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4 (19/40)

Chapter 4

아론이 있는 섬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고 있었다.

한편, 참가자들의 사투를 단순한 유흥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폴린 도시에서 영상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이었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되겠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느 참가자가 이길지 골라주세요!”

맨 앞에 있는 사회자는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렸다.

“당연히 기간츠에 찍어야지!”

“옳소! 기간츠가 정배지.”

화면에 떠오른 거구의 남자를 가리키며 베팅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아니지! 반스 팀도 만만치 않아!”

“아무리 기간츠 혼자서 세다고 해도 쪽수 앞에선 장사 없지!”

반면, 아론의 가명을 말하면서 그에게 찍는 사람도 존재했다.

또, 간간이 라크 쪽에 베팅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라크가 아론에게 승리를 양보하겠다는 내용을 듣지는 못했었다.

필시 그걸 들었다면 라크에게 베팅하는 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열렬히 자신이 돈을 건 참가자의 위대함을 설파하면서 화면에 집중했다.

왜 이 대회가 콜로세움 축제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검투사 경기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참가자에게 돈을 걸고, 이긴 사람은 그 비율만큼 벌어가고 하퍼는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식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높일 수 있도록 섬에서의 장면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놀라운 광경이 가능한 이유도 섬의 곳곳에 설치된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거기서 아티팩트가 기록한 장면을 받아서 실시간으로 이곳 중앙 광장에서 보여주는 중이었다.

물론 아티팩트는 무한하지 않았기에 모든 장면을 담아낼 순 없었다. 하지만 박진감 넘치는 전투는 빠지지 않고 보여주었고, 관객들 역시 영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팔찌를 어루만지며 베팅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 베팅 기회였다.

여태까지 잘못된 참가자를 골랐던 사람들은 남은 돈으로 마지막 재기를 꿈꿀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맞췄던 사람은 더 큰돈을 자기가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참가자에게 베팅했다.

“흐음.”

어느 여성은 유심히 전송되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쪽은 이번에 베팅하지 않는 거요?”

옆에 있던 남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하. 처음부터 저 기간츠에게 걸었나 보네? 그러면 베팅을 할 필요가 없겠네 그려.”

남자의 지레짐작에 여성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1차 베팅 때부터 반스에게 걸었습니다.”

“반스한테?”

대답을 들은 남자는 되묻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에헤이. 당신, 돈을 잃으려고 작정한 거 아니요? 물론, 그의 실력은 대단하지.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좋지 않아.”

그는 혼잣말을 하듯이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나는 1차 때부터 기간츠에게 걸었어. 녀석이 이길 것 같다는 직감이 왔거든.”

웃으면서 말하는 남자에게 여성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영상만 쳐다봤다.

반응이 시큰둥하자 남자도 더는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어딜 봐도 강인한 용병의 차림이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이웨카 길드의 수장, 셀린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이 바빠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네스의 강물을 구하는 건 자신의 숙원 사업이었다.

그래서 아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이렇게 직접 와 있었다.

그리고, 아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올 수밖에 없었다.

‘이 보석들을 현금화해서 나한테 걸어 주시오.’

그는 당당한 표정으로 셀린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재밌는 남자야.’

그녀는 그 일을 떠올리고는 웃었다.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해도, 이웨카 길드를 대여하기 위해 준비한 돈으로 베팅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직접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니, 아론은 초인적인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자! 이제 베팅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마지막 결전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는 베팅의 중지를 알리고는 사람들이 앞의 화면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아론과 라크는 미지의 강자, 거구의 사내와 맞닥뜨릴 수 있었다.

녀석은 라크가 묘사한 대로 우람한 체구를 자랑했다. 분명 같은 인간처럼 보이는데 키가 2미터를 넘겼다.

게다가 어떻게 근육을 키운건지, 기괴할 정도로 탄탄한 근육을 자랑했다.

“끄으으…….”

놈은 텅 빈 눈으로 아론과 라크를 바라보았다. 그 눈의 깊이를 알 수가 없어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아론은 녀석의 상태창을 열어서 확인하려고 했다.

【상태창 열람 불가】

하지만 볼 수 없었다.

아론은 의아해 했다.

저 녀석의 실력이 그만큼 압도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여태껏 아론이 상태창을 볼 수 없었던 인물이 두 명이었다. 바로 카이만 공작과 자신의 스승인 포드였다.

두 사람에게선 확실히 격을 뛰어 넘는 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두고 있는 저 녀석에게선 그만큼의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에서 상태창을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조심하시오. 녀석은 마법에 내성이 있는 것 같으니까.”

아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부분은 저 녀석을 만나기 전에 라크가 해준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귀찮아졌군.’

둘 다 마법사인데 마법에 내성이 있는 상대라니.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해결법을 찾아내리라고 마음먹었다.

타앗!

거구가 먼저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진 순간.

콰앙!

녀석이 어딘가에서 발을 내디딘 순간 폭발음이 일었다.

아론이 미리 심어 두었던 지뢰 마법이 발동한 것이었다.

화르르륵!

순식간에 화염이 피어올라 거구를 휩쓸었다. 녀석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동시에 아론은 쿠브를 이용해 수천 개의 날카로운 돌들을 녀석에게 날렸다.

카가가각!

그것들은 쏜살같이 날아가 거구의 몸에 박혀 들었다.

‘맞는 소리가 좀 이상한데?’

사람의 살에 맞으면 저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치 금속을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점은 어쨌든 좋았다.

연기가 걷히고 난 뒤에 확인한 녀석의 몸을 보고, 아론은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라크가 말한 대로 정말 마법에 내성을 가지고 있군.’

녀석은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 죽이지, 못한 놈……!”

