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5 (10/40)

Chapter 5

아론은 그 이후로 헤카롯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모의 전투였다.

아론은 매일 라엘과 켄트를 불러 실전에 가까운 전투 연습을 했다.

특히 라엘은 마투사였기에 아이젠의 기사들과 있을 근접전을 대비해 비슷한 환경에서 맞붙는 대비를 할 수 있었다.

모의 전투는 라엘과 켄트 두 사람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론 자신의 정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퍼엉!

마나가 실린 라엘의 주먹과 아론이 만들어 낸 실드가 격돌하며 굉음을 만들어냈다.

라엘의 공격은 아론의 실드를 깨트렸지만, 아론은 여유롭게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타다닥!

라엘은 비단 주먹에만 마나를 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리에 마나를 주입하면 폭발적인 속도로 상대를 따라잡는 게 가능했다. 여기서 그 상대는 아론이었다.

‘이 아이도 성장했군.’

아론은 라엘의 속도를 두 눈으로 보며 생각했다.

예전이었으면 아론이 도망가는 속도를 라엘이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론이 거리를 벌리는 족족 따라붙어서 맹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의 실력은 아직 3서클.

하지만 그녀가 가진 【의지】 특성 때문에 실제로는 한 단계 위인 4서클이라 봐도 무방했다.

휘익!

아론은 그녀가 휘두르는 주먹을 피해 잽싸게 왼쪽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오른팔로 화염구를 토해냈다.

화르륵!

짧은 시간에 호흡법을 두 번 머금은 강력한 공격이었다. 그녀에게 직격한다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라엘의 앞에 실드가 나타났다.

후웅!

그렇게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라엘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아론의 공격으로 벗어날 수 있게끔 거리를 벌렸다.

방금 것은 그녀의 힘이 아니었다. 마나로 움직임을 제어하는 레비테이션. 멀리서 라엘을 원호하는 켄트가 시전한 마법이었다.

‘켄트는 5서클이 되더니 동시에 마법을 운용하는 게 능숙해졌어.’

아론은 저 멀리에 있는 켄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켄트도 아론이 그가 가진 【서포터】 특성에 맞추어 지원 마법을 위주로 가르쳤더니 성장 속도가 매우 빨랐다.

‘역시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니까.’

그렇다고 아론이 그들을 키우는 사이에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에게도 성장은 있었다.

쿠웅!

켄트의 발밑에서 큰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땅이 쑤욱 하고 꺼지며 구덩이가 생겼다.

“으앗!”

켄트는 갑작스러운 아론의 방해에 화들짝 놀라면서 쑥 꺼진 땅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이렇게 하면 켄트의 지원은 당분간 끊기게 되겠지.’

아론은 그사이에 라엘을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그는 재빠르게 마법을 시전에 라엘을 향해 화염을 토해냈다.

화르르르!

그녀를 잡아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화염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자, 어떻게 할래?’

여기서는 피하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타앗!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저돌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오히려 화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닌가.

파앙!

라엘의 주먹과 화염 마법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허…….’

아론은 살짝 놀랐다. 그녀의 기세가 마법을 와해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타다닥!

라엘은 순식간에 아론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지근거리에서 주먹에 마나를 실어 아론의 복부를 강타했다.

뻐억!

어차피 여기 있는 세 명은 모두 보호구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손속을 두지 않고 있는 힘껏 아론을 공격했다.

파사삭!

하지만 라엘의 주먹을 맞고 공중에 뜬 아론은 이내 흙으로 변해서 흩어졌다.

라엘은 아차 싶었다. 고개를 돌려 켄트의 상황을 살폈지만…….

파지지직!

켄트는 아론이 날린 전격 마법 연타에 제압당해 버리고 말았다.

남은 사람은 아론과 라엘뿐.

라엘은 켄트의 원호가 있었기에 아론과 비등하게 싸운 것이지, 둘이서 싸웠을 경우엔 승산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아론과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보호구에 있던 구슬이 먼저 부서지고 말았다.

이번 모의 전투도 아론의 승리로 돌아갔다.

“아론님. 저를 쓰러트리기 전에 썼던 마법은 퍼핏이 아닙니까?”

켄트는 아론에게 다가와 물었다.

퍼핏은 순식간에 자신의 모습을 닮은 더미 흙인형을 만들어 내면서 회피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해당 마법은 5서클이 되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이기에 켄트가 놀라면서 묻는 것은 당연했다.

“응. 맞아.”

“언제 5서클에 도달하신 겁니까?”

“아직 난 4서클이야.”

“예……?”

아론의 대답에 켄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론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에 정령을 보여주기로 했다.

퐁!

“이 정령은 그때 던전에서 얻었던 정령석에서 나온 녀석 아닙니까?”

“얘가 내 마법을 도와주거든. 그래서 대지 마법과 관련해서는 5서클까지는 쓸 수 있게 되었어.”

“와…… 정령이란 건 정말 놀랍네요.”

켄트는 눈을 반짝이면서 붕붕 떠다니는 쿠브를 바라보았다.

“아론님이 진짜 5서클이 되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군요.”

“머지않았으니까 기대해도 좋아.”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런데 정말 5서클에 도달하시면 헤카롯으로 떠나는 겁니까?”

“그래. 거기에 내가 꼭 구하고 싶은 정보가 있거든.”

켄트가 염려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하지만 아론의 표정이 완고했기에 무어라고 토를 달 순 없었다.

***

아론이 가고자 하는 헤카롯은 법적으로 아이젠 왕국의 소속이 아니다뿐이지, 영향력으로 따지면 아이젠의 영토라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아론이 가서 아그니 소드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다녔다간 언제 기사들에게 공격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론은 떠나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기에 비밀리에 움직였다.

혹시나 자신의 행방을 알아차린 누군가가 아이젠 쪽에 정보를 흘리는 순간, 좋지 못한 꼴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론은 떠나기 전에 필요한 정보나 물자를 헬브람 백작가의 차남인 로안을 통해서 얻고 있었다.

헬브람 가문은 에드먼스 가문에 물자를 납품하는 곳 중 한 곳이었다.

특히 에드먼스 쪽으로 보내는 물건들은 왕도 쪽보다 더 신경을 써야 했기에 헬브람 가문의 사람이 직접 대표로 와서 일 처리를 진행했다.

아론은 그때를 노려 로안과 접촉하면서 이웨카 길드로부터 정보를 얻으며 물건을 받고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론이 나가는 것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었기에 주로 라엘을 보내 필요한 것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해서 헤카롯에 있는 장인의 동향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아론이 헤카롯에 가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가짜 신분을 만들고, 외모 변환에 필요한 약품의 재료도 구하는 데 성공했다.

