했다.
“히익!”
유진은 몸을 웅크리고는 눈을 꼭 감았다.
콰앙!
그때였다. 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대비하지 못한 폴밴은 멀리 튕겨 나갔다. 유진의 앞에는 어느새 돌벽이 세워져 있어서 충격을 막아주고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아론은 유진이 무사한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 * *
유진은 갑작스러운 아론의 등장에 무서우면서도 깜짝 놀랐다.
신호용 아티팩트를 누르면 아론에게 정보가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도와주러 올 줄은 몰랐다.
“……죄송합니다.”
유진은 아론에게 사과했다. 자기 때문에 일이 어그러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아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벽으로 튕겨 나간 폴벤을 바라봤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날 거라는 건 감수하고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해결하자고 생각했다.
타악.
폴벤이 잔해를 치우며 몸을 일으켰다.
‘웬 놈이지?’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자 술기운은 확 날아가 버렸다.
‘얼마 전에 웬 쥐새끼들이 수도원에 어슬렁거리길래 잡아 족치고 경비를 늘렸는데 말이야.’
현재 수도원은 바깥사람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혹시 몰라서 수로의 입구에도 병력을 세워뒀었다.
그런데 어떻게 외부인이 여기에 들어왔단 말인가.
‘유진, 네 이놈……!’
저 자식밖에 없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수로의 문은 경비가 있었지만 수도원 안에 위치한 곳곳의 수로에는 병력이 없었다. 애초에 침입을 막기 위해 경비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유진이 그 허점을 노리고 사람을 데려온 거라고 폴벤은 생각했다.
“네 녀석이 쥐구멍이라도 찾은 모양이구나.”
폴벤은 유진을 바라보며 섬뜩하게 웃음을 흘렸다.
“누군진 모르겠다만, 죽고 싶어서 온 거라면 잘 찾아왔다.”
스릉!
폴벤은 검을 빼 들었다.
쿠구구……!
그러고는 순식간에 오러를 끌어 올렸다.
‘저 녀석, 오러가…….’
아론은 폴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러를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러가 띠는 빛이 검푸른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구에서는 물론이고, 여기서도 본 적이 없는 오러의 형태다.’
아론은 그 점을 조심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녀석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상태창】
· 이름 : 폴밴 발슈타인
· 스테이터스
체력 168 마력 94
근력 152 민첩 71
지력 52 친화력 101
수로 밑에서 기운을 느꼈을 때도 7서클 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능력치를 보니 맞았다.
젠슨에게는 못 미치는 수치였지만 실력자인 건 확실했다.
예전의 아론이었다면 제대로 맞붙지도 못하는 상대였다.
실제로 젠슨과 싸웠을 때도 포드가 준 아티팩트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페리움에서 부단한 수련의 결과, 아론은 한 번의 벽을 넘은 상태였다.
그때 세웠던 목표가 아이젠의 기사와 붙었을 때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잘하면 온전히 내 실력으로 이길 수 있어.’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 전투에 임하기로 했다.
고오오……!
아론도 마나를 끌어올렸다.
“네가 이 수도원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들어야겠다.”
“하, 애송이 녀석이. 네가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저승길 선물로 알려주마.”
폴밴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검을 쥔 손을 안쪽으로 당기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허공에 찔렀다.
주위에서 본다면 무슨 짓을 하는가 싶을 장면이었다. 하지만 아론은 녀석의 칼끝이 쏘아지는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끼고는 실드를 여러 겹으로 전개했다.
콰카칵!
실드가 공격을 맞고는 산산조각이 났다. 녀석이 날린 것의 정체는 좁고 날카로운 오러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벌집이 되었겠는걸.’
아론은 한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실력은 올라갔지만, 여전히 기사와의 전투는 껄끄러웠다.
“눈치는 좀 빠른 녀석이군.”
폴밴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론은 대꾸하지 않고 반격하려고 했다.
타다닥!
하지만 폴밴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몸은 아론이 아닌 유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자존심도 없는 녀석이구나!’
