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7/40)

Chapter 2

갑자기 나타난 녀석의 모습은 참으로 기괴했다.

얼굴만 보면 임프 같이 생겼는데, 그 덩치가 매우 컸다. 검붉은 색의 몸체는 불길함을 자아냈으며 녀석의 손에는 임프의 시체가 들려있었다.

아론은 켄트를 끌어당겨서 녀석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뭐야, 저 녀석은?”

“블러드 임프라는 놈입니다.”

“블러드 임프?”

아론은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임프들 중에서 아주 희귀하게 발생하는 변종입니다. 녀석들은 같은 임프들을 먹어치우면서 성장합니다.”

켄트의 설명을 들은 아론은 이해가 갔다. 왜 본거지의 임프들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이 보였는지 말이다.

“그러면 설마 우두머리도 저 녀석이 먹은 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블러드 임프가 본거지의 우두머리를 먹어치웠다면 녀석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설명이 되었다.

“매우 곤란한 상황이군요.”

“도망칠 방법은 있나?”

아론은 블러드 임프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며 말했다.

녀석은 남은 란돌의 조원들을 사냥하는 상황이었다. 이제 그 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두 명밖에 없었다.

“힘들 것 같습니다. 녀석이 저 두 명을 잡은 뒤에는 우리를 추적할 겁니다.”

“그럼 싸울 수밖에 없겠군.”

“습지가 넓긴 하지만 교관님도 이변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교관님이 오실 때까지만 버티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녀석을 잡을 거다.”

“예? 왜요?”

켄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방금까지 자신의 설명을 아론이 어떻게 들었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저 녀석이 우두머리를 먹었다 쳐. 그럼 저 블러드 임프를 잡아서 뿔을 획득하면 더 많은 점수를 줄 거 아니야?”

“아이고, 아론 님…….”

아론의 생각을 들은 켄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게 아카데미는 그저 거쳐 가는 과정이야. 빨리 졸업할수록 이득이지.”

“……그럼 저도 같이 전력으로 싸우겠습니다.”

켄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혼자 도망가 봤자 블러드 임프의 어그로만 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콰득!

블러드 임프가 왼손에 들고 있던 임프의 사체를 씹어 먹었다. 그러자 녀석의 눈이 더욱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나 흐름이 변하고 있다.’

녀석은 사체를 먹으면서 원기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아론은 그것을 보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아!”

그때였다. 블러드 임프가 사체를 먹는 틈을 타서 한 명이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블러드 임프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녀석은 곧장 도망가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가했다.

콰직!

그는 실드 마법을 두른 채로 달렸지만 블러드 임프의 공격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녀석의 주먹은 그대로 그의 배를 꿰뚫었다.

“지금이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어나서 마법을 시전했다. 손에서 방출된 마나는 화염이 되어 블러드 임프를 향해 날아갔다.

켄트 역시 아론과 합을 맞춰서 동시에 마법을 발사했다.

타악!

그러나 블러드 임프의 움직임은 날랬다. 녀석은 사체를 내동댕이친 뒤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 뭐야?”

켄트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론은 당황하지 않고 전방에 실드 마법을 전개했다.

촤학!

블러드 임프는 땅밑을 뚫고 나와 아론을 향해 공격했다.

‘역시!’

아론은 실드 마법을 펼친 덕에 녀석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블러드 임프는 잽싸게 다음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타앙!

녀석의 공격은 새로 생겨난 여러 겹의 실드에 막히고 말았다. 그 실드는 켄트가 씌워 준 것이었다.

‘서포터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나 보군.’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붙어 있는 것은 도리어 기회가 되었다. 아론은 빠르게 호흡법을 한 번 한 뒤에 얼음의 창을 녀석의 살갗에 꽂아 넣었다.

콰악!

“키에엑!”

방금 공격이 효과가 있었다. 블러드 임프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아론은 틈을 주지 않고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손에서 뜨거운 불이 솟구쳐 나와 블러드 임프를 공격했다.

촤악!

거기다가 켄트가 눈치 빠르게 구리스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뜨거운 불길이 더더욱 타올랐다.

“키에에에!”

녀석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크윽!”

켄트가 공격을 맞고 뒤로 멀리 튕겨 나갔다. 실드 마법을 둘렀다곤 하지만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강하다.’

아론은 뒤로 뛰어서 거리를 벌리며 생각했다.

이 정도로 위험함을 느낀 적은 임무 중에 기사를 만났을 때밖에 없었다.

‘귀환 마법으로 도망칠까?’

아론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선택지를 사용할 순 없었다. 귀환 마법을 쓰기 위해선 마법진을 필수적으로 그려야 했다.

‘그럼 어떻게 싸워야 하지?’

방금 전처럼 계속해서 싸웠다간 결국 아론과 켄트가 당하고 말 것이다.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나?’

방법이 있긴 했다.

더 강력한 화력으로 녀석을 밀어 붙이면 이길 수 있다.

즉, 에드먼스 호흡법을 다섯 번 이상으로 한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쓰면 되었다.

‘말이 쉽지.’

아론은 여태껏 네 번까지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다섯 번은 번번이 실패했었다.

‘어쩌겠어. 방법이 없는걸.’

아론은 품을 뒤져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거기에는 반쪽짜리 칠성초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걸 단숨에 삼켰다.

그러자 몸에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성공시켜야 살아남는다!’

아론은 곧장 호흡법을 강행했다.

“켄트! 날 지켜줘!”

그렇게 말한 뒤에 주변의 마나를 무서운 속도로 끌어들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여기까진 쉬워.’

그리고 다섯 번째의 호흡을 시도할 때.

“윽!”

서클 주위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론은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았다. 느리지만 천천히 호흡해서 마나를 흡수했다.

부르르!

고통을 참으니 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아론은 그것을 무시하고 호흡을 계속했다.

‘……됐다!’

아론은 다섯 번째의 호흡에 성공했다. 여전히 아프지만 회로에 저장된 마나의 양이 더욱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할 거 같아.’

아론은 도박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 마법을 써봤자 회로가 너덜너덜해져서 전투를 재개하는 건 힘들었다.

단숨에 블러드 임프를 쓰러트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나를 더 모을 필요가 있었다.

“흐읍!”’

아론은 계속해서 호흡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블러드 임프도 이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켄트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아론을 향해 몸을 틀었다.

아론은 그것을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카앙!

켄트의 방호 마법이 아론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블러드 임프의 공격은 강했고, 아론은 충격으로 몸이 떴다.