여러모로 이웨카 길드가 아론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론만큼 대금을 크고 안정적으로 지불하는 사람이 얼마 없기 때문이었다.

정보 길드의 바닥이 신뢰로 돌아가긴 하지만, 온갖 협잡꾼들도 많기에 아론 정도면은 최상위의 손님에 해당했다.

“아론 님. 이번에 들어온 정보입니다.”

라엘은 헬브람 백작가를 통해 전달된 이웨카 길드의 정보를 아론에게 전달해 주었다.

아론은 들어온 정보가 적힌 종이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으음.”

이내 아론은 표정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무언가 잘못되었나요?

라엘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았다.

“헤카롯에 있는 장인 말이야. 그자의 거취가 요즘 이상하다고 하는군. 하루 정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그 후로 다시 나타나서는 돌연 더 이상 공방의 의뢰를 받지 않는다고 적혀 있어.”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요.”

아론은 받은 종이를 태우고는 라엘을 보며 말했다.

“출발 일정을 앞당겨야겠어.”

“하지만 아론 님. 아직 5서클에는 도달 못 하지 않으셨습니까. 분명 성취를 이룬 다음에 떠나신다고…….”

라엘의 염려에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바뀌었어. 그렇다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헤카롯에 가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게 생겼다. 아론은 그러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이전에 요구했던 바르트한과 젠슨의 정보도 얼마 전에 들어왔었지.’

바르트한에 대한 정보는 별것 없었지만, 젠슨의 정보에서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젠슨은 아이젠 왕국이 비밀리에 꾸린 특임대 소속이었다. 그가 속한 기사단은 행방이 묘연한 칠검의 회수를 위해 조직된 곳이었다.

‘만약 그들이 먼저 움직인 거라면 큰일이야.’

아론은 당장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렇다면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내일 바로 가지.”

어차피 가짜 신분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고, 외모를 바꾸는 약품의 재료도 손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아론의 방문을 두드렸다.

“라엘. 이 시간에 방문하기로 한 사람이 있었나?”

“아뇨. 없습니다.”

아론도 따로 부른 사람은 없었다. 그는 긴장하면서 문을 주시했다.

“……들어가도 되겠나?”

목소리의 주인은 의외의 사람이었다.

“포드 공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론은 직접 문을 열어주며 그를 맞이했다.

“네 녀석이 공작가를 급히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찾아왔다.”

포드의 그 말에 아론은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그는 이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귀신같이 꿰고 있었다.

“라엘. 잠깐만 둘이서 이야기할게. 켄트에게 가서 내 이야기를 전해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렇게 오셔도 괜찮으십니까?”

아론은 포드와 자신의 관계가 드러나는 것을 피해 왔었다. 포드도 스승으로 모시기 전에 그것을 조건으로 요구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공작이라면 모를까, 지금 내가 움직인 것을 알아차린 녀석은 이 저택 내에선 없을 것이다.”

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혀를 찼다.

“그리고 공작은 어차피 우리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겠지.”

“……아마 그럴 겁니다.”

“뭐, 그 부분은 염려 안 해도 된다. 그래서 바로 떠나는 것이냐?”

포드의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상황이 바뀌었거든요.”

“어떻게 돌아가고 있길래 그러느냐?”

“제가 접촉하고자 했던 장인의 거취가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가보려고요.”

아론의 대답을 들은 포드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군. 그래도 어디 가서 객사하진 않겠구나.”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습니다.”

포드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론에게 주었다. 그 정체는 팔찌였다.

“이건 뭡니까?”

“네 무모한 행동을 걱정해서 주는 것이다. 만약 목숨이 경각에 달한다면 그걸 쓰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아론은 진심으로 포드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

“나도 기척을 지우는 것은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이만 가보겠으니 부디 별일 없이 돌아오길 바란다.”

“예, 스승님.”

아론은 포드가 돌아가고 나서 그가 준 팔찌를 확인했다.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착용해 보기로 했다.

‘든든한 기분인걸.’

아론은 자신이 스승은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음 날. 라엘과 켄트의 도움으로 떠날 준비를 빠르게 마치고는 이른 새벽에 마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들의 행선지는 헤카롯이었다.

* * *

아론 일행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최종 목적지는 헤카롯이었지만, 거기까지 마차로만 간다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래서 아론은 중간에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워프 게이트는 에드먼스 공작가가 관할하고 있는 에드닌이라는 대도시에 있었다.

물론 공작가에도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걸 아론이 이용할 수는 없었다. 기록이 확실하게 남기 때문이었다.

“자, 이거 받아.”

아론은 약물이 담긴 병을 라엘과 켄트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말씀하신 얼굴 변환 약물인가요?”

“그래 맞아.”

아론은 대답한 뒤에 자신의 몫을 꿀꺽 마셨다.

그러자 아론의 얼굴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원래 형태는 온데간데없었고, 웬 평범한 얼굴이 아론의 목 위에 있었다.

“헉! 진짜 얼굴이 바뀌는군요!”

실시간으로 그 광경을 본 켄트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그…… 아프거나 그렇진 않죠?”

“아팠다면 내가 먼저 소리 질렀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마셔.”

아론의 그 말에 안심한 켄트는 병에 든 약물을 천천히 마셨다. 라엘 역시 아무 말 없이 약물을 들이켰다.

이내 두 사람의 얼굴도 적절하게 바뀌었다. 그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한참 자신의 바뀐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해가 하늘의 정중앙에 도달하기 직전에 아론 일행은 에드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에드먼스의 관할답게 수도보다도 더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론에게 그러한 광경은 관심이 없었다.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었기에, 곧장 도시 안에 있는 마탑으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마탑을 지키는 경비병이 아론 일행을 가로막았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러 왔습니다.”

“실례지만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아론은 목패로 된 신분증을 내밀었다. 라엘과 켄트도 각자 자신의 신분증을 준비했다.

“다니엘씨……? 죄송하지만 평민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경비병은 아론 일행의 입장을 허가하지 않았다.

워프 게이트는 원래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귀족만이 탈 수 있었다. 게이트를 운용하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들었기에 아무나 태우지 않는 것이었다.

평민으로 신분을 조작한 아론 일행은 당연하게도 탈 수 없었다.

“이걸 봐주십시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인장이었다.

백금화 위에 붉은 깃털이 올려져 있는 그림의 인장. 그것은 헬브람 백작가의 상단임을 뜻했다.

“아…… 헬브람 백작가 소속의 상단 분들이셨군요.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귀족 외에도 탑승할 수 있는 예외가 바로 에드먼스 가문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단이었다.

에드먼스 가문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과 정보를 빨리 받기 위해서 이런 예외를 만들어 뒀었다.

마탑 입구를 유유히 통과한 아론 일행은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넨버, 3명입니다.”