녀석은 라크를 보면서 이를 부득 갈았다. 달리던 신형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내 라크가 있는 곳의 상공에서 나타났다.

“끄으으……!”

놈은 두 주먹을 깍지 낀 채 라크를 내리 찍으려고 했다.

그는 그것을 본 즉시 방어 마법을 펼쳤다. 동시에 얼음의 창을 만들어 내 반격을 시도했다.

하나하나가 위력이 가득 담긴 공격과 방어였다.

‘역시…….’

아론은 라크의 전투를 곁에서 보며 생각했다. 괜히 천재 막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혈육의 전투를 보는 것은 케빈을 제외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사삭!

그러나 거구는 내리찍는 주먹으로 얼음의 창을 부숴 버렸다.

쾅! 쾅!

그러고서는 라크가 펼친 실드를 부수기 위해 맹공을 가했다.

아론은 라크를 원호했다.

쿠구구구!

그의 앞에 돌기둥을 세워서 거구와 라크를 강제로 떼어냈다.

“끄으으……!”

녀석은 방금의 개입으로 약간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라크에겐 기회가 되었고, 무사히 거구의 공격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방해, 된다!”

타앗!

놈은 타겟을 바꾸었다. 순식간에 라크가 아닌 아론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거리는 눈 깜빡할 사이에 좁혀졌다. 워낙 빨라서 갑자기 눈앞에 거구가 나타난 느낌이었다.

후웅-!

그리고 녀석은 아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지이잉!

아론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걸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아론은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거구의 주먹은 말도 안 되게 빠를 텐데, 그 움직임이 아론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이 역시 시간 가속 마법의 힘이었다. 아론은 몸을 틀어서 옆으로 피했다.

그 와중에 거구의 주먹이 아론의 팔을 살짝 스쳤다.

“으윽!”

마치 불에 데인 것 같은 화끈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론은 그것을 참아내면서 라크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이내 시간은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쿠웅!

거구는 아론이 사라진 땅을 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제힘을 이기지 못한 결과였다.

라크는 놀란 표정으로 아론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마법이었소. 도대체 어디서 배운 것이오?”

그도 아론이 까딱하지 못하고 당할 거라고 생각 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공격을 피하고 여기까지 오다니.

물론 아론도 꽤나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거구의 주먹은 빨랐다.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건 오크 킹의 주먹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때 오크 킹과 한번 맞서 봤기에 망정이지,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꼼짝 없이 맞았겠군.’

아론은 화끈거리는 자신의 팔뚝을 확인했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짓뭉개져 있었고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만약 정면으로 맞았더라면 형체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녀석의 팔이 아론에게 스친 결과, 그는 녀석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았다.

“라크. 저놈에게 왜 마법이 안 통하는 지 추측 가는 바가 있다.”

“그게 무엇이오?”

“저 녀석, 생체 골렘인 것 같아.”

아론의 그 말에 라크는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저 자는…….”

쿠웅!

녀석은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는 흉흉한 눈빛을 띤 채 아론과 라크를 바라보았다.

“골치 아프게 됐네.”

아론이 마주하고 있는 저 녀석은 사람도, 그렇다고 골렘도 아닌 어중간한 녀석이었다.

* * *

생체 골렘.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기반으로 온갖 재료를 거적대기처럼 합성해서 만든 키메라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단계부터는 사실상 사람이라고 부를 순 없었다.

아론이 추측하기엔 저 거구의 정체가 바로 생체 골렘이라고 확신했다.

당연히 대륙에서는 금지가 된 방법이었다. 사람의 몸을 가지고 마법 실험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라크는 아론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야 금지된 마법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었다.

“그렇지만 증거가 없지 않은가?”

“팔을 맞는 순간 녀석의 주먹에서 금속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지뢰 마법을 적중시켰을 때도 그랬다.

맞을 때 나는 소리가 도저히 사람의 피부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마법을 흡수해서 파훼하는 빈도가 높았다. 그것을 보니 녀석의 몸은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끄으으…….”

그리고 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저 모습. 녀석이 사람이 아니라 생체 골렘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론은 그 점을 들어서 라크에게 잘 설명해 주었다.

“과연, 그렇군.”

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왜 아버지가 이유를 묻지 않고 저 거구를 처리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건 대륙에서 금지한 마법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니까. 원래라면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녀석이니까 그랬던 것이었다.

“저 녀석의 몸은 마나 전도율이 굉장히 높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을 거다.”

“그래서 마법을 정면으로 맞고도 아무렇지 않았던 거군.”

마나 전도율이 높다면 마법을 맞더라도 어느 정도 한계까지 그것을 흡수할 수 있었다. 설령 한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특유의 성질을 이용해 튕겨내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타격 위주의 공격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

“일단은 그렇겠지.”

상대가 생체 골렘임을 안 이상 마법으로 변형을 가하는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즉, 불을 던져서 태우거나 얼리는 등의 마법은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얼음으로 만든 창은 타격을 줄 수 있었기에 데미지가 들어갔다.

타앗!

거구가 훌쩍 뛰어서 라크에게 달려들었다. 어째서인지 속도는 아까보다 더욱 빨라져 있었다.

콰카카칵!

라크는 얼음벽을 여러 겹 생성했다.

아론이 거기에 도움을 주었다.

그는 땅에 손을 짚고는 속박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는 순식간에 땅을 타고 흘러가서 거구의 발밑에서 터져 나왔다.

촤라라락!

녀석의 발과 다리가 마법으로 생겨난 줄기에 의해 묶여버리고 말았다.

라크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봉쇄당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츠츠츳!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얼음은 거대한 용이 되어 하늘로 솟구치더니 다시 거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발을 봉인 당한 거구는 결국 두 손을 하늘로 들어서 그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쐐애액!

