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공작가 망나니 되다 3권
Chapter 1
“제엔장!”
콘테는 말을 탄 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도망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야?’
그는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장을 한 사내들이 자신의 방문을 차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콘테는 그걸 본 순간 사정을 묻지도 않고 자신의 보따리를 챙긴 채 곧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3층 높이였지만 죽는 것에 비하면 잠깐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은 도망치던 중에 가게를 지나치면서 훔친 것이었다.
‘대체 뭔 수작을 부린 거야?’
보나 마나 지불한 대금에서 뭔가 수작을 쓴 게 분명해 보였다.
어쩐지 구린내가 난다 싶었다. 콘테가 보기에도 아론은 50만 골드를 지녔을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었다.
단지 아론이 패를 보여줬을 때, 에드먼스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길래 거기에 혹했을 뿐이었다.
‘언젠가 만나기만 해봐! 가슴팍에다 칼침을 쑤셔 줄 테니!’
그는 속으로 아론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말을 몰았다.
다그닥다그닥!
콘테는 곧장 성문을 통과했다. 경매 기간인지라 성문의 경비는 없다 싶은 상태였다.
“후우, 후우.”
콘테는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그가 뒤를 돌아봤을 땐 이미 헤카롯은 꽤 멀어져 있었다.
그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성공적으로 도망친 거 맞지?’
콘테는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개자식! 만나면 죽일 테다!”
그는 울분을 토하며 허공에 외쳤다.
“누구를 죽인다고?”
서걱!
분명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콘테는 자신의 왼쪽 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도했다.
“으…… 으아악!”
그걸 인지한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이 콘테에게 밀려들었다. 그는 몸부림치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콘테가 꼴사납게 땅을 기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콘테는 오른손으로 왼쪽 팔에서 나오는 피를 막으며 자신을 벤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
익숙한 옷차림이었다. 그는 분명 이번 경매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하던 남자였다.
스륵.
그는 콘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에 묶여 있는 보따리를 칼로 베었다.
짤그랑짤그랑!
그러자 안에선 금화가 터져 나왔다.
“죽이고서 드워프만 챙겨 가려고 했는데, 허탕 쳤구만.”
그는 마지막에 완전히 속았다고 중얼거렸다.
“으윽! 사…… 살려주십시오!”
콘테는 잘린 부위를 부여잡고는 머리를 땅에 찧었다.
“곁에 있던 녀석이 드워프를 데려갔겠지?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해라.”
콘테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항상 어디에 붙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어…….’
하지만 그는 금세 깨닫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가 목숨을 저울질 할 수 있는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남자는 그…… 얼굴이 평범하게 생겼는데…… 이름은 다니엘이고…….”
콘테는 긴장해서 더 이상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아론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죽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휩쓸었고, 차마 아론의 곁에 있던 일행에 대해 설명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아, 알아 오겠습니다! 누군지 알아 올 테니, 제발 목숨만……!”
서걱!
그게 콘테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머리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시간 낭비했군.”
그는 검을 갈무리 하며, 작은 수정구를 품에서 꺼냈다.
‘그쪽 녀석들의 도움은 받기 싫은데 말이야.’
그는 마나를 불어 넣어 수정구를 가동했다. 그러자 불이 들어오면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워프를 놓쳤다.”
[요즘 실패가 잦군.]
수정구에서는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쯧. 이 태도 때문에 연락하기 싫었던 건데.’
하지만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부주의한 결과 일어난 사태였다.
“미안하게 됐군.”
[걱정 마. 난 치밀한 사람이거든. 네가 구해오지 못하더라도 차질이 가지 않도록 다른 드워프들을 구해 놨어.]
“그럼 다행이고.”
[정보가 들어오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
뚜둑.
수정구와의 연결이 끊겼다.
“이래서 마법사 놈들은 싫단 말이야.”
수정구를 집어넣은 남자, 젠슨은 투덜거리면서 그 장소를 떠났다.
***
아론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는 새벽 내내 달려서 이미 헤카롯에서 멀리 벗어난 상태였다.
“깨어났어요!”
정오가 되었을 때였다.
라엘은 드워프의 상태를 살피던 중, 녀석이 눈을 뜨자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정체도 모르는 아론 일행이 달가울 리 없었다.
어린 드워프는 마차 구석에서 겁에 질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몸은 좀 어때?”
아론이 물어보았지만 드워프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겁을 많이 먹었군.’
아론은 이러한 녀석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드워프 종족은 인간의 탐욕을 피해 산맥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살았다. 그런데 자신을 결박한 인간이 앞에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일단 얘를 어떻게든 안심시켜야 뭔가 이야기라도 나눠 볼 텐데.’
아론이 고민하고 있을 그때.
퐁!
귀여운 소리를 내며 쿠브가 아론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앗……!”
드워프는 그 광경을 보고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태초의 정령이네요!”
드워프는 살짝 웃으면서 아론을 향해 말했다. 아직 어리다는 느낌이 많이 섞인 목소리였다.
“태초의 정령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라고 배웠어요.”
“어흠!”
드워프의 그 말에 켄트는 헛기침을 했다. 더불어 표정 역시 뭘 잘못 들은 거 아닌가 한 얼굴이었다.
‘아론 님이 착하다니…….’
한편, 아론은 그런 켄트를 무시하고 쿠브를 바라보았다.
쿠브는 두둥실 내려와 어린 드워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드워프는 쿠브를 보고 마음의 경계가 조금은 풀린 것 같았다.
‘정령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아론은 왠지 일이 쉽게 풀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책에서 드워프들은 불과 돌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쿠브가 대지 속성이라서 그런 걸까?’
어쨌든, 아론은 드워프와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너무 무서워 하지 마. 우리는 너를 구하러 온 거란다.”
“구하러 오셨다고요?”
“그래. 네 이름은 뭐니?”
“뷰란트에요.”
사실 이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물어보기로 했다.
“너도 그린데란트 산맥에서 온 거니?”
아론의 물음에 뷰란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이 바깥세상은 위험하다고 했지만, 전 인간들의 생활이 궁금했어요. 책으로 읽었지만 실제로도 느껴보고 싶어서 산맥을 몰래 빠져나온 거예요.”
뷰란트는 그게 5년 전이라고 말했다.
