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2 (2/40)
  • Chapter 2

    지난 한 달간 도서관의 노사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포드’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론은 그를 부를 때 포드 공이라고 불렀다.

    ‘이게 진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는 공작가에 있긴 하지만 어디에 속해있는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는 공작가 자제들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어느 라인에 속해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노사서의 입지는 달리 말하면 단독 행동을 할 수 있는 좋은 위치였다. 아무래도 후계자 경쟁에 있어 정치적 부담이 덜했다.

    그리고 아론은 상태창으로 확인해서 잘 안다. 그의 실력은 자신의 격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하아…….”

    아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역시 이 몸의 전 주인이 저지른 잘못 때문이었다.

    여태껏 대화를 나눴지만, 일부러 그와 관련해선 건들지 않았다.

    혹시 노사서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론 개자식아. 대체 왜 그랬던 거야!’

    하지만 지금 욕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 짓을 저질렀던 녀석의 영혼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아니야. 정말 나에게 원한이 있다면 그 전에 손을 썼겠지.’

    그야, 그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아론이 정말 싫었다면 자신에게 먼저 접근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노사서는 나름 괜찮은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마법서를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그는 항상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래. 설마 싫어하는 녀석에게 이렇게 대해주겠어?’

    아론은 속으로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부탁해 보자.’

    시도를 해보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거절당하면 어쩔 수 없고, 받아들여 준다면 대박이었다. 자신에겐 손해가 없는 제안인 셈.

    아론은 채비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

    마침 도서관에는 노사서가 있었다. 아론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부탁을 말했다.

    “허허,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아론 님의 개인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잠시 후, 그의 개인실에서 노사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이 도서관의 일개 사서일 뿐입니다. 그런 제게 어째서 마법의 가르침을 구하십니까? 공작가에서 저보다 훌륭한 사람은 많습니다.”

    노사서는 인자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하지만 아론은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상태창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물론 상태창 열람을 시도한 횟수가 적은 탓도 있었다.

    ‘굳이 노사서 말고도 내가 상태창을 보지 못하는 인물이라면 공작 정도겠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아론은 공작을 가까이서 대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상태창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첫날, 식당에서 공작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위압감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도 격이 다른 존재에 속할 것이었다.

    아론은 노사서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포드 공과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습니다. 당신이 보통의 실력자가 아니란 것을 말입니다.”

    상태창을 볼 수 없으니까 알았다, 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약 한 달 정도. 포드 공은 제가 물어보는 것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시고, 또 그것을 넘어서 알려 주신 것도 있었지요.”

    “저는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열정을 좋아해서 몇 가지 가르쳐 드린 것뿐입니다, 허허.”

    “그렇다면 저는 다시 묻고 싶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아론은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아론 도련님. 고개를 드시지요. 아무리 보는 눈이 없다지만 좀 민망합니다.”

    노사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도련님도 아시잖습니까. 공작가의 자제분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건…….”

    “각 자제분들에게 마법 수업이 배정된, 가문의 전속 마법사들만 할 수 있지요.”

    아론도 그 부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속 마법사가 없었다.

    과거의 자신이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며 실컷 망나니짓을 해댄 결과였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방법이 하나 더 있긴 했다.

    “아니면 제가 아론 도련님의 세력에 합류하길 바라는 겁니까?”

    마침 노사서가 그 부분을 말해주었다.

    아예 어느 한 편에 붙어서 한배를 탄다면 권한이고 뭐고 상관없었다.

    다만 아론에게 그렇게까지 해줄 사람은 공작가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론과 한배를 타겠다는 건 난파선에 탑승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군.’

    무작정 호의를 바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가 혹할만한 미끼를 던지는 방법을 써야 했다.

    “포드 공도 여태껏 저와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셨을 겁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제법 흥미를 느끼셨지 않습니까?”

    아론은 낯간지러움을 참아가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대화 도중에 몇 가지 오고 갔던 마법 이론들 말입니다. 가령, 최근에 이야기를 나눴던 마그누스 효과에 대해서라던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마나 투사체에 대해서, 도중에 회전을 넣을 수 있을지의 여부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노사서는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론이 지구에서 배웠던 이론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론에 대한 원리는 말하지 않고 직접 마법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포드 공은 신기하게 바라봤었지.’

    그러고는 자신이 한번 연구해 볼 테니 그전까지 이론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내셨습니까?”

    “제게는 신선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알아내지 못했군요.”

    “제 사고 방법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저의 스승이 되어주신다면 비단 마그누스 효과 말고도 많은 영감을 얻으실 겁니다.”

    아론은 최대한 자신을 포장해서 말했다.

    물론 그가 언급한 마그누스 효과야 운이 좋아서 이 세계에 관련 이론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즉 블러핑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저 말의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아론의 말을 들은 노사서는 속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론이 이렇게까지 숙이면서, 마법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데 말이야…….’

    이전에 자신이 부하에게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살짝 도와주는 정도는 괜찮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의 스승이 된다는 건 그 살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으음…….’

    단순한 호기심이 일었다.

    아론의 재능이야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고, 그 탓에 이상한 길로 빠져서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근데 그 망나니가 달라졌다.

    게다가 마법에 대한 열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자신이 곁에서 도와준다면…….

    ‘어쩌면 차세대 그랑 마기아를 내가 키우게 될지도 모르겠군.’

    노사서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마법의 정점에 선 자.

    마법사들은 그 자에게 공경을 갖추어 그랑 마기아라 불렀다.

    물론 그의 생각은 반쯤 농담이었다. 재능이 있다고 해도 정점에 선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편, 아론은 노사서가 반응이 없자 불안해졌다.

    “단순히 제 스승이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돕고 돕는 상호 호혜의 관계가 되자 이 말이지요.”

    아론은 좀 더 어조를 낮춰서 이야기해 진중함을 더했다.

    “공작가 내부에서 보는 눈도 있고 제약이 존재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 일,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고 입 꾹 닫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론이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노사서는 이미 속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알겠습니다.”

    “그 말은, 제 스승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론이 되묻자 노사서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허허. 아직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닙니다.”

    노사서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가르쳐 드리긴 하겠습니다만, 그 장소는 여기에 한해서만입니다.”

    “괜찮습니다.”

    노사서는 이곳, 도서관에 있는 아론의 개인실로 장소를 한정했다.

    아론도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은 충분히 넓었고, 자제들의 개인실로 향하는 공간은 철저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다.