의뭉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녀석에게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밴도 아이젠의 기사였다. 전투 대상도 아닌 아이를 공격하는 건 그들이 자랑하는 기사도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파지직!
아론은 곧장 전격 마법을 날렸다. 동시에 유진의 앞에 실드를 캐스팅했다.
채앵!
폴밴의 검을 막은 실드는 곧바로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아론이 날린 마법 덕분에 그는 추가 공격을 하지 못했다.
쐐액!
폴밴은 검에 오러를 실어 날아오는 번개에 휘둘렀다.
파지지직!
그러자 번개가 여러 갈래로 복도에 튕겨 나갔다.
콰앙!
사방으로 퍼져나간 뇌전은 복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쿠웅!
복도의 한쪽 얇은 벽면이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전투에서는 주변이 박살 나는 게 늘상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론은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시체……?’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어린아이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표정을 통해 고통을 겪다 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몸에는 정체 모를 기다란 호스가 꽂혀 있었다.
유진도 부서진 벽면을 보고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이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얼마 전에 사라진 리즈와 앤 역시 그 안에 있었다.
“저런. 폐기소를 부숴 버리면 어떻게 하니?”
“폐기소라고?”
아론은 폴밴의 입에서 나온 천박한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때, 유진아. 입양된 아이들은 다 좋은 부모를 만났지?”
“히이익!”
유진은 충격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크하하하!”
폴밴은 그 반응에 만족한 모양인지 큰 소리로 웃어댔다.
아론은 말없이 폴벤을 바라보았다. 그의 주변에 있는 마나는 움직임을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마치 폭풍전야를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충격을 먹어서 말을 잃었나?”
폴밴은 다시 검을 굳게 쥐며 말했다.
“너도 곧 저 신세가 될 거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쓰레기.”
쿠오오-!
방금까지 조용했던 아론의 주변으로 마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수도복의 아래에 가려서 펜던트가 보이지 않았지만, 거기서 환하게 빛을 내뿜는 중이었다.
아론의 모습을 본 폴벤의 얼굴에선 여유가 사라졌다.
‘뭐지?’
분명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 5서클 정도라고 판단했고 그게 맞았었다.
하지만 지금 아론의 주위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마나의 기운으로 보아 녀석은 7서클이 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피부로 느껴졌다.
화륵! 화륵! 화륵!
아론은 방대한 마나를 바탕으로 허공에 불덩어리를 세 개 띄웠다. 그것은 수백 개의 작은 구체로 쪼개지더니 이내 폴밴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불덩어리들은 하나하나가 닿으면 살을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불꽃의 비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휘익!
폴밴은 검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염을 쳐냈다. 그러나 그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머지 구체들은 온전히 오러 아머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화르르륵!
폴밴의 근처에 닿은 불꽃들은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며 오러 아머를 두들겼다.
아론이 쏘아낸 마나의 양이 차원이 달랐기에, 오러 아머는 순식간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펜던트의 힘을 빌어 쓴 마법이었기에 단순 화력 7서클을 능가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제길. 이렇게 막고만 있다가는 끝이 없겠어.’
폴밴은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은 실내였다.
자연스레 벌릴 수 있는 최대 거리는 한정되어 있었고, 이는 폴밴에게 유리한 환경이었다.
‘차라리 거리를 확 줄여 버리는 거야.’
마법사와 기사의 전투에서 거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마법사에게 그 간격은 생명과도 같았다.
벌어진 거리를 좁히기만 한다면 마법사를 무능력하게 만드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사보다 빠른 마법사는 없다. 그게 통설이었으니 말이다.
폴밴은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취하기로 했다.
타앗!
폴밴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아론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화르륵!
오러가 분산되니 불덩어리들이 폴밴의 몸 여기저기에 피해를 주었다.
그는 그것을 꾹 참았다. 어차피 다가가서 칼질 한 번이면 이 비리비리한 마법사는 끝장이었다.
쉬익!