“요금은 합해서 500골드입니다.”

아론은 즉시 대금을 지불하고는 신분증을 내밀었다.

헬브람 상단의 다니엘.

헬브람 상단의 라나.

헬브람 상단의 알프레드.

이용자 명부에는 모두 거짓 신분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론은 속으로 안심했다.

‘이 시각에 워프 게이트를 탄 사람은 내가 아닌 다니엘이라는 사람이다.’

아론은 일행과 함께 대기실에서 워프 게이트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

‘로안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이러한 방식을 준비해 준 사람은 헬브람 백작가의 차남이었다.

아론이 그에게 방법을 구하자 그는 기꺼이 상단 소속의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한 평민이면 몰라도, 상단의 보증이 들어가는 경우는 꽤 위험이 따랐다.

그런데도 로안은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고 실행해 주었다.

로안이 아론을 믿고 해준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 연회를 통해 아론을 관찰한 뒤로 더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아론은 소문과 다르게 신중함과 치밀함을 가지고 있었다. 또, 아이젠의 7왕자를 이길 정도의 무력도 갖춘 상태였다.

이 사람은 에드먼스 가문의 폭풍이 될 사람이다. 로안은 그렇게 판단하고 아론에게 베팅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렇기에 상단의 보증이 들어간 신분을 위조해 주는 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물론 아론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단 가문이니만큼 철저히 이해타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로안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연회 기간 동안 이상적인 이미지를 쌓아 올렸었다.

‘너도 나에게 연을 쌓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만, 나도 그렇거든.’

로안의 상태창에 보였던 【거상】이라는 특성. 언젠가 차남은 자신의 수완으로 헬브람 백작가를 차지하며 차기 백작이 될 게 분명했다.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워프 게이트 준비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론 일행은 게이트를 타고 넨버로 이동했다.

***

넨버에 도착한 아론 일행은 즉시 다른 마차를 빌려 헤카롯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가는 길이 험하다 보니 중간중간 몬스터를 마주하기도 했지만, 아론 일행을 막아설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작된 신분은 잘 먹혀든 모양이었다. 아론은 이동할 때마다 일정 간격으로 추적이 있는가 확인했지만, 아무도 뒤따라 붙은 사람이 없었다.

“저기 헤카롯의 입구가 보이는군.”

아론은 마차 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진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해.”

“알겠습니다.”

아론은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헤카롯의 경비도 아론 일행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아론이 신분증과 상단 인장을 내미니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상단의 보증은 편하구만.’

마탑을 통과할 때도 그랬지만 백작가쯤 되는 상단이 보증해 주니 손쉽게 관문을 지나가는 게 가능했다.

헤카롯에 입성한 아론 일행은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깡! 깡! 깡!

절그럭, 절그럭.

아론 일행은 이 도시의 정체성을 느껴지는 열기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화로가 들끓고 있었고, 무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

사람들은 바삐 각종 자재들을 수레에 날라서 이동했다.

드문드문 무장한 아이젠의 기사들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론은 장인의 공방이 있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여기가 그 사람이 있는 곳이군.’

아론은 어느 공방 앞에 서서 가게를 바라보았다.

이곳의 공방을 운영하는 주인은 뷰란트라는 이름을 가진 장인이었다.

실력은 확실히 보증하지만 특유의 괴팍스러운 성격 때문에 단골들에게만 인기가 있는 가게였다.

‘그럼 진상을 파악하러 들어가 보실까.’

아론은 어째서 그가 돌연 의뢰를 받지 않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끼익.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머리에 두건을 두른 근육질의 남자가 일행을 심드렁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쇼. 미안하지만 지금 수리나 제작 의뢰는 받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만들어둔 것은 팔고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십쇼.”

아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확실히…… 이상한걸.’

장인의 말마따나 이제 제작은 하지 않는지 벽면에는 무기가 몇 개 걸려있지 않았다.

분명 예전에는 걸려있었던 흔적은 여러 개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공방의 공기가 차가워.’

공방은 보통 대장간도 같이 겸하는 곳이었다. 항상 철을 녹이고 두드려야 하니 화로의 열기 때문에 공방은 더워야 정상이었다.

여러모로 위화감이 잔뜩 드는 공방이었다.

그렇게 아론 일행이 공방을 살피는 한편, 뷰란트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뜨내기 녀석들이 분명하군!’

그는 매의 눈으로 들어온 손님들을 탐색했다.

세 사람은 손에 이렇다 할 굳은살이나 상처가 없었다. 그 말은 즉, 무기를 얼마 잡아본 적 없는 녀석들이라는 뜻이었다.

‘무기의 가치도 모르는 녀석들일 테지, 클클.’

이런 상대일수록 바가지를 씌워서 등쳐먹기 좋았다. 특히 허리춤에 찬 두둑한 보따리를 보니 돈은 많아 보였다.

뷰란트는 그들에게 다가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검을 찾고 계신 거 같은데…….”

“예, 맞습니다.”

“제가 몇 개 추천해 드리죠.”

뷰란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칼 하나를 집어서 아론에게 내밀었다.

“이건 제가 자랑하는 야심작입니다.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인 아트뮴 광석을 잔뜩 넣어서 단단히 벼린 검이지요.”

그의 설명을 들은 아론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철로 만든 검인데?’

아론의 눈에는 검의 상태창이 보이고 있었다.

「일반 철검」

그의 말대로 특별한 재료를 썼더라면 뭔가 설명이라도 몇 줄 적혔을 텐데, 이 검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것도 괜찮은 것 중 하나지요.”

뷰란트는 발치에 있는 것을 하나 주워서 아론에게 보여주었다.

“수천 번의 담금질 끝에 나온 걸작입니다. 이 녀석만 있으면 고블린 따위야 한 번에 서걱! 절단 낼 수 있지요.”

「재가공한 철검」

뷰란트가 새로 가져온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한걸…….’

아론은 연기를 해서 녀석의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라나. 네 것도 큰맘 먹고 사줄 테니까, 이 중에서 하나 골라봐!”

아론은 라엘의 가짜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말했다.

눈치 빠른 라엘은 곧바로 아론의 말에 호응했다.

“어머, 정말요?”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다 사줄 수 있어!”

아론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약혼 선물로 칼을 주신다니…….”

라엘은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론은 그런 라엘의 모습을 보며 이 아이가 은근히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흐. 그저 애인에게 돈 자랑을 하고 싶은 망나니였군.’

뷰란트는 그 둘의 행각을 보면서 속으로 탐욕스러운 미소를 흘렸고.

‘……라고 생각하겠지.’

아론은 생각이 뻔히 드러나는 그를 보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선물용이라면 안쪽 창고에 더 좋은 물건들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흐흐, 따라오시죠.”