쿵!

아론은 나무에 몸을 부딪히고 말았다.

“크윽!”

내장이 진탕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론은 의식을 겨우겨우 부여잡았다.

‘어떻게 마나를 모았는데!’

아론은 무아지경으로 아홉 번의 호흡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곧 열 번째에 시도하려는 찰나에 블러드 임프가 공격한 상황이었다.

아론은 이 자세에서 한 번 더 호흡법을 재개했다.

“으아아!”

몸이 터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 아론은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블러드 임프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녀석이 거대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까앙!

때맞추어 켄트의 방호 마법이 아론을 막아주었다.

아론은 그 타이밍에 마법을 시전했다. 그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뇌전이 맺혔다.

파지지직!

그것은 순식간에 거대한 번개가 되었고.

콰르르릉!

블러드 임프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키에에에!”

녀석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목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이내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방금 그 공격으로 죽었겠지?’

아론은 녀석의 누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직접 일어나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긴. 몸에서 허용할 수 있는 마나는 진즉에 넘었으니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인지, 아론은 10번의 호흡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뿜어낸 전격 마법은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 괴물 같던 블러드 임프조차 단번에 죽일 줄이야.’

하지만 이걸 두 번 다시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자신이 성장하지 않는 한 힘들 것 같았다.

“아론 님……!”

켄트가 절룩거리며 아론에게 다가왔다. 그도 역시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나보다는 녀석이 죽었는지 확인하고, 뿔을 회수해 와라.”

아론은 켄트를 시켜 뿔을 가져오게 했다.

“여깄습니다.”

아론은 켄트가 건넨 뿔을 챙겨 넣었다.

그런 뒤에 켄트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같이 싸워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아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켄트가 없었다면 이렇게 싸울 수조차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론 님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천재라는 말은 아론 님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마지막에 보여주셨던 전격 마법. 그건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죠?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돌파하기란 쉽지 않지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천재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론의 몸은 어마어마한 친화력을 타고 났으니 말이다.

“그리고 전투의 순간마다 내리는 판단은 마치…… 전장에서 오랫동안 구른 베테랑을 연상케 했습니다.”

그 말에 아론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0년 정도 던전에서 굴렀기 때문이었다.

“저야말로 고맙지요. 아론 님과 함께 전투를 치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켄트의 말이 끝나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내 교관과 학생들이 나타났다.

“아론! 켄트!”

교관이 성한 곳이 없는 두 사람을 보며 외쳤다.

“괜찮나?”

“어찌어찌 목숨은 붙어 있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라. 공작가에 가면 치료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란돌의 조는 어떻게 됐나?”

“전원 사망했습니다.”

아론의 그 말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날의 실습은 더 이상 진행하는 게 위험했기에 거기서 종료하기로 했다.

* * *

아론은 실습이 종료되고 나서 즉시 공작가로 돌아갔다.

“아, 아론 님!”

공작가에 도착하자마자 라엘이 그를 맞이해 주었다. 그녀는 또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온 아론을 보고는 기겁을 하였다.

신관은 곧장 달려와서 아론을 치료해 주었다.

“으윽…….”

아론은 치료를 받으면서 신음을 흘렸다. 통증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블러드 임프에게서 맞은 상처는 회복이 빨랐다. 그러나 무리를 한 회로는 오랜 기간 치료를 거쳐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아론은 통증을 참으며,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위기의 순간을 겪으면서 난관이었던 다섯 번째의 호흡을 성공해 버렸다. 그것도 단숨에 열 번까지 할 수 있었다.

‘그거는 다시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아.’

아론은 블러드 임프와 대치했던 때를 떠올렸다. 무리해서 호흡법을 하며 겪었던 통증이 어마어마했는데, 어떻게 성공했는지 아직도 얼떨떨했다.

아론은 치료를 받고 나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우선 포드를 찾아갔다.

“허어, 아론!”

자초지종을 들은 포드는 노성을 내며 아론을 꾸짖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블러드 임프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까딱 잘못했다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노려보았다.

아론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 당황했다.

‘……이번엔 내가 잘못한 것 같네.’

그래도 오죽하면 저런 반응을 보이셨을까. 아론은 포드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가르치던 교관도 경고하지 않았더냐? 억지로 호흡 횟수를 늘리면 회로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망가진 회로는 다시는 회복시킬 수 없었다. 즉, 폐인이 되는 셈이었다.

“마법을 전혀 쓸 수 없는 몸이 된다는 것은 마법사에게 있어 사형선고보다 더 심한 것이지.”

그래서 포드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만, 다음에는 다시는 목숨을 건 도박을 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론의 대답을 들은 포드는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무리는 했다만, 블러드 임프를 잡았다면 네 실력도 증명이 되었을 것이다.”

블러드 임프를 잡았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조만간 소문이 퍼질 게 분명했다.

“이번 일이 가주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네 목적에도 잘 들어맞는구나.”

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칭찬하였다.

***

아론은 일주일간 치료를 받으며 절대 안정을 취하고 나서야 다시 아카데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몸이 뻐근한 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더 쉬는 건 아론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빨리 졸업하려고 이번 실습 때 점수를 벌어둔 건데, 아카데미를 안 나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아론은 훈련장에 도착한 뒤에 곧바로 마법 연습을 하려고 했다.

“저기, 아론 님.”

그때였다. 켄트가 아론에게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응. 치료받으니까 다 나았어.”

“그거 다행입니다.”

켄트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아론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들어보고.”

“저번에 실습을 나갔을 때, 제 마법은 화력이 떨어진다고 하셨었죠.”

“그랬었나?”

아론이 했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상태창으로 본 켄트의 특성은 서포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던 것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공격 마법 보다는 보조 마법에 재능을 보인다는 말이었다.”

“……그게 궁금했던 점입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상태창이 보여줬으니까.

그렇게 말할 순 없었기에 아론은 대충 둘러서 대답했다.

“에드먼스 가문의 피를 타고난 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해주지.”

“그렇군요.”

켄트는 답변에 수긍한 눈치였다.

‘설명하기 귀찮을 때마다 가문의 이름을 들먹이는 거, 되게 편리하구나.’

아론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시겠습니까?”

켄트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론은 그의 이런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이 세계는 마법 중에서도 공격 마법을 최고로 쳐주기 때문이었다.

보조 마법은 실력이 떨어지는 마법사들이나 운용하는 것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보조 마법의 쓸모를 제대로 모르는 이곳 사람들이 불쌍하군.’