그때, 아론의 윈드 커터가 날아와 녀석의 팔을 공격했다. 그 때문에 팔의 각도를 제대로 잡지 못하게 되었다.

콰앙!

녀석의 팔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틈을 노리고 얼음으로 된 용이 거구를 덮쳤다.

주변에서 둘의 마법을 본다면 몇 년이고 합을 맞춘 것처럼 보일 정도로 환상적인 연계였다.

그만큼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았다.

“끄으으…….”

하지만 고작 그 공격으로 거구를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털썩.

녀석의 팔이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몸의 여러 군데에 큰 상처가 생겼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저건 사람이 아니야.’

사람은 저런 상태에서 버틸 수 없었다. 누가 봐도 골렘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다른 골렘들처럼 재생하지 않는다는 거지.’

만약 저만한 괴력을 가졌는데 일반적인 골렘처럼 재생력도 높았다면 상대하기 굉장히 골치 아팠을 게 분명했다.

‘계속 녀석의 상처를 누적시키다 보면 핵이 드러날 거다. 그것만 부수면 놈을 쓰러트릴 수 있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전투에 임했다.

“끄으으……!”

거구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녀석은 다시 기합을 넣고는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투쾅!

거구의 주먹이 땅을 갈랐다. 그 여파로 흙먼지가 주위에 비산했다.

콰악!

두 사람의 마법이 거구의 몸통을 때렸다. 그 단단했던 녀석의 몸도 하나둘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는 어느덧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전투를 했었는지, 여기저기에선 폭발의 여파로 안개가 자욱해 있었고 바닥이며 주변 지형이 성한 곳이 없었다.

“후우…….”

아론은 한숨을 쉬며 녀석을 바라보았다.

라크도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둘 다 슬슬 지쳐가는데.’

문제는 아직도 거구의 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상했다. 거구의 몸체는 이미 반 이상이 뜯겨 나가 있는 상태였다. 저 정도면 일반적인 골렘일 경우 핵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론은 혹시나 싶어서 탐지 마법을 사용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원래 핵이 없는 녀석이거나, 아니면 아직 드러날 정도로 충분히 피해를 입지 않았거나.

아론은 부디 후자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는 마나를 과다사용한 탓에 어질어질했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라크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면 저 생체 골렘은 껍데기만 파괴되었을 뿐,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투가 지속되면 결국 우리가 위험해진다.’

그렇게 판단한 아론은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상대해야 녀석을 좀 더 빨리 쓰러트릴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아론은 펜던트를 만지작 거리면서 추가적인 마나를 공급받던 중, 괜찮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잘하면 이게 먹힐 지도 모르겠는데?’

아론은 라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저놈을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으음.”

라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는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가능할 것 같은데…… 왜 그러나?”

“일단 부탁할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힘을 보태줄 테니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전방을 바라봤다.

쿵! 쿵!

녀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구의 신체 능력은 아주 발군이었다. 하지만 행동 패턴은 지극히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달려들고 무작정 공격한다. 그게 전부인 녀석이었다.

녀석이 또다시 라크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쿠구구-!

일대에 있던 마나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라크는 그 마나들을 얼음으로 바꾸는 마법을 시전했다.

휘오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달려오던 거구의 몸에 하얀색 서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녀석의 몸이 얼어붙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아론은 놀랐다.

저 녀석은 생체 골렘이었기에 직접 마법으로 얼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라크는 생각을 달리 해서 마법을 썼다. 거구를 얼리기 위해 굳이 직접 마법을 가할 필요가 없었다. 녀석의 주변에 있는 대기 중의 수분을 얼린다면 자동으로 거구의 움직임도 막는 것이 가능했다.

‘저렇게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군.’

괜히 에드먼스 가문의 자제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이런 발상까진 할 수 있어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라크는 타고난 마나 제어 능력을 가지고 대기 중의 수분을 얼릴 정도로 간섭하는 것이 가능했다.

촤라라락!

아론도 속박 마법을 추가로 걸어서 녀석의 움직임을 제한시켰다.

그런 뒤에 시간 가속 마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거구의 근처로 이동했다.

아론은 녀석의 몸에 손을 얹었다.

우우웅!

그런 뒤에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마나들을 전부 거구의 몸속으로 투입시켰다.

몸 전체가 마나 전도율이 높은 탓에 녀석은 아론이 주는 마나를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아론은 몸 안에 있는 마나 뿐만이 아니라 펜던트가 공급하는 마나까지 끌어서 거구에게 불어 넣어 주었다.

“끄으으…… 끄으으……!”

그러자 거구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태껏 무미건조했던 녀석의 외침에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론은 그것을 자신의 방법이 통한다는 증거로 생각했다.

라크 역시 그제야 아론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의 몸은 마나 전도율이 높다 보니 마나를 잘 받아들인다는 특성이 있었다.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었다.

신체의 한계 이상으로 마나를 받아 들이면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생체 골렘이라 해도 과도하게 마나를 흡수하면 내부가 불안정해지고, 결국은 붕괴하게 된다.

그것을 이해 한 라크는 자신도 거구의 근처에 다가가서 마나를 폭발적으로 주입했다.

“끄으으으……!”

녀석은 저항도 못하고 두 사람의 마나를 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점점 녀석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부에서 마나가 용솟음 치면서 신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빠직! 빠지직!

녀석의 몸에 금이 퍼져나갔다.

그 사이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게 다 갈 곳을 잃은 마나들이었다.

콰앙!

이내 커다란 폭발이 일었고, 푸른빛이 주변을 집어 삼켰다.