“제가 만든 무기에 감탄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저 스스로도 즐거웠어요. 헤카롯에서는 제 가게가 무기를 제일 많이 팔았을걸요?”
뷰란트는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어린 드워프라서 그런지 아직 순수한 모습이 엿보였다.
“무기를 잘 만드나 보구나. 혹시, 내가 가진 검도 봐줄 수 있니?”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보관하고 있던 아그니 소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뷰란트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말없이 아그니 소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뷰란트는 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살펴보았다. 가끔가다 고개를 한껏 검에 들이밀거나, 감탄하거나 하는 등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드워프는 잘 만들어진 물건을 보면 넋을 놓는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네.’
그래도 이 정도로 열중할 줄은 몰랐었다. 아마 나이가 어리기에 좋아하는 것에 더 몰입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휴우!”
뷰란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게 뭐로 만들어진 건지 알겠니? 나는 미스릴이 사용되었다고 들었거든.”
“미스릴이요? 아니에요.”
뷰란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반응했다.
“인간들은 잘 구분 못 할지도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나 다른 드워프들은 알 수 있어요. 이건 미스릴이 아니라 미티움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미티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아론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뷰란트는 설명을 해주었다.
“미티움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의 잔해에서 채굴한 광물이에요.”
“운석의 잔해라고?”
“네. 미티움은 그 어떤 광석보다 가볍고 튼튼해요. 그리고 마나 전도율도 아주 높아서 이걸로 만든 무기는 사용하는 사람과 동화되어서 마나를 폭발적으로 늘려줄 수 있어요.”
아론은 그 설명을 듣고는 바르트한과 펼쳤던 비무가 떠올랐다.
그가 비무 도중에 꺼냈던 검은 바루나 소드의 복제품이었다.
‘아마 성분이 다르겠지. 미티움을 훨씬 적게 넣었다든가.’
그럼에도 바르트한은 그 검을 든 순간 마력 수치가 눈에 띄게 상승했었다.
‘그렇다면 이 검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었군.’
재보라길래 그저 상징적인 의미만 있는 줄 알았다. 실제로 아론이 검을 들어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자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이젠은 왜 바루나 소드의 복제품을 만든 걸까? 기를 쓰고 칠검을 다시 모으기 위해 특임대를 꾸린 것도 그렇고…….’
다른 건 몰라도 복제품은 위험했다. 직접 바르트한과 비무를 겪어보지 않았던가.
지금 어디까지 연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산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온다면 아이젠 왕국은 기사단의 무력이 한층 강해질 게 분명했다.
‘공작은 이걸 알고 아그니 소드를 가져오라는 임무를 내게 내렸던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후우. 아니다. 일단 눈앞에 있는 확실한 거에만 집중하자.’
지금 확실한 것은 아그니 소드가 미티움으로 만들어졌고, 그 소재의 특성상 마력을 대폭 올려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럼 이 검은 나도 쓸 수 있을까? 내가 들어봤을 때는 아무런 효과도 못 느꼈거든.”
아론의 물음에 뷰란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쪽은 마법사잖아요? 기사랑 마법사는 마나 운용 방법이 틀리니까, 검의 형태로는 그쪽이 어떠한 효과도 볼 수 없어요.”
“그럼 형태만 바꾼다면 가능해?”
“네. 마법사가 쓸 수 있는 도구라면 스태프 같은 것이 괜찮겠네요.”
아론의 예측이 맞았었다.
기존의 아티팩트를 새로 제조하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뷰란트의 말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럼 혹시 이 검을 스태프로 바꿔줄 수 있겠니?”
“가능은 한데, 도구가 필요해요. 지금 저한테는 그게 없네요.”
아론은 고민했다.
헤카롯에 뷰란트의 공방이 있긴 했지만 거기로 다시 돌아가는 건 위험했다.
‘보나 마나 젠슨의 특임대가 이 잡듯 뒤지고 있겠지.’
아론은 결국 뷰란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근처에 괜찮은 곳을 알고 있니? 헤카롯으로 돌아가는 건 너한테 위험할 것 같아서 말이야.”
“으음. 저랑 비슷하게 산맥을 나온 드워프들을 몇 명 알고 있어요. 그들의 집에 가서 도구를 빌리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래? 그들은 어디에 있니?”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헤카롯에서 좀 떨어진 시넨이라는 도시에 드워프가 있을 거예요.”
“알겠다. 그럼 그쪽으로 바로 가자.”
아론은 행선지를 틀어 뷰란트가 말한 시넨으로 향했다.
* * *
뷰란트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헤카롯에는 자기를 제외하곤 전부 인간이다 보니 말을 걸 상대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 어린 드워프는 그간 답답했던 것들을 여기서 전부 풀 생각인지 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론은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넨에 있는 드워프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시넨에 사는 드워프는 두 명으로 뷰란트의 형제라고 말했다.
동생은 자기처럼 제작을 하는 장인이었으며 형은 워리어인 모양이었다.
드워프 워리어는 이야기 책 속에서 강한 전사로 자주 묘사되는 녀석들이었다.
보통 드워프는 약했지만, 워리어로 선택된 드워프들은 극한의 훈련을 거친 뒤 최상의 무기로 무장해서 매우 강하다고 한다.
그린데란트 산맥에도 많은 몬스터가 살고 있는데, 녀석들로부터 드워프를 지키면서 왕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드워프 워리어들의 덕분이었다.
“동생은 저랑 같이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서 산맥을 나오고 싶어 했거든요. 그때, 형이 저희들을 위해서 같이 나와줬어요.”
그제야 아론은 뷰란트가 어떻게 그 험한 산맥을 탈출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드워프 워리어가 동행했었구나. 하긴, 이 어린 드워프 혼자선 그 산맥을 빠져나오는 게 힘들지.’
아론은 뷰란트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드워프들은 모두 그린데란트 산맥에 있을 줄 알았는데, 너처럼 인간계 쪽으로 나온 드워프가 생각보다 많겠구나.”
“으음. 열 명 조금 안 되는 드워프들이 인간계에서 살고 있을 거예요.”
누가 들으면 고작 그것밖에 안 되겠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론은 그 숫자에 놀랐다.
수백 년 전부터 인간과 교류를 끊고 산맥 속에서 폐쇄 생활을 해왔는데, 여태까지 아무도 들키지 않고 대륙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목걸이 덕분이겠지.’