아론은 지구에서 보았었다.

던전의 고위 몬스터를 잡을 때 ‘서포터’ 특성을 지닌 헌터들이 얼마나 활약을 하는지를 말이다.

그들이 없으면 사냥이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서포터들은 귀족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덕분에 성격 더러운 서포터들도 많이 보았지.’

자기를 떠받들어주지 않는다고 원정을 도중에 때려치운 서포터도 있을 정도였다.

‘잠깐만. 켄트를 내 밑에 두고 부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어쩌면 보조 마법이 천시받는 문화 덕분에 켄트를 값싸게 꾀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특화 재능을 숨기고서도 여기 고급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자기 특성에 맞게 수련을 한다면…….’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그 추이가 기대되었다.

그런 녀석을 자신의 밑에 둘 수 있다면 든든한 방패가 생기는 격이었다.

“좋다. 네가 원한다면 비밀로 해주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단,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그 말에 켄트는 불안한 눈으로 아론을 바라보았다.

“넌 내 편이 되어야 한다.”

“예?”

“내가 어떤 입장에 서든, 넌 나를 위해서 싸워줘야 한다 이 말이다.”

“하지만 제가 얻는 이득이…….”

켄트는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돌렸다. 감히 아론에게 이런 반박을 해도 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면 내가 보조 마법 수련을 도와주지. 그리고 싸워달라는 건 별 게 아니라 내가 임무가 있을 때 따라와 달라는 정도다.”

켄트는 고민했다.

자신은 보조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어서 숨겨달라고 한 것이다. 근데 오히려 보조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니.

“내 제안을 거절해도 좋다. 설령 그런다 할지라도 네가 요청한 건 들어주마.”

아론은 그렇게 말하면서 켄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넌 만족하는가? 네가 나를 말할 때 천재라고 했었지. 그런 내가 너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말이야. 거절한다면 나도 별수는 없지.”

아론은 고민에 빠진 켄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길 원한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그쪽이 한계가 뚜렷하다고 해도 갈 텐가? 나였으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잘하는 일을 할 텐데 말이다.”

아론은 뒷말을 덧붙였다.

켄트는 오랜 시간 말이 없었다.

아론을 바라보지 않고, 혼자서 골몰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잠시 후.

켄트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론 님은 소문과는 많이 다르신 분인 것 같습니다.”

“그게 대답인가?”

“아론 님이 권하신 기회, 붙잡고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켄트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

***

아론이 블러드 임프를 잡았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사람의 평판이라는 것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아카데미 학생들은 아론을 망나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남들은 열심히 수업을 다 듣는데 아론은 혼자서 오전에만 훈련하다가 이후에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물론 실상은 교관과 따로 에드먼스 호흡법을 수련한다고 그랬던 거라서 다른 학생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 망나니 도련님도 허풍이 심하시지. 자기가 블러드 임프를 잡았다니. 어이가 없어서.”

고급반 학생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란돌의 조는 전원 사망했기에 이번 사태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론과 켄트 뿐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둘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란돌의 조가 필사적으로 블러드 임프와 싸우고 쓰러졌을 때 아론이 마지막에 나타나 녀석을 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죽은 애들만 불쌍하게 됐지.”

물론 아론이 정말로 각성했다고 생각하는 소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나서서 그런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 일도 공작가에서 꾸민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저번에 습지에 실습 갔을 때는 그런 괴물은 없었잖아.”

“가문의 명예가 뭐라고 참. 망나니 관리한다고 애쓴다 애써.”

몇몇은 더 나아가 공작가에서 블러드 임프를 일부러 풀어 둬서 아론이 잡은 것으로 꾸몄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었다.

“후계자 경쟁에 들어갔다고 너무 티 나게 밀어주는 거 아닌가 몰라.”

“설마 진짜 후계자가 되겠어? 위에 형제들이 쟁쟁한데.”

그들은 아론이 그저 뒤처진 것도 모자라 쇼를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아론이 나타나자 학생들은 고요해졌다.

그러나, 눈치 없이 떠드는 한 명이 있었다.

“언제 한번 그 망나니가 큰코다쳐야 할 텐데 말이야.”

“야, 벤지. 도련님 오셨어.”

옆에 있던 친구가 조용히 속삭였다.

“흥, 들으라고 하든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올 뿐이었다.

‘……저 녀석이?’

아론은 그 당돌한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벤지 앤프릿.”

그는 자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던 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없을 때 뒤에서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건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부분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니까.”

아론은 녀석을 노려다 보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이 공간에 있는데도 계속 비아냥거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그러나 벤지는 말이 없었다.

“자, 내가 앞에 왔으니 어디 한번 시원하게 말해보지 그래?”

“……제가 할 이야기가 어딨겠습니까?”

아론은 녀석이 꼬리를 내리나 싶었다.

“그 잘나신 에드먼스 가문의 넷째 공자님께, 제가 감히요.”

그러나 마지막 말은 명백히 비꼬는 것이었다.

아론은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을 가만히 둘 리 없었다.

“하. 그래도 배짱은 있어 보였더니, 결국 입만 털어대는 겁쟁이였군.”

아론은 역으로 도발을 걸었다.

“예? 아론 공자님. 뭔가 착각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벤지는 그렇게 말하며 아론을 노려보았다.

“가문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생각해 봅시다. 실력만 따지고 보면 제가 공자님보다 위입니다. 그리고…… 에드먼스 가문은 철저히 강자들에게 존중을 보내지 않습니까?”

아론은 헛웃음이 나왔다.

벤지 앤프릿의 실력은 4서클 중에서도 상급이었다. 그걸 믿고 아론에게 까부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내게 그 실력을 보여주겠나?”

“……지금 결투를 신청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아론은 크게 웃었다.

“결투는 약자가 강자에게 신청하는 것이지. 나는 너에게 결투를 할 권리를 방금 준 것이다.”

그 말에 벤지는 자신의 미간을 확 좁혔다.

“알겠습니다. 제가 결투를 아론 님께 신청하지요!”

그는 씩씩거리면서 아론을 향해 외쳤다.

다른 학생들은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다들 어리둥절해 있었다.

* * *

그렇게 훈련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결투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교관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고, 학생들은 숨죽여서 둘을 지켜보았다.

“후회하실 겁니다.”

벤지는 아론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론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반응에 열이 받은 벤지.

화아악!

마나를 재빠르게 끌어 올려 마법을 날릴 준비를 했다.