당연히 마나를 주입하고 있던 두 사람도 거기에 휘말리게 되었다.

‘어, 잠깐만. 이거 큰일 난 거 아니야?’

순간 아론은 깨닫게 되었다.

너무 마나를 주입하는데 심취한 나머지 실드를 전개할 마나조차 남겨두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마나 폭풍을 그대로 몸이 뒤집어쓴다면 아론은 몸이 갈가리 찢겨나갈 수 있었다.

그때, 라크가 힘겹게 몸을 움직여 아론의 앞을 막아섰다.

‘이걸 여기서 쓰게 될 줄은 몰랐군.’

라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황금빛을 띄고 있었는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화아악!

라크가 마나를 주입하자 주위가 온통 황금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이내 아론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라크가 꺼내 든 둥근 무언가에서 나온 황금빛은 어느새 든든한 방패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론과 라크의 앞에 서서 폭발을 막아주고 있었다.

방패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에서는 포근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건…….’

아론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방패의 한가운데에 새겨진 문양에 눈길이 갔다.

동그라미에 십자가가 정방향으로 박혀 있었다. 아론은 그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문양. 그리고 이 따사로운 기운.’

이는 아론이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도서관의 책에서 본 내용이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라크가 쓴 저것은 성유물이 확실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쳐 버린 신들이 남겨두고 간 흔적이나 물건을 성유물이라고 불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찾을 수 없는 신이었지만, 성유물에는 신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신의 능력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라크가 방금 사용한 건 이리스의 가호라는 이름이 붙은 성유물이었다.

세간에 정체가 밝혀진 몇 안 되는 성유물 중 하나로, 전쟁의 신 이리스의 가호가 안에 담겨 있어서 그 어떤 것으로부터든 사용자를 보호해주는 권능이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영원히 막아주지는 않았다. 성유물은 그 힘이 다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 할지라도 위력은 상당했다. 카이만이 진심으로 마법을 사용해도 그것을 거뜬히 막아낼 정도의 가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거를 지금 쓴다고?’

성유물이라는 이름이 붙고 확실한 성능을 보장해주지만, 매우 희귀한 물품이었다.

라크가 어떻게 그것을 얻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공을 세우고 카이만에게 보상으로 받았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화아악!

성유물의 가호는 폭주하고 있는 생체 골렘의 기운을 막아주고 있었다.

푸른빛과 황금빛이 충돌하자 빛의 내부와 외부과 완전히 분리된 세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콰콰쾅!

외부에서는 어마어마한 힘이 주위를 쓸어 버리고 있었다. 폭발은 주변의 나무며 지형을 모조리 삼켜 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성유물의 가호가 닿고 있는 아론과 라크의 근처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평온한 상태 그 자체였다.

‘대체 왜……?’

아론은 궁금증이 일었다.

라크가 무슨 생각으로 이리스의 가호를 지금 사용한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유물은 일회용이었다. 사용 후에는 어떠한 능력도 보여주지 않는 일반적인 물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라크가 아론에 비해 큰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니었다.

라크는 아직 마나가 남아 있었다. 혼자서 공격을 막거나 도망치려면 언제든지 기회를 봐서 실행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성유물을 사용한다는 방법을 택했다.

‘에드먼스의 혈육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걸 썼을 리가 없지.’

아론은 그의 숨겨진 의도가 알고 싶었다.

왜 굳이 성유물을 써가면서까지 자신을 구했는가.

아론은 이번 일이 끝나면 그에 대해서 꼭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쿠구구…….

폭발의 기운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

“이봐! 화면 제대로 나오고 있는 거 맞아?”

“제일 중요한 장면을 놓치게 되었잖아!”

화면으로 기간츠와 아론, 라크의 전투를 보던 관중은 곧바로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흥분해 있었다.

화면에는 온통 푸른빛이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섬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누가 이긴 거야?”

“당연히 기간츠지!”

“무슨 소리야? 반스랑 린이 극적으로 이기는 장면이잖아?”

사람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셀린도 발로 땅을 탁탁 두드리며 불안함을 표시했다. 화면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푸른빛만이 감도는 중이었다.

‘실패하진 않겠지?’

이번 일이 실패하면 요네스의 강물을 얻는다는 계획을 재고해야만 했다.

수집광 하퍼의 갤러리에서 수집품을 가져갈 권리를 얻게 되는 콜로세움 축제는 4년에 한 번씩만 열렸다. 즉, 이번에 성공하지 않으면 4년 뒤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게 싫으면 하퍼에게 접촉해서 제발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별명이 수집광인것처럼, 그는 수집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었다. 갤러리에 들어간 이상 그걸 다시 돈 주고 사 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비단 요네스의 강물만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과연 아론은 무사한지도 궁금했다.

그녀가 보기에 아론은 에드먼스가에서 배출한 어마어마한 재목이었다.

그런 그와 우연하게 만났고, 정보를 제공하는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저렇게 허망하게 죽음으로써 그 관계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어어……!”

사람들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점점 푸른빛이 걷히는 것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됐나?”

사람들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느 쪽이 살아남는가에 따라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울게 될 것이었다.

잠시 후. 화면에서 실루엣이 두 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오!”

“이겼구나, 반스!”

그들은 실루엣만 보더라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당연히 두 사람이니 아론과 라크였다.

“말도 안 돼!”

기간츠에게 돈을 베팅했던 사람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힘의 차이가 저렇게 나는데 어떻게 질 수 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어? 근데 두 사람은 팀이 다른데, 누가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는 거지?”

누군가가 그런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내 최종 승자가 가려졌다.

점점 결계가 좁아지고 있었고, 라크는 망설임 없이 결계의 바깥으로 나갔다.