    또, 이 장소는 아론의 허락이 없으면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도련님께서 직접 비밀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도 지키겠지만, 도련님도 이 일을 외부에 알리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건 당연한 거였다.

    아론은 그 말에 이견이 없었다.

    “도련님께서 스승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으니까…… 앞으로 대하는 방식이 좀 달라질 겁니다. 그 점은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사서는 아론의 동의를 구했다.

    무언가 살짝 불안하긴 한데…….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그때였다.

    아론은 노사서의 분위기가 180도 달려진 것을 느꼈다.

    “수업을 시작해 볼까?”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뭐지?’

    노사서는 마치 딴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은 이 상황을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 혹시 이거 실수 아니야?’

    아론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물릴 순 없었다.

    ‘그래. 성장하기로 마음먹었잖아. 그리고 계획대로 포드 공이 내 스승도 되어주었고.’

    아론은 불안함을 애써 감추고는 그렇게 의지를 다졌다.

    ***

    포드의 추진력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부탁한 그 날부터 바로 수업을 시작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포드는 직접 시연을 보여주겠다며 자세를 취했다.

    그는 바닥에 엎드리고는 팔뚝과 발끝을 중심으로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 자세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아론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거 플랭크잖아?’

    해본 적은 없지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얼핏 쉬운 운동처럼 보이지만 버티는 것이 지옥처럼 어렵다는 바로 그 운동이었다.

    ‘근데 갑자기 이걸 왜?’

    그러나 포드는 아론이 묻기도 전에 일어났다.

    “내가 했던 자세를 따라 해보게.”

    아론은 어쩔 수 없이 엉거주춤 그 자세를 따라 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으니 까라는 대로 깔 수밖에 없었다.

    “팔꿈치는 일자로! 오직 복부에만 힘을 주면서 버티는 거다!”

    포드는 아론의 자세를 하나하나 지적해 가며 가르쳤다.

    “윽!”

    털썩!

    하지만 제대로 자세를 잡고 하자 아론은 5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몸이 약해도 너무 약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나 회로조차 엉망이었던 몸이었다.

    겨우 마나가 흐를 정도로 회복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육체 운동은 무리였다.

    “어허…… 벌써부터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아론은 항변하고 싶었다.

    이 몸은 너무나도 약해빠졌다고.

    ‘원래 내 몸이라면 그래도 30초는 버텼을 거야.’

    물론 해본 적이 없었기에 단순한 추측이었다.

    “1분을 버티지 못하면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 알겠나?”

    “예, 예?”

    1분을 버티라니.

    10초도 힘든데?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나가 깃든다! 조금만 더 버티게!”

    하지만 아론은 플랭크 자세를 유지한다고 무어라 말할 힘 자체가 없었다.

    결국, 아론은 몇 시간 동안 씨름한 끝에 겨우 1분을 버티는 데 성공하고는, 그대로 퍼질러지고 말았다.

    * * *

    아론의 친화력과 체력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마나 중독으로 회로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지, 원래 주인 녀석은 그거도 모르고 몸에 안 좋은 짓은 다 해놨고 말이야. 몸이 정상일 리가 있나.’

    아론은 에드먼스 가의 망나니라는 칭호에 걸맞게 안 그래도 약골인 몸을 이끌고 안 좋은 짓은 다 하고 살았다.

    그것도 수년이나.

    그 덕에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늦지 않아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이 몸의 전 주인이 저지른 업보를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게 원망스럽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알다시피 자네의 몸은 많이 망가진 상태지. 그래서 앞으로 꾸준히 신체 단련을 시킬 생각이네.”

    포드 역시 그 점을 지적했었다.

    ‘근데 저 양반…….’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근데 적어도 저런 표정을 지은 채로 말하지는 말아 줬으면 했다.

    마치…….

    ‘내가 고통을 겪는 걸 즐기는 것 같잖아?’

    그리고 포드는 분위기가 바뀌고 나서부터 말을 놓기 시작했다.

    ‘뭐, 그게 더 편하긴 하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양반이 자기에게 존대를 하는 게 껄끄럽긴 했었다.

    ‘그래도 포드 공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

    아론은 그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 쉴 만큼 쉬었으니…… 다음 신체 단련으로 넘어가 볼까?”

    “예?”

    아론은 진심으로 놀라서 되물었다. 플랭크가 끝이 아니었나?

    “저…… 조금만 더 쉬다가…….”

    “어허,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빨리빨리 일어나게!”

    포드는 늘어진 아론을 호통치며 일으켜 세웠다.

    ‘아니, 뭔 힘이 이렇게 세?’

    아론의 몸은 아직 자라는 중인 소년이었지만, 그런 그를 가볍게 일으켜 세울 힘이 있었다.

    “자, 내 자세를 보고 따라 하도록.”

    그런 아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드는 힘차게 외치며 그에게 가혹한 단련을 시켰다.

    “허억, 허억!”

    아론은 단련 내내 숨을 헐떡였다. 플랭크를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운동들이 첩첩산중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아론은 탈진해서 혼미한 와중에도 생각했다.

    ‘사실 내가 미끼를 던져 포드 공을 스승으로 낚은 게 아니라…… 내가 월척으로 걸린 거 아냐?’

    혹시 예전에 자신에게 무례를 당했던 것을 이번 기회를 빌려 합법적으로 자신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혹했다.

    ‘으으…… 정신이, 멀어져 간다.’

    계속되는 단련 강행군.

    아론의 시야가 땀 때문에 흐려질 즈음이었다.

    “오늘 신체 단련은 여기까지 하지.”

    포드의 그 말은 그에게 구원의 한 마디가 되어 주었다.

    “흐어억, 허억!”

    아론은 땅에 퍼질러져서 숨을 몰아쉬었다.

    “쯧쯧, 몸이 이렇게 약해서야. 갈 길이 멀겠어.”

    포드는 아론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당신이 한번 해보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포드는 거뜬하게 해낼 거 같아서 생각만으로 끝냈다.

    “어느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군. 이후에 시간 괜찮나?”

    아론은 말할 힘이 없었기에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좋아. 조금 쉬다가 식사 후에 다시 여기서 보도록 하지.”

    포드는 그 말을 남긴 뒤 나갔다.

    아론도 방으로 돌아가서 더러워진 몸을 씻고, 밥을 먹은 뒤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그래도 운동을 한 덕분인가…… 이전처럼 몸이 심하게 아프진 않네.’