아론은 뷰란트를 뒤따라가며 그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 녀석. 뷰란트가 아니군.’

그의 눈에는 장인의 상태창이 보이고 있었다.

【상태창】

· 이름 : 콘테 르나오

· 스테이터스

체력 85 마력 42

근력 79 민첩 61

지력 24 친화력 53

· 상태 : 【변신】

진짜 그의 이름은 콘테.

거기다가 상태 항목에는 ‘변신’이라고 적혀 있다.

이 자는 뷰란트가 아니었다.

아론이 눈치챈 것도 모르는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창고로 들어갔다.

“자, 자. 이건 어떻습니까? 1천 골드에 판매가 예약되어 있었는데 사정으로 취소가 된 검입니다. 싸게 할인해서 500골드에 드리지요.”

그가 자랑하는 창고에 있는 검들도 영 상태가 좋지 못했다.

‘이딴 걸 500골드에 파려고 한다니.’

아론은 코웃음을 쳤다.

“뭐야? 왜, 왜 웃는 겁니까?”

그가 당황하면서 아론을 쳐다볼 때.

끼이익. 쾅.

뒤따라 들어온 켄트가 창고 문을 닫아버리고는 그곳을 지키기 시작했다.

“……당신들 뭐야!”

“여기면 딱 좋네. 남들 시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아론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그의 팔목을 잡아챘다.

“우리 이야기 좀 나눠 보실까?”

아론의 말을 들은 뷰란트의 모습을 한 콘테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

콘테의 입장에선 아론 일행의 행동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자신이 이들을 등쳐먹으려고 했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을 노리고 이러는 거야?”

콘테는 당황해서 눈알을 굴렸다.

“경비대를 부르겠소!”

그는 그렇게 윽박을 지르며 일행에게 경고했다.

아무래도 그는 순순히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론은 어느새 콘테의 뒤에서 대기 중인 라엘을 보았다. 아론이 눈짓으로 신호하자 라엘은 콘테를 제압해 바닥에 넘어뜨렸다.

쿵!

“정말로 경비대를 부를 생각이야?”

아론은 콘테를 내려다보며 그의 몸을 자세하게 탐색했다.

‘녀석이 차고 있는 목걸이. 미약하지만 마나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어.’

그는 쪼그려 앉아서 그 목걸이를 손으로 잡았다.

“이게 비밀인가?”

“그, 그건……!”

투둑!

아론은 힘을 주어서 목걸이를 뜯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누가 봐도 대장장이라고 할 만한 거구의 몸은 온데간데없었고, 라엘의 밑에는 평범한 남자가 있었다.

“이게 네 진짜 모습이었군.”

아론은 침착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신기해했다.

‘이렇게 변장할 수도 있는 아티팩트가 존재하다니.’

아론은 헤카롯으로 오기 전에 변장을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수소문했었다. 하지만 얼굴을 바꾸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데 얼굴뿐만 아니라 체형도 바뀌는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라니. 아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이웨카 길드가 보냈던 정보가 이해가 되는군.’

뷰란트의 행동이 돌연 이상해져 버린 이유는 다름 아니라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도, 내가 이런 짓에 굴할 줄 아느냐!”

콘테는 그렇게 외치면서 라엘의 속박을 뿌리치고는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칼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다시 라엘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으윽!”

콘테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녀석들…… 뜨내기들이 아니었던 건가?’

이래 봬도 그는 3서클 기사와 맞먹는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근육도 없어 보이는 여자가 자신을 이리 쉽게 제압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녀석들을 건드린 건 확실해.’

콘테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후회했다.

‘그냥 어제 헤카롯을 떠났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콘테가 버둥거리는 사이, 아론은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얼른 뷰란트를 만나고 싶었는데, 와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녀석만 있고 말이야.’

아무래도 뷰란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이 자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네 정체는 뭐지?”

“……흥!”

아론이 콘테를 향해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렇게 회피해서 좋을 거는 없을 텐데. 다시 묻지. 여기에 있던 대장장이는 어디로 갔지?”

“내가 쉽게 입을 열 것 같으냐?”

아론은 뒷목을 잡으며 일어났다.

“후회할걸?”

그렇게 말하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허공에 물이 생성되었다.

“라나. 꽉 잡고 있어.”

“네.”

아론은 라엘의 가짜 이름을 부르면서 일러두었다.

아론은 자신의 얼굴보다 크게 만들어진 물 덩어리를 움직여서 결박된 콘테의 얼굴을 향해 이동시켰다.

“으븝! 으브븝!”

얼굴이 물에 완전히 잠기자 콘테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라엘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결박을 푸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

콘테는 지독한 녀석이었다.

한두 번 물고문으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아론은 녀석이 말할 기분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고문했다.

그 혹독한 과정에서 라엘과 켄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허억, 허억!”

콘테는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몰골은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었다.

“한 번 더 간다.”

“살, 살려주십시오!”

콘테는 기겁해서 버둥댔다.

“살고 싶다면…….”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를 다 말해드리죠!”

촤학!

아론은 허공에 떠 있는 물 덩어리를 콘테의 얼굴에 뿌렸다.

“이번엔 장난치지 말고. 다음 기회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네, 넷!”

아론은 녀석이 기회를 타서 도망갈 수 있었기에 결박을 풀지는 않았다.

“네 이름은?”

혹시 콘테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까 시험하기 위해 이름을 먼저 물었다.

“콘테입니다.”

녀석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여기서 일하는 대장장이가 뷰란트인 건 알고 있겠지? 그자는 어디에 있지?”

아론이 본론부터 묻자 콘테는 눈을 굴리며 뜸을 들였다.

“다음 기회는 없다고 했을 텐데?”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콘테의 팔을 확 꺾었다.

뚜두둑!

“으아악! 파, 팔았습니다! 녀석은 제가 팔았어요!”

“어디로 팔았지?”

그 물음에 콘테가 또다시 뜸을 들이자 아론은 한 번 더 팔을 세게 꺾어버렸다.

뚜두두둑!

“으아아악!”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싸늘한 시선으로 콘테를 바라보았다.

“나를 상대로 시험하려고 하지 마라.”

“흐윽, 흐윽…… 크로머 길드입니다.”

콘테는 울먹거리면서 대답했다.

녀석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아론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이전에 아그니 소드를 훔쳐 왔던 창고의 소유자가 크로머 길드였었다.

‘불법적인 걸 전문적으로 한다더니, 사람도 사고파나 보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이미 뷰란트가 구할 수 없는 곳에 팔려가거나 죽어 버렸다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런데, 네 실력으로는 뷰란트를 손쉽게 납치하긴 힘들었을 텐데? 그는 거구의 대장장이라고 들었다.”