아론은 변장이 가능한 목걸이를 다시 뷰란트에게 돌려준 뒤였다.
인간의 마법으로는 얼굴만 바꿀 수 있지만, 이 목걸이는 체형조차 위화감 없이 완벽히 바꿀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변하고 있는 동안 그 어떠한 마나의 위화감도 느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도 상태창이 없었더라면 그때 대장장이로 위장했던 콘테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을 거야.’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지도를 꺼내서 위치를 확인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더라도 시넨은 장장 일주일을 달려야 했다.
주변에 워프 게이트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여기나 시넨 근처나 게이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날도 슬슬 저물고 있었고, 식량도 없이 헤카롯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아론은 근처 도시에서 하루 숙박한 뒤에 출발하자고 생각했다.
일주일은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그니 소드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
도시에서 휴식을 취한 아론 일행은 다음날 일찍 다시 출발했다.
이제는 웬만한 일이 없다면 다른 도시에 머무르지 않고 시넨까지 갈 작정이었다.
한편, 마차 안에서는 뷰란트가 계속해서 아그니 소드를 살펴보고 있었다.
“미티움은 말로만 들었지, 저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뷰란트의 말에는 감탄이 묻어나 있었다.
“그렇게 좋니?”
“그럼요! 그리고 이 검은 최소한 드워프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걸작인걸요.”
고개를 돌려 말한 뷰란트는 다시 검에 집중했다.
“누가 이걸 만들었을까…… 만나서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아론은 그런 드워프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걸 스태프로 만들 계획인데…… 이 아이가 검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문화재를 훼손하는 것 아닌가 싶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론은 살기 위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면 뭐든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아론 님. 제가 이렇게 계속해서 검을 살펴봐도 괜찮을까요?”
그때, 뷰란트가 혹시 자신의 행동이 실례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근데 도구 같은 것도 없는데 살펴볼 수 있는 거야?”
“있으면 빠르고 수월하겠지만, 다른 방법도 있어요.”
뷰란트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두 손을 모아 집중했다.
펑!
그러자 뷰란트의 앞에 쿠브와 비슷한 모습의 정령이 나타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쿠브에 비해서 훨씬 흐릿하다는 것이었다.
“이건 정령이잖아?”
“네! 아론 님이 계약하신 태초의 정령 급에는 발끝에도 못 비비는 미미한 아이지만요.”
아론은 이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드워프들은 정령과 친하지 않다고 알고 있었거든.”
“그건 인간들이 잘 알지 못해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저희는 대부분이 땅이나 불의 정령과 계약을 맺는답니다.”
아론은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거였다. 드워프들이 정령과 계약을 맺는다니.
“저는 대지 정령에게 광물 분석을 도와달라고 말해요. 그러면 시간은 좀 걸리지만 제대로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요.”
뷰란트는 그렇게 말한 뒤에 정령에게 말을 걸었다.
정령은 검신 위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뷰란트는 눈을 감고 계속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정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시간은 꽤 걸렸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정령과 대화하며 아그니 소드를 분석하고 있었다.
아론은 어린 드워프의 놀라운 집중력과 탐구력을 보며 감탄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을 때, 뷰란트는 눈을 번쩍 뜨더니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론 님! 저, 찾아냈어요!”
아론은 과연 드워프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기다렸다.
“이 검을 따로 다른 것으로 만들지 않아도 아론 님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이야?”
뷰란트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직접 보여드릴게요.”
뷰란트는 검신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잠시 후, 검신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은은하게 빛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지?’
아론은 놀라고 말았다. 뷰란트의 마력이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바르트한이 바루나 소드를 뽑았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한 거니?”
“미티움은 마나 전도율도 높지만, 광석 자체도 마나를 잔뜩 품고 있어요. 그래서 이걸 잘 이용하면 검의 마나를 사용자 쪽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답니다.”
설명을 들은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겠는데…….”
“잘 보세요.”
탁.
뷰란트는 검신의 한 지점을 짚었다.
“여기가 제일 마나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여길 잡고, 의식적으로 마나를 끌어 온다고 생각하면…….”
아론은 다시 한번 뷰란트의 마력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건 검이 낼 수 있는 본연의 힘이 아니에요. 저는 마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거든요.”
“이 정도가 본연의 힘이 아니라고?”
아론은 그 점이 놀라웠다.
“아마 마법사이신 아론 님이라면 온전하게 힘을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아론은 뷰란트가 설명한 대로 검신을 짚어 보았다.
“거기가 아니에요. 조금 더 위. 정확한 위치여야만 마나가 동조할 수 있어요.”
아론은 지적한 점을 상기하며 다시 손을 가져다 댔다.
“그렇죠. 마나를 끌어모은다는 느낌으로…… 자, 이제 손잡이 부분을 잡아보세요.”
그는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그러자 아론은 검에서 밀려드는 마나의 급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하잖아!’
이 정도 마력이면 평소보다 서클이 하나 더 늘어난 수준이었다.
“어때요. 따라 해 보니까 별거 아니죠?”
뷰란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러게…….”
아론은 아그니 소드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말했다.
갑자기 서클에 차오른 마나의 충만감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잠깐이지만 한 서클 정도 마력이 늘어났어.’
이걸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전투에서 화력 차이를 크게 벌릴 수 있었다.
‘잘 쓰면 유용하겠는걸.’
당장 이번 일을 마치고 공작가에 귀환하기 전까지 어떤 위험이 들이닥칠지 몰랐다.
그런데 이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은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으음. 문제가 있다면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마법사이신 아론 님이 검을 들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고…….”
뷰란트가 걱정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우와!”
뷰란트는 감탄하고 말았다. 갑자기 눈앞에서 검은 온데간데없고 스태프가 나타나다니.
“이렇게 생김새를 바꿀 수 있거든.”
이건 현대에서 헌터들 사이에 유행하던 마법으로, 물질은 변화시키지 않고 형태만 마나로 덧씌우는 방법이었다.
마법사들은 멋을 중시하다 보니 이렇게 겉모습을 씌우는 마법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스태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검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잡아야 했다. 멋도 모르고 다른 부분을 잡다가 칼에 베일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런 마법 언제 쓰나 생각했는데.’
아론은 실속파였다.
겉멋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쓸 줄은 몰랐다.