벤지는 처음에 결판을 낼 생각이었다. 그는 4서클 마법인 파이어 레인을 시전했다.

벤지의 손을 떠나 하늘로 치솟은 뜨거운 불길은 비가 되어 아론을 향해 휘몰아쳤다.

‘처음부터 무리를 하는군.’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전방에 실드 마법을 전개해 불의 세례를 막아냈다.

‘어…… 어떻게?’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을 두 눈으로 본 벤지는 당황했다. 이렇게 4서클 마법을 쓰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나가떨어졌었다.

‘운이 좋았을 뿐이야!’

벤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고 했다.

“네가 화염 마법으로 공격했으니, 나도 똑같이 해주지.”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시전했다.

3서클의 화염 마법, 파이어 랜스였다.

마나는 불덩어리가 되어 아론의 손에 맺히더니 곧 창의 형태를 띈 채 벤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흥! 고작 3서클 마법 가지고!”

벤지는 콧방귀를 뀌며 실드를 펼쳤다. 각 서클 간에는 급의 차이가 컸다. 그는 감히 3서클 공격으로 자신의 방어를 뚫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콰앙!

벤지가 펼친 실드는 허무하게 깨지고 말았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실드가 사라지자 마자 바로 몸을 던져 아론의 마법을 피했다.

“너는 내가 날린 3서클 마법조차 못 막는구나.”

“마나를 과도하게 써서 무리한 공격을 펼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싸우시면 다음 공격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예?”

“실력도 없고 보는 눈도 없어서야…… 내가 4서클 마법을 사용하면 넌 틀림없이 쓰러지겠군.”

“허, 허튼 소리하지 마십시오. 아론 님이 벌써 4서클에 돌입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벤지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론은 굳이 반박하지 않고 씩 웃어주었다.

‘그럴 리 없어. 저 망나니는 잘 쳐줘도 3서클 상급이라고.’

벤지는 아론이 필시 블러핑을 치는 것이라고 믿었다.

아론은 곧장 마법을 준비했다.

손에서 발현된 마나는 냉기를 머금은 구체가 되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아이스…… 버스트라고?”

벤지는 동공이 흔들렸다.

아이스 버스트는 4서클 마법이었다.

그 말은 즉, 아론은 이미 4서클에 들어왔다는 뜻이 아닌가.

벤지는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는 실드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퍼엉!

하지만 채 시전되기도 전에 날아온 아이스 버스트가 터지고 말았다.

얼음 폭발에 휩쓸린 벤지는 큰 충격을 받고 곧바로 기절하고 말았다.

“벤지가 졌어…….”

다른 학생들은 놀라서 아론과 너덜너덜해진 벤지를 번갈아 보았다.

마법을 얼마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벤지를 쓰러트린 것도 놀랍긴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더 충격받은 것은 아론이 쓴 4서클 마법이었다.

이 망나니 도련님이 마법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는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데 벌써 4서클에 들어서다니.

학생들은 결투의 결과를 보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역시 타고난 피는 대단하다니까. 놀고먹어도 4서클은 그냥 찍네.”

“무슨 소리야. 그러면 케빈 도련님은 어떻게 된 건데?”

“아…… 그런 분도 있었지.”

케빈은 4서클을 이루지 못했었고, 졸업 요건도 갖추지 못해 중간에 아카데미를 나왔었다.

아론은 그들이 뭐라고 떠들든, 자기 자리에 가서 마법 훈련을 준비했다.

***

에드먼스 아카데미의 교관, 브란 에드먼스는 공작의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들어오게.”

브란은 공작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공작님.”

그는 예의를 갖춰 공작에게 인사했다.

“아카데미의 교관 생활은 할 만한가?”

“예. 별달리 어려운 점은 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서로 간의 인사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공작은 곧바로 본제에 들어갔다.

“아론은 어떤가? 녀석의 활동을 들어보고 싶군.”

브란은 공작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론에 대한 것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마법 훈련은 잘 따라오고 있는 것부터 에드먼스 호흡법을 배운 것. 그리고 최근에 실습을 나가 블러드 임프를 잡은 것까지 말해 주었다.

“아론이 블러드 임프를 잡았다고?”

공작도 초반 이야기에는 반응하지 않다가, 그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예. 나중에 사체를 확인해 본 결과 녀석이 실습지에 있던 임프의 우두머리를 먹은 녀석이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아론의 실력으로는 아직 잡기엔 어려운 상대다. 필시 혼자서 싸운 게 아니라 누군가 같이 있었겠지.”

“예. 다른 학생 한 명과 같이 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보조만 했고, 대부분의 공격은 아론이 했다고 하더군요.”

“믿기 어렵군.”

“사정 청취를 해보니, 에드먼스 호흡법을 10번 한 뒤에 마법을 썼다고 합니다.”

브란의 그 말에 공작은 크게 웃었다.

“하하! 호흡법을 얼마 배우지도 않은 녀석이 10번이나 했다고?”

공작은 아론의 성취가 마음에 들었다. 비록 첫째 만큼은 아니었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 자기 입으로는 살고 싶다고 처절하게 외치더니…… 정작 자기 목숨을 가지고 여러 번 사선을 넘나드는 도박을 하는구나.”

“저는 아론의 모습을 보면 가주님이 겹쳐 보였습니다.”

“너도 녀석을 눈여겨 보고 있나 보군. 나도 최근 관심을 다시 가지기 시작했다.”

공작은 그렇게 말하면서 브란의 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런 말은 어디 가서 함부로 하지 말게. 자네가 아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말이야.”

“조심하겠습니다.”

브란은 이어서 최근에 있었던 일도 말해주었다.

“아론이 학생 한 명과 결투에서 이겼습니다. 상대는 4서클이었습니다.”

“그런가.”

공작은 브란이 처음에 보고하던 내용을 듣는 것처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론이 그 결투에서 4서클 마법을 선보였더군요.”

그 말에 공작은 다시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론의 태생과 나이를 고려하면 절대 빠른 성취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론이 언제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냐를 고려하면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그 녀석은 온갖 방법으로 내 관심을 끄는구나.’

옛날에는 아론이 골치 아픈 짓만 벌여서 관심을 썼던 거지만, 최근엔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겠지?’

공작은 아론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

아론이 4서클에 들어섰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정작 아론은 네 번째의 서클을 우연히 얻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연은 아니었다. 단숨에 열 번의 호흡법을 성공시킨 대가였다.