물론 콘테도 힘 좀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뷰란트가 마음먹고 저항한다면 시간을 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론이 물었지만 콘테는 입을 꾹 닫았다.

“너는 멍청이로군.”

파지지직!

아론은 녀석의 몸에 전류를 흘려 넣었다.

“끄르륵!”

콘테는 예고도 없이 들어온 전기 충격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진정된 콘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뷰란트…… 그놈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문의 여파로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드워프, 였었죠…….”

콘테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나왔다.

“드워프라고? 자세히 말해봐.”

아론이 묻자 콘테는 더 이상 고문받기 싫었는지 뷰란트에 대해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봤습니다. 이곳의 대장장이가 갑자기 인간의 모습에서 드워프로 바뀌는 것을요.”

“그 말은, 모습을 바꿔주는 이 목걸이가 네 것이 아니라 원래 대장장이 거라는 말이군.”

그 물음에 콘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목걸이는 드워프가 만든 건가?’

그렇다면 체형마저 바꿔버리는 변장 능력이 이해가 갔다.

‘드워프의 손재주에 마법 지식이 결합되니까 이런 것도 만들어지는구만.’

아론은 목걸이를 내려놓고 계속해서 콘테의 말을 들었다.

들어보니, 그는 여러 도시를 떠돌며 물건을 훔쳐 크로머 길드에 파는 도둑이었다.

그가 헤카롯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털 가게를 물색하던 도중에 뷰란트의 비밀을 엿보게 된 것이었다.

“그는 거구의 인간 대장장이가 아니라, 아직 어린 드워프였습니다.”

그 순간, 콘테는 이종족을 노예로 팔면 어마어마한 돈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고 했다.

드워프는 전사가 아니면 그다지 무력이 세지 않았다. 심지어 어린 드워프라면 제압하기 쉽겠다 싶어 납치를 실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서 빼앗은 목걸이를 껴보니까 형태를 똑같이 바꿀 수 있더군요. 그래서 당분간 대장장이 행세를 하면서 여기 물건도 모두 팔아치운 뒤에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필 아론이 들이닥쳐서 허사로 돌아가 버리고 만 셈이었다.

‘뷰란트가 드워프였었다니…….’

그 이야기를 들은 아론은 확신했다. 뷰란트라면 아그니 소드를 새 아티팩트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하면 칠검에 대한 정보도 얻을지 몰랐다.

‘이 녀석만 아니었어도,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

그걸 생각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어차피 아론은 상태창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콘테가 납치만 안 했더라도 그가 드워프임을 알아보고 이야기를 진행했을 것이다.

한편, 모든 것을 털어놓은 콘테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드워프를 팔아치우고 돈은 받았어. 살고 봐야 하니까 일단 이 녀석에게 협조하자.’

콘테는 촉이 서기 시작했다. 도둑 생활을 몇 년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눈치 덕분이었다.

‘여기 있는 무기들을 전부 돈으로 못 바꾼 건 아쉽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속으로 결정을 내린 콘테는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드워프 대장장이를 찾으시는 거 같은데,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아론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

아론은 콘테가 어떻게 나오나 살펴보기로 했다.

“크로머 길드에서는 드워프를 다시 비싼 값을 매겨서 팔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건 다행이었다. 적어도 경매가 끝나기 전까지 뷰란트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노예 시장에서 경매로 나오겠군.”

“예, 맞습니다. 이틀 후에 헤카롯에서 경매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대금만 지불하면 드워프를 다시 사 올 수 있을 겁니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는 콘테를 째려보았다.

“너만 아니었어도 지금 드워프를 만났을 거 아니야?”

“그, 그건 그렇죠…….”

아론은 이어서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잠깐만…… 이 녀석은 딱 봐도 지금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군.’

원래라면 녀석에게 드워프의 구매 대금을 지불하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론은 더 좋은 수가 떠올랐다. 아직은 자기가 살길이 있다고 믿도록 해주는 게 좋았다.

“후우. 그럼 경매를 노려봐야겠군.”

아론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순간, 콘테는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물론 너도 같이 가야 된다.”

아론의 그 말에 콘테는 좋았다가 말았다.

* * *

헤카롯은 오래전부터 장인들의 도시로 유명했다.

이곳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 근처에 자원을 수급하기 쉬워서 물자 부족에 시달릴 일도 없었고, 아이젠 왕국이라는 거대한 장비 수요처도 있었으니 내로라하는 대륙의 장인들은 다 이곳으로 모였다.

장인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이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구가 마음속에 있었다. 특히 여러 장인들이 모이다 보니 그 욕구는 더 커졌었다.

그래서 그들은 공방을 운영하는 것을 넘어, 모두가 모여서 무기를 파는 경매장을 개최했다. 거기서 제일 비싼 값에 팔리면 인정받는 장인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헤카롯 경매장의 기원이 되었고, 첫 경매가 성황리에 끝나다 보니 경매는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다 보니 무기의 질은 아주 좋았고, 그것을 사기 위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경매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는 무기뿐만이 아니라 희귀한 온갖 것들을 경매로 구할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헤카롯에서 경매가 열리는 기간 동안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소장욕이 넘치는 귀족들은 연례행사처럼 이곳에 몰려들었다.

도시도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동시에 경매의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경매 기간 동안에는 검문을 따로 하지 않았다.

경매에선 온갖 것을 팔다 보니까 익명 보장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원래 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그 정책에 반발을 가졌고, 경매 기간 동안 불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언제나 돈도 같이 몰리는 법. 그들이 경매 기간 동안 체류하며 도시에 쓰는 돈은 이곳 사람들의 치안 걱정을 단숨에 날릴 만한 규모였다.

아론은 콘테에게서 들은 대로 경매에 참여할 준비를 했었고, 그렇게 경매 당일이 되었다.

‘전날에도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도시가 복작거렸는데, 오늘은 더 하군.’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생각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가리기 위해 모두 가면을 쓴 상태였다. 길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고 움직이니 아론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마치…… 할로윈날의 이태원을 연상케 하는걸.’

물론 아론 일행도 철저하게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한 상태였다.

“다니엘 님. 거리가 시끌벅적하네요.”

라엘이 다니엘이라 부른 거구의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름 아닌 아론이었다. 아론은 가면을 착용한 것으로도 모자라 콘테에게서 뺏은 목걸이를 사용해 뷰란트의 인간 모습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저게 다 경매가 열리는 걸 기다리는 인원들이겠지.”

아론은 그렇게 말한 뒤, 라엘과 켄트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약속한 대로 움직인다. 알겠지?”

“……괜찮겠습니까?”

아론의 물음에 켄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충분히 머릿속으로 돌려봤어. 괜찮을 거야. 가 봐.”

“알겠습니다.”

라엘과 켄트는 아론과 헤어져 이동했다.