그렇게 해서 라크는 자동으로 실격.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아론이 되었다.

“이번 콜로세움 축제의 마지막 생존자가 나왔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반스입니다!”

사회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아론의 승리를 알렸다.

“대박이야!”

“믿고 있었다!”

아론에게 베팅했던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승리를 축하했다.

“이, 이…… 말도 안 되는……!”

한편, 셀린의 옆에서 기간츠에게 베팅했다던 남자는 분을 삭이지 못하며 그녀를 찾았다.

셀린이 큰돈을 따게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빌붙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곳에서 사라지고 난 뒤였다.

***

콜로세움 축제가 종료되었다.

아론은 라크를 포함한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폴린 도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하퍼를 만날 수 있었다.

하퍼에 대한 첫 만남의 느낌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살은 뒤룩뒤룩 찐 체형에, 머리는 부스스했고 피부에는 기름기가 흘렀다.

오로지 그의 눈만이 탐욕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우승을 축하하네. 개인적인 감상이다만, 자네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을 줄은 몰랐네.”

그는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론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런 사람과 대화를 오래 나누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저, 상품을 빨리 받고 싶은데요.”

그래서 바로 본제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했다.

“하하! 호탕한 녀석이군. 난 자네 같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네.”

그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그래,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 내 갤러리에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하나를 주겠네.”

“요네스의 강물을 원합니다.”

아론은 망설임 없이 그 이름을 말했다.

순간 하퍼의 눈빛이 변했다.

“그건 내 갤러리에 들어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신상이다. 내가 그걸 입수했다는 건 어디서 들었지?”

그는 아론을 흘겨보며 물었다.

“그런 민감한 부분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론은 단칼에 거절했다.

“흥. 그래. 그럴 필요는 없지.”

하퍼는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 부하를 시켜 요네스의 강물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범상치 않은 녀석이군.’

하퍼는 자신의 살찐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이 사내의 뒤에는 커다란 단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언가 정보가 없다면 자신이 요네스의 강물을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부하가 요네스의 강물이 든 병을 들고 왔다.

그는 아깝다는 눈빛을 비추었다. 하지만 상품으로 뭐든 주겠다고 했으니 이제 와서 물릴 수는 없었다.

“자네도 저주에 걸렸나? 아니면 사랑하는 이가 그런 건가?”

하퍼는 요네스의 강물을 아론에게 건네며 물었다.

눈치가 빠른 아론은 그 사이에 이 물건이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추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강물은 저주를 고칠 수 있는 물건인 셈이군.’

아론은 순간 자신이 이걸 마셔 버릴까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분명 저주라고 했지? 내 몸이 가지고 있는 건 병이지 저주가 아니야.’

마신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해서 셀린과의 관계를 깨트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성유물은 일회용이네. 부디 잘 생각하고 써주게.”

하퍼는 그것을 넘기면서도 계속해서 아쉽다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이 사람 덕분에 추가적인 정보도 알아가는군.‘

요네스의 강물이 성유물이라는 정보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론 궁금함이 일었다.

셀린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이런 성유물을 필요로 하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저주에 걸린 걸까?‘

아론은 이걸 건네주면서 물어보기로 했다. 무려 성유물이다. 그 정도 질문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속했잖아. 내가 이걸 넘겨주면 이웨카 길드는 사실상 내 수중에 들어온다.‘

그러면 셀린은 자신의 부하 직원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휘하에 있는 직원의 문제는 알 권리가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론은 하퍼에게 대충 인사를 전한 뒤에 상품을 챙겨서 그의 갤러리를 떠났다.

건물 밖에서는 라엘과 켄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의외로 라크가 아직 여기에 있었다.

“아직 있었군.”

“그래도 잠깐이었지만 서로 목숨을 건 동료지 않는가. 작별 인사를 하러 왔네.”

아론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라크는 이런 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녀석이었구나?‘

한편으론 집안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모습이 흥미롭기도 했다.

“나를 구해줘서 고맙다.”

“약속이었으니까. 축제가 끝날 때까지 지키겠다고 말했지 않았는가.”

“그래도 성유물을 써서까지 지켜줄 줄은 몰랐다. 그건 꼭 써야만 했었나?”

아론의 물음에 라크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쩌면 난 이번 임무에서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일세. 그래서 나는 성유물보다는 자네의 목숨을 구하는 게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일세.”

라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아론을 바라보았다.

* * *

아론은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라크의 입에서 저런 말까지 나올 줄이야.

성유물보다 목숨을 구하는 게 더 값지다고 생각해 주는 건 고마웠다.

그런 사고방식이 아니었다면 아론은 진즉에 생체 골렘의 마나 폭발에 휘말려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아마 이게 라크의 원래 성격이 아닐까?’

집안에서 무뚝뚝한 모습은 아마 다른 경쟁자들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가문 내에서 하는 행동은 일거수일투족이 공작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라크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살아왔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한테 성유물을 쓰면서까지 지켜줄 이유가 없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랑 공작가로 갈 생각은 없는가?”

라크는 한술 더 떠서 아론에게 제안까지 하기도 했다.

“자네의 실력은 내가 보기에도 남다른 수준일세. 에드먼스에서 일하는 다른 마법사들과 비교해도 자네는 충분히 강할 걸세. 가문의 정식 마법사가 되는 건 일도 아니라고 보네.”

라크는 아론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고 있었다.

“무사히 정식 마법사가 되면 내 아래에서 일하는 건 어떻겠나?”

라크의 그 말에 아론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만약 이 아이가 내가 아론인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점이 궁금했지만, 굳이 호기심 하나만을 충족하기 위해서 정체를 드러내는 건 참기로 했다.