    물론 근육통은 늘어났지만 말이다.

    찰나라고 느껴질 만큼의 그 시간은 정말이지 꿀맛 같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쉬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아론은 시간이 되자 다시 도서관의 개인실로 향했다.

    “어서 오게.”

    포드는 이미 와 있었다.

    “잘 쉬었나?”

    누가 들으면 한 몇 시간 쉬고 온 줄 알겠다.

    “예, 그럭저럭.”

    “다행이군. 그나저나, 자네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네.”

    포드는 아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내게 가르침을 달라고 매달린 건가? 물론, 자네의 마법에 대한 열망은 알겠네. 하지만 뭔가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 보이는 것 같군.”

    어차피 아론과 포드는 서로 비밀을 유지해야만 하는 관계였다. 아론은 그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열 순위를 올리는 게 현재 제 목표입니다. 제 앞에 있는 케빈을 제치고 5위가 되고 싶습니다.”

    “단순히 서열이 뒤처져서?”

    포드의 물음에 아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저는 가문 내에서 최하위 서열이니까요. 공작가의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가 없습니다.”

    포드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강한 자가 아니면 필요 없다는 것이 공작의 신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식이 망나니처럼 살아도 똑바로 잡아주거나 그러지 않았다.

    “서열을 올려서 아버지와 독대할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이전에 말했던 칠성초 때문인가?”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한 달도 더 넘은 첫 만남 때의 이야기였다. 포드 공은 용케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칠성초가 현재 몸 상태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요.”

    포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해가 가는 목적이었다.

    “한데, 더 위로 올라가는 건 관심이 없나?”

    “5위보다 더 위의 서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생각 없습니다. 아니, 제겐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러자 포드는 흥미롭다는 눈빛을 띠었다.

    “후계자 경쟁에 휘말리기가 싫어서 그러는 것인가?”

    “예. 저는 가주 자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마법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만 있으면 됩니다.”

    아론은 거짓 없는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그걸 들은 포드는 껄껄 웃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텐데…… 혼자서는 격류에 맞설 수가 없거든.”

    포드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아론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휘말리기 싫다고 말해도 그걸 가만히 놔두지 않는 주변 세력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힘을 기르는 거지.’

    물론 수명 연장을 위해 마법을 단련하는 게 우선 목적이었다.

    하지만 힘이 있으면 위력 행사라는 옵션이 부차적으로 따라왔다.

    자신을 건드리면 큰 피해를 보겠구나. 상대에게 그 정도의 계산이 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길 원했다.

    “너무 늦게까지 여기에 있을 순 없으니, 슬슬 마나 운용법을 가르쳐 보도록 하지.”

    포드의 말을 들은 아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이거지. 이제야 좀 수업답구만.’

    아론은 지옥 같았던 신체 단련이 떠올랐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안다. 하지만 정말로 원했던 건 이런 수업이었다.

    “마나 운용은 결국 체내에 있는 마나를 어느 회로로 보내느냐의 문제다.”

    아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마나 회로는 달랐다.

    그래서 그 방법도 여러 가지였고, 어느 회로를 쓰느냐에 따라서 마법이 발현되는 효율도 달라졌다.

    포드는 기초적인 것들을 설명해 준 뒤, 아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마나 운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내가 관찰하고 있을 테니 부담 없이 해보게.”

    “알겠습니다.”

    아론은 편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런 뒤 집중하기 시작했다.

    체내에 모여 있던 마나를 일깨워 공명시켰다.

    ‘마나 운용에 관해선 나도 일가견이 있지.’

    아론은 지구에서 재능이 없던 몸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마법을 쓰기 위해 그야말로 발악을 했었다.

    그래서 마나를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다.

    잠시 후, 포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게서는 보기 드문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내 세심한 마나 운용법에 감탄한 모양이군.’

    그의 반응을 본 아론은 의기가 양양해졌다. 그래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마나를 회로에 퍼트렸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몸의 친화력이 높은 덕분에 마나를 움직이는 것도 물 흐르듯이 잘되었다.

    아론이 한창 마나 운용에 심취해 있을 때.

    “허…… 그만, 그만.”

    포드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마나 운용법은 어디서 배웠나?”

    “……예?”

    포드의 입에서는 아론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발언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칭찬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론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왜 굳이 자네 몸에서 제일 넓은 회로를 놔두고, 그 좁아터진 회로를 쓰냐 그 말일세.”

    그런 뒤에 혼잣말을 덧붙였다.

    “곁에서 누가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이 지경이 되어버렸군…….”

    라고 말하며 혀를 찼다.

    아론은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강현이었을 때, 마나는 이렇게 운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보유한 마나가 적으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고자 노력한 결과였다.

    ‘제일 넓은 회로를 놔뒀다고? 무슨 말이지?’

    아론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포드가 입을 열었다.

    “자네의 서클 근처를 잘 관찰해보게. 거기에 내가 말한 회로가 있을 걸세.”

    서클 근처라 함은 심장 아래쪽을 의미했다.

    아론은 포드가 말한 대로 그곳에 집중해 보았다.

    “앗……!”

    그제야 아론은 느낄 수 있었다. 광활하고도 탄력적인 마나 회로가 서클 주위에 깔려 있었다.

    ‘왜 이걸 모르고 있었지?’

    생전 처음 보는 회로였다. 백강현의 몸으로 살았을 때는 이런 회로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이건 대체…….”

    “그 회로가 바로 에드먼스 가문이 마법 명가가 된 이유라네. 가문의 피를 타고 난 사람들은 모두 서클 쪽에 거대한 회로가 있어.”

    설명을 듣고 아론은 이해했다.

    어쩐지 읽은 마법서의 수가 꽤 되었는데 그런 내용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에드먼스 가문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회로라면 이해가 되었다.

    ‘근데 포드 공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지?’

    아론이 그런 의문을 품은 순간, 포드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회로를 사용하면 다른 마법사들보다 더욱 효율적으로 마법을 쓰는 게 가능해지네. 한번 마나를 그쪽으로 보내 보겠나?”

    아론은 포드의 요구에 따라 마나를 운용해 보았다. 처음 마나를 보내 보는 회로이기에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이내 커다란 고통이 엄습해 왔다.

    “커흑!”

    버티기 힘든 끔찍한 고통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오장육부가 쥐어 짜인 듯한 기분이었다.

    “저런, 저런…… 회로가 많이 굳은 모양이구만.”