이제 아론과 콘테만이 남은 상황. 그 둘은 인파를 뚫고 경매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제5 경매장이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아론의 물음에 콘테가 대답했다.

헤카롯에서 열리는 경매는 규모가 워낙 컸다. 그래서 담당하는 길드별로 경매장이 나뉘었는데, 제5 경매장은 크로머 길드가 메인이 되어 주최하는 곳이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콘테는 익숙한 듯이 앞서서 아론을 안내했다.

그는 아론에게 고문을 당한 후, 최대한 숙이면서 싹싹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최대한 이번 일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어차피 드워프를 팔고 돈은 챙겨 뒀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복도를 지나 5라고 쓰여 있는 곳이 보였다. 안은 넓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매가 열리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물론이지요.”

아론은 콘테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경매에서 두 사람의 역할은 콘테가 대표였고 아론이 수행원이었다.

아론이 콘테를 굳이 데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경매를 하는 동안 그를 전면에 대리로 내세워서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감출 생각이었다.

물론, 아론이 직접 변장한 채로 경매를 하는 것이 덜 번거롭고 편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아론이 입찰하고자 하는 것은 그 희귀하다는 드워프였다. 경매 후에도 미행이 붙거나 하는 잡음이 생길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서 콘테를 버림 패로 쓸 예정이었다.

‘이 녀석은 그런 것을 모르겠지.’

기껏해야 운 좋은 좀도둑이었다.

드워프의 값어치가 얼마나 귀한지 몰랐기에,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를 알지 못했다.

아론은 콘테와 함께 제5 경매장에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의 상태를 살폈다.

아론이 대동한 것처럼 대부분은 귀족 한 명이 수행원 하나를 데리고 참가했다.

그들의 수행원은 한 명뿐이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데려온 자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아론은 피부로 느끼는 중이었다.

익명으로 참여하는 경매에는 언제나 봉변을 당할 위험이 있었기에 귀족들은 제일 강한 수하를 수행원으로 대동해 참가했다.

‘곳곳에 길드 녀석들이 숨어 있구만.’

크로머 길드도 경매의 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불법적인 것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다 보니 빠삭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경매장의 경비가 허술했더라면 몰래 숨어들어서 드워프를 빼 오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머 길드는 꽤 많은 수의 길드원들을 잠입 시켜 둔 상태였다.

‘드워프를 빼돌리는 건 힘들겠군.’

할로움에서 아그니 소드를 탈취했던 것처럼, 도면이라도 있으면 또 몰랐다. 그러나 이곳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할 수 없이 경매에 참여해야 하네.’

경매는 일단 콘테를 대리로 세웠더라도 전면에 나서야 했고, 또 경쟁이 붙어버린다면 골치가 아파져서 싫었는데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여러분! 제5 경매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잠시 후, 무대 위에서 진행자가 마법으로 확장시킨 목소리로 개막을 알렸다.

짝짝짝!

사람들은 박수로 경매를 환영했다.

기본적으로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희귀한 물품을 수집하러 온 귀족이었다. 경매품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드르륵-.

무대 위로 물건들을 실은 테이블이 들어왔다.

“그럼, 물품 경매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야심 차게 수집한 다섯 종의 아티팩트를 이 자리에서 공개하도록 하지요!”

물품을 가리던 보자기를 걷자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진행자는 그중에 하나를 집어서 본격적인 경매를 시작했다.

“이 반지, 보이십니까?”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걸 낀 사람은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특히, 사교계에서 상대에게 호감을 사고 싶은데 말주변이 없어서 걱정하시는 분들! 이 마법의 반지만 있으면 별말 하지 않더라도 상대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낄 겁니다!”

귀족들은 감탄하면서 진행자의 설명을 들었다. 첫 물건부터 실용적이면서도 희귀한 것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름하여 매혹의 반지! 오백 골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귀족들은 주어진 피켓을 들며 경매에 참여했다.

‘경매는 이런 식이군.’

대충 돌아가는 것을 파악한 아론은 드워프가 경매품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물론 계속해서 가만히 있는 것은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호응도 해 주고, 콘테를 시켜 거짓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론이 흥미롭게 경매를 관찰할 때쯤, 물품 경매가 끝나 있었다.

“여러분! 이번 차례를 기다리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노예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오오오!”

무대에 등장하는 노예 행렬에 사람들은 열광하며 호응했다.

“첫 번째 노예는 그 희귀하다던 수인입니다! 대양 건너 로스터릭 대륙에서만 볼 수 있는 늑대인간을, 저희가 폭풍 해역을 뚫고 공수해 왔습니다!”

첫 번째 노예는 늑대인간이었다. 인간보다 훨씬 건장한 몸에, 상체에 털은 물론 위에는 늑대의 귀가 쫑긋 나 있었다.

‘저런 것도 존재했었어?’

아론은 메도우드 왕국이 속한 대륙의 이야기만 알고 있었기에, 다른 대륙의 생태는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직접 늑대인간을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진귀한 이종족에 한껏 흥분하여 경매에 참여했다.

아론의 입장에서는 노예 제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아론의 속에는 현대인인 강현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 사람들에게는 이런 제도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녀석은 아직인가?”

그때, 아론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론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눈을 흘깃거렸다.

그곳에는 펑퍼짐한 옷을 입었음에도 탄탄한 몸이 얼핏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설마?’

아론은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 이름 : 젠슨 로이엔

· 스테이터스

체력 185 마력 117

근력 174 민첩 100

지력 80 친화력 132

아론은 놀라고 말았다.

익숙한 목소리다 싶었는데 정말 젠슨이었을 줄이야.

‘단순히 무기 경매에 참여하려고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이미 물품 경매는 끝났고, 노예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무기를 구하러 왔었다면 진즉 나갔을 것이다.

‘그 녀석이라고 했었지. 분명 저놈의 목적은 드워프일 것이다.’

무슨 연유에서 젠슨이 드워프를 확보하려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합리적인 추론은 가능했다. 저자가 속한 아이젠의 특임대는 칠검의 확보가 목적이었다.

아마 칠검의 소재를 다룰 수 있거나 제작과 수리가 가능할 법한 드워프들도 그들의 목표인 모양이었다.

‘이거 까다롭게 되었군.’

저들의 뒤에는 아이젠 왕국이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경매에 진심으로 응할 게 눈에 선했다.

‘내가 입찰을 받아도 문제군. 아이젠의 특임대 녀석들이 기를 쓰고 쫓아 오겠어.’

아론은 그 점을 대비해서 콘테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겉으로 자신은 이 녀석의 수행원 역할이었고, 목걸이를 이용해 형태도 완전히 바꾼 상태였다. 괜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의심은 사지 않을 터였다.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때, 젠슨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차. 너무 시선을 거기에만 두고 있었나.’

