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70화 (269/297)

# 270

현질 전사

-11권 22화

"거기에 최소한 8성급 이상이 되는 몬스터, 스켈이 있으니까 가서 처치해. 스켈만 달랑 죽이고 오지 말고 시민들이 있으면 안전한 곳으로 보내서 대피시키고,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조심해서 싸워라."

광필두는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왜 그 말을 들어야 하지?"

"어차피 넌 내 말을 거절하지 못한다니깐? 그리고 넌 상황을 보고도 모르겠냐."

정대식은 심각한 태도로 말했다.

"이번 몬스터는 1차 몬스터 브레이크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넋 놓고 있으면 몬스터들이 인류 문명을 멸망시키고 지구를 집어삼킬 거야. 그걸 두고 보고만 있을 거냐?"

광필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홀로그램 맵을 띄워 위치를 확인하고 말했다.

"......순간 이동 스크롤이 있어야겠는데."

정대식은 이런저런 스크롤과 포션을 한 움큼 집어서 광필두에게 건네줬다.

광필두는 그 많은 아이템들이 어디서 다 났는지 묻지 않았다.

어차피 현질창에서 사들인 거라서 물어봤다 하더라도 대답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광필두는 개중에서 순간 이동 스크롤을 골라냈고 정대식은 이를 드러내고 위협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시 보자."

번쩍!

광필두가 스크롤을 찢자 그의 모습이 일시에 사라졌다.

정대식도 엔트로피를 돌아보았다. 엔트로피는 헌터들을 독려해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정대식이 그쪽으로 날아가자 헌터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정대식 씨!"

"굉장합니다! 그렇게 엄청난 괴물을 쓰러트리다니!"

"역시 올인원이야! 정대식 씨 아니었으면 우리 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그에게 환호성을 질러 보였다.

정대식은 머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환호성을 들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언데드가 일대를 휩쓸었다 보니 인명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네크로맨서가 죽자 언데드화 되었던 사람들이 모조리 시체로 되돌아갔고, 그 수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에 사람들도 곧 상황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정대식은 헌터들을 보고 말했다.

"이 부근을 장악하고 있던 몬스터가 죽었으니 한동안은 몬스터들로부터 안전할 겁니다. 제 서번트를 남겨 놓고 갈 테니 지원이 있을 때까지는 시민들을 보호하며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정대식은 그들에게도 이런저런 아이템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손짓해 자리를 떴다.

"이번엔 스핑크스를 처치하러 간다."

<지금 스핑크스를 죽이러 헌터들이 무리 지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8성급 이상 몬스터는 어지간한 헌터들이 상대할 수 없다, 잘못하면 다 죽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8성급 몬스터뿐만 아니라 10성급이 넘는 몬스터들까지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깔렸을 겁니다. 한 마리씩 찾아서 처치하는 방법으로는 무리일 겁니다.>

정대식은 입술을 깨물었다 놓으며 말했다.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서둘러 10레벨을 달성하시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 그걸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싸워야지!"

정대식은 하늘을 날아가며 어느새 해가 높아진 것을 보았다.

모래 폭풍의 거인을 쓰러트리고 던전을 나왔을 때가 새벽이었는데 벌써 한낮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방에 연기와 불꽃이 치솟고 있어 날씨가 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늘에 뜬 해마저도 처량해 보여, 정대식은 오늘 하루가 매우 길 것이라는 사실을 예감했다.

* * *

기철민은 눈을 뜨고 다소 식상한 생각을 했다.

'낯선 천장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리 낯선 천장까지는 아니었다.

으레 병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장소의 천장이었다.

게다가 기철민은 이 천장을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각성자 전문 병원의 입원실 천장이다.

기철민은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수액을 맞고 있기는 하지만 딱히 망가진 데는 없어 보였다.

의외로 멀쩡한지라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광필두와 맞닥뜨렸던 그때, 트리브링어가 깨지고 궁니르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았던 것이다.

지금쯤 사망했거나 최소 불구 정도는 되었어야 하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영문을 묻고 싶어도 일인용 병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철민은 수액을 뽑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몹시 분주해 보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으으으......."

"끄으......."

일인용 병실이라 조용해야 할 텐데 곳곳에서 신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다른 병실들은 일인실 다인실 할 것 없이 환자들로 꽉 들어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사이로 간호사가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어 기철민은 상대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머!"

병상에서 일어난 그를 알아보고 간호사가 반가운 표정을 했다.

"이제 정신이 들었어요?"

기철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된 거긴요. 부상을 입어서 입원을 한 거죠."

간호사가 별일 아니었다는 식으로 생긋 웃으며 말을 해 기철민이 물었다.

"그냥 부상을 입은 정도가 아니었을 텐데요. S등급 힐러가 절 구해주기라도 한 겁니까?"

기철민이 하는 말을 듣고 간호사가 의아한 듯 대꾸했다.

"아뇨? 그 정도 수준의 힐러가 필요하지는 않았는데요?"

"그게 무슨 말이죠? 분명히 다 죽어가는 상태였을 텐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부상이 말끔히 나은 상태였어요. 다만 의식이 없어서 한 며칠 입원해 계셨던 거죠. 아마 현장에서 어떤 처치를 받았던 거겠죠."

간호사에게 물어볼 일이 아니라 생각한 기철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 동료들은? 다 어디 있습니까?"

"타이탄 공격대 분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여기에 없어요. 전부 싸우러 나가셨어요."