    포드는 아론의 증상을 보며 말했다.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론은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마나 중독의 영향이 한몫했으리라고 봤다.

    “너무 고통스러운데…… 혹시 해결 방법이 있습니까?”

    “두 가지가 있네. 하나는 그 회로를 쓰는 걸 포기하든가.”

    아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놔두고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끔찍한 이 고통은 견디기 어려웠지만.

    “나머지 하나는 억지로 그 회로에 마나를 주입하는 수밖에 없네.”

    ‘즉, 노가다를 하라는 소리군.’

    정공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의미였다.

    “알겠습니다.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겠군요.”

    아론은 수긍하고 말았다.

    “그런데 회로를 정상적으로 쓰려면 얼마 정도 기간이 필요하겠습니까?”

    “으음…… 못해도 두 달은 걸릴 걸세.”

    두 달이라.

    너무 길었다.

    “알겠습니다. 한 달로 줄여보겠습니다.”

    “허허. 기세는 좋구만!”

    포드는 아론의 대답에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괜히 한 달을 단축한다고 평생 폐인이 되어버리면 곤란하니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 * *

    아론이 한 달 안으로 회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후.

    그의 매일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크으윽!”

    아론의 방에서는 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최대한 참는다고 한 게 이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후작가에는 자신만 사는 게 아니었으므로 자제했다.

    ‘젠장…… 정말 죽을 것 같아!’

    그는 포드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서클 주위의 마나 회로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 작업은 미묘한 간극을 유지하는 게 참으로 어려웠다.

    회로에 마나를 넣은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을 넣는 것은 금지였다.

    초기에 한 번 시도한 적은 있었다. 마나 농도를 높이면 수련 기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서였다.

    ‘그러다 정말 죽을 뻔했지.’

    아론은 그때 내장이 진탕하는 느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마나 농도를 엷게 해서 회로를 약하게 자극했다.

    물론 이것도 견디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마나 회로 주위에 있는 신경들을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이었다.

    “크으읍……!”

    그래도 참았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서클 주위의 회로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이 작업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에드먼스 가문의 피를 타고 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서클에 생성된 마나 회로.

    이 회로는 전신의 어떤 회로와 비교해도 넓이와 탄력에서 궤를 달리했다.

    ‘이걸 알게 됐는데도 고통이 두려워서 이쪽 회로를 쓰지 않는다? 그건 멍청이지.’

    포드 공이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생 썩힐 뻔했다.

    ‘그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이겨내야 한다.’

    그는 오늘도 고통을 참아가며 마나 회로를 길들이는 데 열중했다.

    ***

    아론의 전속 시녀.

    라엘 그랑블루는 주어진 일을 마치고는 시녀들이 휴식하는 장소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아구구…… 허리야.”

    그녀는 허리 쪽을 어루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만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하지만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기에 일을 쉬지는 않았다.

    “어머, 라엘!”

    동료 시녀인 피나가 그 모습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

    “너…… 또 아론 님한테 맞은 거야?”

    피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응? 아, 아니야. 이건 일하다가…….”

    “으이그,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녀는 라엘을 다그쳤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매번 아론한테 맞아서 다치고 멍이 들어도 라엘은 늘 묵묵히 일했고, 뭐든 자기 탓을 했다.

    “에휴. 넌 애가 착해서 문제야.”

    “……진짜 아니야. 오늘 창고에서 일하다가 다친 거야.”

    그러나 오늘의 라엘은 이상했다.

    매번 추궁하면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이 없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완강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정말이야?”

    “응.”

    피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은 그 망나니 도련님이 널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아?”

    그 물음에 라엘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요즘 아론 님은…… 어딘가 좀 달라지신 거 같아.”

    “뭐?”

    그녀는 라엘이 뭔가 잘못 먹어서 정신이 이상해졌나 싶었다.

    “그치? 최근에는 이렇다 할 소란도 안 일으키고 말이야.”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시녀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어, 도레미? 넌 또 왜 그래?”

    “그야, 사용인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한걸. 아론 님이 최근 조용해진 거로 말이야.”

    “어? 그러고 보니, 나도 그분이 사고치고 다닌다는 걸 못 들은 지 꽤 된 거 같은데……?”

    피나도 턱을 괴고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응. 역시 들은 적이 없네.”

    “요즘은 아론 님이 도서실이랑 개인 수련실에만 나타나신다고 하던데…… 라엘,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도레미의 물음에 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론 님이 그 두 곳만 다니는 건 사실이야. 근데 자세하게 뭘 하는지는 얘기해 주시지 않으셔서 나도 잘 몰라.”

    “그래?”

    “요즘 안색이 안 좋아진 거 같기도 한데…….”

    라엘은 혼잣말하듯이 뒷말을 덧붙였다.

    “무슨 바람이 부셨나?”

    “에이. 잠깐 그러고 마시겠지.”

    도레미의 말에 피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난 아론 님이 바뀌었다고 믿어.”

    그렇게 말하는 라엘의 눈에는 아론에 대한 헌신이 엿보였다.

    한편, 아론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건 시녀들 사이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의 사서들 역시 그의 최근 행보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론 님이 정말 책만 읽으실 줄은 몰랐지.”

    “처음에 나는 그 책으로 얻어맞는 줄 알았다니까.”

    “쉿! 도련님 오셨다.”

    사서들은 농담을 하던 도중 아론이 도서관에 들어온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론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개인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멀어지는 아론의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유. 들으셨으면 한바탕하셨겠어.”

    “허허. 앞으로 뒷담화는 조심해서 하게.”

    “앗…… 포드 님!”

    사서들은 갑작스러운 포드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때, 눈치 빠른 사서 한 명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례한 발언 죄송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를 향해 물어보았다.

    “근데 말입니다…… 예전에 포드 님이 아론 님께 책을 골라 주신 날에, 혹시 변을 당하거나 그러진 않으셨습니까?”

    “별일 없었네. 그 이후로 가끔 나한테 찾아와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곤 했지.”

    “허어…… 희한하군요. 그 망나니 도련님이 독서에 빠지시다니.”

    “그러게 말일세.”

    포드는 껄껄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이 노사서가 아론의 스승이 된 걸 알지 못했다.

    포드는 들키는 것을 염려해, 인식을 저해하는 마법을 쓴 채로 아론의 개인실을 드나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포드는 아론의 개인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포드 공! 제가…….”

    포드는 손을 들어 아론의 말을 제지했다.

    ‘드디어 해낸 모양이군.’