아론은 황급히 눈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고 보지 않았음에도 시선을 느낀 젠슨의 감각은 가히 동물적이라 할만했다.

“이번 경매의 마지막 노예입니다!”

다행히도 진행자 덕분에 젠슨의 시선은 다시 무대로 향했다.

“아주 희귀한 녀석입니다! 바로…… 어린 드워프입니다!”

드디어 마지막 노예가 공개되었다.

“오오, 드워프다!”

“직접 눈으로 볼 줄이야…….”

귀족들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드워프를 바라봤다.

경매로 올라온 드워프는 종족 특성상 키가 작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직 어린애라는 느낌이 물씬 났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5천 골드부터 시작하지요!”

설명이 끝나고 진행자는 경매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드워프를 노린 여러 귀족들이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 * *

드워프의 근원은 너무 먼 옛날의 이야기라 확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손재주가 좋았고, 광물을 사랑했기에 자연스럽게 제련에 소질이 있는 자들이 많았다.

드워프의 주거지는 좋은 광물을 공수할 수 있는 산이었다. 특히, 드래곤의 보호를 받는 그린데란트 산맥은 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으며 가장 많은 드워프들이 모여서 나라를 이루고 생활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인간과 드워프가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을 좋아했으며, 선의로 제련 기술을 전수해 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워프의 기술을 탐내는 인간들을 비롯해 그들을 노예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드워프와의 교류는 끊기게 되었다.

보통 드워프 하면 키가 작고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생각나는 것이 널리 퍼진 관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과 비슷하게 다양한 연령대에 갖가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눈에는 지금 무대 위에 있는 것이 드워프라고 해도 단순한 아이로 보이니 신기할 뿐이었다.

돈 좀 있는 귀족들은 저 드워프를 입찰하기를 원했다. 호기심에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고, 몇몇 귀족은 제작 노예로 쓰려고 원하기도 했다.

5천 골드에서 시작한 가격은 계속해서 치솟는 중이었다.

“저 드워프가 네가 납치한 그 드워프인가?”

아론은 콘테를 향해 조용히 속삭이며 물었다.

상태창으로 확인하면 되겠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불가능했다.

콘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입찰 진행해.”

아론의 허가가 떨어지자 콘테는 피켓을 들며 열정적으로 경매에 참가했다.

“경매가가 1만 골드를 돌파했습니다! 열기가 뜨겁군요!”

진행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의 참여를 부추겼다.

그러나 돈이란 것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 1만 골드를 넘어 3만, 5만 골드가 되자 서서히 탈락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10만 골드가 넘어서자 세 명만이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풍채 좋은 귀족 한 명과 아론이 조종하고 있는 콘테, 그리고 젠슨이었다.

그들은 번갈아 피켓을 들면서 경매가를 실시간으로 높이는 중이었다.

“20만 골드 돌파! 이 드워프의 값어치가 어마어마합니다!”

“미쳤군!”

“대체 얼마나 돈이 넘치는 거야?”

진행자는 물론이고 3인의 경쟁을 구경하는 귀족들도 그 액수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하, 미치겠군!”

결국 25만 골드를 넘어서자 풍채 좋은 귀족이 피켓을 던지며 화를 내었다.

이제 아론과 젠슨만 남은 상황.

둘은 경쟁하면서 가격을 계속해서 올렸다.

“왼쪽 귀족분이 30만 골드를!”

“허어!”

콘테가 피켓을 든 순간, 미쳐가는 가격에 주변의 열기가 들끓었다.

아론은 젠슨의 동태를 흘긋 살펴보았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웬 미꾸라지가 경매를 망쳐 놓고 있으니 짜증이 치미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아이젠 왕국을 뒤에 두고 있다고 해도 슬슬 위험할 정도로 지른 거겠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오른쪽 분! 더 안 부르실 겁니까?”

사회자가 젠슨을 부추겼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손을 들었다.

정해진 가격대로 경매가를 올리는 게 아니라, 직접 금액을 제시하겠다는 의견 표시였다.

다들 젠슨이 얼마를 쓸지 궁금해서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와우! 40만 골드! 40만 골드가 나왔습니다!”

아론 측이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자 아예 범접하지 못하도록 10만 골드나 더 써서 가격을 낸 것이었다.

경매장의 분위기는 뒤집힐 것 같이 열광했다.

“허억! 어떻게 합니까?”

콘테는 숨을 삼키며 아론에게 다음 지시를 요구했다. 아무리 조종받는 입장이라도 40만 골드는 머리가 띵 해지는 가격이었다.

“계속해.”

하지만 아론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40만 골드라니까요?”

반면 콘테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자기 돈이 아닌데도 살이 떨리고 있었다.

아론은 말없이 숨기고 있던 것을 콘테만 볼 수 있도록 드러냈다.

“그건!”

아론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에드먼스 가문의 인장이 찍힌 패였다.

거기에는 숫자가 ‘500,000’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의 역할은 일종의 수표였다. 패에 찍힌 인장은 해당 가문이 항상 교환을 보증한다는 의미였고, 숫자는 그 패의 가치였다.

이 대륙에서는 에드먼스 가의 패가 화폐의 대용으로 써도 무방할 만큼 신용도가 높았고,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론은 콘테에게 이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단지 인장이 찍힌 패를 들고 있다고 해서 에드먼스 가문의 사람으로 의심받을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조금 특별한 패긴 하지만.’

굳이 콘테에게 그걸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날 믿고 10만 골드 더 얹어. 그 정도 금액이면 저쪽도 나가떨어질 거다.”

“알겠습니다.”

콘테는 더 이상 아론에게 토 달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앗! 왼쪽 분도 가격 표기를 원했습니다! 과연 얼마를 부르실까요!”

잠시 후, 콘테는 자신 있게 50만 골드를 적어서 들었다.

“오른쪽 분이 제시한 가격에 10만을 더 얹은 50만 골드! 이거 놀랍군요!”

한 차례 금액이 더 올라가자 경매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자! 더 입찰하실 겁니까?”

진행자는 젠슨을 바라보며 외쳤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입찰을 포기했습니다! 이 어린 드워프는 50만 골드에 오른쪽 분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아무리 이종족이라 할지라도 노예 한 명에 50만 골드라니. 경매장에서는 이번 낙찰에 대해 이야기 하느라 왁자지껄했다.

한편, 젠슨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콘테를 바라보았다.

***

아론은 콘테와 함께 제5 경매장을 뒤로하고 크로머 길드의 안내인들을 따라 정산소로 향했다.

무려 50만 골드를 지불할 손님이었기에 꽤 많은 길드원들이 아론 일행을 향해 붙어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돈 가지고 있는 거 맞아?”