폴밴이 칼을 휘두른 순간. 분명 자신의 앞에 있었던 아론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때, 폴밴은 자신의 뒤에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아론은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 어느새 그의 뒤로 가 있었다. 마법의 준비도 이미 끝낸 상태였다.
탁.
아론의 손이 폴밴의 오른쪽 어깨를 만졌다. 그 손에서 어마어마한 한기가 느껴졌다.
아론이 시전한 마법은 터치 오브 프로스트. 손에 닿은 부분부터 얼어붙는 범위가 오염되듯이 늘어나는 마법이었다.
폴밴의 어깨는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는 놀라서 앞으로 몸을 굴러 아론과 거리를 벌렸다.
‘제길……!’
거리를 좁힌다는 게 오히려 악수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아론이 보인 움직임은 자신보다 빨랐다.
그보다 지금 얼어붙고 있는 어깨가 문제였다. 폴밴은 오러를 오른쪽 어깨 쪽으로 집중해서 보냈다.
기사에게 어깨는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검을 휘두르지 못하면 죽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폴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근처로 알 수 없는 장벽이 처진 것마냥 오러가 진입할 수 없었다.
‘이건 대체……!’
아론의 마나가 자신의 오러보다 격이 다르게 강하다는 의미였다.
“으윽!”
폴밴의 어깨는 실시간으로 얼어붙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팔을 영원히 못 쓰게 될지도 몰랐다.
‘젠장할!’
더 최악인 건, 아론이 그 사실을 알고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지?’
폴밴은 긴급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내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아직 실험 단계라서 쓰기 꺼려지지만…… 죽는 것보다야 낫다!’
폴밴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퍼억!
아론의 마법이 날아와 폴밴을 강타했다.
쿠당탕!
그는 바닥을 볼썽사납게 굴렀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참아내고 품속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냈다.
안에 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였다. 폴밴은 그것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 * *
한편 셀린은 무사히 아이들이 거주하는 숙소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곧장 아이들을 가까운 수로로 인도했다.
다행히 유진이 행동력 좋은 몇몇 아이들에게 자신이 사람을 불러올 거라고 말을 해둔 모양이었다.
처음 셀린이 왔을 때 그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유진이 보낸 사람이란 걸 알아차리자 말을 따라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도와준 덕분에 대피시키는 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셀린은 마지막 아이들의 행렬을 보고 손짓했다.
퍼엉!
그때, 수도원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꺄악!”
몇몇 아이들이 큰 소리에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셀린은 아차 싶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재촉해 보내고는 조용히 길모퉁이에서 기다렸다.
‘저쪽에 경비병이 몇 명 있었어.’
이내 비명을 듣고 오는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수는 두 명이었다.
셀린은 심호흡을 하고, 두 사람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탁! 탁!
재빠른 속도로 기절시켰다.
그런 뒤에 경비들을 보이지 않는 구석에 몰아넣은 다음 나머지 아이들을 수로로 인도했다.
“여기에 조용히 숨어 있으렴. 다른 애들도 잘 챙겨주고. 이제 유진이를 구해올 테니까.”
“네!”
리더격인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고 셀린은 수로를 빠져나왔다. 아론과 약속한 대로 그녀는 인원이 빈 별관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별관에 도착한 셀린.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발음에 시선이 끌린 모양인지 이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문은 여기뿐이구나.’
셀린은 별관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특수한 장치가 되어 있어서 열쇠가 없다면 들어갈 수 없었다.
셀린은 몇 가지 도구를 꺼내 잠금장치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타닥, 탁.
내재되어 있는 아티팩트가 전류를 흘려보내며 방해했지만, 셀린은 굴하지 않았다. 좀도둑이면 몰라도, 자신은 6서클 급의 실력을 가졌기에 이 정도는 통증 축에도 낄 수 없었다.
쿵! 쿠웅!
저 멀리 아론이 있는 곳에서 산발적으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
동시에 그녀는 갑작스럽게 커지는 기운 하나를 느꼈다. 이렇게 꺼림칙한 기운은 아론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론 님, 괜찮으실까?’