    아론이 서클 주위 마나 회로를 뚫었다는 건 그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나중에 나눠도 괜찮았다.

    “일단 신체 단련부터 시작할까? 한 달 안 되는 시간이긴 해도, 그동안 못 봤으니 말이야. 몸이 굳었을까 봐 두렵군.”

    “……알겠습니다.”

    포드는 아론이 똥 씹은 표정이 되어가는 것을 보며 미소지었다.

    ***

    “허억, 허억!”

    아론이 신체 단련으로 한 바탕 구른 후.

    “그래도 아직 체력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포드는 바닥에 퍼진 아론을 보며 껄껄 웃었다.

    아론은 포드의 말에 딴지를 거는 것보다는 체력을 보존하는 걸 택했다.

    “축하하네. 오늘 이렇게 찾아온 걸 보니, 드디어 서클 쪽에 있는 마나 회로를 네 것으로 만든 모양이지?”

    “예.”

    “상기된 표정만 봐도 그 기쁨이 나한테까지 느껴지는구나.”

    얼굴이 빨개진 건 방금 막 푸시업을 해서 그런 건데요.

    라고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속에서 꾹꾹 눌러 담았다.

    “허허, 좋다. 그럼 이제 다시 한번 마나를 운용해 보게. 그때처럼 볼품없이 하지는 않겠지?”

    “물론이죠.”

    포드의 그 말에 아론은 자세를 잡았다. 그런 뒤 마나를 일깨웠다.

    화아악!

    서클에서 마나가 약동하며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예전에 그가 보여줬던 마나의 흐름이 도랑 정도였다면, 이제는 하천쯤은 되었다.

    “음, 음.”

    포드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마나 운용은 미세한 부분만 조정하면 되겠구나.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마법 수업을 해보자꾸나.”

    “이 시간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론은 눈을 반짝였다.

    “좋아. 배움의 자세가 되어 있군. 내가 확실하게 가르쳐 주마.”

    포드는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

    그렇게 매일 아론은 포드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포드는 그를 가르치면서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론에게 하나를 가르치면, 그는 그걸 연계해서 적용하는 법을 알았다.

    지식과 재능의 결합이 이루어 낸 쾌거였다.

    지구에서 강현으로 살아갔을 때는 마법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은 재능이 있는 신체가 더해진 상황.

    성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가르칠 맛이 나는 녀석이다.

    포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흡족해했다.

    재능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열정이 있으니 성장 속도는 괄목할 만했다.

    그 결과, 며칠 전에 드디어 아론은 3서클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법사에게 있어 서클은 엔진과도 같은 것. 그 수가 늘어날수록 당연히 마법의 출력도 달라지게 된다.

    ‘항상 기대를 뛰어넘는 녀석이구만.’

    포드는 속으로 껄껄 웃었다.

    “아론. 이제 연습용 과녁을 상대하는 건 질리지 않느냐?”

    “그야…… 그렇죠.”

    “이제 사람과 직접 대련을 해보는 건 어떻겠나?”

    “예? 제가요?”

    “3서클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아론이 우려하는 점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나랑 겨뤄줄 사람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없었다.

    당연히 다섯째는 논외였다. 그와의 대결은 허를 찌를 필요가 있었다. 벌써부터 대련으로 정보를 노출하는 건 사양이었다.

    “그게…… 대련할 사람이 마땅히 없어서 말입니다.”

    “허허, 그건 네가 알아서 구해야지. 내가 나섰다간 너와의 관계를 의심받지 않겠느냐.”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아론과 포드가 사제 관계라는 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비밀이었다.

    으음, 어쩐다.

    아론은 고민에 빠졌다.

    포드는 그런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공작가의 자원은 뒀다가 어디다 쓰려고 그러느냐?”

    “아…….”

    있긴 있었다.

    공작가에서 육성하는 마법사들.

    에드먼스의 영지에는 마법 명가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전국에서 전도유망한 마법사 지망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군요. 이곳의 교육생들을 쓰면 되겠군요.”

    하지만 이내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근데, 제가 거기 사람은 한 명도 모르는데요.”

    “정말 모르느냐?”

    “……예.”

    포드의 의미심장한 질문.

    아론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내가 그쪽과 관련이 있었나?’

    포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론, 네가 대결의 장을 열겠다고 하는 순간 사람들이 줄을 설 걸세.”

    “아무래도 공작가 자제와 대결할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아론의 그 대답에 포드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껄껄껄! 자네한테 한바탕 해코지를 당하고 나서 이를 갈고 있는 교육생들이 많다네.”

    아…… 그런 의미에서였나.

    아론은 그제야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당사자가 대련을 주최한다니, 합법적으로 때려눕힐 기회가 생겼다며 좋다고 달려들지 않겠나?”

    포드는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낄낄거렸다.

    …….

    아론은 수련에만 몰두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자신은 공작가의 망나니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래도 이 몸의 원래 주인은 공작가의 교육생들과도 한바탕했던 모양이었다.

    ‘이거…… 대련 상대를 쉽게 구해서 기뻐해야 하는 건가.’

    아론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며칠 후, 아론은 에드먼스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마법사들을 가르치는 곳은 공작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기가 교육장이군.’

    아론은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예전에 자기가 다녔던 헌터 아카데미와 비슷한 정도의 크기였다.

    그때도 200명 정도가 한 건물에서 합숙하며 헌터 생활에 필요한 기초 공부를 했었다.

    ‘이 세계에선 인연도 없는 건물인데, 이렇게 옛날 생각도 나게 만드네.’

    아론은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뒤 포드가 알려준 대로 교관 마법사를 찾아갔다.

    ‘그는 훈련장에 있다고 했지.’

    때마침 그는 그곳에 있었다.

    이곳 아카데미의 총괄 교관 레이널드 아르센.

    그는 오늘 있을 수업을 준비 중이었다.

    “……아론 도련님 아니십니까?”

    레이널드는 아론을 보자 정중하게 인사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요즘 마법 연습을 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런데, 적절한 상대를 좀 구할 수 없을까 해서.”

    “실례지만 지금 성취가 어느 정도 되셨습니까?”

    “막 3서클에 들어섰어.”

    아론의 그 말에 교관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물어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만…….”

    레이널드는 사무적인 태도로 아론에게 거절의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귀찮은 일이 일어날까 봐 거절하겠다는 거네.’

    하지만 레이널드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아론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맞았다.