***
아론 일행은 뷰란트와 함께 별 우여곡절 없이 시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뷰란트는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목걸이를 이용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이전 대장장이 모습은 이제 안 쓸래요.”
아론은 그걸 보고는 드워프의 기술력에 신기해했다.
‘하나의 모습으로만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구나.’
아론 일행은 뷰란트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형제가 살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여기에 형이랑 동생이 살고 있어요.”
딱히 특별할 것은 없는 작은 집이었다.
‘문이 열려 있네……?’
아론은 그 점이 이상했지만, 그 외에 특이한 부분은 없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카슈 형님!”
뷰란트가 문 앞에서 드워프의 이름을 불렀다.
“카슈 형님! 안에 계세요?”
하지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 나가셨나?”
“문이 열려 있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집으로 발을 내디뎠다.
“형님! 어디 계세요?”
뷰란트는 쪼르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어 놓은 것을 보니 잠깐 나간 건가?’
주위를 둘러봐도 누가 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아론은 창가에서 인영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라엘과 켄트도 동시에 눈치챈 모양이었다.
아론이 손을 뻗어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자, 그 인영은 창문을 통해 곧장 도망치고 말았다.
“너희도 봤지?”
“네. 쫓을까요?”
라엘이 묻자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도망치더라도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있어.”
아론은 인영을 발견하자마자 쿠브에게 명령해 흔적을 붙이도록 했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도망쳤을 것이다. 나중에 마나를 이용해 그 흔적을 더듬어 가면 도망친 경로를 알 수 있을 터였다.
* * *
아론 일행은 집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하네요. 두 명이 동시에 집을 비울 리는 없을 텐데…….”
뷰란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생이 재료를 구하러 시내로 간 김에 형도 걱정해서 같이 간 걸지도 몰라요. 시내 쪽으로 가볼게요.”
뷰란트는 그렇게 말하며 집을 나가려고 했다.
“두 사람은 뷰란트를 같이 따라가도록 해. 혹시 아까 도망간 인영이 저 아이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아론은 두 사람에게 부탁한 뒤 내부를 둘러보았다.
“나는 여기서 대체 그 녀석이 뭘 했는지 조사를 좀 해볼게.”
“혼자 있으셔도 괜찮겠습니까?”
“나 혼자 지킬 힘은 충분해. 그리고 오히려 여기로 와주면 수고를 덜 수 있어서 고맙지.”
라엘과 켄트는 부디 조심하라고 아론에게 말한 뒤 뷰란트를 따라갔다.
아론은 그들을 보내고 나서 집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는 먼지가 조금 내려앉아 있었다. 식기류에도 물기가 없었다.
‘이 정도면 며칠 집을 비운 거 같은데?’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는 물건들이 아론의 예감을 좋지 않게 하였다. 마치 일이 생겨서 급하게 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드워프 형제의 행방은 그렇다 치고, 그 사람은 대체 뭐하러 여기에 온 거지?’
아론은 자신이 보자마자 도망친 정체불명의 사람을 떠올렸다.
그 속도를 보아하니 빈집을 털러 온 좀도둑은 절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잠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목적이라면 그거겠지. 여기 사는 녀석들이 드워프라는 것을 알아차린 거 말고 따로 있겠어?’
원한 관계가 아닌 이상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때, 아론은 인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집으로 온다.’
아론은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뒷문으로 나갔다.
느껴지는 마나만 가지고는 아까 그 정체불명의 사람인지, 아니면 이 집의 주인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자라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때려눕힌 뒤에 목적을 물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후자면 곤란했다. 누가 봐도 자신은 이 집에 침입한 사람이었다. 무력이 없는 동생이면 몰라도 형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지 몰랐다.
‘뷰란트를 구해왔다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지 않겠지.’
싸운다고 해도 뷰란트의 형이니 죽이는 건 물론이고 불구로 만들거나 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일단 집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뷰란트의 형제면은 잠깐 숨어 있다가 나중에 뷰란트가 온 뒤에 들어가면 되었다.
아론은 수풀에 숨어 창문을 통해 집안을 관찰했다.
‘들어왔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덩치 있는 남자였다. 아까 집에서 봤을 때 인영의 크기랑은 차이가 있었으므로, 아마 저자가 뷰란트의 형이리라.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다부진 체격의 남자는 등에 도끼 두 개를 차고 있었다.
‘딱 봐도 형 쪽이군.’
아론은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나중에 뷰란트와 함께 들어가야 오해를 없앨 수 있었다.
……라고 아론이 생각했을 때.
후웅!
갑자기 도끼가 날아들었고, 아론은 급히 얼굴을 숙여 피했다.
촤하학!
도끼는 수풀을 베고 허공을 날아가 뒤편에 박혔다.
어느새 아론의 앞에는 변장을 한 드워프의 형이 서 있었다.
‘어느 틈에 온 거지?’
하지만 아론에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나머지 하나의 도끼를 쥐고는 아론을 향해 우악스럽게 휘둘렀다.
아론은 급히 실드 마법을 시전해 도끼의 진로를 막았다. 동시에 훌쩍 뛰어서 녀석과 거리를 벌렸다.
쨍그랑!
실드는 하염없이 깨지고 말았다. 급조한 탓도 있었지만, 저자의 실력이 어마어마한 탓이었다.
“네 놈이 사냥꾼이었구나! 얼른 내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그는 아론을 향해 쩌렁쩌렁 외쳤다.
‘동생? 이 집에 같이 사는 녀석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뷰란트?’
하지만 녀석은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도끼를 든 채 돌진해 왔다.
아론은 이번에는 확실하게 실드 마법의 주문을 끝맺을 수 있었다.
콰가각!
거세게 휘둘러진 도끼는 실드에 막히고 말았다. 아론은 그 틈을 노려 전격 마법을 시전해 날렸다.
아론은 이 정도면 적당히 충격을 줬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반동으로 조금 밀려났을 뿐이지, 큰 피해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저 갑옷 때문인가?’
드워프가 만든 갑옷이라 그런지 몰라도 마법 피해가 덜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러면 적당히 싸워주는 건 힘든데.’
아론은 부디 대화로 화가 풀리길 바라면서 입을 열었다.
“잠깐만. 오해하지 말아 줘. 일단 말로 하자고.”
“말로 하자고? 네 녀석은 그 도둑놈들과 같은 힘을 쓰고 있지 않느냐? 누굴 속이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뒤집으며 아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걸 봐!”