폴밴도 녹녹한 상대는 아니었다. 잘못하면 아론이 질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자신이 합류하면 이길 가능성은 훨씬 올라간다.
그래서 고민이었다. 이곳 별관을 포기하고 아론에게 갈지, 아니면 해체 작업을 계속할지.
‘아니야. 아론 님을 믿자.’
그녀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다시 생각하며 작업을 재개했다.
그 과정은 복잡하고 큰 소리도 몇 번 났지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전투 소리 때문에 대부분이 가려졌다.
잠시 후, 셀린은 무사히 별관의 문을 따낼 수 있었다.
끼이익-
굳게 닫힌 문을 열자 굽굽한 공기와 함께 횃불이 벽에 늘어져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꺼림칙한 기운도 안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아까 전에 폴밴의 기운과 비슷한 거 같은데.’
밖에서 생각해봤자 얻는 건 없었다. 셀린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
“크엑, 크헥!”
폴밴은 정체를 모를 액체를 단숨에 마시더니 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동시에 녀석의 주위에 있던 마나가 무서운 기세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아론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폴밴을 향해 가차 없이 공격 마법을 날렸다.
촤학!
그러나 마법은 폴밴의 몸에서 흘러나온 오러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어떻게?’
오러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의사가 있어야 움직였다. 하지만 저렇게 괴로워하는 상태에선 오러를 운용하기 쉽지 않았다.
“으어…… 으허억!”
그와중에도 폴밴은 숨넘어갈 듯이 비명을 질렀다.
‘대체 뭘 마신 거야?’
보아하니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비약류인건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저렇게 고통도 주는 건지는 몰랐다.
‘7서클 급의 기사를 미치게 만드는 약이라니.’
대체 어느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촤학! 촤학!
아론이 계속해서 마법을 날렸지만 오러가 날뛰면서 그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이윽고 폴밴은 몸부림을 멈추었고,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주변에서 요동치던 마나도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폴밴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 거지?’
아론은 그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달라진 마력 수치가 눈에 띄었다.
【마력 181(87↑)】
마력이 거의 두 배나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추가된 상태도 보였다.
상태 : 【광폭화】
‘광폭화라고?’
아론은 의아함을 느꼈다.
당연히 알 수 없는 액체를 들이켰기에 약물 복용인 줄 알았다.
오래전에 케빈과 대련할 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론은 폴밴의 다음 행동을 예의주시하기로 했다.
“크흐흐흣!”
폴밴은 아론을 바라보며 웃었다. 녀석의 웃음소리는 한층 더 기괴해져 있었다.
“내가 이 수도원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팔을 활짝 벌렸다.
“봐라! 이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지.”
쿠구구……!
그의 몸에서 새까만 오러가 흘러나오며 주위의 마나를 집어삼켰다. 오러는 점점 흘러넘쳐 지면을 침식시키기 시작했다.
때마침 폭발음을 듣고 온 경비병들이 실내로 진입했다.
“저, 저게 뭐야!”
그들은 기겁했다. 오자마자 본 모습이 폴밴이 뿜어내는 기괴한 오러였다.
“폴밴 님……?”
경비병들은 음산한 그 기운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래도 몇몇 경비병은 사명을 다하겠다는 심정으로 천천히 접근을 시도했다.
츠츠츳!
“으아악!”
하지만 근처에 온 경비병은 검은 오러에 의해 잡아 먹히고 말았다. 이내 그는 피골이 상접한 미라가 되고 말았다.
“으헉!”
경비병들은 결국 접근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론은 그 광경을 보고 생각했다.
‘녀석이 약을 먹는 틈에 유진을 대피시켜서 다행이야.’
그는 마법을 사용해서 유진을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두었다.
보아하니 침식하는 오러를 버텨내지 못하면 저 경비병처럼 되는 모양이었다.
아론은 폴밴을 향해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촤학!
역시 이번에도 검은 오러가 아론의 마법을 쳐냈다.
“이거…… 효과 죽여주는데?”