“의심스럽긴 한데…… 사람 행색 가지고 딴지를 걸 순 없잖아.”

“혹시나 거짓말 한 거였어 봐.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 줄 테니까.”

뒤편에서 따라가던 크로머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그들이 보기에 두 사람의 모습은 전혀 거금의 골드를 지녔을 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후, 정산소에 도착한 아론과 콘테. 거기서 반겨주는 것은 아까 무대에서 보았던 진행자였다.

“드워프 낙찰, 축하드립니다.”

그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순식간에 두 사람을 관찰했다.

‘돈이 많아 보이는 것 같진 않은데…….’

진행자는 눈짓으로 뒤의 길드원들에게 지시했다. 혹시라도 도망칠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잡으라고 말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무래도 금액이 크다 보니…… 저희 쪽 총지배인님이 오실 겁니다.”

진행자는 오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치 거짓말로 경매를 망쳤으면 각오하라는 것 같은 의미가 담긴 시선이었다.

잠시 후.

쿵! 쿵!

땅이 울리더니 누군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덩치군.’

아론도 지금 목걸이의 힘을 이용해 변장한 상태였지만, 그보다 훨씬 컸다.

피부색이 녹색이었다면 오크로도 착각할 법한 덩치였다.

“총지배인인 고트요.”

쿵!

그는 큰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았다.

“드워프가 꽤 비싸게 낙찰되었다고 들었소. 미안하지만, 익명 경매 특성상 그쪽 신분은 우리가 알 수 없으니 돈을 보여주시겠소?”

총지배인의 말에 콘테는 태연하게 품속에서 패를 꺼냈다. 경매가 끝난 직후 아론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그걸 본 고트는 눈이 동그래졌다.

“…… 가짜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소?”

“정 못 미더우면 확인해보시오. 누가 감히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에드먼스 가문의 인장을 위조한 패를 들고 다니나?”

콘테는 당당하게 나갔다.

그 말에 총지배인은 헛기침을 하더니 도구를 이용해 패를 감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헤카롯에서 열리는 경매는 낙찰자가 익명이다 보니까 종종 사기도 일어난다. 패를 위조하는 일도 물론 포함되었다.

총지배인은 여기서 오래 일하면서 위조 감별에 도가 튼 사내였다.

“흐음…….”

확인을 마친 총지배인은 씩 웃으며 말했다.

“진짜가 맞구려. 이봐! 상품을 내어오게!”

그 말에 길드원들은 다른 방에 있던 드워프를 데려왔다.

어린 드워프는 온몸이 묶여 있었고, 주변을 볼 수 없도록 머리에 천이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매가 끝나자마자 약물을 강제로 먹여 잠이 들게 해 놓았었다.

“드워프들이 온데간데없이 숨어버린 이 시국에, 이 녀석들 구하기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소? 당신들은 운이 좋은 거요.”

총지배인의 그 말에 콘테는 말없이 패를 건네주었다.

“챙겨 가시오.”

아론은 드워프를 들었고, 콘테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어린 녀석이라 가볍군.’

한편,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본 크로머 길드 소속의 진행자는 혀를 차며 말했다.

“거 추레하게 생겨 가지곤…… 돈은 많네. 총지배인님. 그 패, 가짜는 아니겠지요?”

“백방으로 확인했지만 에드먼스의 인장은 진짜였소. 그들의 것은 정교하게 마나로 손질했기에 위조하면 곧장 들통이 나지.”

“그래도 모르니 다시 한번 더 확인 부탁드립니다.”

“거, 귀찮게…… 알겠소. 50만 골드가 뉘 집 개 이름은 아니니 얼마든지 다시 봐 드리지.”

다시 보아도 에드먼스의 인장이 확실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건 아론이 소유하던 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의심되면 사람을 붙이시오. 뭔가 건수라도 잡히면 헤카롯을 떠나기 전에 붙잡든가 하는 게 어떻소?”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총지배인님.”

비록 가면을 썼지만 그들은 콘테의 체형을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나갔으니 미행을 붙이기도 쉬웠다.

그러나 그들의 뇌리에서 변장을 한 아론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옆의 수행원까지 생각할 만큼 그들은 한가하지 않았다.

***

아론과 콘테는 허름한 여관으로 가서 드워프를 확인했다.

이 여관은 경매장에 출발하기 전에 헤어진 라엘과 켄트 쪽이 예약해 둔 방이었다.

“넌 여기서 쉬어라. 아니면 도망가도 좋다.”

“……예?”

“난 도시를 떠날 거다.”

갑작스러운 아론의 말에 콘테는 당황했다. 갑자기 자유를 얻게 되니 그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헤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는 입 밖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하고 있었다.

‘드디어 정체 모를 이 녀석과는 안녕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아쉬운 연기를 하였다.

“덕분에 좋은 경험 했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손 씻고 착하게 살아라. 아니지, 그러기엔 너무 늦었나?”

아론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여관 방문을 닫고 그곳을 나왔다.

‘흥!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콘테는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오늘은 별일을 다 겪어 피곤하니 푹 자고 내일 여기를 벗어날 계획이었다.

‘흐흐, 드워프를 팔아넘긴 돈은 뺏기지 않아서 다행이야.’

콘테는 헤실헤실 웃으며 그 돈으로 뭐할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한편, 아론은 여관 뒤편의 으슥한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대기 중인 마차가 한 대 있었다.

“무사히 오셨군요!”

안에서는 라엘과 켄트가 아론의 무사 귀환을 반겨주고 있었다.

털썩.

그는 드워프를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탁.

잠시 후, 허공에서 아론의 근처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의 정체는 아까 정산소에서 콘테가 지불한 에드먼스의 패였다.

“정말이네요! 계획하실 때 말씀해 주셨던 대로 패가 돌아왔어요!”

라엘은 감탄하면서 아론을 바라봤다.

“설명하실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진짜 이렇게 되네요.”

“응. 내 신분을 증명해주는 거니까. 이런 기능도 담겨 있지.”

아론이 콘테에게 준 것은 진짜 에드먼스의 인장이 찍힌 패가 맞았다.

하지만 그 용도는 속여서 말했었다. 이건 대금 지급용이 아니라 에드먼스 혈육의 신분을 확인하는 용도였다.

패에 적힌 ‘500,000’이라는 숫자는 아론이 마법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주인과 떨어진 패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력을 동조 시켜 다시 주인이 있는 곳으로 소환되는 기능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마차에 있는 아론의 곁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자, 출발하지. 이제 크로머 길드 녀석들은 노발대발하면서 콘테를 잡으로 올 거야.”

아론 일행은 경매가 열리는 곳의 반대 방향으로 마차를 끌고 헤카롯을 빠져나갔다.

헌터, 공작가 망나니 되다 2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