    그는 이곳의 총괄 교관.

    그렇기에 불의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의무가 있었다.

    옛날 일이지만, 아론은 자신의 가문을 들먹이며 이곳에서 난동을 피운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도 채 쓰지 못하면서 교육생들을 끌고 와 대련을 했었다. 당연히 결과는 아론의 패배였지만, 그는 대련이 끝나고도 온갖 패악질을 부렸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레이널드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아론은 교관이 이렇게 나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게 걱정되어서 그런 거잖아? 그건 붙들어 매. 이번에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런 일이 한두 번이었어야지.

    레이널드는 아론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제 정신 차렸어. 마법 수련을 하고 싶은데, 대련 상대가 마땅히 없으니까 영 성장이 더뎌서 말이야. 좀 봐주라.”

    “음, 도련님…….”

    레이널드는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지원자를 받는 형식으로 하면 문제없는 거 아냐?”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나에게 당한 교육생들이 좀 있지 않아? 그들은 좋다고 하면서 앞다투어서 달려올걸?”

    ‘물론 내가 한 짓거리는 아니지만.’

    아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만약 내가 진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나를 내쫓아도 좋아. 이 말은 공작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음…… 그렇게까지 하신다면.”

    “그래. 내가 이렇게 했는데도 소란을 부린다? 아버지한테 바로 보고해도 좋아.”

    “……알겠습니다.”

    레이널드는 눈을 질끈 감고 아론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불안한 기분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까.’

    자신은 공작가로부터 고용된 입장이었다. 아무리 아론이 문제아이긴 해도 고용주와 연관 있는 인물이었기에 강하게 나갈 순 없었다.

    ‘그리고 도련님이 3서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레이널드는 아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예전의 그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가 정신을 차리고 성장했다면.

    ‘그 결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레이널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오늘 교육생들에게 말해 두겠습니다.”

    그는 넉넉잡아서 오늘 아카데미 일과가 끝난 뒤에 다시 찾아오라고 아론에게 말해 두었다.

    ***

    ‘얼마나 모이려나.’

    아론은 그날 오후에 다시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훈련장에 가니 이미 교관들과 교육생들이 모여 있었다.

    ‘어디 보자…….’

    아론은 그 수를 헤아려보았다.

    15명이나 모여 있었다.

    ‘많이도 모였군.’

    아론은 훈련장에 들어서며 그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교육생들은 절대 아론을 환영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적의와 분노.

    부정적인 감정이 그들로부터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내가 공작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거리낌 없이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신기하군.’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자신은 공작가의 자제이지만 약골에 망나니였기 때문에 공작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입장이었다.

    ‘뭐, 그편이 좋지. 괜히 공작 아들이라고 힘 빼고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레이널드는 아론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혹시…… 너무 많습니까? 지원자를 추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론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나랑 붙어 보겠다고 일부러 찾아온 놈들인데. 그런 애들을 내쳐서야 내 자존심이 안 살지.”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모두와 붙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겠고, 오늘부터 시작해서 매일 저녁 3명씩. 어떻나?”

    “아론 님께서 편하신 방법으로 하시지요.”

    “응. 내가 말한 대로 하는 게 낫겠어. 순서는 알아서 정해 줘.”

    “알겠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하면 5일간 3명씩 싸워야 했다.

    잠시 후.

    “아론 님. 오늘 대련할 교육생들이 정해졌습니다.”

    레이널드는 세 명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다. 장소는 여기서?”

    “예. 혹시 준비 시간은 따로 필요하십니까?”

    “아니, 난 바로 가능해.”

    아론은 훈련장 중앙에 서며 몸을 풀었다.

    첫 번째로 맞붙을 교육생도 뒤따라서 아론을 마주 보고 섰다.

    “말레우스 가문의 둘째, 시몬 말레우스입니다.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론 에드먼스다.”

    서로 통성명은 가볍게 끝냈다.

    시몬은 아론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이 당했던 수모를 오늘 갚아줄 생각에 기분이 들 떠 있는 상태였다.

    ‘흐음. 꽤 우습게 보인 모양이군.’

    아론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하지만 대련을 붙고 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좀 살살 해드릴까요?”

    “아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싸워.”

    “흐흐, 알겠습니다.”

    시몬의 싸구려 도발.

    아론은 미소 지으며 그걸 받아쳤다.

    곧바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주위로 마나가 일렁거렸다.

    ‘어디, 얼마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볼까.’

    아론은 상대가 마법을 쓰기를 기다렸다.

    교육생들은 고작해야 2서클 혹은 3서클이었다. 아직 정식 마법사가 아닌 그들은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화르륵!

    시몬은 화염계 기초 마법인 파이어 볼트를 시전했다.

    화아악!

    그는 세 발을 장전한 뒤 아론을 향해 날렸다.

    아론은 날아오는 불의 화살을 바라보며 실드 마법을 외웠다.

    파이어 볼트의 궤적이 자신에게 꽂히는 순간, 아론은 전방에 준비된 실드를 펼쳤다.

    퍼퍼펑!

    시몬이 쏜 파이어 볼트가 실드에 직격했다. 하지만 아론의 실드를 뚫지는 못했다.

    ‘실드를 사용한다고?’

    시몬은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자 당황했다.

    하지만 이는 마법 대련에선 흔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 상대가 망나니 아론이라는 게 놀라움을 부추겼다.

    ‘첫 타는 요행으로 막았어도 다음 공격은 그렇게 안 될 거다.’

    시몬은 그리 생각하며 다시 파이어 볼트를 시전해 날렸다.

    퍼퍼퍼펑!

    하지만 이번에도 아론이 전개한 실드에 공격이 막히고 말았다.

    ‘……요행이 아니었나?’

    시몬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 번이나 막았다는 건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의미였다.

    “아론 님이 공격을 막았어?”

    놀란 것은 시몬만이 아니었다.

    멀리서 대련을 지켜보던 교육생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보통 시작한 지 한두 합 만에 아론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공격을 두 번이나 버티다니. 교육생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황한 모양이군.’

    아론은 시몬의 실력 가늠을 마쳤다.

    그렇다면 녀석이 잠깐 틈을 보인 지금, 허를 찌를 필요가 있었다.

    치지직!

    아론은 전격계 기초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를 시전했다.

    이 마법은 파이어 볼트보다 캐스팅 속도는 물론 발사 속도도 빨랐다.

    ‘엇? 전격계 마법?”