폴밴은 공격이 안중에도 없는 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아론은 다시 화염구를 만들어서 녀석에게 날렸다.
촤학!
아론은 녀석의 기운에서 느껴지는 이 기시감을 얼핏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생체 골렘이 된 거냐?”
이전에 콜로세움 축제에서 맞붙었던 기간츠가 떠올랐다. 그때 마법이 막혔을 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흐흐. 네놈도 이 몸의 재료로 써주마.”
콰악!
폴밴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강하게 바닥을 밟았던지 금이 가 있었다.
순식간에 아론에게 접근한 폴밴.
그의 시야는 녀석을 놓쳤지만, 저 기분 나쁜 오러 덕분에 폴밴의 공격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왼쪽 옆구리다!’
아론은 공격을 막기 위해 좁은 배리어를 몇 겹으로 발현시켰다.
콰카카칵!
폴밴의 오러가 배리어를 두들겼다. 아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슬쩍 뒤로 뺐다.
‘무식하게 들어와 주면, 나야 고맙지!’
아론은 동시에 그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녀석이 괴롭게 바닥을 뒹굴 때, 에드먼스 호흡법을 충분히 쌓아 두었었다.
콰르르릉!
아론의 손에서 라이트닝 마법이 전력으로 전개되었다. 어찌나 위력이 셌던지 번개가 폴밴 뿐만 아니라 주위마저 집어삼킬 정도였다.
예상대로 폴밴의 오러가 마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거리를 벌렸다.
녀석의 안면은 원래 모습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새까맣게 탔다.
“흐흐, 재밌구나!”
하지만 녀석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지 웃고 있었다.
아론은 계속해서 마법을 시전했다. 녀석의 어깨를 노리고 아이스 블루밍을 시전했다.
퍼엉!
얼음이 있는 곳을 폭발시키는 마법이었다.
동시에 녀석의 어깨에 아직 남아 있는 동상 부위에 얼음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저 꽃은 일정 크기가 되면 터지도록 되어 있었다.
쏘옥!
하지만 폴밴은 미련 없이 자신의 오른손을 뽑아 버렸다. 그 과감함에 아론은 기가 찼다.
‘정말 생체 골렘이 되었군.’
아무래도 녀석이 마신 약물에 그런 효능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폴밴은 남아 있는 왼손으로 검을 들고는 아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쉬익!
폴밴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검은 오러가 넘실거렸다. 아론은 그 공격을 배리어로 막으려 했다.
콰칵!
순식간에 배리어가 깨졌다. 아론은 급하게 다시 새 배리어를 시전했다.
동시에 아론은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타다닥!
그러나 폴밴 역시 순식간에 아론을 따라와서 검을 휘둘렀다.
아론은 방어를 하면서도 틈이 보이면 녀석에게 공격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폴밴의 방어력과 고통을 모르는 몸뚱아리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다.
“끄으으……!”
녀석은 이제 기간츠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다.
이성도 날아간 모양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보였던 정석적인 검술은 온데간데없었고,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공방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론에게 불리했다.
저 녀석은 생체 골렘이라 마나를 빨아들이는 한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론은 아니었다.
‘아직 도박수이긴 하지만…… 망토를 이용해 봐야겠어.’
아론은 녀석에게 효과적인 피해를 입히려면 역으로 폴밴의 공격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움직임을 막을 필요가 있어.’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타다다닥!
폴밴은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성난 황소처럼 검을 치켜든 채 돌격하고 있었다.
푸욱!
폴밴의 검이 짓쳐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아론의 몸을 꿰뚫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찔렀는데 아론의 몸에선 피 하나 나오지 않았고, 등 뒤로 검이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촤라라락!
아론은 녀석을 상대로 어스 바인드를 시전했다. 수많은 마나 줄기들이 폴밴의 몸을 옭아맸다.
이윽고 아론의 망토에서 폴밴의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칼끝이 향하는 곳은 폴밴의 몸이었다.
푸욱!
녀석이 찔렀던 힘이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전해졌다.
헌터, 공작가 망나니 되다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