몸에 허용량을 넘어서는 마나가 들이닥치자 이 재능 넘치는 아론의 몸은 회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마나를 수용하기 위해 도리어 새로운 서클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재능이야.’

아론은 새삼 자신의 몸에 감탄했다.

그래서 어떻게 4서클의 성취를 알릴까 고민하다가 벤지가 시비를 걸어온 날, 결투에서 보여준 것이었다.

아론이 일부러 4서클 마법을 마지막에 썼었던 것도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다 공작에게 보고로 올라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도 내 성장 속도를 보고 받는다면 흘려들을 수 없겠지.’

더 이상 공작은 아론의 생사에 관심이 없는 태도를 취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에드먼스 가문은 자제들 조차도 무한한 경쟁에 몰아넣고 그중에서 강한 사람만을 대우해 주니 말이다.

‘하지만 겨우 4서클 들어섰다고 공작이 날 인정하진 않겠지.’

공작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두 눈으로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 하니 말이다.

‘아마 공작이라면 내게 시험을 내서 성취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저번에 받았던 아그니 소드의 회수 임무로 비추어 보아 이번에도 난이도는 높을 게 분명했다.

‘단단히 준비해 둬야겠군.’

이미 아론은 십몇 년을 망나니로 살았다. 만약 임무를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시험이 내려오기 전까지 나 뿐만 아니라 라엘과 켄트도 최대한 성장시켜 줘야겠어.’

아론이 그렇게 생각한 지 일주일 후.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론은 저녁에 개인 훈련장을 나오면서 집사로부터 공작의 서신을 받게 되었다.

아론은 그 자리에서 곧장 내용을 확인했다.

예측한 대로 거기에는 아론에게 주어진 임무가 적혀 있었다.

“무엇입니까?”

뒤에서 따라 나오던 켄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론은 저번에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켄트를 따로 불러 같이 훈련해 왔었다.

“공작님이 나한테 임무를 보냈어.”

“임무요?”

“응. 이번에 성공하면 아카데미 과정을 졸업시켜 주겠다고 적혀 있네. 물론 너도 같이.”

켄트는 잠시 멀뚱거리다가 이내 말의 뜻을 알아 듣고는 눈을 빛냈다.

“정말입니까? 어, 어떤 임무입니까?”

“던전 탐험이야.”

그 말을 들은 켄트는 곧바로 표정이 굳고 말았다.

“던전이라고요? 그걸 두 명이서 가라는 건 죽으라는 말 아닙니까!”

던전에도 등급이 있었다. 그래서 수준 차이가 있었지만, 일개 아카데미 학생들이 갈만한 곳은 아니었다.

각종 몬스터가 득시글 거리고, 잘못하면 함정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에드먼스 가문조차도 교육과정을 모두 끝낸 가문 소속의 초급 마법사들과 중급 마법사가 섞여서 원정대를 꾸려 가는 곳이었다.

켄트로서는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이제 갓 졸업한 두 명이서 가라는 건 죽으란 말이나 다름없었다.

“두 명 아닌데? 내 시녀랑 해서 세 명이야.”

켄트는 아론의 태연한 모습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론 님은 걱정이 되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세 명만으로는 던전 원정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 아니랄까 봐, 졸업을 시켜주는 대가로 어려운 임무를 내려 주시네.”

아론은 자기 입으로 어렵다고 말했지만 정작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르스 던전……? 저, 들어본 적 있습니다. 여기 골렘들이 나오는 곳 아닙니까?”

켄트는 서신에 적힌 던전의 이름을 보고는 사색이 되어 말했다.

“골렘이 어떤 몬스터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녀석들은 핵을 부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재생을 하는 녀석입니다.”

켄트의 말을 들은 아론은 오히려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골렘 던전이기에 오히려 좋은 것이다. 만약 다른 던전이라면 심각하게 고민을 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켄트는 알 수 없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라엘.”

아론은 종이에 글자를 써서 라엘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이 재료들을 방으로 가져다줄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까진 훈련을 쉴 거다. 그동안 두 사람은 알아서 수련하도록 해.”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켄트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무언가 수가 있으신 건가?’

아론에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불안하긴 했지만, 아론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 * *

아론은 공작의 서신을 받은 직후에 던전으로 원정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라엘과 켄트를 데리고 던전을 향해 출발했다.

인원은 최대한 소규모로 꾸렸다. 전투야 아론과 라엘, 켄트 이 셋이서 할 수 있었고 마차를 끄는 것과 다른 잡일은 적은 수의 사용인으로도 충분했다.

던전의 위치는 꽤 외지에 있었다. 가는 길에는 묵을만한 도시가 없었기에 밤이 오면 야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간다.”

어느덧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아론은 적당한 곳에 마차를 멈춰 세우고 야영 준비를 했다.

“켄트. 경계 마법 설치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아론은 그에게 경계 마법의 설치를 맡긴 뒤에 주변을 마법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혹시 근처에 불순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추적 마법은 붙어 있지 않는 것 같고…… 주변에 사람도 없군.’

잠시 후, 마법으로 탐지를 끝낸 아론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공작의 관심을 끈 것이 정답이었군.’

아무래도 아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에드먼스 공작의 심기를 거스를 생각까지는 없었나 보다.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야영지로 돌아왔다.

켄트 역시 경계 마법의 설치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아론은 사용인들이 준비한 식사를 먹으면서, 준비된 던전의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어디 보자…….’

이 세계에서도 던전에 대해서는 정확히 규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단순히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미지의 폐쇄된 장소. 그리고 여기서 생성된 몬스터들이 세상에 나와 대륙으로 퍼진다는 것. 이 정도로만 추측할 뿐이었다.

‘그리고 던전의 주인인 보스를 처리하면 던전이 사라진다. 이거는 지구와 다르지 않군.’

아론은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굳이 지구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던전의 숫자였다. 지구에서는 던전의 출현 빈도가 잦아서 헌터들은 사냥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관리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비슷하네.’

던전이 생긴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면, 나중에는 그 지역 전체를 내줘야 할 수도 있었다. 던전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 국가에서는 던전에 관리자와 병력을 파견해 몬스터가 나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던전의 근처는 일종의 상시로 전쟁 중인 국경 지대인 셈이었다.

에드먼스 가문에서도 종종 왕국의 요청에 따라 던전을 토벌하러 가는 일도 있었다.

‘이번에 우리가 갈 던전에는 골렘들이 나온다.’