아론은 급히 쿠브를 소환했다.
퐁!
뷰란트와 처음 만났을 때 겁을 잔뜩 먹고 있었지만 쿠브를 보고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게 먹히지 않을까 싶어서 쿠브를 보여주었다.
“무얼 말이냐아!”
후웅! 후웅!
그러나 이미 이성을 잃은 녀석은 정령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도끼를 휘둘렀다.
쿠브는 그 기세에 깜짝 놀라서 다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화 때문에 머리가 돌아서 저런 건지, 아니면 정말로 무식해서 저러는 건지……!’
아론은 난감했다.
이 녀석은 뷰란트의 형이다. 하지만 저쪽은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 그래서 난폭하게 맞받아칠 수 없었다.
‘뷰란트의 이름을 들먹여 봤자 더 길길이 날뛰겠지.’
아론은 일단 녀석을 못 움직이게 묶어두고 머리를 식힐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웅!
아론은 짓쳐들어오는 도끼를 피한 뒤, 속박 마법을 시전했다.
우드드득!
녀석의 발밑에서 식물 줄기가 자라 나와 발과 다리를 옭아맸다.
“으아아아!”
그러나 녀석은 기합을 내뿜더니 그 억센 식물 줄기를 우악스럽게 뜯어버리고는 아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체 뭐냐, 저 말도 안 되는 힘은!’
적당한 공격은 녀석에게 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묶어 두는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노릴 곳은 머리뿐인데…….’
방어구를 쓰지 않은 유일한 곳이 머리였다. 하지만 힘 조절을 까딱 잘못했다간 지능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후웅!
‘……안 그래도 이렇게 무식한데!’
아론은 아그니 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것은 형태를 덧씌운 마법을 받고 있었기에 상대에게는 스태프로 보였다.
손잡이를 잡고 검신에 손을 가져다 대자 마력이 순식간에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파앙!
아론은 단숨에 늘어난 마나를 이용해 녀석의 머리를 노려 스트라이크 마법을 사용했다.
“어억!”
쿠웅!
마법에 직격당한 녀석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하아…….”
아론은 사태가 일단락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쓰러진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부르르!
녀석의 집념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절했을 텐데 근육은 움직이길 원하는 것 같았다.
‘깨어났을 때 다시 달려들면 곤란하니까 처치해 두자.’
아론은 설령 녀석이 일어나더라도 끊어내지 못하도록 강력한 속박 마법을 겹겹이 걸어두었다.
그는 옴짝달싹 못 하게 묶인 것을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
곤란하게도 뷰란트가 돌아오기 전에 녀석은 정신을 차리고 말았다.
“우아악! 네 이놈!”
그는 아론을 바라보며 고함쳤다.
“내 동생을 내놓으란 말이다!”
쿵! 쿵!
녀석은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발악하였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 강하게 속박해 놓았으므로 풀릴 위험은 없었다.
“이봐, 드워프.”
아론은 녀석을 보면서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녀석은 인간의 형태로 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론이 알아차리니 한층 강렬한 적의를 품고 자신을 바라보았다.
“역시! 넌 드워프 사냥꾼이 맞았어!”
“……아까 도둑놈들이랑 내가 같은 힘을 쓴다고 했었지? 그건 무슨 말이지?”
“개소리 말라! 동생이 있는 곳을 말하란 말이야!”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도저히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파직! 파지직!
녀석이 얼마나 괴력인지, 강하게 걸어둔 속박 마법도 풀리려고 하고 있었다.
‘뷰란트를 봐서라도 조용히 끝내주려 했는데 말이야.’
또 녀석이 달려든다면, 그때는 아론도 사정을 봐주기 힘들었다. 드워프 워리어답게 녀석은 충분히 강했고,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간당간당할 수 있었다.
아론은 녀석이 속박을 푸는 것에 대비해 아그니 소드를 잡고 기다렸다.
‘……다행이군.’
그러나 싸움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론은 저 멀리서 뷰란트가 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앗, 형님! 왜 묶여 있는 거예요?”
뷰란트가 형을 보고는 의아해서 물었다.
형 드워프는 그를 보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더니 더욱 눈을 까뒤집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으아악! 내 동생아! 너도 저 녀석들에게 잡힌 것이냐!”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어?!”
“이분들은 저를 노예 경매에서 구해 주신 분들이에요.”
형은 말이 없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머리를 굴렸다.
“……내가 오해를 한 건가?”
“그걸 이제 알아차리다니.”
아론은 어이가 없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이제 정신을 차렸으니 속박을 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팔다리의 자유를 되찾은 녀석은 아론을 향해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내가 큰 착각을 한 모양이다.”
“……괜찮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저 무식한 성격을 바꾸는 데 매가 약이라고 생각하지만, 뷰란트를 위해서 참기로 했다.
뷰란트는 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형님. 동생은 어디로 갔나요?”
그 물음에 형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게 말이다. 요 며칠 전에 동생이 실종되었단다.”
그의 목소리에는 착잡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녀석이 눈을 까뒤집고 아론에게 달려든 것에는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 * *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말을 들은 뷰란트는 깜짝 놀랐다.
“아니, 형님!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그게……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뷰란트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힘이 쎈 형님이 계시는데 누가 감히 동생을 납치해 갔단 말이에요?”
형은 드워프 워리어 중에서도 강한 편에 속했다. 웬만한 시정잡배 정도는 그가 곁에 있다면 얼씬도 하지 못했다.
“하필 그날, 친구 놈이 나를 위해 새로운 도끼를 만들었다길래 그걸 받으러 갔었지.”
쿵!
형 드워프는 그걸 말하면서 화가 나 발을 굴렀다.
“제길, 그때 가지만 않았어도 동생은 무사했을 텐데!”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데?”
아론이 묻자 그는 진정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친구가 말하길 근처 도시에서 장인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늘고 있다고 하더군. 또, 어디에는 드워프가 납치되어서 경매에 올라가는 것을 기다린다고 들었어.”
‘그건 아마 뷰란트 얘기인 거 같군.’
다행히도 그 뷰란트는 아론이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걸 들으니까 불안해져서 급히 집으로 돌아왔지…… 동생은 분명 내가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납치당한 게 분명해.”