‘아마 되게 어색해 지겠지.’

라크는 자신이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이불이나 차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거절하도록 하겠네.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아론은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라크는 얼굴에서 대놓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런 기회 어디 가서 못 얻을걸세. 단순한 가문 소속의 마법사가 되는 게 아니네. 라크 에드먼스의 보증을 받는 거라는 말일세.”

정말로 아쉬운 모양인지 라크는 한 번 더 권유를 했다.

“그건 좀 끌리긴 하지만…….”

아론은 너무 튕기는 것도 그러니 적당히 호응은 해 주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네.”

그제야 라크도 체념하게 되었다. 아론이 심지가 굳은 사람임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준 패는 사양하지 말고 꼭 필요할 때 써주었으면 하네. 내가 도와줄 테니 말일세.”

“그건 고맙군.”

이제 두 사람이 더 이상 서로에게 볼 일은 없었다.

둘은 서로 갈 길을 가기로 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날 수 있길 빌겠네.”

라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헤어졌다.

“막내 도련님께서 저런 성격을 지니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동감이야.”

아론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에드먼스 가문은 무한 경쟁이 기본이다 보니, 아이의 본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 같았다.

실제로 가문 내에서 저렇게 군다면 온갖 승냥이들이 기회를 놀 물어 뜯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라크는 점점 더 본심을 숨기고 가면을 썼던 걸지도 몰랐다.

“괜찮은 동생을 두셨군요.”

켄트는 반쯤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내가 아론인 걸 몰라서 그러는 거지. 바깥사람은 경쟁자가 아니니 말이야.”

아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만약 자기가 가문으로 돌아가고 막내와 본격적인 후계자 경쟁을 하게 되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후계자는 단 한 명의 자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이번 콜로세움 축제처럼 아름다운 승리 양보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론은 자신을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스승, 포드 공이 있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아론은 서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막내 라크 에드먼스였다.

서열이 저절로 올라가지 않는다면, 또다시 서열 대련을 열고 파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에드먼스 가문에서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올라갈 수 있는 거구나.’

아론은 이 집안의 관계가 참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맞이해야겠지만, 그래도 그때가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아론은 할로움의 이웨카 길드 건물에서 셀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승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 수표 한 장을 건넸다.

“이건 부탁하신 배당금입니다. 1차부터 아론 님을 건 사람이 거의 없었고, 또 마지막에는 기간츠 쪽에 베팅이 몰려서 배당금이 많아졌네요.”

아론은 그 액수를 확인해보았다. 셀린에게 길드 대여금을 지불하더라도 그 세 배가 남게 되는 금액이었다.

‘뜻밖의 부수입이군.’

부수입이라기엔 꽤 큰 액수였지만 아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 여기 네가 원하던 거.”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셀린에게 요네스의 강물을 주었다.

그녀는 실물을 본 순간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었다.

“받으면서 이것의 용도를 알게 되었어. 저주를 없애주는 성유물이라며?”

아론이 묻자 셀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왜 필요한 거야?”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것이 이해하기 편할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고 있던 옷의 어깨 부분을 내려서 보여주었다.

순간 셀린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등에 있는 자국을 본 순간 차가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등에는 커다란 검상이 있었다.

“그건 뭔가?”

“검의 낙인입니다.”

아론은 그것과 관련해서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아이젠 왕실의 서자들에게 찍는 낙인이었다.

그들에게도 왕족의 피가 흘렀기에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왕실은 그들의 칼끝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것을 두려워 해 서자들에게 모두 낙인을 찍었다.

그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아이젠의 국왕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언령으로 죽일 수 있었다.

그런 강력한 낙인이 찍힌 자들을 왕실이 합리적으로 대해 줄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그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적자들을 받들기 위한 전투 병기로 키워지다가 버려지는 게 대부분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셀린은 그런 미래가 싫어서 도망쳐 나온 사람이었다.

‘어쩐지. 왜 아이젠과 관련된 정보는 자세하게 알고 있는지 이해가 가네.’

그녀는 살기 위해서라도 그쪽의 정보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했다.

아론이 자세히 보니 그녀의 등에 찍힌 검의 낙인 주위로 여러 가지 술식이 적혀 있었다.

이건 저주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막는 역할을 하는 술식이었다.

하지만 저주 자체를 푸는 건 아니었기에 언제든 술식이 풀릴 수 있었고, 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그런 타이밍에 아론이 요네스의 강물을 셀린에게 구해다 준 것이었다.

“저주를 막고 있는 술식이 굉장히 불안정하군. 언제 풀려도 이상하지 않아.”

“제대로 보셨습니다.”

“얼른 마시게. 갑자기 술식이 풀려서 죽는 걸 보긴 싫으니 말일세.”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셀린은 요네스의 강물이 든 병을 따서 천천히 마셨다.

성유물의 효능은 허세가 아니었다. 그녀가 강물을 마신 순간 등에 새겨져 있던 검의 낙인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잠시 후,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이제야 그녀는 아이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몸이 되었다.

셀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그녀 스스로도 이런 미래를 얻을 수 있을지 불확실 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성취하게 되니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늦지 않고 이 성유물을 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아론 님 덕분입니다.”

“신경 쓰지 마. 내가 호구도 아니고 말이야. 서로 거래하는 조건으로 구해다 준 거잖아?”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그래도요. 아론 님께서 움직여 주셔서 구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만약 조직원들만 있었다면 축제에서 기간츠를 이기지는 못했을 겁니다.”

“정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몇 년 동안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이웨카 길드는 아론 님을 따르며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이로써 아론은 대륙에서도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거점과 정보망을 획득하게 되었다.