    시몬은 아론이 보여주는 마법을 보고 당황했다.

    쐐액!

    빠르게 날아가는 네 발의 작은 번개들.

    ‘빨리 실드를 전개해야……!’

    시몬은 라이트닝 볼트의 궤적을 좇으며 실드 마법을 급조했다.

    퍼퍼퍼펑!

    전격이 케빈의 실드를 두들겼다.

    ‘뚫지는 못했군.’

    아론이 예상한 대로였다.

    당연히 이 한 방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시몬의 심리적인 동요를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이 망나니가, 대련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었나?’

    시몬은 미간을 좁힌 채 아론을 바라봤다.

    방금 주고받은 건 마법 대련에서 기초적인 공방이었다. 하지만 아론이 그걸 자연스럽게 해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공작가에서 제일 서열이 뒤처진 망나니가 이 정도일 줄이야.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군.’

    하지만 아론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서클 주위의 마나 회로가 자극받으며 순식간에 마나가 준비되었다.

    화르륵!

    아론의 손에서 일렁이는 파이어 볼트. 총 다섯 발의 화염 화살이 쏘아졌다.

    시몬도 그걸 보며 맞공격을 쏘아냈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실드를 펼치려고 했다.

    ‘저렇게나 파이어 볼트를 하면 실드 마법을 쓰는 게 불가능할 거야!’

    시몬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 공격만 막아내면 자신의 승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론이 망나니라 해도 에드먼스 가문의 피를 타고 태어났다.

    서클이 같을지라도 쓸 수 있는 마법의 효율이 달랐다.

    아론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파이어 볼트를 보며 순식간에 실드를 전개했다.

    ‘아니?’

    그 장면을 본 시몬은 어이가 없었다.

    펑! 퍼엉!

    아론은 그가 쏜 파이어 볼트를 안정적으로 막아냈다.

    반면.

    콰쾅!

    “으윽!”

    시몬은 아론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냈다. 그의 손목을 타고 묵직한 타격감이 전해졌다.

    실드가 불안정한 탓도 있었지만 같은 기초 마법임에도 위력에서 차이가 났다.

    아론은 아무런 타격이 없었기에 곧바로 다음 마법을 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시몬은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게 정녕 망나니란 말인가?

    어떻게 공격과 방어 마법을 동시에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야말로 공방 일체의 괴물이었다.

    자신도 둘 중 하나는 위력을 포기해야만 동시 시전이 가능했다.

    서로 간에 몇 차례의 합이 더 오고 갔다.

    아론은 쉴 새 없이 공격 마법을 쏘아냈다. 그러면서도 시몬의 마법이 날아올 때마다 실드를 펼쳐 수월하게 막아냈다.

    ‘……젠장.’

    쫓기는 듯이 대련을 하는 시몬에게는 필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의 마법을 집중적으로 투하했다.

    “크윽!”

    날아간 마법이 시몬에게 정통으로 명중했다. 그는 그 충격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더 이상 시몬은 마법을 쓸 수가 없는 상황. 패배한 거나 다름없었다.

    “첫 전투는…… 아론 님이 이겼군요.”

    대련을 지켜보던 레이널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 * *

    그러나 시몬은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아직……!”

    그는 고개를 쳐들며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게 한계였다.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마법을 직격으로 맞은 충격 탓이었다.

    ‘크윽…… 이대로 끝내야 하는 거야?’

    그는 자신의 실력이 부끄러워졌다.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그런데 망나니 도련님에게 순수하게 실력으로 밀리고 말았다.

    ‘꼭 복수하고 싶었는데……!’

    시몬은 아론으로부터 치욕을 받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때의 그는 멋모르고 아론이 신청한 대련을 받아들였다. 당시에도 아론은 망나니였기에 시몬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가 문제였다.

    그는 사용인들을 데려와 구타를 선사했고,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주는 대가로 아론은 무릎을 꿇고 개처럼 짖으라고 했었다.

    시몬은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요구를 그대로 따랐다.

    그날 이후로 그 치욕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에드먼스 가문에 비해 급은 딸리더라도 그도 엄연한 귀족이었다. 명예에 먹칠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아론은 공작가에서도 내놓은 망나니. 자신이 정식 마법사가 되면 본때를 보여주려 했었다.

    그런데 아론이 대련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게다가 난동도 부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못을 박았다.

    이번 대련이 합법적으로 아론에게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리어 자신이 당할 줄이야.

    ‘움직여, 움직여!’

    시몬은 자신의 몸을 향해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충격의 여파 때문에 신경이 끊긴 것처럼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아론.

    ‘상당히 분해하고 있는 것 같군.’

    이해는 갔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난다만, 과거의 아론에게 무자비하게 치욕을 당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자신이 벌인 짓은 아니었으니까.

    이 몸의 이전 주인이 한 짓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움직이지도 못한다.

    아론은 그가 스스로 패배를 선언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졌습니다.”

    결국 시몬은 패배를 인정했다.

    훈련장의 다른 교육생들도 그 광경을 입 다문 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자신들은 실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이곳, 에드먼스 아카데미의 교육생이 되려면 각자가 속한 곳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공작가에서 고작해야 서열 최하위 망나니조차도 이기지 못한다고?

    다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아론도 그것을 잘 알았다.

    ‘저들의 능력치는 친화력만 빼면 나랑 비슷하지.’

    하지만 그 재능의 차이를 제대로 이용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거기다가 아론이 강현이었을 적에 겪었던 전투 경험들이 더해지니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래도 혼자 과녁에 마법을 쓰는 것보다 대련이 훨씬 재밌군.’

    아론은 이번 대련으로 그것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희열감이 느껴졌다.

    “아론 님. 잠시 쉬시겠습니까?”

    “아니, 바로 다음 상대 올려.”

    아론은 쉬지 않고 두 명의 교육생과 대련을 치렀다.

    그 결과는 둘 다 아론의 승리.

    오히려 물이 올랐는지 시몬과 싸웠을 때보다 더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고작 이 정도인가?’

    아론은 쓰러진 마지막 상대를 보며 생각했다.

    이 페이스라면 남은 12명도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교관은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다.

    ‘첫 번째 승리는 어쩌면 요행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련을 보니…… 실력은 확실하다.’

    지금 훈련장에는 실력은 없고 허세만 가득했던 망나니는 온데간데없었다.

    어엿한 에드먼스 가문의 자제가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공작님에게 보고해야 하나?’

    레이널드는 고민했다.