형은 아연실색해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동생을 보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러던 중, 마침 아론이 집 뒤편의 수풀에 숨어 있길래 그만 동생의 납치범으로 오인해 달려들었다고 했다.
“그건 다시 한번 사과하겠다.”
“괜찮아. 그것보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너, 나를 보고 도둑놈들과 같은 힘을 쓴다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지?”
아론의 물음에 드워프는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해 주었다.
“아…… 그런 말을 했었지. 동생을 찾아다니던 도중에 웬 녀석들의 습격을 받았거든. 싸울 때 너와 비슷한 힘을 쓰는 녀석을 만났었어.”
그걸 들은 아론은 생각했다.
‘그 말은 즉, 마법사하고 대치를 했다는 말일 텐데.’
아론은 그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드워프를 납치하려는 세력은 옅은 심증뿐이지만 아이젠 왕국 쪽일 거다. 그런데 거기는 마법사를 거의 보기 힘들어.’
그렇다면 다른 세력을 의심되었다. 그러나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하아! 막막하구나. 동생을 찾고 싶지만 아무런 단서도 구할 수 없으니…….”
“그거라면 내가 가지고 있어. 확실하진 않지만.”
“정말이냐? 그게 무엇이냐?”
아론은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는 드워프를 향해 이 집에서 정체 모를 인영을 본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게 사실이냐?”
“응. 그놈을 추적해서 만난다면 무언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은 즉, 녀석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말이냐?”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도망갈 때, 재빠르게 쿠브의 흔적을 붙여 뒀었다.
쿵!
형 드워프는 아론을 향해 머리를 꿇더니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부탁했다.
“부디 도와줄 수 있겠나? 난 동생을 잃기 싫다.”
이번 일이 예정에는 없었지만, 아론은 그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이 자는 뷰란트의 형제니까 말이야. 매몰차게 거절하면 뷰란트도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겠지.’
뷰란트는 아그니 소드를 다른 아티팩트로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장인이었다. 그렇기에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알겠다. 도와주지.”
아론은 그런 뒤에 쿠브를 소환했다.
퐁!
갑작스런 정령의 등장에 형 드워프는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뭐, 뭐야! 태초의 정령이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아론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 정령만 내게 빨리 보여줬어도 서로 오해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아론은 어이가 없었다.
“이미 싸우는 도중에 보여줬었는데.”
“……미안하다.”
아무래도 형 드워프는 화가 치밀어 오르면 사리 분별이 잘 안 되는 타입인 것 같았다.
“쿠브. 부탁했던 녀석의 흔적을 찾아 줘.”
아론의 말에 쿠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흔적을 찾은 쿠브는 앞을 향해 날아갔다.
***
아론 일행은 쿠브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주점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침 드워프의 집에는 여분의 목걸이가 여러 개 있었다. 덕분에 아론 일행은 모두 그걸 걸치고 변장을 한 상태였다.
“쿠브의 말에 따르면, 이 안에 녀석이 있는 것 같아.”
“당장 들어가자!”
“너무 흥분하지 마.”
아론은 우선 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힘 좀 쓰는 녀석들만 모여 있군.’
아무래도 평범한 주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빨리 동생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다고.”
“이 안에는 동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 단지 네 집에 침입한 녀석이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끄응. 미안하다.”
형 드워프는 자신이 흥분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작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으음.”
아론은 잠깐 고민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작전은 없어도 된다.”
“네?”
“우리는 아티팩트의 도움으로 완벽히 변장한 상태다. 그래서 정체가 탄로 날 염려는 없다.”
아론은 주점 안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안에 있는 녀석들은 어느 정도 싸울 줄 아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상대가 될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에 실종된 드워프는 없었다.
안에 있는 놈들은 조직에 속해 있다면 고작해야 말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빨리 해치워 버리고, 일말의 단서라도 얻은 다음에 드워프를 찾는 게 나았다.
“안으로 들어간다.”
아론은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일제히 아론 일행을 향해 쏟아졌다.
저벅저벅.
아론은 주인장으로 보이는 녀석을 향해 걸어갔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외지인이신가요?”
주인장은 의심스럽다는 말투로 물었다.
“여기에 쥐 새끼 한 마리가 숨어들었을 텐데.”
“……무슨 소리 하시는 겁니까?”
“지하로 도망간 쥐를 잡으러 왔다.”
스릉!
아론의 그 말에 주인장은 숨겨 두었던 칼을 뽑아 들었다.
“너 뭐야?”
스릉! 철컥!
근처에 앉아 있던 손님들도 각자 무기를 들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역시 모두 한패였구만.”
그들은 슬금슬금 칼끝을 겨누며 아론 일행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순순히 쥐새끼를 넘겨줬으면 좋았을 텐데.”
스릉!
아론 역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아그니 소드를 꺼냈다.
그걸 본 다른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분명 칼집에서 꺼낸 무기가 갑자기 스태프로 변했으니 말이다.
아론은 녀석들이 대응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전격 마법을 시전했다.
콰르릉!
아그니 소드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마나가 응축되더니 번개의 형태로 사방에 뻗어 나갔다.
“으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마법을 맞은 사람들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미처 공격이 닿지 못하거나 저항하는 녀석들은 켄트와 라엘이 재빠르게 처리했다.
“……너. 강하구나.”
형 드워프는 아론의 실력을 보곤 진심으로 감탄했다.
“너랑 싸울 때 힘 조절한다고 애썼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아그니 소드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 검. 진짜 대단하네.’
뷰란트로부터 사용법을 배우고 난 뒤에 마나 동화는 금세 익숙해졌다.
아그니 소드는 아론이 마법을 쓸 때마다 위력을 증폭시켜주었다.
‘아직 검의 형태인데도 이 정도다. 만약 뷰란트가 제대로 가공해서 스태프로 만들어 준다면…….’
과연 얼마나 더 효율이 좋아질지 기대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동생을 찾아야겠군.’
아론은 쓰러진 사람들을 뒤로하고 지하로 가는 문을 찾기 시작했다.
“여깁니다!”
이내 문을 발견한 켄트가 소리쳤다. 아론 일행은 문을 열고 곧장 지하로 내려갔다.
화륵!
아래로 내려갈수록 어두워지니 켄트가 빛을 띄워서 시야를 밝혀 주었다.
지하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쾅!
아론이 문을 부수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나자빠졌다.