골렘은 흙과 돌 등으로 골격을 이루는 거대한 마나 생명체였다. 녀석들은 핵을 부수지 않는 한 어디를 부숴도 재생되기 때문에 상대하기 골치 아팠다.

그러나 녀석들에게도 약점은 있는 법. 덩치가 커서 움직임이 둔하므로 잘 유인해서 각개격파를 한다면 충분히 상대할만했다.

‘내가 화력을 담당하고 라엘이 어그로를, 그리고 켄트가 방호를 맡는다면 가능하다.’

물론 언제나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위급할 때를 대비하기 위해 라엘에게 아티팩트를 만들 재료를 구해달라고 부탁해 뒀었다.

‘이 정도면 큰일은 없겠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서를 계속해서 보았다.

‘……어라? 이게 끝?’

하지만 아론은 실망하고 말았다.

보고서의 내용이 상당히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던전의 관리 담당이 책임을 지고 작성한 것이다.

그러나 대체 어떻게 조사를 했길래 정보량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혹시 얘네들도 월급 도둑들인가?’

아론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내용이었다.

‘아니면 내가 너무 현대식 보고서를 바랐던 걸까.’

지구는 각종 과학 기술의 도움 덕에 무인 드론 등을 이용해 던전 탐색이 한결 수월했다.

이곳은 그런 도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내용이 부실한 것일지도 몰랐다.

‘뭔가 좀 불안하기는 한데…… 일단 가보면 알겠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

아론 일행은 출발한 지 이틀 뒤에 던전이 있는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던전이 있는 곳이군.”

아론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던전의 근방은 관리 지역이기 때문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그때, 저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이곳의 관리자인가?’

잠시 후, 아론의 앞에 도착한 그들은 숨을 헐떡였다.

“헉, 허억…….”

그들은 잠깐 숨을 골랐고, 잠시 후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원래는 도착하시기 전에 기다리려고 했는데…… 오늘도 던전에서 나오려고 하는 몬스터들이랑 전투가 좀 있었습니다.”

아론은 그렇게 말한 그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달려와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것 말고는 더러운 부분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전투 직후의 모습은 아닌 거 같은데…….’

딴짓을 하다 온 게 아닐까 의심되었지만, 중요한 점은 아니었기에 아론은 무시하기로 했다.

“저는 이곳 마르스 던전의 관리 책임자인 시몬 고데트입니다. 에드먼스 공작가의 자제분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자신을 관리자라고 소개한 시몬은 아론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아론 에드먼스입니다.”

“아…… 아론 공자님이셨군요.”

아론의 이름을 들은 시몬은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도 그럴 게, 에드먼스 가문에서 지원이 온다고 좋아했더니 정작 온 사람은 왕국에서 유명한 약골 망나니였다.

근래 들어와서 그 망나니가 달라졌다는 소문이 조금씩 들려오긴 했지만, 시몬은 믿지 않았다.

그런 뜬 소문은 몇 년 전에도 왕국 내에서 돈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달라진 것이 없는 것만 확인될 뿐이었다.

‘그리고…… 고작 세 명뿐?’

시몬은 속으로 기가 찼다.

아무리 이곳이 하급 던전이라지만,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몬스터나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믿고 맡기는 에드먼스라고 하더니…….’

시몬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그걸 티를 낼 순 없었기에 최대한 참기로 했다.

“던전 입구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시몬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처음에 그들을 맞이할 때는 싹싹하게 맞아 주더니, 태도가 180도 변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론은 일단 조용히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잠시 후, 시몬을 따라 던전 입구에 도착한 아론 일행.

아론은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랑 다르잖아?’

분명 마르스 던전은 하급 던전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 너머로 느껴지는 마나는 절대로 하급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역시…… 보고서 내용이 부실하다 싶더니.’

조사를 대충하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던전의 등급조차 틀리게 쓰면 어쩌자는 말인가.

아론은 이 일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쓴 보고서 말인데요.”

아론은 보고서를 꺼내어 팔랑팔랑 흔들며 말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쓴 것, 맞습니까?”

“예, 예?”

시몬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는 매번 정기적으로 던전을 탐사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정말요?”

“왕국에도 올라가는 보고서입니다! 하, 참. 저희가 이 던전을 한두 번 조사해본 줄 아십니까?”

“근데 왜 토양의 마나 변질도는 조사가 안 되어 있습니까? 던전 등급 측정에 중요한 부분인데.”

아론의 지적에 시몬은 숨을 삼켰다.

골렘 같은 마나 몬스터가 있는 던전은 토양의 마나 변질도를 체크하는 것이 필수였다. 던전의 진행이 얼마나 되었는 지를 알 수 있는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론이 받은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어느 세월에 땅을 다 파서 확인합니까?”

시몬은 오히려 적반하장의 태도로 대응했다.

“토양을 확인하는 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먼저 보고서부터 작성하고 땅은 나중에 파는 게 관례입니다.”

시몬의 그 말에 아론은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공자인 줄 알고 적당히 말로 구슬리려는 모양인데…….’

아론은 속으로 그리 생각했다.

저런 사람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나았다.

아론은 자기가 직접 땅을 파서 증거를 보여주기로 했다.

아론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적당한 곳에 쪼그려 앉아서 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론 님. 지금 뭐 하십니까?”

시몬이 물어보았지만 무시했다.

‘여기가 좋겠군.’

이내 부드러운 지반을 찾은 아론은 마법을 써서 단숨에 땅을 파내어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을……!”

시몬은 공중에 뜬 흙들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후두둑!

대량의 흙들이 저 먼 곳으로 날아갔다. 아론이 마법을 쓴 곳에는 꽤 큰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건…….”

시몬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단숨에 단단한 땅을 파내버리는 아론의 능력에도 놀랐지만, 더 큰 일이 난 것은 토양의 상태였다.

“보이십니까?”

아론은 자신이 판 구덩이 속을 가리키며 물었다.

“책임자라면 잘 아시겠지요. 지금 토양의 마나 변질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말입니다.”

토양의 마나 변질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이 정도면 던전 내부의 몬스터는 생성 초기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여겨졌다.

“이건 어딘가에 착오가…….”

“정식으로 왕국에 보고해야겠군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시몬을 향해 아론은 쐐기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확인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제야 시몬은 허리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제발 왕국에 보고하는 것만큼은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이 사실이 밝혀진다면 저는 목숨이 날아갑니다!”

“그게 제가 알 바입니까?”