    아카데미 내에서 공작가 자제가 벌인 일은 모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아론이 여기에서 벌였던 행각은 추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보고를 올리면 한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공작이 그를 따로 불러서 굳이 서열 6위 따위의 일은 보고하지 말라고 통보했겠는가.

    ‘하지만 이번 일은 보통 일이 아니야.’

    이번 일은 추태가 아니었다.

    아론이 성장했다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남아 있는 4일간의 대련 뒤에 결과를 공작님께 보고해 드리자.’

    레이널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정도라면…… 조만간 서열이 뒤바뀔지도 모르겠군.’

    그는 그것이 날갯짓이 되어 폭풍이 될 것 같다는 염려가 들었다.

    ***

    에드먼스 공작가의 가주.

    카이만 에드먼스.

    그는 자신의 서재에서 집무를 보는 중이었다.

    여기저기서 올라온 안건들을 처리하느라 매일이 바쁜 날이었다.

    아무래도 공작가쯤 되다 보니 사소한 안건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다른 귀족 가문도 아니고 에드먼스 가문이었다.

    그렇기에 왕국의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에드먼스 가문을 거쳐 갔다.

    [메도우드 왕실과 웨일즈 상단과의 회동 기록]

    [펠트 가문과 제레드 가문 간의 불가침 협정 조약 건 보고서]

    …….

    그의 책상 한편에 놓인 보고서들만 본다면 마치 이곳이 왕국의 집무실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카이만의 관심 대상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한 장의 보고서를 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이 종이는 자신의 심복 중 한 명이 올린 보고서였다.

    거기엔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단연 눈에 띄는 내용은 하나였다.

    [최근 포드 공이 아론과 자주 접촉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도서관에서 포드와 아론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까진 서술되어 있지 않았었다.

    카이만은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드 님. 완전히 은퇴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는 포드의 행적이 이해 가지 않았다.

    ‘여기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일 한심한 녀석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겁니까?’

    굳이 아론과 만나서 시간을 들인다는 게 이상했다.

    공작이 아론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론에게 관심조차도 없었다.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망나니 아들에게까지 신경을 쓰기엔 힘이 아까웠다.

    단지 포드 같은 귀중한 인재가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제 와서 아론에게 애를 쓴다고 무언가가 달라지겠는가?

    물론 공작도 아론이 가진 재능만큼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봤자 무엇 하는가. 그 재능을 받쳐줄 신체는 나약하기 그지없었고, 행실은 망나니나 다름없는데.

    ‘그런데, 이제 와서?’

    포드가 아론에게 접촉하는 이유는 그의 성향상 무언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공작은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열심히 해봤자 첫째는 물론 둘째와 셋째도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서재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들어온 사람은 공작의 비서였다.

    “새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뭐지?”

    “아론 도련님과 관련해 에드먼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또 무슨 사고를 저지른 건가?”

    공작은 머리가 지끈거릴 것 같았다.

    아론에 관한 웬만한 일은 큰 것이 아니면 보고를 올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비서가 직접 찾아와서 내용을 설명하다니.

    어떤 사고를 쳤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론 님이 지난 5일간 아카데미 훈련장에서 교육생들과 대련을 하셨다고 합니다. 총 15명과 겨뤘다고 하더군요.”

    “15명? 많이도 상대했군. 15명한테 지면서도 계속 대련을 했단 말이야?”

    “아닙니다.”

    “……뭐?”

    “대련 결과는 모두 아론 님의 승리입니다.”

    공작은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이곳의 마법 교육생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다.

    즉, 아론이 쉽게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15명이나 쓰러트렸다고?

    정보의 출처가 의심스러웠다.

    “누가 보고를 올렸지?”

    “아카데미 총괄 교관인 레이널드 아르센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보고는 아니겠군.”

    공작의 얼굴은 점점 의혹에서 흥미로 바뀌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고가 더 있습니다.”

    “계속 말해보게.”

    “이곳에 도착하기 전, 아론 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케빈 님께 서열 대련을 신청할 테니 이 사실을 공작님에게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서열 대련이라…….”

    원래는 대련을 원하는 자가 공작에게 직접 말을 해야 하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서열 6위인 아론은 공작과 독대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신에 공작의 비서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비서의 말을 들은 공작은 그대로 잠깐 멈춰 있었다. 서재에는 정적이 일었다.

    “하하하!”

    이내 공작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근에 이렇게 웃어본 적이 있던가.

    잠시 후, 공작은 표정을 추스르고 비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아론이 그랬단 말이지?”

    “케빈 님께는 아직 이 사실을 전달해 드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서 말씀 드릴까요?”

    “아니, 됐네. 조만간 케빈과 만날 예정이니 내가 직접 전하도록 하지.”

    공작은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아론은 자신의 개인실에서 마법 연습생과 겪었던 대련 결과를 포드에게 알려주었다.

    “15전 전승이라…… 한두 번 정도는 질 줄 알았는데 말이다.”

    포드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아론이 마음을 먹은 지 고작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성장 속도는 지나치게 빨랐다.

    “이게 다 포드 공이 저를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아론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허허. 난 그저 방향을 잡아줬을 뿐이지.”

    라고는 말했지만, 포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론을 꽤나 많이 도와줬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서열 대련을 신청했습니다.”

    “벌써 말이냐?”

    “예. 이번에 연습생들과 겨뤄 보면서 제 실력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먼.”

    포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붙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아론과 케빈의 실력은 비슷했다.

    ‘아니, 지금은 아론 쪽이 살짝 더 위인가.’

    그래도 걱정이 되긴 했었다.

    실질적으로 아론이 마법을 쓰기 시작한 건 고작 요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케빈은 농을 피우긴 했어도 어릴 때부터 공작가의 수업 과정을 밟아 왔다.

    그렇기에 둘 사이에는 경험의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대련 결과를 들어보니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군.’

    이 정도면 아론이 이길만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아론을 가르치기로 한 거, 착실하게 하기로 했다. 좀 더 승률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서열 대련까지 시간이 얼마 없군.”

    “가문의 공식 행사니까, 아마 한두 달쯤 뒤로 예상합니다.”

    “좋아. 그럼 그전까지 특훈을 해야겠어.”

    아론은 자신보다 더욱 결연에 찬 표정을 짓는 포드를 볼 수 있었다.

    ‘특훈이라고? 고맙기는 한데…… 이러다 대련 전에 쓰러지는 거 아니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불안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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