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
현질 전사
-12권 14화
강영후의 도움에 힘입어 강화된 작살이 드래곤의 피막을 꿰뚫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
파이어 드래곤의 섬뜩한 울음소리가 귀청을 찢는 가운데 거대 분신이 작살에 연결된 끈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피막이 두두둑 찢어졌다.
그 광경을 보고 강영후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내려와라, 내려와......!"
강영후의 간절한 바람을 무시하듯 파이어 드래곤이 다시금 건물 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피막이 완전히 찢어져 버렸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놈이 힐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피막이 서서히 회복되는 걸 보고 강영후가 고함을 질렀다.
"광필두!"
슈파앗!
강영후는 눈 부신 빛 한줄기가 곧장 파이어 드래곤의 머리통으로 날아가는 걸 보았다.
7성 무구 중 하나인 케이론이었다. 광필두가 장궁을 들고 서서 놈의 미간을 노리고 쏜 것이다.
하지만 화살이 곧장 파이어 드래곤의 안면으로 날아가자 놈이 번개같이 고개를 뒤틀며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케이론이 쏜 마력살을 부숴버렸다.
회심의 일격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보고 광필두는 혀를 짧게 찼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마력살 수백 개를 한꺼번에 내쏘았다.
파바바바바바바밧!
아까보다는 위력이 덜하고 사정거리도 짧았지만 그 공격이 드래곤의 전신을 때렸다. 비늘을 꿰뚫을 정도는 아니라 해도 건물 위로 기어오르는 놈의 움직임을 훼방 놓을 정도는 되었다.
그때, 이러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허미래가 가냘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별안간 전신에 엄청난 무게가 가해지자 놈이 더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멈췄다. 버티느라 발톱이 연거푸 건물 외벽을 파고드는 게 보였다.
그 틈을 타서 거대 분신들이 다시 한 번 작살을 날리려 하고 있었다. 파이어 드래곤은 분노에 차서 힘겹게 고개를 돌려 브레스를 쏟아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피해!"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있던 대원들은 신속히 피신했으나 김송근의 거대 분신은 사정이 달랐다.
화염이 순식간에 거대 분신들을 휩쓸어 그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구현화 한 용 작살도 마찬가지였다.
강영후는 고스트를 이재우에게서 도로 뽑아냈다.
이재우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으며 주저앉자 지체 없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공대장님!"
놀란 대원들이 소리를 치고 강영후는 비행 스크롤을 찢었다. 곧 그의 등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날개가 돋아 강영후는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있는 힘껏 드래곤의 머리통을 향해 고스트를 휘둘렀다.
쩌러러러러러렁!
고스트의 칼날이 파이어 드래곤의 비늘과 부딪치며 굉음을 울렸다.
SSS급 무기인 고스트로도 파이어 드래곤의 살 속을 파고드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그 날카로움으로 비늘 몇 장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콰드드득!
"꺄아아아!"
파이어 드래곤의 주둥이가 강영후를 잡아챘다. 강영후는 가슴 아래가 모조리 으스러지는 기분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그 광경을 가까이에서 보고 앞서 비명을 지른 허미래가 앞뒤 가릴 것 없이 강영후를 구하려고 애썼다.
"디스터브!"
곧 파이어 드래곤이 강영후를 무슨 껌 뱉듯이 퉤 하고 뱉어냈다. 그리고 크게 날개를 펄럭였다. 허미래가 그를 구하느라 파이어 드래곤을 억류하고 있던 능력을 거두어들인 탓이었다.
일단 놈이 날아오르고 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일대가 전부 불바다로 변할 것이 뻔했다.
그때까지도 의식이 있던 강영후는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허미래가 만들어낸 그물, 네팅에 걸린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들리지도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막아, 막아......."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시 한 점의 눈부신 섬광이 날아들었다.
케이론이었다.
광필두가 자신의 모든 마력을 케이론의 활줄에 실었고, 회심의 일격을 강영후가 뚫어놓은 미간으로 날려보았다.
슈파앗!
허공을 할퀴며 날아든 케이론의 화살이 파이어 드래곤의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실제로 강영후가 고스트로 깨부순 비늘은 몇 장뿐이었다. 면적으로 따지자면 손바닥 하나 정도 크기밖에는 안 됐다. 어지간한 활 솜씨를 갖추지 않았다면 움직이고 있는 그 작은 과녁을 맞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광필두가 갖고 있는 것은 7성 무구 중 하나였다. 어떤 목표물이든지 간에 100%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그 활은 파이어 드래곤의 미간을 관통해, 뿔이 돋아난 뒤통수로 뚫고 나와 흩어졌다.
그러자 파이어 드래곤의 뒤꼭지로 광천수가 터진 것처럼 피가 솟구쳐 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뜨거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양편의 건물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파이어 드래곤의 눈동자에 빛이 꺼져 들었고, 놈은 곧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강영후도 때맞춰 정신을 잃었다.
* * *
강영후가 정신을 차렸을 때 다시 본 것은 최선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파리한 얼굴로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영후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깨어나셨어요?"