“누구……!”
콰직!
아론은 녀석들이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얼음 마법을 가슴팍에 꽂아 넣었다.
순식간에 처리한 아론 일행은 통로를 걸어갔다.
“뭐야! 무슨 소리……! 악!”
폭음을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왔다. 하지만 아론의 마법을 맞고는 픽픽 쓰러져 나갔다.
여기 있는 녀석들은 이 지역에서 힘을 좀 쓰는 것들인지는 몰라도, 아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무기 좀 쓰고 주먹을 다룰 줄 아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4서클 마법사라는 재앙을 막아낼 순 없었다.
‘곧 만날 수 있겠군.’
아론이 마나 탐색을 해보니 슬슬 지하에도 끝이 보였다.
저 너머에 문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저기에 있겠어.’
아론이 마법으로 문을 부수려 할 때.
“모두 막아라!”
이번에는 열 몇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갑자기 출몰한 타이밍이 조금 의심스러웠다.
‘설마 시간을 벌려고?’
그렇다면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아론은 이곳을 나머지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모두 중심 잡아.”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아그니 소드를 땅에 찍었다.
쿠웅!
땅으로 퍼트린 마나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면서 녀석들을 넘어트렸다.
타다닥!
“여기 애들은 너희에게 맡길게!”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앞에 보이는 문을 향해 달렸다.
콰앙!
문은 가볍게 마법으로 부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아론은 그 안에서 천장의 개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쿠브, 부탁해!”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쿠브는 개구멍 안으로 날아갔다.
쿠구궁!
“뭐, 뭐야!”
이내 망연자실한 외침이 들려왔다. 쿠브가 개구멍의 탈출구를 막아 버린 것이었다.
우우웅!
아론은 언제든 마법을 날릴 수 있도록 마나를 맺어 두고는 개구멍 쪽으로 외쳤다.
“투항하고 내려와라.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내가 마법을 쓰면 언제든 널 죽일 수 있어. 내 인내를 시험하지 마라.”
아론이 경고하자 잠시 후 개구멍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너는 누구냐?”
“그건 알 필요 없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모두 해치웠다. 여기 남은 건 너 하나뿐이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순순히 투항을 권고했다.
“……알겠어.”
녀석은 두 손을 들며 항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 * *
아론은 꼬리를 내린 녀석을 향해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보아하니 동네 시정잡배는 아닌 거 같고. 뭐 하는 놈들이냐?”
“……여기는 조직의 지부입니다.”
“어느 조직?”
“제블린이라는 곳입니다.”
아론은 처음 듣는 곳이었다.
‘뒷세계에 있는 조직들이야 유명한 거 아니면 내가 알 필요는 없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녀석의 말을 들었다.
“저는 여기 지부장인 네빌이라고 합니다. 본부에서 내려오는 임무를 수행하고 일정한 대금을 받지요.”
네빌은 자기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아, 잡다한 이야기는 됐고.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다.”
하지만 녀석들이 어떤 꾸리꾸리한 일을 하는지는 아론이 궁금한 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이 도시의 공방이 딸려있는 집에 숨어든 적이 있었지? 거기 있던 녀석은 어디로 납치해 갔나?”
그 말을 들은 네빌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녀석들……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지?’
네빌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론을 보았다.
‘설마 그때 그 집에서 날 발견한 녀석인가? 하지만 생김새가 다른데…….’
네빌의 침묵이 길어지자 아론이 못마땅하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말 안 할 건가?”
“하, 합니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네빌의 눈에는 아론의 어깨너머로 지부원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도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아론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납치한 소년은 제블린 본부로 보냈습니다.”
“보냈다고? 그거 말고는 모르나?”
“저희는 단순히 본부로부터 지령이 내려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수행할 뿐입니다.”
아론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네빌은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그쪽에선 뭐라고 하면서 너네한테 일을 시켰는데?”
“그냥 실행 내용만 적혀 있었습니다. 소년이 살고 있는 집에 가서 형이 없는 틈을 노려서 납치를 해오라고…….”
네빌은 눈을 아래로 깔며 주절주절 설명했다.
“어린 소년이라서 내키지는 않았죠. 하지만 저희는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거라서…… 납치하고 바로 본부로 보냈습니다.”
“본부는 어디에 있지?”
“에닉스 영지에 있습니다.”
그 대답에 아론은 뒤에 있는 형 드워프인 카슈에게 물었다.
“에닉스는 어디에 있지?”
“시넨이랑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말을 타고 이동한다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대답을 들은 아론은 다시 네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그 소년 말고 다른 녀석들을 납치하란 임무는 없었나?”
“예. 저희는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부에도 비슷한 임무를 보냈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아론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아마 다른 지역에 있는 드워프도 발견했나 보군.’
제블린이란 곳도 결국은 어디서 의뢰를 받았기에 납치를 실행한다고 판단이 들었다.
아론이 예상하기로 그 뒤에는 아마 아이젠 왕국이 있을 것 같았다.
‘녀석들은 바루나 소드의 복제품을 만들어 낼 정도다. 아마 칠검의 양산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드워프를 노리는 게 아닐까 싶군.’
어디까지나 아론의 심증이었다.
과연 무기 양산을 성공한다면, 그 칼끝은 어디로 향할까?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메도우드 왕국이 분명했다.
‘내가 9서클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란이 일어나는 건 사양이다.’
그렇기에 그 전에 녀석들의 계획에 훼방을 놓고 싶었다.
아론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네빌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하냐, 너?”
아론이 그렇게 말한 순간.
네빌은 흠칫하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화악!
녀석이 무언가를 꺼내고 앞으로 내밀자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도망치자!’
네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론을 밀치고 달려 나가려고 했다.
‘얕은수를 쓰는군.’
빛이 나오면서 거기에 닿은 물건이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공격으로는 아론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그는 실드 마법을 전개해 공격을 무사히 막아냈다.
‘어차피 지하고, 충분히 잡을 것 같아서 풀어 줬더니.’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발악을 하는 꼴이 그저 우스웠다.
콰드득!
아론이 마법을 시전하자 땅에서 뻗어 나온 식물들이 네빌의 발목을 붙잡았다.
“으윽!”
네빌은 열심히 발을 빼보려고 했으나, 식물이 잡아당기는 힘이 상당했다.
“살려주십시오!”