"싸우러 갔다고요?"

기철민은 도주한 광필두를 붙잡으러 갔다고 생각했으나 간호사의 대답은 달랐다.

"보다시피 몬스터 브레이크로 사방이 난리도 아니에요. 싸울 수 있는 헌터들은 모조리 몬스터들을 상대하러 나갔어요. 그러니 동료분들께서도 그렇겠죠."

그제야 기철민은 사방에 환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이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은 신체 상태가 멀쩡했으므로 기철민은 동료들을 찾아가야겠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병실 비울 테니 병상이 부족하면 거길 쓰세요."

"앗! 잠시만요, 아직 몸이 멀쩡한지 모르는 걸요. 좀 기다리시면 의사 선생님께서 살펴보러 오실 테니까...... 물론 환자들이 많아서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더 있다 가셔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철민은 곧바로 병실로 돌아와서 자신의 옷을 찾았다.

그런데 전투 때 입고 있었던 옷가지나 방어구 같은 것들은 다 못쓰게 되었는지 흔적도 없었다.

걸치고 있는 환자복 말고는 입을 게 아무것도 없어서 기철민은 휴대폰과 단말기만 찾아서 병실을 나섰다.

그러면서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들 어디야?

전화 받을 정신이 없을 것 같아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역시, 단말기를 들여다볼 새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병원 주변과 시가지에 군인들과 헌터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들이 도로를 따라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몬스터들의 공격에 대비를 하고 있었다.

기철민이 환자복 차림으로 휘적거리며 그곳을 벗어나려 하자, 한 군인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이쪽으로 지나가실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거잖습니까. 그러니 비켜주십시오."

"밖에 온통 몬스터 천지예요. 나가면 죽습니다! 보아하니 환자 같은데......."

"전 각성자입니다. 옷이 없어서 이렇게 입고 있는 거지 환자도 아니고요."

기철민은 군인을 힘으로 밀어붙이고 사람 같지 않은 몸놀림으로 방어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정대식이 상태 증진 스킬을 꾸준히 써준 덕분에 그의 신체는 평범한 인간이라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한 헌터의 수준도 뛰어넘은 정도이다 보니, 그쯤은 맨몸으로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기철민은 새삼스러운 자신의 신체 능력을 보고 의문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스테이터스 측정을 한 지가 오래되었군. 지금쯤 몇 등급일까? 최소한 1등급은 넘어선 것 같은데.'

스테이터스 1등급을 넘어서고 나면 알파벳으로 다시 등급이 나뉘는데, SS, S, A, B, C로 구분이 되었다.

날고 긴다는 헌터들도 어지간해서는 C등급을 넘지 못했다.

특출난 이능이 있어야지만 A등급에 이를 수 있었고, S등급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시피 했다.

SS등급에 오른 유일한 인물인 최희 같은 경우에는 기상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엄청난 능력과 압도적인 마력 양, 그리고 뛰어난 신체 상태를 고루 갖추었다.

그녀와 견줄 만한 실력자라면 정대식 정도가 있을 텐데...... 솔직히 말해 그의 존재는 등급을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기철민이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랬다.

정대식을 등급 안에 넣으려면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내야 할 정도였다.

'그나저나 세상에 이 난리가 났는데 정대식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 것일까? 광필두는? 도로 붙잡혔을까? 그리고 내 티르브링어는 어디 있지?'

기철민은 이런저런 생각을 떨치듯 텅 빈 시가지를 가로질렀다.

서울 시민들이 다 어디로 대피했는지 주요 도로들이 모조리 비어 있었다.

길가에 버려지다시피 불법 주차된 차들만이 즐비해, 기철민은 두 발로 뛰기보다는 뭐라도 타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개중 차 하나의 유리를 깨부쉈다.

그리고 운전석에 올라타 키홀이 있는 곳에 손을 가져다 대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부르릉!

차 시동이 걸리는 것을 보고 기철민은 미소를 지었다.

'됐다! 막공 전전하던 시절에 알아둔 꼼수가 도움이 되는군.'

기철민은 곧 액셀을 밟아 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타이탄 공격대 본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타이탄 공격대 본사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 기철민은 몇 번이나 차를 갈아타야 했다.

도로 곳곳이 막혀 있었기에 그런 데는 도보로 이동하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꽤 시간을 절약해서 크게 오래지 않아 본사 건물에 당도한 기철민은 황급히 로비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안내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 무슨 일이신지......."

"나 펜리르 부대 기철민인데. 지금 우리 대원들 다 어디 가 있지?"

그녀는 허둥거리며 소식을 전해주었다.

"지금 타이탄 공격대는 담당 구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몬스터를 소탕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 말을 듣고 기철민은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시 각 공격대가 도맡아야 하는 던전을 떠올렸다.

단말기에 저장되어 있는 위치를 확인하고 즉시 무기고로 내려갔다.

보안키를 입력하고 기철민은 무기고에서 타이탄 공격대원들에게 지급되는 방어구와 자동 소총, 나이프와 같은 기본적인 장비를 차렸다.

그런 뒤 안내데스크로 돌아가 차 키를 건네받았다.

본디 펜리르 부대원들에게 배정된 차량이 여러 대가 있었으나 공격대원 전원이 필드에 나가 있다면 차고가 텅텅 비어 있을 게 뻔했다.

그래서 안내데스크에 말을 해 비상키를 받아 접객용 차량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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