강영후는 최선을 보고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최선이 도로 그를 밀어 눕혔다.
"수혈 중이라 아직 마구 움직이면 안 돼요."
강영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수혈 중이라고?"
"예."
"내가 설마 각성자 병원에 실려 와 있나?"
"아뇨,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여긴 야전병원이에요."
잠시 안도하던 강영후는 야전병원이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야전병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자리해 있었고 그 말인즉슨 지금 자신이 강북에 있다는 소리였다.
"2차 방어선이 무너졌나?"
파이어 드래곤을 쓰러트렸기에 2차 방어선을 어느 정도까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최선의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보아하니 자신만의 낙관적인 생각이었나 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펜리르 부대의 활약은 놀라워서 파이어 드래곤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뒤따라 오는 하피 떼와 스킬라의 공세를 견딜 수는 없었어요. 그나마 12 연합대에서 살아남았던 장재원 씨가 시간을 벌어주어 서지원 씨가 남아 있는 공격대원들을 무사히 강북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그럼 지금 상황은 어떻지?"
"강변북로를 따라 새로이 제작된 MFP가 재설치 되었어요. 물론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서울 시내에 있는 모든 인력을 종로로 이동시킬 정도는 될 거예요. 그러잖아도 우리도 이동해야 하는 참이에요. 이곳의 모든 환자들도 광화문 광장으로 이송될 거예요."
"송시민이 나서는 건가...... 쉴드 작전은 언제 시작되는 거지?"
"3차 방어선이 무너지는 시점부터요."
고개를 끄덕인 강영후는 최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날 도운 걸 알면 최희가 싫어할 텐데."
최선은 희미하게 웃었다.
"공대장님을 살린 것이라고 하면 언니도 크게 나무라진 않을 거예요."
최선은 힐러로써 놀라운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능력에 제한이 있어 그 힘을 자주 쓰지는 못했다.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리스크가 커서 최희는 여동생의 능력을 최대한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최선이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와 있던 것도 최희의 감시하에 버퍼로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의 상황이 부끄러웠는지 최선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 힐러라면서 능력을 숨기고 있다니...... 제가 참 한심하네요."
강영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누구도 희생을 할 필요는 없는 법이야."
"하지만 공대장님도 자신을 희생하셨잖아요. 제가 없었으면 큰 장애를 얻으셨을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내가 선택한 바였어."
그들은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곧 간호사가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사령부로 이동할 것을 재촉했으나 강영후는 거절하고 막사를 나왔다. 그리고 타이탄 공격대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공대장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다들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그를 크게 반겼다. 사실 강영후는 파이어 드래곤의 이빨에 씹혀 척추가 부러지고 다리 한 짝이 완전히 날아간 상태였다.
반신을 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으니 단시간에 이만큼이나 회복한 것이 놀라울 법도 했다.
강영후는 다른 누구보다 광필두를 먼저 찾았다. 그는 광필두의 어깨를 두드리며 파이어 드래곤을 죽인 공을 치하했다.
"자네 덕분에 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광필두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시건방진 태도에 공격대원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곤충왕 장재원에게로 몸을 돌렸다.
"자네의 활약 또한 전해 들었네."
장재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텅 빈 코트 자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 활약은 여기까집니다. 갖고 있던 독충을 전부 다 썼어요."
"뒤는 우리에게 맡겨두고 이동하지."
강영후는 연거푸 발길을 재촉해 외인부대를 찾았다.
김시온이 묵례를 해 보이는 가운데 그는 유태훈을 찾았다. 강영후가 알고 있는 그라면 조금 전의 기회를 놓쳤을 리가 없었다.
"유태훈, 당연히 놈을 수중에 넣었겠지?"
새파랗게 빛나는 눈으로 강너머를 바라보던 유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광필두 덕분에 파이어 드래곤의 시신이 온전해서 꽤 쓸만한 전력으로 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크로맨서인 그는 파이어 드래곤이 죽는 것을 보자마자 다른 모든 언데드에 대한 장악력을 포기하고 파이어 드래곤을 수하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거기에 성공을 한 모양이었다.
"2차 방어선은 사수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를 했습니다만, MFP가 설치된 3차 방어선을 지키는 데는 힘을 보태겠습니다. 한강 다리를 모조리 폭파한 덕분에 놈들의 진격이 늦어지고는 있는데, 그것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좋아."
강영후는 3차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력만 남겨두고 모두를 후퇴시켰다. 자신 역시도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장 이동하기로 했다.
지프에 몸을 싣고 사령부가 있는 광화문에 당도하자 불길한 분위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계영일을 찾아가는데 무수한 인파 속에서 줄곧 정대식의 이름이 들려왔다.
"도대체 올인원은 어디 있는 거야?"
"서울이 모조리 파괴당하게 생겼는데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5대 거신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던데, 말만 그런 거 아냐?"
"모르지, 어디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지도."
"지금쯤 우주 밖으로 달아났을지도 몰라."
1, 2차 방어선이 무너지는 동안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대식을 향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그가 절대 도망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강영후조차도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