***

라크는 임무를 마치고 공작로 귀환했다. 그는 지금 임무 보고를 위해 카이만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기간츠의 정체는 생체 골렘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겁도 없이 대륙에서 금지한 마법을 쓴 모양이군.”

“그런 모양입니다. 생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처리하고 조각을 회수했습니다.”

“성분 분석은 끝냈나?”

“예. 확인해보니 레어 메탈이 대량으로 섞여 있었습니다.”

“……쥐새끼를 조심하도록 해라. 가문 내에서 누군가가 몰래 아이젠을 돕는 모양이니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공작은 보고를 들은 뒤에 궁금한 점을 라크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레어 메탈로 이루어진 생체 골렘이라면 네 실력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우연히 거기서 만난 마법사와 힘을 합친 결과 이길 수 있었습니다.”

라크의 이야기를 들은 공작은 흥미가 생겼다.

“그 마법사가 누구더냐?”

“자신을 반스라는 이름의 방랑 마법사라고 소개했습니다.”

“방랑 마법사라.”

흔히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그런 표현을 쓰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혹시 그자가 아이젠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있나?”

“그럴 것 같진 않습니다. 설마 연관이 있는 자가 기간츠를 쓰러트리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말이 되는군.”

“그리고 저는 그자에게 목숨을 빚졌습니다.”

점점 라크의 말을 들을수록 공작은 그 마법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방랑 마법사 중에는 라크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가 없을 텐데.’

그가 아는 마법사들 중에는 없었다. 그래서 의심이 들었다.

‘아론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기각하고 말았다.

아마 녀석은 바깥을 다니면서 변장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라크가 그 마법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할로움으로 갔다고 이야기를 들었으니, 폴린에서 보일 이유는 없겠지.’

공작은 생각을 정리하고는 라크에게 나가도 괜찮다고 말했다.

“잠깐만.”

그때, 공작이 그를 불러 세웠다.

“이리스의 가호는 어쨌느냐?”

난처한 물음에 라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기간츠와의 전투 중에 사용했었습니다.”

“그래?”

공작은 의심하는 눈빛을 띄었다. 하지만 별다른 딴지를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단지 방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은 오로지 네 자신을 위해 쓰도록 해라.”

“……죄송합니다.”

라크는 공작의 서재를 나갔다.

카이만은 생각에 잠겼다.

막내는 재능이 출중했다. 그래서 믿고 임무를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주가 되기에는 너무 성품이 유약했다.

‘막내도 첫째에게 걸맞는 경쟁자가 되어주진 못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아론이 재능이나 심성에서 견줄 만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약한 그의 몸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편, 공작의 서재를 나온 라크는 창밖을 보면서 방랑 마법사 반스를 생각했다.

자신을 에드먼스라고 밝혔음에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 그라면 진정한 동료로 삼기에 적절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아론은 이웨카 길드의 운영권을 쥐게 된 즉시 공격적으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젠 왕족과 특임대의 동향을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여태껏 있었던 사건들의 배후가 아이젠임을 알게 된 이상 그들의 감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에드먼스 형제들에 대한 감시도 추가했다.

물론 그들은 감이 뛰어난 마법사였기에 밀접하게 조사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어디로 향한다는 동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최근에 문제가 된 생체 골렘에 대한 정보를 얻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아론은 지시를 내리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다. 대륙 전역에 정보원을 보유하고 있는 길드다 보니 손쉽게 질 좋은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

“오늘 보고드릴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셀린이 아론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먼저 기간츠의 살점을 조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레어 메탈이 주성분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라크가 조사한 내용과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보다는 칠검의 복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 인공 미티움이 더 걱정될 정도였다.

‘인공 미티움은 실제 미티움과 성능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어. 이게 상용화되면 레어 메탈보다 훨씬 무서운 소재가 될 거다.’

아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걱정되긴 하네. 그 생체 골렘은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

아론은 가장 먼저 아이젠 왕국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칠검과 달리 약한 추측이었다.

그들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을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게다가 생체 골렘을 보아하니 아직 다 완성된 단계는 아닌 듯이 보였다.

시험 단계에 있는 골렘을 아마 콜로세움 축제를 통해 풀어놓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 최근에도 계속 생체 골렘을 만드는 데 사람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아론은 그 점을 지적해서 셀린에게 말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서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최근에 발생한 원인 불명의 실종이나 인명 사고를 쫓다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셀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몇 가지 이상한 현상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최대 반년 전에 일어났던 일까지 찾아서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말해보게.”

아론은 셀린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웨카 길드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되었으니 이렇게 직통으로 보고 받는 게 편했다.

“첫 번째는 마을 하나가 산적의 습격을 받고 피해를 입은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수도원에서 보호하던 아이들이 단체로 사라진 사건이고, 마지막으로 닐로이 상단이 상행에 오르던 도중에 사라진 사건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녀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는 보고서를 같이 보여주었다.

아론은 하나하나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으음. 감이 딱 오는 곳은 없는데 말이야.”

“이 세 가지 사건이 모두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하들을 풀어서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오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겠네.”

***

아론이 이웨카 길드를 이끌어 나간 지도 2주가 흘렀다.

정보와 관련된 분야는 필요한 것만 아론이 지시를 내렸고, 나머지 사항들은 모두 셀린에게 처리를 맡겼다.

아론은 그동안 길드 건물 지하에 있는 훈련장에서 수련을 계속했었다.

생체 골렘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언제 또 녀석과 비슷한 존재를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그때 가서도 무작정 돌진한 다음 가진 마나를 모두 투입해서 잡을 순 없었다.

적어도 라엘과 켄트와 합을 맞췄을 때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을 해야 했다.