네빌은 땅에 엎드려 조아렸다.
아론은 그 광경을 보고 혀를 찼다.
‘나한테 피해를 입히고 도망치려고 했었으면서, 태세전환이 참 추하구나.’
이런 인간은 수도 없이 보았기에 이제는 별생각도 들지 않았다.
“납치한 소년이 필요한 거죠? 제가 저희 본부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네빌은 손이 닳도록 빌면서 애원했다.
“굳이 네가 같이 갈 필요는 없지.”
그 말에 네빌은 돌이킬 수 없음을 직감하곤 절망에 빠졌다.
“본부와 그 근처의 지도를 혹시 가지고 있나?”
그러나 아론의 다음 말을 듣고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 내주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마침 여기엔 본부의 지도가 있었다.
“저기, 철제 서랍 안에 있습니다.”
네빌은 손가락으로 벽면 한쪽의 서랍을 가리켰다.
아론은 직접 다가가서 확인해 보았다. 안에는 여러 장의 지도가 있었다.
‘꽤 자세하게 그려져 있군.’
에닉스 영지에 위치한 제블린 본부가 있는 곳의 지도가 상세히 표기되어 있었다.
아론은 그것을 챙겨서 켄트에게 건네주었다.
“제가 거기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론은 대답 대신, 몸을 뒤로 돌리며 형 드워프를 바라봤다.
“이봐, 카슈. 이 녀석이 네 동생을 납치했단다. 화는 풀어야겠지?”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챙겨줘서 고맙다!”
팡! 팡!
카슈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혔다.
“이, 이봐요!”
네빌이 처절하게 외쳤지만, 아론은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아론 일행은 카슈만을 잠깐 남겨 두고 지하를 나왔다.
***
아론은 밖으로 나온 뒤, 챙겨 온 지도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제블린의 본부는 에닉스 영지의 북동부에 외각에 위치해 있었다.
그쪽의 건물 배치 등을 보아하니 영지의 치안이 제대로 관리 되지 않는 슬럼가처럼 보였다.
‘분명 녀석이 다른 지부에서도 납치 임무를 받았다고 했었지.’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제블린은 대륙을 샅샅이 뒤져서 숨어 있는 드워프를 찾고 있을 것이다.
‘아이젠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동생을 되찾아야 한다.’
제블린쯤 되는 조직 정도면 몰라도 국가 단위는 아론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도를 확보해서 일이 수월하겠어.’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지도는 꽤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건물의 배치는 물론이며 그들의 규모, 순찰 경로까지 적혀 있었다.
이 지도만 숙지하고 숨어 들어가도 드워프를 빼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혼자서는 무리였다. 일개 조직이긴 하지만 규모가 컸고 무력도 갖추고 있었다.
크라머 길드의 창고를 습격했을 때와는 달랐다. 그 길드는 주로 불법적인 물건의 보관과 중개를 맡았기에 무력은 약한 부분이 있었다.
‘혼자서 움직이기보다는 양동 작전이 효율적이겠어.’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곁에서 지도를 말없이 보던 켄트가 입을 열었다.
“이거, 양동 작전으로 가죠? 건물 배치상 그게 좋아 보이는데요.”
아론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켄트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 설마 혼자서 들어가려고 하신 겁니까?”
“아무리 강한 도련님이라지만, 그래도 여길 혼자서 가는 건 무리세요!”
켄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어보자, 라엘도 곁에서 거들었다.
“저랑 라엘, 그리고 드워프 형님이 본부의 남서쪽에서 주의를 끌 테니, 그 사이에 동쪽으로 진입하셔서 드워프를 빼는 게 좋겠습니다.”
아론은 켄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살짝 감동했다.
이번 일은 어디까지나 아론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아그니 소드를 새로운 아티팩트로 만들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여정이었다.
그렇기에 라엘은 물론이고 켄트도 이번 일을 완수한다고 해서 이득이 되는 건 없었다.
그런데 저들은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에 자처해서 같이 행동하겠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지구에서 살았을 때는 여러 사람들한테 뒷통수를 맞았는데…… 여기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네.’
자신이 사람을 보는 눈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인복이 좋은 건지. 아론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자기 일처럼 생각해줘서 고맙다.”
아론은 라엘과 켄트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한편, 카슈는 네빌에게 피의 복수를 한 뒤에 지상으로 올라왔다.
“본부에 갈 거지? 나도 끼워줘!”
“당연하지. 네 동생 구하러 가는 건데.”
아론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따로 준비할 건 없으니 바로 출발하자고.”
아론 일행은 그렇게 에닉스 영지로 떠나게 되었다.
***
야심한 밤 시간.
아론은 에닉스 영지에 위치한 제블린 본부의 동쪽에 홀로 있었다.
이미 간략하게 정찰은 마친 상태였다.
‘여기에 영지의 치안력이 닿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
이곳에 자리 잡은 녀석들의 무력은 영지의 정규군과 맞먹을 정도였다.
단순한 폭력 집단이 그렇게까지 성장하긴 힘들었다. 분명 뒷배가 있고, 그들이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해준 결과 여기까지 자랐으리라 추측되었다.
‘반대쪽에 카슈를 전력으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야.’
라엘과 켄트 둘이서만 행동했더라면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두 사람의 실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었다. 라엘은 재능있는 마투사였고, 켄트 역시 지원 마법의 대가였다.
하지만 아론은 직접 카슈와 싸워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천상 전사라는 것은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카슈를 속박하기 위해 마법을 썼지만, 녀석은 그것을 힘으로 끊어 버렸었다.
‘그런 힘을 가진 애가 켄트의 지원을 받는다면 더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뛸 수 있겠지.’
대충 본부의 외곽에 있는 전력은 파악이 되었다.
하지만 안쪽에는 어떤 녀석들이 있는지 정보가 없었다.
‘너무 강하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어차피 이번 작전은 양동이었다.
사람들이 남동쪽으로 빠진 틈을 노려 드워프를 찾아서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콰앙!
저 멀리서 폭음이 작게 들려왔다. 라엘 쪽이 행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론은 마법을 이용해 광범위하게 구역을 탐지했다.
‘좋아. 다들 남동쪽으로 빠지는군.’
아론은 동생 드워프가 아마 본부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정체불명의 창고에 있으리라고 짐작되었다.
아론은 최대한 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