아론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흐음. 하지만 이거, 잘하면 책임자 녀석을 구슬릴 수 있겠어.’

그때, 아론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가 아량을 베풀어서 이번만은 눈감아 줄 수 있지요.”

“저, 정말이십니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시몬은 화색이 되어 아론을 바라보았다.

“이번 던전 원정으로 얻은 부산물은 저희가 전부 가져가겠습니다.”

아론의 말에 시몬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왕국법에 의해 관리비 명목으로 3할은 저희가 가져가야 하는데…….”

그는 우물쭈물하다가,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1할 양보해서, 8할을 아론 님이 가져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허. 지금 그쪽 상황이 타협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요?”

아론의 대답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던전이 닫혔는데 저희가 왕도로 올리는 공납품이 없으면 문제가 좀 생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제 알 바 아닙니다.”

아론은 가늘게 뜬 눈으로 시몬을 쳐다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토양의 마나가 이렇게 될 때까지 던전의 조사를 제대로 안 한 것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텐데요.”

“그, 그건…….”

시몬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론의 말이 정답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공납품을 올리지 않고 직위에서 잘리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하는 거 보아하니, 관리하면서 뒤로 꼬불쳐둔 물건들 좀 있을 거 아니야? 그거로 내던가.”

아론이 그렇게 말하자 시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냥 찔러 본 건데, 정답이었나 보군.’

시몬은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알겠습니다. 아론 님께서 전부 가져가십시오.”

“협상 타결이군.”

아론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켄트는 혀를 내둘렀다.

‘나도 실습 때, 저런 식으로 넘어 갔었지.’

저게 과연 망나니가 할 수 있는 생각일까. 켄트는 절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 * *

마르스 던전의 책임자 시몬은 아론이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겨 주었다. 주로 식료품과 약들이었다.

“안에는 골렘들이 많으니 조심하십시오.”

아론은 굳이 이제야 싶었다.

자신의 앞에서 알랑방귀를 뀔 바에야 평소에 던전 조사나 잘 해두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아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몬은 헤실헤실 거릴 뿐이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시몬과 그의 부하들은 깍듯이 인사하며 아론 일행을 배웅하였다.

“켄트, 라엘.”

아론은 그 둘을 불러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어지러울 수 있다. 그리고 심하면 몇 분 동안 계속 그럴 수 있어.”

그동안에 몬스터에게 노출되어 공격을 받는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네…….”

켄트는 괜찮아 보였지만 라엘은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았다.

“괜찮아. 정신만 차리면 별일 없어.”

아론은 라엘의 어깨를 토닥여 안심시킨 다음에 먼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켄트와 라엘이 뒤따랐다.

익숙한 충격이 아론을 덮쳐왔다.

‘이 느낌. 오랜만이군.’

지구의 던전에 들어갈 때랑 똑같은 기분이었다. 아론은 금방 어지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몬스터를 바로 맞닥뜨릴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도 육안으로는 몬스터가 확인되지 않았다.

‘지형은…… 돌산인가.’

여기저기 돌무더기들이 즐비해 있었다. 역시 골렘이 서식하는 곳다운 지형이었다.

‘흐음. 돌무더기라.’

아무래도 던전의 출몰 몬스터가 골렘이다 보니 돌무더기는 좀 의심스러웠다.

“이봐, 일어나.”

아론은 라엘과 켄트를 두드려서 깨웠다. 두 사람은 아직 어지러운 감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이 보였다.

“공격이 올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

아론의 그 말과 동시에.

쿠구구!

여태까지 돌무더기처럼 보였던 것들이 소리를 내며 기상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돌무더기들은 골렘의 형상을 갖추었다. 그 수는 총 세 마리.

녀석들은 3에서 4미터의 크기에 돌로 구성된 육중한 몸을 자랑했다.

쿵! 쿵!

골렘들은 아론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이 둘은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론이 최선을 다해 공격을 막아야 했다.

화아악!

아론은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골렘 두 마리의 주먹을 노리고 마법을 날렸다.

파사삭!

녀석들의 주먹은 아론의 마법에 직격했고, 산산조각이 났다.

후우웅!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들어오는 마지막 골렘의 공격은 미처 막지 못했다.

녀석의 주먹은 라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라엘!”

아론이 다급히 외쳤다.

콰앙!

골렘의 주먹이 라엘이 있던 자리를 내리찍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라엘은 정신이 또렷하지 못한 도중에도 골렘의 주먹을 본능으로 피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자신의 양다리에 마나를 둘러서 진각을 밟더니 땅에 박힌 골렘의 주먹을 노리고 오른발을 휘둘렀다.

콰앙!

골렘의 주먹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직 정신은 몽롱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저 본능으로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니. 재능은 무섭구나.’

아론은 그녀의 공격에 감탄했다.

“어, 어?”

한편, 라엘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자신이 무엇을 한 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라엘, 잘했어!”

그래서 아론의 칭찬에도 무안 할 뿐이었다.

“골렘이……!”

켄트도 정신을 차리고는 곧장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쿠구구!

부서졌던 골렘의 팔은 주변의 돌들이 모여서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골렘을 완전히 부수기 위해서는 중심에 있는 핵을 부숴야 했다.

하지만 핵을 감싼 돌들은 단단함의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직접 부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골렘을 상대로 탐지 마법을 사용하면 녀석들에게만 있는 특유의 마나 흐름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을 노릴 수만 있다면…….’

그러면 바위들의 결합이 깨지고 잠시지만 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라엘! 골렘들의 주의를 끄는 것을 부탁할게. 켄트는 나랑 라엘을 잘 방호해줘!”

“알겠습니다.”

“네!”

아론의 지시에 따라 두 사람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론은 정신을 집중해 골렘의 마나 흐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보인다!’

아론은 골렘의 사이사이를 지나는 마나 흐름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세 마리를 동시에.

헌터였을 적의 그는 오랜 시간 집중해도 골렘 한 마리의 마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게 다였다.

아론은 골렘 세 마리의 마나 흐름을 동시에 노리고는 전격 마법을 발사했다.

콰르르릉!

그러자 골렘은 일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해체되었다.

“라엘, 켄트! 푸른색으로 빛나는 게 녀석들의 핵이다. 그걸 당장 부숴!”

아론은 두 사람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그들은 신속하게 반응해서 골렘의 핵을 부수었다.

푸른빛을 띠던 핵은 이내 불이 꺼졌고, 골렘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던전은 금방 깨겠는데?’