아론이 최근 공을 들여서 익히고 있는 건 페리움에서 받아 온 망토의 사용법이었다.

아론이 이걸 최초로 응용한 사례는 콜로세움 축제를 위해 배를 타고 갈 때, 선실에서 독이 담긴 마나 폭탄을 막을 때 썼던 것이었다.

아론은 그때 이 망토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잘 숙련만 된다면 원거리 공격도 이 망토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론은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거듭 실험했다.

그 보조를 켄트가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화륵!

켄트가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자 아론은 망토를 펼쳤다. 그러고는 날아오는 마법을 아공간으로 흡수시켰다.

이것도 꽤 능숙해진 결과였다.

아공간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건 쉽지 않았다.

마법사들도 운이 좋아야 아공간 하나짜리의 주머니를 쓸 텐데, 아론은 망토에 수많은 아공간을 달고 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 필요한 아공간을 열고 닫는다는 개념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실수로 물건을 보관하고 있는 아공간을 열어 버린다면 그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입구도 금방 열렸다가 닫히는 탓이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마법을 얻어맞는 경우도 일쑤였다.

그렇게 아공간에 익숙해지기란 쉬운 게 아니었지만 아론은 그 복잡함 속에서 만족을 느꼈다.

또, 이 망토는 4서클 이하의 마법을 대부분 막아주는 부가 효과가 붙어 있었다.

그 외에도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해주는 등의 편의 기능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론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어 하는 망토의 응용법은 다음과 같았다.

아론은 허공을 바라보며 망토를 펼쳤다.

화륵!

그러자 파이어 애로우가 망토 속에서 나와 발사되었다.

방금 전에 켄트가 날렸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건 봐도 봐도 놀랍군요.”

켄트는 망토가 보여주는 능력에 순수하게 감탄하였다.

그도 그럴 게, 상대한 공격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괜히 이 망토가 드워프의 전신이 썼던 물건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은 간단한 공격 마법에만 시험해 본 상태였다.

어디까지 공격을 되돌려 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

기회가 된다면 극한까지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내가 추론한 걸로는 한계가 없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아공간을 정확한 타이밍에 열고 닫아야 한다는 문제가 언제든지 있었다.

“켄트. 좀 더 넓은 범위의 공격 마법을 써 볼래?”

“알겠습니다.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다쳐도 전 모릅니다.”

“상관없으니까 날려 봐!”

아론의 허락이 떨어졌다.

켄트는 그를 완전히 뒤덮을만한 커다란 불길을 만들어 내서 발사했다.

펄럭-

아론이 망토를 흔들어 아공간을 열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망토는 자기보다 훨씬 커다란 불덩어리도 먹어 버렸다.

아론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망토를 흔들어 닫혔던 아공간을 열었다.

화르륵!

아공간이 삼켰던 불덩어리를 망토가 토해냈다.

문제는 불이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아론을 향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콰카각!

그때, 쿠브가 급하게 나타나 벽을 만들어 화염들을 상쇄시켰다. 쿠브가 이렇게 자아를 가지고 움직여 주지 않았더라면 위험할 뻔했다.

“아론, 괜찮아?”

쿠브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아론! 다치면 안 돼.”

쿠브는 그렇게 충고하고는 퐁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조금 더 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미묘한 차이였지만 정령의 주인인 아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론 님.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러게. 좀 더 망토를 다루는 법에 익숙해져야겠어.”

이제 공격을 아공간으로 먹어 버리거나 다시 뱉어내는 건 쉬웠다.

하지만 가끔씩 아공간의 방향이 이상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방금처럼 앞으로 날아가지 않고 아론이 있는 곳으로 뒤돌 경우가 문제였다.

’좀 더 연습해서 익숙해져야겠어.‘

오늘 훈련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아론 님!”

때마침 셀린이 아론을 찾아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야?”

“그때 보고 올린 것들을 좀 더 상세히 조사해 봤습니다.”

“여기서 이야기 들어보도록 할게.”

셀린은 천천히 아론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산적의 습격을 받은 마을 사람들이 실종된 사건의 경우에는 농민들이 영주의 높은 세금을 피해 화전민이 된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어디 납치되거나 그런 건 아니었던 거군.”

“예. 그리고 닐로이 상단이 사라진 것도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보니 몬스터가 기습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으음.”

아론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정보는 하나였다.

“수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머랭 영지의 바하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한 달 전 20명의 아이가 입양된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흔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 정보원들을 보내서 조사를 시켰습니다.”

수도원에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꽤 힘든 작업이었다.

그들은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도원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위장 취업 등을 이용해 내부로 파고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급한 상황이니 몰래 수도원에 침입해서 정보를 빼 오는 방법을 택했다.

“거기서 입수한 서류입니다.”

셀린은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어떤 서류인가?”

“입양을 보낸 아이들에 대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습니다.”

셀린은 아론이 직접 내용을 확인해보길 원해서 종이들을 건네주었다.

아론은 서류를 몇 장 넘기다 말고 어느 한 장의 종이에 시선이 꽂히고 말았다.

“이 아이…….”

“예. 닮은 것은 우연의 일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론이 들고 있는 종이에 그려진 소년의 얼굴은 저번에 만났던 기간츠의 얼굴과 매우 닮아 있었다.

“수상하군. 직접 방문해 보는 게 좋겠어.”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론은 찝찝했다.

어쩌면 아이들을 상대로 생체 골렘을 만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특히 수도원에 맡겨져서 키워질 정도의 아이라면 대부분이 입양되고 나서 그 행방을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아이들 상대로 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론은 부디 자신이 종이에서 본 이 아이의 얼굴이 그저 기간츠와 동일인이 아니라, 운이 좋지 않게 닮았을 뿐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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