잘만하면 하루를 넘기지 않아도 던전을 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론은 탐지 마법을 넓게 썼다.

잠시 후. 되돌아오는 마나 반응을 살펴보니 한 군데에서 강한 마나가 느껴졌다. 그 방향으로 가면 던전의 주인을 만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함정도 몇 개 있군.’

아론은 주의해서 가기로 했다.

“빨리 끝내고, 졸업장 따러 가자고.”

“예, 아론 님.”

라엘과 켄트는 아론을 따라서 이동했다.

***

아론을 포함한 세 사람의 호흡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켄트가 보조에 특화된 마법으로 아론과 라엘을 보호해주고, 라엘은 골렘들의 이목을 착실히 끌어주었다. 아론은 그 틈에 마법을 사용해 녀석들을 무력화 시켰다.

이런 간단한 방식으로 전투를 치를 때마다 십수 마리의 골렘들이 다시 돌덩이로 돌아갔다.

‘골렘들을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다니…….’

켄트는 전투 중에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의 방식이 그가 배운 전투 교범과 다른 점은 없었다. 다만 아론의 탐색 마법이 너무나도 출중했다.

‘골렘의 마나 흐름을 저렇게 빨리 찾는 사람은 처음 본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아론이 저렇게 싸우는 와중에도 막힘없이 이동한다는 점이었다.

켄트가 보기엔 다 같은 지역으로 보이는데, 아론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원래 던전이라는 것은 막다른 길에 들기도 하고 함정에 걸리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아무리 에드먼스 가문의 자제라고 하지만, 얼마나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길래 저것이 가능한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켄트는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아론을 잠깐 의심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아론은 모르게 켄트의 속에서는 그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올라가고 있었다.

“잠깐만.”

한창이었던 골렘과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을 때였다.

“멈춰 봐.”

“무슨 일이십니까?”

아론이 앞으로 가지 않고 멈추자 켄트가 이유를 물어보았다.

“강한 마나 반응이다. 근처에 던전의 주인이 있을 것 같아.”

“그럼 여기가 마지막인 거군요.”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던전의 주인을 만나기 전에, 고비를 하나 넘겨야 해.”

“예?”

아론의 의미를 모를 말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쿠구구!

땅이 심상치 않게 울리기 시작하더니.

쩌적! 쩌저적!

아론 일행이 바라보는 방향에서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기에선 돌무더기가 일제히 솟아 올라왔다. 그 돌덩이들은 당연히 골렘이었다.

“저게 다 뭡니까?”

켄트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못해도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군세였다.

“주인을 지키는 근위병들인 셈이지.”

“무슨 근위병이 저렇게 많답니까?”

“보통은 이 정도로 많진 않지. 여기가 던전화가 많이 진행된 곳이라서 수가 늘어났을 뿐이야.”

“하아. 저걸 다 상대하려면…… 목숨 걸고 싸워야겠군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여기까진 다 내 예상한 범위니까.”

“……네?”

켄트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골렘들이 모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라엘, 내 옆에 붙어서 골렘들이 주먹을 날리면 공격해 줘.”

“알겠습니다.”

“켄트, 너는 내가 저 녀석들의 중심에 갈 때까지 방호 마법을 계속 걸어 줘.”

“저 안으로 들어가신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켄트는 아론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타다닥!

아론은 골렘들이 있는 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라엘도 곁에 붙어서 아론을 보호했다.

후웅! 후웅!

골렘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론을 향한 녀석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파사삭!

골렘의 공격은 켄트의 방호에 막히거나 라엘의 맞공격에 산산이 무너졌다.

그렇게 무수한 녀석들의 공격을 뚫고 무사히 중심부에 들어선 아론.

그는 가방에서 아티팩트를 꺼냈다. 골렘의 대군세를 맞서 준비해 미리 만들어 둔 것이었다.

아론은 아티팩트를 양손으로 받치고 하늘을 향해 들었다. 그러면서 아티팩트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투명한 수정구의 모습을 한 아티팩트 내부에 푸른 구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쾅! 콰앙!

골렘들은 아론을 향해 열심히 공격했다. 그럴수록 켄트와 라엘이 죽을 힘을 다해 아론을 지켰다.

‘조금만 더 막아줘!’

아론은 속으로 그 둘을 응원하면서 아티팩트에 계속해서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수정구의 푸른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쩌적!

어느새 한계 마나량을 넘은 아티팩트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론은 그것을 바닥을 향해 내던졌다.

쨍그랑!

수정구가 깨지자마자 어마어마한 마나 파동이 그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우웅!

파동은 백 마리가 넘는 골렘들에게로 퍼졌다.

우수수!

그러자 녀석들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돌무더기를 흩뿌렸다. 드러나 보인 핵은 이미 빛이 꺼져 있었다.

“준비하신 방법이 이거였습니까……?”

켄트는 일순간에 죽어 버린 골렘들을 목격하고는 어이가 없어서 아론을 보았다.

라엘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도서관의 책에서 본 걸 따라해 봤을 뿐이야.”

“저도 책 좀 읽었지만 그런 내용이 담긴 건 본적이 없는데요.”

“공작가 도서관에는 희귀한 책들도 있거든.”

“아, 그런가요…….”

켄트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보았지만 넘어 가 주었다.

사실 아론이 만든 아티팩트는 지구의 기술이었다.

특수한 약품을 넣은 수정구에 마나를 집어넣으면 강력한 마력 파동을 만들 수 있었다.

터져 나온 파동은 주위에 있는 급이 낮은 골렘의 핵을 꺼트릴 수 있었다.

대신 만드는 데 말도 안 되는 재료가 들어가고 제작 시간도 꼬박 하루가 걸렸기에 하나밖에 들고 오지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런 비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

아론은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런 내막을 알 수 없는 라엘과 켄트는 아론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위병들도 모두 없앴으니 이제 주인 녀석만 잡으면 던전을 닫을 수 있겠구나.”

이 정도 던전이면 주인이 어떤 몬스터일지는 뻔했다. 기껏해야 아이언 골렘 정도겠지.

물론 녀석도 쉬운 건 아니었다. 맷집이 꽤 되기에 전투 시간이 길어지리라 예상은 되었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론은 마나의 반응이 이끌리는 곳으로 따라갔다.

잠시 후.

콰앙!

굉음을 내며 던전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니, 저건…….”

켄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타난 것의 정체는 골렘이 맞았다. 다만 아론의 예상과 달리 녀석은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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